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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람들......

  • 등록일
    2008/05/16 15:24
  • 수정일
    2008/05/16 15:24
굼벵이 -> 아래의 블로그에 소개된 '하이텔에서 유명했던 사람들'을 찾아가, 글 몇 개를 가져왔다. http://blog.paran.com/hiteltrace/2717458 하이텔에서 정말 유명했던 사람들.... 이름만 대면 딱 떠오르는 그런 분들의 발자국을 찾았어요. 클릭하시면 바로 이동됩니다. ------------------------------------------------------------ 성지동 님의 블로그 : '째즈맨의 병실과 현실' 김유식 님의 블로그 : '유식이는 항상 옳다' 이종호 님의 블로그 : '윤리적인,너무도 윤리적인' 김현국 님의 블로그 : '축복받으라.모뎀소리를 문화로 만들었던 PC통신 1세대여' 김현진 님의 블로그 : 'ZIPY를 위하여' 임병국 님의 블로그 : '바다소년의 우스개' 박상웅 님의 블로그 : '원작보다 낫다. 리메이크?' 고흥준 님의 블로그 : '사람들도 이럴까?' 김석원 님의 블로그 : '문학관 내 기억속의 TV-야사중심' 김병성 님의 블로그 : '純한글 順한 마음' 임문영 님의 블로그 : '자취기' 김병일 님의 블로그 : '그렇게 좋았을까? 베오란의 치키' 이승석 님의 블로그 : '충격실화! 나의 황당한 이야기' 석대형 님의 블로그 : '젊은날의 best5' 최재원 님의 블로그 : '명쾌한 사로의 법이야기' 정석근 님의 블로그 : '감성어린 이성, 석근의 글' 정영화 님의 블로그 : '반듯한 마음이 기억에 남다' 김미경 님의 블로그 : '한글,한국어, 한국식 영어' -------------------------------------------------------------- 생각 나세요? 반가운 이름들 많죠? 따스한 마음을 나누던 글들...한번 구경해 보세요. 서로 인사도 하시구요~ 직장인을 위한 업무 농땡이 10계명 김병일 님의 블로그 : '그렇게 좋았을까? 베오란의 치키' http://blog.paran.com/chicky/2043750 1. 모니터를 백미러로 활용하라! : 모니터는 하루 종일 뚫어지게 보고 있어도 별로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업무 도구다. 이점을 노려라! 달인의 경지가 되면 웹서핑을 하며 모니터로 후방 10 미터를 자유 자재로 관찰 할 수 있다. LCD 모니터를 사용한다면 OHP 필름을 붙이던지 원래 붙어 나오는 필름을 제거하지 말라. 훌륭한 백미러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반사로 생기는 눈부심은 걸렸을 때의 민망함과 불이익을 생각하고 참아라. 모니터가 창쪽을 향한다고 안심하지 말라. 창문에 비쳐서 다 보인다. -_-; 기본 과정 : 모니터를 이용 최소 5미터 후방의 상사를 감지 할 수 있는 경지. 심화 과정 : 창문이나 타인의 모니터로 상사의 위치를 파악하는 경지 2. 발자국 소리로 사람을 식별하라! : 농땡이 칠 때 신체 다른 부위는 다 놀아도 귀만은 깨어서 발자국 소리의 변화를 감지 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 닥칠지 모르는 상사의 습격 위험을 사전에 방지하기에는 발자국 소리 감지가 최선의 도구 중 하나이다. 덤으로 목소리도 들으면 금상 첨화지만 발자국 소리가 우선임을 명심하라. 체중, 신발 종류, 소비 수준(구두쇠는 밑굽을 잘 안 갈아서 소리도 크다.), 키(보폭이 크면 소리가 그만큼 간격이 크다) 등을 고려하여 반복 훈련한다. 상사가 새 옷 산 것은 몰라도 되지만 새 구두 샀을 때는 각별히 주의 한다. 기본 과정 : 한 사람이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로 이름을 맞출 확률 90% 이상 심화 과정 : 두 명 이상의 사람들이 동시에 걸어 올 때도 상사의 발자국 소리 구분 가능 3. 늘 냉정한 표정을 유지 하라! 언제나 한결 같이 냉정한 표정을 유지 하라. 특히 야한 것 볼 때 혼자서 얼굴 시뻘게지지 말라. 남에게 변태로 찍힌다. 자긴 아닌 것 같아도 남들이 보면 다 안다. 웃긴 것 볼 때도 함부로 웃지 않도록 주의한다.‘나 놀고 있어요’라고 신고하는 것과 같다. 항상 가장 불쾌하고 슬픈일 몇 가지를 염두에 두고 있다가 도저히 감정이 통제 불가능 할 때 머리에 떠올려서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연습한다. 기본 과정 : 업무중과 농땡이 중의 얼굴 변화 구별이 불가능 하도록 훈련 심화 과정 : 가장 야한 동영상도 신체(?) 및 얼굴색 변화 1% 이내로 감상 가능 4. 책상을 깨끗하게 치우지 말라! 번쩍 깨끗한 책상에 모니터에만 워드프로세서가 떠 있다고 일한다고 생각하는 상사는 별로 없다. (구닥다리 사고 방식이지만 그게 상사의 수준이다.) 출근 후 책상에 서류, 필기구, 명함첩, 메모지 등을 벌여 놓는 위장 전술을 우선시 해야 한다. 이 경우 자연스럽게 책상으로 눈을 돌리면 아무 서류나 잡고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농땡이도 부지런해야 잘 할 수 있다. 가끔 책상 위의 구성물을 바꾸고 위치를 이동 시켜라! 늘 같은 모양으로 어지럽혀 있으면 게으르고, 논다는 소리 듣는다. 업무와 관계 없는 개인적 서류는 미리 미리 치워 놓는다. 유사시 영어시간에 국어책 읽는 것 같은 장면이 연출 되면 상당히 곤란하다. 기본 과정 : 책상에 빈틈이 없게 주기적으로 구성을 새롭게 하는 습관 체득 심화 과정 : 어지러운 책상 구성 속에서 1초 이내로 위장용 서류를 정확히 찾아 읽는 경지 5. 한 손은 반드시 키보드에 올려 놓아라! 회사에서 마우스만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다! 원래 인터넷 할 때 왼손이 노는 것은 과자 집어 먹던 습관 때문이다. 그래서 오른손으로 마우스만 굴리며 화면 보고 있는 행동은 ‘나 지금 인터넷 바다에서 파도타기 하고 있어용~’하고 광고하는 행위다. 반드시 한 손은 키보드에 늘 올려 놓아라. 그리고 유사시 마우스에서 손을 떼서 키보드에 올리고 아무거나 막 타이핑 하고 편집 해라… 두 손이 키보드에 있을 때는 노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기본 과정 : 어떤 웹서핑 자세에서도 무의식적으로 왼손이 키보드에 올라가 있음 심화 과정 : 키보드만을 이용하여 자유 자재로 웹서핑 할 수 있는 능력 배양 6. 자세를 바르게 유지하라! 의자에 똑바로 앉아 허리를 펴고 앉아라 두 가지 장점이 있다. 일단 상체로 모니터의 대부분을 가릴 수 있다. 머리로 가리는 것보다는 당연히 효과적이다. 머리가 엄청 크다고? 그…그럼 그냥 머리로 가려라… 하지만 오히려 머리만으로 모니터를 다 가리는 사람이 신기해서 더 관심 끌지도 모른다. 삐딱한 자세로 다리 꼬고 턱 괴고 마우스 굴리고 있다면 행여나 그 자세로 일을 하고 있어도 상사는 당신을 일 한다고 보지 않는다. 덤으로 자세도 좋아지고 목을 빼서 멀리 쳐다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기본 과정 : 상체를 이용하여 모니터 화면의 최소 70%를 가릴 수 있어야 함. 심화 과정 : 자세를 똑바로 하고 모니터 화면 가리는 자세 1시간 이상 유지 가능 7. 모니터 화면 구성을 주의하라! 작업 표시줄은 자동 숨김으로 하라! 영리한 상사는 모니터의 아래부터 본다. 위장용 문서 화면을 띄워 놓을 때면 문서의 끝이나 중간을 띄워 놓는다. 어지간한 바부가 아니고서야 볼 때마다 텅 빈 워드 문서나 보고서의 맨 첫 장이 떠 있는 사람을 신뢰하지는 않는다. 절대 익스플로어만 달랑 띄우지 않는다. 기습 당했을 경우 대책이 없다. 권장 구성은 다음과 같다. 아웃룩 - 워드프로세서 (최근 작업 문서 중간 혹은 끝부분) – 파워포인트 (역시 중간 혹은 끝부분) - 익스플로어1 (누가봐도 업무용 인터넷 화면) – 익스플로어2 (땡땡이용 인터넷) 화면 전환용 단축키(Alt-tab), 가상 바탕 화면 구성 등을 마스터 하라! 가능하면 인터넷 창을 작게 줄여 띄워 워드프로세서 등과 교묘히 겹치고 서핑이 가능하게 연습한다. 기본 과정 : 위의 구성을 10초 내 완성, 유사시 0.5초 이내로 업무용 화면 전환 심화 과정 : 인터넷 창을 화면 1/4 크기 이하로 줄이고도 자유로운 웹서핑 가능 8. 동료와 협력 플레이를 구성하라! 혼자서 넓은 사무실 영역을 다 신경 쓰는거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노는게 더 피곤할 수도 있다. 마음 맞는 동료와 협조하라! 상사를 불시에 발견시 큰 소리로 인사를 하거나 당신에게 전화 사인을 하게 하라. (예, 전화벨 두 번 울리고 그냥 끊기는 전화 – 상사 출현 중) 단, 전적으로 믿지는 말라…. 잘못하면 크게 X될 수 있다. 그리고 연습을 해서 국어책 읽듯 어색한 연기가 되는 것은 꼭 피한다. 쪽 팔린다. 기본 과정 : 동료 한 명과 숙달되도록 사인을 연습한다. 성공률 50% 이상 목표 심화 과정 : 두 명 이상과 팀을 구성하되 그 두 명은 서로 사실을 모르게 구성함 (동료들에게도 내가 농땡이 치는거 알려 좋을 것 없다) 9. 노는 것도 쉬어 가며 하라! 한번에 오래 놀지 말라… 주위 사람들은 남이 너무 열심히 일하면 의심하게 된다. 의심하면 소문나고 소문나면 정말인지 확인하러 오는 사람이 많아진다. 친한 친구라도 자리로 먼저 찾아오게 하지 말고 적당히 논 후 내가 먼저 찾아간다. 특히 상사가 내가 어디 짱 박혔나 궁금해서 찾아오게 하지 말고 적당한 간격으로 그분 눈 앞에서 얼쩡거린다. 단 너무 자주 그러면 할 일 없어 그러는 줄 알고 엄청난 업무를 받을 수 있으니 분위기 파악에 특히 주의한다. 기본 과정 : 한시간 놀면 꼭 10분은 쉬거나 주위 동료를 찾아가서 논다 심화 과정 : 항상 상사의 눈에 바쁘게 보이면서 업무 받는 건 피하는 경지 10. 걸렸을 때 오히려 당당하라! 이상의 모든 조치를 마스터 하였어도 가끔 불시에 황당한 기습을 당해 인터넷에 성인 영상이 떠있거나 만화 등을 보고 있을 때 상사가 뒤에 나타날 수 있다. 무아경에 빠져 있을 때 뒤에 상사의 기침소리가 들려도 절대 놀라지 말라…. 절대 놀라 일어서며 뒤 돌아 보지 말라… 무진장 추한 모습이다. 인간으로서의 자존심도 없냐? 절대 죽을 죄가 아니다. 물론 창을 갑자기 내리거나 모니터 끄지 마라… 꺼진 화면이나 퍼런 바탕 화면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은 농땡이를 넘어 사이코가 된다. 침착하게 역공을 먼저 가한다. 미소를 머금으며 살짝 뒤를 돌아 보고 인사를 하며 ‘잠깐 쉬고 있었습니다’ 하면서 여유 있게 보고 있던 창을 닫으면 된다. 은근슬쩍 업무 이야기로 넘어 가는 것도 좋다. ‘지시하신 보고서는 올렸습니다.’ 분위기 잘 살펴서 ‘헤헤 야한 사이트 주소 보내드릴까요?’ 하여 호응을 얻으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단! 한번 걸리면 상당기간 자중한다. 늘 걸리고도 당당하면 회사가 어려울 때 당신부터 짐 쌀 가능성이 기하 급수적으로 높아진다. 기본 과정 : 걸렸을 때 미소 짓기, 심장박동수가 평소의 10% 이상 증가하면 안됨 심화 과정 : 걸렸을 경우 상사와 농담 따먹기 모드로 변신 성공 확률 50% 이상 경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위 지침을 숙달해서 즐거운 직장 생활 하기를 바란다 단, 위의 지침을 마스터 하고 짤렸다고 나에게 항의 하지 마라… 능력 없는 걸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능력도 없이 누가 펑펑 놀랬냐… ^^; 성지동 님의 블로그 : '째즈맨의 병실과 현실' 엽기토끼 육아기 (1) http://blog.paran.com/jazzman/2043122 2001. 3. 14. 어느 날 필자의 아내 Y에게 친구가 포워딩해준 메일이 날아들었다. 요즘 유행하는 소위 '유 머 메일'이라는 것으로 골때리는 얘기들을 플래쉬, 쇽웨이브, 기타 등등, 컴퓨터를 엔간히 쓸 만큼 쓴다고 자부하는 필자로서도 따라잡기 벅찬 최신 기술을 응용하여 재미난 화면으로 구성한 것 들이다. '엽기'란 말이 유행은 유행인가보다. 제목부터 엽기적인 '엽기 토끼'. 곰 부자 (실은 성별은 확인 불가능)가 사과(?)를 맛나게 먹고 있는데 토끼 한 마리가 오더니만 꼽사리를 끼어 같이 먹는다, 곰이 이를 보고 '가!' 하고 내치려 하지만 토끼는 꿈쩍도 안 한다. 화가 난 곰, 갑자기 도끼를 꺼내들고 위협한다. 이때 엽기토끼, 맥주병을 휙 꺼내더니 갑자기 자기 머리에 퍽 쳐서 깨버린다. 찍~하고 기가 죽은 곰은 엉엉 울면서 토끼에게 사과를 깎아준다. (들고 있던 도끼로) 지금 22개월이 된 필자의 아들은 엽기토끼다. 뭐 맥주병을 들고 우리를 위협하는 건 아니지 만, 그에 못지 않게 골때리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엽기 토끼다. 필자가 '재미있게' 글을 쓴다고 칭찬을 해주시는 분들이 있다. 사실 글이란 것이 가질 수 있 는 제일 멋진 미덕이 '재미'라고 본다면, 참으로 고맙고도 황송스러운 칭찬이다. 헌데, 불행 히도 일상 생활에서의 필자는 그다지 재미있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매우 재미없고 지루 한 인간이라고 봐야 할지 모른다. 헌데, 이것도 운명인지 필자는 매우 '재미있는' 배우자를 만났고, 그 웃기는 유전자를 이어받 은 필자의 아들 (이하 JY) 역시 매우 웃기는 놈인 듯 하다. 그리고, 필자가 비록 지금은 매우 지루하고 게으르고 심심한 인간이지만, 어렸을 적의 필자는 심심한 것은 참지를 못하는 장난꾸러기였다고 하는 전설을 고려해 보면 양쪽에서 뭔가 장난과 관련된 유전자들만 골라서 전달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어떤 장난을 치느냐고요? 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주로 한가지로 귀결이 되는 경우가 많 은데, JY가 가장 즐기는 장난은 '아빠를 골리는' - 그러니까 바로 이 필자를 골탕 먹이는 - 것이다. '베이비 블루스'라는 미국 만화가 있다. 우리 나라 일간지에 연재가 되기도 했고 단행본도 있고 제법 인기가 있는 만화로, 한 부부가 골때리는 딸자식을 키우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 를 엮은 만화다. 어느 날, Y가 우리도 애를 키우는데 어디 한번 보자고 몇 권을 사왔다. 필자도 보기 시작했는데, 글쎄,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편으로는 마냥 재미있지만은 않았다. 왜냐고? 그건 만화가 아니라 너무나도 '현실적인 현실'이었으니까! 예를 들어, 만화에 나오는 에피소드 중 하나로, 저녁에 애를 목욕시킨 뒤 기저귀를 채우고 잠옷을 갈아 입히는데, 애가 머리를 바람에 휘날리면서 천둥 벌거숭이 모양으로 날쌔게 도 망을 다니고 아빠는 헉헉거리면서 쫓아다니는 장면이 나오는데. 필자의 집에서도 거의 매일 저녁 벌어지는 바로 그 장면이다. 필자가 기저귀를 꺼내들면 JY는 의례 도망가야 하는 것으 로 알고 있고, 그것도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이 갤갤거리며 도망을 다니는데, 혹시나 필자가 쫓아가지 않으면 저만치 가서는 왜 빨리 잡으러 안 오나 기대에 차서 돌아보니, 기대에 부 응하기 위해서라도 온 집안을 누비며 추격전을 벌일 수밖에. 그렇게 한판의 추격전 끝에 마침내 JY를 잡아다가 기저귀를 채울 순간이면, 역시 곱게 기저 귀를 채워주기보다는 또 한판의 격전을 벌여야 하는데, 발길질하고 버둥거리고 획 몸을 돌 려 잽싸게 다시 빠져나가고 하면서 필자를 따돌리는 것이 그의 인생의 또 한가지 낙이다. 뭐 기저귀를 정말 싫다든지, 필자가 싫다든지 해서 반항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저 낄낄거리면서 즐기는 것이다. 초창기에는 그의 무지막지한 발길질에 마구 채이곤 했지만 (애라 고 해서 장난이 아니다! 정말로 아프다!) 이제는 숙달된 조교라 요령껏 피하곤 한다. 그의 엽기성(?)은 앞으로의 글들을 통해 차차 드러나겠지만, 오늘은 특히 '먹는 문제'를 얘기해 볼까 한다. 필자는 식성에 관한 한 남부럽지 않게 좋은 사람이고, 배가 고프면 인간성이 매우 흉포해졌 다가, 먹을 것만 들어가면 금방 인생관, 세계관이 달라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JY도 먹 성이 매우 좋은 편이다. 대개 애들이 이 나이쯤이 되면 먹는 양이 줄어들어서 뭐라도 좀 더 먹이려는 부모들과 안 먹겠다는 애들 사이에 실랑이가 흔히 벌어지는 모양인데, JY는 먹을 것을 보면 쉽게 이성을 잃는 필자를 닮아서인지 그런 걱정은 별로 할 일이 없다. 실은 저녁 때 밥이 제 시간에 나오지 않으면 식탁 앞 의자위로 기어올라가 광야의 굶주린 늑대처럼(?) 울부짖으며 시위를 하는 것이 보통 벌어지는 광경이다. 사실 이 또래 애들의 부모들끼리 만나면 온통 '자기 애가 안 먹어서' 걱정이라는 얘기뿐인 데, 우리 애는 밥때를 지나치면 이성을 잃는다고하면... 자식 자랑이 늘어졌다고 할지 모르 겠다. 헌데, 주로 좋아하는 것들의 목록을 보면 가히 엽기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필자나 Y나 특별히 토종의 식성은 아닌데, 물론 '한국적 식단'도 좋아는 하지만, 뜨뜻한 국물이 없 으면 밥이 안 넘어간다던가, 김치를 못 먹고는 못 산다던가, 모든 음식에 고추장을 넣어야 한다던가 (KAL 국제선에서 아무 메뉴에나 무조건 나눠주는 튜브 고추장!) 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게다가,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처지이니 꼭 그런 음식들이어야만 한다면 참으로 골아픈 노릇일 것이다. 헌데, 왜, 어찌해서 JY는 아무도 특별히 권하지 않는 토종의 식사를 가장 좋아하는 것인지! (그렇다고 미국 음식을 안 먹으려 한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기본적 으로 먹을 거라면 일단 사죽을 못 쓴다.) 미역국에 밥을 확 부어 넣고 숟갈로 척척 말아먹는 애기, 보통 배추 김치는 매워서 못 먹긴 하지만 백김치에는 '광분'하면서 끝없이 집어 먹는 애기, 된장국 사발을 들고 국물을 후루룩 들이키고 하~하고 감탄사를 연발하는 애기... 이런 애기 보셨나요? 글쎄, 어째서 JY가 고국 떠난 지 십수년만에 한국 음식 먹어보는 재미교포처럼 이렇게 신토불이형 음식에 열광하는 지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아마도 그가 좋아하는 품목 중 가장 엽기적인 것은 마늘짱아찌일 것이다. 어느 날 식탁 위 에 놓인 것을 먹겠다고 떼를 쓰길래 어디 한번 먹어봐라, 설마 지가 먹어보고 나서 또 먹겠 다고야 하랴, 하고 줘봤더니, 웬걸, 야, 이런 희안한 맛이! 하는 표정으로 끝없이 먹겠다고 덤비는 것이었다. 한국 음식점에 있는 생마늘과 중국집 식탁에 놓인 생양파도 먹겠다고 달려드는 것을 보고는 어떻게 되나 먹여 보고 싶은 궁금증은 몹시 나지만 부모된 도리로서 차마 그럴 수 없어 말 렸었다. 먹여보면 과연 어떻게 될까? 또 한가지는 '뼈에 달린 고기'인데, 강아지도 아닌 것이 뼈에 붙은 고기를 뜯거나 닭다리를 들고 뜯는 모습에는 황당한 웃음을 금할 수 없는데, 필자는 JY가 왕갈비에 붙은 고기를 물 어뜯어 이빨자국이 선명히 남은 모습 (죠스가 나타났다?) 을 캠코더로 포착할 수 있었다. 길이 보존하여 장가갈 때 선물로 줘야지. 헌데, 정말 무시무시한 것은 그 애기 죠스같은 이빨로 필자를 가끔 물어뜯는다는 것이다. 뭐 별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애정의 표현(?)인 것 같기는 한데, 악!하고 비명을 지르게 아프다. (학대받는 부모? Parent abuse?) 