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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28
    그리고 다시 체크포인트(1)
    banda
  2. 2010/01/26
    2010/01/26(1)
    banda
  3. 2010/01/26
    장벽 넘어에 있는 땅은 빼앗길 염려가 없어
    banda
  4. 2009/11/17
    슈룩&반다(2): 독립적이고 강한 그녀 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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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9/09/19
    2009/09/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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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9/09/17
    반다&슈룩(1): 불가능 하지만 선택하고 싶어(3)
    banda
  7. 2009/08/21
    Check point for woman(16)
    banda
  8. 2009/08/21
    오랜만, 팔레스타인(2)
    banda
  9. 2009/08/21
    아부 마흐무드
    banda
  10. 2009/08/02
    결혼식
    banda

그리고 다시 체크포인트(1)

아부 마흐무드는 다음 주에 장벽 너머에 있는 땅으로 올리브 수확을 간다고 했다.

며칠 전 집 근처 땅으로 올리브 수확을 갈 때는 두 아들과 함께 였지만 이번엔 혼자간다고 했다.

다른 가족들에겐 장벽 너머에 땅에 갈 수 있는 허가증이 안 나오니까.

나는 아부의 장벽 너머에 있는 땅으로 올리브 수확을 같이 가기로 했다.

하지만 장벽 넘어 그 땅을 가려면 외국인인 내게도 허가증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아부에게 허가증을 신청해 보겠다고 했다.

아부는 허가증을 신청할 수 있는 툴칼렘 DCO(District Coordination Office)가는 길을 상세히 아랍어로 종이에 적어 주고 4쉐켈 이라는 글자에 밑줄을 그었다. 아부는 툴칼렘 시내버스 정류장 아래서 택시를 타면 되고 기사에게 약도 종이를 보여주라고 했다.

잘 다녀오라면서 택시비 바가지 쓰지 말라는 말도 덧붙인다.

  

 

사진 090.jpg

                                                                 팬스형 분리장벽 너머로 보이는 마을

                                                                

 

택시 기사가 DCO로 가는 길이라면서 내려 준 곳은 체크포인트로 보이는 곳이었다.

길게 줄을 서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예루살렘 길목에 있는 퀄런디아 체크포인트와 비슷했다.

체크포인트를 지나야 한다는 설명을 미처 듣지 못한 나는 혹시 택시 기사가 엉뚱한 곳에 내려 준건 아닐까 걱정하며 주변 상인들에게 물어 봤더니 DCO를 가려면 지나가야 하는 길이 맞다고 한다.  

체크포인트를 지나 갈 준비를 미처 못 한 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지난주 퀄런디아 검문소도 가벼이 지나쳤던 기억이 떠올라서 이미 줄 지어 서 있는 사람들 뒤에 몸을 세웠다.

회전 철문을 지나 엑스레이 검색대에 가방을 올려놓았다.

가방은 검은 벨트를 타고 엑스레이 박스를 지나 반대편에 가서 멈춘다.

군인은 유리창이 있는 작은 방 안에서 스피커를 통해 이미 엑스레이 검색 박스를 지나가 반대편에 가있는 내 가방을 다시 가져오라고 했다. 가방 속 물건을 다 꺼내서 검색대 위에 다시 놓으라고 했다. 나는 가방 속 카메라, 테입, 수첩, 지갑, 펜, 사탕, 담배, 라이터 등을 꺼내서 검색대 위에 다시 놓았다.

벨트가 돌아가고 엑스레이 검색 박스를 지난 짐들은 반대편에 다시 멈췄다. 군인은 다시 카메라를 들어서 렌즈를 분리하라고 했다. 내가 분리가 불가능 하다고 했더니 엑스레이를 다시 통과 시키라고 한다. 다시 한 번 엑스레이 검색 박스를 지나는 카메라.

잠시 뒤 군인은 지갑 속의 물건을 꺼내서 창문을 통해 군인에게 보여 달라고 했다.

현금과 카드와 몇개의 메모 쪽지들.

  

                                                                                                                                                                        

090930.jpg

 

  

군인은 검색대 반대편에 보이는 아이보리색 철문을 가르키며 그 문을 열고 들어가라고 한다.

짐을 챙겨 가방에 넣으려고 했더니, 다 두고 그냥 들어가란다. 철문의 손잡이를 돌렸지만, 철문은 열리지 않았다. 철문위에 빨간 불이 들어와 있다. 내가 고개를 돌려 유리창문 안의 군인을 쳐다보자, 군인은 문을 다시 돌려 보라고 했다. 나는 다시 문고리를 돌려 보았지만, 역시 문은 열리지 않았다. 군인은 다시 철문을 천천히 돌려 보라고 했다. 다시 문고리를 잡았다. 잠시 뒤 철문에서 치지직 하는 기계음이 들렸다, 군인은 철문을 다시 돌려보라고 했다. 이번엔 문고리가 돌아간다, 철문 위에 파란 불이 들어온다. 방안으로 들어가자 철문에서 치지직 하는 기계음이 다시 들린다. 아마도 밖에서 문이 잠겼나 보다.

 

두 평 남짓한 텅 빈 방.

반대편에 문이 하나 더 있다. 다가가서 문고리를 돌려 보았지만 돌아가지 않는다.

두 개의 철문이 마주 보고 있는 창문이 없는 방이다.

천장에서 뭔가 소리가 난다.

두꺼운 철망으로 된 천장위에 왠 사람이 서 있다.

F16인가, 일 미터도 넘는 총을 들고 있는 군인, 아놀드슈왈츠제네거 같은 몸을 가진.

군인은 천장에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순간 나는 눈을 돌린다.

쳐다봐도 되는 건가 하는 두려움 같은 감정이 스친다. 그리고 불쾌감도.

그는 별 말을 하지 않았고, 딱히 악의가 있는 표정을 짓진 않는 거 같다.

다시 천장을 올려 봤을 때 그는 그냥 물끄러미 나를 쳐다 보는 것 같았다.

안에서는 열 수 없는 문이 달린 방. 그리고 천장에서 방 안에 있는 사람을 내려다 보도록 만들어진 방. 작은 감옥 같은 방 안이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천장의 군인은 내게 별 말을 하지 않았고, 방 밖에서도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방문 틈으로 뭔가 보일까 싶어 틈을 살피지만 바깥이 보일 정도의 틈은 아니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냐고 바깥을 향해 물었지만 답은 없다.

왠지 서로의 얼굴을 보고 있는 천장의 군인에겐 물을 수가 없다.

물어도 답변이 없을 것 같아서 인지 뭔가 두려워서 인지는 잘 모르겠다.

방안을 서성이고 바깥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귀울여 보기도 하지만 뭐가 뭔지 모르겠다. 

아마도 십여분이 흘렀을까....

잠시 뒤 치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밖으로 나오라는 말이 스피커를 통해 들린다.

엑스레이 검색대 위에는 내 카메라가 뷰파인더 부분이 열린채로 눕혀져 있고, 다른 짐들이 어지럽게 헤집어져 있다.

군인은 짐을 챙겨서 왼쪽 문으로 나가라고 했다.

짜증스러운 기분으로 짐을 챙기면서 창문 너머 군인에게 이제 끝난 거냐고 물었다.

군인은 이건 시작일 뿐이라면서 문을 지나면 조금 놀라게 될 꺼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창문 너머 군인의 얼굴을 봤을 때, 그의 얼굴은 비아냥 이나 귀찮음이 아니라 약간은 안쓰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짐을 챙겨들고 그 군인이 말했던 왼쪽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몇몇 팔레스타인 노동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작은 문을 향해 줄을 서 있었다.

