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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ck point for woman
이스라엘 점령이 끝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당신이 팔레스타인 시골 마을에 산다면.
길을 걷다가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반가운 지인을 만났지만, 그가 남성이라면 인사를 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집 현관문 밖을 나가고 싶다면, 날이 덥고 땀이 흐르지만, 머리에 긴 수건을 여러 번 감아서 써야 한다, 반팔이나 반바지는 물론 금기이다. 머리 수건이 흐트러진다면 당신의 점령자들은 문화적인 공격을 해올 것이다. 소문과 소문으로 그래서 마침내 아버지로부터, 아버지가 부재하다면 남자 형제로부터 강도가 좀 더 높아진 관리를 받게 될 것이다.
만약 외갓 남성과 뭇 소문이라도 나게 된다면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비난이 쏟아질 것이며, 물리적 폭력이 동반된 관리 혹은 처벌을 받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오늘 옆 마을에 가고 싶다면 관리자인 아버지나 남자 형제 혹은 남편으로부터 허락을 받아야 한다. 왜 그곳에 가고자 하는지 누구와 동반해서 갈 것인지, 어떻게 갈 것인지를 보고한 뒤에.
길을 걷다가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음악소리가 흥겨워서 따라 부르거나 걸음이나 어깨에 리듬을 실어선 안 된다. 누군가는 당신을 보고 있을 것이다. 그 누군가에 의해 당신의 품격은 평가 받을 것이며 당신이 결혼하지 않았다면 결혼시장에서 당신의 가치에 현저한 타격을 줄지 모른다. 결혼을 했다면 남편으로 부터의 어떤 말나 액션이 올 것을 준비해야 한다.
그것은 당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당신의 춤과 노래는 오직 당신의 가족 혹은 남편을 위한 것이다.
친척의 결혼식장에서 여성들만을 위해 준비된 파티자리에서 당신은 맘껏 혹은 최대한 춤 출수 있다. 그러면 그중 ‘혼기에 찬’ 남성을 두고 있는 집안의 어른인 누군가가 당신의 몸과 춤과 집안을 검토해서 결혼을 제안해 올 것이다. 당신이 남성을 즐겁게 해 줄 수 있으며,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여성이라고 평가 받는 다면 말이다.
당신의 춤은 오로지 지금의 가족과 현재의 남편 혹은 미래의 남편을 위한 것이다.
당신이 특별히 뛰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된다면 니캅(눈을 제외한 얼굴을 가리는 베일)을 써야 한다. 물론 당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집에 외갓 남자가 왔다면 얼른 히잡을 두르거나 그게 귀찮다면 방에 들어가야 한다. 더운 여름날 실내에서 선풍기를 돌리는 것보다는 히잡을 쓰더라도 옥상의 여름밤이 좋아서 시원한 과일을 먹고 있는데 남편이 남성인 손님과 옥상에 올라와 대화를 하려고 한다면 옥상 빨래 줄에 커튼을 걸어서 성별 영역을 분리해야 한다.
모든 체크 포인트는 당신이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당신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한 명의 아들은 두 명의 딸과 동일하다는 이슬람의 가르침을 잊지 말아야 한다.
팔레스타인 혹은 이슬람 문화가 한국 사람들에게 너무나 반여성적으로 느껴질까?
몇 년 전 이란에서 만난 누군가에게 종교경찰이 베일을 쓰지 않은 여성에 대해 처벌하는 문화에 대해 물었을 때, 몸을 덮는 베일을 입지 않고 길을 걸어 다니는 성인 여성은 당신의 나라 기준으로 보자면 비키니를 입고 길을 걸어 다니는 것 동일한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히잡을 쓰는 것은 여성을 보호하기 위함이며, 여성들이 혼자 외출하는 것을 터부시 하는 것도 여성을 보호하기 위함이며, 가족이 아닌 남성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터부시하는 것도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 이라고 했었다.