다른 방면으로 골때리는 것은 역시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턱없는 '건강식 취향'인데, 한동 안은 삶은 당근에 사죽을 못 쓰더니만, 요즘은 시금치, 도라지, 고사리 같은 나물을 보면 우 아! 하고 단말마의 감탄사를 내뱉으며 정신없이 집어먹는 것이나, 국에 들은 양배추나 미역 같은 건더기 건져 먹기에 열중하는 것만 해도, 건강에 무척 신경 쓰는 중년 취향(?)인데, 게다가 향이 들은 요구르트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플레인 요구르트 (한국에서는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플레인 요구르트를 보통 수퍼에서 보기 힘든데, 미국에는 흔히 있다. 먹어보면 그냥 시큼하기만 하지 별 맛이 없다.)만 먹겠다고 한다든지, 심지어 아이스크림을 안 먹겠다고 주장하는, 거의 애기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저버린 듯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다시 한번 밝혀두는데, 필자나 Y는 그에게 이러이러한 걸 먹어야 한다고, 혹은 이러이러한 건 먹지 말라고 강요한 적은 전혀 없다! 필자는 어릴 적 무척 입이 짧았었다. 한동안은 소시지와 계란 밖에 안 먹은 적도 있다고 한 다. 뭐 그래도 결국 멀쩡하게 크긴 했지만, JY는 아빠의 어린 시절 편식을 닮지 말고 부디 골고루 잘 먹고 건강하게 자라길 빈다. 엽기토끼 육아기 (2) http://blog.paran.com/jazzman/2043121 2001. 7. 1. 필자를 처음 만나는 사람 중에는 필자를 무척 얌전하고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인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자주 있다. 필자가 아주 외향적이고 시끌벅적한 사람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정말로 속속들이 온화하고 부드러운 사람인지는 심히 의심스럽다. 얼마나 믿을만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관상학적으로 이마가 뒤로 넘어가거나, 눈썹 뼈가 튀어나왔다거나, 턱의 선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사람은 고집이 세다고 한다. 헌데, 필자는 이 세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고 (그렇다고 무슨 괴물이나 네안데르탈인의 형상을 상상하지는 마시길), 실제로도 필자를 잘 아는 이들로부터 가끔은 '똥고집'이라는 별로 아름답지 못한 평가를 받기도 한다. 뭐, 쉽게 얘기하면 '알고 보면 성질 드럽다'는 것인데, 아마도 필자의 첫인상을 그렇게 보지 않고 착하고 온순한 사람인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은 탓인지, 필자의 그런 면을 보고 나면 배신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종종 있는 모양이다. 누가 그렇게 봐달랬나 뭐. 그런 성격 때문에 이제껏 살면서 심심치않게 '성질'과 '패악'을 부리며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쳐온 것도 사실인데, 이제 그 업보를 갚는 것인지, 죄값을 치루는 것인지, 아니면 이제 스스로 반성하고 사람되라는 하늘의 뜻인지, 필자는 최근 일생일대의 엄청난 강적을 만나 피할 수 없는 일전을 치루고 있는 중이다. 그 강적이란 다름 아닌 필자의 아들, 사랑스런 엽기토끼, JY이다. 필자는 운동 신경이 그다지 발달하지 못한 탓에 자전거를 늦게 배운 편인데, 초등학교 4학년인가 5학년 때 두발 자전거 타기를 처음으로 시도했었던 것 같다. 필자의 아버지께서 자전거 배우는 걸 도와주겠다고 뒤에서 밀어주셨던 것을 기억하는데, 필자가 한번 넘어지고 난 뒤, 그게 마치 아버지의 잘못이라도 되는 듯 신경질을 내고, 아버지에게 자전거에 손도 못 대게 했다고 한다. (필자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원래 불리한 부분은 기억이 잘 안 나는 법이다.) 그러고 결국 자전거 타기를 제대로 못 배웠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결국 자전거를 제대로 탈 수 있었던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쯤 되어서였다. 아버지는 두고두고 서운한 기억으로 이 일을 기억하셨던 모양이다. 뭐 애써 좋게 말하면 너무나 독립심이 강하고 자존심이 세어서 그랬다고 할 수도 있고, 간단히 얘기하면 못된 성질에 똥고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JY가 9개월쯤 되었을 때의 일이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던 때라 어제 하던 짓과 오늘 하던 짓이 다른 판이었다. 필자가 한두 주 동안 좀 바빠서 JY를 돌보는 데 별로 시간을 할애하지 못 하다가 어느 날 낮에 혼자서 JY를 보고 있던 중에 전과 다름없이 밥을 (실제론 죽) 떠먹여주려 하자 웬일인지 마구 짜증을 내면서 먹지 않으려고 드는 것이 아닌가. 허 참, 이상하다, 얘가 왜 이러나, 하면서 그래도 굶길 수는 없으니 억지로 먹여 보려 했더니, 손으로 숟가락을 탁 쳐내면서 화를 내더니만, 그것도 모자라 아예 밥그릇을 확 뒤엎고는 악악대며 성질을 피우는 것이었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거야? 하면서 난감해하고 있던 중에 Y가 들어와서 하는 말, "걔, 요새 자기가 떠먹기 시작했어." 이제 9개월 된 놈이 떠 먹여주는 거 받아먹는 건 싫고, 지가 떠먹겠다고? 새로 밥을 줘보니 마구 엉망으로 흘리면서 신나게 퍼먹는다. 뭐, 비교적 빠르게 스스로 숟갈질을 하는 것은 대견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애비가 밥 먹여주는 걸 그렇게 지랄(!)을 하면서 거부해야 하냐? 이런 엽기토끼가 있나! 그의 이런 턱없는 똥고집은 이후에도 계속된다. 밖에서 나가면 느닷없이 마구 뛰어가는데, 위험해 보여 그의 앞길을 억지로 제지할 수밖에 없는 때가 흔히 있다. 오히려 가지 말라고 하면 기를 쓰고 그 방향으로 돌진하는 것이 보통이고, 결국 힘으로 제지를 하면 일본 순사에게 끌려가는 독립투사라도 되는 듯이 두 주먹 불끈 쥐고 온 몸에 힘을 주고 저항하면서 끌려가곤 한다. 퍼덕거리는 것이 황새치같아 늙은 (?) 애비 허리가 부러질 지경이다. 필자가 평소에 인심을 워낙에 잃어 놔서 그런지, 필자의 주위에서는 JY의 똥고집에 허구헌날 당하면서 사는 필자의 신세를 아무도 동정해주지 않는 것은 물론, '인과응보다', 내지는 '드디어 임자를 만났구나!' 하면서 낄낄거리면서 즐거워하는 분위기다. JY의 턱없는 '독립심'과 관련된 일화들은 계속 이어지는데, 블록 맞추기 (레고 같은 종류)를 할라치면 아빠가 같이 노는 것은 좋지만 뭔가 자기의 원칙에 따라서 블록이 쌓아지지 않으면 가차없이 빼버리고 다시 제 손으로 쌓아야만 직성이 풀리는데, 황당한 것은 필자가 꽂은 것을 맘에 안든다면서 빼서는 다시 똑같이 꽂는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영 마음에 안들면 일껏 쌓은 것을 왕창 다 부시고 처음부터 다시 쌓아야만 한다. 그러다가는 놀이의 초점이 흔히 바뀌게 되는데, 제법 높다랗게 쌓아올린 탑을 부셔버리려고 할 때, 필자가 '어어, 어!' 하는 것을 보더니 '어, 이게 더 재미있네?'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졸지에 블록 쌓기 놀이가 '블록 탑 무너뜨리겠다고 아빠 위협하기'로 바뀌면서, 손을 휙휙 휘저으면서 필자가 '어어어...!' 하는 것을 깔깔거리면서 보고 즐기곤 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좀 한심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아들 녀석의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장난감이 되어 골탕을 먹어주는 것은 뭐 그다지 기분 나쁘진 않다. 미국으로 올 때 돌이 막 지난 때였는데,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는 (필자가 한 달쯤 먼저 오고 그는 Y와 외삼촌과 함께 나중에 따로 왔다.) 마일리지를 써서 비즈니스로 승급을 해서 왔기 때문에 비교적 자리가 넓은데도 불구하고 자기의 '좌석'이 없다는 것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표시를 하는가 하면 스튜디어스가 자기에게 와인을 따라 주지 않는데 항의(?)하기도 했다고 한다. 독립심이 강한 애기라 그런지 JY는 day care center에 보내기가 수월하였다. 돌 반이 채 되지 않아 보내기 시작했으니 그 나이에 부모와 떨어져서 하루 종일 지내기가 보통 일이 아니고, 처음에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해서 애먹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그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부모와 떨어진다고 울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오히려 한 일주일 지나니 day care에 빨리 가자고 아침마다 성화였다. 신발을 찾아가지고 와서는 아직도 자고 있는 필자를 두들겨 패면서 빨리 데려다 달라는 것이었다. 오후에 애를 찾으러 가보면 장난감 붙잡고 자기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았다는 듯이 집에 가자고 해도 말을 안 듣는 경우까지 있었다. 어떤 때는 필자나 Y에게 장난감을 하나 쥐어 주기도 한다. '좀만 더 놀다 가자! 넌 이거 갖구 놀아!' 뭐 대충 그런 뜻인 것 같다. 쉽게 적응을 한 것 같아 마음이 놓이고 고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황당한 경우도 없지 않은데, day care에 저녁에 데리러 가서 집에 가자고 해도 들은 척도 안하고 딴전을 피우거나, 엄마나 아빠가 나타나면 (보통 다른 아이들이 그러듯이) 뛰어와서 안기는 것이 아니라, 뛰어오기는 오는데, 휙 지나쳐서 밖으로 나가버린다든지 할 때는 거기 선생님들 보기가 민망할 지경이었다. 어느 날은 Y가 JY에게 정색을 하고 타이르는 것이었다. "야, 니가 그렇게 엄마가 집에 가자고 해도 무시하고 선생님들 앞에서 무안주고 그러면 엄마는 너무 섭섭해!" 두 살도 안된 녀석이 뭘 알아듣겠나 했지만, 웬걸, 다음 날, JY는 엄마가 나타나자 천사같이 웃으면서 뛰어와서 폭 안기는 것이 아닌가. 이런, 요물! 생각해보면, JY는 갓난 아기 적부터 품에 폭 안겨서 가만히 있는 적이 없었다. 워낙에 몸이 따끈하고 열이 뻗치는 녀석이라 안고 있으면 겨울에도 따뜻해지고 여름이면 땀이 배어 견딜 수가 없다. 안고 있다가 조금이라도 더워지면 그는 무척 짜증스러워하곤 했다. 안아 주는 것 싫어하는 갓난 아기... 상상이 가시는지? 그러던 것이 좀 커서도 부모라도 껴안아 주는데는 상당히 인색해서 그저 잠깐이지 조금만 오래 안고 있으면 버둥거리고 난리가 난다. (그럴 때 Y는 일부러 더 꼭 껴안는다. 필자가 그의 '밥'인데 비해, 그녀는 확실히 JY의 '호적수'다.) 그런 그가, 부모의 불평을 무마(?)하기 위해 천사같이 안겨준 것이다. 집은 세상에서 제일 지루하고 재미없는 곳이고 밖에 나가 놀지 않으면 좀이 쑤셔하고 밖에 나가면 집에 기를 쓰고 안 들어가겠다고 하는 것을 보고는 필자와 Y는 "야, 남들이 보면 집에서 학대라도 하는 줄 알겠다"고 우스개 소리를 하곤 했다. 이곳은 미국이 아닌가. 낌새가 이상하면 옆집에서 전화 걸어서 아동 학대하는 것 같다고 신고하는 나라다. (그게 꼭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헌데, 어느 일요일 오후 갑자기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나가 문을 열어본 필자는 기절 초풍하였다. 경찰이 와 있는 것이다! 경찰 불렀수? 아니...요? 집에 어린애가 있지 않우? 그런...디요? 그 때 JY가 후다닥 뛰어나왔다. 부모는 세상에서 제일 지루한 인간들이지만 손님이 오면 뭔가 재미있는 일이 생긴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사실 그렇지 뭐.) 누가 왔나 하고 눈을 반짝거리며 신나서 나와본 것이다. 아랫도리는 홀랑 벗고 말이다. (요새 용변 가리는 연습 하느라고 집에서는 기저귀를 벗고 있음) 그 꼴이 하도 명랑해 보여 그다지 학대받는 아동처럼 보이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약간 기가 막힌 경찰 아저씨. "니가 경찰 불렀니?" "..." (괜히 수줍은 척 네숭 떠는 JY) "전화가 왔는데 무슨 소린지는 모르지만 애 소리가 난다고 해서 와봤지요. 그럼... 이만..." (할 말을 잃은 필자, 휙 돌아서서 가는 경찰 아저씨 뒤통수에다 대고) ".... 죄송... 혀유... 크..." (돌아서서 JY에게) "야! 너 911 눌렀어?!" "..." (내가 뭘? 하는 표정의 JY) 집은 너무 재미없는데, 게으른 아빠는 데리고 나갈 생각은 안하고 집에서 뭉기적거리고 있고, 경찰 아저씨라도 불러서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던 건가? 두 살짜리 녀석이 911을 어떻게 눌렀는지는 미스테리지만 말이다. JY는 필자로서는 정말 감당이 안 되는 강적이다. 힘과 기에서 모두 압도당하고 있는 것 같다. 하기야 뭐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만, 그는 아마도 똥고집에 지고는 못사는 성질 드러운 필자가 대오각성하고 인간되게 한 수 가르쳐 주려고 삼신할미가 보내준 엽기토끼인 모양이다. 결혼기 (結婚記) (9) 성지동 님의 발자국 http://blog.paran.com/jazzman/2043128 1999. 9. 26.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는 수많은 선배 부모들이 수도 없이 언급을 했었던 것이고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육아기가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기상천외하고도 기구한 스토리들도 많다. 필자가 여기에 또 하나를 보태려고 하는 것은 필자의 육아 스토리가 뭐 특별하고 기발한 것이어서는 아니다. 지금까지 이런저런 시답지 않은 얘기들 가지고 주절주절 적지 아니한 분량의 글을 엮어 온 판에, 애 키우는 것이 이제 막 시작이기는 하지만 인생에 있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큰 일임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드니 어찌 아니 글로 쓰겠는가. 우선 한 가지 먼저 얘기해 놓을 것은 이제 백일이 지나 4개월이 된 필자의 아기 JY(전편에서 아기의 이니셜이 의도했던 바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연히도 필자의 J와 필자의 아내 이름의 이니셜 Y를 하나씩 가지게 되었다고 얘기했었다.)는 최소한도 지금까지는 부모의 육아 노동의 강도를 적절한 선에서 유지하게 해주는 점에 있어서는 상당한 효자라는 것이다. 두 달이 미처 못 되어서부터 이미 밤중에 깨지 않고 아침까지 내쳐 자는 기특한 버릇이 들기 시작해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질시(?)를 샀는데, 이따금씩은 졸려서 잠투정을 시작하다가 그냥 내버려두면 혼자서 손가락을 빨다가 잠이 들기도 할 정도이니 그럴 만도 하다. 필자의 장모님 얘기에 따르면 Y는 애기 때 하룻밤에 세 번 이고 몇 번 이고 깼었다고 한다. (세 살 때까지!) 꼭 지은 대로 받는 것도 아닌 모양이다. 혹시는 필자나 Y 모두 한 번 잠이 들었다 하면 무척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축이고 특히 필자는 한밤중에 잠시 깨었던 것은 아침이면 거지반 기억을 못 하는 정도라 애가 밤중에 깨어 몇 번 울어보다가 이건 도저히 못 해먹겠다고 판단하고 그냥 포기하고 자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는지 모를 일이다. (상당히 유력한 학설인 듯하다.) Y는 필자가 밤에 깨어 멀쩡히(?) 할 일을 한 뒤에 잠들고는 다음 날 아침이면 전혀 기억을 못 하는 것을 보고 불안한 목소리로 물은 적이 있다. "병원에서 당직서고 있으면 자다가 깨서 전화 받지 않어?" "물론 그런 일이 있지." "그럼 자다가 깨서 환자한테 무슨무슨 약 주라느니 지시를 하고 다시 잔단 말야?" "그렇지. 뭘 당연한 걸 가지고?" "…" 그 정신을 가지고 환자를 어떻게 하라느니 지시를 내린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불안스러운가보다. 운이 좋아서 그런 것인지 그 순간에는 '근무 모드'에서 특별히 각성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날까지는 특별히 사고친 일은 다행히 없다. (혹시 기억을 전혀 못 하는 걸까? 자꾸 얘기하다보니 필자도 슬슬 불안해진다.) 정작 필자와 Y를 지치게 하는 것은 육아 노동 그 자체라기보다는 좀 다른 것인데, 글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극성 팬들의 열광'이라고 할까? 처가 쪽에서는 처음 보시는 손자이고, 본가 쪽에서는 외손자를 이미 하나 보시기는 했지만 벌써 그간 강산이 한번쯤 바뀔 정도로 오래 전의 일이 되어 버린데다가 친손자가 외손자와는 다르다는 가부장적 분위기(?)가 웬지 감돌고 있어서 또 특별한 아기이고, 하여튼 양가에서 모두 기뻐하는 정도가 대단한지라, 틈만 나면 아기 재롱을 보겠다는 '공연 요청(?)'이 쇄도하는 것이다. 게다가 JY는 장난치기를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필자나 Y의 어릴 적 내력을 고려한다면 그가 장난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핏줄이 의심스럽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여간에 깨어 있는 동안 격렬하게(?) 장난을 치고 얼마 못 가 졸려서 픽 쓰러지는 양상이다. 최근 즐기는 가장 격렬한 장난은 책만 보면 (대개 시사 주간지 종류) 맹렬하게 돌진해서는 책과 데굴데굴 구르면서 격투(?)를 벌이고 결국 발기발기 찢어 놓는데, 타잔이 악어와 격투를 벌이는 것 같기도 하고, 혹시는 시사 주간지의 논조가 맘에 안 들어 그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평소에는 필자와 함께 누워 잡지 보는 것을 즐긴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격렬한(?) 장난을 좋아하는데 앞으로 바이킹이니 그런 것들을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된다. ("아빠, 바이킹 타." "아빠는 안 돼, 너 혼자 타!" "아아~, 타자~아!") 필자는 그런 종류의 놀이기구에 무척 약하다. 멀미약을 먹고 타면 혹시 괜찮을까? 하여간에 장난치기라면 사죽을 못 쓰고 깔깔거리고 웃으니 양가 할아버지들이 그 모습을 보고 거의 정신을 잃는데, 세상에 어느 할아버지가 손자 귀여워 안 하겠는가마는, 워낙에 인기가 높다보니 한 주라도 공연 스케쥴을 거를 수가 없다는 데에 우리의 아픔(?)이 있는 것이었다. 공연을 관람(?)하는 쪽은 일주일에 고작 한번씩의 감질나는 공연이겠지만 공연을 하는 쪽에서는 일주일에 두 번이다. 