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사랑

97년인지 98년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는데(아... 요즘 왜 이리 기억력이 가물가물하다냐... 날짜 꼽아보면 대충 나오는데 그게 잘 안되니...ㅜㅜ) 암튼 그맘때쯤 늦더위 기승부리던 날, 저 남녘 한 귀퉁이에서 친한 동생의 결혼식이 있었다. 호남 어느 귀퉁이 동네에서 천재소리 듣던 넘과 서울 변두리에서 생양아치짓을 하던 행인과의 친분이라는 것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선... 비밀이다 ^^

 

어쨌든 워낙 먼 곳에서 하는 결혼식인지라 친구들 선배들 후배들 죄다 모여 돈모아 봉고차 렌트하고 줄지어 달려갔다. 하필 날이 계속 더웠는지라 내려 가면서 어찌나 하드고 아이스크림이고 빨아댔던지 속이 느글거리는 통에 몇몇은 고속도로 휴게소가 보일 때마다 화장실 가야된다고 난리 법석을 떨면서 내려갔다. 중간에 두어번은 갓길에 차 세우고 풀섶으로 뛰어들어가 고형분도 별로 없는 배변을 해야 했다...

 

암튼 우여곡절 끝에 현지 도착. 한 30명이 들어가도 넉넉할 만큼 큰 여관방에 여장을 풀고 저녁을 먹고 그 와중에 변함 없이 또 술을 빨았다. 간만에 만난 거니 할 이야기도 많았고, 여기 저기 전국에 퍼져 있던 인간들이 각각 지 사는 이야기 하는 통에 시끌벅적 그런 야단법석이 없었다. 얼큰히 마신 후에 일찍 취침하려는 계획이었으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일부 몇 넘은 기어코 새벽녘까지 꼭지가 돌도록 술을 퍼마셨다. 물론 행인 포함해서...

 

다음날, 시내로 나가 식장을 찾았다. 점심나절에 식을 올리는지라 날은 또 어찌나 더웠는지 시원한 하드 하나 먹고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전날 내려오는 길에 호되게 당한 터라 기냥 밥으로 때우기로 하고 꾹꾹 눌러 참았다. 결혼식은 비교적 짧은 시간에 끝났는데, 역시 시골인심이 그런 것인지 하객 일동, 주인공의 성화에 못이겨 전부 뒤풀이로 직행했다. 잔치상이 놀라 자빠질 정도로 화려한데, 역시 남도의 음식은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즐겁게 한다.

 

일요일 낮이라 서울 올라가는 길이 어지간히 막힐 거라고 예상한 일행은 밥 배터지게 먹고 술 진창 마신 다음 눈 좀 붙였다가 야간에 고속도로를 타기로 합의를 보고 마음 놓고 앉아서 퍼먹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 아기자기하고 맛갈지게 나온 안주들의 향연 앞에서 술잔을 쉬게하는 배은망덕을 저지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먹성 좋은 인간들이 모여 앉아 있으니 먹어치우는 안주그릇을 채워넣기도 바빴고 술상 위에 쌓이는 술병 정리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암튼 그렇게 먹고 마시고 하다 보니, 원래 한 20명 정도 한 방에 있던 인원 중 대여섯명이 사라졌다. 아니 아무개 어디 갔냐 어쩌구 하면서도 찾으러 나갈 생각은 아예 없고, 그저 계속 지화자 얼씨구 브라보 건배 이게 이어졌다. 그렇게 한 두시간 먹고 제꼈을 때였다.

 

결혼식 올린 후배의 할머니께서 방 문을 열고 들어오신 것은 그 무렵이었다. 허리가 45도로 굽은 이 호호백발 할머니께서 방문을 열고 문지방을 넘어 들어오시는데, 손에는 은빛 스텐레스스틸 뚜껑이 덮힌 큰 전골냄비를 들고 계셨다. 좌중에 있던 일행들이 우르르 죄다 일어서서 아이구 할머니, 축하합니다, 한 잔 하셔야죠 어쩌구 하는데, 쪼글쪼글한 주름이 얼굴에 가득한 할머니께서는 연신 웃으시면서 좋아하신다.

 

"어여, 어여 앉아서들 먹어 이~. 그라고 이건 우리 손주 친구들 줄라고 맹근 거니께 함 먹어보더라고" 하시면서 들고 오신 냄비를 상 가운데 놓으시는 할머니. "이거 아무나 쉬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닝게, 함 먹어들 봐 이~" 계속되는 할머니 말씀에 모여 있던 모든 넘들의 이목이 냄비에 집중되었다. 밤새 술처먹고 그것도 모자라 잔치집에서 내내 술을 퍼먹는 통에 시뻘거진 눈으로 그래도 뭐 신기한 거라도 있나 싶어 막 쳐다보고 있는데... 드디어 할머니께서 냄비 뚜껑을 열어 제끼자...

 

이게 왠 암모니아 폭탄이란 말이냐... 잠깐 사이에 대여섯 명은 허겁지겁 코를 싸 쥐고 방문을 박차고 튀어 나가고, 좁다란 창문앞에 두어명이 서로 머리를 쳐박고 코를 밖으로 뺐다. 나머지 앉았던 넘들 중 반은 상 뒤로 물러나며 방 벽에 뒷통수를 쳐박았고, 행인 역시 눈물이 핑 돌면서 목구멍에 숨이 턱 막히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 꼴을 본 할머니, 쪼글쪼글한 주름이 가득한 얼굴로 박장대소를 하며 웃으신다.

