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혐오증 부채질하는 대중매체
category 靑羊  2015/06/05 15:49

환자 한 명 없었던 2003년 사스 사태 때는 “김치 덕분”이라며 김치 예찬론을 펼치던 김치남녀들(?)이 사스 사촌 메르스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군요. 김치 대신 장아찌라도 열심히 먹자고 해야 할 텐데 이제 와서 당시의 방역 대책과 비교하며 자신들이 언제 김치예찬을 폈으며, 언제 1번을 찍었느냐는 식으로 구는데 완전 블랙코미디 그 자체입니다. ‘대한국인’과 ‘조센징’이 종이 한 장 차이임을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물론 ‘대중’이라는 현상은 어딜 가나 마찬가지이지 이 사회만 우습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러 언론들이 메르스가 창궐하는 상황에서 경기도의회 의원들이 해외연수 갔다며 비난을 퍼붓고 시민들이 비난을 퍼붓는데, 참 어이가 없습니다. 개인들이 여행을 떠나더라도 보름 전에는 일정 잡고 교통ㆍ숙박을 예약하고 현지 일정 등을 준비하게 마련인데, 도의원들이 공식적으로 타국에 연수를 간다면 이건 공식적인 국제 교류로서 일종의 외교적 사안입니다. 그걸 준비하기 위해 도 예산을 잡고 적어도 한 달 전부터 경비를 선지출하면서 연수 대상국의 지방 정부와 공식적인 협의를 했을 텐데, 그걸 어떻게 갑자기 변경한단 말입니까?

설사 도의원들이 해외 연수를 취소한다한들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요? 여기저기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지방 정치인들의 특성상 질병을 매개할 가능성이 오히려 높습니다.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할 수도 없을 것이고, 고작해야 사태를 모니터하고 도정 차원의 대책에 왈가왈부하는 정도가 될 터인데, 전염병은 지역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사안이기에 도의원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사실상 없습니다. 당연히 공개해야 할 정보를 공개한 서울시장에게도 비난을 퍼붓는 정부인데, 도의원이 뭘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연수를 취소하더라도 상대국에 적어도 며칠 전에는 취소 통보를 해줘야 하는데, 5월 하순 당시에도 이 정도로 메르스 사태가 심각해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상황의 원인은 중앙정부에게 있는데, 왜 비난이 지방의회로 전가되는 걸까요?

막연히 대중을 흥분시키고 공격을 하게 만드는 것에는 소위 진보언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처럼 도의원들도 뭔가 작업복처럼 생긴 옷 입고 심각한 얼굴로 회의하고 있어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은 있지만, 그것이 실은 순전히 상징적인 연출이고 짧은 말로 ‘사기’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해외연수도 엄연히 의회가 해야 할 일이며, 놀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빡빡한 일정으로 배울 것을 배워 오는 것입니다. 물론 놀다오는 인간들도 적잖겠지만, 그렇게 따지면 배우지 않고 놀다 오는 행사가 되어버린 수학여행도 없어져야 맞습니다. 해외연수에서 의원들이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비난을 퍼붓는 것은 온당치 않습니다. 오후에 관광 일정도 있다는 식으로 몰아붙이지만, 관광을 해야 배울 수 있는 겁니다. 오히려 정치인과 공무원처럼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더더욱 연수 겸 관광을 통해 생각하고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관광과 복지가 별개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장애인들과 노약자들도 관광을 다닐 수 있도록 배려하는 곳으로 연수를 가는 것이 복지와 관련된 활동이 아니면 뭐란 말입니까.

무엇보다 경기도의회는 야당이 장악하고 있음을 봐야 합니다. 그리고 언론들이 비난을 퍼붓지만, 도의원들이 연수를 취소하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봐야 합니다. 이 글은 도의원들을 편드는 게 아니라 언론이 또다시 대중의 막연한 정치혐오증을 부추기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8박 9일의 연수가 끝나고 귀국해서도 메르스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그때 가서 비난하면 됩니다. 지금 이 메르스 사태가 10일 안에 끝날 것 같지는 않으므로 도의원들이 돌아와서 메르스와 관련하여 어떤 활동을 하는지에 대한 후속 보도가 나와야 앞뒤가 맞을 텐데 언론들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봐야겠습니다. 비슷한 기사가 일제히 터져나왔지만, 도의원들의 해외연수에 대한 다른 시각의 뉴스가 없는 것이야말로 뒤에서 언론을 움직이는 어떤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지요.