주말에 양가에 한번씩 들르는 스케쥴을 소화하다보면 주말이란 것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 된다. 자식된 도리로 이것도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인데 불평을 어찌 할 수가 있겠는가? 라고 투덜거리지 말라고 얘기하진 마시기 바란다. 정말이지 장난이 아니다. 게다가, 그것으로 일이 끝나는 것도 아니어서 주말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다 못하여 주중에 잠깐씩 집으로 와서 간이 공연(?)을 즐기고 가시는 일도 거의 거르지 않는 형편이다. 양가 부모님들 모두 금주의 공연 스케쥴을 확인하느라 바쁘지, 혹시라도 너무 힘들면 안 와도 된다든지, 빈말이든 그 비슷한 것이든 하시는 법이 없는데, 뭐 하긴 그러다가 정말 안 와버리면 큰일이니 이해가 전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열렬 팬클럽 회원들은 스타가 나타나는가 아닌가에나 관심이 있는 법이지, 그 '로드 매니저'들이 피곤할까봐 걱정할 리는 만무한 일이 아닌가. 그러고 보면 로드 매니저라는 표현이 여러 모로 어울리는 것이, 때로 하루에 '두 탕'을 뛰어 이쪽 갔다 이어서 저쪽으로 가는 일도 그리 드물지 않게 있는데, 이렇게 공연 스케쥴이 꽉 찬 날은 우리의 스타께서는 차량으로 이동 도중 부족한 잠을 보충한 다음, 다시 무대에 내려놓으면 재롱을 떨기 시작하는, 프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으니, 돈이 안 된다 뿐이지 우리 가족은 참으로 성공적인 연예 매니지먼트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해도 될 것 같다. 애 키우는 것, 힘든 것도 여러 가지다. http://user.netpark.co.kr/~jazzman 결혼기(結婚記) (5) 1997-07-03 http://blog.paran.com/jazzman/2042603 결혼과 직업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부부가 비슷한, 또는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것일까? 아니면, 서로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편이 좋을까? 또는, '아녀자는 남자가 바깥에서 하는 일 알 필요 없는' 것일까? 필자가 접하는 주변 사람들은 의사인 필자와 역사학도인 필자의 아내 Y가 하는 일이 무척이나 다르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세상에 억지로 끼워 붙이면 서로 연관이 없는 일이 어디 있으랴만 의학과 역사학은 관계가 있다면 무척이나 깊은 관계이고 또 전혀 상관없다고 우긴다고 해도 사실 별로 반박할 말도 없다. 그건 '의학'이라는 말과 '역사'라는 말을 해석하기 나름일 것이다. 의학과 역사학간의 학문적인 상호 관련성과 같은 엄청난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우리 두 사람이 '놀던 물' - 혹시 이 표현이 좀 천박하다고 느껴진다면 '문화적 배경'이라고나 할까? -이 꽤나 다르다는 데서 시작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둘 다 파란만장했던 80년대를 헤쳐온(헤쳐온 건지, 그냥 허우적 댄 건지…), 그래서 어지럽고 심란했던 대학 시절을 보냈던 그 유명한 '386세대'들이다. (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이라고 하는데,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듯한 어감이라 마음에 별로 들지는 않는 말이다.) 아참, Y는 '3'자에는 이의를 제기하겠지만 그건 반올림을 하든지, 뭐 하여튼 대충 비슷하다고 치자. 그러나, 같은 세대라고 해도 의과대학과 인문대학의 분위기란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어서, 어느 쪽이 이상한 것이고 어느 쪽이 정상인지, 혹은 양쪽 다 이상한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상당 수 학생들은 '서로 밥맛없어 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문대 학생들은 의대생을 '싸가지 없다'는 한마디 말로 경멸스럽게 묘사하는 경우가 많은 모양이다. Y는 (이제 와서 얘기지만) 의대생들이 '무서워서' 피해 다녔다고 한다. (의대생이 쫓아다녔다는 얘기는 아니다.) 무섭다니? 뭐가? 그럼 나도 무섭냐고 하니까 다행히도 그건 아니라고 한다. 그럼 뭐가 무섭단 말인가? 의대생, 특히 의예과 학생들은 '날라리' 처럼 보였단다. 그럼 '날라리'는 또 도대체 뭐가 무서운가, 이런 문제는 일단 접어두고, 의대생이 정말 '날라리'인지 아닌 지부터 생각해보자. 의대생들이 놀기만 하는가? 그건 분명 아닐 것이다. 오히려 (자의든 타의든 간에) 공부 많이 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필자의 경험으로 보면 Y의 주장이 일리는 있는 것이, 의예과 시절서부터 '시간이 나면 놀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라도 있는 것처럼 '놀기'에 탐닉하는 경우가 많이 있고, 이런 버릇은 학교를 졸업한 후의 인턴, 레지던트 시절과 같이 시간 여유가 점점 줄어들게 되는 열악한 환경에서 처해서도 마찬가지여서, 나중에는 피곤함을 무릅쓰고 악에 받혀서 노는 습성이 생기는 것은 사실이니, 날라리라는 말의 정의가 무엇이냐는 식의 짜증스러운 논쟁은 접어두고 그냥 직관적으로 생각해 볼 때에는 맞는 것도 같다. 공부에 치이고 허덕댄 나머지, 그 외의 다른 일에 대해서는 진지해지기를 포기하게 되고, 이 세상에 전공 공부 외에는 취미와 유희밖에 없다고 여긴다면, '날라리'라고 불려도 크게 할 말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런 현상에 대해서 지극히 당연하게 생각하고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전혀 없는 분위기라면 더더군다나 그렇게 불려도 싸다고 할 것이다. (지금의 의대생들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필자로서는 그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정확히는 알 수가 없다. 그저 필자의 경험이 그러하다는 것일 뿐이다.) 실은 필자도 Y에게서 '날라리' 소리를 듣는데, 물론 필자는 극구 부인하지만, 의예과 때의 사진에 보이는 주접스레 머리를 기른 모습이라든가 (꽁지 머리는 아니었다. 그냥 깎기 싫어서 잠시 부시시한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지금 보면 좀 한심하다.), 기타 여기서 별로 들추어내고 싶지 않은 필자의 어두웠던(? 화려했던?) 과거의 스토리들을 종합하여 볼 때 완전 날라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Y는 느닷없이 '춤 좀 춰보라'느니 하는 말도 안되는 (적어도 나의 입장에서는) 뗑깡을 필자에게 부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사실 무척 점잖은 사람이다. 어-ㅅ 험! 그런데, 반대로 의대생들도 인문대생들을 같잖게 보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무서워하기도 하는데 전자는 주로 의대 남학생의 인문대 여학생에 대한 태도인 경우가 많은데, 여자 같지 않다는 뜻이다. 후줄근하게 청바지에 티셔츠나 걸치고 다니는 인문대의 운동권(실제로 운동권이든 아니든, 운동권 풍의 패션(?)으로 돌아다니는) 여학생을 경멸스럽게 얘기하는 이가 적지 않았는데, 사실은 이런 식의 발언을 일삼는 이는 대개는 여자를 성적인 대상 이상으로 보는 법이 없는 메일 쇼비니스트(male chauvinist)이었고, 이런 사람일수록 본인은 정말 별 볼일 없이 잘난 데 없는 인간인데, 순전히 남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자를 같쟎게 여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역겹다고 밖에 할 수가 없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여자는 자고로 '여자답고', 예쁘고, 섹시하고, 남자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열심히 치장을 해야 마땅하거늘, (거기에다 머리까지 텅 비어서 나긋나긋하게 순종적이라면 금상첨화로고) 저 것들은 어찌 저따위 몰골을 하고도 뻔뻔스럽게 상판때기를 쳐들고 다니느뇨…? 뭐 이런 식이다. 이 대목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사실 80년대의 대학가의 분위기를 알아야만 할 필요가 있는데, 지금이야 영화 배우 못지 않게 화려한 패션으로 중무장한 여대생을 보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지만, 그 당시는 대학생으로서 가장 진지하게 해야할 일은 '시국을 걱정하는' 일이었으므로, (임꺽정 신드롬? 아니, 그뿐 아니라 실제로 걱정만 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한 정도였다.) 여대생이라고 '여자답게' 꾸미고 다니는 것은 오히려 비난의 표적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고, 따라서 그렇게 화려한 치장을 하고 캠퍼스를 활보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특수한 경우(음대, 미대 정도?)에 속했다. 체력이 달려 전경한테 돌멩이를 못 던진다면 뒤에서 보도 블럭 깨는 일이라도 (공대에서는 집어던지기 딱 좋을 크기로 보도 블럭을 깨는 기계까지 개발했단다. 결국에는 견디다 못한 학교측에서는 보도 블럭을 없애고 아스팔트로 포장을 해 버렸다.) 해야할 판인데, 어딜 하이힐에 짧은 치마에 화장에 매니큐어이겠는가? 이런 삭막한(?) 분위기 속에서, 예쁜 여자만 밝히는 의대생이라? 음… 혐오의 대상이었던 것도 이해할 만 하다. 물론 메일 쇼비니스트가 의대생이나 의사 중에 특별히 많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여기에 대한 결론을 내리려면 일반 인구와 의사 집단에서 메일 쇼비니즘의 발병빈도(?)를 비교해서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있는지 연 구해 보아야 할 것이다. (에구… 헛소리… 내가 이런 소리를 하면 Y는 대개 '누가 의사 아니랄까봐…'하고 토를 단다.) 메일 쇼비니스트는 이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어딜 가나 흔히 만나게 된다. 예를 들어서, 하이텔에서도 신정모라씨 관련해서 올라온 수많은 게시물들을 골라서 그 발언 내용들을 훑어본다면 잠깐 사이에 한 트럭 분의 메일 쇼비니스트들을 추려낼 수 있을 것이다. 의대생이나 의사의 경우에 특별히 더 심각한 것은 아니라고 애써 생각해 본다. 이게 위로가 되는 말은 결코 아닌 것 같지만 말이다. 한편으로 의대생 역시 인문대생들을 무서워하는 경향도 있었는데, 그것은 인문대생들이 자기네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무서운(?) 선동적인(?) 얘기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밥먹듯 줏어섬기는데다가, 뭐라고 어줍잖은 소리 몇 마디 대꾸하다가는 무식한 인간으로 찍힌다든지 망신을 당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왜 사람들은 자연과학과 관련된 지식에 대해서는 엄청난 오해를 하고 있거나 완벽하게 무지하다고 해도 별로 수치스러워 하지 않고 오히려 그건 전문가들이나 알아야 한다고 일축하면서, 인문 과학의 지식들을 모르면 무식하고 교양 없고 기본이 안 되어 있다고 경멸하는 것일까? 말이 나온 김에 말인데, Y가 미장원에 갔다가 황당한 일을 당한 적이 있었다. Y의 전공은 영국사이다. 미용사가 머리를 손질하다가 우연히 Y의 전공이 영국사라는 말이 나오자, 그 미용사는 갑자기 리차드 3세인가 하는 자기가 본 영화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Y는 그 영화를 본적도 물론 없고 어떤 영화인지도 잘 모르는데, 미용사는 리차드 3세가 뭐한 왕이냐는 둥, 헨리 8세와는 어떤 관계이냐는 둥 황당한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Y는 어쩔 수 없이 침묵으로 버텼다고 한다. 도대체 리차드 3세가 누구고 헨리 8세가 누구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인가? 모르면 또 어떤가? 그 사람에게 열역학 제 1법칙을 아느냐고 물어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근데, 열역학 제1법칙이 뭐더라?) Y의 학교 동기, 선후배들과 같이 만날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때로는 황당한 꼴을 당하기도 하는데, 한번은 그녀의 선배 한 사람이 필자더러 '서양사학과 출신을 마누라로 삼았으니 서양사학과 과가(課歌)정도는 알아야지' 하더니 눈 부릅뜨고 쳐다보면서 불러보라고 다그치는 것이었다. 물론 적당한(?) 혈중 알콜 농도가 유지되고 있는 상태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Y네 학과의 과가는 라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 필자는 불어에는 일자 무식으로, 사전을 찾아서 확인하고 쓰는 것임.)로서, 다름 아닌 프랑스 국가이다. 내가 그기를 우찌 아노? 참 내. 들어보기야 봤겠지. 그래서 프랑스 국가 모른다고 남편 자격이 없다는 둥 엄청 구박을 받았다. 젠장. 하여간에 무식해서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문화적 차이 때문에 고생하는 것은 국제 결혼을 했을 때만은 아닌 모양이다. 또 하나 곤란한 것은 - 이건 문화적 차이와는 다른 문제지만 - 사람들은, '의사의 아내' (물론 실제 쓰여지는 용어는 '의사 마누라')라는데 대해서 어떤 전형적인 모델, 즉 스테레오타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스테레오타입은 무척 완고하다. 이는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는 스테레오타입이 무척이나 견고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면, 일단 의사들은 돈을 잘 버는 사람들이고,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라서 그들의 이익을 지키기에 혈안이 된 사람들로서, 환자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희생과 봉사를 내세우는 위선자, 냉혈한들이고, 세상 돌아가는 것에는 극히 무지할 뿐 아니라 관심도 없다, 관심 가지는 것이라곤 골프 뿐, 심지어는 의사들은 애를 많이 낳는다, 경제적 능력이 받쳐주는데다 여자 생각은 안하고 피임에 게으르니까, 등등…. 참 다양하기도 하다. Y가 투덜거리는 것이, 자기는 옷을 그냥 대충 입으면 의사 마누라가 저게 뭐냐고 그러고, 신경 써서 차려 입으면 의사 마누라 되더니 변했다고 그럴 판인데 어쩌면 좋으냐는 것이다. 그러니 내 인생 책임지라는 얘기인지는 모르겠는데, 필자가 어찌 해 줄 수 있는 종류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참 웃기는 얘기다. 그러고 보니 의사의 부인들 중에 음대 출신들이 꽤 많다. 음대 출신이 뭐 어떻다는 건 아니고, 사람들이 의사와 음악하는 사람이 잘 어울리는 쌍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의사는 환자 보느라고 항상 골치를 썩히니까 음악에서 위안을 찾으면 딱 맞을 것이라는 얘기일까?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묘한 편견이다. 의사는 환자 보는 것 외에는 골치 썩히고 고민하면 안되는가? 의사가 과연 이 사회에서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일까? 그리고 스트레스는 음악을 통해서만 풀 수 있는가? 묘하게도 두 가지 분야 모두 사회적인 문제나 이데올로기와는 동떨어진 것처럼 간주되는 (실제로는 물론 그렇지 않지만) 분야라는 것, 또 그 폭풍우 속과도 같았던 80년대에도 이 두 분야의 전문가를 키우는 대학, 즉 의대와 음대는 거의 무풍지대에 가까운 평화 아닌 평화를 유지했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면, 필자는 색안경을 쓰고 있는 것일까? 이런 스테레오타입을 벗어 던지고 Y를 본다면 Y는 의사의 아내로 충분한 자격이 있을 것이다. 자칭 '까진 환자'라고 하는데, 이런 저런 일로 병원 신세도 많이 지고 주위에 의사도 많아 보고 듣고 한 것도 많은 데다가,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각종 '소위 의학 상식들' - 그럴 듯 한 것에서부터 정말로 말도 안되는 터무니없는 것들에 이르기까지 - 에 대해 제법 박식하고 (이 분야에 관한 한 필자보다 오히려 한 수 위다.) 그러면서도 그런 것들에 휘말리지 않는 적당한 균형 감각도 있는 그녀는 확실히 자격이 있다. 주위의 사람들은 자주 Y를 통해서 필자에게 이런 저런 의학 상담을 하게 되는데 대개는 별 것 아닌 것들이어서 '괜찮다' 내지는 '별 거 아니다' 라는 요지로 간단하게 대답을 해 주게 되는데, 막상 그 빈약한 대답을 질문한 사람에게 전달하는 과정에는 그녀가 알아서 이것저것 살을 붙인 대답을 해 주는 것이어서, 질문한 사람들이 대개 만족스러워 한다. 이런 걸 볼 때면, 병원에서 주치의(레지던트 1년차)가 자기 밑의 인턴을 칭찬할 때 쓰는 '잘 키운 인턴 하나 열 주치의 안 부럽다'는 말이 생각난다. 더군다나, Y는 내가 키운(?) 적 없는데 혼자서도 잘 하니 말이다. 너무 이런 식으로 나가면 눈에 콩깍지가 씌워도 좀 심하게 씌웠다고 비웃을 테니 그만 하겠다. 하여간에 그래서 우리는 의사와 역사학도가 간의 성장 배경에 있어서의 크나큰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한 성공 사례를 만들어 보고자 끊임 없이 노력하고 있다. Y가 좋은 의사의 아내 (이런 대목에서는 우리 나라 말 쓰기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데, '좋은'은 '의사'가 아니라 '아내'를 수식하는 말이다. '의사의 좋은 아내'라는 의미인데 이 말은 왠지 어색한 게 어쩐 일일까? 어쨌든 a good wife of a doctor라는 얘기다)라고 한다면, 나는 뭔가? '좋은 역사학도의 남편' (역시 마찬가지로 a good husband of a historian이란 얘기)라고 할 수 있을까? 역사학을 너무 모르는 게 혹시 그 조건일 수도 있을까? (행여나?) 좀 반성해 볼 일이다. 결혼기(結婚記) (4) http://blog.paran.com/jazzman/2042609 PC 통신이란 신통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실제로 그것을 사용하게 된 것도 어느 새 3년이 다 되어간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인데, 경력이랄 것도 없는 필자의 통신 경력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아내인 Y와의 메일 주고받기와 채팅이다. Y와 통신상에서 만난 것은 물론 아니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는 필자 역시 PC 통신이란 게 있다던데, 하는 수준일 뿐이었다. 