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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킹 패밀리> 발제

쇼킹 패밀리 (Shocking Family, 2006)

 

 20041181 연극학과 박선영

 

 

쇼킹 패밀리 (Shocking Family, 2006)
감독 이경순/ 다큐멘터리/ 111분

- 인디다큐페스티발 2006 국내신작전 상영
- 제8회 서울여성영화제 ‘옥랑상’
- 제7회 전주국제영화제 ‘관객비평가상’
- 제1회 서울여성인권영화제 상영
- 제8회 정동진독립영화제 상영

 

1. 줄거리
 가족은 늘 개인의 존재를 망각한다. 국가는 자주 그 ‘가족’을 이용한다. 그리고 개인은 종종 국가와 가족의 이름으로 자신의 존재를 상실한다. 이런 가족 안에서 오늘도 힘겨루기를 하며 살아가고 있는 20대 세영, 30대 경은, 40대 경순과 혈연 중심의 한국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미국입양아 빈센트의 성장 이야기.
 “20대, 가족이 대체 뭐길래....”, “30대, 나, 자유를 찾다”, “40대, 관습에 찌든 세상을 거부하다.”
 대한민국에서 가족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쇼킹패밀리>는 가족 안에서 훼손되어가는 나를 고민하고,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아가는 세 여성의 시선을 기록한 성장영화다.
 <민들레>(1999), <애국자게임>(2001) 등 신랄하고 통찰력 깊은 독립다큐멘터리를 만들며 화제를 모았던 이경순 감독의 2006년 신작. 싱글맘(Single Mom)으로 살아가고 있는 감독 자신의 이야기에서부터 그녀의 지인들, 그리고 해외입양아 빈센트의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허울 좋은 가족과 가족주의의 속내를 다양한 층위에서 파헤치고 있다. 감독의 말을 빌자면 이 영화는 “가족 안에서 훼손되어가는 나를 고민하며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아가는 20대, 30대, 40대 세 여성의 시선을 기록한 성장영화”이다.

 

2. 영화 이야기

① 쇼킹 패밀리에 대하여
쇼킹 패밀리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존재를 망각하고 침해하며 전통과 역사를 운운하며 국가와 사회가 해야할 일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떠맡게 한다는 걸 모르고 멍청하게 자본주의의 착한 포로가 되어 결혼과 교육 등의 이유를 붙어 무자기 소비에 열을 올려주는 소위 ‘정상가족’의 동의하며 살아가는 모든 가족과 그 무리들을 일컬어 하는 말‘ 이라고 한다.
 처음 영화 제목을 접하고 쇼킹한 가족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하며 매우 흥미진진해했다. 그러나 절대 쇼킹하지도, 충격적이지도 않은 영화를 보면서 실망했다. 물론 엉뚱하면서도 재기발랄한 내용과 형식들이 재미있었다. 그러나 제목이 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실망을 한 것이다, 영화 자체에는 전혀 실망을 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위에서 말한 ‘쇼킹 패밀리’의 정의를 찾아보고 난 뒤에야 나는 이 영화의 제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위의 정의대로라면 이 영화는 제목과 잘 맞아 떨어지는 영화였다.
 그렇다. ‘가족’은 그 이름만으로 희생을 요구한다. ‘가족이니까’, ‘가족이잖아’ 라 말하며 집단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로써 요구된다. 그리고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실천하고 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너무나도 익숙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감독은 이러한 우리들의 모습, 대한민국의 현실을 쇼킹하다 말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족의 형태를 구현하고자 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엔 오히려 그 모습이 쇼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독은 대한민국 가족의 정상적인 모습을 ‘쇼킹 패밀리’라 명명하며 새로운 ‘가족상’을 제시한다.