 

 

 

사진 775.jpg

                                            퀄런디아 검문소에서 회전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 09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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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6

 

팔레스타인에서의 경험을 글로 잘 공유하고 싶고,

그러면서 마음을 켜켜이 그려 보고 싶었는데, 정말 잘 되지 않아서 블로그를 그냥 두고 있었어.

그런데 그러면 안된다고 해서 오늘 홈피에 써놨던 글을 옮겨다 붙이기라도 했어.

 

오늘 테입 녹취를 풀다가 그때 이야기 할 때는 몰랐던 그 아이의 마음.

이미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지금.

서울에 와서야 그 시공간이 기록된 전자 입자들 사이에서야 마음을 읽을 수 있었어.

네가 어떤 절망을 만나고 있는지 말이야.

미안한거 같기도 하고 뭔가 방조자인거 같기도 하고...

나는 그렇게 자주 네가, 일상을 촘촘한 유리벽처럼 느끼고 있는지 몰랐던거야.

마침 너로 부터 misscall부재중 전화가 왔어.

나도 열심히 misscall만들었는데,

오늘은 왠일인지 알수 없는 히브리어만 나와.

무슨 일인거야.

그냥 핸드폰 충전할 돈이 없어서 그런거인 거지.

 

네가 그랬지.

페르세폴리스의 그 아인 정말 기적에 가까운 거라고.

팔레스타인 보다 더한 이란에서 말이지.

 

우리들이 뭔가를 다르게 만들어 볼 수 있을까.

아니면 네가 붙잡고 있는 알라신이 뭔가 조금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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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 넘어에 있는 땅은 빼앗길 염려가 없어

abuMahmud.jpg


장벽 너머 땅문서를 보여주는 아부 마흐무드

 

 

 

장벽 건설에 맞서 싸우는 빌레인 마을의 집회를 다녀 왔던 날.

빌레인에서 촬영했던 영상과 사진들을 구경하던 아부 마흐무드가 갑자기 안방으로 갔다.

아부는 옷장 위 선반에서 상자를 꺼내고 그 안의 비닐 봉투에 쌓인 무언가를 꺼내오며 말했다.

아부 마흐무드는 각 잡고 앉더니 내게 옆에 앉으란다.

카메라를 켜라는 의미이다.

아부 마흐무드는 뭔가 카메라 앞에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할 때마다 저렇게 다소 흥분된 표정으로 각을 잡는다.

 

분리 장벽 너머에 있는 아부 마흐무드의 땅 문서다.

 

아부는 내게 문서의 한 줄 한 줄을 짚어가며 오랫동안 설명해 주었다.

“이 문서는 1944년에 발행된 것이고, 여기에 내 할아버지 이름이 있어.

이건 할아버지의 아들들 이름이야, 나의 아버지와 삼촌들 인거지.

여기가 나의 아버지. 그의 아들 이름과 그의 아내, 두 명의 아내 이름이야“

조금만 힘주어 만지면 곧 찢어 질 것 같은 빛바랜 낡은 문서에는 아랍어 문자가 빼곡했다. 영국 식민지 시절 발행 된 땅 문서 였다. 또 다른 종이를 보여주며 아부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건 이후에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에서 발행 된 것이야. 여기에도 그 이름들이 있고, 그 아들들의 이름이 있지. 이게 내 이름이야. 여기 나의 어머니 이름도 있어. 아버지가 어머니랑 결혼 할 때 금을 줄 수 있는 형편이 안 되서 그 대신 땅을 주는 걸로 했거든.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50%씩 소유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 그리고 이건 여기가 얼만큼의 도넘(땅의 단위)인지 써 있는 거고, 이건 지역의 번호고”

문서엔 그 땅이 어떻게 가족들에게 내려오고 있는지에 대한 역사가 적혀 있었다.

 

“이걸 보고 그들이 허가증을 주는 거야. 이 문서를 보면 거기가 내 땅이라는 걸 알 수 있거든. 이건 법원에서 받은 서류야. 거기(내 땅)에 들어 갈 수 있는.”

“반다야, 이거 보이니. 이게 첫 번째 허가증이야. 이 첫 번째 허가가 2004년 9월 24년이지. 이게 없인 내 땅에 들어 갈 수 없다는 거야.”

 

가족 당 한 개 씩 발행된다는 허가증. 올리브 수확 철이면 온 가족이 다 같이 몇 주씩 올리브를 따러 가지만, 장벽 넘어 땅은 오로지 아부 마흐무드만 갈 수 있다. 가지가 휘어지도록 매달린 올리브를 혼자 다 딸 수가 없어서 큰 아들 마흐무드 이름으로 허가증을 몇 번이나 신청해 보았지만 돌아 온 건 기다려 보라는 말과 긴 침묵이었다. 올해도 아부 마흐무드는 아들 마흐무드 이름으로 허가증을 신청했지만 한 달 째 답이 없다고 했다.

 

 

장벽땅11.jpg

 

장벽 너머 땅으로 올리브 수확을 가기 위해 검문을 기다리는 아부 마흐무드와 농민들

 

 

 

“이 문서는 영국 정부에게서 받은 거잖아. 오로지 델룩손 마을 사람들만 영국 정부로부터 나온 증명서를 가지고 있어. 영국 정부에 있는 사람이 예전에 우리 마을 사람들에게 뭘 원하냐고 물었어. 돈을 원하는지 다른 무엇을 원하는지. 그런데 우리는 돈이 아니라 문서를 요구했지. 우리 땅이라는 걸 증명할 수 있는 문서를 달라고. 그래서 그들이 우리에게 이 문서를 만들어 준거야. 아띨이나 다른 마을에는 없어, 오로지 델룩손에만 있거든. 그래서 장벽 너머의 우리 땅은 빼앗길 염려가 없어.”

 

아부의 말처럼 영국 정부에서 발행한 땅 문서가 오로지 델룩손 마을에만 있는지 아닌지 나는 모른다. 굳이 확인해 보지도 않았다. 중요한 건 아부의 믿음이었다, 땅을 빼앗기는 다른 마을의 소식을 듣지만 자신 마을의 땅은 정말로 안전할 것이라는.

  

얼마 전 부린 마을에 갔을 때 보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이스라엘 군인이 와서 뿌리 뽑은 올리브 나무들이 땅 한 켠에 모아 두었던 모습.

나는 이스라엘이 부린에서 처럼 그리고 다른 수 많은 마을에서 처럼 땅을 빼앗가 가면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아부는 반복해서 영국 정부에서 발행한 땅 문서가 오로지 델룩손 마을에만 있다는 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이 땅을 빼앗아 간데도)팔레스타인 정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들은 이스라엘 정부나 돕겠지.

그럼 난?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나는 총도 없고, 나는 나의 땅에 가서 머물 수 밖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어? 나는 누구를 죽일 수도 없고, 이스라엘 군인들, 흠... 하지만 이건 합법적인 증명서야. 나와 모든 농민들에게, 만약 그들이 훔친다고 해도 영원히 훔칠 수는 없어. 10년, 15년, 아무튼 몇 년 이후엔 모든 땅을 그의 주인에게 돌려 줘야해. 이것 과 동일한 문서가 영국에 보관되어 있거든“

 

난 읽을 수도 없는 문자들을 열심히 봤다. 자기 땅에 대한 확실한 문서가 있으니 땅은 안전하다고 믿고 싶은 아부의 마음에 열심히 부응해야 할 것만 같았다.