 

2015/06/05 15:49 2015/06/05 15:49

자가당착의 사회
category 靑羊  2015/06/03 18:35

최근 메르스 사태를 보면서 작년의 에볼라 창궐로 인한 비이성과 광기가 떠오릅니다. ‘공포의 사회학’이라 이름 붙여도 좋을 연구 소재들이 매일매일 생중계되는 것이 대중사회의 특징인 것 같군요. 음식물에 대한 공포부터 동일본 대지진 이후 등장한 ‘백두산 대폭발설’, 또는 도시괴담의 변형판인 ‘사이코패스와 잔혹범죄’, 그리고 이제는 좀 구닥다리 소재이긴 합니다만 전염병에 대한 공포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공포가 있습니다. 물론 전염병은 무서우며, 그것은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러나 그로 인한 대중의 반응과 담론을 성찰하는 것은 별개의 영역입니다.

작년 한국의 대중은 에볼라 발병국에서 오는 국제 행사 참가자들의 입국을 거부해야 한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아홉 달이 채 안 되어 우리가 그 입장이 되게 생겼습니다. 아직은 아니지만, 만약 다른 나라에서 한국인의 입국을 거부한다면 우리의 ‘자랑스러운 한국인님들’은 무척이나 불쾌해 할 것입니다. 이번 사태를 보며 정부의 무능을 지적하는 여론이 드높은데, 솔직히 말하자면 고소한 느낌마저 듭니다. 정신 못 차리고 무조건 1번 찍고, “그 분과 닮아서”, 혹은 “그 분의 딸이니까” 등의 이유로 타인의(자신의 아이들까지 포함하여) 미래와 행복을 투표라는 행위로 박탈하는 인간들은 당해도 싸지요. 사회를 이 지경으로 만드는 공범에 불과하므로 자업자득인 셈입니다.

이런 사회에서 자식이 아무리 좋은 대학 가고 대기업 정규직 되어 아파트값 수직 상승으로 떼돈 벌면 뭐합니까? 사회가 망가지면 아무 소용 없는데도 다들 돈 벌어 보험 들면 안전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한국 초등학생의 행복지수가 에티오피아 보다 못하고, 1년의 자살자 수가 베트남전이나 이라크전에서 1년간 전사한 수를 능가한다는 얘기에는 별 반응도 없을 정도로  둔감, 아니 무감해졌습니다. 여기서, 소위 명문 대학이라는 곳에서 강의 중에 겪은 사례 두 가지를 들어보겠습니다.

한번은 비정규직 문제가 하도 심해서 그걸 가지고 토론을 시킨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한 학생님께서 “한국사회는 경쟁사회다, 그것이 사회발전의 원동력이고 경쟁이 붙어야 물건 값도 싸지고 기업도 양질의 노동력으로 높은 생산성을 발휘한다, 비정규직 비율을 오히려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되물었습니다. “맞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대학이 세계적 수준의 명문대가 되려면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고, 그래서 나도 이 과목에서 A를 딱 한 명만 주겠으니 여러분들끼리 열심히 경쟁하기 바랍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학생이 아차 싶었는지 구구절절 자신이 장학금을 타야 하는 이유를 들이대는 바람에 토론이 산으로 가버렸던 기억이 납니다.

언젠가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보편적 복지를 토론하는데, 한 학생이 “복지 예산이 적다는데, 돈 내고 지하철 탈 수 있으신 노인들은 돈 내고 타시는 게 맞다고 봅니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번에도 내가 “동의합니다. 따라서 대학생들도 돈이 있는 사람들은 각종 대학생 할인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했더니 아무 말을 못하더군요. 불과 3초 뒤에 자기 논리가 자신에게 돌아올 것을 생각 못해서야 어찌 자신들이 입버릇처럼 떠벌이는 ‘명문대생’이란 말입니까.

어떤 논리를 펼 때에는 자가당착이 되지 않을지 신중해야겠습니다. 에볼라 발병국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 나라 사람의 입국을 거부하기 보다는 해당 질병에 대한 연구와 방역 체계를 더 갖췄어야 했습니다. 그냥 입국하지 말라는 여론은 사스 유행에 국경 폐쇄로 맞선 북한과 다를 바 없습니다. 지금 여론은 정부를 비난하고 대통령이나 관료 조직을 문제 삼지만, 아파트값과 한달 20만 원 용돈에만 정신 팔려 투표를 했으니 그 값을 당당히 치르길 권합니다. 북한이 그런 조치를 취한 것은 그들의 특수한 상황이라도 있었죠, 한국사회는 당장의 돈벌이에만 몰두하고 기초 연구나 사회안전망에 투자 안 하고 부동산으로 떼돈 벌 생각에 이성적인 판단을 못 해왔으니 지금의 사태를 당연한 귀결, 인과응보가 아니면 달리 뭐라 해야 하는 걸까요?

