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게 썼는데 두번이나 날아갔다.

더 쓸 의욕이 안생긴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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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두율씨는 한국사회에 무엇을 바란걸까?

비전향 장기수가 30년 감옥에 갇혀 있는 사회에서 비전향 경계인이 가능하다고 생각한걸까? 바꾸겠다고 생각한걸까?

 

- 송두율씨를 이용하려던 사람들은 무엇을 바란걸까?

애초 어떤 판단을 했던 걸까? 그 판단이 어떻게 변한걸까? 그 판단들을 송두율씨와 공유했을까?

 

- 개인의 실존적 비극에서 운동이 연유한다. 송두율씨는 자신의 행동이 실존적 요구에서 비롯한 것임을 헤아려 달라고 항변하는 것 같다. 그를 이용하려던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배신감을 느낀다. 그런데 나도 송두율씨를 헤아릴 수 없는게, 그는 한국사회에 대해 알고 있었고 판단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들을 갖고 있었다. 그는 지식인이다. 아무것도 없이 맨몸으로 부딪히는 이들과 같은 선상에서 평가할 수 없다. 그가 쥐고 있고 이용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옳고/그름을 아는 게 운동은 아니다. 그 입장이 어떤 효과를 남기는지 보는거지.

 

- 대법원의 판결이 한국사회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가?

송두율씨 주변 사람들은 여론을 읽고, 여론을 바꾸기 위해 궁리한다. 법원의 판결까지 통틀어, 조선일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고 믿는 것과 같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생각이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는 운동과 조선일보는 같은 편에 있다.(BG철학을 공유한다.) 화면을 가득 메운 진보/보수 프레임이 답답했다. 그들은 서로 적인가? 공생관계이지 않은가? 송두율씨 주변으로 조선일보, 한나라당 치들이 달려들었고, 역시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고 믿는 민족주의 세력들이 모이는 건 당연하다. 그 운동이 자신의 적과 닮는 것도 당연하다. 잘 모르겠지만, 이데올로기에서의 계급투쟁은 그런 식으로 벌여내서는 안될 것 같다. 동떨어져 보이지만 스티브 제이 굴드의 작업처럼 목적론적인 진화론과 싸우는 게 훨씬 더 계급적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