그녀를 만난지 얼마 안되어 필자가 가지고 있던 거의 사망 직전의 AT 컴퓨터를 필자의 친구에게 거저 넘기고 486 DX, 4 MB RAM, 120 MB 하드 디스크 등, 92년 당시로서는 비교적 쓸만한 사양의 컴퓨터를 큰 맘 먹고 장만하였다. 멀티미디어 컴퓨터는 당연히 아니었고, 당시에는 별 필요성을 못 느꼈지만 2400 BPS의 모뎀이 달려 있었다. 그 전에 가지고 있던 AT 컴퓨터에 대해 잠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89년도, 그 전까지 완벽한 컴맹이었던 필자는 XT를 하나 사려다가 매니아였던 한 친구의 유혹(?)에 넘어가 정말로 큰마음을 먹고 AT컴퓨터를 구입했는데 물경 20 MB의 어마어마한(?) 용량을 가진 하드 디스크에 드물게도 2 MB의 RAM이 달려 있는, 당시로서는 초보자의 분에 넘치는 호화판 사양의 컴퓨터였다. 당시에는 하드 디스크 없는 XT도 수두룩했고 10 MB 하드 디스크가 보통이었던 시절이었는데, 그게 불과 7년전이라니 참으로 세상 참 많이 바뀌었다는 말밖엔 할 말이 없다. 이 훌륭한 AT도 순식간에 고물, 아니 애물로 변해버렸고 (Windows(당시 최신 버젼 3.0)를 한번 띄우자면 3박 4일은 걸리리라. 물론 그러려는 생각도 안했지만.) 거의 컴맹에 가까운 필자의 친구가 팔라고 하는 것을 양심의 가책을 못 이겨 거저 줘버리고 말았다. 헌데 들고 가자 마자 거의 회복 불능의 고장이 나버리는 바람에 그 친구는 교통비도 못 건졌으니 오히려 필자가 미안할 일이다. 얘기가 옆으로 좀 샜는데, 하여튼 중요한 것은 새로 산 486에 2400 BPS 모뎀이 - 지금은 돌도끼 취급을 받겠지만 - 달려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모뎀을 고이 모셔두고 썩힌 것이 1년하고도 몇 달이 넘어서, 어느 날부터인가 PC 통신이란 게 있다던데, 한 번 해봐야 할텐데, 하는 강박 관념 비슷한 생각이 자꾸만 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이 사람 저 사람이 한 마디씩 하는 이야기들, 또 서점의 책꽂이에서 점점 더 넓은 폭을 차지해 가는 PC 통신에 대한 책들, 그런 것들이 필자의 호기심을 살살 긁은 탓이리라. 헌데 불행하게도 PC 통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을 해 줄만한 사람이 주위에 없었다. 그럴 듯한 책을 사서 읽어보고 하이텔에 가입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헌데, 그 때부터가 그야말로 고행 길의 시작이었다. 일단 모뎀이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놈의 'OK' 사인을 보려고 난생 처음 컴퓨터 케이스를 열어서 점퍼를 바꿔 끼어서 포트를 이리 저리 바꿔 보면서 날밤을 새웠는데 감감 무소식이었다. 하드웨어가 속 썩이는 것을 경험한 분이라면 이 열받는 심정을 이해하실 것이다. 팅팅 부은 눈으로 출근해서 멍한 하루를 보낸 필자는 집으로 오자 마자 다시 컴퓨터에 달라붙었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제까지 돌부처처럼 묵묵 부답이던 모뎀이 'OK!' 하고 미소를 보내는 것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하이텔에 접속하여 신규 등록을 하였다. 무슨 생각으로 ID를 jazzman으로 했는지 사실 잘 모르겠는데, 괜찮은 ID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조금 후의 얘기지만, 채팅 방에 들어가기만 하면 사람 들이 거의 무조건 한마디씩 물어보는 것이 "째즈를 좋아하시나 보죠?" 하는 것이었는데, 수도 없이 똑같은 말을 많이 듣다 보니 대답하기도 너무 지겨워서 이 질문에 대답하는 혼잣말(script)이라도 짜둘까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흥분이 아직도 채 가라앉지 않은 다음 날, 필자는 다시 접속하려 하였다. (신규 가입 처리가 아직 되지 않았을 것이 뻔하지만) 헌데 이게 웬일인가. 모뎀이 또 말을 안 듣는 것이다. 또 케이스를 괜히 열었다 닫았다, 전원을 켰다 껐다 난리를 치며 밤을 지새웠으나 헛수고였다. 다음 날, 눈이 더욱 팅팅 부은 상태로 컴퓨터를 키자 이번에는 또 OK. 이해할 수 없는 모뎀의 변덕으로 짜증으로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 되어서 컴퓨터 구입처에 문의하자 모뎀이 고장일 것 같단다. (윽.. 진작 전화할 껄!) 새 모뎀 (역시 2400 BPS)를 달자 멋지게 연결이 된다. 십 년 묵은 체증이 풀리는 기분. 이제는 남부럽지 않게 사이버 스페이스를 누비는 일만이 남아있다.. 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고, 고생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그러는 사이, Y와 나는 약혼을 하게 되었는데, 불행히도 약혼한지 한 달 만에 서로 떨어지게 되었다. 그것도 이만저만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어서 정확하게 지구의 반대편까지는 아니더라도 비행기 타고 열 몇 시간은 족히 가야만 하는 거리였다. 국제 전화 값 때문에 파산할 것이냐 일주일은 족히 걸릴 편지나 보내고 있을 것이냐의 기로에서 한 가지 대안으로 팩스를 사용하기로 했다. 그녀에게는 낡은 팩스 기계가 있었고 나는 팩스모뎀을 사기로 하였다. 14400 BPS라는 경이로운 속도를 자랑하는 팩스 모뎀을 사니 PC 통신에서 파일 전송 받는 것이 그렇 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헌데, 팩스를 보내는 과정에서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그녀에게 보내는 연애 편지가 한 페이지만 들어가고 똑 끊겨 버리는 것이다.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아서 두 페이지나 보내냐고 그럴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글쓰는 것 보면 말이 좀 많은 사람 같아 보이지 않으세요?) 짜증 나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해결책을 찾아서 기약 없는 방황이 시작되었다. 소프트웨어의 문제인가 하여 각종 팩스 프로그램들을 다 섭렵하였고, 여기저기에 팩스를 보내서 시험을 해 보았다. 그리하여 상당한 액수의 국제 전화 요금 고지서를 받고, 거의 탈진할 지경에 이르러 겨우 결론을 내렸는데, Y의 팩스기계가 느려서 보내는 대로 받지 못한다는, 참으로 맥빠지는 결론이었다. 필자는 열 받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연락을 좀 하고 싶다는데, 왜 이렇게 돈은 돈대로 들면서 걸리적거리는 게 많고 힘들단 말인가! 그래서, 인터넷이란 게 있다던데, 시내 전화 요금으로 메일도 보내고 채팅도 한다던데, 어떻게 좀 해 봐야 할텐데, 하면서 똥마려운 사람 화장실 찾듯 방법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인터넷과 하이텔 같은 통신망이 뭐가 다른 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출발하여 (당시 게시판에 보면 '인터넷이 뭔가요? 인터넷에 가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와 같은 원시적인(?) 질문을 흔히 볼 수 있었는데 바로 그 수준이었다.) 한참의 연구 결과, 마침내 최상의 (최상이라고 추정되는) 방법을 찾았는데, 대학생인 처남(될 사람)의 이름으로 account를 얻어 쓰는 방법 이었다. 처남을 들들 볶아서 account를 열고 최초로 dial-up 했을 때의 짜릿함도 잠깐, 무심하게 떠 있는 Unix prompt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나 자신을 곧 발견했다. 이게 인터넷이야? 이제 어떻게 하는 거지? 가공할 접속난과 (나중에 듣자 하니 당시 그 학교의 dial-up 회선은 20개에 불과했었다고 한다.) 느린 속도, 생소한 Unix 환경에 시달리고, 어떻게 하면 한글을 써서 채팅을 할 것인가 하는 난제를 해결해야하는 등, 수많은 난관이 남아 있었다. 한참의 시행착오 끝에 한글 채팅은 한글을 지원하는 BBS에서 만나서 채팅하는 것으로 해결이 되었다. 지구 저편에 떨어져 있는 사랑하는 이와 인터넷에서 만나는 감동이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란 짐작할 수가 없을 것이다. 견우 직녀가 오작교에서 만나듯 어렵게 어렵게 얻은 수확이었다. 문제는 심심지 않게 이 '까치'와 '까마귀'들이 말을 안 들어서 한글 BBS에 접속이 잘 안되기도 하고 중간에 '얼어'버린다든지, 접속이 끊기는 일이 심심지 않게 생긴다는 것이었다. 자칫하면 서로 길이 엇갈려 여기 저기 한글 BBS들 사이를 방황하며 애타게 서로를 찾는 지경이 되기도 하였다. (엉엉.. Y야, 어디 있는 겨..) 한글로 메일을 어찌 보낼 것인지를 몰라 한동안 콩글리쉬로 편지를 보내다가, ftp로 접속해서 보내다가, 별 짓을 다했는데, 불타는 학구열(?)로 연구를 한 끝에 uuencode를 이용해서 binary file을 변환해서 메일로 보내고 받는 사람은 uudecode로 풀어서 보는 방법이 가장 유용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헌데 조금 긴 편지를 보내려니 문제가 심각하였다. 필자의 account가 있는 호스트에서는 kermit외에는 기본적으로 지원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Kermit라고 하는 것이, 시험삼아 써보면 당장에 알겠지만 64 byte 씩인가 뭉기적 뭉기적 하면서 세월아 네월아 하고 눈꼽만큼씩 전송하는 프로토콜로서 성질 급한 사람 홧병 도지게 만드는 애물단지인 것이다. 뭔 수를 써서 Zmodem을 써야만 하것는디.. (Winsock 사용이 일상적으로 되어 버린 지금으로서는 좀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일이다.) Unix란 필자와 같은 어벙한 사용자를 위한 OS는 결코 아니어서, 프로그램을 하나 깔자면 도스나 윈도우즈처럼 'setup', 'install'만 치고 나서 하라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의 소스를 가져다 놓고 직접 C compiler로 compile을 해야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시스템에 대한 호환성을 보장할 수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입까지 떠서 넣어줘야 받아 먹을 동 말 동 하는 필자 같은 얼치기 사용자로서는 소스를 구하는 일에서부터 콤파일, 설치까지 손수 해야 한다니 참으로 환장할 노릇이었다. 이미 콤파일되어 있는 실행 파일을 가져다 놓고 실행하려 했지만 전혀 되지 않았다. 소스를 구해다가 현 시스템에 맞는 옵션을 주고 콤파일을 해야 한다. Archie로 찾으니까 소스는 인터넷 산지 사방에 잔뜩 깔려 있었다. 소스를 가져다 놓고 보니 옵션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에잇, 아무렇게나 해 보자. 이럴 땐 무식해지는 길밖에. 대충 해 가지고.. 엔터. 그러자, 그로부터 수십초 동안은 화면에서는 어지러이 난무하는 와글와글하는 에러 메시지들의 불꽃놀이가 벌어졌다. 그러고 나니 무슨 파일들이 잔뜩 생기긴 생겼는데 아무 것도 되는 것이 없었다. 각종 옵션을 시도해 가며 스크롤하는 에러 메시지 (물론 그 내용은 전혀 알 수 없는)와의 전쟁을 벌인 끝에 결국 Zmodem을 인스톨하는데 성공하였다. 어쩌다가 됐는지는 도대체 모르겠지만 아무튼 감격의 순간이었다. 그리하여 필자가 군대 가기 전까지 Y와 많은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만족스런 interneting을 즐겼다. Y는 사실 '넷맹'이었는데 결코 남을 가르칠 만큼 유능하지는 못한 필자에게서 배운 유일한 '제자'이다. (그 '제자'에게 또 제자 - 그것도 이과 계열의 - 가 있다는 놀라운 사실!) 이 유능한 제자는 국내 PC 통신망은 한 번도 접해 본 적 없이 Internet을 먼저 사용하게 된, 좀 보기 드문 사람이다. 좀 팔불출리스틱(?)한 발언이라고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Y는 컴퓨터 다루는데 특별히 재능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도 꽤 영특한 제자였는데, 나중에 하는 얘기로는 '골은 아프지만 애정의 힘으로 극복'했단다. 생각해보니 Y와 떨어져 있어서 인터넷으로 e-mail을 보내야만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들 필자는 아마 지금 온 신문에서 떠드는 인터넷이 과연 뭔가, 저거 꼭 해야 되나, 그런 불안감에 아직도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그 '애정의 힘'이 크긴 큰가보다. 결혼한 후에 같이 사는 동안은 인터넷이란 것을 잊고 살았다. 그러다가 Y가 다시 영국에 가게 되자, 죽으나 사나 인터넷에 또 목매달아야 할 형편이 되었는데, 필자가 인터넷을 떠나 있던 동안 (당연한 얘기지만, 인터넷은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간다.) 인터넷에는 난리 법석이 일어나서, WWW 선풍이 불고 있었다. 다시 인터넷을 쓰려니 거의 환상적인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남들 다 하는 멋진 것 좀 해보겠다고 각종 에러 메시지의 악몽에 시달리며 또 며칠 고생 고생했다. 세상 일 거저 되는 게 없다더니 정말이다. 하지만, 지금도 인터넷에서 필자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그저 메일과 채팅이다. 인터넷에서만 놀던(?) Y도 국내 통신에 입문하여 하이텔에 ID를 만들고 하이텔이 인바운드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는 덕분에 인터넷 한글 BBS들을 찾아 헤매는 일은 이제 별로 없게 되었다. 하도 새로운 것들이 자꾸 자꾸 나오는 세상이라, 어디서 생소한 낱말이 튀어나오면 '저건 또 뭐야, 저것도 배워야 하는 건가?'하는 불안감이 엄습하게 된다. 컴퓨터에서, 특히나 사이버 스페이스에서는 무엇 하나 새로운 것 해 보자고 하면 그저 쉽게 척 되는 일이 없고, 특별히 옆에서 손잡고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는 이상, 잘 안되어도 무엇 때문에 안 되는 지도 모르면서 막무가내로 이렇게 해봤다 저렇게 해봤다 하면서, 컴퓨터를 왕창 때려부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지는, 답답하고 열받는 불면의 밤을 보내야만 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느낀 필자는 그저 한숨이 나올 뿐이다. 이제 새로운 것 좀 그만 만들어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는 '애정의 힘'으로 어찌 어찌 버텨 왔는데, 이제는 머리도 좀 석회화(?)되는 것 같고.. 그래도 어쩌겠는가. 먹고살려면 기를 쓰고 또 새로운 걸 배워야지. 하여튼 요사이는 평화스럽게 Y와 채팅을 즐기는 것이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낙이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께서 혹시나 어느 날 필자가 하이텔의 한 구석에서 누군가와 깊숙이 잠수한 상태로 도대체 물위로 나올 생각을 안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신다면, Y와 채팅을 즐기고 있다고 추측하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부디 모른 척하고 지나가 주시어요. 왜냐고요? 신혼이니까.. 히히.. 저 좀 믿어주세요... 성지동 님의 발자국 1996-03-27 http://blog.paran.com/jazzman/2042613 한번 거짓말쟁이로 낙인찍힌 사람이 다시 사람들의 믿음을 얻기란 참으로 힘든 일이다. 헌데, 아무리 믿어달라고 애원해도 사람들이 영 믿어주지 않는 집단이 하나 있다. 그것이 다름 아닌 의사라는 사실은 참으로 기가 찰 일이다. 게다가 나 자신이 바로 그 의사라는 것을 문득 깨닫고 보면 협심증 비스무레한 증상이 생겨날 지경이다. 의사-환자 관계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약자와 선의의 관리자로서의 관계라기 보다는 대등한 계약 관계로 보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물론 의사와 환자가 대등한 입장에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환자의 권리 신장이란 면을 고려할 때 부정적이라 볼 수는 없으나 그러한 인식의 밑바탕에 의사에 대한 심한 불신감과 권위에 대한 거부감이 깔려 있다는 것은 큰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또한, 의사 개개인으로 볼 때에는 여전히 환자나 보호자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최근 의사 집단의 전체적인 이미지가 심하게 훼손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환자가 의사를 믿지 않는 상황에서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이러한 의사-환자 관계의 붕괴 현상은 의료 사고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최근 모 대학 병원에서의 한 환자의 죽음이 PC 통신상에서 시끌벅적한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데, 그 논란이란 것이 이성적인 토론과는 한참의 거리가 있을 뿐 아니라, 그 환자의 담당 의사를 비정한 살인마, 파렴치한으로 몰아가는, '죽여라, 죽여라'하는 섬뜩한 욕설이 난무하는 '인민재판'으로 순식간에 변하는 것을 보면서 여러 가지 느낌이 한번에 일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진실은 하늘만이 알겠지만, 여러 가지 알려진 상황을 통해 추측하건대는 무고한 의사가 (아니, 죄가 있다면 운이 지독히 없었다는 것뿐인) 무분별한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는 일방적 여론에 의해서 난자질 당하는 형편으로 보이고, 설사 잘못이 있었다고 한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한쪽의 말만 듣고 한 사람을 생매장하려 드는 행동들은 거의 마녀 사냥을 연상케 하는 광기마저 느끼게 하여 공포심까지 드는 지경이다. 하여간에 의사의 말은 좀처럼 믿으려 들지 않는 세상이다. 그런데 그런 의심 많은 사람들이 말도 안되는 사기꾼들에게는 홀랑홀랑 잘도 넘어가는 것은 또 웬일인가. 자칭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한 무면허 의료인이 구속되었을 때, 그가 만든 천지산인가 하는 약이 효과가 있다며 탄원서를 내면서 그의 석방을 요구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은 고위직 공무원이었다고 하는데, 자궁경부암을 앓고 있는 그의 부인이 이 약을 먹고 '항문 근처의 암덩어리가 녹아 내려서' 수술을 해서 인공 항문을 만들었다며 약이 효과가 있는 증거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는 자궁경부암이 진행함에 따라 나타나는 병의 자연 경과 아니겠는가? 