 

2015/06/03 18:35 2015/06/03 18:35

어리석음에 관하여
category 靑羊  2015/05/13 17:30

중년 이상 성인들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좌들이 참 많이 생겼습니다. 어찌어찌 인연으로 강연을 부탁받아 하게 되었는데, 주최측에서 총 3시간에 10분씩 두 차례 휴식을 주는 일정을 제시하더군요. 저녁 7시부터 시작한 것이라 끝나면 대략 밤 10시 가까운 시간이 될 듯하여 강연 시작 전에 청중에게 쉬는 시간 없이 대략 140분 정도 강의를 해도 좋겠는지 물었습니다. 강연 중이더라도 각자 알아서 강연장 바깥에서 자율적으로 쉬는 것으로 하자는 제안에 다들 좋아하며 흔쾌히 뜻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강연을 시작했고, 간간히 폭소를 터뜨리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며 열심히 집중하는 모습에 강연을 하는 입장에서 즐거이 몰입할 수 있었지요. 거기까진 좋았습니다. 대략 1시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청중 가운데 한 사람이 손을 들고 화장실에 갈 수 있도록 중간에 쉴 시간을 달라는 겁니다. 아까 합의한 대로 자율적으로 다녀오시라고 말을 했지만, 청중 대부분이 10분을 쉬어 가자고 하더군요. 강연의 주인이 청중이니 쉬게 해달라고 하면 쉬게 해줘야지 별 수 없죠.

문제는 왜 1시간 뒤에 뒤집을 약속을 하느냐는 겁니다. 화장실을 못 가게 한 것도 아니고, 자율적으로 다녀오는 대신 두 차례의 쉬는 시간 20분만큼 일찍 끝나서 집에 갈 수 있다고 청중 본인들이 환호를 했으면서 합의를 불과 1시간만에 뒤집자는 겁니다. 40대 이상 60대까지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온 분들이므로 자신의 1시간 뒤의 몸 상태를 모를 리 없습니다. 못 지킬 합의는 애당초 하지 말아야 함에도 그냥 생각 없이 환호하고 생각 없이 좋다고 하는 겁니다. 그나마 뜻이 있어 배우겠다고 모인 사람들임에도 이런 일을 몇 차례 겪었지요.

그 사람들을 흉 보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인간이란 사회를 만들어내려는 학자들이 생각하는 만큼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예측가능한 존재가 아니라는 겁니다. 장기적으로 자신에게 득이 될지, 해가 될지 깊이 생각 없이 그저 당장의 느낌으로 이리저리 쏠리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투표를 해놓고 욕을 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1시간 앞도 못 내다보는 사람들이 4년 뒤를 생각해서 투표를 할 리는 만무합니다. 생각 없는(혹은 생각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가르친다고 될 문제가 아닙니다. 설사 그렇게 가르쳐서 신중하고 깊이있게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어낸다고 하더라도 사회문화적으로 습득된 형질이 다음 세대로 유전되지 않습니다. 성급하고 경솔한 사람들이 점차 도태(?)될 수야 있겠지만요.

선택과 합의는 결국 그에 응답한 개개인들이 책임져야 할 문제입니다. 우리 사회는 민주사회의 기본 원칙에 대한 고민 없이 돈 벌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하며 달려온 대가를 치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결국엔 그로 인한 부담을 다음 세대가 지게 될 것입니다. 제 자식만 성공하면 된다는 일념으로 어마어마한 교육비를 투자해 봤자 사회와 함께 가라앉게 됨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제 학자도, 정치인도, 그리고 평범한 보통의 사람들도,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대한민국’이라는 괴물을 마주해서 근본적인 인간관을 새로이 하고 그에 따라 사람들을 이끄는 방식도 바꿔야 합니다. 개인들은 스스로를 성찰하고 실천하며 스스로에 책임을 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길밖엔 없습니다.

 

2015/05/13 17:30 2015/05/13 1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