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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28
    그리고 다시 체크포인트(1)
    반다
  2. 2010/01/26
    2010/01/26(1)
    반다
  3. 2010/01/26
    장벽 넘어에 있는 땅은 빼앗길 염려가 없어
    반다

그리고 다시 체크포인트(1)

아부 마흐무드는 다음 주에 장벽 너머에 있는 땅으로 올리브 수확을 간다고 했다.

며칠 전 집 근처 땅으로 올리브 수확을 갈 때는 두 아들과 함께 였지만 이번엔 혼자간다고 했다.

다른 가족들에겐 장벽 너머에 땅에 갈 수 있는 허가증이 안 나오니까.

나는 아부의 장벽 너머에 있는 땅으로 올리브 수확을 같이 가기로 했다.

하지만 장벽 넘어 그 땅을 가려면 외국인인 내게도 허가증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아부에게 허가증을 신청해 보겠다고 했다.

아부는 허가증을 신청할 수 있는 툴칼렘 DCO(District Coordination Office)가는 길을 상세히 아랍어로 종이에 적어 주고 4쉐켈 이라는 글자에 밑줄을 그었다. 아부는 툴칼렘 시내버스 정류장 아래서 택시를 타면 되고 기사에게 약도 종이를 보여주라고 했다.

잘 다녀오라면서 택시비 바가지 쓰지 말라는 말도 덧붙인다.

  

 

사진 090.jpg

                                                                 팬스형 분리장벽 너머로 보이는 마을

                                                                

 

택시 기사가 DCO로 가는 길이라면서 내려 준 곳은 체크포인트로 보이는 곳이었다.

길게 줄을 서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예루살렘 길목에 있는 퀄런디아 체크포인트와 비슷했다.

체크포인트를 지나야 한다는 설명을 미처 듣지 못한 나는 혹시 택시 기사가 엉뚱한 곳에 내려 준건 아닐까 걱정하며 주변 상인들에게 물어 봤더니 DCO를 가려면 지나가야 하는 길이 맞다고 한다.  

체크포인트를 지나 갈 준비를 미처 못 한 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지난주 퀄런디아 검문소도 가벼이 지나쳤던 기억이 떠올라서 이미 줄 지어 서 있는 사람들 뒤에 몸을 세웠다.

회전 철문을 지나 엑스레이 검색대에 가방을 올려놓았다.

가방은 검은 벨트를 타고 엑스레이 박스를 지나 반대편에 가서 멈춘다.

군인은 유리창이 있는 작은 방 안에서 스피커를 통해 이미 엑스레이 검색 박스를 지나가 반대편에 가있는 내 가방을 다시 가져오라고 했다. 가방 속 물건을 다 꺼내서 검색대 위에 다시 놓으라고 했다. 나는 가방 속 카메라, 테입, 수첩, 지갑, 펜, 사탕, 담배, 라이터 등을 꺼내서 검색대 위에 다시 놓았다.

벨트가 돌아가고 엑스레이 검색 박스를 지난 짐들은 반대편에 다시 멈췄다. 군인은 다시 카메라를 들어서 렌즈를 분리하라고 했다. 내가 분리가 불가능 하다고 했더니 엑스레이를 다시 통과 시키라고 한다. 다시 한 번 엑스레이 검색 박스를 지나는 카메라.

잠시 뒤 군인은 지갑 속의 물건을 꺼내서 창문을 통해 군인에게 보여 달라고 했다.

현금과 카드와 몇개의 메모 쪽지들.

  

                                                                                                                                                                        

090930.jpg

 

  

군인은 검색대 반대편에 보이는 아이보리색 철문을 가르키며 그 문을 열고 들어가라고 한다.

