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습보다 무서운 거

지인이 지난 번 행인의 포스팅을 보고 하는 이야기가, 북한 3대 세습을 그렇게 우스갯거리 정도로 생각하는 건 문제다, 비판해야만 한다는 이야기를 얼핏 하던데, 솔직히 그 이상 말을 덧대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다.

 

아니,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그닥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벌써 남들이 다 했는데 뭐. 거기에 더해 민주노동당을 비판하는 거, 이건 까놓고 시간 낭비. 아닌 말로 의장님 옹립하면서 눈물을 휘날리던 감격의 도가니탕을 지금도 재탕 삼탕 우려먹고 있는 그 심성에 대고 의장님보다는 몇 십배 윗길의 "대장"님에 대한 감동의 쯔나미를 배신한 채 비판을 하라고 한들 씨나 먹힐 이야기도 아니고.

 

북한의 3대 세습은 북한과 남한, 그리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의 차원에서 그 장단점에 대한 비교분석이 필요한 일일 뿐, 행인에겐 어떤 충격도 주지 못했다. 오히려 북한의 3대 세습이 주지 못했던 충격을 주는 사건은 남한에서 발생했으니, 그것은 "전두환 각하 만수무강" 사건.

 

모교 동문회 행사에 참여한 전두환에게 동문 일동이 "만수무강을 기원한다"는 말을 인쇄한 길다란 현수막을 들고 도열하여 큰 절로 예배하는 사건을 보면서 받은 충격은 진정 경악이라고 표현할만 한 것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은 유튜브 캡춰.

 

이 뉴스를 보는 도중 순간 시공간이 정지된 듯한 착각에 빠졌는데, 잠깐의 멍때림을 빠져 나온 후에 온 몸을 휘감는 감정은 분노 그 자체였다. 어찌 저럴 수가 있을까?

 

학살은 그것이 무수한 사람들의 애꿎은 생명을 끊어놓았다는 것만으로도 죄악이 되지만, 그 학살의 목적이 타인의 생명을 도구로 삼아 자신의 영달을 꾀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 용서될 수가 없는 거다. 같은 인간을, 그것도 인간의 생명을 단지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시켜버린 그 자체는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광주의 학살만 학살이 아니다. 신군부 쿠데타 이후 전두환 정권의 말기까지 무려 8년 간, 독재정권의 안녕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명을 질러야 했던가?

 

이 사건은 하나의 불길한 징후로 포착된다. 즉 시간의 흐름이라는 엄중한 자연의 법칙이 자칫하면 과거의 기억을 새롭게 창출할 수 있다는 것. 청산되지 못한 과거는 바로 그 한계로 인해 새로운 범죄를 양산한다. 어찌 보면 이 사건은 망각을 거름삼아 신민(臣民)의 부활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구체제의 준동이 이미 본격화되었음을 암시하는지도 모르겠다.

 

저 운동장에서 절을 하는 사람들의 감수성이라는 것은 어쩌면 무지의 소산일 수도 있겠으나, 더 적실하게는 죄의식의 역설적 정화일 수도 있다. 항거하지 못한 죄, 침묵한 죄로 인해 감당해야 할 양심의 무게가 지나쳐 이를 더는 방법으로 택한 것이 오히려 죄를 죄가 아닌 것으로 만드는 것. 원래 죄였던 것을 죄가 아닌 것으로 전화시키면 양심에 걸리던 그 묵직한 암괴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 된다.

 

이를 위해 자타 공히 기억은 말소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억이 사라진 뇌 한 구석의 빈 공간에 사라진 기억을 대체해야 할 전혀 다른 성격의 무엇이 채워진다. 거기에 새롭게 등장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영웅. 혼란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화려하게 현신한 영웅. 그럼으로써 자신들의 죄의식을 원천적으로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릴 그런 영웅이 필요한 거다. 마침 적절하게, 지연과 학연이 더해지고 당대의 화살이 자신들이 아닌 다른 자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권력을 행사했던 자가 들어선다.

 

절을 하던 자들만이 이런 심정을 가진 것은 아닐 거다. 오히려 이렇게 되기를 바라는 자는 전두환일 것이다. 더 나가 청산되어야 할 과거에 적지않은 짐을 진 자들의 심정이 이럴 수도 있다. 물론 게중에는 반성과 참회를 통해 양심의 짐을 덜고자 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그들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진정으로 두려운 것은 망각과 은폐다. 저 절을 받는 자가 그토록 원하는 그것은 저들을 둘러싼 다른 이들의 기억 속에서조차 잊혀져서는 안 될 어떤 일들이 기어이 잊혀지는 것이다. 잊혀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림막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며, 그 가림막을 뚫고 나오는 것은 완전히 각색된,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의 기억이어야 한다.

 

다행인 것은, 저들의 소망이 웅대한 만큼이나 이 사회의 기억력이 쇠퇴하지는 않았다는 것, 행인이 느낀 분노와 불안을 아직은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칼을 휘두른 자와 이에 동조한 자, 그리고 침묵한 자들의 틈바구니에서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겪었던 사람들이 아직 살아 자신들의 기억을 지키고 있다는 것.

 

개인적으로 행인도 전두환의 만수무강을 기원한다. 누구보다 오래 오래 살아주길 앙망하는 것이다. 지금도 어느 곳에서, 과거의 고통을 극복하지 못한 채 괴로워하며 죽을 날만 기다리던 사람들이 단 한 명도 남기지 않고 세상에 다시 나와 그의 만행을 낱낱이 폭로할 그날까지 전두환이 살아주길 고대한다. 잊을만하면 300만원씩 내도 좋다. 기억은 결코 지워지거나 은폐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전두환이 절절히 깨닫는 그날까지 그의 죽음은 늦춰져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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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2 12:09 2010/10/22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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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 눈 속에 든 가시가 확대경이란 말이 맞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