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소통이 가장 어렵다.
당위를 강요하는 내 말하기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건 알지만.
그것만으로 환원되지는 않는다.
자신이 말하는 게 어떤 효과를 남기는지 고려하지 않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자기 말의 논리적인 정당함을 증명하는 것이 말하기의 목적이 되어버린 게 아닌지 짐작해보는데,
결국 자기가 이기기 위해서 말하는 게 되버리는 거다.
그런 상황에서는 그 말이 현실에서 어떤 물리적 효과를 남길지를 보기 어렵다.
내가 바라보는 효과가 언제나 정확하고, 타당할 수는 없겠지만 -
내가 고집을 부리는 건 내가 옳다는 확신과 설사 그릇되더라도 그것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이다.
결국 실천에서 증명되리라 생각한다.
반성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그 반성이 반영되지 않는다면, 그것만큼 허망한 일은 없다.
다음에 같은 반성을 하지 않기 위한 반성을 하는 이들은 드물다.
반성도, 그 반성이 타당하다는 증명을 위해 이루어진다.
반성은 난무한다. 그래왔고, 그럴것이다.
...결국 실천에서 증명할 것이다.
묵묵히 그저 하면 될일이다.
떡고물 바라지 않고.
인정받으려 하지 않고.
현재의 역사를 특권화시키지 않고. 미래의 어느 순간을 특권화시키지 않고.
내일 죽어도, 이파리 하나 틔우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