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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미술제의 방향과 전망

노동미술제의 방향과 전망1)

 

손동혁

 

 

1. 노동 / 문화

 

“… 비자금을 쌓아놓기 위해 빌라 한 채가 통째로 금고가 되는 시대에, 한푼 두푼 모았던 돼지저금통이 아직도 감개무량하십니까? 자본가에게서 나온 검은 돈으로 정권을 사는 대통령이 노동자 편이기를 바라셨습니까? 조중동의 입이 곧 정권의 이데올로기가 되는 체제에서 민주주의를 갈망하셨습니까? 효리에게 알몸을 보여 달라는 스포츠신문들을 돈 내고 사보면서 세상이 바뀌길 바라셨습니까? 삼성해복투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싸워도 라이온스를 응원하는 노동자가 있는 한, 울산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줄줄이 개죽음을 당해도 현대 호랑이 축구단이 이기는 날 축배를 드는 노동자가 있는 한 우리는 저들의 손바닥을 한치도 벗어나지 못합니다. …” - 김진숙, 11월 9일 전국노동자대회

 

“문화”를 인간 삶의 총체적인 것이라 했을 때 한 사회의 “문화”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철학적 기반이 어디에 있는가를 바라봐야 한다.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사회를 철학적으로 이분하는 한 방법이 노동과 자본이라면 문화 역시 노동문화와 자본문화로 이분 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과 “문화”의 결합은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IMF 이후 한국사회의 “노동”은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우선 노동자2)의 범위가 바뀌었다.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는 더 이상 노동자냐 아니냐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 노동의 방식과 공간은 과학기술과 유통방식의 발전을 통해 거의 혁명적인 변화를 거치고 있으며, 노동의 상태는 이전과 비교해 상대적인 정도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불안정하게3) 변화했다.
이러한 노동의 변화는 이전과 다르게 은폐된 방식으로 수많은 생명을 빼앗고 있다. 년초부터 년말까지 이어지고 있는 서민과 노동자들의 자살은 국가적 수준에서 제도화되고 있는4) 불안정한 노동과 소비를 선동하고 있는 자본의 이데올로기가 결합해 만들어지고 있는 비극이다. 이러한 상황의 도래에 대한 책임에서 노동문화운동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적극적인 비판과 사고의 변화가 필요하다.5)

 

2. 노동 / 미술

 

“나는 개념적 미술이나 세계를 추상화하는 것에 별 관심이 없으며 미술이 현실에 근거하고 삶의 현장성에 근접했을 때 가장 아름다운 감동과 진실을 담보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 이종구, ‘주인을 찾습니다’

 

요즘 “민중미술”(또는 민족미술인협회)의 변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드높다.6) 그리고 변화를 위한 과정으로서 ‘광범위하고 실제적인 정체성에 대한 논의’를 주요하게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먼저 진단해야 하는 것은 “늙고 지친” 이유가 아닐까? 스스로 “늙고 지친”이라고 표현해야 할 정도가 되어버린 상황에 대해 집요하게 “왜?”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노동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힘은 현장성과 그것으로부터 생성되는 끊임없는 생명력이다. 이 생명력이 예술과 만났을 때 노동은 비로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자각하게 되고 감동을 극대화하게 된다.
80년대 민중(노동)미술운동을 통해 우리들은 이러한 감동을 경험했다.7) 하지만 80년대 민중(노동)미술운동은 외부가 아닌 내부로부터 너무나 쉽고 간단하게 폄하되었다. 그것은 “더 높은 예술적 성취를 위해” 개인 작업실과 미술관으로 스스로의 몸과 작품을 가두게 만들었으며, 현장과 생명력으로부터 민중(노동)미술을 유리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80년대 민중(노동)미술운동에 대해 적극적이고 새로운 관점에서의 평가가 진행되어야 한다.8)


3. 노동미술제

 

“노동미술제는 전문예술작가와 노동자가 함께 만들었습니다. 또한 실내 전시장과 야외 마당전시, 그리고 사이버상에서의 전시가 동시에 진행됩니다. 미술전, 만화전, 사진전, 노동자 참여 기획전, 그리고 어떠한 매체든 구분없이 창작 가능한 노동자의 작품을 받는 공모전으로 구성되며, 찰흙으로 빚어보는 노동자의 삶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로 노동미술축제로서의 가능성을 열어 보려고 합니다.” - 제16회 인천노동문화제 중 ‘노동미술제 소금꽃’

 

