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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단편영화산책>에서 보는 독립영화에 대한 비평문을 모으고, 독립영화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모아보는 곳입니다.

5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6/22
    독립영화에 대해서...
    독립영화비평
  2. 2007/06/22
    <쇼킹 패밀리 Shocking Family> (이경순, 2006) 발제문...
    독립영화비평
  3. 2007/06/14
    <발제>독립영화의 미래는 있다...
    독립영화비평
  4. 2007/06/14
    <대추리전쟁>을 감상하고....
    독립영화비평
  5. 2007/06/13
    2007/06/13
    독립영화비평
  6. 2007/06/13
    독립영화
    독립영화비평
  7. 2007/06/13
    <파산의기술>
    독립영화비평
  8. 2007/06/13
    농가일기
    독립영화비평
  9. 2007/06/13
    전략적 유연성
    독립영화비평
  10. 2007/06/13
    공격 대상인 민주 시민 <대추리 전쟁> -김현지-(2)
    독립영화비평

독립영화에 대해서...

독립영화(다큐멘터리)는 독립해야 하는가? 안창현 (영상이론 3) 영화 매체는 그것이 허구의 이야기를 보여주든, 있는 사실을 그대로 드러내려 하든 카메라가 존재하는 한 찍혀진 대상이 있게 마련이다. 어떤 앵글을 선택해서 어떤 사이즈로 보여주는가에 따라, 또한 렌즈나 조명 등 그 밖의 많은 요소들에 의해서, 그 대상의 다양한 측면을 부각시킬 수 있지만, 그 대상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못한다. 이런 영화 매체는, 그래서 다큐멘터리적이다. 빌 니콜스의 말대로, 모든 영화는 얼마간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겠다. 다큐멘터리는 우리 주변의 세상을 객관적으로 관찰한다. 허구의 이야기를 구성하지 않고, 다큐멘터리는 찍는 대상을 그대로 드러내준다고 우리는 흔히 믿게 된다. 영화는 분명 매체 그 자체로 그러한 특징을 갖는다고 할 수 있고, 기록하는 다큐멘터리의 기능을 생각해 보았을 때 사실, 영화만큼 그것에 잘 어울리는 매체는 없을 것이다. 극영화나 실험영화와는 다르게 다큐멘터리에서 유독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쟁점들이나 영화의 진정성이 중요한 문제로 드러나는 것은 바로 영화에서의 카메라가 세상을 객관적으로 드러내줄 수 있다는 생각과 또 그래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다큐멘터리는 감춰진 자리를 비추는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함께 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잘 보지 못했던 자리, 그 속의 사람들을 비추는 것이 다큐멘터리가 아닐까? 아니, 다큐멘터리라는 특정한 장르에만 그러한 기능이 주어진다는 것보다, 이는 카메라 자체의 속성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우리들이 흔히 지나치는 일상 속에서, 일상화된 시선으로 자연스럽게만 바라보는 주변의 것들을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게 하는 것, 이것이 카메라다. 카메라라는 객관적 기계 장치에 의해 찍혀진 것들을 이렇게 다시 돌아보고 그 의미를 새롭게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것은 평소에 우리가 자연스런 일상의 모습으로 무심히 지나쳤던 것이기도 하겠지만,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것이거나 우리가 보지 않으려 했던 것들일 수도 있다. 우리들을 다시 돌아보고, 우리들 주변에서 우리가 알지 못했거나 소외되고 고통 받는 사회의 이면을 비춰주는 것, 이러한 카메라의 기능은 우리에게 카메라의 윤리적 측면을 생각해 보도록 한다. 이는 논픽션으로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낸다고 믿게 되는 다큐멘터리뿐만 아니라, 극장에서 상영되는 주류의 대중적인 극영화에서도 사실 어느 정도는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카메라는 원래 무언가를 다시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메라를 든 사람은 그 안에 찍히는 대상에 대해서 그것이 사물이든, 사람이든, 어떤 윤리가 필요한 것 아닐까? 물론, 카메라로 찍혀진 현실이 그것 자체로 진실을 보증하지는 못한다. 그것이 다큐멘터리라고 해도 그럴 것이다. 영화에서 리얼리즘을 표방한다고 하는 것, 그래서 그 영화가 우리들 현실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은 정확히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반영이라는 말을 그대로 사용한다고 했을 때, 현실의 이미지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영화의 리얼리즘이 반영하는 것은 현실이 아니라 현실의 이미지이다.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는 다큐멘터리적인 효과, 현실을 강하게 환기시키는 그 현실 효과를 특징으로 할 수 있다고 하겠으나, 그것 자체로 현실을 온전히 반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악의적으로 왜곡의 의도를 가지지 않는다고 해도, 어떤 진정성을 가지고 현실의 진실을 드러내려 한다고 해도, 최소한 그것은 현실의 어떤 측면만을 드러낸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사실, 영화 속에 표현된 작가의 진정성을 이야기하는 것도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은 분명 영화를 통해서 작가의 진정성을 느낄 수도 있을테지만, 그 힘겨운 환경 속에서 전력하는 독립 다큐멘터리 작가들의 진정성을 누가 의심할 수 있을까, 그 진정성이 진실을 보증해주는 것은 물론 아니다. 진정성이 거짓과 비극을 불러올 수도 있는 것이다. 유대인 학살의 비극을 자행한 나치에게서 진정성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다큐멘터리가 말하고 있는 진실은 무엇인가? 우리는 다큐멘터리들을 어떤 진실의 모습으로써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아니, 도대체 영화는 진실을 말할 수 있는가? 진실이 그것 자체로 중요한 것은 아니라면 어떨까? 아마도 많은 진실들 중에 하나를 다큐멘터리들은 겨우, 간신히 드러내려는지도 모른다. 영화 한 편이 온전히 그 진실 전체를 드러낼 수는 없다. 영화 한 편으로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런 다큐멘터리들을 본 우리들 관객이 아닐까? 혼란스런 현실 속에 어떤 진실을 담으려는 다큐멘터리는 현실 속의 남겨진 진실들을 온전히 관객들의 몫으로 남긴다. 이것은 다큐멘터리의 한계가 아니라, 오히려 다큐멘터리의 가치이고 진짜 힘일 것이다. 진실은 이것이라고 강요하는 세상에 대해 다양한 진실들을 드러내고 환기시키는 힘 말이다. 독립(다큐멘터리)영화는 독립해야 하는가? 우리는 자본으로부터, 권력으로부터 다큐멘터리들이 독립해서는 안된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인간이 자연에 기생하고 있는 그 모습 그대로 독립영화는 자본에, 권력에 당당히 기생해서 자신의 다양한 모습들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들의 도처에 있는 자본과 권력에서 독립영화가 왜 독립해야 하나? 독립영화는 어디에서도 독립하지 않는다고 말해야 할지 모른다. 자본과 권력의 숙주에 기생하면서, 그 거대한 숙주에서 조금씩 조금씩 하지만 당당히 피 빨아먹으며, 독립영화는 그렇게 언제나 우리들과 함께 있다고 말해야 옳을지 모른다. 숙주가 빈혈로 쓰러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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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킹 패밀리 Shocking Family> (이경순, 2006) 발제문...

