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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80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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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링크 : 오세훈 - 이명박 줄기세포로 만든 복제 배아
관련링크 : 강금실에게 개혁을 기대하는 것은 “한정식 집에서 짜장면.."
이번 지방선거에서 열우당은 십중팔구 참패하고야 말 것이다. 그 당은 어떻게든 패배를 모면하기 위해 갖은 쇼를 다하고 있다. ‘운동권 새댁’이라는 한명숙을 총리로 임명하고, 강금실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세웠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보고 있다시피 그 효과는 거의 제로다.
한나라당이 공천 비리와 성추행 사건 등 악재를 거듭하고 있는데도 열우당의 지지율이 정체이거나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것은 일시적이 아니라 고착되고 있는 지표이다.
상당수 사람들은 ‘여당이 무조건 싫다’고 한다. 한나라당이 온갖 부패 추문에도 지지율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총선에서 열우당을 지지했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그 당에 등을 돌렸다. 한국갤럽 여론 조사에 따르면, 총선 때 열우당 후보에게 표를 던진 서울시 유권자 중 강금실을 지지하는 사람은 고작 38.9퍼센트다. 강금실은 열우당의 후보가 되자마자 비극적 희극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열우당은 한나라당에 대한 대중의 두려움과 반감에 기대고 있다. 그러나 열우당의 반한나라당 슬로건은 노동자를 기만하는 것이다. 지난 대선 패배와 탄핵 반대 운동으로 그로기 상태가 된 한나라당을 소생시킨 것은 다름 아닌 열우당이었다.
그러므로 열우당의 반한나라당 슬로건은 노동자 대중이 투쟁과 삶의 경험을 통해 애써 가꾼 진보적 각성의 열매를 가로채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나라당이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열우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지율이 높다는 것일 뿐, 한나라당의 절대 지지도가 상승한 것은 아니다. 열우당의 실패로부터 반사이익 챙기기, 이것이 한나라당이 살아가는 법이다.
오죽하면 <조선일보>의 김대중이 한나라당을 두고 “더 이상 국민이 기대하는 야당이 아니며 그런 요구를 수임할 능력이나 자질이 없다”고 했을까.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4월 중순에 9.4퍼센트였던 무응답층이 5월 초에는 오히려 18.5퍼센트로 늘어났다.
그래서 이번 선거는 역대 지방선거 중 투표율이 가장 저조할 것 같다. 그럼에도 민주노동당이 이들 샴 쌍둥이와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대안을 제시한다면 상당한 성공을 거둘 가능성도 있다.
그러려면, 민주노동당은 무엇보다 열우당의 교활한 의회 술책에 말려서는 안 된다. ‘개혁적’ 언사를 사용해 반개혁적·반노동자적 본질을 은폐하고 정치적으로 후진적인 대중을 속이려는 열우당의 책략을 가차없이 폭로해야 한다.
이렇게 봤을 때, 5월 2일에 열우당이 6개 법안을 국회의장 직권상정으로 통과시킬 때 민주노동당 의원단이 이를 도운 일은 민주노동당 선거 도전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법안들, 특히 주민소환제가 ‘진보적’이었을지라도 당시 맥락에서 그것이 판단의 핵심 고려 사항이 돼서는 안 됐다. 왜냐하면 선거 패배를 모면하기 위해 왼쪽 깜빡이를 켜 지지층을 결속시키려는 열우당의 책략이 그 개혁입법의 맥락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 법안들이 ‘날치기’ 통과라는 인상을 줘 가면서까지 반드시 그 날 통과시켜야 할 만큼 급박한 것들도 아니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의 눈에 두 당(열우당과 민주노동당)은 별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비칠 뿐이다. 이런 식의 의회 전술은 그렇잖아도 강하게 압력받는 양당 구도 속으로 민주노동당을 밀어넣을 수 있다.
지금 김종철 서울시장 후보도 양당 구도 압력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언론이 악의적으로 김종철 후보를 군소 후보로 제쳐 버리고, 민주노동당의 서울 지지율이 다른 지역에 비해 낮고, 열우·한나라당이 모두 개혁적 이미지(단지 이미지일 뿐이지만)를 지닌 후보를 내세웠다는 점이 김종철 후보의 선거 도전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객관적 조건들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이번 선거는 매우 민감하고 전국적 초점을 이루는 투쟁들을 배경으로 치러진다 ― 평택 미군기지 확장, 한미FTA, 비정규직 등.
이 쟁점들은 예외 없이 우리 사회를 첨예하게 가르고 있다. 그리고 열우당과 한나라당은 이 쟁점들에서 근본으로 다르지 않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따라서 김종철 후보가 TV 토론 등을 활용해 정부와 열우당의 기만을 날카롭게 폭로하고 대중에게 투쟁을 호소한다면, 운동의 성장에 크게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매우 효과적인 선거 운동이 될 것이다.
이 과정은 한나라당을 비판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노동자와 피억압 민중의 운동과 투쟁을 증오하고 두려워하며 결정적 순간에는 한나라당에 달라붙는 열우당의 동요와 우유부단함을 대중에게 한껏 드러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김종철 후보는 TV 토론에서 KTX 여승무원 농성, 평택 미군기지 반대 운동 등의 당면 현안에 대해 수세적인 태도를 보였다. 선거운동 초기에 그는 “노학연대 투쟁을 선동하겠다”고 했는데, 이와도 모순되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도 김종철 후보가 이른바 포지티브 선거, ‘정책’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부르주아적 명망성의 압력을 계속 수용한다면, 유력한 도전자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기보다는 자칫 양당 구도에 의해 잊혀진 도전자가 될 위험성이 있다.
물론 사회의 진보적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은 마땅히 5월 31일 김종철 후보에게 투표해야 한다.