 

② 지극히 주관적인 이야기에서 객관적인 이야기 이끌어 내기
 <쇼킹 패밀리>는 감독과 스텝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들의 개인사와 가족사는 영화를 통해 온 천하에 알려지고 그들은 망설이지 않는다. 물론 제작 과정에서 많이 망설이고 많은 고민을 통해 걸러진 이야기만을 모은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솔직했다.
 특히 경순 감독은 자신의 삶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인 집을 있는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모습, 자신의 가정을 보여준다. 그는 딸과 사이가 좋은 모습도, 나쁜 모습도 모두 드러내고, 숨겨도 되는 자신의 가족사를 당당히 보여준다. 그 모습에서 대한민국 가족의 현실을 보여준다. 세영의 개인사를 통해서도 우리나라의 현실, 직업을 잃어도 가장은 여저히 큰 소리치는 가장이고, 어머니는 밖에서 돈을 벌어도 집안일을 해야만 하고, 대기업에 취직했다는 이유만으로 공주로 떠받들어지면서 집안일은 일체 하지 않는 그녀의 언니이자 한 가정의 딸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비단 세영의 가족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젊은 나이에 결혼해서 일찌감치 별거에 들어가 결국은 이혼을 한 경은의 모습은 수많은 대한민국의 이혼녀를 떠오르게 한다. 이렇게 <쇼킹 패밀리>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주관적인 이야기에서 공공의 이야기, 객관적인 이야기를 탄생시킨다.

 

③ 여성의 눈으로 본 가족 이야기
 <쇼킹 패밀리>의 스텝들은 모두 여성이다. 그래서 이들이 주인공인 이 영화는 자연스레 여성의 시점으로 만들어졌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여성의 모습, 딸로서 바라보는 가족은 잘 보여지고, 아버지의 모습, 아들의 모습, 이혼남의 모습은 보여지지 않는다. 간간히 그들의 친구인 남자가 한 명 등장하거나, 그들의 아버지가 나오기도 하지만, 그들은 여성을 억압하는 존재일 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여성으로서 홀로 가족 만들어 살아가기’라고 보는 것이 더 옳은 듯 싶다. 하지만 이 점이 감독이 의도한 바였을 것이다. 남성 우월주의가 대표적으로 실현되고 있는 ‘가족’ 이라는 구조 안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고달픈 일인가, 그러하기에 ‘가족’이라는 족쇄와도 같은 제도가 해체되어야 한다는 것을 감독은 주장하고 싶었던 것이다. 작은 사회라 불리우는, 유일하게 선택이 아닌 숙명에 의해 속해질 수밖에 없는 집단인 ‘가족’. 이 제도를 해체하지 못한다면 구조를 새롭게 재정비하고, 재정의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감독은 이 제도 안에서 절대적으로 약자 취급을 받아 온 여성의 입장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④ 20대/ 30대/ 40대의 시선
 이 영화에서 대표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은 감독 경순, 촬영 세영, 사진 경은이다. 이들은 40대, 20대, 30대로 고른 나이 분포를 띠고 있다. 감독은 이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통해 각기 다른 세대가 겪는 고민들, ‘가족’에 대한 생각들을 들려준다.
 20대, 결혼을 하지 않은, 한 가정의 딸로서 독립하고자 하는 강한 욕망을 가지고 있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안정적인 수입과 안정적인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사회의 압박을 받아야만 하는 그녀, 세영.
 30대, 일찍 결혼을 했지만 일찍 이혼을 한, 자신이 낳은 자녀를 마음대로 만날 수 없는, 자신의 고통을 나눌 수 없었던 가족에 대한 아픔을 지닌, 혼자서 씩씩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그녀, 경은.
 40대, 싱글맘으로서 딸과 친구처럼 살아가고 있는, 가끔은 어쩔 수 없는 엄마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는, 당당하게 ‘가족’의 해체를 외치는 그녀, 경순.
 이들은 각 세대를 대표함과 동시에 개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공감을 이끌어 낸다.

