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충고, 적절성과 효용성

아놔, 이넘의 마라톤 주최측이 신청시간을 정해놨으면 지켜야지 아직도 안열어... 괜히 기다리다가 시간만 가잖아. 하, 거참... 암튼. 

기다림에 지쳐 네트워크를 배회하다보니 장석준이 프레시안에 글을 올렸네. 현 정부가 세 가지 오판을 했고, 그 문제가 뭐며, 그래서 어찌해야 하나 등을 친절하게도 정리했다. 뭘 이렇게 친절하게.

관련기사: 프레시안 - 文 정부의 세 가지 '오판'

부제는 "21대 총선까지 남은 1년, 촛불 시민의 마지막 충고"라고 되어 있다. 곁가지긴 하지만, 장석준이 '촛불 시민'의 입장에서 글 쓸 일은 아니다. 본색이 아니므로 '촛불 시민'의 입장을 대변할 수도 없고. 게다가 내용 또한 '촛불 시민'들의 감수성과는 완전 딴판인 듯.

나도 입장 때문에 장석준과 같은 쪽의 사람들을 많이 알지만, 내 나름 촛불의 현장에서 부대꼈던 수많은 '촛불'들은 이런 입장과는 사뭇 다르다. 내 개인적인 계산이지만, 장석준의 입장과 비슷한 '촛불' 보다는 아마도 '문파'류의 촛불이 그 열배는 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아님 말고.

암튼 그래서 일단 장석준의 글은 '촛불'의 충고라기보다는 전형적인 정치가 내지 정치학자의 분석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것도 좌파진영의 정치가 내지 정치학자. 그래서 친절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현 정권이 아이쿠, 그렇습니까? 하고 넙죽 받을 만큼의 효용은 없는 글이 되었다고 본다. 물론 장석준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충분히 일리가 있지만 나는 좀 다르게 본다.

일단 세 가지 오판이라는 거. 그게 과연 오판일지 아니면 더민당이라는 조직이 가진 구조적 한계인지는 좀 더 봐야 할 듯하다. 아무리 문 정부가 촛불에 밀려 정권을 장악했고, 그리하여 촛불의 민심을 감당해야 할 책무를 가지고 있다고 한들, 그 촛불이 어떤 촛불인지도 심히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정권장악의 주체인 더민류가 과연 '오판'씩이나 할 수 있을 정도로 장석준 등과 같은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하고 있는 정치조직인지부터가 문제다.

우선 장석준은 현 정부가 애초 국회주도의 개혁추진보다는 상황관리를 택했고 그것이 근본적 '오판'이라고 한다. 글쎄,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현 정부가 국회를 통한 상황관리를 '선택'으로 봤다기보다는 뭘 해야 할지에 대해 잘 몰랐다고 본다. 문 정권은 각종 개혁사안을 초기부터 많이 꺼내놓고 있었다. 개헌도 그렇고. 그런데 그 과정을 살펴보면 인선에서부터 내용의 기획과 집행에 이르기까지, 도대체 지금 이들이 뭘하고 있는지 의아하게 만들거나 왜 이런 식으로밖에 하지 못하는가라는 궁금증을자아내게 하는 일들로 점철되고 말았다.

예를 들어 개헌. 개헌은 문통의 공약사안이었다. 그런데 애초 이 개헌은 문통 스스로가 부정적이었던 사안. "헌법이 무슨 죄가 있냐?"가 촛불 초창기의 문통 생각이었는데, 이게 대선국면으로 들어가자 바뀐 것이다. 그리고 개헌의 진행 과정이나 내용구성 등을 보면 문통은 나름대로 의욕과 성의가 있었다고 보여지는데, 어떻게 된 게 개헌과정에서는 뭘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검찰개혁은 또 어떤가? 초기 조국을 청와대로 불러 앉히고 법무부 장관을 박상기로 끌어올 때 검찰개혁은 속도를 낼 것처럼 보였다. 그 내용 중 하나인 공수처 설치 같은 건 내 입장에서는 예전부터 줄곧 그게 뭔 소용이 있나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할 정도이지만, 야당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밀어부칠듯이 인선을 진행했다. 그런데 그 이후 도대체 이 정권이 뭘 하고 있는지, 대통령이 뭘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는 형국이 되면서 지금까지 검찰개혁은 뒷걸음질 치고 있다.