착각하기 쉬운것 중에 하나로, 노동문제, 여성, 인권 등의 부분에 있어서 다른나라 - 예를 들면 서구유럽 - 의 사회들은 굉장히 진 일보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막연하게 생각해 버리는 점이 있다. 확실히 대한민국의 경우를 비추어 생각해보면 제도적으로건 사회 전반적인 인식의 수준으로건 그쪽 사회가 보다 선진적인 색채를 띄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와 같은 모습들은 구성원들의 '문화' 적인 차이에서 비롯된것이 아니라 단지 억압받는 사람들의 강력하고 끈질긴 투쟁이 있었기에 비로소 현실로 다가올수 있었던 부분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직장내 성희롱 문제가 최초로 법원에 제기된것은 1993 년, 서울대 우 모 조교가 그 담당인 신 모 교수를 상대로 제기한 것으로, 무려 6 년간의 법정공방 끝에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500만원을 지급하라는 최종 판결이 내려진바 있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직장내 성희롱 예방지침이 만들어지고 성희롱 예방교육을 의무화 시키는등의 성과가 만들어 졌다. 여성문제에 있어서 보다 선진화 된 사회로 알려져 있는 미국이지만, 1984 년에야 비로소 직장 내 성폭력 문제가 '최초로' 법정에서 승리를 거둘수 있었다고 한다. 영화 '노스컨츄리' 는 ‘젠슨 대 에벨레스 광산’ 으로 알려진 바로 그 사건을 다루고 있는 영화다.
영화에서 주인공인 조시 에임스는 여성 노동자로 직장에서 당할수 있는 성폭력의 유형들을 거의 대부분 고스란히 겪게 된다. 남자 동료들은 그녀와 다른 여성 노동자들을 동등한 노동자로, 동료로 대우해 주지 않고 노골적으로 성적비하 발언을 일삼거나 성적코드로 당황하게 만드는가 하면, 욕설이나 신체의 일부를 만지는 행위까지도 서슴치 않고 행한다. 그녀가 일하는 광산에서 여성들은 동료가 아니라 '남자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못된 여자' 일 따름이며, 동일하게 노동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단지 성적인 대상일 따름으로 취급받는다.
조시는 이러한 상황들에 대해 처음에는 직장을 유지하고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견디려고 하지만, '참는것' 은 상황을 전혀 나아지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악화되어만 간다. 견디다못한 그녀는 언젠가 우연히 식당에서 만나서 '힘든일이 있으면 찾아오라' 고 말했던 광산의 사장을 찾아가지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사장은 그녀의 편이 아니었고 이후 여성노동자들을 향한 모욕적인 공격은 더욱 그 수위를 높여간다. 그녀의 옛 남자친구였던 작업반장은 폭력적으로 그녀를 몰아붙이고 남성노동자들은 마침내 그녀를 화장실에 가두고 뒤흔들어 테러를 가하기 까지 한다.
노동운동의 힘이 미약했던 초기에 남성 노동자들이 겪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문제에 맞서 여성노동자들이 조직적으로 대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노동조합 내부에서조차도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배려가 전무한 - 심지어 노조 총회에서 발언권이 남성 노동자에게만 인정되는 - 처지에서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져 그 모든 모욕적이고 폭력적인 상황들을 참고 견디는 것 뿐이다. 조시가 함께 문제제기 하자고 그녀들을 설득하지만 당장 해고와 더 큰 폭력에 노출될수 있는 위험에서 자유로울수 없는 그녀들은 쉽게 응할수 없다.
지금도 온라인,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문제를 이야기하고 바꾸려고 하는 사람, 특히 여성을 향해서 되려 '당신의 오버질이 문제' 라는 식의 뒤집어 씌우기와 이간질이 유용하게 사용되는 방식이지만, 노스컨츄리 에서도 마찬가지로 '조시' 가 특별히 시끄럽고 비협조적이라며 다른 여성노동자들과 그녀를 이간질 하고 있는 상황은 여성 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지 못하도록 만들어 간다. 그러나 그 모든 공격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지속적으로 싸움을 이어나가면서 그녀들의 생각과 행동은 '참는' 것에서 '싸우는' 것으로 조금씩 바뀌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편으로 '노스컨츄리' 에서 조시의 모습은 단순히 직장내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여성이 사회적으로 겪게되는 모든 차별과 억압의 모습을 함께 보여주기도 한다. 폭력적인 남편, 그로부터 독립적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지켜나가고자 하는 것에 대한 가정 내부에서의 편견 등 이 다루어지면서 '노스컨츄리' 는 노동계급의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끔찍할만큼 사실적으로 보여주는데 성공했다. 실화를 전제로 했음을 굳이 이야기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또 한가지 측면으로, '노스컨츄리' 는 1980 년대 당시 레이건의 집권시기에 노동운동이 처한 처지를 이야기 하기도 한다. '조시' 의 아버지를 비롯한 남성 노동자들이 여성 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는 '가뜩이나 일자리도 없는데' 여자들이 일자리를 잠식해 간다는 것으로, 이는 지금 남한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대하는 일반적인 태도와 매우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지배계급이 노동자들을 억압하는 강도가 강한데 비해 이에 맞서는 노동운동의 역량이 약할경우, 노동자들의 불안은 이러한 방식으로 보다 약자에게 표현될수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좌우지당간, 정말이지 매우 오랫만에 주위에 기분좋게 권할만한 영화라고 말할수 있다. 비록 극장에서는 이런 진지한 영화들이 상영관을 확보하지 못한채 흥행에 실패하고 말았지만, '유사 헐리웃' 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 하고있는 이런 영화들은 소장가치가 높다고 할 것이다. 남성이 보기엔 불편하지 않겠느냐고? 글쎄, 구제불능의 마초씨라면, 그럴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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