90년대 후반에 들어 최소한 사회적으로는 ‘노동미술’ 또는 ‘노동미술제’라는 것이 사라져 버린 듯했다. 미술을 중심으로 활동을 펼치고 있던 (사)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노동예술위원회가 사실상 조직적인 활동을 멈추는 것과 함께 현장 노동자 미술소모임의 활동도 사라지고, 집회와 시위의 현장에서 걸게그림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학생운동의 침체와 함께 대학 내 진보적 미술동아리의 활동마저 뜸해지면서 새로운 미술활동가의 재생산마저 단절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노동미술제를 시작하는 데에는 인천노동문화제의 변화9)가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인천노동문화제를 통해 미술과 현장을 연결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5년째 계속되고 있다.10) 회화/조각/만화/사진, 실내/야외, 전문가/아마추어 등 모든 부분이 한자리에서 어루러지도록, 준비하는 사람과 구경하는 사람이 나눠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준비하고 함께 즐거울 수 있도록, 미술을 매개로 하는 한바탕 굿판이 될 수 있도록….
예술의 궁극적 목적은 상처받는 현실을 목격하고 그것을 형상화하여 역사에 기록하고 세상에 고발하는 것에 있고, 예술가는 상처받는 현실을 목격하기 위해 자신의 촉수를 민감하게 세우고 그것을 형상화하기 위한 능력을 키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지금/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예술가들은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


* 황해미술 2003년 겨울호



1) 미술이라고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에 몇 년간 미술반 활동을 한 것이 전부인 필자에게 “노동미술제의 방향과 전망”을 주제로 글을 쓰라고 하니 정말 암담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보니 이 글은 미술에 대한 전문적인 견해가 아닌 지난 몇 년간 인천노동문화제를 기획하면서 고민에 부딪쳤던 것들을 중심으로 노동과 미술에 대한 이러저러한 생각들을 거칠게나마 정리하는 수준이 될 것이다.

2) 전통적으로는 ‘제조업 생산직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을 노동자라 칭함

3) ‘불안정’은 자본가의 입장에서는 ‘유연화’로 표현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이것은 노동의 상태만이 아니라 노동자의 생활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4) IMF 이후의 강제적 구조조정과 “근로자 파견법”의 제정 등을 통해 한국사회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60%를 넘어서고 있다.(민주노총 추정 비율은 80% 이상)

5) 개별 노동자의 삶과 그 삶의 내부로 접근은 이미 시작부터 노동조합이라는 뾰족한 한끝이 아니라 다른 경로의 접근이다. 일상활동은 노동자 삶의 총체적 접근이 이루어져야 하며, 그것은 문화적 접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노동문화운동은 노동조합 구조 속에서의 접근으로 진행되어 왔던 한계를 갖고 있는 상태에서 일상활동의 접근은 그 출발부터 다른 길로 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문화운동은 노동자의 삶이라는 총체적 구조로의 관점으로 그 활동방식, 내용, 조직 등이 변화되어야 한다.” - 노동문화정책정보센터, 정책토론회 자료집

6) “… 기왕지사 언젠가는 찾아 올 새벽을 기다리며 민중미술의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든지 아니면 불사조 같이 스스로 부활해야 한다. 늙고 지친 민중미술을 이대로 계속 끌고 간다는 것은 미술계는 물론이거니와 사회변혁 운동에도 별 도움이 안되는 것이 자명하다.” - 이인철 ‘민중미술의 높은 단계를 위하여’

7) “… 80년대 미술운동이 진행되던 당시 많은 이들이 대중적으로도 강력한 시각적 호소력을 지니면서도 동시에 현실 비판적인 주제와 메시지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작품들에게 매력을 느꼈고, 단순히 전시장 내에 머무는 미술이 아니라 정치투쟁의 현장이나 노동현장에서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는 미술로 그 사회적 기능과 영향력을 확대한 성과들이 있다고 …” - 심광현, ‘80년대 민중미술의 공과와 탈근대적 공공미술의 전망’

8) “… 80년대의 미술운동은 어떤 예외적 상황에서 나타났다가 소멸한 일시적이고 자기완결적인 운동이 아니라, 부분적인 성공과 실패의 과정을 동반한 일련의 실험들로서, 사회정치적인 위기와 대중매체와 문화산업의 확산에 따른 미술의 사회적 영향력 약화라는 미술외적 위기들로 촉발된 낡은 미술문화의 패러다임 위기에 대한 능동적 반응이었으나, 그것은 10년-15년이라는 짧은 기간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의 위상을 획득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는 위기와 대응들의 보다 장기적인 흐름속에서 장차 출현하게 될 새로운 패러다임의 구성을 주장하는 최초의 문제제기로서, 보다 커다란 문화적 이해의 첫 도입부에 불과했던 것이 아닐까? - 심광현, ‘80년대 민중미술의 공과와 탈근대적 공공미술의 전망’