물론 이곳에 머물면서 동일한 질문들을 해보았다. 내가 들은 답변은 이슬람 율법에 의하면 여성이 히잡을 착용해야 하며 아프가니스탄이나 사우디 아라비아 등에서 부르카를 입는 것은 현지의 전통이라고 했다. 이슬람 전통과 각 나라의 전통을 구분해야 한다면서 베일에 대한 비아랍권의 시선을 의식한 듯 오로지 히잡만 쓰면 되는 것이고 그건 쉬운 일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브레지어를 하지 않고 티셔츠를 입고 지하철을 타거나 길을 걸어 다닌 다면, 이상한 혹은 천박한 여성이라는 시선을 받는 것을 감수해야 하고. 아예 옷을 다 벗고 다니라거나, 저러고 다니니까 성폭력이 일어나는 것이라는 수근거림을 들어야할지도 모른다.
머리카락을 가리지 않아서 남성들이 유혹의 시선을 느껴서 몸에 손을 댄다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논리’라고 생각하는 건 누구일까. 히잡을 쓰지 않은 것이 문제인 게 아니라 폭력을 행하는 자가 문제인데, 폭력의 잠재적 피해자인 것 만도 짜증나는데 그 원인 또한 피해자에게 있다고 한다.
긴소매 옷을 입지 않은 품행이 단정하지 않은 네가 문제인 것이고, 그래서 안좋은 소문이 나는 것이라고 비난한다.
긴소매 옷을 입지 않은 것이 문제인가, 그것으로 수근 대는 사람들이 문제인가.
거기서 우리는 그렇지 않다거나, 자신은 좀 낫다고 착각하는 것은 누구인가.
미니스커트를 입었기 때문에, 밤 늦게 돌아다녔기 때문에, 술을 마셨기 때문에, ‘헤프게’ 웃어서 상대를 착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하는 자들은 또 누구인가.
태아의 성별을 확인해서 남자 아이가 아님을 확인했을 때 낙태를 하는 것이 암암리에 일어 나는 곳은 어디인가.
툴칼렘 근처 분리장벽 체크포인트
체크포인트에서 신분증을 보이고 있는 팔레스타인노동자
* 웹캠- 화면 너머 네 얼굴을 볼 수 있어
오년 만에 다시 찾은 팔레스타인에서 어떤 단면들을 다시 보게 될지 궁금했다.
사실 두 번의 방문으로 변화를 읽어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지 모른다.
이미 존재했던 것을 이제야 본 것일 수도 있고, 몇 가지 표피적 변화를 어설프게 읽어 내는 수위일 가능성이 다분하다.
사람들은 여전히 친절했고, 태양은 뜨거웠다.
가장 일반적인 대중교통인 세르비스 버스는 통일된 외관으로 보다 번듯한 모습을 보여줬고, 여전한 체크 포인트들은 이 물질처럼 여기저기 존재했다. 핸드폰은 남성들을 중심으로 보다 일반화 되었고 카메라가 달린 핸드폰이 많아지면서 사진기만 보면 자신 혹은 자신의 아이를 찍어 달라고 하던 모습들은 예전보다는 많이 수그러든 것 같았다. 수세식 변기와 플라스틱 통에 수돗물을 받아서 손으로 뒤처리를 하던 문화는 호스가 연결된 비데 형태로 많이 변했다. 때로 좌변기 화장실에 화장지가 놓여 있는 모습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지금 머물고 있는 툴칼렘 근처의 시골 마을인 델 룩손에서도 일상적으로 콜라를 물처럼 들이키며 더위에 녹은 초콜렛을 먹고 있는 아이들과 로레알이나 도브 샴푸가 집 욕실에 즐비하게 놓여 있는 것을 보니 그것은 팔레스타인에서 거의 일상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초대 받아서 간 마흐무드의 집 옥상에 올라가서 보니 위성 티비 수신을 위한 안테나 접시가 수 많은 집 옥상에 설치된 것이 보였다. 이 마을의 작은 농장 오두막에 앉아서 올해 새로 생겼다는 한국 드라마 위성 채널을 볼 수 있는 정도가 된 것이다. 예루살렘 거리에서 만난 한 아이는 구준표를 아냐면서 한국에 가면 안부를 전해달라고 하기도 하였다.
