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해체론이 틀렸냐 맞냐가 주제인가?
시사IN의 한 인텨뷰 기사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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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소감을 풀어보자면,
1. 고생했다. 다른 건 어쨌든 간에 방대한 데이터에 접근해서 이를 분석한다는 건 힘든 일임에 분명하다. raw데이터를 직접 확인할 수도 없고, 직접 확인한다고 한들 거기서 유의미한 내용을 추출할 능력도 부족한 입장에서는 그저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작업을 했다. 다시 한 번, 고생들 했다.
2. 그런데 이런 결론이라면 굳이 이렇게 고생할 필요까지 있었을지 모르겠다. 현재의 재벌 중심 산업구조, 재벌체제를 극복할 수 없는 중소기업의 생태계, 이를 양쪽으로 견제하는 동시에 상호 시너지를 유발할 수 있는 중견기업체제의 부재, 재벌 위주 정책에 급급한 정부정책을 고정요인으로 붙박아놓은 상황에서 저 결론 외에 어떤 결론이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3. 연구의 목적 자체가 현 상황의 분석이었다면, 재벌해체론은 틀렸다는 게 제목이 되어선 안 되고, 재벌 중심체제 산업생태계의 현 주소 파악 정도가 되었어야 하겠다. 내용은 딱 그수준인데 제목이 선정적이다. 그래서 오히려 쓸데 없는 비난을 자초한다.
4. 이런 류의 연구가 종종 가져오는 폐단이라는 건 현 체제의 정당성 확보 내지 현 체제의 온존효과. 특히 현재의 문제점을 거론하던 사람들에게 이런 연구의 결과는 곧잘 이런 질문을 던지곤 한다. "봐봐, 상황이 이런데, 너네들은 대안이 뭐야?" 결국 논의는 처음으로 도돌이표.
5. 애초 재벌해체론이 현재 재벌에 속한 각 (대)기업들과 종소기업이 맺고 있는 네트워크를 깨자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재벌 해체=네트워크 파괴'로 구도를 잡아버리면, 원래 의미의 재벌해체론, 즉 족벌의 지배구조와 이로 인한 제왕적 운영, 책임 없는 무제한의 권한행사 등을 제어하자는 것이 재벌해체론인데, 이런 의미는 정작 상실되어버린다. 뭐하자는 건가?
6. 중견기업의 부재, 종소기업의 허약함이라는 한국경제의 취약구조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이 연구의 연구목적이 아니었을테니 그에 대한 연구결과와 대안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겠다. 하지만 이러한 한국산업구조의 문제가 종국에 모든 희망을 재벌 대기업으로 돌려야하는 기형적 구조로 왜곡되는데, 이 문제를 들여다보지 않은 채 현재의 산업구조만으로 재벌의 유용성을 확인하면, 뭐 당연히 재벌 망하면 다 망한다는 결론 나오는 건데.
7. 개별 내용에 대해서도 이래저래 할 말은 많지만, 거기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나도 독자적인 연구를 수행해야 할판이라 패스. 지금 내 전문분야 공부도 밀리고 밀려 대가리가 뽀개질 판에 저거까지는 어떻게 엄두가 나질 않고, 누가 해주면 땡큐겠지만 바라기도 쉽지 않고. 다만 다행인 건, 저 연구결과가 선정적 제목 때문에 잠깐 반짝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다지 반향을 일으킬 것이라고는 예상되지 않는다는 거.
8. 그동안 재벌해체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동조하던 누군가가 이 기사를 보고 의아해하며 질문하길래 답변한 걸 정리해봤는데, 아무튼지간에 기사는 잘 봤고, 나도 어디서 프로젝트 하나 따서 저렇게 데이터 좍 늘어놓고 노가다 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많이 들더만... 누가 줘야 말이지,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