9) 87년 이후 전국 각 지역에서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온 문화제가 90년대 중반이후 양적으로 늘어났으며.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는 전국의 노동자들이 함께하는 문화축제로 자리 잡아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합법화 이후 발견하게 되는 제반의 문제들과2) 다양화된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확장된 운동영역3)에 대한 혼란은 노동문화운동의 자성과 함께 새로운 문화운동을 위한 적극적인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그러한 고민의 결과는 일상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과 자본주의로부터 발생하는 모든 부정적인 것들에 대한 투쟁으로 모아졌으며 “일상을 모든 것과 싸워라!”로 정식화되었다. 인천 노동문화제는 이러한 노동문화운동의 시작과 과정을 함께하면서 맨 앞에서 길을 열어 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

10) 문화를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 세상을 바꾸는 힘! 제12회 인천노동문화제

1999년 10월 23일(토)-30일(토)

․ 부대행사

“지역의 필요한 문화적 역량을 확대하고 문화제에 참여하는 각 단위의 조직적 실천이 가능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배치한다. 다양한 볼거리와 참여행사를 배치해 문화제를 보다 풍성하게 한다. 1. 만화, 사진, 시화 그림전시”

제13회 인천노동문화제 “당당하게” - 일상의 모든 것과 싸워라!

2000년 9월 13일(수) - 17일(일)

․ 전시[니기미시반노미전 泥起美示叛勞美展]

“니기미시반노미전은 기존의 미술행사가 가지는 자기 폐쇄성과 경직된 틀을 거부하고 야외공간을 선택하였다. 이는 열린 공간이자 일상의 공간을 점령하여 적극적으로 미술과 대중을 만나게 하는 장이다. 그렇게 함으로서 미술문화의 진정한 대중화를 모색하고자 한다.”

“니기미시반노미전은 회화, 대자보, 시화(걸개), 포스터의 평면미술에서부터 도서, 도자기 굽기, 페이스페인팅 등 비평면 미술장르가 한데 어우러지게 된다. 그러나 이것들은 단순히 보여주는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작가와 관객의 경계를 허물고 야외마당에서 한데 어우러지는 새로운 형태의 미술전시회를 펼치고자 하는 것이다.”

“회화전, 시화전, 포스터전, 대자보전, 설치, 도서전 등”

세상을 바꾸는 힘! 2001, 인천노동문화제 “노란선 넘어…”

2001년 9월 18일(화) - 23일(일)

․ 화전(畵展)놀이

“전복(顚覆)이란 곳곳의 현장에서, 우리 이웃들 속에서 작지만 더 이상 부서지지 않는 모래알 같은 힘들이 모이고 섞여 하나의 단일한 힘의 형태로 드러날 때 이루어집니다. 나의 모습, 이웃의 모습이 올바른 미(美)의 전형임을 깨닫고 함께 어깨걸고 나아가 노란선 넘어 세상을 진정한 삶터로 만들어 봅시다.”

“사진전, 노동미술전, 노동만화전, 도서전, 시화전, 참여전”

세상을 바꾸는 힘! 2002, 인천노동문화제 “밥과 일 그리고…”

2002년 10월 2일(수) - 6일(일)

․ 화전(畵展)놀이

“… 첫 발을 내딛었을 때 예감했던 무언가를 연신 주장하는 그림들, 그 경직된 전시대 사이를 빠져 나오고 나니 숙면에서 깬 듯 육체가 개운하다. 이상하다. 내가 가벼울 수 있을까. 나는 그곳에 무엇을 버리고 온 것일까. 무겁고 질긴 이야기들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

“노동미술전 ‘곤지곤지(坤地坤地)’, 노동사진전, 노동만화전, 시화전, 판화전”

세상을 바꾸는 힘! 제16회 인천노동문화제 “소금꽃”

2003년 10월 8일(수) - 12일(일)

․ 노동미술제 소금꽃

“노동미술제는 전문예술작가와 노동자가 함께 만들었습니다. 또한 실내 전시장과 야외 마당전시, 그리고 사이버상에서의 전시가 동시에 진행됩니다. 미술전, 만화전, 사진전, 노동자 참여 기획전, 그리고 어떠한 매체든 구분없이 창작 가능한 노동자의 작품을 받는 공모전으로 구성되며, 찰흙으로 빚어보는 노동자의 삶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로 노동미술축제로서의 가능성을 열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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