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중구난방

뭐 총선정국의 한 가운데 있다보니 정신사납고 이래 저래 예민해져있는 요즘이다. 갑자기 착 가라앉는 저녁, 좀 차분하게 주변을 돌아본다.

 

2006년 월드컵이 한창일 때, 토고와 관련된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토고 국가대표 감독과 선수들의 경기 보이콧 이야기가 설왕설래 할 때 올린 그 글에서, 짧은 생각이나마 이런 이야기를 했더랬다.

 

노동자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위치가 노동자라는 사실을 몸으로 체득한다. 그러나 그들이 선거시기에 "노동자의 대표"들에게 자신들의 표를 무작정 헌사하지는 않는다. 내가 노동자이기 때문에 노동자의 대표에게 표를 준다는 것이 아니라, 비록 내가 노동자라 할지라도 내 표는 내게 "이익"이 되는 대표에게 던질 것이라는 확실한 자기 포지셔닝을 하고 있는 거다.

 

문득 그 때 포스팅한 구절들이 생각났던 것은 낮에 받은 전화 한 통화 때문이었다. 정책에 대한 이야기였다. 진보신당의 정책이 좋은 것은 알겠는데, 이런 정책들이 왜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느냐는 거다. 일단은 언론이 진보신당의 정책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고, 토론회 등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고, 당에 재정이 여의치 않아서 홍보도 많이 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는 했다. 전화를 한 분은 좀 더 이런 정책들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한다. 앞으로도 관심 많이 가져주십사 하고 전화를 끊었다.

 

통화가 끝난 후 잠시 뒤에, 그 분이 이야기한 것에 대해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과연 전화통에 대고 구구하게 사유를 이야기했던 것이 정확한 것이었던가? 물론 총선용으로 한 달만에 급조된 정당에서 뭘 더 효과적으로 알려낼 수 있었겠는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던 거다. 우리는 과연 우리가 지지기반으로 하겠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진정 스스로 "이익"이라고 여길만한 것을 제시했던가?

 

정책의 내용은 전부 그러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그건 자부할 수 있다. 그럼 뭐가 문젤까? 포장을 잘 못해서일까? 좀 더 이쁘게 꾸미고 화려하게 장식했다면 달라졌을까?

 

안그래도 복잡한 머릿속에서 이런 저런 생각들이 줄지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프레시안에 실린 한 기사에서 이런 글을 보았다.

 

요즘엔 자꾸 마이동풍 같은 사자성어나 소귀에 경읽기 같은 속담이 떠오르는데, <인터뷰>같은 영화가 우리사회 젊은이들에게 산 지식으로서 활용되기가 난망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건 국회의원 총선거의 투표율이 50% 초반대에 머무를 것이라는 전망과 궤를 같이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아무리 정치의식이 중요하고, 개개인이 갖는 정치사회적 태도가 영화문화와 영화산업의 발전을 가져오는 기본이 된다고 역설한들 씨가 먹히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는 무슨 정치,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같은 당인지 다른 당인지, 국회의원 의석수가 도대체 몇석이나 되는지, 비례대표가 어떻게 결정되는지, 젊은이들 대다수가 관심 밖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건 왜 이럴까? 세간에 회자되는 말 중에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것을 정치적인 것으로 각성하고 정치적인 행보를 통해 개인적인 것을 전환시키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기사를 올린 필자는 "젊은이들"을 콕 찍어서 이야기했으나 그건 젊은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닌 듯 싶다.

 

예컨대, 대운하공약이나 3불정책 폐지등의 교육공약 또는 건강보험 민영화 등을 아예 전면에 배치하고 달려가는 이명박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해 사회 전반에서 그토록 비판과 반대가 속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에 대한 유권자의 지지율은 물경 50%에 육박하고 있다. 그런데 이 50%에 달하는 지지율이 연령에 따라 큰 차이가 있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4월 2일 리얼미터 자료

 

비록 50대 이상의 유권자층이 57%에 달하는 강력한 지지를 보냄으로써 지지율이 올라갔다고 하더라도 20대 43.9%, 30대45.3, 40대 42.3%라는, 연령대별로 거의 일정한 지지율을 한나라당은 기록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

 

20대가 보수화되었다고 하지만 여러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20대가 다른 연령대보다 보수적이라고 판단할 근거는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설득력이 있는 것은 우석훈이 주장하듯 소위 88만원세대에 대해 세대간 착취를 서슴지 않는 그 윗세대들이 젊은 층의 보수성을 자신들의 알리바이로 삼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적어도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회현상들을 "정치사회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나라당에 대해 지지하기는 어렵다. 단적인 예로 한나라당 홈페이지 메인화면에 떠 있는 아래 그림과 같은 주장들을 보면서 과연 얘네들이 제정신이 박힌 애들인가 의문을 떠올릴 수는 있으리라는 거다.

 

4월 7일 현재 한나라당 홈페이지 메인 화면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표를 던진 많은 사람들이 경제를 살리겠다는 그 말 한마디에 혹해서 이명박을 지지했다는 설이 있다. 물론 이명박이 가지고 있는 일정한 아우라, 샐러리맨의 성공신화와 화려한 정치역정 등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람이라면 경제 살리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던져주었을 수는 있다. 그러나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과연 그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과 경제회생이라는 지극히 추상적인 가능성만을 가지고 표를 던졌을까 하는 거다. 던졌을까?