가장 놀라웠던 외관상 변화중 하나는 생각보다 적지 않은 집에서 인터넷 전용선을 사용하는 모습이었다.
인터넷이 되는 컴퓨터 마다 대부분 달려있는 웹캠.
팔레스타인에 머물면서 길에서 만난 많은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족 중 여동생이, 형이, 삼촌이 그리고 또 그 누가 요르단에, 시리아에, 레바논에, 이집트에 혹은 유럽에 혹은 미국 등에 살고 있다는 말을 하는 이들이 정말 많다.
나는 그들이 지칭하는 친척이라 범위가 사돈에 팔촌까지 다 이야기하는 한국식으로 따지면 아주 먼 친척을 포함하는 이야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팔레스타인은 수십 명 혹은 수백 명 까지 자신의 가족, 혹은 가문이라면서 동질성을 가지기도 하니까 그럴 수 있으리라 막연히 생각했다.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해보니, 그것이 틀린 짐작은 아니었지만. 또 한편 그것은 팔레스타인 근대사에서 이스라엘에 의해 강제 이주 당한 직계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이며, 돈을 벌기 위해 요르단이나 두바이에 머물고 있는 아버지, 요르단이나 이집트에 있는 남자와 결혼을 해서 떠난 누나, 팔레스타인에서 산다는 것에 대해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젊은이들이 드림랜드를 찾아 유럽으로 미국으로 갔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내가 머물고 있는 델 룩손은 1948년 전쟁 때 8,000명이 요르단과 시리아 등지로 강제 이주 당했다고 하였다. 현재 마을 인구는 11,000명 정도인데, 그들은 웹캠을 통해 친척과 친구들의 안부를 묻고,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팔레스타인 행을 준비하면서 한국에 살고 있는 가자 출신인 마나르와 타미르를 났을 때,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을 가족을 위해 영상편지(비디오)를 만들어서 전해 주겠다고 제안했었다. 마나르와 타미르는 웹캠으로 가족들을 만나니까 괜찮다고 하면서 어머니가 영상편지를 보면 분명히 눈물을 흘릴 것이고 했던 게 기억났다.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카메라는 놀이의 도구이거나 기록의 도구이다.
이곳에서 카메라, 특히 웹카메라는 체크포인트에서 괴롭힘을 당하거나 거부당할 위험 없이, 언제 나올지 모르는 비자를 받기위해 몇 년을 막연히 기다리지 않고도 가족이나 그리운 이들과 눈빛을 나누며 익숙한 말투로 소식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도구였다.
게다가 이동이 제한적이고 높은 실업률과 할 수 있는 일도 마땅치 않아서 남는 게 시간인 수많은 젊은이들에겐 낯선 사람들과 화상 채팅을 하며 교류할 수 있는 도구이기도 했다.
물론 집에서 인터넷 전용선을 사용한다는 것은 전기세와 전용선 이용료를 감당할 수 있고, 컴퓨터를 구입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는 이들의 이야기이다. 엥겔지수가 소비의 전체를 차지하지 않는 경제조건 안에 놓여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 조건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시골 마을에서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피씨방을 이용한다.
웹캠으로라도 눈빛을 나누고 싶은 이와 날짜와 시간을 어렵사리 정해서 집이든 피씨방이든 컴퓨터 앞에 앉았다면 이제 운이 나쁘지 않기를 기도해야 한다.
완전 무장을 한 채로 마을을 드나드는 이스라엘 군인들이 심술을 부려 인터넷을 끊거나, 이스라엘의 전력 발전소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마을의 전기를 끊어버리는 일상이 그 순간은 작동하지 않는 시간대이기를.