델룩손은 초기에 분리 장벽 건설이 이루어진 마을이다. 마을에서 장벽 건설이 될 때 싸움이 있긴 했지만, 결국 우린 모두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고 전에 아부가 말해 준적 있었다.

그 때는 단지 장벽이 생기는 것일 뿐, 이렇게 허가증이 있어야만 들어 갈 수 있는 상황이 될 줄 잘 몰랐다고 했었다. 아부는 분리장벽이 건설되던 당시를 이야기 하며, ‘그땐 그것이 현실이었다’는 말을 여러 번 했었는데.

아마 빌레인처럼 끈질기게 싸우지 못해 본 것에 대한 아쉬움과 델룩손에 장벽이 건설될 당시는 장벽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이 인 줄 잘 몰랐다는 무지에 대한 후회가 담겨 있는 말 일지도 모르겠다.

 

아부 마흐무드의 아스라한 꿈과 믿음.

그도 나도,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이스라엘 불도저가 와서 올리브 나무를 밀어 버릴 때, 땅 문서는 물에 젖으면 녹아 버리고 마는 종이에 불과해 질 수 있다는 것을.

 

 

 

 

 

장벽앞사람들2.jpg

    

장벽 너머로 올리브 수확을 간 가족을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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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룩&반다(2): 독립적이고 강한 그녀 반다

 

슈룩&반다(2): 독립적이고 강한 그녀 반다

 

인터뷰 및 정리_ 슈룩

 

village.jpg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은 단순하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꿈을 가지고 있고, 그들은 대립 없이 평화롭게 지구에 존재하기를 원합니다.

나는 델알룩손 이라는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발전된 기술의 혜택 없이 단순한 삶을 살고 있는 마을입니다.

어느 날(이것은 마치 꿈처럼) 한국에서 친절한 친구가 이 작은 마을에 날아왔습니다.

이건 내 삶에서 외국인을 만난 첫 번째 경험이었습니다. 내 삶은 그 친구와 함께 멋지게 변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그녀를 만나면서 어떻게 사람과 관계를 맺어 가는 지에 대해서, 어떻게 다른 문화를 존중하는 지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그녀는 강하고 독립적인 사람인 것 같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향해 갑니다.

나는 그녀가 떠나면 몹시 그리울 것입니다.

어느 날 나는 내 친구 반다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녀의 삶, 그녀의 나라 그리고 몇 개의 질문들을 했습니다.


 

1. 네 삶에서 큰 꿈은 무엇이니?

나도 정확하게는 모르겠어. 갑자기 생각하려니 생각이 잘 안나네. 대립과 전쟁 없이 평화로운 공간,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자신이 꿈꾸는 바대로 살아가는 삶. 그런 삶을 살아가는 세상에서 단 하루 살아 보는 경험을 해보고 싶어.

어떤 경험은 아주 짧은 순간일 지라도 그 경험으로부터 우리는 완전히 다른 그 무엇을 느끼게 되거나 알게 되는 것 같아.

이걸 설명하긴 무척 어려운데, 아무튼 그런 경험들을 해 보고 싶어.

꿈은 뭔지 모르겠다. 더 생각해 볼께.
 

2. 너는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고 싶다고 했었어, 그 이유가 뭔지 궁금해.

내가 원하는 대로 내 삶을 살아가고 싶은 데 그러기 위해서는 독립적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고, 혼자 사는 것이 더 내게 맞는 방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처음으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서 혼자 살기 시작했을 때 정말 멋졌어. 하지만 한 달 정도가 지난 후 내가 나를 온전히 책임지며 생활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어. 부모님으로 부터 독립해서 생활한지 십년이 조금 넘었는데 혼자 살기로 했던 결정은 내게 정말 좋은 경험을 하게 했어. 요즘 한국에선 많은 젊은이들은 스무살이 넘으면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혼자 생활하는 것을 바라는 것 같아. 이곳의 문화와는 정말 다르지?

 

3. 전에 팔레스타인 말고도 여러 아랍 나라를 여행한 경험이 있다고 들었어. 아랍 문화에 대해 여러 경험을 했을 텐데, 네 의견이 궁금해.

아랍 문화의 좋은 점을 많이 발견하기도 했지만, 사실 내가 아랍 문화에 대해 잘 안다고 말하긴 어렵잖아. 내가 경험한 것 안에서 말하자면, 아랍 문화에서 가족은 무척 중요한 가치인것 같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이 외국인들에게 정말 친절하다는 것. 전에 시리아에서 길거리에서 지도를 가지고 길을 찾는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어서 가게에 들어가서 길을 물어 봤는데, 그 가게 주인 아저씨가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가게 문을 닫고 내가 가려는 곳 까지 데려다 준 적이 있었어. 그때 너무 당혹스럽기도 하고, 너무 미안하고 고맙고 그랬던 기억이 있어. 한국에선 일어나기 힘든 일이거든. 사실 이건 경험의 아주 일부이고, 고마웠던 기억들이 정말 너무 많아. 

그리고 이곳 문화를 존중하는 것을 시도하지만, 사실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에 대해 늘 헷깔리고 어렵게 느껴질 때도 많아. 사실 지금 라마단 기간이라고 해서 내가 이곳 친구들과 함께 낮 시간에 밥을 먹지 않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고맙다거나 칭찬 같은 걸 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


 

정말 어려운 것은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이곳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고, 그 문화가 내가 태어난 곳의 문화 그러니까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것과 충돌할 때 어려움을 느껴. 네게 말했다시피 여성과 남성에 대해 문화가 무척 다른 것 말이야.


 

그리고 여성과 남성에 대한 다른 문화는 내게 많은 충격을 주기도 했어. 여성과 남성 간에 엄격한 공간 분리가 있다거나 대화를 하는 것도 터부시 되는 문화 같은 것 말이야. 지난번에 리함을 그 친구네  집 계단에서 만났었는데, 그때 리함 삼촌 친구들이 계단으로 막 내려오니까 리함이 벽보고 서있었던 것 말이야(삼촌의 친구인 남성들이 계단을 내려오자, 계단을 올라가던 중이던 여고생 리함은 얼굴을 그들에게 얼굴을 덜 보이기 위해 그들이 지나갈 때 까지 벽을 보고 서 있었다). 그런 상황들이 나에겐 참 어려워. 나는 그냥 그것을 보고 있는 것 뿐이라도 말이야.  

 

 

그리고 몇년 전에 팔레스타인과 아랍나라를 다닐 때는 혼자 다녔기 때문에 잘 몰랐는데, 이번엔 미니와 동행하는 시간이 있으면서 전에 몰랐던 것을 보게 된 게 있어. 이를테면 내가 어떤 사람에게 질문을 했는데, 그 사람이 내게 답변을 하지 않고, 옆에 있는 미니에게 답변을 하는 거야. 처음엔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그런 경험이 반복되면서 혼란스럽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했어. 물론 머리로는 알고 있었어, 미니가 남성이기 때문에 여성인 나에게 답변을 하지 않고 미니에게 답변을 한다는 것. 그러나 직접 그런 경험을 하니까 화가 나기도 하고 혼란스럽고 그랬어. 한국에서는 그건 무례한 행동 일수 있거든. 내가 질문을 했는데, 내게 답변을 하지 않고, 내 옆 사람에 답변한다는 것은 질문한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어. 그런 문화에 대해서 여전히 헷깔리고 어렵고 그래.

