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리장벽

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01/28
    그리고 다시 체크포인트(1)
    반다

그리고 다시 체크포인트(1)

아부 마흐무드는 다음 주에 장벽 너머에 있는 땅으로 올리브 수확을 간다고 했다.

며칠 전 집 근처 땅으로 올리브 수확을 갈 때는 두 아들과 함께 였지만 이번엔 혼자간다고 했다.

다른 가족들에겐 장벽 너머에 땅에 갈 수 있는 허가증이 안 나오니까.

나는 아부의 장벽 너머에 있는 땅으로 올리브 수확을 같이 가기로 했다.

하지만 장벽 넘어 그 땅을 가려면 외국인인 내게도 허가증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아부에게 허가증을 신청해 보겠다고 했다.

아부는 허가증을 신청할 수 있는 툴칼렘 DCO(District Coordination Office)가는 길을 상세히 아랍어로 종이에 적어 주고 4쉐켈 이라는 글자에 밑줄을 그었다. 아부는 툴칼렘 시내버스 정류장 아래서 택시를 타면 되고 기사에게 약도 종이를 보여주라고 했다.

잘 다녀오라면서 택시비 바가지 쓰지 말라는 말도 덧붙인다.

  

 

사진 090.jpg

                                                                 팬스형 분리장벽 너머로 보이는 마을

                                                                

 

택시 기사가 DCO로 가는 길이라면서 내려 준 곳은 체크포인트로 보이는 곳이었다.

길게 줄을 서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예루살렘 길목에 있는 퀄런디아 체크포인트와 비슷했다.

체크포인트를 지나야 한다는 설명을 미처 듣지 못한 나는 혹시 택시 기사가 엉뚱한 곳에 내려 준건 아닐까 걱정하며 주변 상인들에게 물어 봤더니 DCO를 가려면 지나가야 하는 길이 맞다고 한다.  

체크포인트를 지나 갈 준비를 미처 못 한 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지난주 퀄런디아 검문소도 가벼이 지나쳤던 기억이 떠올라서 이미 줄 지어 서 있는 사람들 뒤에 몸을 세웠다.

회전 철문을 지나 엑스레이 검색대에 가방을 올려놓았다.

가방은 검은 벨트를 타고 엑스레이 박스를 지나 반대편에 가서 멈춘다.

군인은 유리창이 있는 작은 방 안에서 스피커를 통해 이미 엑스레이 검색 박스를 지나가 반대편에 가있는 내 가방을 다시 가져오라고 했다. 가방 속 물건을 다 꺼내서 검색대 위에 다시 놓으라고 했다. 나는 가방 속 카메라, 테입, 수첩, 지갑, 펜, 사탕, 담배, 라이터 등을 꺼내서 검색대 위에 다시 놓았다.

벨트가 돌아가고 엑스레이 검색 박스를 지난 짐들은 반대편에 다시 멈췄다. 군인은 다시 카메라를 들어서 렌즈를 분리하라고 했다. 내가 분리가 불가능 하다고 했더니 엑스레이를 다시 통과 시키라고 한다. 다시 한 번 엑스레이 검색 박스를 지나는 카메라.

잠시 뒤 군인은 지갑 속의 물건을 꺼내서 창문을 통해 군인에게 보여 달라고 했다.

현금과 카드와 몇개의 메모 쪽지들.

  

                                                                                                                                                                        

090930.jpg

 

  

군인은 검색대 반대편에 보이는 아이보리색 철문을 가르키며 그 문을 열고 들어가라고 한다.

짐을 챙겨 가방에 넣으려고 했더니, 다 두고 그냥 들어가란다. 철문의 손잡이를 돌렸지만, 철문은 열리지 않았다. 철문위에 빨간 불이 들어와 있다. 내가 고개를 돌려 유리창문 안의 군인을 쳐다보자, 군인은 문을 다시 돌려 보라고 했다. 나는 다시 문고리를 돌려 보았지만, 역시 문은 열리지 않았다. 군인은 다시 철문을 천천히 돌려 보라고 했다. 다시 문고리를 잡았다. 잠시 뒤 철문에서 치지직 하는 기계음이 들렸다, 군인은 철문을 다시 돌려보라고 했다. 이번엔 문고리가 돌아간다, 철문 위에 파란 불이 들어온다. 방안으로 들어가자 철문에서 치지직 하는 기계음이 다시 들린다. 아마도 밖에서 문이 잠겼나 보다.

 

두 평 남짓한 텅 빈 방.

반대편에 문이 하나 더 있다. 다가가서 문고리를 돌려 보았지만 돌아가지 않는다.

두 개의 철문이 마주 보고 있는 창문이 없는 방이다.

천장에서 뭔가 소리가 난다.

두꺼운 철망으로 된 천장위에 왠 사람이 서 있다.

F16인가, 일 미터도 넘는 총을 들고 있는 군인, 아놀드슈왈츠제네거 같은 몸을 가진.

군인은 천장에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순간 나는 눈을 돌린다.

쳐다봐도 되는 건가 하는 두려움 같은 감정이 스친다. 그리고 불쾌감도.

그는 별 말을 하지 않았고, 딱히 악의가 있는 표정을 짓진 않는 거 같다.

다시 천장을 올려 봤을 때 그는 그냥 물끄러미 나를 쳐다 보는 것 같았다.

안에서는 열 수 없는 문이 달린 방. 그리고 천장에서 방 안에 있는 사람을 내려다 보도록 만들어진 방. 작은 감옥 같은 방 안이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천장의 군인은 내게 별 말을 하지 않았고, 방 밖에서도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방문 틈으로 뭔가 보일까 싶어 틈을 살피지만 바깥이 보일 정도의 틈은 아니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냐고 바깥을 향해 물었지만 답은 없다.

왠지 서로의 얼굴을 보고 있는 천장의 군인에겐 물을 수가 없다.

물어도 답변이 없을 것 같아서 인지 뭔가 두려워서 인지는 잘 모르겠다.

방안을 서성이고 바깥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귀울여 보기도 하지만 뭐가 뭔지 모르겠다. 

아마도 십여분이 흘렀을까....

잠시 뒤 치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밖으로 나오라는 말이 스피커를 통해 들린다.

엑스레이 검색대 위에는 내 카메라가 뷰파인더 부분이 열린채로 눕혀져 있고, 다른 짐들이 어지럽게 헤집어져 있다.

군인은 짐을 챙겨서 왼쪽 문으로 나가라고 했다.

짜증스러운 기분으로 짐을 챙기면서 창문 너머 군인에게 이제 끝난 거냐고 물었다.

군인은 이건 시작일 뿐이라면서 문을 지나면 조금 놀라게 될 꺼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창문 너머 군인의 얼굴을 봤을 때, 그의 얼굴은 비아냥 이나 귀찮음이 아니라 약간은 안쓰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짐을 챙겨들고 그 군인이 말했던 왼쪽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몇몇 팔레스타인 노동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작은 문을 향해 줄을 서 있었다.

 

 

 

사진 775.jpg

                                            퀄런디아 검문소에서 회전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 090930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