물론 그 시간대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반다, 어제 왜 우리 집에 안 왔니?
우린 완전히 화났었어.
너를 위해 어제 생선을 사러 갔다 왔단 말이야.“
주름진 아부 마흐무드의 얼굴에 장난기 어린 웃음이 퍼졌다.
나와 미니는 파르하에서 열린 ‘인터네셔널 유스 페스티벌’에 다녀오느라 지금 머물고 있는 델 룩손을 떠나 1박2일 파르하에서 머물렀다고 서둘러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아부 마흐무드와 딸 아이야
바다에서 멀리 있는 가난한 이 마을에서 생선을 파는 곳을 본 적이 없는데, 아마도 멀리까지 가서 생선을 사왔나 보다. 사나흘 전 옴무 마흐무드(마흐무드의 어머니)와 아부 마흐무드(마흐무드의 아버지)의 초대로 저녁을 먹으러 갔을 때, 팔레스타인에서 고급 음식에 속하는 쌀과 닭고기로 만든 마끌로바를 준비해 두었었는데 육식을 하지 않는 내가 쌀밥만 먹고 닭고기를 먹지 않았던 것이 못내 걸렸었나 보다.
아부 마흐무드는 이곳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나와 미니의 일상을 섬세하게 챙겨주는 마흐무드의 아버지이다. 아직 40대인 아부 마흐무드는 나이보다 십년은 더 늙어 보인다. 요르단에 있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는 아부 마흐무드는 현재 옷 만드는 공장의 노동자이다. 공산품을 포함해서 거의 모든 물가가 한국과 거의 흡사하지만 교사의 월급이 월 50만원 내외라는 이곳에서 일곱 명의 자식을 건사하기 위해 아부 마흐무드는 공장에서, 옴무 마흐무드는 집에서 옷 만드는 일을 한다.
우리가 아부 마흐무드 집에서 갈 때마다 대학생인 그의 딸 쉬룩이 아랍어를 못하는 우리를 위해 영어로 통역을 해주는데, 아부 마흐무드는 자신이 대학에 다닐 때 영어로 된 원서를 읽으며 공부했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기여이 잘 기억나지 않는 영어 단어를 더듬거리며 직접 영어로 이야기를 건넨다.
이스라엘 점령이 끝나면 팔레스타인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냐는 나의 질문에 아부 마흐무드는 자신이 지금 40이 넘었는데, 과연 점령이 끝난 모습을 볼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점령은 그래도 끝날 것이라고 아무것도 아닌 이방인인 내가 힘주어 말했을 때, 그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더 이상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사랑하지(관심 갖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점령 때문에 게다가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하기 때문에 더욱,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팔레스타인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을.
아부 마흐무드는 하마스와 파타의 리더들은 계속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바쁘고 정작 팔레스타인 민중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른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점령으로 땅을 잃은 사람들에게 지원금을 주라고 해외 원조가 들어왔지만, 땅의 상당 부분을 고립장벽에 의해 잃어버린 자신은 그 돈을 정작 구경도 해 본적 없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다소 빈정거리는 표정으로 말했다. “반다, 그 돈이 어디로 갔을까? 누군가의 주머니로 갔겠지. 정부 관료들의 은행 잔고가 엄청나게 늘고 있다는 것을 네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말을 하는데 옆에 있던 옴무 마흐무드가 재빨리 아부 마흐무드의 다리를 친다. 무언가 아랍어로 조용히 말이 오간다. 그 뒤 아부 마흐무드는 다소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가 정부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면 어떻게 되는 지 알아? 이스라엘은 우리를 점령하고 있지만 그곳에선 정부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어, 그들에겐 민주주의가 있거든. 하지만 팔레스타인 이곳에 민주주의는 없어.”
우리는 마흐무드의 집 옥상에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가난한 동네는 다 마찬가지이듯 이곳도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모든 집이 창문을 열어 놓은 덥고 조용한 여름날 밤의 조건을 의식해서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한다는 것을 짐작 할 수 있었다.