 

이명박이 당선된 이후 인수위시절을 거쳐 대통령직에 오른 지금까지 불과 3개월, 그동안 한국경제는 완전 널뛰기를 했다. 이명박이 경제살릴 거라는 장담을 해놓고 대통령이 되었는데, 단기계획조차 제대로 내지 못해서 시장을 불안하게 만드는 이 현상을 보면서 사람들은 충분히 불안감을 가질만 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 반대. 위 표에서도 봤듯이 대~한민국 50%는 한나라당을 지지한다.

 

이 지지기반을 바탕으로 한나라당은 "한나라당에게 일할 기회를 주십시오"라고 앙증맞게 손을 벌린다. 취임이후 불과 한 달만에 민생이 완전히 제 갈길을 못찾아 방황을 하고 있는데, 한나라당이 이걸 바로잡겠다고 난리다. 물론 불과 한 달 지났는데, 이정도 혼란쯤이야 집권초기의 정치적 상황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하다못해 연합뉴스와 조중동까지도 이명박 정부의 현재를 비판적으로 보는 이 시기에 저 50%에 가까운 지지율은 과연 뭘까? 이건 기적이야~~~!!! 이렇게 해석해도 되는 건가?

 

왜 진보신당의 정책이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가에 대한 고민과 오직 시장주의 일변도의 정책을 가진 한나라당은 어째서 높은 지지율을 얻는가에 대한 고민이 뒤죽박죽이 되어 머리통을 2mB 불도저 운전하듯 돌아다니던 중.

 

가끔 들어가는 코메디 사이트 조선닷컴에서 이런 기사를 발견했다.

 

"미(美) 대학가 '철학의 부활'"

 

물론 기사의 목적은 뻔하다. 기사엔 이런 구절이 있다. "이(철학)를 통해 로스쿨 진학 등에 유용한 구술능력, 논리력을 키우고 다른 분야에서 요구하는 실용적인 기술을 습득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단든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에서 부는 철학열풍도 이명박이 주장하는 실용주의의 일환. 뻔히  속이 들여다보이는 조선일보의 기사.

 

조선일보는 순전히 실용적 관점에서 철학도 돈 되는 학문임을 드디어 미국애들이 깨달았다는 차원으로 기사를 썼지만, 이 기사를 보다가 피식 웃고 말았는데, 과연 철학적 소양이 사회적으로 충만해진다면(그 시발이 실용적이었건 어쨌건 간에) 그런 사회에서 조선일보같은 개념 상실한 신문들이 살아날 수 있을까 하는 거다.

 

그러가가 문득, 해답은 여기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2mB가 몰고다니는 불도저가 머리 속을 온통 헤집고 있던 중, 혹시 지금까지 내가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들의 해법이 너무 간단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작은 것이라도 이익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야 사람들은 움직인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애초 이 사람들이 어떤 것이 나의 이익인지를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의 교육이나 사회생활에서 얻는 교훈들이 과연 무엇이 나에게 이익인지를 가르쳐주고 있었던가?

 

진보신당의 창당만큼이나 급조된 생각이다보니 이걸 어떻게 판단하고 정리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이걸 넘어서면 또 다른 문제가 보일 수도 있다. 좀 더 차분하게 정리할시간이 오면 차근 차근 생각해봐야겠다. 내일은 무척 긴 하루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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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7 22:09 2008/04/07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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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합뉴스와 조중동까지 현재의 사태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기에...그 지지율이 하락하지 않는것은 정/말/이/지/!! "기적" 이야!! 이 판국에 과연 내가 더 살아야 할 '의미'가 있을까??? 아....넘넘넘 슬프도다...ㅠㅠㅠㅠ

  2. 지나가다/ 살아아죳~! 이 "판국"을 만든 넘들이 버젓이 살아 있는데, 그넘들 걍 두고 놔둘 수는 없잖아요.^^ 슬퍼하지 마세요. 사방에서 주어 터지고 있는 저도 버티는데요 뭐. ㅎㅎ

  3. 누가 말했는지, 어디서 전해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말이 설득력이 있더라는...
    국민들이 정상적인 삶을 바라기보다는 한번의 대박을 꿈꾸며 살아간다. 그 대박의 여건을 한날당과 2kb는 만들어주겟다고 얘기하기 때문이다.
    뭐 이런거... '우리 모두 대박의 주인공이 되자'-이걸 누가 막으랴..ㅎㅎ

  4. 산오리 님 말씀이 설득력이 있네요. "우리 모두 대박의 주인공이 되자"
    바로 그것 때문에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많을 겁니다.
    그리고 '3개월 간의 실정'보다 '10년 간의 실정'을 심판하겠다는 여론도
    나름 센 것 같구요. 이런저런 이유로 해서 한나라당이 강세인 듯.
    그리고 앞으로도 일본의 자민당과 비슷한 위치를 한나라당이 차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지난 2004년 제17대 총선 때의 탄핵 열풍 속에서도 한나라당이 120석 이상을 얻은 걸 생각해보면,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 한나라당이 과반수를 얻지 못하는 게 더 이상한 겁니다.

  5. 산오리/ 글쵸. 지금 이거 완전히 로또 정국이죠. 산오리님 말씀처럼 "우리 모두 대박의 주인공이 되자~!"... 참 갑갑시럽네요. ㅎㅎ

    참군/ 그러고보니 그렇군요. 2004년과 비교해보니 지금 한나라당이 120석 이상 얻는 것이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네요. ㅎㅎ 머리아픈 게 많이 낫네요. ㅎ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