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6, 586엘리트, 강남좌파, 조국...
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과정에서 과잉대표되었던 자들이 당대의 수고로움을 일신의 영달로 보답받는 과정에서 다시금 그들 또래 세대를 과잉대표하는 작태가 반복된다. 그런데 그 과잉대표의 양상을 분석하기보다는 그냥 퉁쳐서 그들이 속한 또래들을 한 세대로 분류해버린 채 그 세대 전체에게 사회문제의 책임을 돌리는 오류가 벌어진다. 그러더니 결국 모든 사회문제의 양상을 그 세대와 그 세대 아닌 세대 간의 분리와 대립으로 설명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정확한 주체의 설정에 실패한 논의가 반복되다 보니 어쩌다가 어떤 문제를 분석하면서 그 첫 단추로 문제를 일으킨 주체를 분명하게 설정하고자 하는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며, 그냥 세대론으로 이어진다. 세대론으로 설명하기 곤란한 문제를 세대론으로 설명하다보니 논의는 횡설수설이 되어버린다. 대표적인 사례가 다음과 같은 사례다.
경향신문: [박성민의 정치 인사이드] 조국의 위기, 여당의 오판, 정치의 몰락
난 도대체 경향신문이 지면 한 면을 통털어서 박성민 대표에게 할애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이분은 언제나 장황한 이야기를 하면서 현실정치에 대해 논한 후 나름의 전망을 제시하는데, 현실정치에 대한 논평은 그렇다치고 그가 제시한 전망이 제대로 맞아 들어간 걸 본 기억이 없다. 이러한 오류가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서 어떤 선학은 박성민 대표가 정치현실을 과장하다보니 과장된 현실들이 전망의 오판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던데 그러한 분석에 대부분 동의한다.
예를 들자면, 이번 글에서도 그러한 현실정치의 과장이 보이는데, 이번 사태-그의 표현으로는 '싸움'-의 본질이 "청와대와 민주당이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찍었고 지금도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지만) 조국 임명에 대해 비판적인 지지층에 맞서고 있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정말?
그는 이러한 전제에 따라 조국의 법무부장관 임명을 강행한다면 스윙보터가 무시할 수 없을만큼 이탈하여 국정지지율이 40%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더불어 조국이 법무부장관으로 직무를 수행하다가 검찰이 뭔가 한 방 터뜨리면 그걸로 정권은 종 친다고 예측한다. 그렇게 되더라도 민주당이 승리할 것이라고 믿는 건 "오판"이란다. 추론하자면, 임명강행 -> 지지층 일부 및 스윙보터 이탈 -> 검찰의 장관흔들기 -> 총선패배 및 레임덕 가속이라는 거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를 끌고 나가기 위하여 동원된 여러 정황들은 도대체 뭐라고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박성민은 586이라는 한 세대 뭉텅이와 '586 엘리트'와 '강남좌파'와 '조국'을 마구 혼용한다. 그래서 도대체 문제가 586에서 시작되는지, 아니면 그 586 중 엘리트가 문젠지, 그 엘리트 중에서도 강남좌파류가 문젠지, 아니면 조국이 문젠지 완전히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논지 자체가 종횡무진이다. 이래가지고서야 어떻게 현상과 실체를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할 수가 있겠나.
문제의 원인에 대해서 이렇게 횡설수설하다보니 결과적으로 그 문제로 인하여 발생하게 될 또는 발생하고 있는 문제가 도대체 어떤 놈을 후드려 패야 해결될 것인지 보이질 않는다. 그러다보니 서둘로 문제의 방향을 대통령에게 돌리게 되며 임명강행은 결국 만사를 그르치게 될 것이고 그 결과는 총선의 패배로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를 한다. 정말 그런가?
그렇게 되면 오히려 다행인데 아마도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기에 상황은 더 심각하다. 비록 어제 청문회 끝나고 검찰이 배우자를 기소하기에 이르렀다는 뉴스를 접하고선, 아이고 이 검찰들이 드디어 루비콘 강을 건너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대통령은 이런 저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임명할 수밖에 없고 조국도 그렇다. 기호지세다. 범의 털을 놓치는 순간 범의 아가리로 들어간다.
그런데 임명 강행을 하고 나서 지지율이 확 떨어질까? 뭐 잠깐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변수도 아닌 상수가 남아있다. 바로 자한당 등이 난장판을 벌리면서 남은 정기국회와 20대 국회 마무리를 깽판치는 거다. 뭐 어차피 그것도 한계가 있겠지만 암튼 그 과정에서 지지자가 이탈하고 스윙보터가 빠져나간들 그들이 뭐 어디 갈데가 있나? 그들이 정의당으로 가겠나 민중당으로 가겠나? 난데없는 위기감에 녹색당으로 갈까? 아니면 자한당?
항상 하는 이야기지만, 아마도 단군 이래 한반도 역사에서 오늘날과 같이 야당 복 많이 받은 여당이 없을 거다. 정부와 여당이 아무리 개판 오분 전의 짓들을 한들 아예 개판 그 자체를 벌려주는 자한당이 있기에 여당은 해피하다. 게다가 진보정당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정의당은 이제 와서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이미 오늘 보니까 벌써 임명권자에게 맡긴다고 하던데, 아니 그럼 임명권자한테 언젠 안 맡겼나?
그런데 이걸 가지고 정의당 뭐라고 하기 어려운 게 정의당이 중뿔나게 이 마당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조국의 인선 자체를 넘어선 입장을 내야하는데 조국을 밀 건지 말 건지에 파묻혀 있으니 더 뭐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거다. 이 말은 뒤집어 말해서 조국 임명 강행하고 정부 여당이 삽질을 한다고 한들 뒤집기 한 판 효과에 버금갈만큼 여당을 공격할 수 있는 뭔가는 자한당이고 정의당이고 뭐 할 게 없다는 거다.
만일 지금까지 내 예상과는 반대로 대통령이 조국 임명을 철회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게 문제가 되는 게, 만에 하나 조국 임명을 철회한다고 하더라도 아마도 수순은 위에서 언급했던 수순 그대로 될 거다. 여기서 달라지는 건 박성민은 아마도 자기 말 들어서 임명을 철회했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정신승리 할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어차피 결과는 똑같은 수순을 거쳐 똑같은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어차피 결과가 똑같다면, 나같으면 그냥 임명한다. 586인지, 586 엘리튼지, 그중에 강남좌판지, 그냥 조국인지 뭐 그 원인을 일으킨 주체가 무엇인지 따위 따질 필요도 없고 아무 상관도 없다. 이런 정도의 표분석을 할 거 같으면 그런 주체에 대한 논의가 뭐하러 필요한가?
계속 하는 이야기지만, 이 건은 세대론으로 자꾸 몰아가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긴 뭐 어떤 문제는 그렇지 않은 게 있겠나만은. 이 문제는 합법성과 정당성의 문제이자 법을 만드는 계급과 법에 종속된 계급, 법에 의해 보호되는 계급과 법에 의해 배제되는 계급의 문제다. 이 문제를 오도해서, 가질 거 다 가진 586과 이들의 독점 때문에 가져볼 기회를 갖지 못하는 '청년세대'의 대립형태로 가져가는 건 영원히 답 없는 논쟁이 될 수밖에 없다.
박성민의 글 중에 유일하게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은 그의 글 맨 마지막 문장이 다다. "위기를 부정하면 몰락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이 글을 쓴 박성민조차도 이 위기가 기득권 계급의 사회적 자원의 독점에서 초래된 것임을 애써 부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이 포함되어 있는 바로 그 계급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