가시선인장열매 사비르
아부 마흐무드는 깊게 담배를 한 대 피우고는 새벽 6시 출근을 염려하는 것인지 이제 자러 가야겠다고 했다. 잠자러 간다고 옥상을 내려간 얼마 뒤 그는 가시 선인장 열매인 사비르를 한 접시 들고 올라 와서는 남아 있는 우리들 손에 사비르를 하나씩 건네주고 다시 내려간다. 정작 아부 마흐무드 자신은 입맛에 맞지 않아서 결코 먹지 않는다는 사비르. 나는 그가 가시가 잔득 돋친 사비르 양쪽 끄트머리를 손가락으로 아슬하게 쥐고 껍질을 까서 가족들에게 주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아마 자러 들어가는 길에 손님을 남겨 두고 먼저 자리를 뜨는 것이 미안해서 열 개가 넘는 사비르의 껍질을 깎았을 것이다. 아까 내게 생선을 발라 줄 때 처럼 정성스럽게, 고된 노동으로 거칠고 무뎌진 손에 가시 껍질 안의 여린 사비르 열매가 부서지지 않도록 조심스러워 하면서.
사진기앞에서 예쁜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들
결혼식 전 가족과 친지, 친구들과 모여 집 앞에서 파티를 한다.
누구의 결혼식인지 모르고 가게 된 그곳에서 이방인인 나 조차도 그가 결혼식 주인공인 알아 볼 수 있는 말끔한 양복 차림에 머리에 기름을 바른 단정한 모습.
친구들은 주변에서 춤을 추고, 화려하게 장식된 붉은 양산 아래의 그는 다소 경직된 모습이다.
단정한 셔츠에 양복바지를 입은 친한 친구로 보이는 이가 그의 가까이 와서 포옹을 하며 볼에 키스를 한다. 그도 같이 친구의 볼에 키스를 한다. 오른쪽 왼쪽. 친구도 그의 볼에 왼쪽 오른쪽 그리고 다시 반복 해서 열 번쯤 혹은 열 서너번쯤 볼에 키스를 하고 입술에도.
경직되어 있던 그의 표정은 울먹이는 표정으로 변하는 듯 싶더니 잠시 뒤 다시 표정의 균형을 잡는다.
중동지역을 여행한 이들 중 누군가들은 길에서 손을 잡고 다니는 남성들을 보며, 중동엔 공원에서 손을 잡고 다니는 게이 커플이 많다고 하지만. 내가 아는 한 중동지역에서 동성애는 금기사항이다.
누군가는 그들의 친밀함을 동성애로 부르는 것에 왜 주저 하냐고 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상대에게 갖는 친밀함을 무엇으로 정체화 하는지는 모를 일.
다만 대부분은 그것에 대해 그것은 친한 우정이라고 강조할 것이고, 동성애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하거나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어넘길 꺼라는 예상만.
내가 가본 중동의 몇 나라 결혼식들은 모두 계속 되는 춤과 춤, 노래와 노래.
밤이 세도록, 이튿날에도 그 이틑날에도. 만약 신랑이 부자라면 그 잔치는 결혼을
전후해서 열흘이나 그 이상.
신부는 여자들만의 파티가 벌어지는 시간 이외에는 밀폐된 혹은 창이 있는 어떤 방에 앉아서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파티에서 흘러나오는 찢어질 듯 큰 볼륨의 음악을 들을 것이다. 어쩌면 창문을 통해 춤추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될지도.
아직 옷에 대한 큰 금기가 없는 예닐곱 살의 여자 아이들이 잔치가 벌어지는 한쪽 귀퉁이 여자들 공간에서, 여자 어른들 틈에 끼어 박수를 치며 재잘 거린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어른들의 결혼식을 보면서 자신의 결혼식을 상상할까?
