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경제발전에 대한 환상


열린우리당 전 의장 정동영은 지난해 총선중인 4월 9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독재를 했지만 당시 국회의석 3분의 2 이상의 거대 여당을 가지고 경제를 만들었다.… 거대여당이 되면 경제 발전이 된다.' 고 주장했다. 경제가 어려운시기임을 감안해 열린우리당을 거대여당으로 만들어주면 경제발전을 이룩할수 있다는 내용의 발언을 한것이다.


그런가하면 노무현은 신년초 연설에서 '경제문제에 치중하겠다' 고 발표했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의 경제정책이란 정규직의 비정규직화, 공공서비스 사유화 및 공기업 민영화, 도시 전체를 사유화하는 기업도시법 제정, 국내 노동법에서 인정하는 알량한 노동권마져 축소시켜 적용하는 경제자유구역, 다국적 투기자본을 끌어들이는 목적밖에 없는 한반도의 '동북아 허브' 론 등 자본의 요구에 호응하는 신자유주의 정책들 뿐이다.
 

흔히 사람들은 경제발전이 되면 현재의 처지가 더 나아질것이라고 믿으며, 종종 정치권에 대해서 '경제문제에 주력하라' 는 요구를 하곤 한다. 사실 경제가 호황기에 접어들때는 고용이 늘어나고 임금이 상승하며 그에 따라 내수시장이 활성화 되는등 긍정적인 효과가 있기 때문에 그러한 입장이 틀렸다고는 볼수 없다. 실제로 박정희 이전의 시대보다 그 이후에 생활이 더 윤택해진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생각은 더욱 광범위하게 퍼져있으며, 인권탄압과 독재에도 불구하고 박정희는 '경제성장의 화신' 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경제가 발전하면 자동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이 개선되는것은 아니다. 지배계급의 경제발전론이란 '자본의 이익을 어떻게하면 더 최대한 보장해 줄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거기에 장농속에서 굶어죽는 아이, 한겨울 쪽방이 철거당해 길바닥으로 내몰린 남매, 건빵도시락을 먹으며 감사하다고 말하는 결식아동, 카드빛에 내몰려 아이들을 껴안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 엄마들에 대한 '경제' 는 없다. 그러한 부분에 대한 고려는 '이윤' 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심각한 정도의 아래로부터의 저항이 일어나거나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지배계급의 고려대상이 될수 없다.


박정희의 경제발전은 사람들이 초가지붕 아래서 살고, 보릿고개를 힘들게 넘어가는것을 면하게 해주고자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가 경제개발에 착수한 주된 동기는 당시까지 북한에 뒤지고 있던 남한의 경제수준을 끌어올려 맞서기 위한 것이었으며, 이는 냉전구도 하에서 소련과 맞설 필요가 있었던 미국이 동북아 전초기지의 최일선 으로서 한반도에 요구한 것이기도 했다. 북한의 경제수준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남한의 경제구조 자체를 바꾸어야 했다. 농업위주의 경제로는 현대 산업체제에서 우위를 점할수 없었기 때문에 자본주의 산업경제 위주로 정책을 전환했으며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발전소, 댐, 고속도로,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을 정비하겠다는 약속으로 해외투자를 유치했다. 뿐만 아니라 베트남에 용병단을 파병한것도 자본주의 산업구조로의 전환으로 인한 비용을 충당하는데 중요한 몫을 차지했다.


현재 중국이 자본주의 개방화와 급속도의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하루 12시간 이상을 일하면서도 저임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있다. 자본주의 시장의 후발주자로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끔찍한 노동착취와 그로인한 이윤의 극대화는 필수적이다. 남한이 70 년대에 처한 상황이 바로 그것으로서 전태일 열사가 죽음으로 폭로했던 평화시장 여공들의 이야기는 당시 남한의 노동자들이 어떤 처지에 위치했던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박정희 시대 한국의 고도성장을 박정희의 '공' 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심지어 박정희의 독재와 인권탄압을 이야기 하면서도 경제성장은 잘했다고 인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박정희의 덕분이 아니라 평화시장 여공들과 같은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박정희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장면이 했든 박정희가 했든 경제개발은 이루어 졌을것이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노동착취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였다. 경제개발의 '공' 은 박정희가 아니라 노동계급이 가져야 하는 것이다.


박정희에 대한 그런 시각이 있는가하면 김대중 정권이 IMF를 빨리 '졸업' 했다며 추겨세우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부평 대우자동차 사태가 상징적으로 보여주듯이, 그것은 신자유주의 정책의 도입으로 인한 노동자 민중의 일방적인 희생으로만 가능했던 일이다.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듯이 경제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전 세계적인 경제불황 속에서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경제가 자유로울수는 없는 법이다. 지배계급과 진보진영내 김대중, 노무현 정권과 타협하는 일부 분파의 주장과는 달리 신자유주의 정책이 경제회생과 발전의 가장 빠른 방법이기는 커녕 남미식의 경제위기를 가속화 하는 방법일 뿐이라는것 또한 증명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이나 친노파들은 왜 경제위기의 책임을 현 정권에게 뒤집어 씌우느냐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왜 국민들이 경제문제에 대해서 '인내심있게' 기다리지 못하느냐고 엉뚱한 질문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노동자 민중의 희생을 발판으로 자본의 이윤만을 살찌우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신봉하며 추진하고 있는 것이 현 정권이라는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경제방향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줄 국민은 아무도 없다.


저들은 극소수 자본계급의 이익을 극대화 시키는 방안을 '경제성장' 이라고 말하며, 그것을 위해 '경제에 올인'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그러한 종류의 경제성장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지배계급이 주장하는 사기극을 깨버려야 한다. 박정희시절 경제를 성장시킨것도, IMF 탈출을 위해 일방적인 희생을 감수한것도 노동계급의 힘이었던 것처럼, 더 이상 국가나 자본가 위주의 경제관에 놀아날 필요는 없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