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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 마흐무드

 

“반다, 어제 왜 우리 집에 안 왔니?

우린 완전히 화났었어.

너를 위해 어제 생선을 사러 갔다 왔단 말이야.“

주름진 아부 마흐무드의 얼굴에 장난기 어린 웃음이 퍼졌다.

나와 미니는 파르하에서 열린 ‘인터네셔널 유스 페스티벌’에 다녀오느라 지금 머물고 있는 델 룩손을 떠나 1박2일 파르하에서 머물렀다고 서둘러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아부 마흐무드와 딸 아이야

 

 

바다에서 멀리 있는 가난한 이 마을에서 생선을 파는 곳을 본 적이 없는데, 아마도 멀리까지 가서 생선을 사왔나 보다. 사나흘 전 옴무 마흐무드(마흐무드의 어머니)와 아부 마흐무드(마흐무드의 아버지)의 초대로 저녁을 먹으러 갔을 때, 팔레스타인에서 고급 음식에 속하는 쌀과 닭고기로 만든 마끌로바를 준비해 두었었는데 육식을 하지 않는 내가 쌀밥만 먹고 닭고기를 먹지 않았던 것이 못내 걸렸었나 보다.

 

아부 마흐무드는 이곳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나와 미니의 일상을 섬세하게 챙겨주는 마흐무드의 아버지이다. 아직 40대인 아부 마흐무드는 나이보다 십년은 더 늙어 보인다. 요르단에 있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는 아부 마흐무드는 현재 옷 만드는 공장의 노동자이다. 공산품을 포함해서 거의 모든 물가가 한국과 거의 흡사하지만 교사의 월급이 월 50만원 내외라는 이곳에서 일곱 명의 자식을 건사하기 위해 아부 마흐무드는 공장에서, 옴무 마흐무드는 집에서 옷 만드는 일을 한다.

우리가 아부 마흐무드 집에서 갈 때마다 대학생인 그의 딸 쉬룩이 아랍어를 못하는 우리를 위해 영어로 통역을 해주는데, 아부 마흐무드는 자신이 대학에 다닐 때 영어로 된 원서를 읽으며 공부했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기여이 잘 기억나지 않는 영어 단어를 더듬거리며 직접 영어로 이야기를 건넨다.

 

이스라엘 점령이 끝나면 팔레스타인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냐는 나의 질문에 아부 마흐무드는 자신이 지금 40이 넘었는데, 과연 점령이 끝난 모습을 볼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점령은 그래도 끝날 것이라고 아무것도 아닌 이방인인 내가 힘주어 말했을 때, 그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더 이상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사랑하지(관심 갖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점령 때문에 게다가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하기 때문에 더욱,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팔레스타인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을.

아부 마흐무드는 하마스와 파타의 리더들은 계속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바쁘고 정작 팔레스타인 민중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른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점령으로 땅을 잃은 사람들에게 지원금을 주라고 해외 원조가 들어왔지만, 땅의 상당 부분을 고립장벽에 의해 잃어버린 자신은 그 돈을 정작 구경도 해 본적 없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다소 빈정거리는 표정으로 말했다. “반다, 그 돈이 어디로 갔을까? 누군가의 주머니로 갔겠지. 정부 관료들의 은행 잔고가 엄청나게 늘고 있다는 것을 네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말을 하는데 옆에 있던 옴무 마흐무드가 재빨리 아부 마흐무드의 다리를 친다. 무언가 아랍어로 조용히 말이 오간다. 그 뒤 아부 마흐무드는 다소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가 정부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면 어떻게 되는 지 알아? 이스라엘은 우리를 점령하고 있지만 그곳에선 정부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어, 그들에겐 민주주의가 있거든. 하지만 팔레스타인 이곳에 민주주의는 없어.”

우리는 마흐무드의 집 옥상에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가난한 동네는 다 마찬가지이듯 이곳도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모든 집이 창문을 열어 놓은 덥고 조용한 여름날 밤의 조건을 의식해서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한다는 것을 짐작 할 수 있었다.

 

가시선인장열매 사비르

 

아부 마흐무드는 깊게 담배를 한 대 피우고는 새벽 6시 출근을 염려하는 것인지 이제 자러 가야겠다고 했다. 잠자러 간다고 옥상을 내려간 얼마 뒤 그는 가시 선인장 열매인 사비르를 한 접시 들고 올라 와서는 남아 있는 우리들 손에 사비르를 하나씩 건네주고 다시 내려간다. 정작 아부 마흐무드 자신은 입맛에 맞지 않아서 결코 먹지 않는다는 사비르. 나는 그가 가시가 잔득 돋친 사비르 양쪽 끄트머리를 손가락으로 아슬하게 쥐고 껍질을 까서 가족들에게 주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아마 자러 들어가는 길에 손님을 남겨 두고 먼저 자리를 뜨는 것이 미안해서 열 개가 넘는 사비르의 껍질을 깎았을 것이다. 아까 내게 생선을 발라 줄 때 처럼 정성스럽게, 고된 노동으로 거칠고 무뎌진 손에 가시 껍질 안의 여린 사비르 열매가 부서지지 않도록 조심스러워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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