예를 들자면 무수히 많은데, 내가 볼 때 이런 현상들은 문 정부가 국회를 현상유지 내지 상황관리 차원에서 그 기능부여를 '선택'했다기보다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다고 보는 게 맞다. 이 점에서 문통은 노통과 아주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는데, 노통은 탄핵을 감수하면서까지 자당을 적극적으로 움직였고, 그 자당을 통해 국회에서 끊임없는 논란을 만들어냈다. 문통은 그런 게 거의 없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벌어지게 된 배경에는 정권 초기 여론을 자기 것으로 여긴 '오판'이 있었다고 본다. 즉 촛불=문파는 어떤 일이 있어도 뒷배가 되어줄 것이며, 국회에서 입법을 통한 개혁의 부담보다는 여론을 등에 지고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빠르다고 판단했다는 거. 굳이 입법의 절차와 짐을 지지 않고 여론에 업힌 고공정치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고 본다. 그 결과가 예컨대 장석준이 두 번째 문제로 거론하고 있는 대북관계 같은 것에 치중하는 전략이다.

자연스럽게 장석준이 지적한 두 번째 '오판'으로 넘어가는데, 장석준은 대북문제 해결로 국내정치는 동반해결될 것이라고 현 정부가 '오판'했다고 본다. 이 지적에 대해선 동감인데, 문제가 중첩될 때 외부로 눈길을 돌리는 것은 정치의 기본 술수다. 그러니 이건 뭐 '오판'이고 뭐고가 아니라 당연한 거고, 특히 이 정부처럼 임종석류가 주변에 깔린 소위 386NL 호위의 정치라면 그럴 수밖에 없는 거다. 

나는 정작 이 대북관계에 있어 현 정부가 범한 치명적 '오판'은 북미관계를 북미 정상들의 개인적 결단의 차원으로 전락시켜버린 것이라고 본다. 남북관계는 이게 무슨 동네 양아치들 나와바리 싸움 하는 것도 아니고, 꼬붕들이 한참 마빡에 구멍 뚫려가며 전쟁하고 나면 난데 없이 오야붕들이 턱 나와서 둘이 뭐 쏘주 한 잔 빨고 악수 한 번 하고 깔끔하게 정리하는 그런 수순처럼 해결될 사안이 아닌 거다.

그런데 현 정부는 진짜 그렇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그렇게 판을 짜려고 노력했다. 마침 트럼프 같은 또라이도 나오고 북조선이야 어차피 원래 정치 스타일이 그렇고. 뭔가 그림이 마련되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문 정부의 '오판'이 여기서 극에 달했다고 보는데, 그건 미국의 대외정치가 트럼프같은 자 하나의 결단으로 정리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했다는 거다.

전에도 여러 차례 나는 이 문제를 지적했었는데, 트럼프의 판단과 행보는 그 개인에게 있어서는 어떤지 몰라도 미국의 대외관계나 국제정치의 견고한 틀에서 보면 일종의 일탈이자 심하게 이야기해 종이에 번진 얼룩 정도다. 그리고 전형적으로 개방적이고 전쟁반대쪽에 가까운 미국의 정치진영은 민주당을 비롯한 리버럴들이지 공화당류가 아니다.

그런데 문정권이 북미 사이에 거간을 뛰면서 저지를 최악의 '오판'은 이 미국 민주당을 제꼈다는 거. 다시 말해 미국 의회의 신뢰를 얻기 위한 행보를 거의 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도리어 트럼프 개인에게 치우친 전략을 진행함으로써 미국 의회의 신뢰는 오히려 후퇴했다는 거다. 이는 트럼프가 재선이 되든 민주당이 정권을 탈환하든 간에 차후 반드시 골치아픈 문제가 될 것이다.

장석준이 세 번째 지적한 현 정부의 '오판'은 현 정부의 우경화다. 그런데 이게 '오판'일 수가 없는게, 더민당이 좌클릭할 이유가 없고, 문통을 비롯한 현 정부의 수뇌들 역시 좌클릭할 이유가 없다. 나는 국내 정치지형에서 문통과 더민이 '오판'한 건 영남을 장악했다고 김칫국을 마셨다는 것이라고 본다.

이해찬 등이 20년 집권론을 그렇게 뻔뻔하게 내뱉은 이유는 오랜 숙원이었던 영남에서 교두보를 확보했다고 '오판'했기 때문이다. 현 정부와 더민의 위기는 바로 이 '오판'에서 비롯되었다. 왜냐하면 바로 이 오판으로 인해 장석준이 지적하였듯이 "보수층 상당수를 흡수해 한국사회의 장기집권정당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가능했던 거고.