 

⑤ 딸과 엄마
 이 영화에서 실질적으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감독 경순과 그녀의 딸, 수림의 이야기다. 수림이 두 살때부터 싱글맘으로 살아 온 경순은 가부장이 사라진 ‘가족’에서 자신이 가부장이 되는 삶 대신 딸과 대등한 관계가 되고자 한다. 경순은 수림을 친구로 생각하고 친구로 대하며 친구로 부른다. 그런 수림은 자유분방하게 자란다. 그러나 수림은 어렸을 적부터 큰 자유를 획득했기에 그 자유를 남용하기도 했다.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이야기하는 모습은 좋은 모습이었지만, 건방져 보이는 태도와, 어른을 무시하기도 하는 태도 그리고 도벽은 결코 좋지 않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에서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경순이 수림에게 아무리 많은 사랑을 준다 해도 한 사람의 사랑은 두 사람의 사랑 보다는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 주변을 보아도 도벽을 가진 친구들은 애정결핍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밝게 자란 수림의 모습은 부정적인 측면보다는 긍정적인 모습이 더 많이 보였다.
 이렇게 영화는 이들 모녀의 모습에서 ‘가족’을 이야기 한다. 또한 세영도 아버지와의 관계보다는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다투기도 하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면서 정을 쌓아간다.
 나 또한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와 더 친하다. 나도 엄마를 가장 친한 친구로 생각한다. 매일 그녀와 통화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그녀와 데이트를 한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그렇지만 부딪치는 부분들도 많다. 어머니와 딸이라는 어쩔 수 없는 관계 때문에 수직 관계가 형성되고, 충고하고 반항하는 관계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끈끈할 수밖에 없다.
 물의 흐름도 평평한 땅에서 흐르는 것보다,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보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더 빠를 수 밖에 없는 것처럼 어머니의 사랑은 친구들의 사랑보다, 내가 엄마에게 주는 사랑보다 클 수밖에 없다.

 

⑥ 부부의 관계보다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드러나는 ‘가족’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만나 사랑을 한다. 그리고 결혼을 한다. 그럼으로써 하나의 가족이 탄생한다. 남남이 만난 그들이지만 그들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하나가 된다. 아이를 낳는다. 그럼으로써 진정한 하나가 되었다고 믿는다. 하지만 부부라는 이름으로 묶인 이들은 헤어지면 또 다시 남이 되고 만다. 하지만 자식은 남이 될 수 없다. 그들의 아이는 그들의 피가 섞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식어도, 자식 보고 정으로 산다는 말이 있다. 이러한 것처럼 가족은 부부의 관계보다는 부모의 관계에 더 초점이 맞춰진다. 그래서 <쇼킹 패밀리> 또한 부부 관계의 이야기보다는 부모 관계의 이야기에 더 중점을 둔다. 경숙과 경은 모두 남편과 헤어졌지만 자식과의 끈은 놓지 않았다. 또한 경숙은 아버지와는 헤어졌지만 자신의 어머니기에 친어머니와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렇게 부모와 자식간에는 헤어져도 남이 될 수 없다. 그것이 가족이다. 하지만 여기서 발견되는 모순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입양이다. 입양이란 혈연 관계에 놓이지 않은 사람들이 부모와 자식 관계가 된다. 그리고 그들은 가족이라 부른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자신을 낳아 준 부모를 찾는다. 그들을 버린 부모. 혈연으로 형성되었지만 어쩔 수 없이, 어쩌다가 자식을 버린 부모와 그 자식은 어떻게 볼 수 있을까. 감독은 이 모습 또한 미약하지만 놓치지 않고 보여주었다. 해외입양된 사람들. 이 나라 사람도, 저 나라 사람도 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그들은 방황할 수밖에 없고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들은 대한민국을 원망하고, 대한민국의 이러한 모순덩어리인 가족 제도를 원망하고, 부모를 원망하고 자신을 원망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⑦ 마치며

