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장천익 형님을 기리며

- 야, 행인. 뭐하냐?

당장이라도 형님이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릴 듯 합니다. 아무런 예정도 없이, 서로 바라고 원하는 것도 없이 생각나면 그렇게 불러주셨고, 쫓아갔고, 웃고 떠들고 그랬습니다. 형님하고 어울리며 풀었던 구라는 엔간히 다듬으면 벽초의 임꺽정 분량만큼 대하소설이 한 질 나올 듯 싶고, 형님하고 빨아 제꼈던 술을 주종불사하고 병으로 줄 세우면 못해도 서울 대전 한 번 왕복은 할 수 있을 듯 싶습니다.

벌써 만 16년이 지났습니다. 재벌 비업무용 부동산 문제와 이에 연루된 권력의 문제를 폭로하는 양심선언으로 고초를 겪으시던 이문옥 전 감사관님의 팬클럽 ‘깨끗한 손(깨손)’에서 형님을 뵙게 되었죠. 시간 참 빨리 갑니다. 깨손의 동지들도 다들 이젠 중년 고개를 넘어가고 있구만요.

형님은 깨손의 큰 형님이셨습니다. 뒷전에 서서 그다지 뭘 하시는 것 같지도 않은데, 뭔 일이 나거나 문제가 생기면 형님의 독특한 카리스마가 빛났습니다. 사람 모인 곳이다보니 티격태격하는 일도 있고, 워낙 다양한 정치적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도가니의 특성상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어쨌든지 형님이 조율하면 대충 정리가 되었죠.

형님은 세상이 좋아지기를 한결같이 바라던 분이었습니다. 깨손의 큰형님답게, 형님은 자주 이문옥 선생님을 존경한다고 이야기하셨죠. 
-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 세상을 바꿔야 한다. 그런데 세상을 바꾸려면 자신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이 바뀐다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문옥 쌤은 그 어려운 걸 평생 하신 분이다. 관료로 평생 편안히 살 수도 있는 분인데, 점점 더 자신을 바꾸면서 끝내 큰 용기를 내신 분이다. 그런 분이 세상을 바꾼다. 그래서 존경한다.

요약하자면 이런 취지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형님께 물었던 것이 있습니다. 어쩌다가 진보정당 운동을 하시게 되었나? 형님은 국승21부터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노동당을 거치면서 진보정치를 고민해 오셨죠. 아마 제 기억에 이 질문은 형님하고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드렸던 듯 싶어요. 하지만 형님의 답변이 워낙 인상에 남아 지금도 선명히 기억합니다.

- 처음에는 ‘분노’ 때문에 했지. 분노 때문에. 왜 내가 사는 세상이 이 모양밖에 안 되나? 세상에 웬 이런 나쁜 놈들이 많은가? 어째서 착한 사람들은 맨날 손해만 보고, 좋은 일 하려는 사람들은 맨날 다치고 죽는가?

- 하지만 분노만으로는 안 된다. 중요한 건 사랑이다. 난 딴 거 없다. 내가 아는 사람들과 사랑하며 살고 싶다. 좋아하는 사람들하고 재밌게 지내면 된다. 그거 하는데 필요한 게 진보정치더라. 야, 그런데 니는 왜 이 판에 있냐?

서로 그런 이야기 하면서 웃고 그랬습니다.

많은 부침이 있었죠. 형님은 그 부침 속에서도 심지 있게 자기 자리를 지키셨습니다. 하지만 그토록 사랑하던 사람들이 서로 모질게 대하고 다시는 안 볼 것처럼 등을 돌리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아파하셨죠. 우리가 만나 즐거워서 마신 술이 서울서 대전까지 편도라면, 아마도 그렇게 슬퍼서 마신 술이 대전서 서울까지 편도는 될 겁니다.

몇 년 전 진보신당의 일부가 통합진보당으로 간 후, 한 인터넷 언론사 후원주점에서 깨손이 모여 한 잔 하던 일이 있었죠. 그날 기억 나시나요? 노회찬 심상정 두 사람이 행사장을 돌며 사람들과 악수를 할 때, 형님은 그 두 사람의 악수를 거부했습니다. 그 때 옆에 있던 누군가가 악수를 거부한 건 너무하는 거 아니냐라고 하니까 형님이 내가 내 손 안 줄 수도 있지 그러셨죠.

술이 돌다가 그 이야기가 나왔을 때, 형님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 나는 저 사람들, 떠나간 사람들 다 잘 되길 바란다. 저 사람들이 어디 가서 보수정치인이 되겠냐? 진보정치 할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악수는 못해주겠다.

이후에도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또 많은 사람들이 길을 달리 하게 되었을 때, 형님은 여전히 그들이 잘 되길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여전히 그들을 도와주셨고,

- 다 내 동생들이야, 사랑하는 동생들
- 뭐가 이쁘다고 챙겨주고 그러십니까?
- 야,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 갸들이 그칸다고 내까지 의리 없이 살면 안 되잖아!

아파도 내색 않고 집회에 참여하고, 일이 잘 안 돼서 경제적으로 힘이 들어도 다만 얼마간이라도 집어줘야 속이 편하던 형님이셨습니다. 아마도 이 동네에서 형님 얼굴 알고 말 한마디 섞은 사람 중에 형님 술 한 잔 못 받은 사람이 없을 겁니다.

물론 아쉬워하시기도 하셨죠. 
- 나 관악에서 내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부끄럽지는 않다. 하지만 아쉽다. 진보정치가 이렇게 가면 안 되는데. 동생들 다 잘됐으면 좋겠다. (당이) 찢어질 때 살점이 떨어지는 거 같았다···.

