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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의천검을 쥔 것처럼>

 

정말이지 사랑스러운 영화였다. 온갖 내러티브로 가득한 영화만 보다가, 이렇게 이미지들을 적극 활용한 영화를 보게 된 건 일종의 행운이었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만큼. 영화를 보고 나니, 감독의 화려한 수상경력들이 괜한 것이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도 뒤따랐다. 정신없이 산만한 이 영화를, 이미지의 과잉이라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DVD의 한 트랙으로 담겨있는, 어느 영화제에서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나온 질문들에 답변해주는 윤성호 감독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그의 성실함이랄지 가치관이랄지, 그런 것들이 느껴져서 이 영화가 더욱 좋아졌다.

 

나는 내가 의천검을 쥔 것처럼, 이라는 범상치 않은 제목에는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상처주고 또 그러한 행위로 인해 다시 상처받는 평범한 한 인간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제목의 그런 의미를 읽고 나니, 재작년 레알판타에서던가, 시각장애를 가진 여자와 청각장애를 가진 남자가 서로 사랑하다가 결국 헤어지자 그들의 장애가 순식간에 없어지더라는 내용을 가진 어떤 단편영화를 봤을 때처럼 뒤통수를 한 방 맞은 기분이었다.

 

어쩌면, 길이가 짧다는 숙명적 한계를 안고 있는 단편영화 만들 때 가장 어려운 것은 내러티브를 유지하는 동시에 하고자 하는 말을 담아내는 것일터. 어려운 길을 뚫고 지나가려는 노력도 좋지만, 때로 이렇게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담아내기 위해 주변에 늘어서 있는 많은 것들을 적극 이용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통찰력과 관찰력도 필요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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