"빨간눈사람"이 <쇼킹 패밀리>를 이야기하다 안창현 (영상이론 3) Ⅰ. "빨간눈사람"은... 독립프로덕션 빨간 눈사람은 1998년 4월 20일 창립되었습니다. 스스로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은 항상 난감한 일입니다. 때문에 "빨간눈사람"에 대한 소개를 우리의 "영화 선언"으로 대신합니다. Ⅱ. "빨간눈사람"의 영화 선언... 우리의 인습, 제도가 완전히 자의적이라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우리를 억압하고 우롱하는 체제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실체를 폭로하고, 그것을 변화시켜야 한다. 우리(내)가 영화(저술)작업에서 할 일도 바로 그런 것이다. 완전히 뒤집어 엎어 버리는 날까지 이 정신과 작업은 지속될 것이다. - 미셸 푸코의 1971년 어록을 재구성함 우린 억압없는 세상, 차별없는 세상, 착취없는 세상, 편견없는 세상, 인간과 자연이 평화롭게 공생하는 세상을 꿈꾼다. 이 꿈을 실현하는 도구로 우리가 선택한 것이 "영화"다. - 빨간눈사람의 오리지널 어록 Ⅲ. 우리의 적과 현실... 1. "CONTACT"를 믿지 않는 오만한 인간 우주인에 대한 일체의 편견과 조장된 적개심을 경계하고자 한다. 생명과 자연의 가능성을 짓밟고 서려하는 인간의 오만함은 가장 우려할만한 파시즘이다. 우리는 우주에 비해 지극히 작은 인간으로서 우주를 동경한다. 우리는 우주 곳곳에서 문명을 번창시키고 우리의 존재를 지켜보고 있을 그들에게 살아있는 자로서의 우정을 표시하고자 한다. 2. 자연을 잠식하는 문명인들 문명과 자연의 이원론적인 인식이 지구전체의 물질적 기반을 파괴하고 있다. 만물의 영장이라 스스로 칭하는 낯 뜨거운 왕자병, 人本主義라 부르는 我田引水격 가치관의 썩어가는 속내를 보여주고자 한다. 3. 성과 인종을 차별하는 자들 유색인종, 소수인종, 국외자들의 차별은 모순의 적나라함으로 인해 쉽게 인식하고 분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느 차별보다도, 지능적이고 조직적이며 일상적인 차별이 여성에 대해 작동되고 있다. 인류의 절반에 대한 노예화에는 어떻게 이처럼 관대할 수 있을까. 그것은 인류의 절반이 가해자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4. 제3세계의 식민지화에 열 올리는 제국주의자들 경제와 문화를 앞세워 우리의 영혼을 잠식해 오는 제국주의를 우리는 경계한다. 전 인류의 2/3가 그 나머지 인류의 포식을 위한 식민지가 되어 있음을 인식한다. 5. 한국이라는 미친 개 애국, 혹은 민족, 윤리란 미명하에 자행되는 전 국가적 규모의 비이성적인 광기가 우리를 당혹케 한다. 파쇼적인 극우와 완고한 보수의 이데올로기가 팽배한 이 땅의 현실을 마냥 함구하고 지켜볼 수는 없다. Ⅳ. 우리의 믿음과 자세... 1. 영화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또한 세상은 영화로 바뀌지 않는다. 인간의 의식과 기술과 자본으로 생산되는 "영화"란 매체는 우리의 지적, 정서적 환기를 유발할 수 있다. 그러한 이유로 "영화"는 변혁을 도모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 반면 세상이란 거대한 유기체는 수많은 인간과 자연의 역사란 화학작용으로 생성, 변화해 가기에 "영화"란 일개 매체 하나만으론 결코 바뀌지 않는다. 다시 말해, 영화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순진하고도 낭만적인 믿음을 우리는 갖고 있지 않다. 동시에 많은 역활과 매체중에서 우리가 특별히 선택한 "영화"란 무기로 발언하고 변혁의 일익을 담당하는 것 역시 정당하다고 믿는다. "카메라를 무기 삼아"란 낡아 보이는 수식이 우리에겐 여전히 유효하다. 2. 우리는 "독립영화"를 만든다. 우리가 믿는 독립영화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영화. 그리하여 작가의 창작정신이 작업 전 과정에 걸쳐 온전히 살아있는 영화" 3. 다큐멘터리와 픽션, 영화 자신은 이러한 구분을 모른다. 태초에 영화가 있었고 후세사람들이 형식을 규정지었다. 하지만 영화란 존재 자체는 규정지워진 형식을 비웃으며 스스로 자유로이 발전한다. 우리는 "다큐멘터리"나 "픽션"을 만들지 않는다. "영화"를 만들 뿐이다. 4. 전술은 바뀐다. 전술의 변경은 언제든 가능하다. 본 영화선언정신을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 안에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5. 문제는 다시 "자기로부터의 자유"다. 스스로를 깨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인습과 체제속에서 자유롭지 않은 자신의 내부로 카메라 렌즈를 들이댄다. 스스로 자유롭지 않은 자가 떠드는 자유는 누구도 설득시키지 못한다. 몇 십년에 걸쳐 자신에게 거짓 입력된 가치를 깨부수는 아픔을 감내하고자 한다. 6. 적과 현실앞에 겸허해 진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과 적을 보지 못하고선 내부에 더 큰 적을 키우게 된다. 적과 현실 속에서 스승과 교훈, 그리고 전술을 찾는 자세만이 진정한 변혁의 싹을 틔우게 될 것이다. 7. 우리는 싸움꾼임과 동시에 창작인이다. 또한 "우리"에게 "영화"는 무기임과 동시에 작품이다. "우리란 주체"와 "영화란 객체"의 정체성에 관한 이러한 양면은 함께 공존하며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한쪽이 다른 한쪽의 희생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러한 이분법적인 사고는 위험할 뿐 아니라 진실이 아니다. 이 인식은 곧 영화의 내용과 형식이 분리될 수 없음을 이야기 한다. 내용이 형식이고 형식이 내용이라는 익히 들어온 얘기는 여전히 진부한 것이다. 진보적 내용은 진보적 형식을 필요로 한다. 형식의 변혁은 내용의 변혁을 수용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것은 창작의 제1의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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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독립영화의 미래는 있다...