세상에서가장독한혀를가지고
마구마구마구말을내뿜어버리는
나오는대로거침없이토해내버리는
듣는사람의감정따윈아무래도상관없다는
듣는사람의이야기따윈들을생각조차기회조차주지않는
상처받기싫어하면서다른사람에게는아무렇지않게상처를입히는
그럼에도불구하고미안한마음따윈절대갖지않는사과의말따윈건네지않는
나의어머니써니의어머니우리의어머니너의아주머니는세계제일의독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엄마를 용서할 수밖에 없고, 사랑한다.
엄마의 잔소리가 좋은 약이 될 것임을 알지만, 그래도 나는 엄연히 어른이기 때문에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 외박을 할 수도, 술 먹고 늦은 밤 귀가할 수도 있다. 겨우 나의 방이 생겼지만, 아무 구속없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희생을 요구당하지 않으며 살고 싶어 나 또한 독립을 꿈꾸기도 한다. 동생과 사소한 것으로 싸우고, 부딪히는 것이 싫어 꼴도 보기 싫을 때가 많다. 그러나 다음 날은 아무렇지 않게 같이 밥을 먹고, 서로의 옷을 공유한다. 아빠의, 엄마의 잔소리가 싫어 아침에 큰 소리를 내고 집을 나서지만 저녁이면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이야기한다.
그것은, 가족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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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의파다(리뷰)

우리는 정의파다 <발제 리뷰> 

영상이론과 3학년 박소영

 

 

우리는 정의파다 (We Are Not Defeated 2005, 이혜란)


개인적 질문들

독재정권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의해 희생자로 전락해 버린 ‘언니들’

‘그녀들의 투쟁은 젠더의 차별에 의한 것일까?

가부장적 정치 이데올로기를 침범한 단죄인 것인가?’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로 똘똘 뭉친 한국 사회에서 여성노동자들의 위치는?

그리고 그녀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어떠한가?

무시되고 짓밟혀 버린 그녀들의 ‘아름다워야 했을 그 시절’은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

‘언니들’은 여성도 노동자도 아닌 사회에서 소외된 타자로 존재할 수 밖에 없었는가?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의 여성노동자들의 위치는 과연 나아졌는가?

 사회 정치적 시선

 이혜란 감독이 만든 〈우리들은 정의파다>는 '다큐멘터리 옥랑상' 수상작이며

제8회 여성영화제 상영 당시 가장 큰 화제를 몰고 온 작품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1978년 동일방직에서 해고당해 현재까지 28년 동안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인천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공장 중 하나였던 동일방직은 1972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여성 노조지부장을 선출했고 여성 중심의 노조 집행부를 탄생시켰다. 남성 관리자 중심의 어용노조가 득세하던 당시 분위기에서 15세~18세 정도의 어린 나이의 '공순이'들이 노조를 장악했다는 것은 매우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 동일방직에는 1,300여 명의 노동자가 근무하고 있었고 그중 1,000명이 여성이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것은 당연한 일이었는데도 당시 분위기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여성 중심의 민주적인 노조가 결성되자 노조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고 '공순이'로 불리던 여성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노동자로서 정체성을 획득해 나가기 시작했으며, 동일방직의 근로조건은 비약적으로 개선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주변의 노동자들이 동일방직 노동자들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동일방직 노조가 다른 사업장의 노조원들을 교육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사업주와 전국 단위 노조 상부조직, 그리고 박정희 정권은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노조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부당한 탄압에 맞서 싸우는 조합원 124명을 해고시켰으며,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전국의 사업장에 배포해 이들의 재취업을 막았다.

갈 곳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잘 곳도 없던 이들은 재취업도 힘든 상황에서 부당한 해고에 맞서 싸우며 긴 고난의 세월을 견뎌야 했다.