짐을 챙겨 가방에 넣으려고 했더니, 다 두고 그냥 들어가란다. 철문의 손잡이를 돌렸지만, 철문은 열리지 않았다. 철문위에 빨간 불이 들어와 있다. 내가 고개를 돌려 유리창문 안의 군인을 쳐다보자, 군인은 문을 다시 돌려 보라고 했다. 나는 다시 문고리를 돌려 보았지만, 역시 문은 열리지 않았다. 군인은 다시 철문을 천천히 돌려 보라고 했다. 다시 문고리를 잡았다. 잠시 뒤 철문에서 치지직 하는 기계음이 들렸다, 군인은 철문을 다시 돌려보라고 했다. 이번엔 문고리가 돌아간다, 철문 위에 파란 불이 들어온다. 방안으로 들어가자 철문에서 치지직 하는 기계음이 다시 들린다. 아마도 밖에서 문이 잠겼나 보다.

 

두 평 남짓한 텅 빈 방.

반대편에 문이 하나 더 있다. 다가가서 문고리를 돌려 보았지만 돌아가지 않는다.

두 개의 철문이 마주 보고 있는 창문이 없는 방이다.

천장에서 뭔가 소리가 난다.

두꺼운 철망으로 된 천장위에 왠 사람이 서 있다.

F16인가, 일 미터도 넘는 총을 들고 있는 군인, 아놀드슈왈츠제네거 같은 몸을 가진.

군인은 천장에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순간 나는 눈을 돌린다.

쳐다봐도 되는 건가 하는 두려움 같은 감정이 스친다. 그리고 불쾌감도.

그는 별 말을 하지 않았고, 딱히 악의가 있는 표정을 짓진 않는 거 같다.

다시 천장을 올려 봤을 때 그는 그냥 물끄러미 나를 쳐다 보는 것 같았다.

안에서는 열 수 없는 문이 달린 방. 그리고 천장에서 방 안에 있는 사람을 내려다 보도록 만들어진 방. 작은 감옥 같은 방 안이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천장의 군인은 내게 별 말을 하지 않았고, 방 밖에서도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방문 틈으로 뭔가 보일까 싶어 틈을 살피지만 바깥이 보일 정도의 틈은 아니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냐고 바깥을 향해 물었지만 답은 없다.

왠지 서로의 얼굴을 보고 있는 천장의 군인에겐 물을 수가 없다.

물어도 답변이 없을 것 같아서 인지 뭔가 두려워서 인지는 잘 모르겠다.

방안을 서성이고 바깥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귀울여 보기도 하지만 뭐가 뭔지 모르겠다. 

아마도 십여분이 흘렀을까....

잠시 뒤 치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밖으로 나오라는 말이 스피커를 통해 들린다.

엑스레이 검색대 위에는 내 카메라가 뷰파인더 부분이 열린채로 눕혀져 있고, 다른 짐들이 어지럽게 헤집어져 있다.

군인은 짐을 챙겨서 왼쪽 문으로 나가라고 했다.

짜증스러운 기분으로 짐을 챙기면서 창문 너머 군인에게 이제 끝난 거냐고 물었다.

군인은 이건 시작일 뿐이라면서 문을 지나면 조금 놀라게 될 꺼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창문 너머 군인의 얼굴을 봤을 때, 그의 얼굴은 비아냥 이나 귀찮음이 아니라 약간은 안쓰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짐을 챙겨들고 그 군인이 말했던 왼쪽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몇몇 팔레스타인 노동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작은 문을 향해 줄을 서 있었다.

 

 

 

사진 775.jpg

                                            퀄런디아 검문소에서 회전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 09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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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6

 

팔레스타인에서의 경험을 글로 잘 공유하고 싶고,

그러면서 마음을 켜켜이 그려 보고 싶었는데, 정말 잘 되지 않아서 블로그를 그냥 두고 있었어.

그런데 그러면 안된다고 해서 오늘 홈피에 써놨던 글을 옮겨다 붙이기라도 했어.

 

오늘 테입 녹취를 풀다가 그때 이야기 할 때는 몰랐던 그 아이의 마음.

이미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지금.

서울에 와서야 그 시공간이 기록된 전자 입자들 사이에서야 마음을 읽을 수 있었어.

네가 어떤 절망을 만나고 있는지 말이야.

