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 목록
-
- 연행, 수배, 구속자 지원 등...
- 하이에나새끼
- 2009
-
- 자기모순적 민주대연합론을 ...
- 하이에나새끼
- 2009
-
- 잘못된 대선평가, 잘못된 당...(2)
- 하이에나새끼
- 2007
-
- 현실성 있는 정책을 펼쳐라
- 하이에나새끼
- 2007
-
- 바보야, 진짜 문제는 '내' ...
- 하이에나새끼
- 2007
다함께 47 호
병 주고 약 주는 집권당 개혁쇼 / 자본주의 정치인들과의 동맹 전술은 파산했다.
병 주고 약 주는 집권당 개혁쇼 - 전지윤 |
노무현과 열우당은 2004년의 마지막과 2005년의 새 출발을 역겨운 배신으로 더럽혔다. 이 배신자들은 끝까지 갈지자 사기극을 연출하며 민주개혁의 염원을 우롱했다.
노무현은 “4대 입법이 되든 안 되든 대세에 크게 지장이 없으니 … 차근차근 풀어 나가자”며 야합의 물꼬를 텄다. 노무현은 친미 우파를 향해 “지금부터 잘 해 보자”, “따뜻한 인간 관계가 맺어지길 바란다”고 눈웃음쳤다. <조선일보>는 “옳고 바른 방향”이라고 반겼고, 한나라당도 노무현과 열우당이 “한나라당의 합리적 주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칭찬하기에 마땅하다”(2004년 12월 24일 논평)고 기뻐했다.
한나라당과 열우당의 야합은 껍데기만 남은 4대 개혁의 개혁 ‘흔적’까지 닦아냈다. 언론개혁법에서는 시장점유율 산출 단위를 애초 중앙 일간지에서 전국 일간지로 조정해 조·중·동을 규제 대상에서 빼 주었다. 지면 50퍼센트 광고 제한 조항과 편집위원회 설치 의무화 조항도 빠졌다.
‘개혁 없는 개혁법’들마저 통과되지 않았다. 한나라당과 열우당은 합의와 결렬을 거듭하다가 결국 막바지에 파병연장동의안과 함께 신문법만 통과시켰다.
국회 앞 길거리에서 추운 겨울에 6백여 명이 한 달 가까이 단식을 하며, 심지어 1백50명은 물과 소금까지 끊고 보안법 철폐를 바랐지만 배신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물론 이 과정에서 열우당의 개혁적 이미지와 반동적 실체의 모순 때문에 균열이 생겼다. 당의 왼쪽 기반을 의식해 ‘왼쪽 깜박이’ 노릇을 하며 농성까지 한 소위 ‘강경파’에게 ‘온건파’들은 “그만해라. [이미 카메라가] 많이 찍었어” 하고 비웃었다. ‘강경파’는 열우당의 배신과 야합을 가리고 지지자들을 묶어 두는 구실을 한 것이다.
이해찬은 생뚱맞게 “2007년 대선도 우리가 이길 것”이라고 말했지만, 더러운 실체가 드러날수록 열우당의 분열과 파산은 가속화할 것이다. 이 때문에 도로 민주당과 합당하자는 말도 나오고 있다. 미래가 없는 이 더러운 배신자들의 파산을 더 앞당겨야 한다. |
자본주의 정치인들과의 동맹전술은 파산했다. - 전지윤 |
배신자들의 파산과 함께 배신자들과 동맹해 개혁을 이룬다는 전술도 파산했다.
민중운동 진영은 노무현과 정면으로 맞서야 하는 파병반대 투쟁과 공무원노조 탄압 항의 행동들에 의미 있고 실질적인 대중 동원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노무현이 우리 운동을 탄압하는데도 “열우당은 적과 아를 분명히 구분[하고] …개혁공조를 복원해야 한다.”(<민중의 소리> 2004년 11월 2일치 논평)며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지배계급의 개혁파와 동맹한다는 전술은 독립적 대중행동 건설에 소홀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 점을 놓치고 민족주의 좌파는 “국가보안법 폐지 대중운동, 왜 힘이 안 실리나?”(<민중의 소리> 10월 14일치)하고 조급해했다.
호흡곤란, 탈수증, 구토, 근육경련까지 무릅쓰며 싸우던 국회 앞 단식 농성자들은 야합 소식에 분노해 국회로 향하다 노무현 정부 경찰의 방패에 찍혀 피 흘리며 쓰러졌다.
만약 우리 운동이 노무현의 파병연장, 공무원 탄압 등에 맞서서 대중행동을 건설하는 데 주력했다면 이처럼 아무 저항없이 파병연장안이 통과되지 않았을 것이고 진정한 민주개혁에 좀더 다가갈 수 있었을 것이다.
농성단이 마지막 성명에서 말했듯이 “이 배신자들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할 뿐 아니라, 배신자들에 맞서 투쟁을 건설 해야 한다. |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