형님께서 일이 잘 안 풀리셔서 힘들어하시던 때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말씀은 잘 안 하셨지만, 이상하게 저하고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죠. 이번에 아프실 때도 그랬습니다.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아달라. 형님이 무슨 충무공입니까? 알리지 말라고 하게. 형님이 알리지 말라하시니 저도 알리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일이 힘드실 때나 몸이 안 좋으실 때, 뭐 좀 도와드릴 깜냥도 없는 주제에 제가 걱정하고 있노라면 형님은 시원하게 말씀하셨죠.

- 야, 나, 장천익이야! 그거 뭐 하면 되지 뭐가 걱정이고? 잘 된다, 걱정마라!

지금도 제가 논문 마쳤다고 전화드리자마자 “당장 쫓아 온나!” 하며 불러내셔서 기뻐해주셨던 일이 어른거립니다. 언제나 니들이 열심히 해서 그래도 이만큼 세상이 바뀐 거라고 하셨던 형님. 그래도 우리 애들에게 좀 더 좋은 세상을 물려줘야 안 되겠냐? 그러시더니, 작년엔 저에게 “야, 나는 딸래미가 여행도 보내주는 사람이야!”라며 자식자랑을 반복하시기도 했습니다.

형님은 진보정치가 자리잡고 제 역할을 하는데 필요한 일이라면 다 하셨던 분입니다. 그럼에도 빛나는 자리 하나 원하신 적이 없습니다. 형님도 뭐 당협위원장이나 이런 거 한 번 하시지 그러셨어요? 
- 야, 내가 뭐 할 줄 아는 게 있나? 나는 돈 벌어서 후원해주고, 집회 나오라면 나가고 이런 건 잘한다. 머리 좋은 니들이 정책 잘 만들고, 나는 집회 잘 나가고 그럼 됐지. 
- 그래도 형님, 좀 아쉽지 않아요? 
- 야, 나는 무식해서 그런 거 잘 몰라요, 하지만 니들 평당원 안 무섭나? 내가 니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평당원이야! ^^

형님, 스스로 무식하다고 하시더니만 알고 봤더니 집안이 자랑하던 수재였습디다. 내 진작에 형님이 보통 인물이 아닌 걸 알아봤습니다만, 둘이 술이나 좋이 퍼먹다가 그만 형님의 비상함을 내 걸로 다 못만들고 말았네요. 희안하게 제가 어느 자리에 누구랑 술을 퍼도 엔간해서는 자빠지거나 먼저 골로 가진 않는데, 형님하고 둘이서만 마시면 만취에 대취에 정신을 못차리고 필름이 끊겨버리곤 했습니다. 이제 다시는 그럴 일이 없으니 그것도 참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저는 좀 아쉽습니다. 형님이 다시 못 올 길로 가시는 마당에도 그게 자꾸 걸립니다. 누군가는 빛나는 자리에 올라 이름을 떨치고, 명망으로 또 다음을 기약하고, 그 사람 곁에 또 사람들이 몰리고, 무슨 일 하나만 있어도 호들갑이 벌어지는데, 그런 사람들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형님은 그럭저럭 유명짜한 인물이 와서 뭐 하나 그럴싸한 고별사도 해주는 거 없이 그렇게 보내드리게 되는 것이 자꾸 서럽습니다.

2주 전 병원에서 뵈었을 때, 요새 놀면서 여기저기 괜찮은 맛집들 많이 찾아놨다고 하셨었죠. 퇴원하면 그동안 뚫어놓은 맛집이나 같이 돌자고 그러셨는데, 맛집 리스트라도 어떻게 인수인계 해주시고 가시지 뭐가 급해 그리 서둘러 가십니까?

누군가 형님을 “진보정당의 영원한 당원”이라고 칭했더군요. 그러고 보니, 어떤 이는 진보정책의 아이콘이자 진보정치의 영원한 정책실장이라고 이야기되고 어떤 이는 진보정치의 영원한 조직실장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영원한’이라는 말이 돌림자처럼 들어가는데, 형님이 보여주셨던 모습들을 돌이켜보면 “진보정당의 영원한 당원”이라는 표현도 그럴싸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저는 뭔가 그럴싸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뭔가 그럴싸한 단어가 생각난다고 한들, “형님, 이거 어때요?” 하면 형님이 “야, 됐다, 마, 치아라! 정신 산란하구로.” 그러실 것 같습니다. 형님 모신 추모관 이름이 ‘스카이 캐슬’이더군요. 아마 형님이 아셨으면, “스카이 캐슬이 뭐꼬? 촌시럽고로···.” 그러셨을 듯 합니다.

형님, 벌써 몹시도 그립습니다.
자꾸만 보고싶습니다.
너무 급히 가십니다. 이러면 반칙 아닙니까? 의리 없는 거 아닙니까?

언젠가 또 형님이 “야, 행인, 뭐하냐?”하고 불러주실 날이 오겠죠.
그날 형님 만나면, 부끄럽지 않게 또 구라 풀면서 술 한 잔 빨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의리 없이 이렇게 서둘러 가버린 형님이 지금은 좀 원망스럽습니다만, 뭐 어쩌겠습니까? 가끔 형님 생각나면 계신 곳에 찾아가겠습니다. 아프시지 마시고 편히 쉬세요.

사랑합니다,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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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9 15:22 2018/06/29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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