아무래도 사람들이 '소설 동의보감'을 너무 열심히 읽었던 모양이다. (소설에서 허준이 위암을 치료하는데 환자가 덩어리 섞인 혈변을 본다.) 의사가 백 마디 하는 것은 의심하고, 누가 옆에서 '…카더라' 하고 한 마디 하면 대번 솔깃하는 것이 우리네 환자, 보호자들의 딱한 모습이다. 우리 나라 국민들이, 워낙에 믿지 못할 관제 언론을 빼고 나면 '…카더라 통신'이나 '유비 통신' 밖에는 옳은 정보를 얻을 데가 없었던, 억압 속의 어두운 시대를 너무 오래 겪었었기 때문일까? 심지어 필자의 가족도 필자를 알기를 우습게 안다. 헌데 그 심정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는 것이, 입안이 헐었다든지, 감기에 걸렸다든지, 괜스레 배가 좀 살살 아프다든지 하는 '사소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필자에게 문의를 하게 되는데, 백년 가야 도대체 신통한 답을 들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괜찮아요. 며칠 지나면 나아요!" 하는 뚱한 소리나 듣게 된다. "이게 왜 그러지?" 하는 질문에는, "글쎄, 원인을 잘 모르죠…." 라든지 "원인은 다양한데… 걱정할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이런 등등의 맥아리 없는 답변이 돌아오니 결국에는 "걔가 뭐 아니?"하는 말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헌데 이렇게 스타일 팍 구기고 사는 필자가 가족에게 의사로서의 위신(?)을 세운 적이 한두 번 있었는데 한 번은 느닷없이 아버지가 졸도하면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이고, 또 한 번은 조카가 역시 갑작스레 피를 토해 병원에 입원했을 때였다. 이런 제법 심각한 상황이 되자 모든 사람들이 불안한 눈초리로 내 입만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평소에 혈압이 높았던 아버지는 다행히 별 후유증 없이 퇴원하여서, 혈압을 스스로 측정하며 혈압 변동 추이를 그래프로 (그것도 총천연색의) 그려서 의사에게 보여주는, 참으로 보기 드물 정도의 '모범 환자'가 되었다. 조카가 병원에 입원하여 위궤양이 발견되면서 필자의 누나는 '악성 림프종의 가능성' 등과 같은 험악한 이야기를 듣고는 태산같은 걱정에 고실라질 지경이 되어서 병원에 찾아온 필자를 붙들고 하염없이 걱정을 하소연하였다. 다행히도 양성 위궤양으로 결론 내려지고, 호전되어 퇴원하게 된 후, '걔가 뭐 아니?'에서 '집안에 의사가 하나 있으니 든든하다.'는 분위기로 변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필자를 아무리 우습게 알아도 좋으니 앞으로 모두들 건강했으면 한다.) 절박한 상황에서 (객관적으로 보아서 그러하든 아니든 간에 주관적으로 느끼기에) 정말로 믿고 의지할 의사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크나큰 힘이 된다. 그리고 위의 경우에서 필자는 신뢰를 받을 '타고난'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가족도 믿지 못하면 그 누구를 믿으랴.) 의사가 환자에게 해 줄 수 있는 일 가운데서 그 어떤 치료나 약보다도 환자나 보호자의 약해진 마음에 큰 위안이 되는 것은 믿을 수 있는 의사가 환자를 지켜주고 있다는 것이다. 의사 집단이 믿지 못할 인간들로 여겨진다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건 간에 의사가 이러한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의사 개개인의 행태가 아니고 의사의 집단적 이미지이다.) 어찌 보면 가족 아니고서는 믿을 사람 없는 하나 없는 팍팍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그 와중에 의사도 예외는 아니라고 말 할 수도 있겠다. 어떤 경우에도, 설사 의료사고가 생긴 상황이라 할지라도 신뢰를 잃지 않는 의사가 되려면, 가족에 버금가는, 아니면 그 이상의 믿음을 주고받는 관계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참으로 어렵다. 사람들은 의사가 불성실하고, 불친절하며, 돈만 아는 속물일 뿐 아니라, 생명의 소중함을 망각했다고 입을 모아 욕한다. 하지만 우리는 (의사들은) 그것이 최소한도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믿고 있다. (또한 그렇게 믿고 싶다.) 우리 주변의 왜곡된 의료 현실이 선의의 의사들을 옥죄이고 잘못된 방향으로 몰아 붙이는 것을 보게 된다. 올바른 의료를 위해서 의료인 개개인의 반성과 분발은 물론 필요 조건이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의료 개혁은 '의료는 경영이다'라는 그럴 듯한 말로 포장된 위험천만스런 의료의 상품화도 아니고, '의료 전문주의'라고 잘못 인식될 수 도 있는 '밥그릇 싸움'을 일삼는 집단 이기주의도 아니다. 의사들이 오직 환자들을 위해 헌신하고 국민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집단이라는 표상을 세우기 전에는, 또 실제로 그렇게 되기 전에는, 그것이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없으리라. 그리하여 진정 국민의 건강을 위한 올바른 의료 활동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가려는 노력만이 의사들의 위신과 신뢰성을 회복시켜 줄 것이다. In illness the physician is a father; in convalescence, a friend; when health is restored, he is a guardian. 병들었을 때 의사는 아버지요, 회복기에는 친구이며, 건강을 회복하였을 때, 그는 수호자이다. - 브라만 격언 초보 딱지 떼어내다. 성지동 님의 발자국 1996-03-12 http://blog.paran.com/jazzman/2043158 어느 길을 보던지 자동차로 넘쳐나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자동차가 없는 시대에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상상하기 힘들 정도이다. 기억에 따르면 필자가 국민학교 (아니, 요즘은 초등학교이다.)시절만 해도 생활 기록부에 집안 형편을 적는데 생활 정도를 상중하로 구분할 때 기준으로 사용하는 것이 자가용이었다. 자가용이 있는 집은 '상'이었던 것은 기억이 틀림없고 확실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전화가 없는 집은 '하'였던 것 같다. (참고 삼아 이야기하면 필자가 국민학생이던 시절은 70년대였다.) 요사이 생활 기록부에는 어떤 기준으로 적는지 모르겠지만, 집은 없어도 자가용은 다들 끌고다니는 마당에 자가용이 있느냐 없느냐가 생활 수준 '상'의 기준이 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혹시 차종으로 따지는 것은 아닐까 모르겠다. 하여간에 너나 할 것 없이 자가용을 굴리는 마당에 필자는 참으로 굳세게 '큰 차'(버스, 지하철 등등..)만 타고 다니며 살았다. 아침마다 지하철에서 깜빡 조는 맛이 얼마나 기막힌 지 아는 분들은 다 아실 것이다. (물론 그러다가 내릴 역을 지나친 적도 수태 많았지만 말이다.) 그러더니 언젠가 한 번 주위를 둘러보니 필자는 굉장히 튀는 사람이 되어 있었는데 남들 안하는 짓을 하거나 없는 것을 가지고 있어서 튀는 것이 아니라, 남들 다 가지고 있는 것이 없는 탓이었다. 그것이 바로 운전 면허증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큰 차'를 애용했다. 사실 말이지 병원 레지던트의 생활이라는 것이 상당히 틀에 박힌 것이어서 집과 병원을 왕복하는 것 외에 돌아다닐 일이 많지 않은 법이라 (1년차 때에는 그것마저 별로 하지 않고 병원에서 마냥 살았지만)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데도 사람들은 자꾸 불편하지 않으냐, 차 한 대 사지 그러냐고 한 마디씩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얘기해 주는 사람에게 아직 운전 면허증도 없노라고, 그리고 당장에 면허증을 딸 계획도 없노라고 얘기해 주면 나는 확실하게 원시인 취급을 받게 되곤 했다. 물론 차를 생계의 수단으로 삼는 사람도 적지 않지만 필자처럼 차 없어도 벌어먹고 사는 데는 하등의 지장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단지 조금 더 편하려 한다는 이유 밖에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편하면 얼마나 더 편하랴, 지금도 안 불편한데, 하는 생각, 또 거기에 필자의 타고난 특기인 게으름 부리기와 미적미적 어영부영 세월 보내기 탓에 열심히 대중 교통과 두 다리만 이용하면서 서울시 교통난 해소에 지속적인 기여를 해가며 레지던트 시절을 보내었다. (물론 더 근본적인 이유로는 차 살 돈이 없었다는 것도 있다.) 헌데, 필자에게도 한가로운 시절이 왔다. 시간이 남는다는 것을 걱정해 본 적이 없던 필자에게도 있는 건 시간 밖에 없는 희안한 때가 온 것이다. 차가 없다는 것이 확실히 출퇴근하는데는 특별히 아쉬울 것이 없어도 놀러 다닐 때 만큼은 아쉽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남들이 다 하는' 운전 면허를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슬그머니 들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대망의 꿈을 안고 운전면허 시험장에 가서 원서 접수를 시켰다. 거기서 어떤 아저씨를 보니 원서의 몰골이 가관인데 너덜너덜하니 떨어지기 직전인데 인지를 붙힐대로 다 붙혀서 더 이상 자리가 없어 뒷면에까지 빼꼭하게 인지로 도배를 해 놓은 형상이었다. 혹시 나의 장래의 모습은 아닐까 하는 불길한 생각이 스쳐갔지만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필기 시험을 우수한(!) 성적으로 무난히 통과하였다. 이게 자랑할 일인지는 무척 의심스럽긴 하지만 필기 시험에서도 추풍 낙엽처럼 떨어지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쩐지 희망이 샘솟는 듯 했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인가 보다. 심뽀도 못됐지.) 그 뿐이 아니다. 꺼리도 못 되는 것 가지고 너무 자화자찬하는 것 같아 창피스럽기는 하지만 기능 시험마저 한 번에 붙어 버리고 만 것이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같이 별 뾰족한 운동 신경 없는 사람도 다 붙는 시험이니 전국의 운전 면허 시험 재수생 (혹은 그 이상)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냥 해보는 소리다. 하지만, 운전 면허를 땄다는 것과 실제로 거리에서 차를 몬다고 하는 것이 전혀 별개의 일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약간의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마이 카'를 마련한 나는 떨리는 가슴을 안고 뒷 유리창에는 큼지막하게 초보 운전 딱지를 붙히고 거리로 나서게 되었다. 사실 필자는 소시적부터 별로 걱정을 안하는 성격이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그날 해 가야 할 숙제를 안 한것을 발견했을 때, 필자는 울고 불고 난리를 치는 '안달'형이라기 보다는 그냥 가서 손바닥 몇 대 맞고 말지 하는 '천하태평'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이 되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처음으로 차를 몰고 출근하기 전날, (실은 이날은 필자가 신혼 여행에서 돌아와 처음으로 출근하는 날이기도 했다.) 베란다에서 멍청하게 차를 쳐다보며 '내일, 저놈의 걸 어떻게 몰고 가나!' 하는 생각이 들어 흐유~하고 한숨을 쉬어야 했다. 드디어 아침이 밝았고, 나는 전쟁터에 나가기라도 하는 듯한 모양 새로 차에 올라탔다. 나갈 일이 있었던 나의 아내인 Y가 아파트 입구까지만 태워달라고 해서 옆에 태운 채로 출발했다. 왕초보가 운전하는 차를 탄다는게 쉬운 일은 아닐텐데 '죽어도 같이 죽지 뭐!' 하고 배시시 웃는다. (간 큰 여자? 애정의 표현?) 참고 삼아 얘기하자면 Y는 운전 면허가 없을 뿐 아니라 자동차에 대해서는 가히 일자 무식이다. 한번은 그녀가 여러 사람들과 술자리를 같이하고 있었는데 차를 운전하고 온 사람이 자기 술 먹을테니 Y더러 운전하라고 농담을 하길래 그녀는 운전 면허는 없지만 뭐 어려울 꺼 있겠냐고, 악셀 밟으면 가고 브레이크 밟으면 서고, 하면서 농담으로 받았단다. 헌데 그러고서 그녀가 덧붙힌 한마디에 모두 나가 자빠졌는데, "근데 브레이크가 오른쪽에 있고 악셀이 왼쪽에 있는 거 맞나요?" 했단다. 혼자 짐작에 브레이크는 중요하니까 오른 발로 밟아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사람들은 경악을 하면서 차라리 음주 운전을 하는게 낫겠으니 운전대 근처에 가지 말라고 했단다. 점입가경이라고,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나오자 Y는 속으로 '아하, 악셀이 오른 쪽이고 브레이크가 왼쪽인 모양이구나.' 했단다. (껄껄껄 ….) 그녀는 나중에 필자에게 그 얘기를 해 주면서 도대체 오른발로 브레이크와 악셀을 밟고 왼발로 클러치를 밟는다는 것을 그 어디에서 배운 적도, 누가 알려준 적도 없는데 어떻게 아느냐고 항변하기도 했다. (또 한가지 덧붙힌다면 클러치라는게 있다는 것, 그래서 자동차 페달이 세개라는 걸 나한테 들어서 처음 알았다고 한다. "페달이 두 갠 지 세 갠 지 어떻게 알아? 남의 발밑을 그렇게 열심히 들여다 볼 수도 없고!" 뭐, 하긴 자동 변속기도 많으니까, 두개건 세개건 무슨 상관이냐.) 하여간에 생초보가 운전하는 차를 서슴없이 같이 타는 그녀의 용감함은 최소한 부분적으로는 그녀의 자동차에 대한 '무개념'에 기인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나머지는 애정과 신뢰의 표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필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완전한 산꼭대기에 있어서 경사가 급하고 좁은 길을 꼬불꼬불 내려가야만 한다. 그야말로 왕초보인 필자는 핸들을 꽉 부여잡고 벌벌 떨면서 언덕길을 기어 내려가고 있는데 급커브를 만나서 모통이를 돌자마자 올라오던 차와 코앞에 맞닥뜨렸다. 바짝 긴장한 채 핸들을 잡고 있던 필자는 브레이크 밟을 생각도 못한 채 오른쪽으로 핸들을 확 돌렸다. 그러자 갑자기 '쿵!'하는 소리가 나면서 차가 오른쪽으로 기우뚱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곤 차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변괴란 말인고? 차 밖으로 나와보니 (나중에 Y에게 말을 들어보니 이 때의 얼굴이 백지장이었다고 한다.) 길 오른편에 있는 도랑에 앞바퀴가 쳐박혀 있었다. 마주 오던 차의 운전자도 같이 내려서 참으로 황당한 얼굴로, 하지만 '이거 내 잘못 아냐!'하는 얼굴로 기우뚱 해진 내 차와 기절하기 일보직전인 내 얼굴을 번갈아 바라 보았고, 출근 시간이라 지나는 사람이 많아 모두 다 한번씩 쳐다보고 끌끌 혀를 차고 지나 가는데, 꽤나 딱해 보였는지 그래도 어떻게 해보겠다고 몇 사람이 모여 들었다. 차를 꺼내 보려 했지만 내리막길에서 앞바퀴가 빠진데다 전륜구동이니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다행히도 필자의 직장에는 차가 여러 대 있어 이를 관리하는 차량 전문가가 있었다. (참 좋은 직장 아닙니까? '군대'라고 아시나 모르겠습니다만….) 누군가 부대에 연락을 해서 사람들이 꺼내러 오게 해 주겠다고 한다. 사람들은 각기 출근길을 서둘렀고 (출근해야 하는 Y도 마찬가지이다. 그 지경이 된 걸 뒤로하고 가려니 얼마나 걱정이 되었을까?) 나는 도랑에 바퀴를 쳐박고서 비뚜름하게 기울어 있는 주인 잘못 만난 불쌍한 내 차 옆에서 망연자실한 상태로 도와줄 사람이 오기를 기다렸다. 머리 속으로는 만감이 교차하였다. '이 바보 멍충아! 거기서 그렇게 핸들을 확 돌리면 어쩌냐!' 하는 단말마적인, 지금 이 마당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자책에, '운전한다는 게 이다지도 어렵나!'하는 한탄에, '신혼여행 갔다 와서 첫 출근에 이런 꼴을 당하다니… 흑흑….' 등등의 서글픈 생각마저 들어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와중에 드디어 구세주가 나타났다. 도랑에 빠진 바퀴 밑에 모래 주머니를 고이고, 케이블을 연결하여 차로 끌고, 한동안 실랑이를 벌인 끝에 드디어 차를 꺼내었다. "차 몰고 가시겠어요?" 사람들이 조금은 걱정스런 얼굴로 물어 보았다. 에라, 이 마당에 내가 무엇이 겁나랴, 가자, 가. 어떻게 부대까지 차를 몰고 왔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 뒤로 한동안은 피곤한 나날을 보내었다. 퇴근 시간이 가까와 오면 창가에서 차를 멍청히 바라보면서, '저 애물단지, 오늘은 또 어떻게 몰고가나…?'하고 고민하는 버릇이 생겼다. 아침 저녁으로 주차할 때마다 앞뒤로 고루고루 담벼락에 콩콩 들이 받는 통에 소소한 흠집이 수도 없이 생겼다. 사람들은 새 차에 흠나면 그렇게 속이 상한다던데, 필자는 처음에 하도 얼을 빼놔서 그런지, 그래서 마음을 완전히 비워서 그런지 그렇게 아까운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남의 차 들이박지 않는 것만도 기적이라고 생각하며 그날 그날을 넘겼다. 인간의 적응력이란 참 대단한 것이다. 이 세상에 남극에도 살고 적도에도 사는 동물이 어드메 있단 말인가. 한 달쯤 지나면서 우선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하는 것이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게 느껴지고 오후만 되면 '오늘 어떻게 퇴근하나?'하고 걱정하는 일도 없어졌다. 밤에도 한 번 나가보고, 이곳 저곳 조금씩 다녀보니 공포심은 조금 덜해지는 듯 했다. 그러자 겨우 주위가 보이기 시작했다. 생초보 때는 바로 눈 앞에 밖에 안 보이고 남들이 어떻게 다니는지 볼 생각도 없었고 보이지도 않던 것이 조금씩 다른 차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참 희안한 일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에 나와 있는 운전자들 중 열에 여덟은 아마츄어 카 레이서들이었다. 신호를 기다리면 신호가 떨어지기 한참 전부터 부릉부릉하고 움찔움찔 앞으로 나가는 모양이라든가, 신호가 떨어졌을 때 1초만 출발을 늦게 하면 뒤에서 당장에 빵빵거리며 난리가 난다는 것이라든가, 초보 딱지를 붙힌 채 벌벌 기어가는 나를 좌우에서 쌩쌩 앞질러서 앞으로 휙 끼어드는 모양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다 그러하였다. 