미안한거 같기도 하고 뭔가 방조자인거 같기도 하고...

나는 그렇게 자주 네가, 일상을 촘촘한 유리벽처럼 느끼고 있는지 몰랐던거야.

마침 너로 부터 misscall부재중 전화가 왔어.

나도 열심히 misscall만들었는데,

오늘은 왠일인지 알수 없는 히브리어만 나와.

무슨 일인거야.

그냥 핸드폰 충전할 돈이 없어서 그런거인 거지.

 

네가 그랬지.

페르세폴리스의 그 아인 정말 기적에 가까운 거라고.

팔레스타인 보다 더한 이란에서 말이지.

 

우리들이 뭔가를 다르게 만들어 볼 수 있을까.

아니면 네가 붙잡고 있는 알라신이 뭔가 조금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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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 넘어에 있는 땅은 빼앗길 염려가 없어

abuMahmud.jpg


장벽 너머 땅문서를 보여주는 아부 마흐무드

 

 

 

장벽 건설에 맞서 싸우는 빌레인 마을의 집회를 다녀 왔던 날.

빌레인에서 촬영했던 영상과 사진들을 구경하던 아부 마흐무드가 갑자기 안방으로 갔다.

아부는 옷장 위 선반에서 상자를 꺼내고 그 안의 비닐 봉투에 쌓인 무언가를 꺼내오며 말했다.

아부 마흐무드는 각 잡고 앉더니 내게 옆에 앉으란다.

카메라를 켜라는 의미이다.

아부 마흐무드는 뭔가 카메라 앞에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할 때마다 저렇게 다소 흥분된 표정으로 각을 잡는다.

 

분리 장벽 너머에 있는 아부 마흐무드의 땅 문서다.

 

아부는 내게 문서의 한 줄 한 줄을 짚어가며 오랫동안 설명해 주었다.

“이 문서는 1944년에 발행된 것이고, 여기에 내 할아버지 이름이 있어.

이건 할아버지의 아들들 이름이야, 나의 아버지와 삼촌들 인거지.

여기가 나의 아버지. 그의 아들 이름과 그의 아내, 두 명의 아내 이름이야“

조금만 힘주어 만지면 곧 찢어 질 것 같은 빛바랜 낡은 문서에는 아랍어 문자가 빼곡했다. 영국 식민지 시절 발행 된 땅 문서 였다. 또 다른 종이를 보여주며 아부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건 이후에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에서 발행 된 것이야. 여기에도 그 이름들이 있고, 그 아들들의 이름이 있지. 이게 내 이름이야. 여기 나의 어머니 이름도 있어. 아버지가 어머니랑 결혼 할 때 금을 줄 수 있는 형편이 안 되서 그 대신 땅을 주는 걸로 했거든.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50%씩 소유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 그리고 이건 여기가 얼만큼의 도넘(땅의 단위)인지 써 있는 거고, 이건 지역의 번호고”

문서엔 그 땅이 어떻게 가족들에게 내려오고 있는지에 대한 역사가 적혀 있었다.

 

“이걸 보고 그들이 허가증을 주는 거야. 이 문서를 보면 거기가 내 땅이라는 걸 알 수 있거든. 이건 법원에서 받은 서류야. 거기(내 땅)에 들어 갈 수 있는.”

“반다야, 이거 보이니. 이게 첫 번째 허가증이야. 이 첫 번째 허가가 2004년 9월 24년이지. 이게 없인 내 땅에 들어 갈 수 없다는 거야.”

 

가족 당 한 개 씩 발행된다는 허가증. 올리브 수확 철이면 온 가족이 다 같이 몇 주씩 올리브를 따러 가지만, 장벽 넘어 땅은 오로지 아부 마흐무드만 갈 수 있다. 가지가 휘어지도록 매달린 올리브를 혼자 다 딸 수가 없어서 큰 아들 마흐무드 이름으로 허가증을 몇 번이나 신청해 보았지만 돌아 온 건 기다려 보라는 말과 긴 침묵이었다. 올해도 아부 마흐무드는 아들 마흐무드 이름으로 허가증을 신청했지만 한 달 째 답이 없다고 했다.