2001년에는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에서 이들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고, 2004년에는 이들 중 37명을 동일방직에 복직시키도록 권고 조치했다. 하지만 동일방직 측은 아직도 권고조치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며, 그녀들은 현재까지도 124명 전원 복직을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바라보고 싶은 시선


나이 어린 노동자에게 언니 노동자가 말한다. “넌 오지 않아도 돼, 겁이 날 거야” 후배가 답한다. “언니들을 따라갈래, 언니들은 해야할 말을 했을 뿐이잖아” 언니는 웃는다, “간들이 부었구나”

 영화는 이 길고 긴 투쟁의 세월을 살아 온 여성 노동자들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거의 인터뷰만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중간 중간에 사실 중심의 정보가 끼어들어 가는 방식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객관적' 이 아니라 '주관적'이다.

시나리오는 '언니'(감독의 표현)들의 말투로, 언니들의 기억대로, 언니들의 판단대로, 언니들의 감정대로 만들어진다. '지부장님'이 아닌 '언니'이고, 어용노조와 사주와 유신정권은 '그놈들'이다.

똥물을 퍼서 숨겨 놓았다가 힘없는 어린 여성들에게 뿌려 대는 그놈들에게 화가 난다기보다는 '인생 왜 그렇게 사는지 불쌍'하게 보이는 것이고, 대의명분이 아니라 '언니 따라 간다'이며, 해고를 당했을 때 '이제 누가 우리 동생 공부시키나'가 걱정이고, '그놈들'이 원칙을 내세우며 복직이 불가능하다고 할 때 '내가 거기서 얼마나 뼈빠지게 일했는데…'이며, 복직되면 보란 듯이 내 손으로 사표 써서 사장 코앞에 내던지고 나오는 게 바람이고, '이것이 옳다'라고 강요하기보다는 '난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다'가 그녀들의 이야기다. 또한 영화는 특정 사건을 부각시키지 않는다. 동일방직 하면 떠오르는 '똥물사건'이나 '반나체시위사건'은 그 투쟁의 맥락에서 중요하긴 하지만 그녀들의 입장에서 볼 때 가장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더 이상 잃을 것도 없고 다른 방법도 몰랐던 그녀들에게 똥물사건은 어이가 없는 일이며, 반나체시위는 잡혀가지 않기 위해 그 자리에서 생각해 낸 아이디어였다. '설마 옷을 벗어도 잡아갈까?' 했지만 '그놈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너희들 여기서 다 죽여도 내가 감방 갈 것 같냐?'는 것이 '그놈들'의 반응이었다. 반나체시위사건이 어린 여공들의 반나체 때문에 사회적으로 떠벌려졌지만, 이렇듯 그녀들에겐 '그놈들'의 거대한 벽을 확고하게 느끼게 한 계기였을 뿐이다. 또한 영화는 특정 인물을 부각시키지도 않는다. 인터뷰를 한 이 중에는 노조 지부장을 지낸 사람도 있고 평조합원이었던 사람도 있지만 지부장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도 않고 그가 지부장이었던 아니던 별로 관계없이, 누가 지부장이었는지 관객들이 기억하지 않아도 문제될 것 없이 이야기는 전개된다. 누가 어떤 지위에 있었는지,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언니들’의 이야기 방식에 익숙해지고 각 인물의 감성과 인생사들이 친근하게 전이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당시 시위를 주도했던 여성들이 어떻게 자신을 노동자로 자각하고 권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남성 노동자와 다른 여성적인 모습들, 예를 들면 ‘사철나무’나 ‘차돌’ 같이 여성 취향이 반영된 모임 이름들, 세익스피어 전집을 할부로 사면서 뿌듯해 했다는 고백들, ‘같은 여자이고 언니기 때문에 조합원들을 믿을 수 있었고 힘든 일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는 증언처럼 여성적인 모습이 많이 드러난다. 이런 모습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단순히 ‘여자들이 뭉쳐서 싸웠다’는 사실의 증명이 아니라, 이 투쟁이 다른 남성 위주의 투쟁과 어떻게 달랐으며 흔히 약점으로 지적되던 여성성이 어떻게 강점으로 작용됐는가에 대한 실질적인 증언을 영화에 담고 있다. 회사와 경찰 폭력에 대항하는 투쟁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많은 사진 속에서 이들은 웃고 있다. 회사에서 쫓겨나 합숙을 하며 공동체 투쟁을 하면서조차도 예쁘게 화장하는 친구가 있었고 그 친구가 화장하는 모습이 재밌어서 신기한 눈으로 구경했다는 말이나, 속옷과 칫솔을 같이 쓰고 같은 이불을 덮고 자면서 간지럼을 태우고 싸우고 면서 정이 들고 공동체 의식이 생겼다는 말은 ‘동지의식’처럼 남성적이거나 무성적으로 느껴지던 단어에 전혀 다른 감성을 부여한다. 이런 동지의식은 ‘순종하며 살아야 할 여자가 노조를 하는 건 말도 안 된다’며 가족이 반대하는 순간에도 사라지지 않고, 경찰에 잡혀가 욕을 먹고 얻어맞고 구치소에서 구류를 사는 순간에도 사라지지 않을 만큼 강했으며, 30년 가깝게 세월이 흐른 현재에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처럼 ‘언니들’의 이야기는 어떤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아닌 그녀들 인생 그 자체이며, 노동자라는 계급에 앞서서 여성들만의 유대감과 정서가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돌아와서

