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가 너희를 승리케 하리라?

이게 벌써 며칠 전에 올라온 글이구나. 박성민씨가 또 경향신문에 장황하게 글을 올려놨다. 난 이런 식의 글쓰기에는 알레르기반응이 일어나는 편인데, 할 얘기는 빤하고 어차피 길게 늘어놓지 않아도 될 이야기임에도 무슨 유명짜한 사람들의 이름을 수도 없이 나열하고 그들이 한 이야기 중에 몇 마디를 맥락도 없이 낑궈넣고 그러면서 온갖 사변적인 이야기를 중언부언하는 이런 글쓰기 좀 그만 봤으면 싶다. 이런 글이 신문의 지면 한 면을 통으로 장악하고 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미스터리다. 그냥 이름값인가?

지난번 조국사태의 와중에 박성민씨가 올린 글에서, 박성민씨는 조국 임명 강행이 중도층 즉 스윙보터들을 자극해서 현 집권세력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난 이러한 박성민씨의 예측이 근거없는 뇌피셜이라고 했고. 그랬는데 이번에도 거의 같은 취지로 글을 올렸다. 여전히 쓸데 없이 이 사람 저사람 이름 걸어놓고 별로 인용할 이유도 없는 말들을 죄다 긁어 붙이면서.

경향신문: [박성민의 정치 인사이드] 대한민국 위기의 핵심은 좌우.위아래가 아니라 '앞뒤'다

제목만큼이나 앞뒤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저 길고 긴 '앞뒤' 없는 이야기의 핵심은 이거다.

"집권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전략적 자산'으로 (스윙보터인) 중도의 신뢰를 받아야 한다. ... 중도가 보기에 ... 진영 논리에 빠져 시민의 '생각'을 억압하고, 낙인찍고, 강제하는 정당과 정치인은 몰락할 것이다. 다양, 포용, 개방 속에서만 혁신이 나온다. 획일, 배타, 폐쇄 속에서는 기득권만 득실거릴 뿐이다. ... 혁신대 기득권, 미래 대 과거, 새로움 대 낡음, 통합 대 분열에서 앞의 네 자리를 차지하는 정당이 승리하고 뒷자리를 차지하는 정당이 패배할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대한민국의 치명적 병은 앞뒤의 문제다. 한마디로 모든 정치세력이 과거에 집착할 뿐 누구도 미래를 얘기하지 않는다(못한다). ... 지금 대한민국은 기득권이 혁신을 가로막고, 과거가 미래를 짓누르고, 낡음이 새로움을 거부하는 나라다."

"내년 총선의 승패를 결정할 혁신의 키워드는 '미래'다."

200자 원고지 두장 반 정도면 정리될 이야기를 뭘 이리 '앞뒤' 없이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만, 일단 지난번 글에서와 마찬가지로 박성민씨는 어떤 가치의 판단이 중심이 되는 정치를 이야기하기보다는 선거공학적 차원에서 무엇이 표를 끌어올 수 있는가에 집착한 논의를 일관되게 진행한다. 얼핏 보면 '미래'의 가치를 가져와야 한다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동안 박성민씨의 글에서 그 '미래'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이야기한 것은 본 적이 없다. 그냥 선거에서 이기려면, 스윙보터인 중도의 표를 가져오려면 그들에게 '미래'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게 다다.

문제는 이 유명한 정치컨설턴트가 예측하는 것처럼 한국의 스윙보터들이 즉 중도층이 어떤 미래지향적 가치를 이야기한다고 해서 표를 주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거다. 박성민은 지난 칼럼에서 조국 임명을 강행하면 그 여파로 대통령의 지지도가 떡락할 거라고 예언했지만 그건 그냥 뇌피셜이라니까. 진동은 있을지라도 그게 결정적으로 정권에 대한 반발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한국의 '중도층'이라는 존재는 그게 실재로 존재하고 있는지조차 애매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런 류의 예언은 언제나 그냥 말하는 자가 그랬으면 좋겠다고 하는 바람이 될 뿐이다.