자신에게 멋진 금팔찌와 목걸이를 선물해줄 멋진 남자를 상상하면서?
어른들로부터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배워왔듯이, 그것이 곧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자신의 존재감을 인정받는 일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짐작하면서...
친척의 결혼식을 보며 그 아이의 어머니는 딸을 곱게 잘 키워야겠다고 다시 결심할 것이다.
너무 뚱뚱하지 않게 너무 마르지도 않게.
너무 똑똑하지 않게 너무 우둔하지도 않게.
너무 거만하지 않게 너무 순하지만도 않게.
너무 크지도 않게 너무 작지도 않게.
결코 완벽하게 충족 될 수 없는 틀 안에 딸을 고이 넣기 위해서.
그 틀에서 절대 조금이라도 벗어나지 않고, 가능한 그 틀과 흡사하게 잘 끼워 맞춰져 들어갈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palestine_ ooo_09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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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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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의 그 '전통 문화'를 비판하기 위함인가요, 아니면 그들이나 우리나 마찬가진데 비판할 거 잇냐는 건가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저야 그들의 저런 문화를 야만이라고 생각하지만..부가 정보
앙겔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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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전통 문화를 야만이라고 비판하다가 그 야만이라 부를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 내가 살고 있는 사회를 돌아보는 글이라고 읽었습니다 그들을 보고 쉽게 야만적이라 말할 수 있지만 그걸 판단할 수 있다고 자기가(사는 사회가) 낫다고 착각하는 게 아니냐고 되묻는 거죠부가 정보
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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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합니다-부가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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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은 비판대로 하고 자기 반성은 또 그것대로 하면 되죠.괜히 나를 돌아본답시고 우리나 저들이나 다른 게 뭔가, 우리나 제대로 해자, 이러면 이게 도대체 뭔가요? 그냥 전통으로 인정하자? 막말오 우리가 이명박 비판할 때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나는 그럴 자격 있는가, 이러지는 않잖아요..그리고 그들의 저런 문화는 분명 야만적입니다. 문화적 상대성 운운할 거리가 아니죠. 그건 명백히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침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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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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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그렇게 읽을 이유가 있나요? 저는, "보호하기 위함이다"라는 논리로 그 곳과 이 곳 모두에서 폭력이 행사되고 있다고 읽었는데요. 그렇다면 반성과 운동은 그 곳과 이 곳 모두에서 필요한 것이겠죠. "문화적 상대성"이라는 말은 아무도 한 적이 없습니다.저는 오히려 ...님의 덧글이 더 무섭습니다. 그들의 문화가 "야만"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 곳에 가서 그들을 '계몽'해주면 되는 것일까요? 미군처럼 들어가서 그들을 전통으로부터 구해내면 되는 것일까요?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보편적인 기준에 따라 문화들을 줄 세우고 열심히 비판하면 되는 것일까요? 이런 것들은 '운동'이기보다 '폭력'에 가깝지 않을까요?