 1970년대의 여성 공장노동자들을 우리는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가?

 십대 소녀들이 하루 14~15시간의 노동을 각성제 타이밍과 왕소금으로 버티며 남자들 임금의 반도 안 되는 급여를 받던 그때 그 시절에 대해 들어 본적은 있는가?

누구나 알다시피 당시는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로 1972년은 유신체제가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유교적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이 정권 하에서 민주노조를 만들고, 여성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집행부를 구성하자고 들고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대부분 노동의 역사를 이야기 할 때 주로 이야기되는 것은 남성 노동자의 역사이다. 여성 노동자들은 타자로 밀려나 있어야 했던 시간들이 분명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정의파다>는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었던 70년대 여성 노동운동의 한 순간을 담고 있으며 앞으로의 우리 모습이 어떠해야 할지에 대한 과제 또한 던져주고 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여공1)과 ‘정치적인 것’

 여성 노동자들은 가족 및 공장, 그리고 교육체계 등 각종 제도와 담론에 의해 사고와 행동에 있어서 제약을 받고 있었다. 그만큼 여성 노동자들은 공적 영역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어려웠다. 특히 유신 정권하에서 주창되던 유교 이데올로기에 있어서는 여성이 남성과 같은 일을 하면 여성다움을 상실하고, 남성은 무기력해진다는 담론이 우세했었다. 이는 여공이 노조라는 ‘의식적인 활동’을 한다면 남성에게 위협이 된다는 사유방식이 전제된 것이다. 그러나 여공의 익명적인 지식들에 대한 탐색은 여성 노동자들이 ‘정치적인 것’과 무관하다는 관습적인 지식체계와 담론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만들었다. 많은 남성 노동사가들은 ‘정치적인 것’, ‘의식적인 것’ 그리고 ‘정치 투쟁’은 거칠고 전투적이며 공적이며 국가와 정부에 격렬하게 반항하는 무엇으로 규정했다. 대부분 노동사 서술에서 정치적 계급의식의 소유자는 그 주체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남성적인 경험’ 혹은 ‘무성화된 경험’으로 통일된 주체였다. 따라서 여성 노동자들의 전투적인 투쟁 역시 중성화된 주체로 묘사되었으며, 내러티브의 구성도 남성적 표상에 의해 독점되어 왔다. 그 결과 노동자 혹은 노동운동을 다룬 서술에서 여성 노동자의 존재는 간과되었고, 가족, 젠더와 욕망 등 역사적 중요성은 무시되었다. 또한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 권리위식을 획득하더라도 이것은 여성으로서 경험에 입각한 것이 아닌, 중성적인 ‘투사’란 담론의 형태였다. 여성 노동자들은 점차 의식화 과정에서 노동자로서 ‘계급 정체성’과 자신의 ‘인격’에 대해 자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안에 ‘여성’으로서 문제의식은 여전히 빠져 있었다. 의식, 조직화 과정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에 앞서 ‘노동자’임을 인식해야 했으며, 중성적 투사 - 동지라는 담론들에 의해 주체화되었다.