 

 

그리고 사람들이 거리를 지나가면 집 앞에서 "빠달로 빠달로" 그러잖아. 집으로 들어와서 차 한잔 하라고 하고 말이야.

전에 얘기했었지만 난 그게 진심인줄 알고 거절하는 것에 대해 무척 미안해 하면서 바쁜 일정이 있어도 잠시라도 그 사람들 집에 들어가서 차 마시고 했었잖아. 근데 그게 알고 보니 살람알레이쿰(당신에게 평화를; 안녕하세요.) 이나 킵할룩(잘 지내나요.) 같은 인사의 연장선 같은 거라는 걸 뒤늦게 알았잖아. 한국에서는 사람들을 그렇게 집으로 쉽게 초대하지 않거든.

네 말대로 그 초대를 거절하지 않고 집 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간 나 때문에 사람들이 당황했을 텐데 말이야.

그것을 전혀 내색하지 않았던 것이나...

 

아무튼 다른 문화를 만나는 건 설레임과 긴장감이 함께 있어.

 

몇년 전에 왔을 땐, 설레임과 신기함을 많이 느꼈다면 요즘은 어려움과 긴장감을 많이 느껴.

 

그리고 아랍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다르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데 아직 그것에 대해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collage.jpg

 


 

네가 아침식사를 준비할 때, 다른 존재를 생각해봐.

비둘기 밥을 잊지 말아.

당신이 전쟁을 향해 갈 때 다른 것을 생각해봐.

누구에게 평화가 필요한지.

네가 물 값을 지불할 때, 다른 존재를 생각해봐.

누가 구름으로부터 온 물을 마시고 있는지.

네가 집으로 돌아 갈 때, 다른 것을 생각해봐.

캠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잊지 말아.

네가 잠을 자고 풀을 바라 볼때, 다른 것을 생각해봐.

누가 잠잘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는지.

네가 비난 없이 이야기 할 때, 다른 것을 생각해봐

말할 권리를 잃어 버린 사람들을.

네가 네 주변의 것들에 대해 생각할 때, 네 자신에 대해 생각해봐.

말해봐: 나는 어둠 속의 촛불이 되기를 희망한다.

 

                                                                                                   <마흐무드 다르윗시의 시 중에서.....>

 

 

* 슈룩은 인터뷰 글을 써본 적이 없다면서 자신 없는 목소리로 글을 쓰는게 어렵다고 했다. 이후에도 몇 번인가 내게 이 글을 주기를 주저하다가 결국 글을 건네면서 <마흐무드 다르윗시>의 시를 함께 적어 주었다.

인터뷰 글에 같이 올려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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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9

오늘은 라마단의 마지막 날.

언제 끝나나 싶던 한달의 라마단이 끝난다.

이 곳에서의 생활도 두달이 다되어 가고....

숨막히는 성별 문화에 콧구멍이 터질 것 같았었다. 

가부장제는 여성 혐오로 정의 된다는 말이 내 피부를 긁으면서 지나가는 것을 느꼈던 순간들...

그럼에도 이 곳에서의 생활이 즐겁기도 했다.

오늘 느꼈어.

난 이곳에서 즐겁고 행복한 감정들을 느껴 오기도 했다는 것을.

한량인 마흐무드가 드디어 며칠 짜리지만 알바를 하는 것을 보면서,

힘들지 않냐는 나의 말에 라이프 이즈 디피컬트라고 답변하는데 눈물이 찔끔 할 뻔 했다.

며칠 전 도망가고 싶어 하는 마흐무드를 붙잡고 다시 영어 노트를 폈을 때 적어준 문장이었다.

영어노트 팽겨치고 다녔는데 언제 외웠나, 이녀석.

슈룩이 마흐무드에게 실패한 인생이라고, 직접적 비아냥과 커다란 분노를 드러내며 안타까움을 숨길 때.

나는 실업과 점령과 투쟁과 욕망과 무기력에 동시에 포박된 마흐무드를  응시하게 된다.

그리고 슈룩과 마흐무드와 나는 각자 자신 삶의 일 부분을 겹쳐서 보내고 있는 중이다.

우리가 가끔 서로의 마음 안쪽을 느낀 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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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다&슈룩(1): 불가능 하지만 선택하고 싶어

 

이방인인 나는 이곳에서 주로 질문을 하는 사람이 된다.

사진에 찍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찍는 사람의 위치이다.

나는 팔레스타인에서의 생활을 적은 글들에 대해 설명해 주기도 하고,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홈페이지나 글이 올라간 웹페이지를 캡처해 가서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늘 마음 한구석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일정 정도의 필연.

얼마전 슈룩에게 제안을 했다.

이런저런 정치적 상황과 일상 그리고 여러 의견을 묻기만 하는 반다에게 궁금한 것이 있으면 맘껏 질문하는 시간을 갖자고.

결국 우리는 서로를 인터뷰 하는 시간을 갖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서로 인터뷰한 글을 동일한 웹페이지에 게시하기로 약속했다.

 

 

                                               

        슈룩 -sunrise 라는 의미를 담은 이름

 

 

불가능 하지만 선택하고 싶어

 

반다: 네가 죽은 이후에 신이 말하길 다시 태어나야 하고, 네가 그것을 선택할 수 있어. 하지만 팔레스타인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어, 왜냐면 네게 새로운 경험이 필요하다고 했거든. 어디서 다시 태어나고 싶어?

슈룩: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아. 난 늘 예스, 예스라고 말해야 하고, 웃어야 하지. 내가 죽게 된다면 이제는 내가 NO라고 말할 차례야.

 

 

반다: 이곳에서 여성과 남성의 삶은 무척 다른 것 같아. 한국에서는 여성과 남성의 평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슈룩: 이슬람에 따르면 여성과 남성은 달라. 남성들은 집을 지을 수 있지만, 여성이 집을 지을 수는 없어. 성차별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은 다르게 태어났고, 다른 역할이 있는 것이고 그것을 할 뿐이야. 남성이 아이를 낳을 수 없잖아. 여성이 길을 청소하는 청소부라는 직업을 가진다면 그게 가능하겠어? 이슬람에서는 여성과 남성이 다른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고,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이슬람에서는 2명의 딸은 1명의 아들과 동일하다고 말해. 아들은 커서 여자를 책임지는 가장이 되어야 하잖아. 결국 나는 이게 공평한 것이라고 생각해. 여성은 가족을 책임지지 않지만 남성은 가족을 책임져야 하니까.

전에 길에서 가족이 아닌 남성과 인사도 하지 않는 문화에 대해 물었었지, 그건 여성을 보호하기 위함이야, 여성을 존중한다는 의미거든.

 

 

반다: 조금 어려운 질문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곳에서 성교육은 어떻게 해?

슈룩: 학교에서 성교육을 하기는 하지만, 교사들이 무척 어려워해. 특히 여학생을 가르치는 여자 교사들은 그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해. 대부분 인터넷이나 친구들로부터 정보를 얻고, 그렇기 때문에 잘못된 정보가 많아. 특히 남자애들은 모이면 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지. 하지만 아마도 대부분 잘못된 정보나 이야기일 꺼야. 그래서 범죄가 일어나기도 하고. 가족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라고 생각해. 딸은 궁금한 것은 엄마에게 질문할 수 있고, 아들은 아빠에게 질문할 수 있어.