 

<단편영화산책 발제 - 2007. 6. 14>              영상이론과 3학년 박소영



독립영화 !


<독립영화를 위한 비평적 접근 방식>

- 독립영화의 미래는 있다 !!!!!


 독립영화는 급속도로 변화, 발전하고 있는 미디어 시대에 맞설 수 있는 대안을 개발해야 할 시점에 놓여 있다. 객관성과 진리성을 담보하고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과거의 기호들과 의미화 방식을 관습적으로 따르는 그 고집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독립영화에 대해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관객들을 끌어들여 독립영화의 매혹에 빠질 수 있게 만드는 새로운 변화가 절실해 보인다.


90년대 이후 독립영화

 90년대 이후 현실사회주의의 몰락과 92년 문민정부의 출범 등으로 나타난 운동세력의 퇴조는 영화운동에도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독립장편영화의 제작 움직임은 급격하게 퇴조하였으며, 독립영화의 제작은 ‘푸른영상‘, ‘노동자뉴스제작단‘, ‘서울영상집단‘ 등 비디오다큐멘터리의 활발한 제작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90년대 사회주의 몰락이후 급격히 등장하게 된 포스트모던 열풍은 사람들의 관심을 정치에서 문화로 이행하게 했으며, 영화 역시 이 시기의 중요한 문화적 화두가 되었다. 기존 독립영화 진영 내에서도 과거의 영화운동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모색이 전개되었으며, 이런 새로운 모색은 영화운동에서 ‘운동‘을 강조하기보다는 ‘영화‘를 강조하는 ‘영화제작소 청년‘의 지향으로 대표될 수 있는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영화‘에 대한 접근은 영화지망 인력을 양산하게 되고, 단편영화의 급격한 양적 발전으로 이어졌다.

 기존 독립영화단체의 새로운 모색과 새로운 인력의 등장으로 인한 단편영화의 발전은 충무로로 대표되는 주류영화의 대안을 요구하는 영화분위기 속에서 대안영화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표현의 자유 쟁취‘라는 테제 속에서 독립다큐멘터리 진영과 보조를 맞추게 되고, 이 단편영화군과 독립다큐멘터리 진영은 한국독립영화의 새로운 흐름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다시 독립영화란 무엇인가?

 지배문화 대 피지배문화, 자본가문화 대 노동자문화, 고급문화 대 대중문화라는 선명한 이분법이 상존했던 90년대 초반까지의 독립영화의 정의는 선명했다. 특히 87년 민주화항쟁에서 92년 대선까지 독립영화의 전선은 너무나 명확했다. 오히려 이런 명확했던 독립영화의 성격이 현재의 독립영화를 재정립하는데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것은 그 시기의 독립영화가 가지고 있었던 영화의 제작과정과 상영투쟁이라는 뚜렷한 기억이 너무나 매혹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이와 모순이 혼종된 90년대 이후의 상황은 하나의 단일하고 총체적 실체로의 수렴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더 이상 예전의 잣대로 독립영화를 규정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또한 정치의 빈자리를 채운 문화가 만들어낸 ‘언더그라운드‘, ‘서브컬처‘, ‘마이너리티‘, ‘얼터너티브‘ 등의 다양한 개념으로의 분화는 ‘독립‘이라는 문화적 아이콘을 더 이상 한가지로 사고할 수 없게 만들었다. 분화와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소비문화의 전면화, 엷어진 정치적 검열의 상황 등은 더 이상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나 ‘정치적 검열로부터의 독립‘이라는 테제로 독립영화를 말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더 다양해지고 더 폭넓어졌다‘라는 독립영화에 대한 평가나 ‘독립영화 개념이 혼란해지고 있다’는 독립영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독립영화를 재정립하려는 의도들에서 비롯된 입장들이다. 전자의 경우는 다원화된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결과론적 입장이며, 후자의 경우는 90년대 초의 독립영화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들이 가지는 사고의 혼란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제 독립영화는 새로운 지향을 모색해야할 시점이다. 더 이상 과거의 기억에 함몰되어 있거나, 문화의 다양성에 근거해 전선을 놓쳐서는 안 된다. 사회는 여전히 모순들로 가득 차 있고, 오히려 이런 모순들은 중층 결정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독립영화의 대안적인 역할은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 철저하게 요구되는 것이다. ‘법과 자본‘이라는 거대담론이 아닌 ‘성, 젠더, 계급, 지역‘ 등 현재 문화를 가로지르는 정체성의 화두 속에서 독립영화는 스스로의 입장을 재정립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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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전쟁>을 감상하고....

 

<대추리전쟁>에 대해서....


영상이론과 3학년 박소영

 <대추리전쟁>을 통해서 우리가 뉴스와 같은 대중매체에서 접할 수 없었던 대추리 주민들의 치열한 싸움의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강제로 빼앗기에 된 그들의 심정을 우리는 얼마나 이해 할 수 있을까? 그냥 적당한 보상금을 받고 이주해서 피터지게 싸우지 않고 편안하게 살면 될 것 아니냐며 대부분 많은 이들이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우리에게 아직 그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들이 땅을 빼앗기게 된다는 것은 다시금 전쟁을 위해 농민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된다고 말이다. 