백미러를 들여다 보면 (왕초보로서는 백미러라는 걸 들여다 볼 생각이 난다는 것 자체가 참 대견스러운 일이다.) 내 뒤에서 좌우로 왔다갔다하면서 앞지르고 싶어서 답답해 미치겠다는 표정의 운전자를 보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었다. 때론 빵빵거리고, 심지어는 라이트를 번쩍러렸다. (라이트를 번쩍 거리는 건 상대방에게 눈을 부라리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행동인데 초보 딱지를 뻔히 보면서 그런 행동을 하는 심뽀를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앞질러 가는 건 좋은데 제발 내 앞으로 휙 끼어드는 일은 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고 보니 주위의 사람들도 참으로 신기한 이야기들만 하였다. 어떤 사람은 자기는 자기 차 앞에 '절대로' 다른 차를 안 끼워 준다면서 그게 마치 자기가 운전 잘 한다는 얘기인 양 하고, '잘못 양보해 주다가 사고가 난다'고 한마디 더 하기까지 한다. 그럴 정도 운전 실력이면 왜 사고 안 나게 '잘' 양보해 주면 안 되는 것인지 이해가 잘 안 가지만 말이다. 앞 차가 그 앞에 두 대만 딴 차를 끼워주면 열받아서 기필코 그 차를 추월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사람도 있고, 좌회전 신호가 떨어졌는데 앞 차가 미적거리고 있으면 경고등을 껌벅이며 중앙선을 넘어 확 내달아서 앞에 끼어드는 사람도 있다. 얌전히 서서 다음 신호를 기다리는 필자가 병신인 것 같은 느낌이다. 차선 바꿀 때 깜빡이는 절대 켜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다. 실은 공감(?)이 가는 이야기인데, 깜빡이를 켜서 차선을 바꾸겠다는 것을 옆 차선 뒷차에 알려 주면 속도를 늦춰서 순순히 끼워주기는 커녕,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는 듯이 악셀을 확 밟고 앞으로 나오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적에게 아군의 작전을 노출 시키지 않아야'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서 필자 같은 초보에게 차선 바꾸기는 엄청난 스트레스인 것이다. 하여간에 전반적인 거리의 분위기는 '병신같이 운전도 못하는 초보는 다 죽어야' 하든지, 아니면 운전하지 말고 곱게 집에서 방구들 신세나 져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어느 날 밤의 일이었다. 좀 한적한 길에서 차를 몰고 가던 나는 왼쪽 차선에 있는 차가 굉장히 멀리 뒤로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고 깜빡이를 켜고 차선을 바꾸었다. 헌데 이게 웬일인가, 어느 샌가 바짝 뒤에 다가선 그 차가 빠~앙!하는 소리와 헤드라이트를 마구 껌벅이는게 아닌가. 밤이라서 거리 감각이 둔해서 잘 몰랐던지, 아니면 그 차가 엄청 빠른 속도로 달려 오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도 뒷 차가 난리를 치는 통에 얼이 빠져서 손 들어서 미안하단 표시 할 생각도 못하고 있는데, 이 차가 나를 휙 앞지르더니 앞으로 확 끼어들어오면서 급브레이크를 밟는 것이 아닌가. 황급히 나도 브레이크를 밟은 덕에 가까스로 충돌을 모면하였지만 그 차는 잠시 멈칫 거리더니 휙 가버렸다. 정말 교양있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교양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필자이다. 그런데 이 순간만큼은 개xx로 시작해서 x팔놈으로 끝나는 육두문자를 닥치는대로 뱉어내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그 때 옆에 타고 있던 Y가 말리지 않았으면 아마 족히 한시간 동안은 욕을 했을른지도 모르겠다. 간신히 분을 가라 앉히고 집에 와서 다시 생각해 보니 더 화가 났다. 내가 뒤를 잘 못보고 무리하게 끼어든 것은 잘못이긴 하지만 엄연히 깜빡이를 미리 켜고 들어간 것인데 저도 속력을 좀 늦춰 줘야 마땅하지, 그렇다고 빵빵거리고 헤드라이트를 부라리는 것만도 매너 황인데 게다가 앞으로 들어와 급브레이크를 밟는 것은 고의로 나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행동이 아닌가! 게다가 내가 뒤에 초보 딱지를 붙히고 있으니 얕잡아보고 그런 못된 행동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분해서 잠이 안 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화 내서 무엇하랴. 정신 건강에 해로울 뿐이고 가뜩이나 머리 숱 없는 머리에 아까운 머리카락만 축낼 뿐이다. 이 사회에 경쟁이 있다는 사실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경쟁이란 것이 힘 없는 사람, 건드려도 뒤탈 없을 사람은 무자비하게 밟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남을 밟아야만 자기가 잘 된다는 생각이 얼마나 일상적으로 마음에 박혀 있으면 경쟁이란 것이 전혀 무의미한 (게다가 때로는 위험 천만인) 운전할 때까지 그렇게 사람들이 미쳐 날뛰게 되는가. 초보 딱지를 붙이고 있는 사람에게 길을 양보하는 사람은 열에 한두명 꼴이다. 필자는 결국 초보 딱지를 떼버리기로 했다. 이것도 위법인지는 모르겠지만 약자의 입장에서 볼 때 법이 약자를 보호하지 못하는데 그 법을 지켜야만 하는가? 오히려 나의 약점만 '적들에게' 노출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어쩌란 말인가. 씁쓸함을 느끼며 붙여 놓았던 초보 딱지를 떼면서 요즘 세상 참 살기 힘들다는 맥아리 없는 생각을 한번 해 보았다. 추억의 책가방 http://blog.paran.com/jazzman/2042577 *Webzine 'Impulse'(http://impulse.medigate.net)에 실린 컬럼입니다. 2000. 12. 3. 최근 의약분업을 둘러싼 사태들은 정말 그 현장이 아닌 이국만리에서 지켜만 보기에도 힘들 다. 그 와중에서 고생하는 동료들이 있는데 미국에 앉아서 입만 나불거릴 면목은 없긴 하지 만, 이제는 인터넷 게시판을 읽고 따라가면서 사태 파악을 하는 것도 지칠 지경이다. 필자는 이 컬럼을 써오면서 처음서부터 계속 '뭔가 주장하는' 글로 일관했는데, 이번만큼은 (아니면 앞으로도?) 그냥 생각나는 대로 옛날 얘기(?)나 해볼까 한다. 실화에다가 약간의 '뻥'을 섞어 서 할 예정이니 그런 줄 아시길. 필자는 과거 소위 '명문'이라고 하던 고등학교에 평준화 이후 '뺑뺑이'로 들어갔었다. 학교는 어찌 보면 질서, 전통, 규칙이니 하는 것에 대한 체질적 반감을 조성하는 체계적인 과정이라 고 필자는 생각한다. 두발 자율화가 되기 전까지 필자는 항상 교문에서 바리깡을 들고 머리 긴 놈 잡아서 머리에 '고속도로'를 내버리던 '깡패' 선생님을 기억한다. (별명이었다. 이분, 빼짝마른 체격에 턱이 사각형으로 옆으로 불거져 나와 있어 뒤에서 보면 이 '아가미'가 목 옆으로 보일 정도였는데 관상학적으로 이런 사람과 싸우면 절대 못 이긴다나 어쩐다나. 아주 죄송스런 말씀이지만 정말 깡패처럼 생겼었다.) 이 양반이 모교를 졸업한 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학교 교육이란 것이 체제에 대한 반감을 불러일으키지만 결국에는 그에 조용히 순 응하거나 또는 한발 더 나아가서 그것을 이용하던지 또는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사람을 만들 게 되는 것이 아닌지. 바지 주머니를 꿰메버리고는 이게 전통이라고, 주머니에 손 넣으면 자세 안 좋아진다고 했 었다. 흐유... 그 탓인지는 몰라도 지금 필자는 괜히 주머니에 손 집어넣고 어깨 구부리고 터덜터덜 발을 끌면서 걷는 경우가 많다. 고등학교 때 그런 폼으로 교문 들어서면 당장 걸려 서 몇 대 얻어맞았겠지. 헌데 그렇게 피지 말라는 담배를 어떻게 용케 안 피우고 넘어갔는 지는 잘 모르겠다. 환자들에게 지겹도록 담배 끊으라고 얘기를 해야 할 내과 의사가 된 지금으로서는 정말 다행스런 일이다. 고등학교 때 옆자리 짝은 아주 착한 녀석이었는데, 뭐 그 착하다는 게 모범생이었다고 하는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긴 하지만, 아무튼 마음씨 좋은 녀석이었다. 육상부였고, 쌈도 잘하 고, 물론 공부는 영 아니올시다고, 말할 때는 어두, 어미에 씨X, X같이 등등이 있어야 대화가 진행이 되는 친구였다. 필자와 같은 얼굴 창백하고 도수 높은 안경 끼고 공부 밖에 모르 는 얌전한 '범탱이' 부반장하고는 참 잘 어울리는(?) 짝이었다. (뭐 반장 부반장이라고 반드 시 모범생이라는 법 없다. 껄렁하거나 뒤로 호박씨까는 반장, 부반장도 없지 않았다.) 서로 무지무지하게 달랐지만 그것 때문에 서로 '존경'(?)했다고나 할까. 책을 펴고 5분을 견 디지 못하는 그 친구에게는 수학 문제를 척척 풀고, 어려운 영어 단어를 외워내는 내가 거 의 경이에 가까운 존재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가 존경스러운 존재이기는 내 쪽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주로 나에게 들려주는 흥미진진(?)한 '그쪽 세계'의 얘기 때문이었다. 옆 동네 양아치 놈과 '원터치를 쪼갰'는데 (일대일로 싸웠다는 뜻인데, 아무튼 이게 걔가 당 시 사용했던 '전문 용어'였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박살을 냈다는 둥, 패싸움이 벌어졌는데 어떻게 활약을 했다는 둥 하는 비교적 '일상적'인 얘기에서부터 어제 친구 놈들 몇 명이랑 여자 애 하나 꼬셔(?)가지고 '돌림빵'을 했는데 술에 하도 꼴아가지고 XX가 안 서서 고생했다느니 하는 엽기적인 얘기에 이르기까지 참 다양하기도했다. ('단순 엽기'를 넘어서는 것 같은데, '피해자' 쪽 생각을 하면 그냥 웃을 얘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음냐... 이 런 얘기해도 되나 몰러...?) 재미있는 친구 놈들 많았다. 한 친구는 (내 앞 자리에 앉았던 친구) 뭐랄까, '날라리'라고 할 까, 하여튼 노는 거 정말 좋아하는 놈이었는데, 물론 얼굴 잘 생겼고, 머리도 잘 돌아가고, 웃기는 얘기도 잘 하고, 물에 빠지면 입만 동동 뜰 것 같이 말발 끝내주고, 그런데 공부는 물론 취미가 별로 없고, 여자애들 후리고 다니는 게 거의 인생의 목표인 거 같은 놈이었다. 헌데, 어째서 이런 날라리 녀석 네 집은 꼭 엄하고 꽉 막힌 집인지 모르겠다. 여자애들이랑 사귀고 놀러 다니는 것에 대해 집에서는 물론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어떻게 잡아 앉혀 서 공부를 시켜볼까 하고 닥달을 하고 조이는 모양이었다. '머리 좋은 녀석이 노력을 안해!'라면서 말이다. 그 친구 물론 머리는 나쁘지 않았겠지만 공부에 취미가 없는 걸 어쩌랴. 아니, 공부 말고 다른 재미난 일들이 너무 많으니 어쩌겠는가. 녀석이 얼마나 답답했으면 하 루는 뜬금없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야, 지동아, 너 글 잘 쓰지?" "...?" "우리 엄니, 아부지한테, 이성 교제 좀 해도 괜찮은 거라고 편지 좀 써 주라." 필자는 소시적부터 '한 글발' 하는 놈으로 자타가 공인해온 터라 (아, 쪽팔린다! 고마해! -_-;;) 이런 웃기는 짓까지 하게 되었다. 필자가 군의관으로 군대 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고참병 연애편지 - 필자의 전문분야(?)는 아니지만 - 대필도 했을지 모르겠다. 내용이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이성교제를 무조건 하지 말란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건전한' 이성교제라면 (건전한 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허락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거라는 둥, 그 러면 오히려 공부도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둥, 되는대로 끄적거려서 줬는데, 나중에 보니 불행히도 필자의 편지 그의 부모를 개화(?)하는 데에는 실패했는지 별로 도움은 안 되었던 모양이다. 대학 와서 보니 여자 친구와 잘 되고 있을 때는 공부도 멀쩡히 잘 하다가 뭔가 틀어지면 딴 일도 그냥 다 엉망이 되는 친구가 있긴 있더라만... 안정된 가정(?)이 역시 중요하지, 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필자의 뒤에 옆에 자리였던가 기억이 좀 가물가물한데 하여간에 가까이 앉았던 한 친구는 또 다른 종류의 '날라리'였는데, 그의 주특기는 기타 연주였다. 가을 축제 때 무대에 올라 연주하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이 나는데, 전기 기타를 신나게 튕기다가 갑자기 줄이 뚝 끊어지 자 황당한 표정으로 허둥지둥 하면서, 그래도 어찌 어찌 계속 기타를 쳐대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 친구 제법 혼이 났었는지, 몇 일 뒤에 아침에 느닷없이 하는 말, "어제 밤에 있 잖아, 베이스 치다가 줄이 끊어먹는 꿈 꿨어." (베이스 기타 줄 굵기에 대해 전혀 감이 없는 독자를 위한 註: 빨랫줄을 방불케 하는 굵기인 베이스 기타 줄을 끊으려면 현실 세계에서는 아무래도 맨손으로는 어려울 것이고, 절단기라든지 뭐 그런 게 필요할 것이다.) 이 친구가 멋있어 보여, 그리고 마침 당시에 우연히 기타 한 대가 생겨서 필자도 남몰래 피 나는 연습 끝에, 뭐 득음의 경지까지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한소리' 하게 되었다. 대학 들어 와서 평소에는 있는 둥 마는 둥하게 조용히 살다가, MT 가서 날만 저물었다 하면 밤무대를 주름잡는 화려한 불나비(나방?)로 변신하곤 했던 것이, 간접적이지만 그 친구 덕인 것 같다. 노래방이 전성시대를 맞으면서 밴드맨 (?)을 찾는 사람이 없어 개점 휴업 상태가 되긴 했지 만. (하지만 음정 박자 무시하고 노래 부르는 사람에게는 노래방 기계보다는 여전히 숙달된 밴드맨의 매뉴얼 모드 반주가 필요하다!) 당시 이 친구 덕분에 필자는 팔자에 없이 고등학생 신분으로 '미팅'까지 했었는데 (중국집에서 군만두 시켜 놓고! 지금 생각하면 웃음 밖에 안 나온다.), 요새야 초등학생도 하는 게 미팅이지만, 그 당시,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의 고등학생들로서는 다소 파이어니어(?)적인 일이어서, 드물다고 할 순 없지만 좀 특출한(?) 학생들이나 하는 것이 미팅이었다. 최소한, 필자와 같은 범탱이는 친구 잘 만나지 못 했다면 꿈도 꿔볼 수 없었던 일이었다. 이런 걸 사자성어로... 격・세・지・감... 이라고 하든가. 아... 내가 도대체 뭔 소리들을 써대고 있는 거야? 내친 김에 되는대로 좀 더 노가리를 풀어 보자. 필자가 다니던 학교에는 '변소동'이란 것이 있었는데, 본 건물과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있는데 계단과 화장실만 있는 괴상한 건물이었다. 교무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고 좀 외진 곳이라 주먹 쓰는 놈들이 티꺼운 놈 끌고 가서 손을 봐준다든지 하는 용도로 많이 사용되었 는데, 여기서 점심 시간만 되면 진풍경이 벌어지곤 했다. 이곳 변소동의 화장실은 몰래 식후 연초를 즐기려는 애들의 본거지가 되었던 것이다. 화장실에 옹기종기 모여서 여우 잡듯이 연기를 뿜어대면 심할 때는 거짓말 좀 보태서 TV 쇼프로에서 드라이 아이스 뿌리듯 뭉게 뭉게 연기가 흘러나와 계단을 타고 연기의 폭포수를 만들 지경이었다. 담배 피는 애들 단속하려는 선생님들에게는 좀 골치였던 모양인데, 점심시간이면 교무실에 서 쌍안경으로 이 곳을 감시하는 모습을 가끔 볼 수 있었다. 창문으로 연기가 피어올랐다 하면 (앞서 말했듯 하도 '구름 과자'를 피워대니 연기가 한참 떨어진 곳에서도 보일 정도.) 몽둥이를 든 기동타격대가 출동을 하지만, 대개는 허탕만 쳤다. 애들이 바본가, 그냥 담배를 피게. '짱보는' 놈을 항상 세워 놓고 있었기 때문에, '떳다'는 경보가 뜨면 순식간에 다들 사라졌고, 기동타격대가 도착했을 때 남아 있는 것은 무수한 꽁초들과 자욱한 연기뿐이었다. 담배 피지 말라고 하기 전에 제발 변기에 꽁초 넣어서 막히게 하지 말라는 부탁 말씀을 먼 저 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담배를 왜 피우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얘기들 은 기억이 없다. 학생답지 못한 짓이니 하면 안되고, 정 피우고 싶거든 이담에 어른 되어서 피우라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그건 담배 피우라고 고사를 드리는 셈이 아닐까. 어른이 되는 것이 청소년들의 소원이니 말이다. 그저 생각나는 대로 옛 추억을 주절거리다 보니, 이대로 계속 써대다가는 이 글이 도대체 어디로 갈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 같으니 뭐 어떻게든 끝을 맺어보자. 필자는 이제 '다 큰 어른'이 되었고 지금과 그때와는 거진 20년의 차이가 있으니 달라도 이 만 저만 다른 것이 아니다. 아마도 제일 큰 차이는 그 때의 나는 자기가 '뭐 하는 사람'인지 얘기할 수 없었고 (솔직히 말해서 나중에 뭘 할지도 잘 몰랐다.) 지금의 나는 최소한 남에게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별다른 갈등 없이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리라. 삼십 몇 년의 세월 중에서 면허 있는 의사로 산 것이 벌써 12년째로 접어들려 하고 있고, 의과 대학 시절까지 치면 살아온 세월의 반 이상을 의사라는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거나, 또는 그것을 가지기 위한 과정으로 지낸 것이다. 두서없이 고등학생인 내가 겪었던 친구들 얘기들을 늘어놓고 보니 그 때의 나는 참으로 다 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구체적으로 기억은 안 나지만 그들과 나는 매우 다른 사람들이었음 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의 입장과 생각을 충분히 이해했고 무엇보다도 그들과 친구로 지냈 었다. 지금이라면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그때의 친구들을 지금 만나면 나는 그들과 무슨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 쌈 잘하는 그 친구라면 '너 의사야? 똑바로 좀 해, 새꺄!' 하고 한 대 패고 시작할 지 모르겠다. 필자는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그것을 위해 (또는 그 부작용으로) 스스로를 갈수록 폭 좁은 인간으로 다시 규정해나가는 과정을 거친 끝에 이제는 의사나 의 료인이 아닌 사람과는 무슨 얘기를 해야 하는지 별 생각이 안 떠오르는 한심스러운 인간이 되어버렸다. 