반다: 하지만 부모님들 조차도 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거나 어려워 할수 있잖아. 자식이라고 해도. 그럼 어떻게 하지?

슈룩: 그러면 우린 계속 계속 질문해. 답을 얻을 때 까지. 그리고 대부분을 마침내 답을 얻어낼 수 있어.

반다: 예전에 독일에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성교육 책이 십여년 쯤 전에 한국에 번역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한국 사람들 중에서는 너무 레디컬 하다고 비판하는 의견들도 있었어. 독일에서는 초등학생 용 이라고 들었는데, 내가 당시 볼 때도 좀 쇼킹했어. 디테일한 정보들이 많이 있었거든.

슈룩: 내 생각에 초등학교 때 성교육을 하는 건 너무 일러. 아이들이 성에 대해 배우면 좀더 알기를 원하고, 좀더 알면 또 좀더 알기를 원하지. 2차 성징 이후에 몸에 대해 배우는 게 좋은 것 같아. 내 생각에 가장 좋은 길은 가족 안에서 성교육을 배우는 것이야.

 

 

반다: 마을 사람들이 나와 미니(동행한 남성활동가)를 두고 궁금한 것이 무척 많을 것 같아. 아마도 우리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너희들에게 묻기도 할 꺼라고 짐작하고 있어. 내가 듣기로 이 마을에 외국인이 온 적이 거의 없어서, 외국인을 처음 보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들었어. 사람들이 무엇을 가장 궁금해 하지? 내가 불편하게 느끼거나 혹여나 무례한 질문이 될까봐 염려하지 않아도 되어. 나는 네가 언제나 나의 문화를 존중하고, 혹여 조금이라도 무례한 질문이나 말을 하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한다는 것을 알고 있거든.

슈룩: 이곳 문화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과 남성이 같은 집에 머무는 것이 허용되지 않아. 그건 하람(이슬람의 금기 사항)이야. 하지만 난 반다와 미니가 같은 집에서 지내고 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고 네가 말했듯 그냥 친구일 뿐이라는 말을 믿고 있어. 그 외의 어떤 상상도 하지 않아. 너희들의 문화를 존중해. 티비와 책에서 많이 봤어. 한국이나 서구 사회에서는 그런 것이 특이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너의 문화를 존중해.

 

 

반다: 정말 해보고 싶은 것?

슈룩: 인도에 가보고 싶어. (인도영화를 좋아하니까? 배우들을 만나고 싶은건가?) 인도에는 정말 많은 종교가 있다고 책에서 읽었어. 돌을 믿는 종교도 있다고 들었거든.(아마도 불교를 말하는 듯)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돌은 그냥 돌이야. 어떻게 돌을 믿는지 모르겠어. 수 많은 종교들에 대해서 보고 싶고, 그곳 자연이 정말 아름다운 것 같아. 인도의 몇 곳 사진을 책과 티비에서 봤어. 그리고 그 다음엔 아마 한국에 갈 수도 있겠지.

 

 

반다: 며칠 전 뉴스에서 가자지구 소식을 봤어. 하마스와 다른 세력이 싸워서 사람들이 죽은 이야기. 어떻게 생각해?

가자에서 하마스와 그 다른 어떤 세력이 싸워서 20명이 넘게 죽었대. 하마스랑 싸운 세력은 새로운 팀인 것 같아, 나도 어떤 단체인지 잘 모르겠는데 뭐하는 건지 모르겠어. 이슬람에서 서로 죽이는 것은 하람(금기)이야. 그건 하람이라구. 왜 서로 죽이는 거지. 단, 누군가가 자신의 가족을 죽였을 경우 그 상대를 죽일 수는 있어. 그건 하람이 아니야. 그들은 이슬람을 말하지만, 이슬람의 규율을 어기고 있어. 나는 하마스를 지지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하마스가 이스라엘과 싸울 때만 그렇다는 의미야. 얼마전 가자에서 하마스가 한 행동은 정말 옳지 않아. 파타와 하마스는 서로 권력 다툼을 하느라고 너무 바빠. 정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묻지 않고 있어. 그것이 팔레스타인의 현실이야.

그리고 그것에 대해 문제제기라도 하고 싶지만, 그것 또한 불가능에 가까워.

이스라엘엔 민주주의라도 있지, 팔레스타인에는 민주주의도 없잖아. 그것이 팔레스타인의 현실이야.

 

 

반다: 네 삶에서 바꾸고 싶은 것이 뭐야? 불가능에 가깝지만 꼭 바꾸고 싶은 어떤 것.

슈룩: 전공을 바꾸고 싶어. 난 정말 컴퓨터를 싫어해. 하지만 내 전공은 컴퓨터이지. 2년을 공부했으니까, 이제 2년만 더 공부하면 끝이야. 난 정말 물리학을 공부하고 싶었어. 하지만 컴퓨터를 전공해야 장학금을 조금 받을 수 있거든. 오로지 컴퓨터. 정말 난 컴퓨터가 너무너무 싫어.

물리를 공부하고 싶었어. 신이 만든 세상은 너무 신비하거든. 이슬람에 대해서도 더 공부하고 싶고.

그리고 나는 시를 쓰고 싶어. 어떤 것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 모르지만 총이나 어떤 것들 보다 시가 더 힘이 있을 때가 있지. 특히 좋은 시는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강한 영향력을 미친다고 생각하거든.

그리고 정말이지, 정말로 결혼할 남자를 내가 선택하고 싶어.

 

반다: 어떤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어?

슈룩: 모르겠어. 직업이 있었으면 좋겠고, 월급이 많다면 좋겠어. 그 이외의 것은 잘 모르겠어. 별로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어.

반다: 네가 결혼할 남자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아주 조금은 있는 거야? 여기서는 주로 남성집에서 청혼이 들어오면 여자쪽 집안의 부모님들이 결혼 여부를 결정하는 문화 잖아. 이를테면 너희 부모님이 선택한 남자가 네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거절할 수 있는 가능성 같은 것이 있는 건가?

슈룩: 아니, 그런 건 전혀 없어. 부모님이 선택한다면 해야 해.

 

 

반다: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 있어? 연애가 하람 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어. 그러니까 뭐 그 사람과 연애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네 안에서 혼자서만 좋아하는 것. 그런 것 말이야.

슈룩: 어렸을 때는 공부 하는라 너무 바빠서 그럴 여유가 없었어. 지금은 누군가 좋아하는 사람 없어. 친구들 중에서 그런 경우 얘기는 들었어.

 

 

*슈룩은 다음날 이 질문에 대해 내게 <편지>로 답변을 전했다.

 

 

To. my sweety friend banda

 

안녕.

사실 어제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지, 사실은 있었어. 그런데 할렘(슈룩의 언니)이 옆에 있어서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어, 미안해. 그 사람은 대학교 선생님이었어. 내 생각에 그도 나를 좋아했었다고 생각해. 그는 내게 늘 친절했지만, 난 그에게 늘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싫다고 말했어. 화난 표정으로. 그러던 어느날 그는 돈을 벌기 위해 두바이로 날아갔고, 그가 1년 만에 돌아왔을 땐 그가 약혼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 내 친구와 말이야. 세상에서 가장 슬픈 날 중에 하루였어.