 대추리 주민들이 바라는 것은 단지 그들이 평생 일궈온 농토와 터전을 지켜내고 이제껏 그래왔던 것처럼 평화로운 삶을 유지하는 것뿐인데, 정치권력의 힘은 어김없이 그들의 소박한바램과 희망을 묵살해 버리고 있는 것이다.

 생각보다 영화가 짧았지만 대추리 주민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어느 정도 잘 전달이 되었다고 본다. 그렇지만 과연 관객들의 동요내지는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을 만큼 호소력이 있었는지는 의문이 든다. 물론 여기에는 구성에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하고 싶다. 예를 들면 짧은 분량에 비해 너무나 긴 시간의 흐름을 담고 있거나, 보상신청을 한 주민들과의 갈등, 주민들의 촛불시위와 주민회의 모습, 공권력과의 대치와 유혈 사태를 보여주는 것들이 마구 흐트러져 있어서, 주민들의 좀 더 세밀한 실제적인 상황과 심정에 대해서 전달하는데 부족한 점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대추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또 다른 전쟁의 모습이 아직 멀게 느껴지는 것이 개인적인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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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13

 

단편영화산책 발제문

<대추리 전쟁>과 신자유주의


                                              20041235 도유리 / 2005138016 정지원



1. <대추리 전쟁>


* 제작기간

2005년 2월 ~ 2006년 5월 (1년 3개월)

* 시놉시스

평택 미군기지 대규모 확장이 추진되면서, 예정지인 팽성읍 농민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촛불행사를 벌인다. 보상과 도시에 대한 유혹으로 마을의 분위기는 흉흉하지만, 주민들은 이웃과 땅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고 싶지는 않다. 떠나는 사람도 있지만 팽성을 찾아오는 사람도 점점 늘어난다.

* 연출의 변

2005년 3월 나는 평택을 찾았다. 미군기지확장예정지인 대추리와 도두리 일대는 평택에서도 외곽에 위치하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대추초등학교로 가는 길, 창 밖에는 평야가 보인다. 누구는 200만평이라고 하고, 누구는 300만평이라고 했다. 그곳에 미군기지가 들어선다고 했다. 평야는 따뜻한 봄기운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슬퍼 보였다. 그래, [들이 울고 있었다]

지난 1년 동안,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투쟁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갈등하는 주민들을 만나고, 서로 싸우게 되는 주민들도 만나게 된다. 그 와중에 하늘에서는 미군의 헬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가고, 300미터 정도 떨어진 곳, 미군의 가족들은 대추초등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구경하곤 한다.

미군은 왜 평택에 새로운 기지를 건설하려고 할까? 주민들의 일상은 야만적 폭력에 의해 점거당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들은 새로운 일상을 건설하고 있는 중이다. 데모하는 대학생들이 싫었다던 주민들은 이제 그들을 이해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활동가들은 대추초등학교에 모이고 있다.

나는 그곳에 희망을 안고 걷고 있다.

- 출처: 푸른영상 홈페이지, “대추리 전쟁” 보도자료 중


1). 형식 - 시네마 베리떼

<대추리전쟁>은 2005년부터 2006년까지,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에서 미군기지 확장 이전으로 인해 일어나고 있는 정부와 주민들 간의 갈등, 그리고 주민들 서로 간의 갈등을 다루고 있는 다큐멘터리다. 언뜻 보기에 이 작품은 대추리 사건의 전말을 설명해주는 듯하지만, 설명적 다큐라고 보기에는 상호작용적 양식, 즉 시네마 베리떼의 형식을 더 강하게 띄고 있다. (표 1참고)


이 다큐멘터리가 가진 가장 뚜렷한 상호작용적 양식은, 작품 전체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주민들의 인터뷰이다. 주민들의 인터뷰는 그들의 의견과 주민들 간의 갈등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연출의 관점을 명확히 나타내는 역할도 한다. 정일건 감독은 정부와 주민이라는 갈등 관계에서 주민의 편에 서서, 사건의 전말을 관객들에게 전하고 있다.

 

표1)- 표가 제대로 붙이기가 안되어서 그냥 텍스트로 올립니다.

 (빌 니콜스의 다큐멘터리의 4가지 양식 참고)

설명적 양식

▶정보제공, 교훈적, 교육적, 나레이션과 화면의 일관성

▶논리적 태도로 일반 대중에 접근한다.

▶나레이션이 과다하고 神(이성-합리)의 권위를 가장

▶대화<훈계,  논쟁<해설

▶상식적,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일치하는 형식

▶인간상호간에 인정되는 확실성의 인식론에 근거 

예)플레허티, 그리어슨을 포함한 60년대 이전의 다큐  대부분의 T.V다큐

 상호작용적 양식 (시네마 베리떼)

▶제작자의 노출, 사건참여, 대상을 자극, 간섭한다 (노골적/간접적)

▶제작자의 목소리, 모습등장

▶인터뷰를 자주 사용

▶촉매자의 역할-대상과 관객을 매개

▶진실은 기다린다고 발견되는 것이 아니며 개입하여 잠재해있는 진실을 드러나게 한다.

▶제작자의 관점을 명확히 노출

▶관객들은 제작자- 대상, 그들의 상호관계에 모두 관심 갖게 됨

▶실재 접촉과정에 대한 이해

예) 카메라 때문에 드러나는 노조원들과 지도부의 갈등이 주된 내용이 될 수도 있다.

▶현재뿐 아니라 과거에 대한 제작자의 개인적 관점, 과거와 현재의 관계/ 현재에 대한 과거의 영향

▶나레이션이 설명적이지 않고 개인적 경험에 의존

▶제작자가 판사라기보다는 변호인에 가깝다.

▶카메라가 대상을 압도하진 않는가?