 

할머니가 가져오신 것은 다름 아니라 홍어회였다. 손주 장가보낼 때 먹인다고 항구에 가서 진짜 홍어를 손수 사오셔서 가문에 전승되는 비기를 총 동원하여 직접 삭힌 홍어회였던 것이다. 무지개빛깔이 선연하게 아롱거리는 홍어의 살이 보기엔 아름다웠으나 창자끝 괄약근까지 요동을 쳐대는 암모니아의 향기(?)는 적잖이 충격적인 것이었다.

 

인간의 적응능력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처음의 그 공황상태는 잠시후 진정되었고, 끝내 참지 못한 몇 넘은 기어이 밖으로 나갔으나 열명 남짓한 일행들이 그 맛을 한 번 보겠다고 할머니 주변에 모여 앉았다. 삭힌 홍어에, 시큼한 김치에, 삶은 돼지고기에, 집에서 담궜다는 막걸리에 갖출 것은 다 갖춘 상황에서 드디어 할머니의 정성 가득 담긴 홍어회를 맛보는 순간이 되었다.

 

사실 행인은 그 때가 제대로 된 홍어회를 처음 먹는 것이었다. 그 전까지 말로만 들었지 진짜 홍어회가 뭔지도 몰랐고 공장 다닐 때 한두번 시장통에서 대충 만든 홍어회를 먹을 기회가 있었으나 그 이상야릇한 냄새가 맞지 않아 손도 대보지 않았던 거다. 하지만 이미 술이 오를 대로 올라있는 상황에서 호승심이 발동한 것도 있는 데다가 할머니께서 가문의 비기를 총동원해 만드신 작품이라는 말에 맛이라도 보는 것이 도리라 생각한 행인, 홍어회 한 점을 김치에 싸서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씹는 순간... 정수리 꼭대기부터 항문까지 모든 내장기관이 일자로 뚫리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코 끝을 뭔가가 탁 치는 현상이 느껴더니 그예 눈물이 질질 흐르며 콧김이 쏴~아 하고 밀려나왔다. 혓바닥에서는 연신 뭔가 톡톡 튀는 듯한 감각이 돌면서 쌉쏘름 한 것도 아니고 시크무리 한 것도 아닌, 형용할 수 없는 맛이 느껴졌다. 그리곤 몇 차례 씹다가 꿀꺼덕 삼키고는 흘린 눈물과 콧물을 휴지로 닦아내는 순간, 아아... 정수리 꼭대기로 스팀이 빠져나가는 듯 하더니 그렇게 퍼마셨던 술이 확 깨는 거다.

 

혓바닥에 쫙 감기는 막걸리 한 잔을 후다닥 마시고는 또 한 점 홍어회를 씹었다. 오오... 다시 한 번 오장육부가 일자로 관통되면서 기가 뚫리는 현상이여... 폐활량이 평소의 두 배로 늘어난 듯하면서 심장의 박동소리가 북을 치는 것처럼 귓전에 메아리친다. 마빡 가운데 찡한 자극이 오고, 입안은 얼얼하고, 또다시 눈물이 쏟아지면서 고질적으로 앓아 오던 비염을 무시하듯이 양쪽 콧구멍은 뻥 뚫리면서 뜨거운 김을 내뿜는다...

 

이래서 홍어회라는 것을 먹는구나... 하도 삼합 삼합 하길래 도대체 그게 뭔 맛인지 모르고 있다가 동생 하나 잘 둔 덕분에 이렇게 호강을 하는구나 싶었다. 꾸역 꾸역 처먹는 행인을 보면서 한놈 두놈 홍어회를 집어 문다. 아니나 다를까, 지들이라고 별 수 있겠나... 먹는 족족, 오장육부가 관통되는 표정을 짓더니 눈물 콧물을 짜내는데, 그 꼴이 배꼽이 빠지게 우스운 거다. 행인도 웃고 할머니도 웃고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다.

 

전골 그릇에 그득히 들어차 있던 홍어회가 남김 없이 사라질 무렵쯤 되서 몇 넘이 들어왔다. 먹어본 녀석들은 그 맛에 환장을 하고 품평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는데, 나중 들어와 맛도 볼 수 없었던 넘들은 홍어회고 나발이고 아직도 방 안 가득 베어 있는 암모니아개스의 독성에 진저리를 치는 것이었다.

 

술 끊은 이후에도 홍어회를 몇 번 먹기는 했는데, 그 때 먹었던 그 맛은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홍어도 홍어였지만 손주 생각해서 온갖 정성을 다 들였을 할머니의 손맛이 녹아 그렇게 맛있는 홍어회가 나왔던 모양이다. 갑자기 그 할머니 생각이 난다. 아직도 정정하실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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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31 21:31 2006/10/31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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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대로 삭힌 홍어회 한번 먹어보고 싶네요..ㅎ

  2. 쩝쩝... 오늘 홍어삼합 번개나 칠까...

  3. 아~~ 땡기네요. 선배중에 홍어사랑 뭐시기 뭐시기 모임 짱하고 있는 해남출신 냥반이 있는데, 서울서 몇집을 추천하기 하더만요.
    서울서 삼합번개~~ 말걸기님 추진한번 해보시죠!

  4. 산오리/ 흐~. 근데 맨정신에 그거 다시 먹으라고 하면 또 먹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네요. ㅎㅎ

    말걸기/ 오오...

    re/ 말걸기가 추진하겠죠? ^^

  5. 콜록콜록.... 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