여성에 대한 폭력과 억압에 저항하는 '어떤 운동'이 필요하겠지만, 그 곳에서도 이 곳에서도 필요한 것이죠. 또 안과 밖을 넘나들면서, 서로를 가로지르고 연결되면서 할 수 있는 것이죠. 아마도 그러기 위해서 banda님도 팔레스타인에 갔을 것 같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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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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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워요~ 가기 전에 조짱님 통해서만 근황을 들었네요... 집떠나 고생하면서도 중심잃지 않고 여유를 즐기실 수 있기를~문화차이를 경험한다는 것은 우리를 성찰하게 해주죠. 좋은 글 나눠주어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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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님의 견해에 더 공감합니다. 문화적 상대성이라는 것은 박물관적 취미죠. 분명히 타인을 더 존중하는 문화가 있고 더 억압하는 문화가 있는데 이슬람이나 유교는 대표적으로 남성들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아닌가요. 한국도 끔찍하지만 밖에 나갈때 보자기를 뒤집어쓰거나 혼전성행위를 했다고 해서 오빠가 죽이거나 하지는 않죠. 제가 무슬림노동자들 많이 만나봤는데 여성에 대한 태도가 동전의 양면이더군요. 보호 아니면 멸시. 결국 여성은 약자이거나 열등한 존재라는 거죠. 그에 비하면 우리는 여자는 왜 군대안가냐고 절규합니다. 많이 좋아진거죠.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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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건 팔레스타인과 관계없는 방글라데시 남성 얘긴데 아내가 해산할때 거긴 어떻게 하냐고 물어봤더니 남자들은 무서워서 다 도망간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우리나라 남자들은 그 날 밖에서 지켜주지 않으면 두고두고 욕먹는 경우 많습니다.부가 정보
발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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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이나 한국이나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든 여자로 살아내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 삼십여명 밖에 안되는 사무실에서마저도 까칠하고 과민반응하는 '여직원'으로 버티기가 너무 힘드네ㅠ..ㅠ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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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네요. 저도 삼십여명 밖에 안되는 곳에서 과민반응했던 적이 많아서 굉장히 정겹네요. 블로그 가보니까 휴대폰으로 동네 강아지 사진찍는것도 저랑 취미가 비슷하신것같아요. 휴대폰에 많이 저장되어있어요. 자주 봐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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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발랄님이 저랑 많이 비슷하신 분 같아서 그냥 물어보는건데요, 제가 갑자기 한꺼번에 다 버리는 버릇이 있어서 얼마전에 메일/쪽지함을 다 삭제했거든요. 그 뒤로 메일과 쪽지가 한통도 안와요. 허구헌날 오던 그 광고메일들과 제가 가입했던 카페운영자가 보내던 쪽지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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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하나 생각나는게 있어서 말씀드리죠. 후세인은 세속주의여서 그때는 여성의 지위가 좀 좋아졌다고 하더군요. 작은 방에서 각료회의할때 딱 한명만 전통복장입은 여자가 있었는데 권위적인 핵물리학자였죠. 실력이 있으면 성별따지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점령후 시아파가 득세하면서 미국NGO를 환영한 여성을 공격하고 여기에 보수적인 여성들도 가담했는데 이걸 우리나라 반전여성활동가가 그 여자들을 미국앞잡이라는 식으로 경멸하더군요. 전 그 분이 이라크에서 태어났으면 어땠을지 좀 궁금합니다. 사람은 특정한 상황에서는 특정하게 반응하게 되어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동일하죠. 물론 미국의 NGO는 현대판 선교사로서 제국주의의 앞잡이는 분명하겠죠.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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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말씀드릴건 누군가에게 성격 좀 고쳐라 이렇게 말하는것과 칼을 들이대면서 복종시키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입니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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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NGO들이 놀라운 점도 있죠. 예전에 엠네스티인가 휴먼라이츠와치인가 팔레스타인보고서 봤더니 이스라엘방위군이 팔레스타인 민중을 공격할 때 머리를 때린거 회수 몇회, 발로 걷어찬거 회수 몇회, 이렇게 소상히 적혀있더군요. 그런게 도대체 왜 필요한지는 잘모르겠지만 상황은 그림으로 그려지더군요. 동티모르사태때도 그때 제가 컴이 없어서 동생한테 사무실에서 프린트 좀 해오라고 시켰더니 엠네스티 보고서를 한 백장갔고 오더군요. 책 읽는 기분이었어요. 그 때 스페인해커가 인도네시아 정부사이트를 공격해서 대문에다가 동티모르를 해방하라고 적어놨죠. 아체도 끔찍하죠.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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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라깡이 촘스키같은 지식인을 가리켜서 미국인들은 글을 머리로 쓰는게 아니라 발로 쓴다고 경멸했죠. 하지만 미국 사회학은 쓰레기여도 심리학은 괜찮다고 하더군요. 어제부터 제가 열받아서 말이 많은데 이해바랍니다.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