오히려 중도층의 표를 좌우하는 건 도대체 어떤 놈이 진짜 진상이냐는 거다. 이 상황에서는 더민당이 '미래' 따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자한당이 애써 난장판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미래'고 '앞뒤'고 다 필요 없고, 중도층은 그냥 더민당도 밉지만 자한당은 아주 썅 더럽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게 그냥 표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정작 진짜 무서운 건 더민당이고 자한당이고 뭐 '미래' 같은 어떤 가치를 굳이 머리굴려가며 내놓지 않아도 되는 만큼 정치의 수준이 점점 개판이 되어간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이 개난장판이 벌어져도 저 콘크리트같은 보수우파 35%가 내년 총선에서도 그대로 위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거다.

중도고 스윙보트고 '미래'고 '앞뒤'고 지금 이 상황에서 박성민씨처럼 표가 중요하다면 그따위 것들은 신경 끄고 달려야 할 판이다. 박성민씨는 "극단적 지지층이 두려워 '보수의 전략적 자산'이 되거나, '진보의 전략적 자산'이 되거나, 더 극단적으로 '특정 계파의 전략적 자산'으로 기반을 좁히면 기득권을 유지하거나 확장할 수 없다"고 하는데, 아놔 한국정치를 수십년간 공부하고 정치컨설팅까지 하시는 분이 혼자만의 망상을 이렇게 하고 있으면 어쩐단 말인가. 자한당은 그냥 '보수의 전략적 자산'이 되거나 '특정 계파의 전략적 자산'이 되면 지금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어차피 여기서 더 못 나갈 바에야 그냥 현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전략이 최선이다. 그러니 박찬주 같은 자들을 끌어오려고 난리를 치잖나?

반면 더민당은 그냥 가만 있음 된다. 무슨 '~의 전략적 자산' 따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저 개판을 쳐도 박성민씨같은 셀럽들이 더민당을 '진보'로 쳐주고 있다. 기껏해봐야 프랑스 우파정당조차도 안 되는 가치지향을 가진 더민당이 바로 박성민씨같은 사람들 덕분에 한국에서 진보좌파취급을 당해주고 있다. 그런 판에 더민당은 으레히 중도를 아우른다는 핑계로 자신들의 우경화를 합리화한다. 바로 박성민씨 같은 사람들이 떠들어준 덕분이다. 

한편 진보정당은 그나마 박성민씨가 말하는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혁신, 미래, 새로움. 통합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중도는 이런 진보정당은 안 쳐다본다. 왜? 바로 박성민씨같은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지형적 조건 즉 될 놈 밀어줘서 자한당은 못하게 말려야지 쪽으로 입장을 정하다보니 그 지긋지긋한 비판적 지지가 21세기를 20년이나 지나가고 있는 지금도 맹위를 떨치게 된다. 뭐? "지역.이념 갈등을 뒤로하고 계층.세대 갈등의 새로운 전쟁이 오고 있다"고? 아니 뭔 X소리야? 조국 사태에서 발견했듯, 지금 이 사회의 핵심적 갈등은 계급갈등이고 이념갈등이다. 그런데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앞뒤'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앞뒤 없이 무슨 이념 갈등이 뒤로 가고 세대 갈등이 오고 있다고?

박성민씨는 그나마 솔직하게 "요즘은 세상의 변화와 대중의 생각을 읽는데 갈수록 자신이 없다"고 고백한다. 짠하다. 그래도 짠한 건 짠한 거고, 자신이 없으면 이젠 이런 장황한 글 쓰면 안 된다. 혁신 미래 새로움 통합은 갑자기 박성민씨가 새롭게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지겨울 정도로 누누히 이야기되어왔던 것들이고, 그랬는데 정치세력이 제대로 감당도 못했고, 정작 박성민씨가 그토록 목놓아 갈구하는 스윙보터 혹은 중도가 표를 찍는데 저런 거 그다지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근데 왜 나는 박성민씨의 글에 이토록 신경질적인 반응을 하는가? 이런 셀럽들이 더민당 류를 여전히 '진보'로 분류하는 것에 빡친 거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진작부터 좀 더 확실하게 더민당 류가 기껏해봐야 중도우파임을 명확히 해줬더라면 오늘날 저 '중도'가 많이 달라졌을 거다. 하나마나한 소리 맨날 하면서 결국 진보의 힘을 빼놓은 사람들이 바로 이 박성민씨같은 사람들이라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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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6 22:22 2019/11/06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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