그리고 나도 자유롭게 살고 싶어. 기회가 된다면 장학금 같은 것을 받아서 한국 같은 곳에 가서 공부를 하거나 직업을 구하고 싶어. 하지만 장학금을 받기 위해서는 힘 있는 사람을 알아야만 가능해, 내가 1등의 성적을 받는다고 해서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게 아니거든. 심지어 내게 그런 기회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으실 꺼야. 늘 나는 나에게 말하지, 네가 여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가끔 난 내가 똑똑한 것이 싫어. 내가 바보스러웠다면 이런 고민도 하지 않았겠지.

늘 나는 신에게 내 삶에 무언가가 변화되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했어. 그러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 그러던 어느날 네가 우리 마을에 왔어. 너무나 기뻤지만, 네가 돌아간 이후 내 삶은 더욱 슬퍼질 꺼라는 생각이 들어. 결국 난 다시 똑같은 삶을 살겠지. 정말이지 내 삶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오랫동안 너를 기억할 꺼야, 그리고 멀지 않은 미래에 꼭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래.

 

 

From. suroq

 슈룩이 그린 한달라

슈룩이 그린 한달라 

 

 

 

 

그녀는 종종 자신의 삶의 무력감에 대해서 이야기 했고, 이스라엘의 점령에 대해 모든 것은 너무나 일상이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이곳에서 많은 친구들과 이야기 할 때 마다 무기력의 벽을 자주 만나곤 했다.

많은 이들이 팔레스타인을 떠올릴 때 분리장벽이나 체크 포인트 등을 이야기 하지만,

내가 느끼는 팔레스타인의 키워드는 무.기.력 이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어?"

 

 

종종 왜 이스라엘이 그런 행동을 하느냐거나, 불합리한 일상의 어떤 것들에 대한 이유를 물을 때 슈룩은이렇게 답변하곤 한다.

"because sky is hight"

우리는 일상적으로 하루에도 몇번씩 서로에게 말하곤 한다.

'because sky is hight'

그 의미를 묻는다면

'nothing reason. just accept. and than say, thanks to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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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ck point for woman

  

Check point for woman

이스라엘 점령이 끝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당신이 팔레스타인 시골 마을에 산다면.

길을 걷다가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반가운 지인을 만났지만, 그가 남성이라면 인사를 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집 현관문 밖을 나가고 싶다면, 날이 덥고 땀이 흐르지만, 머리에 긴 수건을 여러 번 감아서 써야 한다, 반팔이나 반바지는 물론 금기이다. 머리 수건이 흐트러진다면 당신의 점령자들은 문화적인 공격을 해올 것이다. 소문과 소문으로 그래서 마침내 아버지로부터, 아버지가 부재하다면 남자 형제로부터 강도가 좀 더 높아진 관리를 받게 될 것이다.

만약 외갓 남성과 뭇 소문이라도 나게 된다면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비난이 쏟아질 것이며, 물리적 폭력이 동반된 관리 혹은 처벌을 받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오늘 옆 마을에 가고 싶다면 관리자인 아버지나 남자 형제 혹은 남편으로부터 허락을 받아야 한다. 왜 그곳에 가고자 하는지 누구와 동반해서 갈 것인지, 어떻게 갈 것인지를 보고한 뒤에.

 

길을 걷다가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음악소리가 흥겨워서 따라 부르거나 걸음이나 어깨에 리듬을 실어선 안 된다. 누군가는 당신을 보고 있을 것이다. 그 누군가에 의해 당신의 품격은 평가 받을 것이며 당신이 결혼하지 않았다면 결혼시장에서 당신의 가치에 현저한 타격을 줄지 모른다. 결혼을 했다면 남편으로 부터의 어떤 말나 액션이 올 것을 준비해야 한다.

그것은 당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당신의 춤과 노래는 오직 당신의 가족 혹은 남편을 위한 것이다.

친척의 결혼식장에서 여성들만을 위해 준비된 파티자리에서 당신은 맘껏 혹은 최대한 춤 출수 있다. 그러면 그중 ‘혼기에 찬’ 남성을 두고 있는 집안의 어른인 누군가가 당신의 몸과 춤과 집안을 검토해서 결혼을 제안해 올 것이다. 당신이 남성을 즐겁게 해 줄 수 있으며,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여성이라고 평가 받는 다면 말이다.

당신의 춤은 오로지 지금의 가족과 현재의 남편 혹은 미래의 남편을 위한 것이다.

 

당신이 특별히 뛰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된다면 니캅(눈을 제외한 얼굴을 가리는 베일)을 써야 한다. 물론 당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집에 외갓 남자가 왔다면 얼른 히잡을 두르거나 그게 귀찮다면 방에 들어가야 한다. 더운 여름날 실내에서 선풍기를 돌리는 것보다는 히잡을 쓰더라도 옥상의 여름밤이 좋아서 시원한 과일을 먹고 있는데 남편이 남성인 손님과 옥상에 올라와 대화를 하려고 한다면 옥상 빨래 줄에 커튼을 걸어서 성별 영역을 분리해야 한다.

 

모든 체크 포인트는 당신이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당신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한 명의 아들은 두 명의 딸과 동일하다는 이슬람의 가르침을 잊지 말아야 한다.

 

팔레스타인 혹은 이슬람 문화가 한국 사람들에게 너무나 반여성적으로 느껴질까?

몇 년 전 이란에서 만난 누군가에게 종교경찰이 베일을 쓰지 않은 여성에 대해 처벌하는 문화에 대해 물었을 때, 몸을 덮는 베일을 입지 않고 길을 걸어 다니는 성인 여성은 당신의 나라 기준으로 보자면 비키니를 입고 길을 걸어 다니는 것 동일한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히잡을 쓰는 것은 여성을 보호하기 위함이며, 여성들이 혼자 외출하는 것을 터부시 하는 것도 여성을 보호하기 위함이며, 가족이 아닌 남성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터부시하는 것도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 이라고 했었다.

물론 이곳에 머물면서 동일한 질문들을 해보았다. 내가 들은 답변은 이슬람 율법에 의하면 여성이 히잡을 착용해야 하며 아프가니스탄이나 사우디 아라비아 등에서 부르카를 입는 것은 현지의 전통이라고 했다. 이슬람 전통과 각 나라의 전통을 구분해야 한다면서 베일에 대한 비아랍권의 시선을 의식한 듯 오로지 히잡만 쓰면 되는 것이고 그건 쉬운 일이라고 했다.

 

 

집 옥상에 서 있는 여인

 

 

 

한국에서 브레지어를 하지 않고 티셔츠를 입고 지하철을 타거나 길을 걸어 다닌 다면, 이상한 혹은 천박한 여성이라는 시선을 받는 것을 감수해야 하고. 아예 옷을 다 벗고 다니라거나, 저러고 다니니까 성폭력이 일어나는 것이라는 수근거림을 들어야할지도 모른다.

머리카락을 가리지 않아서 남성들이 유혹의 시선을 느껴서 몸에 손을 댄다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논리’라고 생각하는 건 누구일까. 히잡을 쓰지 않은 것이 문제인 게 아니라 폭력을 행하는 자가 문제인데, 폭력의 잠재적 피해자인 것 만도 짜증나는데 그 원인 또한 피해자에게 있다고 한다.

긴소매 옷을 입지 않은 품행이 단정하지 않은 네가 문제인 것이고, 그래서 안좋은 소문이 나는 것이라고 비난한다.

긴소매 옷을 입지 않은 것이 문제인가, 그것으로 수근 대는 사람들이 문제인가.

거기서 우리는 그렇지 않다거나, 자신은 좀 낫다고 착각하는 것은 누구인가.