 

2). 구성 - 사건의 흐름 순서에 따라


<대추리 전쟁>은 2005년부터 3개월 동안 이 사건이 진행되는 순, 즉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구성 되어있으며, 더불어 큰 사건들 사이에 주민들과 평화 유랑단의 인터뷰를 첨부하여 관련된 인물들의 의견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 프롤로그 - 사건 배경 지식 (자막으로 전달)

▶ 타이틀

▶ 주민 탐문 - 형편과 싸움의 이유

        #주민들의 인터뷰

▶ 촛불행사 - 촛불행사의 경과와 의미

▶ 지장물 조사 - 주민들의 갈등

        #교장집 지장물 조사

        #대책위 회의 “명단을 받아야 돼”

        #주민들의 싸움

▶ 대책위의 갈등 - 주민분열에 따른 입장차이
        #동네 할머니 인터뷰 (농사짓는 모습에서)

▶ 수용한 주민들의 입장

        #수용한 주민들의 인터뷰

        #마을 앞 지키는 주민들 (반대측)

        #찬성 측 인터뷰

        #노인잔치

        #반상회 (수용측 제외하고 새로운 반장 선출)

▶ 2005년 7월 10일

        #마을 스피커 방송 (평화 대행진 취소 방송)

        #7월10일 싸움 (전경과의 대치 장면, 농작물 피해)

▶ 7월 10일 후 싸움의 경과

        # 가을에 추수

        # 문정현 신부 인터뷰 및 찬성 주민 인터뷰

        # 중앙토지수용위원회 결정

▶ 새로운 삶, 새로운 투쟁

        #이주자들 (찬성 주민들은 보상을 받아 떠나고, 평화 유랑단원들이 들어온다)

        #농사교실

        #영농차단작업 (농지훼손, 수로폐쇄 등)

▶ 절망, 그리고 희망

        #5월 4일 행정대집행 (대추 분교 철거)

▶ 에필로그

        #음악 

        #대추리 전경    


*  푸른영상 홈페이지, “대추리 전쟁” 보도자료 참고



3). 나래이션과 음악


▶나래이션


<대추리 전쟁>은  나래이션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주민들의 모습과 인터뷰, 그리고 자막만을 통하여 사건을 전달한다. 영상과 인터뷰를 통해 주민들의 격한 감정은 충분히 관객들에게 전달되며, 나래이션의 배제는 연출자의 감정이 절제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음악 


나래이션과 같이 음악의 사용 또한 매우 절제 되어 있다. 중간 중간 삽입 되는 음악은 시위 현장에서 불리는 현장음을 사용하여 거칠지만 그 장면의 정서를 잘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에필로그 부분의 감독이 “생명의 땅”이라고 묘사하는 대추리의 전경을 보여주는 장면에만 유일하게 음악이 삽입되고 있다. 이처럼 몇 안 되는 장면에 적절하게 음악을 사용하는 과정을 통해, 감독은 사건의 느낌을 잘 전달하고 있다.



2. 대추리 사건의 History


- 2001년 11월 제 33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 : 주한미군 기지, 훈련장 재배치 합의

- 2003년 6월 한미동맹 정책구상 2차 회의 : 주한미군 2사단 한강이남 이전 합의

- 2003년 10월 주한미군 대책 기획단 정식 출범 : 주한미군 한강이남 이전 문제 담당기관

- 2004년 1월 한미동맹 정책구상 6차 회의 : 주한미군 용산 기지 전체 한강이남 이전합의

- 2004년 4월 연합토지관리계획(LPP) 첫 사업 시작 : 오산 공군기지 확장공사 착수

- 2004년 6월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 9차 회의 협상 결렬 :

  미군, 미 2사단 주둔지 반환 대신 오산/평택 기지 늘려줄 것 요구

- 2004년 7월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 10차 회의 : 용산 기지 이전 협상 완전 타결

- 2004년 8월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 11차 회의 : 미군 이전 오산/평택 부지 확정

- 2004년 8월 정부 : 평택지원 특별법 입법 예고

- 2004년 10월 윤광웅 국방장관 / 리언 라포트 주한미군 사령관 :

  용산 기지 이전 포괄협정(UA) 및 연합토지관리계획(LPP) 개정안 공식 서명

- 2005년 3월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범국민 대책 위원회 출범

- 2005년 7월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한반도 전쟁반대 7.10 평화 대행진 개최.

              경찰 폭력진압 논란

- 2005년 8월 평택시 교육청 : 대추분교 소유권 국방부에 이전, 시민단체에 퇴거 요구

- 2005년 9월 건설교통부 중앙토지수용위원회 : 평택 미군기지 이전 예정부지 수용 결정

- 2005년 9월 국방부 : 평택 미군기지 예정터 중 협의매수 되지 않은 땅에 대한 강제수용

                       절차 착수

- 2006년 1월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전국평화행진 개최

- 2006년 2월 헌법재판소 : 용산 미군기지 이전 협상/연합토지관리계획 에 대해 평택

                           주민들이 낸 헌법소원 각하

- 2006년 3월 국방부 : 대추분교 강제 퇴거 시도, 실패

- 2006년 5월 국방부-범대위 대화 결렬 : 범대위 공동대표, 팽성대책위원장 참석 거부

- 2006년 5월 ‘여명의 황새울 작전’ : 대추리 대추분교에 군/경 병력 투입해 행정대집행

                                    (강제퇴거) 감행, 524명 연행, 부상자 210명

- 2006년 9월 대추리, 도두리 빈집 철거 시작 : 주민 및 지킴이 23명 연행, 부상자 4명

- 2006년 11월 평택 미군기지 확장반대 팽성대책위원장 김지태 씨 (대추리 이장) :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혐의로 징역 2년 선고

- 2006년 11월 평화영화제 개최 : <대추리 전쟁> 상영논란

- 2006년 11월 평택 미군 부지 철조망 추가 설치 시작 : 영농행위 원천봉쇄

- 2006년 12월 국제 앰네스티, 김지태 이장 양심수로 지정 및 석방촉구

- 2006년 12월 김지태 이장 보석 석방

- 2007년 1월 정부, 평택주민대책위 협상 재개 : 평화적 해결 원칙 합의 및 세부사항

                                               논의 시작

- 2007년 1월 평택기지 주민 이전원칙 합의 체결 : 평택 기지 이전에 사실상 동의

- 2007년 2월 평택기지 주민 이주 및 생계지원 방안 합의 : 최종합의

- 2007년 3월 29일 평택주민 이주 시작

- 2007년 4월 15일 평택주민 이주 완료



3. 전략적 유연성이란?