다시 말해, 장석준은 현 정부와 더민이 보수를 흡수해 장기집권하겠다는 '오판'을 했다고 하는 거지만, 나는 이들이 지역적 정치지형을 '오판'함으로써 자만에 빠지게 되었다고 보는 거다. 보수화라는 건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더민이라는 정당이 가지고 있는 진영적 한계이기에 이걸 선택의 차원에서 '오판'이라고 하는 건 더민의 본질을 오해한 것처럼 보인다. 장석준이 그럴리가...

그런데 장석준은 다시, 이 '오판'이 오판일 수밖에 없는 게 현 정부가 현실상황을 잘못 이해하고 있기에 벌어진 일이라고 분석한다. 우선 장석준은 한국자본주의가 침체기에 접어든 지금 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민심을 달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수동적 포지션은 실패하는 정치의 예정된 행보라고 분석한다. 그런가?

구조적으로 보면 장석준의 말은 맞다. 하지만 그 구조가 어제 오늘 일도 아니다. 87년 개헌 이래 지금까지 10년 주기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아마도 다음번 역시 현 더민류의 임기연장은 특단의 사정이 벌어지지 않는 한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며, 그런 의미에서 현정권과 다음 정권까지는 87년 헌법 체제에서 10년주기 정권교체 징크스가 이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87년 이래 지금까지, 자본주의의 '위기'는 언제나 '위기'였다. 좌파들은 지금까지 자본주의의 위기를 이야기하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문제는 위기라던 자본주의는 내내 살아남는데 자본주의의 위기를 이야기했던 좌파들은 이제 존속이 걱정될 정도로 존재의 위기에 몰려있다. 암튼 그건 그렇고.

87년 이래 경기의 호황과 불황이 롤러코스터처럼 반복되는데, 기왕에 호기가 되든 위기가 되든 지금 문 정부 2년의 경과를 두고 장석준이 이야기하듯 "민심을 정부 반대편으로 이끄는 중력이 작동"할 시기로 볼 필요는 없다. 다른 정부들도 대동소이다. 이거야 말로 경제환원주의적 논리라고 할까. 

한편, 수동적 입장을 떨치고 적극적 공세로 전환할 것을 장석준은 주문하는데, 어떤 걸 해야 적극적 공세가 될 것인가? 장석준은 우선 사회개혁 - 복지강화 - 개혁연합 - 개혁입법 - 지지층 중심 정책 강화를 제시한다. 어차피 보수층에게 손짓하는 정책 해봐야 보수층이 마음 줄리도 없으니 "기득권층의 환심을 사려던 정책을 즉각 중단"하라는 거다.

난 문재인 정부가 이런 주문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 왜나하면, 이번 김의겸 사건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이미 이 정부의 핵심인자들은 "기득권층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하는 자들이 아니라 자기 이해를 위해 움직이는 기득권층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번 개각과정에서 드러난 국무위원 후보자들의 면면을 보라. 가장 문제가 되었던 두 명은 어찌어찌 날렸지만, 대표적으로 현 정부가 사활을 걸고 내각으로 끌어간 박영선은 어떤가? 박영선만 보더라도, 이 사람은 기득권층의 환심을 사고자 노력할 위치가 아니라 그냥 자기 이해관계를 위해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기득권의 이해와 합치하는 위치에 있다.

요컨대, 장석준의 글은 좌파적 입장에서 보자면 아주 절제된 분석으로 유용하다. 앞으로 좌파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내용들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내용으로 현 정부에 충고한다는 건 그냥 우이독경이다. 적절하지도 않고 효용도 별로 없다.

차라리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면서 입으로는 그냥 세상 다 까뒤집을 것처럼 구라치는 자칭 좌파들에게 충고하는 게 훨씬 더 적절하고 효과도 있을 거 같다. 현 정부와 더민이 지금 하고 있는 행보는 '오판'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본질이고, 그러니 이 본질을 깨기 위해서라도 왼편에 있는 사람들이 뭔가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정치적 행보를 해보자고 이야기하는 게 더 낫다는 거.

아놔, 그나저나 시간 때울라고 이 중언부언을 하고 있는데, 아직도 신청접수가 안 되면 우짜라는 거여... 이 것들을 기냥 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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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9 12:22 2019/04/09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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