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을 찾아 불곡산으로

짝꿍이 산에 가자고 노래를 부른지가 벌써 꽤나 시간이 흐른 일인데, 백수 주제에 그동안 쌓인 피로를 푼다는 미명으로 방구석에 뒤굴거리고야 말았더랬다. 그러다가 큰 맘 먹고 어제 산을 향했다가, 아뿔싸 그만 비를 만나 통한의 회군을 하고야 말았다. 오기충천! 기왕 가기로 했던 거, 내일이라도 당장 결판을 내리라! 그 내일이 오늘이었겄다...

 

양주 시청 뒤에 웅장하게 서 있는 산이 있으니 이름하여 불곡산. 산자락 아래에는 임꺽정 생가터도 있단다. 전철 타고 지나다니면서 멀리 보이는 이 산을 보면서 참 산이 "멋"있게 생겼다고 생각하던 터에, 마침 거점(?)에서 그닥 멀지도 않은 위치고 해서 부담없이 출발하였던 거다.

 

코스는 샘내마을 -> 부흥사 -> 임꺽정봉 -> 상투봉 -> 상봉(불곡산 정상) -> 백화암 -> 유양리

 

산은 정상인 상봉이 불과 해발 469m로 그다지 높은 산이라고 하긴 어려우나 산세만큼은 어느 명산에 대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다채롭다. 특히 바위가 웅장하여 보기에도 좋고, 뭐 기어다니느라 힘은 들었지만 간만에 바윗길을 다녔다는 뿌듯함도 있더랬다.

 

임꺽정봉에 쌓인 쓰레기더미를 보면서 인상을 찡그렸고, 어디선지 휘발유냄새같은 것이 심하게 나서 기껏 산에 올라온 보람이 반감되는 감도 있었다. 게다가 그 뻘쭘하게 서있는 송전탑들이라니... 산 저편에는 모 부대 유격장이 있었는데 청년들의 우렁찬 피티체조 구령소리와 "유격, 유격"하는 소리가 산 전체에 울려퍼진다. 이 땡볕에... 불쌍한 것들...

 

암튼 초행길인 덕에 길을 잃고 돌아간 것 때문에 걸린 시간을 포함해도 총 3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산행길이 착하기도 하다. 짝꿍은 체력을 키워 다시 도전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다지고...

 

불곡산에 대한 이야기는 뭐 더 가 본 후에야 감칠맛나게 할 수 있겠지만, 이 산이 임꺽정의 정신세계에 영향을 끼쳤을 거라는 짝꿍의 말쌈에 전적으로 동의. 이 험난한 산을 자기집 마당처럼 뛰어다니면서 기상을 키웠을 꺽정. 그 정상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내려다 본 세상이 얼마나 가소로웠을 것인가? 그런데, 한 주먹거리도 되지 않는 것들이 양반이랍시고 거들먹거리면서 패악질을 놓는 것을 보고 임꺽정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뭐 내가 그 입장이래도 걍 일단 주어패고 볼 것 같다.

 

불곡산은 임꺽정의 어린 시절, 그 가슴 깊은 곳에 큰 영향을 끼쳤을지 안 끼쳤을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냐만, 암튼 큰 영향을 끼쳤으리라고 믿고싶다. 불곡산을 한 번 경험하면, 그런 심정이 절로 들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 거다. 산행은 잘 끝냈고, 기왕 잘 다녀온 불곡산을 돌아보며 주제 넘게 해본 생각은 이거다.

 

불곡산 등산 번개나 함 때려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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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0 22:37 2008/05/20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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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불곡산 입구까지는 갈 생각 있음.
    좋은 동네로 이사가셨군먼. 좋겠당.

  2. 불곡산 정상에 동행할 생각 있음..ㅋ
    이 산 주변이 넘 지저분하긴 해여..

  3. 불곡산이고 뭐고, 혼자 신선놀음을 다하고 계시는 구만요. 부럽습니다. 보름사이에 집팔고, 집구하러 다니고 정신이 없습니다. 그새 실업자 신세가 되어버렸지만요. 크흑.

  4. 오랜 만에 놀러 옵니다. 저는 등산을 정말 싫어하는데, 이 글을 읽으니 왠지 함께 등산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아, 그리고 제가 블로그를 옮겼어요. 그래도 이 공간에서 나름(?) 행인님과 정이 들었는데(^-^;), 그냥 사라지는 것이 마음에 걸려 이사한 곳의 블로그를 링크해 두고 갑니다. 아이디를 클릭하면 넘어 올 겁니다. 이전처럼 앞으로도 종종 들릴게요(^-^)/

  5. 말걸기/ 불곡산 같이 한번 올라가 보는 것도 좋을 거여. ㅎㅎ

    산오리/ 역시 산오리님!!! 제가 불곡산 정탐을 좀 더 한 후에 벙개함 때리죠. ^^;;;

    평발/ 저런... ㅜㅜ... 근데 백수생활이 신선놀음은 아니더라구요. ㅋ
    뭔 할 일이 그리도 쌓였었는지... 평발님께 좋은 일이 있으시길 불곡산에서 기원할께요.

    무한한 연습/ 헉... 이사가셨군요. 저도 자주 찾아가겠습니다. 등산이야 뭐 산을 본다는 것에 의미를 두면 오르고 안 오르고의 차이가 있겠습니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