불행히도 많은 의사들이 그런 비슷한 과정을 거쳐 의사가 되어왔고, 그 결과로 대한민국에는 현재 의사가 아닌 사람과는 역시 말이 잘 안 통한다고 생각하는 7만 여명의 성질 괴팍한 집단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젠 심지어 그냥 의사 아닌 사람과는 말이 안 통하는 정도가 아니라, '임상' 의사가 아닌 사람과는 얘기가 안 된다고 까지 한다. 필자 역시 의사의 한 사람으로서 현재 한국의 의사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모를 리 없고, 의사들이 그렇게 된 것이 순전히 의사들의 자업자득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아니라 고 목에 핏대를 올리고 싶은 기분이 울컥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안타깝게도 필자를 포함한 많은 의사들은 (예외도 있겠지만) 의사 아닌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정서를 가 지고 있는지, 의사들을 어떻게 보는지, 의사들의 어떤 면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되는지 등등 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무지하고 무감각하며, 이런 insightopenia (비의료인을 위한 註: 통찰력 부족)가 이 사태 속에서 의사를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는 데 한 몫을 했다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세상에 의사가 있고, 의사 아닌 사람들은 환자와 비환자로 분류된다는, 그런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것은 혹시 아닌지 한번쯤 되돌아 봐야 하지 않을까. 그냥 길을 가다 누가 길을 물어보면 친절히 가르쳐 주면서, 병원에서 흰 가운을 펄럭이며 복도를 가던 중에는 길을 물어 보는 사람에게 건성으로 턱짓을 하는 것은 아닌지. 이젠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지는 고등학생 시절, 신기하게도 필자는 지금 같으면 전혀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은 친구들과 그 시절을 함께 했었다. 스포츠 머리도 싫고 시꺼먼 교복도 싫 고 교문 앞에 지키고 있는 깡패 선생님도 싫고, 무엇보다도 사춘기의 이런 저런 개똥철학 같은 고민들을 새삼 다시 하기도 싫고, 그래서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픈 마음은 전혀 없지만, 필자가 그 때의 그 친구들을 지금 처음으로 다시 만나도 그들과 다시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하는 생각은 간절하다. '의사'가 아니라 그냥 '사람' 말이다. 소설 로그인 과 의사의 직업의식 글쓴이 성지동 1996-01-30 19:05 http://blog.paran.com/jazzman/2042560 'Login'이라는 말은 통신인에게는 너무나도 낮익은 말일 것이다. '공상 과학 소설이 아닌 진정한 과학 소설, 거기에 성장 소설과 민족 의식을 섞어 놓은…'등등의 평을 들으며 소설을 펼쳐 들면서도 이 제목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는 좀처럼 짐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책을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아서 흠뻑 빠져 들게 되었는데 그것은 소설의 배경으로 펼쳐지는 캠퍼스의 풍경하며 학생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필자도 의예과 시절에 이 소설의 저자인 김도현님과 같은 캠퍼스에서 놀던(?) (한 3-4년 쯤 먼저인 것 같기는 하지만) 경력 때문인지 저자가 묘사하는 '공깡' (공대 깡통 식당, 가건물이라서 이런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과 그 유명한 쫄깃쫄깃하기 이를 데 없는 자장면(어찌나 질긴지 신소재 자장면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도서관 앞에 난간에 '빨랫줄에 널린 빨래들' 모양으로 죽 걸터 앉은 학생들의 모습들이 어찌나 눈에 선한지 소설이 아니라 실화를 읽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되었다. 필자는 도대체 소설이라고 하는 것을 영 읽지 않는 무미건조한 인간이라 별로 읽어 본 것이 없어 다른 소설과 비교할 만한 것이 없어 유감인데, 대학생들의 모습을 비현실적으로 묘사한 TV 드라마는 숱하게 많은 것을 생각하면 일단 이 소설이 사실에 충실하려고 애를 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 소설이라고 하면 흔히 공상 과학 소설을 떠 올리고 곧장 만화 영화 같은 것이 연이어 생각난다. 저자는 '그들을 공대로 끌어당기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어릴 적 만화에서 본 우주선 같은 것이다.'라고 쓰고 있는데 분명히 저자 자신의 얘기가 아닐까 한다. '내가 만약 비슷한 내용의 소설을 쓴다면 어떻게 쓸까?' 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니 좀 난감한 생각이 들었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 비록 그것이 몽상가의 백일몽 같은 것에 불과할지라도 - 동기를 찾을 수 있는가? 의사들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고려할 때, '슈바이처 전기를 읽고 감동을 받아서'라고 해봤댔자 비웃음만 살런지 모르겠다. 하지만 필자는 만화 영화의 우주선을 보고 '만화에 속아서' 공대에 오게 됐다는 이 소설의 주인공들에게 친숙함을 느끼며 푸근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잠시 사족(저자는 뱀발이라고 표현한다.)을 달자면 이 소설을 잡고 끝 페이지에 도달할 때까지 거의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던 것은 물론 이 소설이 재미있기 때문이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처음 한 동안은 필자가 다음 몇 구절들 때문에 '열 받아서'(?) 내쳐 읽은 탓도 있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무심히 읽고 넘어갈 구절이지만 필자가 의사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말이다. "우리 나라 과학 기술자들, 얼마나 사람들한테 핍박받고 있는지 모두 알잖아. 의사 변호사는 깃발 날리는데, 사실 우리가 걔네들보다 공부를 덜 하냐, 머리가 돌이냐? 사기쳐서 돈 뜯는 거나 다름없는 녀석들은 집 싸들고 자동차 키 들고 오겠다는 여자들 교통정리하느라고 인생이 피곤하다는데…." 여기까지 읽고는 '맙소사, 의사는 여기서까지 욕 먹는구나!'하는 생각에 또 신세 한탄이 나올 판이었는데 그 다음에는 참으로 '골 때리는' 표현이라 아니할 수 없는 구절이 있었다. "스포츠 신문 같은데 한번 보라구. 여배우들도 의사라면 헬렐레하잖아, 가랭이 쫙 벌리고." 이 구절 때문에 Y(제 아내올시다.)는 '낄낄… 좋~겠다! 여배우 누구누구가 그랬는데?'하면서 나를 놀려댔는데 그 표현이 하도 웃겨서 그냥 나도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우리 주변에는 가끔씩은 입이 걸어서 쌍소리를 섞지 않고는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대개는 그런 사람들이 그렇게 미워할만한 사람들은 아니다. 이런 얘기도 그런 욕쟁이 친구가 내뱉는 소리 같아서 그저 재미있었다. 그 다음 페이지에도 의사가 한줄 나오는데 '그 속물 의사, 변호사들…' 이란다. 다행히도 그 이후에는 의사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데 Y의 해석을 빌리자면 'Out of sight, out of mind'라는 것이다. 서울 의대가 서울대의 다른 과와 달리 연건동에 따로 떨어져 있어 저자의 눈을 피해갔기에 그 정도로 끝났을 것이라는 얘기다. 하긴 그러고 보니 이 소설에서 진석의 아버지는 속물의 전형으로 나오는데 그는 공안 검사이다. 의대가 관악 캠퍼스 에 있었다면 이 인물은 의사가 되지 않았을까? 소설 전체로 보면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부분에 너무 많은 지면을 할애했나보다. 하여간에 이렇게 '속물 의사'들을 '까면서' 저자가 주인공들의 입을 빌려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과학자로서의 굳건한 자부심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과학기술노동이 생산력을 창조하고 있고, 그 생산력이 인류문명을 진보시켜왔어요.'라는 대목에서 이 주인공들은 - 그들은 가공 인물이지만 오늘도 어디선가 머리를 싸매고 실험실에 박혀 있을 실제의 공학도의 모습의 충실한 반영인 것이다. - 겉으로는 '단무지' (단순, 무식, 지랄)과 같은 자학적인 표현을 써가며 자기네들의 신세를 한탄하지만 실은 자신들의 일에 대해 무한한 열정과 자긍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주인공들의 모습은 과학 기술이 만들어낸 문명의 헤택이 왜곡되게 쓰여지는 현실에 대해 전문가 집단으로서의 자존심을 가지고 그 모순에 대항하고자 의연하게 나아가는 자세인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사람마다 각기 다른 생각들을 할 것이다. 이 소설에는 한마디로 요약해 버리기는 힘든 수 많은 얘깃거리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한국의 독자적인 인공위성 개발을 방해하려는 미국의 음모에 맞서 싸우는 공학도들의 얘기로서 민족 의식을 담고 있기도 하고, 많은 좌절과 아픔을 겪으면서 성숙해가는 젊은이들의 아름다운 성장기이기도 하다. 얘기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소설중 태원이라는 콤퓨터 도사의 입을 빌려 진정한 핵커란 철없는 장난꾼도, 산업 스파이도 아닌 인류가 만들어 낸 값진 재산인 정보와 지적 산물들이 독점되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 의해 자유로이 이용되어야만 한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독자들에게 이해시키고자 한다. 저자는 참으로 할 말이 많은 사람인 모양이다. 하고 싶었던 그 많은 말들을 주인공들의 입을 빌려서 독자들에게 정성껏 전해주고자 하는 그의 시도로 인해서 이 소설은 참으로 이야깃 거리가 많은 소설이 되었다. 하지만 그 여러 갈래의 이야기들 중에서도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기둥이 되는 것은 과학기술자로서의 투철한 직업 의식이 아닐까 한다. 자신들의 소중한 지식을 민족과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 올바로 쓰고자하는 과학자로서의 순수한 양심은 그들로 하여금 그들 앞에 펼쳐지는 불의에 용감하게 맞서 싸우게 하는 힘이 되고 있는 것이다. 대개의 '공상' 과학 소설이라는 것, 또는 과학을 소재로 한 thriller류의 소설은 (로빈 쿡의 소설이 그 한 예일 것이다.) 주인공의 명석한 판단과 영웅적인 활약으로 음모를 막고 정의가 승리를 거두지만 이 소설은 '투쟁은 지금부터!'라라고 외치는 듯한 결말로 많은 여운을 남겨 놓는다. 독자적인 위성 개발을 시도하려던 우주 연구소는 음모에 의해 미국 휴즈사의 꼭두각시인 위성 운용 연구 센터에 합병되게 되는데 이 합병의 기념식장에 나타난 우리의 공학도들은 진실을 밝히고자 단상으로 뛰쳐 올라간다. 주최측은 재빨리 마이크를 꺼버리고 경비원들이 달려들어 이들을 저지하는데 주인공 격인 강호는 메가폰을 어렵사리 손에 넣는다. 그리고 거기서 마치 스톱 모션처럼 소설은 끝난다. 이 장면은 80년대 독재에 항거하여 대학가의 건물 위에서 유인물을 뿌리며 메가폰으로 구호를 외치다 달려든 '짭새'들에게 개처럼 끌려가던 민주 투사들의 처연한 모습을 연상케한다.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그들의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못하다. 그들의 피땀 어린 연구의 소산은 인류의 행복을 위해 쓰여지기 보다는 재벌의 돈벌이를 위해서, 또 가공할 살상 무기를 생산하기 위해서 사용되고 있다. 우리는 이 소설에서 과학자들이 스스로의 지적 노동의 산물로부터 소외된 지식 프롤레타리아로서 사회 현실에 참여하고 과학기술의 올바른 이용을 위해서 부조리한 현실과 싸워나가야 한다는 순수하고 정의로운 외침을 들어야만 할 것이다. 필자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의학은 사회과학이다.'라는 독일의 병리학자 빌효(Virchow)의 말을 생각해 본다. 이 말은 조금은 과장되고 선동적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진실을 꿰뚫고 있는 실로 감동적인 표어이다. 흔히 과학이란 사회와는 유리된 별개의 세계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이 소설은 그러한 몰이해를 벗어던질 것을 주장하고 있다. 하물며 인류의 건강을 다루는 의학이 어찌 사회와 분리된 것이랴! 하지만 불행히도 현재까지 의학의 사회성에 대한 의사들의 - 필자를 포함한 - 인식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런 인식을 새로이 가질 기회조차 원천적으로 봉쇄 당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런 벽은 대부분 의사 스스로 초래한 것들이다. 그리하여 의사들은 의료체제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개입하여 그 변화를 진정 국민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쪽으로 이끌지 못하였고, 의료제도가 어떻게 바뀌든 자기 이득과 상관 없으면 꿀먹은 벙어리처럼 가만 있다가 자신들의 이익과 관계될 때에만 겨우 일어서 의료 보험 수가를 인상하라는 얘기나 하고 있으니 누가 의사를 욕 안할 것인가. 반성해야 할 일이다. 의사가 아닌 누가 읽어도 또 그대로 생각해 볼 점이 많은 소설이겠지만 의사라는 직업의 전문가로서의 위상이 그 어느 때보다도 흔들리고 있는 요즈음, 의대생들과 의사들 모두 자신의 직업이, 또 하는 일들이 전체로서의 사회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볼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읽어볼만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종합병원' 같은 드라마에서는 의사들은 밤낮 '연애질'만 하든지, 감상주의에 젖어 있는 것처럼 왜곡된 모습만을 보여주는 판국에, 의사들의 이야기, 진정 의학이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올바로 쓰여질 수 있도록 애쓰는 참된 의사들의 이야기를 그릴 수 있는 의사 소설가가 한 명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김도현 님처럼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그릴 수 있는 소설가를 가지고 있는 공학도들이 부럽다는 생각도 문득 떠오른다. [퍼온글] 정부가 지금껏 해온 짓거리... http://blog.paran.com/jazzman/2043125 2000-06-23 실지로 지난 IMF때 서울의 유명한 대형병원중 하나가 외국계 의료 재단에 매각을 의뢰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행 한국의 의료보 험제도하에서는 경영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으로 무산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현재 의료보험수가체제로는 서구인들의 합리적인 계산으로 수지 타산이 안 맞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병원경영을 위해 현행법상의 불법을 하지않고는 병원경영이 안된다는 결론 때문입니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그런 병원을 경영하기 위해서는 의료 보험 수가로는 적자가 계속되기 때문에 그 당시 모든 병.의원들이 취하던 방법인 약가마진으로 수지타산을 맞추는 방법밖에 없는 데 이는 당시 현행법상 엄연한불법이었습니다. 지금 이런 의료대란이 발생한 원인에는 그 당시 정부도 의료보험체제하에서는 병원경영이 안된다는 사실을 알고 불법을 눈감아 주면서 말을 듣지 않을 때는 언론보도를 통하여 불법사실을 흘리면서 의료소비자와 의료공급자 사이를 이간질하는 방법으로 의료계 길들이기를 해 온 것입니다. 즉 의료보험재정을 보존하면서 병원경영은 불법적인 방법으로 하도록 묵인,유도하고 의사들이 저항하면 언론을 통해 파렴치범으로 몰고 가는 식의 정치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의약분업을 시행하기 전 조치로 병원이나 의원에서 취하던 약가마진을 한번에 없애버린 후 그 손실분을 의료보험재정에서 처방료나 진찰료, 기술료를 올려 보전하여 주겠다는 약속을 하였는데 공교롭게도 의료보험재정으로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되자 현재 논란이 많은 의약분업안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현행 의약분업안은 의사와 약사의 밥그릇싸움처럼 비쳐지는 이면에 바닥난 의료보험재정을 감추기 위해서 의료소비자인 일반시민이 의사를 찾지않고 비의료인인 약국에서 일반약으로 처방을 받을 경우에 보험급여를 전혀 받지 못하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의사들이 철폐를 주장하는 39조2항이라는 조항은 약사의 진료권을 인정하여 의사의 처방없이 약국에서 1차진료를 하여 비보험으로 약을 사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보건복지부 관계자들이 TV토론회에서 간단한 질병은 약사가 봐도 된다고 공공연히 말하면서 국민의 편의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변명) 즉 바닥난 보험재정을 의료보험료 인상이라는 국민적 저항없이 의료소비자 개개인의 주머니에서 해결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의사가 처방할 수 있는 전문약과 일반약의 분류인데, 한가지 예를 들면 항생제 오남용을 막기 위해서 항생제를 전문약으로 하자는 의사들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척하면서 용량별로 전문약과 일반약으로 2중 분류를 한 것 입니다. 즉 암피실린 500 mg은 전문약으로, 250 mg은 일반약으로 분류하여, 500 mg짜리를 쓸 때는 의사의 처방전이 필요하고 250 mg짜리 2개는 약사가 처방전없이 쓸 수 있는 일반약으로 분류해 놓은 것입니다. 의료소비자의 입자에서는 의사에게 진찰료와 처방료를 내고 약국에서 조제료를 내면서 암피실린 500 mg을 사는 것이 낫겠습니까? 아니면 그냥 약사에게 250 mg짜리 2알을 직접사는 것이 낫겠습니까? 