미니스커트를 입었기 때문에, 밤 늦게 돌아다녔기 때문에, 술을 마셨기 때문에, ‘헤프게’ 웃어서 상대를 착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하는 자들은 또 누구인가.

태아의 성별을 확인해서 남자 아이가 아님을 확인했을 때 낙태를 하는 것이 암암리에 일어 나는 곳은 어디인가.

 

 체크포인트

툴칼렘 근처 분리장벽 체크포인트

 

체크포인트에서 신분증을 보이고 있는 팔레스타인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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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 팔레스타인

 

 

* 웹캠- 화면 너머 네 얼굴을 볼 수 있어

 

 

오년 만에 다시 찾은 팔레스타인에서 어떤 단면들을 다시 보게 될지 궁금했다.

사실 두 번의 방문으로 변화를 읽어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지 모른다.

이미 존재했던 것을 이제야 본 것일 수도 있고, 몇 가지 표피적 변화를 어설프게 읽어 내는 수위일 가능성이 다분하다.

 

사람들은 여전히 친절했고, 태양은 뜨거웠다.

가장 일반적인 대중교통인 세르비스 버스는 통일된 외관으로 보다 번듯한 모습을 보여줬고, 여전한 체크 포인트들은 이 물질처럼 여기저기 존재했다. 핸드폰은 남성들을 중심으로 보다 일반화 되었고 카메라가 달린 핸드폰이 많아지면서 사진기만 보면 자신 혹은 자신의 아이를 찍어 달라고 하던 모습들은 예전보다는 많이 수그러든 것 같았다. 수세식 변기와 플라스틱 통에 수돗물을 받아서 손으로 뒤처리를 하던 문화는 호스가 연결된 비데 형태로 많이 변했다. 때로 좌변기 화장실에 화장지가 놓여 있는 모습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지금 머물고 있는 툴칼렘 근처의 시골 마을인 델 룩손에서도 일상적으로 콜라를 물처럼 들이키며 더위에 녹은 초콜렛을 먹고 있는 아이들과 로레알이나 도브 샴푸가 집 욕실에 즐비하게 놓여 있는 것을 보니 그것은 팔레스타인에서 거의 일상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초대 받아서 간 마흐무드의 집 옥상에 올라가서 보니 위성 티비 수신을 위한 안테나 접시가 수 많은 집 옥상에 설치된 것이 보였다. 이 마을의 작은 농장 오두막에 앉아서 올해 새로 생겼다는 한국 드라마 위성 채널을 볼 수 있는 정도가 된 것이다. 예루살렘 거리에서 만난 한 아이는 구준표를 아냐면서 한국에 가면 안부를 전해달라고 하기도 하였다.

가장 놀라웠던 외관상 변화중 하나는 생각보다 적지 않은 집에서 인터넷 전용선을 사용하는 모습이었다.

인터넷이 되는 컴퓨터 마다 대부분 달려있는 웹캠.

 

팔레스타인에 머물면서 길에서 만난 많은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족 중 여동생이, 형이, 삼촌이 그리고 또 그 누가 요르단에, 시리아에, 레바논에, 이집트에 혹은 유럽에 혹은 미국 등에 살고 있다는 말을 하는 이들이 정말 많다.

나는 그들이 지칭하는 친척이라 범위가 사돈에 팔촌까지 다 이야기하는 한국식으로 따지면 아주 먼 친척을 포함하는 이야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팔레스타인은 수십 명 혹은 수백 명 까지 자신의 가족, 혹은 가문이라면서 동질성을 가지기도 하니까 그럴 수 있으리라 막연히 생각했다.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해보니, 그것이 틀린 짐작은 아니었지만. 또 한편 그것은 팔레스타인 근대사에서 이스라엘에 의해 강제 이주 당한 직계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이며, 돈을 벌기 위해 요르단이나 두바이에 머물고 있는 아버지, 요르단이나 이집트에 있는 남자와 결혼을 해서 떠난 누나, 팔레스타인에서 산다는 것에 대해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젊은이들이 드림랜드를 찾아 유럽으로 미국으로 갔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내가 머물고 있는 델 룩손은 1948년 전쟁 때 8,000명이 요르단과 시리아 등지로 강제 이주 당했다고 하였다. 현재 마을 인구는 11,000명 정도인데, 그들은 웹캠을 통해 친척과 친구들의 안부를 묻고,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팔레스타인 행을 준비하면서 한국에 살고 있는 가자 출신인 마나르와 타미르를 났을 때,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을 가족을 위해 영상편지(비디오)를 만들어서 전해 주겠다고 제안했었다. 마나르와 타미르는 웹캠으로 가족들을 만나니까 괜찮다고 하면서 어머니가 영상편지를 보면 분명히 눈물을 흘릴 것이고 했던 게 기억났다.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카메라는 놀이의 도구이거나 기록의 도구이다.

이곳에서 카메라, 특히 웹카메라는 체크포인트에서 괴롭힘을 당하거나 거부당할 위험 없이, 언제 나올지 모르는 비자를 받기위해 몇 년을 막연히 기다리지 않고도 가족이나 그리운 이들과 눈빛을 나누며 익숙한 말투로 소식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도구였다.

게다가 이동이 제한적이고 높은 실업률과 할 수 있는 일도 마땅치 않아서 남는 게 시간인 수많은 젊은이들에겐 낯선 사람들과 화상 채팅을 하며 교류할 수 있는 도구이기도 했다.

 

물론 집에서 인터넷 전용선을 사용한다는 것은 전기세와 전용선 이용료를 감당할 수 있고, 컴퓨터를 구입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는 이들의 이야기이다. 엥겔지수가 소비의 전체를 차지하지 않는 경제조건 안에 놓여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 조건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시골 마을에서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피씨방을 이용한다.

웹캠으로라도 눈빛을 나누고 싶은 이와 날짜와 시간을 어렵사리 정해서 집이든 피씨방이든 컴퓨터 앞에 앉았다면 이제 운이 나쁘지 않기를 기도해야 한다.

완전 무장을 한 채로 마을을 드나드는 이스라엘 군인들이 심술을 부려 인터넷을 끊거나, 이스라엘의 전력 발전소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마을의 전기를 끊어버리는 일상이 그 순간은 작동하지 않는 시간대이기를.

 

물론 그 시간대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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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 마흐무드

 

“반다, 어제 왜 우리 집에 안 왔니?

우린 완전히 화났었어.

너를 위해 어제 생선을 사러 갔다 왔단 말이야.“

주름진 아부 마흐무드의 얼굴에 장난기 어린 웃음이 퍼졌다.

나와 미니는 파르하에서 열린 ‘인터네셔널 유스 페스티벌’에 다녀오느라 지금 머물고 있는 델 룩손을 떠나 1박2일 파르하에서 머물렀다고 서둘러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아부 마흐무드와 딸 아이야

 

 

바다에서 멀리 있는 가난한 이 마을에서 생선을 파는 곳을 본 적이 없는데, 아마도 멀리까지 가서 생선을 사왔나 보다. 사나흘 전 옴무 마흐무드(마흐무드의 어머니)와 아부 마흐무드(마흐무드의 아버지)의 초대로 저녁을 먹으러 갔을 때, 팔레스타인에서 고급 음식에 속하는 쌀과 닭고기로 만든 마끌로바를 준비해 두었었는데 육식을 하지 않는 내가 쌀밥만 먹고 닭고기를 먹지 않았던 것이 못내 걸렸었나 보다.