해외 주둔 미군을 전 세계 어느 곳으로든 신속하게 투입할 수 있도록 군대를 신속 기동군으로 만들어 재배치하며, 그 작전 범위를 유연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전략적 유연성은,


① 장비의 유연성 ; 장비들의 전 세계적 범위의 이동이 가능하도록 한다.

② 미군 병력이동의 유연성 ; 신속 기동군 체제로 모든 미군체제를 전환한다.

③ 기지 사용의 유연성 ; 미군 기지와 주둔국의 기지를 공동으로 사용한다.

④ 사전 협의 절차의 유연성 ; 미군 입출입의 제약요소를 최소화한다.


등을 모두 포함한다.


2003년 11월 25일에 부시 행정부가 발표한 ‘해외미군 재배치 계획(GPR : Global Posture Review)' 은, 부시 대통령이 9.11 사태 이후 선포한 ’테러와의 영구전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GPR은 대테러 전쟁 시대의 군사 기술과 운용의 틀이 될 부대 재배치 계획으로서, 테러문제를 치안의 대상이 아닌 전쟁의 대상으로 다루기 위한 것이다.



4. 쟁점으로서의 전략적 유연성


① 북한과의 대립


주한미군은 북한에 대한 정밀타격과 신속한 공격을 위해 전력을 증강시키고 있다. 더불어 주한미군 핵심전력을 북한의 장사정포 사거리에서 벗어난 한강 이남지역인 평택에 재배치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효과적인 공격과 미군의 안전을 도모하고 있는 것. 또한, 현재 주한미군 재배치는 북에 대한 선제공격계획(CONPLAN 8022)에 의하여 진행되고 있다. 이 계획에 따르면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미국정부가 판단한다는데, 이것은 남북의 화해와 협력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직 미국의 결정에 의해 우리는 또 다시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게 될 수도 있음을 뜻한다.


② 해외침략의 전초기지


주한미군은 지금까지 ‘한국방어’ 라는 명분으로 한국에 주둔하였으나, CONPLAN 8022에 따르면 한국방어는 이제 한국군에게 넘기고 주한미군은 세계 다른 나라들의 분쟁, 소요사태, 전쟁 등에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즉, 동북아 지역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분쟁들에 주한미군을 투입한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한국이 상시적인 주한미군 해외침략의 전초기지 또는 병참기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군이 주둔해있다는 이유만으로 사우디 아라비아, 쿠웨이트 등이 테러의 대상이 되었듯이, 평택 미군기지 이전이 현실화된다면 한국도 테러의 대상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③ 한국정부의 태도


NSC (National Security Council ; 국가안전보장회의) 와 한국 외교통상부는, 애초에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대하여 이것이 단순한 주한미군의 출입에 관한 사항이 아니라 한미동맹의 성격과 한국 안보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군 재배치 논의가 본격화되자 국회와 국민들에게는 주한미군재배치와 전략적 유연성의 문제는 별개의 사안이라고 주장하며 기지 재배치 일정이 늦추어질 것을 우려해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된 문제를 덮어버렸다.



5. <대추리 전쟁>과 대추리


대추리와 도두리를 비롯한 평택미군기지 예정부지는 이제 빈 땅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 곳에서는 대추리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사람들이 남긴 흔적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고, 대추리 주민들을 위한 고향 땅 회복 기원제 등이 진행되고 있다.

또한 앞서 보았듯, 미군기지 확장은 대추리 주민들의 아픔을 별개로 치더라도 많은 과제들을 던져주고 있다.

대추리가 지켜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정일건 감독의 다큐멘터리 <대추리 전쟁>. 이제는 지나간 사건을 담은 작품으로 존재할 뿐이겠지만,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대추리를 잊지 않도록 해주는, 그리고 미군기지 확장이 우리에게 남긴 과제들을 두고두고 돌이켜볼 수 있게 해주는 의미 있는 작업으로 남을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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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독립영화

영상이론과 박지연

 

 현재 독립극영화를 만드는 독립영화인들은 대체로 20 후반에서 30 중반의 연령대에 걸쳐있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메인 세대이며, 주요 소비자인 동시에 한국 영화산업의 풍부한 예비인력이기도 하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영화들의 다양성은 극히 개인적이며 다른 각도에서 보면 사회문화적 동기가 있기도 하다. 이들은 어떤 권력도 자신조차도 믿지 않을 아니라 근대적 의미의 희망이라든가 사회공동체적 질서 등을 지켜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한국독립영화의 정체성의 방향이 세대에 따라 그리고 주관적이나 객관적인 상황에 따라 달라져 일관성 있게 방향을 설정할 없는 혼란의 발생은 독립영화에 대한 본질의 추구나 우리의 독자성을 발견하고 강조하는 정체성의 창출을 체계적이며 적극적인 태도로 시도하지 못했다는 데에 기인한다. 정체성은 본래의 형체로 존재의 본질을 의미한다. 따라서 독립영화의 정체성의 추구는 존재의 목적을 쟁취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한국영화미학의 정체성 문제를 지적하자면, 영화스타일의 변화가 전통의 내재적 유산의 발전이라기 보다 외래문화의 수용에 따른다는 사실이다. 한국문화의 전통은 내용은 저항적 현실성이요 표현은 풍자적 상징성이다. 그러나 문화의 근대화는 서구문화에 함몰되어 전통의 본질은 사라지고 말았다.

  나운규의 <아리랑> 보여준 저항의식은 바로 전통적 내용이며 몽타쥬기법은 상징      풍자였으나 <아리랑> 이후 한국영화미학의 기조는 내용과 형식을 일치시키는 사실주의를 선호하였다. 한국의 전통예술이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엇갈린 만남을 갖는 것은 민중의 현실은 처절하게 느끼면서도 표현은 우회적으로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실적인 내용을 형식주의로 표출하는 양식의 수용이 우리의 문화적 정서라 하겠다. 그러나 근대문화의 수용에 따르면서 우리의 의식은 서구화되어 카메라가 갖는 유물론적 기능은 자연스럽게 사실주의적 표현을 추구하게 만들었고 정치적 현실은 반제국주의나 반독재에 대한 저항의식으로 사실주의 영화를 요구하였다. 여기서부터 한국영화미학의 정체성은 빗나가기 시작한 것이다.(김수남, "한국영화의 미학", [아세아 영화연구], 행복한 , 1998, 44-5.)

