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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는 늘 다시 새로운 음악이고 또 다른 장르이다

나는 서태지를 사랑한다. 무엇보다 그의 음악을 사랑한다. 그래서 서태지는 나에게 늘 다시 새로운 음악이고 또 다른 장르이다.
 
 


나의 서태지

서태지라는 언명은 이미 신성불가침의 어떤 것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세기말 한국 대중음악의 판도를 뒤바꾼 한명의 아티스트의 이름이자, 유수의 대기업 자본가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기도 한 천재 장사꾼의 이름이고, 그 이름자체가 하나의 문화트렌드인 대표적인 스타일리스트의 이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의 음악적 성취에 대해서는 사실 별로 할말이 없다. 10년이 넘는 시간을 거쳐 그의 음악은 경이의 대상이었고 시기어린 질투의 대상이었으니까.. 하지만 서태지라는 이름이 우리들에게 가지는 의미가 '사랑하는 아티스트'에 머물지 않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가 지닌 이미지, 아니 그가 만들어온 이미지는 언제나 '문화 혁명가','문화게릴라'였고 억압받는 청소년의 대변인이자, 주류에 저항하는 일종의 투사였다. 그가 의도하였든 그렇지 않았든 그의 음악은 항상 정치적으로 해부되고 분석되고, 선전되었다.

그런데 정작 서태지 자신은 수많은 인터뷰에서 자신에게 그러한 이미지가 씌워진 것을 부담스러워 했고 자신은 혁명가가 아님을 강조하기 까지 했다. 이 대목이 서태지의 영악한 프로듀서감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음악적 행보는 철저하게 계산되고 예정된 완벽한 숏처럼 군더더기없이 자신의 입지를 만들어 왔다. 그의 이러한 행로를 봤을때 그의 이미지가 그의 계산없이 만들어졌으리라곤 생각할수 없다. 그럼에도 그가 스스로에게 지워진 혁명가의 이미지를 애써 부정하는것은 그가 음악을 통해 비판했던 주류 시스템이 실제로 붕괴했을때 서태지 자신도 역시 사라질수 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서태지는 항상 주류의 변방에 머물긴 했지만 비주류 자체는 아니었다. 어쩌면 극한의 시스템의 부속품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말대로 서태지는 혁명가가 아니었고 아니고 싶어했다. 서태지를 자유롭게 하는건 그의 이미지가 아니라 음악이다. 주류에 편입하기 위해 댄스음악을 하면서도 종국에 락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락스피리트가 그의 본질일 지도 모른다. 춤밖에 출줄 모르는 양군과 주노에게 드럼과 베이스기타를 들릴수 밖에 없는 소년적인 감수성, 그것이 바로 서태지일 것이다. 이제 그에게 지워진 짐을 벗겨주자.

그가 또한번 날 수 있도록...

2002년 어느날에 썼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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