남성지배 노조

 1970년대 한국 남성 노동자의 세계 안에는 ‘남성-친자본-폭력-권위적’이라는 의미의 계열이 자리 잡고 있었다. 1970년대 노조 운동사는 이러한 내부 균열 구조 아래 진행된 것이었으며, 특히 남성지배 노조의 위계질서는 전형적으로 작업현장의 그것과 ‘일치’했다. 다시 말해 거의 대부분 남성 작업반장들이 직장 대표위원 내지 대위원이 되었으며, 작업장의 성별 위계질서는 그대로 노조의 질서로 이어졌다. 이런 점에서 동일방직에서 여성 조합원들이 기존의 작업장 질서, 권위를 대표하던 남성들 대신 대의원이 된다는 일은 작업장과 노조 질서, 대표 체계를 뒤흔드는 사건이 되었다.

  남성 중심의 위계질서는 노조 운영에서 여성을 배제하고 남성 간부노조를 만들려는 남성 노동자들의 ‘무의식적 습성’에서 비롯되었다. 남성 노동자들은 여성 노동자가 간부를 하면 노조와 남성 노동자들이 무기력해진다는 담론을 생산해냈고 이를 통해 여성 노동자들을 노조와 작업장 내부에서 ‘부차적인 존재’로 만들고자 했다. 이것은 한국 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성별 분업 담론과 깊은 연관을 지닌다.


잃어버린 ‘이름’ 찾기

 산업화 시기 노동체제의 수준에서 노동자들은 정치사회와 시민사회로부터 배제되어 있었다. 하지만 여성 노동자들의 경우 또 하나의 ‘배제의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었다. 바로 노조 및 작업장에서의 ‘성별 위계질서’가 그것이었다. 산업화 시기 여성 노동자들은 ‘산업전사’이자 ‘승공의 역군’등 군사주의적 남성 주체로 호명되었다. 작업장 위계질서역시 군사주의적으로 조직된 성별 위계질서의 또 다른 변형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주목해야할 점은 여성 노동자들의 잠재력이었다.

 1970년대 여성 노동자들에게 노조 그리고 노조의 조직적 기반이었던 소모임은 그녀들의 ‘잃어버린 이름’을 돌려주었다. 공장으로 오기 전 여성 노동자들은 사적 가부장제의 젠더 불평등 아래 교육과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박탈당했다. 또한 작업장에서는 성별위계질서 하에서 ‘소모품’으로 전락했으며, 이런 과정은 그녀들이 ‘시민’으로서 권리를 여성이란 ‘차이’로 인해 박탈당하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빼앗긴 권리를 되찾아 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최초의 여성 노조 지부장을 선출하게 된 1972년 동일방직 노조 선거였다.

 하지만 여성 노동자가 노조 지부장을 맡는다는 것은 ‘여성답지 못한’것으로 의미화 되었고, 이는 공사 영역의 남녀분리와 연관이 있었다. 유교담론에 기초한 가부장제도 아래에서 국가조직과 가정은 질서유지를 위한 위계적 관계로서 특징을 지녔다. 특히 남성과 여성은 신체적 특징과 능력이 다른 것이 당연시되었으며 맡아야만 하는 직분도 달라야 한다고 규정되었다. 이른바 ‘분리 원리’는 남녀 역할과 활동 공간 분할의 원리로서 공적영역과 사적 영역을 성별에 따라 나누고 여성의 공적 영역 진입을 차단했다. 이처럼 공사영역의 분리 관념이 여전히 지배적이던 시기에 여성 노동자가 노조의 지부장이 되었다는 사실은 ‘경악’이자 ‘충격’이었을 것이다.