 

따라서 한국독립영화의 정체성의 방향은 상실한 우리의 전통적 문화정서를 어떻게 부활시키냐를 모색하여야 것이다. 한국독립영화계는 다양하고 자유로운 개인이 어떤 간섭도 받지않고 독립영화의 무한한 미학적 성취가 가능한 시점에 이르렀다. 문제는 한국영화의 미학적 전통과 정체성의 규범을 어떤 기준으로 제시하여야 하는 문제이다. 그것은 한국영화의 시작으로 돌아가 서구영화문화의 수용의 과정을 거꾸로 고찰하면서 모색되어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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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의기술>

파산의 기술_ 낯설음

                                                                                                           박지연

 

 

《파산의 기술記述》은  우리 주위를 낯설게 만든다. 제작방식과 표현, 소재들은 충분히 익숙한 방식으로 이해가 가능하지만, 영화가 시사되면서 영화가 보여지는 모습들은 상당히 낯설다. 지하철의 사람들과 주거지역의 사람들, 도로와 자동차들, 영상 밖에서 말하고 있는 뉴스나 라디오의 목소리들은 언제나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는 ‘환경’들이다. 이런 환경들이 낯설어 지는 것은 《파산의 기술記述》이 일반 영화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풀어나가기 때문이다.

 

감독은 -“‘파산’이라는 소재를 선택해 지난 10여 년 간의 한국사회를 보여주는 장면들을 나열한다. 분석이나 설명이 아닌 이 같은 ‘기술’은 세계의 변하지 않는 작동 방식을 발견하게 한다.” – 영화가 사회에 대한 대항으로서 영화를 바라보지 않았다. 이러한 ‘기술記述’은 관객들이 보았을 때 불편한 영화로 다가온다. 구체적인 흐름이나 형식은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인지 영화는 일반적인 영상들의 나열임에도 불구하고 거리감을 둔채 진행 되어져 간다. 사회적 문제로 ‘파산’은 개인이나 가족이라는 집단에 가장 큰 고통이다.  이러한 문제가 사회의 체제나 경제의 불공정한 성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큰 고통을 겪는 이들은 상당히 이성적이며 긍정적이다. 여기서 《파산의 기술記述》이 낯설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자신들의 문제를 견뎌내고 다시 시작할 준비를 하는 사람들에 대해 어디서부터 문제가 커지게 되었는지 또 무엇이 문제이며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 영화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단지 TV 광고들과 파산한 이들의 인터뷰, 카드회사의 인터뷰가 교차되어 나타나면서 영화는 ‘기술’되고 있는 것이다. 조세희의 소설과 사진들, 감독 자신의 나래이션은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파산’이라는 소재와 더불어 영화를 이해하기에 상당히 애매모호하게 만든다. 무겁고 진지한 주제를 다루면서 감독의 생각과 의도 또한 분명하게 드러나지만-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공과 사진의 분석-이러한 요소들이 영화가 가진 진지함을 더욱 어눌하게만 이끌어나간다.

 

《파산의 기술記述》은 소재에서, 표현 방식에서, 그리고 감독의 의도, 모두가 일반적인 태도와는 분명히 다르다. 영화가 낯설게 느껴지는 부분-파편화된 영상과 인터뷰 때의 카메라 앵글들, 갑자기 나타나는 이산가족 찾는 방송-이 처음부터 낯선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요소들이 친근한 것도 아니 였다. 《파산의 기술記述》은 객관적인 시선에서 사회와 사람이 만나는 부분을 어색하게만(익숙한 것들이 한데 모여 의미를 만들어낸)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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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일기

 


 

 

"농가 일기"                                                            방송영상과 정지원

2004년, 젊은 농민 운동가들은 우리의 농가를 지키기 위해 추운 겨울 국회 앞에서 밤을 지새운다. 2007년, 젊은 농민 운동가들은 아직도 싸우고 있다. 어느 화창한 봄 날, 농민들은 칠레의 농작물 홍수의 여파를 이겨내기도 전에 한미 FTA 타결이라는 폭풍우를 맞게 되었다.


2004년, 어느 따뜻한 봄 날, 젊은 농민 이근혁은 동료 농민들과 함께 씨 뿌릴 준비를 한다. 이제 귀농 5년 째, 아직 알고 있는 것 보다는 모르는 것이 많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진 듯 능숙하게 씨를 뿌리며 농사준비를 시작한다. 그의 어린 아내 김은심 또한, 초보 농민으로서 남편을 도와 농사를 짓는다. 남편의 눈에는 한 없이 부족하고 어설픈 아내이지만, 농사를 짓겠다는 남편을 도와 짓는 모습이 아름답다. 봄에는 씨를 뿌리고, 여름에는 농작물을 돌보면서 FTA 저지 시위에 참가한다. 가을에는 수확을 하고, 떨어지는 농작물 값에 근심만 쌓여간다. 겨울에는 칠레와의 FTA 저지를 위해 국회까지 가서 싸운다. 그리고 아픈 딸의 수술을 위해 서울로 간다. 1년 내내, 쉴 수 있는 틈은 없다. 농민의 일 년은 힘들고 고달프다.