지금과 같은 의료대란의 원인은 수입의 감소로 병원이나 의원의 경영이 되지않는다는 절박한 이유도 있으나 이와 같이 국민을 기만하고 23년간이나 의사들을 기만한 배신감과 의약분업안의 합의정신을 교묘하게 훼손하였으면서 그 이유를 모두 의사에게 전가하여 선전하는 비열함에 있습니다. 제목 없음 박상웅 님의 발자국 2000-01-17 22:46 http://blog.paran.com/stuka/2039890 ! 경고 ! 이 글을 읽다가 글쓴이에게 욕을 하거나 빈정거리면 접속이 끊긴다.. 드디어 걱정하던 Y2K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오늘은 Y2K 사고가 난 소식들을 간추려 보겠습니다. 먼저, 행정망에 아주 작은 사고가 있었습니다. 주민등록번호를 나타내는 숫자 가운데 일곱번째 bit가 뒤집히면서 ******-1******은 ******-2******로 ******-2******은 ******-1******이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병무청의 전산망도 함께 잘못 움직여 전국 78만 여성들에게 징집영장을 보냈고 689만 여성들이 병역기피자로 몰려 헌병대와 경찰서에 긴급체포명령이 내려졌습니다. 때문에 엉뚱한 곳에서도 큰 피해를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화장품 회사들은 화장할 여자들이 모두 군대에 가거나 영창에 가게 되었으므로 화장품이 안 팔려 폭싹 망하게 되었다고 울상을 짓고 있다고 합니다. 한편 속옷 회사와 생리용품 회사들은 얼룩무늬를 넣은 속옷과 생리용품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다고 합니다. 군대에 처음 가 본다는 어느 아가씨는 총은 어디서 사가야 하느냐고 물었고 장난끼가 있는 한 남자가 대꾸하기를 '총이 없어도 되는 취사병으로 가라' 이에 그 아가씨는 너무 기뻐하며 돌아갔다고 합니다. -------------------------------------------- 여자들이 군대에 간다면... -------------------------------------------- 20대 남자들이 싫어하는 여자 5 1.안 생긴 여방 (여자 방위) 2.못 생긴 여방 3.복학한 예비역 4.해병대 나온 여자 예비역 5.병역을 몸으로 때운(?) 여자 남자들이 좋아하는 색시감 5. 1. 예쁘고 살림 잘 하는 민간인. 2. 돈 많고 목숨 짧은 민간인. 3. 월급 많이 받고 영내 근무하는 여군. 4. 귀순한 인민군 (南男北女?) 5. 장군의 딸. ----------------------------- Y2k 상황 아가씨 선발 대회 ----------------------------- 1. 안녕하십니까! 군대 안 가려고 무릎 깎았다가 평발로 면제 받은 심순해입니다. 2. 안녕하세요. 포병 지원하려고 다대포로 갔다가 헌병한테 붙잡힌 고소혜입니다. 3. 안녕하세요. 일등병 달고 병장한테 대들다가 뒤지게 맞은 임신중입니다. 일등병이 가장 높은 것 아닌가요? 4. 안녕하십네까, 지도 잘못 보고 헤매다가 얼떨결에 귀순용사된 리효순입네다. 5. 안녕하셔유. 유격하다가 밧줄 다 끊어먹은 이용자여유. 살 좀 빼야지.... 6. 보초 서다가, 지나가는 인사계님 보고 "놀다 가세요" 했다가 과거가 들통난 에레나랍니다. 7. 휴가 나왔다가 사고 치고 제대 할 때 아기 낳은 조신희입니다. 8. 군가산점만 믿고 공부 안 했다가 빵점 맞고 백수된 서운혜 입니다. 9. 수류탄으로 호두 까 먹다가 수류탄 터뜨려서 PX 말아 먹은 마정자입니다. 10. 수류탄이 잣인줄 알고 까먹으려다가 무기고 홀랑 날려버린 연정이입니다. *********** 낙선운동으로 솎아낸 쓰레기, 나라살림에 거름된다! *************** 오말자, 징병검사 받다. 군대에 가기 싫었던 오말자는 징병검사에서 눈이 나쁘다는 엄살을 부리기로 했다. 잘 된 일인지 안 된 일인지 남자 군의관이 시력검사를 하고 있었다. 군의관이 시력검사표에 있는 글씨를 가리키며 물었다. "무슨 글씨인가?" "작아서 잘 안보입니다." 군의관은 좀 더 큰 글씨를 가리키며 물었다. " 보이나?" "작아서 잘 안 보입니다." 군의관은 가장 큰 글씨를 가리켰다. "작아서 안 보입니다." 군의관은 말자의 꿍꿍이를 알아채고 자기의 바지를 내린 뒤에 고추를 보여 줬다. 그러자 함께 징병검사를 받던 다른 아가씨들은 소리를 지르고 달아나고 난리를 피웠다. " 이것도 안 보이나?" 눈빛 하나 안 바뀌고 뻣뻣하게 서 있던 오말자가 말했다. "너무 작아서 아예 안 보입니다 !!!!" - '그것도 고추라고 달고 다닙니까?' --------------------------------------------------------------------------- 이 달, 각 의원의 계좌로 들어간 줄 알았던 세비가 모두 영국 BBC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은행의 전산시설이 년도를 인식하기는 했지만 국회의원들의 직업code를 인식하지 못해서 생긴 잘못이라고 합니다. 조사반에 따르면 국회의원들의 직업code가 연예인/텔레토비 로 되어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국회의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BBC쪽에서는 경하(慶賀)를 금치 못했습니다.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도 아주 작은 Y2K 벌레가 생겨서 적지 않게 골치를 앓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이번 달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3백만원씩 연금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편 이 소식을 들은 굴레방다리의 곽 아무개씨는 국민연금보험료를 한 푼도 안 낸 납부예외자인데도 300만원을 받게 되어 국민연금의 확실한 효과에 감탄해마지 않는다고 아가리가 찢어졌다고 합니다. 배째라 정신으로 버티던 전,노 대통령의 추징금이 제발로 국세청에 돌아왔습니다. 수 천억원의 추징금을 얻어 맞고도 돈 없으니 배째라고 버티던 두 사람은 Y2K에 대비해서 몰래 감춰둔 돈을 차명계좌에 넣어 놓으려고 현금인출기를 다루는 순간 모든 돈이 국고로 이체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해당 은행 지점장은 Y2K에 완벽하게 대비해서 그런 일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Y2K라고 우기던 두 전직 대통령은 나중에 현금card와 함께 인출기에서 나온 처리영수증을 보고 나서야 입을 다물었다고 합니다. ------------------------ 거래종류 계좌이체 금액 9천억 이체은행 **은행 대한민국 ------------------------ 두 사람은 아직도 자기들이 대통령인줄 알고 국고를 자신의 금고 삼아 계좌이체시킨 것으로 보고 이제는 Y2K가 computer 뿐만이 아니라 사람 대가리에까지 번졌다며 걱정을 했다고 합니다. 노래하는 연기(?) 특기자로 대학에 들어갔던 가수 아무개 양이 학적과 computer의 Y2K 때문에 학교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Y2K를 한 방 먹은 학적과 computer에 따르면 가수 아무개 양은 벙어리(언어장애자)이므로 해당 학과에서 공부를 할 수 없다는 판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 김강자 서장님 만세 ********** 다음은 나라 밖 소식입니다. 일본 해상자위대 전산시설에 Y2K가 생기면서 동해에서 얼쩡거리던 일본 고깃배들이 해상자위대의 공격을 받아 모두 물 속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고기 떼 위에서 그물을 치려던 고깃배들을 해상자위대의 computer로 분석하면 일본 고깃배는 제3국의 구축함으로, 물고기 떼는 구축함에서 쏜 어뢰 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고래를 쫓아가는 포경선은 뭘로 보이냐는 기자의 물음에 담당자는 "함대지 유도탄을 쏘는 구축함으로 나타나므니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 덤으로....... 요즘 군가산점 이야기가 뜨겁습니다. 그래서 저도 덩달아 몇 자 적습니다. 군가산점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소원한 분들한테 욕하지 맙시다. 그분들 똑똑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권리를 찾은 것입니다. 그분들이 하나만 더 챙겨 갔어도 그렇게 욕을 먹지 않았을텐데...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군가산점이 위헌이라는 것과 함께 남자만 군대에 가야한다는 것도 위헌이라는 것을 함께 챙겼더라면 욕을 먹지도 않을뿐더러 역사에 길이 남았을 것입니다. 아마 그게 그분들의 한계였나 봅니다. 그러니까 남자 여러분들도 그냥 와글와글 떠들지만 말고 신사적으로 법대로 젊잖게 '남자만 군대에 가는 것이 위헌이다'라는 것을 헌법재판소로 끌고 갑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쪼잔한 남자라고 빈정거릴 분들이 있을 겁니다. 특히 여자분들......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생각으로 이런 글을 쓰는 게 아닙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국방은 국민의 신성한 '의무'이자 '권리'입니다. 여자라고 해서 그 '권리'를 빼앗을 수 없다는 겁니다. '권리'와 '의무'는 붙어다니는 겁니다. 여자들이 군대가서 할 일이 뭐가 있느냐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오래전에 군대 갔다온 분들 가운데 그런 분들이 많을 겁니다. 요즘 전쟁은 총, 칼보다 정보, 전자, 통신이 더 큰 몫을 하고 있습니다. 상황실이나 통신실 같은 곳은 힘 좋고 날쎈 사내들보다 머리가 빨리 빨리 돌아가고 생각이 차분한 여자들이 더 좋습니다. 남자들은 생각이 단순합니다. 내 가족 내 이웃을 지켜야 한다니까 그런 줄 알고 군대에 가서 이 나라를 지키고 있습니다. 여자들처럼 헌법이 어떻고 남녀 평등이 어떻고 똑똑하게 따지지도 못하고 야무지게 헌법소원을 내지도 못합니다. 여자들의 그 똑똑하고 야무진 그 머리를 정보전이나 첩보전에 쓴다면 남자들의 어깨가 훨씬 가벼워질 겁니다. 그리고 더 큰 힘을 내서 나라를 지킬 겁니다. 6~70만이나 되는 국군인데 여자까지 군대가서 뭐하느냐는 분도 있습니다. 남자를 2~30만 빼거나 복무기간을 반으로 줄이면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애인이 고무신이나 구두짝 바꿔 신을 일도 줄어 들테고. 요즘은 야구 잘하거나 golf 잘 치거나 입을 잘 벙긋거리기만 해도 대학에 갑니다. 하물며 자기가 가진 가장 좋은 시절을 나라를 지키려고 희생한 젊은이들에게 가산점 몇 점 준다고 투덜댄다는 것. 잘하는 짓일까요, 못하는 짓일까요? 아, 그리고 승마특기생도 있었다고 합니다. 애마부인 찍을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몇 해 전에 바로 이 우스개에 그 승마특기생에 얽힌 우스개가 올라왔었습니다. 승마특기생으로 대학에 들어간 아무개 아가씨에게 교수님이 물었다고 합니다. "자네, 앞으로 무엇이 되고 싶은가?" "외교관이 되고 싶습니다." "지금이 삼국시대인 줄 아나, 말타고 외교하게......." 군가산점을 가지고 따지시는 여자분들...... 그대의 남자친구도 군대에 가야 합니다. "고무신 바꿔 신으면 되요." - 그 발로 지뢰나 콱 밟아라. 그대의 남동생도 군대 가야 합니다. "우리집은 딸만 셋인데...." - 집안 꽤나 시끄럽겠네.... 그대의 아들은 무사할(?) 줄 압니까?" 아들 하나 더 낳죠." - 그 아이도 군대 보내게? 고마우셔라. 둘째 아들은 군대 안 보낼 자신 있나 봅니다. "셋째 낳을 때 쯤이면 첫째가 제대 하겠네요." - 그럼 둘째가 입대해야지.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합니다. 딸이 군에 가는 것은 안타깝고 아들이 군대 가는 것은 덜 서운할까요? 남자는 군대를 갔다와야 사람이 되느니 뭐니 합니다. 그럼 군대 안 갔다온 남자는 다 짐승이겠네. 어흥~ 그렇게 좋은 군대를 왜 안 보내려고 안 가려고 발버둥을 치고 돈을 쓰고 그럽니까? 돈 많고 힘 센 사람들의 아들들은 돈과 힘을 써서라도 군대에 보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그 반대죠. 왜 그럴까요? 힘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그런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에게 가산점 몇 점 붙여준다고 따지고 들면 저보고 어쩌라는 겁니까? 그까짓 몇 점 가지고는 안 됩니다. 남자든 여자든 간에 군대 갔다온 사람들에게는 더 큰 혜택 줘야 합니다. 수능 점수도 팍팍 더 붙여주고 (붕어도 대학 가는데......) 각종 선거에 나간다면 가산표도 꾹꾹 찍어주고 ( 5공비리도 국회의원 하는데...) 직장에 다닌다면 휴가도 쑥쑥 늘려 주고 (예비군 훈련 보내는 셈 치면 되지.) 대학에 들어가면 국방장학금도 푹푹 주고 (돈내고 대학 가는 사람들 꽤 있단다.) 오락실에 가면 기본 점수도 듬뿍 주고 ( 누구 덕에 너희들이 Star craft했느냐.) 농사 짓겠다면 땅이나 영농자금도 막 주고 ( 그들이 지켜낸 땅이니까....) 고기를 잡겠다면 배도 한 척씩 내 주고..... (서해에서 인민군하고 싸워 봤냐?) 이도 저도 싫다면 군대 있을 때 월급을 5~6백만원씩 주면 되고. (일도 안하고 싸움질만하면서 세비 챙겨가는 몇 몇 썩은 국회의원들 없애면 된다.) 요즘 군대가 많이 좋아졌다고 합니다.정말 그런가요? '신고합니다.TV 내무반'에 너무 빠지신 것 아닌가요? 군대가 정말 좋아졌는지는 전쟁이 끝나고 봐야 압니다. 6.25을 치른 대한민국 국군. 어떻습니까? 몇 해 전 국군 포로 장무환 일병님, 누구의 도움없이 혼자서 북조선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대사관에 도와달라고 전화했습니다. 그 전화를 받은 대사관 직원X은 못 도와준다고 전화를 차갑게 끊었습니다. (X는 양이 아닌 음의 실수도 아닌 여자를 욕할 때 쓰는 한 글자짜리 말) 장무환 일병은 가족들과 방송국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대한민국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많은 국군포로들이 북조선에 잡혀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에서는 그들을 데려오려고 얼마나 힘을 기울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얼마 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사라져가는 김훈 중위. 그의 아버지 김척 장군부터 대를 이어 군에서 나라에 충성했습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총을 맞은 채 죽었습니다. 그러나 모순 투성이의 수사결과와 맞지 않은 증거를 가지고 '자살'로 몰리고 말았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일하다가 죽었다면, 설사 그것이 정말 자살일지라도 '의로운 전사'로 꾸며서 밝혀도 모자랄 판인데, 자살했다는 증거보다 타살당했다는 증거가 더 많은, 한 충성스런 장교의 죽음을 자살로 몰아갔습니다. 누가 이런 나라를 지키겠다고 군대에 가려고 하겠습니까? 이것이 좋아진 군대일까요? 미군? 그 아이들 정말 좋은 군대입니다. 군기는 개판이어도 시설 좋고 남의 나라 지켜준답시고 거들먹거리면서 위험할 때는 저희만 달아나는, 무늬만 군대인 그 아이들도 싸우다가 잡히면 수단, 방법 안 가리고 데려 옵니다. 뼈가 되어서 누워있어도 데려 옵니다. 멀쩡하게 살아서 집 앞까지 왔는데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 어느 나라하고는 견줄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 넓은 마음으로 나라를 지키겠노라고 나선 사내들이 있기에 이 나라 이 땅이 이 하늘 이 바다가 있는 겁니다. 지난 번 '신고합니다.TV 내무반'에 나온 어느 어르신의 말이 생각납니다. '군대는 왜 가는가?' '나는 내 가족을 지키려고 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나라를 지키는 것이 군대다.' ------------------------------------------------------------------- 남녀 평등이니 여성상위니 하는 것을 따지자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바쳐 나라를 지킨 사람들의 피와 땀과 눈물에 맞는 보상을 해 주자는 겁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면, 여자들도 군대에 가면 됩니다. 아니, 가야 합니다. 그게 바로 몇 몇 여자들이 이야기하는 참된 평등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자들이 애 낳고 집안 살림하는 것 가지고 군대살이하는 것과 견주려는 여자들이 있다던데 시집 안 가면 그만입니다. 여자들이 시집 안 간다고 헌병들이 잡으러 옵니까, 경찰들이 잡으러 옵니까? 헌병들이 시집 못(안) 간 여자들 잡으러 쫓아다니면 볼만 하겠군요. 시집 못 간 것도 서러울텐데 헌병들한테 쫓겨다녀 보시겠습니까? 제게도 할머니가 계시고 엄마가 계시고 여동생이 있고 제수씨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때에 군대 다녀온 아빠도 계십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장교들이 먹다 버린 퉁퉁 불은 국수가락을 건져 먹으려고 구정물 통을 헤집던 전우들의 이야기를 하실 때 마다 저는 가슴이 저며 왔습니다. 그리고 그 때마다, 복학한 선배로부터 배운 노래 한 자락을 떠올리곤 합니다. (저는 한쪽 눈을 잃어서 병역을 면제 받았습니다. 그래서 군대 노래는 선배로부터) "대령,소령,중령은 jeep차 ***,대위,중위,소위는 권총 *** 하사,중사, 상사는 부식 ***, 불쌍하다 일,이, 상병 건빵 도둑놈." 앞으로 통일이 된다하더라도 이 나라에 군대가 있는 한 남녀를 가리지 말고 군대에 보내야 합니다. 몇 몇 분들이 남녀평등하게 징병하자는 것을 가지고 헌법소원을 낸다고 합니다. 그때 판결이 어떻게 날지 두 눈깔 부라리고 지켜 봅시다.. -------------------------------------------------------------------------- 오랜만에 제 이용자번호로 글을 쓰니 손가락에 힘이 들어갑니다. 얼마전까지 동무의 것을 빌려 썼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에 하느님이 보우하사 제게 30일 이용권이 두 장이나 들어왔습니다. 너무나 기뻐서 접속을 하고 이용권을 등록했습니다. 꿈인가,생시인가? 다시 한번 보자. 등록한 이용권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아무개 (내가 빌려쓰는 동무)님의 이용 거시기는 30일 입니다." ..... 그래서 앞으로 27일 뒤에는 다시 그 동무의 것을 빌려 쓸 수 밖에 없습니다. ~ ♬ 친구의 ID를 사용했네 ♪~ -------------------------------------------------- 사내의 모습 : http://dowoo.chungbuk.ac.kr/~stuka 우리의 말과 글은 겨레의 얼과 넋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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