 

 

장벽땅11.jpg

 

장벽 너머 땅으로 올리브 수확을 가기 위해 검문을 기다리는 아부 마흐무드와 농민들

 

 

 

“이 문서는 영국 정부에게서 받은 거잖아. 오로지 델룩손 마을 사람들만 영국 정부로부터 나온 증명서를 가지고 있어. 영국 정부에 있는 사람이 예전에 우리 마을 사람들에게 뭘 원하냐고 물었어. 돈을 원하는지 다른 무엇을 원하는지. 그런데 우리는 돈이 아니라 문서를 요구했지. 우리 땅이라는 걸 증명할 수 있는 문서를 달라고. 그래서 그들이 우리에게 이 문서를 만들어 준거야. 아띨이나 다른 마을에는 없어, 오로지 델룩손에만 있거든. 그래서 장벽 너머의 우리 땅은 빼앗길 염려가 없어.”

 

아부의 말처럼 영국 정부에서 발행한 땅 문서가 오로지 델룩손 마을에만 있는지 아닌지 나는 모른다. 굳이 확인해 보지도 않았다. 중요한 건 아부의 믿음이었다, 땅을 빼앗기는 다른 마을의 소식을 듣지만 자신 마을의 땅은 정말로 안전할 것이라는.

  

얼마 전 부린 마을에 갔을 때 보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이스라엘 군인이 와서 뿌리 뽑은 올리브 나무들이 땅 한 켠에 모아 두었던 모습.

나는 이스라엘이 부린에서 처럼 그리고 다른 수 많은 마을에서 처럼 땅을 빼앗가 가면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아부는 반복해서 영국 정부에서 발행한 땅 문서가 오로지 델룩손 마을에만 있다는 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이 땅을 빼앗아 간데도)팔레스타인 정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들은 이스라엘 정부나 돕겠지.

그럼 난?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나는 총도 없고, 나는 나의 땅에 가서 머물 수 밖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어? 나는 누구를 죽일 수도 없고, 이스라엘 군인들, 흠... 하지만 이건 합법적인 증명서야. 나와 모든 농민들에게, 만약 그들이 훔친다고 해도 영원히 훔칠 수는 없어. 10년, 15년, 아무튼 몇 년 이후엔 모든 땅을 그의 주인에게 돌려 줘야해. 이것 과 동일한 문서가 영국에 보관되어 있거든“

 

난 읽을 수도 없는 문자들을 열심히 봤다. 자기 땅에 대한 확실한 문서가 있으니 땅은 안전하다고 믿고 싶은 아부의 마음에 열심히 부응해야 할 것만 같았다.

델룩손은 초기에 분리 장벽 건설이 이루어진 마을이다. 마을에서 장벽 건설이 될 때 싸움이 있긴 했지만, 결국 우린 모두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고 전에 아부가 말해 준적 있었다.

그 때는 단지 장벽이 생기는 것일 뿐, 이렇게 허가증이 있어야만 들어 갈 수 있는 상황이 될 줄 잘 몰랐다고 했었다. 아부는 분리장벽이 건설되던 당시를 이야기 하며, ‘그땐 그것이 현실이었다’는 말을 여러 번 했었는데.

아마 빌레인처럼 끈질기게 싸우지 못해 본 것에 대한 아쉬움과 델룩손에 장벽이 건설될 당시는 장벽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이 인 줄 잘 몰랐다는 무지에 대한 후회가 담겨 있는 말 일지도 모르겠다.

 

아부 마흐무드의 아스라한 꿈과 믿음.

그도 나도,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이스라엘 불도저가 와서 올리브 나무를 밀어 버릴 때, 땅 문서는 물에 젖으면 녹아 버리고 마는 종이에 불과해 질 수 있다는 것을.

 

 

 

 

 

장벽앞사람들2.jpg

    

장벽 너머로 올리브 수확을 간 가족을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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