그런데도 한 - 칠레 FTA 비준안은  너무나도 쉽게 통과했다. 추운 겨울, 편찮으신 아버지를 뒤로 하고 국회 앞에서 밤을 지새우며 시위를 해봤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정부는 한국의 핸드폰과 전자산업을 칠레의 과일, 농산물과 맞바꾸었다. 농민들은 정부에게 배신을 당했고, 비준안 통과로 인해 그들의 우려했던 다른 국가와의 FTA 체결 움직임은 너무나 빨리 진행되고 있다. 농민들은 우리의 먹거리를 지키기 위해 아직도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이근혁과 동료 농민들에게 봄은 다시 찾아왔고, 그들은 다시 씨를 뿌린다. 또 다른 폭품우가 몰려오고 있지만, 씨를 뿌려 모 심을 준비를 한다. 이러한 어두운 미래가 그들을 힘들게 하지만, 딸아이의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이근혁을 비롯한 많은 젊은 농민 운동가들이 정부와 싸우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어쩌면 잇따른 FTA 체결로 우리의 농촌은 사라질 지도 모른다. 많은 젊은이들이 농촌을 등지고 대 도시로 떠나고,  싼 가격에 눈이 먼 많은 장사꾼들이 수입 농산물을 국산으로 둔갑시켜 소비자들을 속이려 든다. 이 많은 방해의 장벽 속에서 그들의 힘겨운 싸움의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몇 몇의 젊은 농민 운동가들이 그들의 신념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는 과정을 통해 조금은 희망적인 미래를 꿈꿀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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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유연성

<대추리전쟁>을 보고

 

 강 지 혜

 

 

동네의 여자분이 요즘 같은 시대에 (대사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음.) 폭력진압 그런 거가 있겠느냐 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분교 앞에서 첨예한 대립이 나오고 뭉개진 농토가 나온다. 점차 거세어 지는 시위와 수로를 시멘트로 매립해 버리는 발상 자체는 정말 이 시대를 의심케 한다. 도대체 누구 머리에서 그런 생각이 나왔을까.

 

평택 미군기지, 한반도 평화에 어떤 영향을 줄까?
2006년 1월, 한미 양국은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전략적 유연성은 주한미군이 전략상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유연’성을 발휘해서 한반도뿐 아니라 대만이나 이라크도 갈 수 있다는 개념이다.
더 이상 ‘주한’미군은 한반도 안보를 위한 존재가 아니며, 주한미군이 출격하는 분쟁에 한국도 간접적으로 개입하게 된다.
정부는 주한미군이 들고나는 것을 제어할 수단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현재로서는 주한미군의 동북아 분쟁 개입을 제어할 장치가 없다.
(녹색연합 홈페이지에서 발췌)

 

 간접적 개입이라는 말이 무섭다. 대추리문제는 접근 지점이 많은 것 같다. 환경적인 면에서 보호될 생물에 대한 접근도 있다.
 우리가 사는 땅, 공간이 어떻게 사용되는 지, 그 여파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생각해야 된다. 다만 그들의 전략적 유연성의 일환으로 우리의 공간을 이렇게 내어준다는 것은 끔직한 일이다. 질나쁜 비유이지만, 누군가를 뒷담화 하는 자리에 동조하진 않아도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똑같은 인간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하지만 이 유연한 괴물은 너무나 유연하게 상대를 옭아매서 쉽게 벗어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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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 대상인 민주 시민 <대추리 전쟁> -김현지-

김현지

 

1. 정일건 감독은 인터뷰에서 “2006년 5월 4일의 강제철거 이후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주류 언론에서 폭력적인 싸움이란 관점으로만 보도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실제로 한 번만 가서 보면 그것이 사실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하며 기획의도를 설명한다.

그의 설명처럼 이 다큐멘터리는 대추리 주민들과 지킴이들의 투쟁이란 측면에 집중하기 보다는 대추리의 풍광과 그 속 주민들의 일상적인 삶의 모습, 그들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따라가고 있다. 제목이 <대추리 전쟁>인 것은 그런 점에서 다른 의미가 있는데, 감독은 그에 대해 “현재 대추리에서 하루 세 끼 밥을 먹고 사는 것 자체가 전쟁”이라고 말한다.

 

감독의 의도 처럼 이 다큐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진 것 같습니다. 하물며 일본에까지 가게 되었다니 축하할 일이죠. 이렇게 까지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 영화로 인해 지금 대추리의 실제 상황은 어떻게 변화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2. 경찰이 <대추리 상영>을 저지하기 위해 들고 나온 논리는 “심의를 받지 않은 영화를 상영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 논리는 지난 80년대부터 독립영화를 탄압하기 위해 영화를 통한 사회 변혁 운동을 막기 위해 정부가 동원한 논리였습니다.
1984년 서울영상집단의 영화 <파랑새>를 탄압한 논리도, 1990년대 장산곶매의 <오! 꿈의 나라>, <파업전야>, <닫힌 교문을 열며>, 그리고 영화제작소 청년의 <어머니 당신의 아들> 등 독립영화의 상영을 저지하기 위해 동원한 논리도, 90년대 서울인권영화제와 서울퀴어영화제, 인디포럼 등 독립영화제의 영화 상영을 저지하고 탄압한 논리도 바로 ‘심의를 받지 않은 영화를 상영하는 것은 영화법 위반’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과거의 망령이 ‘국민의 정부’를 거쳐 ‘참여 정부’가 열렸다는 21세기에도 재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기 위한 오랜 투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화(영상물)의 표현의 자유는 여전히 억압되고 있으며, 심의 제도는 여전히 표현을 억압하는 장치로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검열을 철폐하기 위한 오랜 투쟁의 성과로 헌법재판소는 1996년 행정기관에 의한 모든 사전 심의제도를 사실상 검열로 간주하고 영화법의 사전심의 규정이 위헌이라고 선고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영상물의 공개를 강제적으로 차단하는 검열적 요소는 잔존해 있었습니다.
1999년 김대중 정부가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전면적으로 보장하고 등급분류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전향적’으로 정책을 조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영화 상영은 원칙적으로 심의를 받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심의를 받지 않아도 되는 예외조항이 존재하긴 하나 그 폭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등급분류 면제에 대한 판단은 문화관광부 장관이나 영화진흥위원회 등 행정권을 가진 주체들만이 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고, 등급분류를 받지 않은 영화의 공개는 엄격하게 금지하도록 강제하고 있어 여전히 심의제도의 검열적 요소는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2007년 가을, 경찰은 이 조항을 악용하여 특정 영화의 상영 여부를 검열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2006년 10월 27일 (금) 19:51:13 원승환/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 redian@redian.org

위의 글은 대추리 전쟁에 대해 조사하다가 발췌한 글입니다. 심의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데, 위의 글을 읽고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의에 대한 모호한 기준이 실제 어떻게 적용 되고 있는지 좀 더 다른 예를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 심의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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