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을 하기 위한 조건
category 靑羊  2015/04/28 22:47

동서를 막론하고 선인들의 학문(學問)을 권하는 글들이 있어옵니다. 그 가운데 한자문화권에서는 『고문진보(古文眞寶)』에 실린 송나라 진종황제의 「권학문(勸學文)」과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 일촌광음불가경(一寸光陰不可輕)”이라는 구절로 유명한 주자(朱子)의 「권학문(勸學文)」이 한 세대 전만 해도 널리 전했었지요. 그런데 학문을 권유하는 글이나 말들은 많지만, 학문을 하려면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는지, 또 왜 학문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해 주는 글은 본 적이 없는 듯합니다. 설마 인생이 빠르게 지나가니까 공부해야 하는 건 아니겠죠. 그래서 여기서는 현실적으로 박사 과정 이상의 길을 가려는 학부생들을 위해 좀 정리를 해두겠습니다.

 

첫째, 사람의 자질입니다. 여기에는 지적 호기심과 총명함이 우선입니다. 총명함도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비상한 기억력과 통찰력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에 더하여 성실함과 배우려는 열의 같은 것도 필요하겠죠. 둘째로 중요한 것은 체력입니다. 아무리 성정이 훌륭하여도 체력이 약하여 쉽게 지치고 앓아눕기를 반복하면 공부가 진척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흔히 체력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은데 상당히 중요합니다. 단순히 젊은날 입시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직업적으로 학자의 길을 가면서 나이를 먹어서도 거뜬히 밤샘하고 학생들과 같이 호흡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세 번째로 중요한 것은 훌륭한 선생과 동문입니다. 흔히 자기가 배우고자 하는 전공 분야나 다녀보고 싶은 학교를 고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조금 나은 정도가 교수의 명성과 학문적 실적을 살피는데, 그 보다는 성심을 갖고 제자와 함께 고민하며 연구할 희생적이고 인품 있는 선생을 만나는 게 좋습니다. 당연하게도 이런 선생을 만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학생이 되어보지도 않고 간접적인 정보로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죠. 함께 배우는 사람들과의 관계 역시 중요합니다. 자신을 이끌어줄 사람들에 대해 깊이 알아보지 않고 전공 분야에 대한 호기심이나 학교 내지 선생의 명성에만 좌우되어 학문을 시작한다면 이는 거의 실패로 귀결됩니다. 학자로서 훌륭해도 교육자로서는 형편없는 사람들도 많으므로 매우 주의해야 합니다.

네 번째로 정말 중요한 것이 시간과 돈입니다. 학비 조달 방법이 난감하여 위의 조건을 갖추고도 학문을 포기하거나, 반대로 학비 조달 계획을 생각하지 않고 부모님께 의존해서 다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찌어찌하여 소장 학자로 자립하더라도 벌이의 문제는 정년 트랙을 보장받더라도 완전히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학문세계에서 학자들에게 가하는 유무형의 압력은 연구 실적에 대한 부담을 압도합니다. 학자에게도 여느 사람들처럼 24시간은 똑같이 주어지고 일상생활에 들어가는 시간도 똑같이 필요합니다. 그런 가운데 여유 시간을 내서 공부를 하려면 결국 시간과 돈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생활의 부담을 덜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주로 ‘한가한 사람들’이 학문과 예술에서 뛰어난 성취를 해온 인류사적 경험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학문, 예술, 종교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사회가 먹여살려주는 것이죠.

다섯 번째로 직업적ㆍ학문적 윤리를 반드시 갖춰야 있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지적인 호기심이 있어야 하고 또 지식을 생산하려는 욕구와 타인들을 가르칠 인품을 쌓을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최근 대학교수의 성추행 문제가 많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아마 예전에도 많았겠지만 이제야 용기있게 말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거라고 봐야겠죠. 또 사회가 고도의 지적 능력을 필요로 하는 시대이기도 하지만, 취직이 쉽지 않다보니 도피용 진학이 크게 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정말로 학문을 하기 위한 소양이 아닌 사람들이 넘쳐나고 그들을 먹여 살려야 하다보니 사회에 큰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국비유학생 지원자는 오히려 줄고 있고 취업에 유리하다고 여겨지는 분야에는 석박사들이 남아돌고 있습니다. 남들이 안 하는 분야를 만들어 도전하지 않다보니 한정된 자원이 제대로 학문를 할 사람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있습니다. 사회와 시민에게 봉사한다는 생각 없이 그저 취업의 방편으로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는 것처럼 학문할 사람들이 학문 윤리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교육도 받지 않고 그저 도제식으로 배워서 학계와 교육계에 투신합니다. 그럴수록 취업도 힘들어지고 사회는 더더욱 미래가 없게 됩니다.

 

학문을 시작하던 때 흔히 들었던 소리 중에 하나가 “교수되려고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참 어리석은 소리입니다. 화가협회 회장하려고 화가 되는 사람 있습니까? 연극이 좋아 연극하는 것이고, 음악이 좋아 음악을 하는 것처럼 학문이 좋아 학문을 하는 것뿐입니다. 최종적으로 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버려지지 않는다면 시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쩌다 술이라도 한 잔 하게 될 때면 거창하게 한턱 내겠다며 돈 많이 번다는 티를 팍팍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시인을 만나도 그런 얘기들을 합니다. 누구 앞에서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몰라 결국 돈자랑 직함자랑으로 귀결되는 그들의 영혼이 불쌍합니다. 심지어는 학자라는 인간들도 어떤 직함을 맡아 무슨 일 했네, 얼마짜리 프로젝트를 했네 하는 얘기들을 사석에서 떠벌립니다. 학자들도 세속적일 때가 있는 것처럼 교육과 연구에 온힘을 쏟지 않는 그런 자들을 보기가 싫어질 때가 있는 건 어쩔 수가 없군요.

학문을 하기 위한 조건은 많습니다만, 개인의 능력과 설명할 수 없는 행운을 제외하면 위의 다섯 가지 조건 중 두 가지 이상이 해당되지 않는다면 제도권 내에서의 학문 활동과 직업으로서의 학자와 교육자가 되는 것은 말리고 싶습니다. 세속적이고 천박한 사회에서는 자신이 깨우치거나 남을 깨우치도록 하는 것이 너무도 힘들기 때문입니다.

 

2015/04/28 22:47 2015/04/28 22:47

블로그 소개
category 알림  2014/07/18 21:05

邊讓今朝憶蔡邕 無心裁曲臥春豊

舍南有竹堪書字 老去溪頭作釣翁

 

부질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향해 손짓한들 시인의 마음은 서글프기만 합니다. 시귀(詩鬼)라 불리는 이하(李賀, 796~816)의 남원십삼수(南園十三首) 중 일부인데, 젊은 나이에 늙어서 할 일을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 원치않는 안빈낙도의 삶이 분합니다. 자, 이 시로 블로그 문을 열겠습니다.

 

也翁

 

2014/07/18 21:05 2014/07/18 2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