 

아부 마흐무드는 이곳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나와 미니의 일상을 섬세하게 챙겨주는 마흐무드의 아버지이다. 아직 40대인 아부 마흐무드는 나이보다 십년은 더 늙어 보인다. 요르단에 있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는 아부 마흐무드는 현재 옷 만드는 공장의 노동자이다. 공산품을 포함해서 거의 모든 물가가 한국과 거의 흡사하지만 교사의 월급이 월 50만원 내외라는 이곳에서 일곱 명의 자식을 건사하기 위해 아부 마흐무드는 공장에서, 옴무 마흐무드는 집에서 옷 만드는 일을 한다.

우리가 아부 마흐무드 집에서 갈 때마다 대학생인 그의 딸 쉬룩이 아랍어를 못하는 우리를 위해 영어로 통역을 해주는데, 아부 마흐무드는 자신이 대학에 다닐 때 영어로 된 원서를 읽으며 공부했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기여이 잘 기억나지 않는 영어 단어를 더듬거리며 직접 영어로 이야기를 건넨다.

 

이스라엘 점령이 끝나면 팔레스타인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냐는 나의 질문에 아부 마흐무드는 자신이 지금 40이 넘었는데, 과연 점령이 끝난 모습을 볼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점령은 그래도 끝날 것이라고 아무것도 아닌 이방인인 내가 힘주어 말했을 때, 그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더 이상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사랑하지(관심 갖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점령 때문에 게다가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하기 때문에 더욱,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팔레스타인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을.

아부 마흐무드는 하마스와 파타의 리더들은 계속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바쁘고 정작 팔레스타인 민중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른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점령으로 땅을 잃은 사람들에게 지원금을 주라고 해외 원조가 들어왔지만, 땅의 상당 부분을 고립장벽에 의해 잃어버린 자신은 그 돈을 정작 구경도 해 본적 없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다소 빈정거리는 표정으로 말했다. “반다, 그 돈이 어디로 갔을까? 누군가의 주머니로 갔겠지. 정부 관료들의 은행 잔고가 엄청나게 늘고 있다는 것을 네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말을 하는데 옆에 있던 옴무 마흐무드가 재빨리 아부 마흐무드의 다리를 친다. 무언가 아랍어로 조용히 말이 오간다. 그 뒤 아부 마흐무드는 다소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가 정부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면 어떻게 되는 지 알아? 이스라엘은 우리를 점령하고 있지만 그곳에선 정부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어, 그들에겐 민주주의가 있거든. 하지만 팔레스타인 이곳에 민주주의는 없어.”

우리는 마흐무드의 집 옥상에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가난한 동네는 다 마찬가지이듯 이곳도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모든 집이 창문을 열어 놓은 덥고 조용한 여름날 밤의 조건을 의식해서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한다는 것을 짐작 할 수 있었다.

 

가시선인장열매 사비르

 

아부 마흐무드는 깊게 담배를 한 대 피우고는 새벽 6시 출근을 염려하는 것인지 이제 자러 가야겠다고 했다. 잠자러 간다고 옥상을 내려간 얼마 뒤 그는 가시 선인장 열매인 사비르를 한 접시 들고 올라 와서는 남아 있는 우리들 손에 사비르를 하나씩 건네주고 다시 내려간다. 정작 아부 마흐무드 자신은 입맛에 맞지 않아서 결코 먹지 않는다는 사비르. 나는 그가 가시가 잔득 돋친 사비르 양쪽 끄트머리를 손가락으로 아슬하게 쥐고 껍질을 까서 가족들에게 주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아마 자러 들어가는 길에 손님을 남겨 두고 먼저 자리를 뜨는 것이 미안해서 열 개가 넘는 사비르의 껍질을 깎았을 것이다. 아까 내게 생선을 발라 줄 때 처럼 정성스럽게, 고된 노동으로 거칠고 무뎌진 손에 가시 껍질 안의 여린 사비르 열매가 부서지지 않도록 조심스러워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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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사진기앞에서 예쁜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들

사진기앞에서 예쁜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들

 

 

 

결혼식 전 가족과 친지, 친구들과 모여 집 앞에서 파티를 한다.

누구의 결혼식인지 모르고 가게 된 그곳에서 이방인인 나 조차도 그가 결혼식 주인공인 알아 볼 수 있는 말끔한 양복 차림에 머리에 기름을 바른 단정한 모습.

친구들은 주변에서 춤을 추고, 화려하게 장식된 붉은 양산 아래의 그는 다소 경직된 모습이다.

단정한 셔츠에 양복바지를 입은 친한 친구로 보이는 이가 그의 가까이 와서 포옹을 하며 볼에 키스를 한다. 그도 같이 친구의 볼에 키스를 한다. 오른쪽 왼쪽. 친구도 그의 볼에 왼쪽 오른쪽 그리고 다시 반복 해서 열 번쯤 혹은 열 서너번쯤 볼에 키스를 하고 입술에도.

경직되어 있던 그의 표정은 울먹이는 표정으로 변하는 듯 싶더니 잠시 뒤 다시 표정의 균형을 잡는다.

 

중동지역을 여행한 이들 중 누군가들은 길에서 손을 잡고 다니는 남성들을 보며, 중동엔 공원에서 손을 잡고 다니는 게이 커플이 많다고 하지만. 내가 아는 한 중동지역에서 동성애는 금기사항이다.

누군가는 그들의 친밀함을 동성애로 부르는 것에 왜 주저 하냐고 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상대에게 갖는 친밀함을 무엇으로 정체화 하는지는 모를 일.

다만 대부분은 그것에 대해 그것은 친한 우정이라고 강조할 것이고, 동성애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하거나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어넘길 꺼라는 예상만.

 

 

내가 가본 중동의 몇 나라 결혼식들은 모두 계속 되는 춤과 춤, 노래와 노래.

밤이 세도록, 이튿날에도 그 이틑날에도. 만약 신랑이 부자라면 그 잔치는 결혼을

전후해서 열흘이나 그 이상.

 

신부는 여자들만의 파티가 벌어지는 시간 이외에는 밀폐된 혹은 창이 있는 어떤 방에 앉아서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파티에서 흘러나오는 찢어질 듯 큰 볼륨의 음악을 들을 것이다. 어쩌면 창문을 통해 춤추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될지도.

 

사진을찍어달라던 아이들

 

아직 옷에 대한 큰 금기가 없는 예닐곱 살의 여자 아이들이 잔치가 벌어지는 한쪽 귀퉁이 여자들 공간에서, 여자 어른들 틈에 끼어 박수를 치며 재잘 거린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어른들의 결혼식을 보면서 자신의 결혼식을 상상할까?

자신에게 멋진 금팔찌와 목걸이를 선물해줄 멋진 남자를 상상하면서?

어른들로부터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배워왔듯이, 그것이 곧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자신의 존재감을 인정받는 일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짐작하면서...

친척의 결혼식을 보며 그 아이의 어머니는 딸을 곱게 잘 키워야겠다고 다시 결심할 것이다.

너무 뚱뚱하지 않게 너무 마르지도 않게.

너무 똑똑하지 않게 너무 우둔하지도 않게.

너무 거만하지 않게 너무 순하지만도 않게.

너무 크지도 않게 너무 작지도 않게.

결코 완벽하게 충족 될 수 없는 틀 안에 딸을 고이 넣기 위해서.

그 틀에서 절대 조금이라도 벗어나지 않고, 가능한 그 틀과 흡사하게 잘 끼워 맞춰져 들어갈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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