 IMF위기 이후 한국 사회의 계급구조는 급격히 ‘양극화’되었다. 특히 계급구조 변화 과정에서 주목을 받는 집단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비정규노동자들은 고용주와 정부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같은 노동자인 ‘정규직 노동자’들로부터 주변화 되었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 가운데 다수를 차지하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자로서 인정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정규직 노동조합으로부터 차별을 받는 ‘주변 계급’(under class)이 되었다. 현재 한국 사회 곳곳에는 ‘여성’이자 ‘비정규직’이란 이름으로 새로운 ‘주홍 글씨’가 그녀들의 이마에 새겨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마치 산업화 시기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정부, 고용주 그리고 남성 노동자들의 시각이 다시 재림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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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집' 발표을 위한 유인물

 

<192-339: 더불어 사는 집이야기>

‘집이 없다’는 것과 ‘갈 곳이 없다’는 것의 차이                        

 

                                                                               김봉재



1. 집이 없다는 것의 의미


 홈리스(homeless)란 일정한 주거가 없는 모든 사람으로, 거리 노숙자부터 주거불안 계층까지를 포함한 매우 광범위한 의미를 갖는다. 구체적으로 구분하면 다음의 네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


1)아직 주거를 상실하지 않았지만, 주거 불안상태에 놓인 계층(퇴거의 위험에 몰린 계층 등)

2)이미 주거를 상실했으나, 가족적 지지망이 해체되지 않아 형제나 친척집에 거주하는 주거취약계층

3)이미 주거를 상실하였고, 가족적 지지망 마저 해체되어 비닐하우스나 쪽방과 같은 불안정한 임시주거 시설에서 생활하는 계층

4)끝으로 비닐하우스나 쪽방에도 머무르지 못하고, 거리로 나와 숙식을 해결하려는 계층을 포괄하고 있다.                <이태진, 한국 홈리스의 주거지원 실태와 정책방안 (2004)>


 위의 정리에 따르면, 우리가 흔히 ‘노숙자’ 혹은 ‘노숙인’들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하는 정의는 3번과 4번에 가깝다. 한국사회에서 그들의 이미지는 고약한 냄새와 잠재적 범죄자로서의 낙인으로 얼룩진 것이 사실이다. ‘더불어 사는 집 이야기’를 보았던 5월 3일 각 포털사이트의 인터넷 기사에는, 또 한명의 노숙자가 ‘무고한 시민’을 지하철 선로로 밀쳤고 ‘용감한 시민’들이 그녀를 구했다는 내용이 실렸다. 이것은 ‘노숙인’이라는 의미가, 인간이 살아가는데 기본이 되는 의식주(衣食住) 중 ‘주(住)’를 해결하지 못한 것을 뜻하는 'homeless'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노숙을 하는 한 인간 자체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각 지하철 역사에는 ‘노숙인’을 만났을 때 ‘일반인’의 대처 방안이 나붙을지도 모를 일이다.


2.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의미


 우리나라의 경우 노숙자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된 것은 IMF구제금융 시기에 실직노숙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부터이다. 이러다 보니 우리나라의 노숙자 문제는 사회구조의 결함으로 부터 비롯되었다는 인식이 강하다. 결과적으로 노숙자 문제가 발생하자, 노숙자 운동이 정착되기 이전에 초기부터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되었다. 그래서 전국 곳곳에 쉼터가 만들어 졌고, 공공부조나 의료지원체계와의 연계망이 일찍이 형성될 수 있었다. <중략> 반면 일본의 경우 노숙자 문제는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 이해되기 보다는 개인의 게으름과 무능력으로부터 인식되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노숙자 문제에 대한 일본정부의 입장역시 정책적으로 관여하기 보다는 개개인의 자조를 강조하며 체계적인 접근방법을 취하지 못했다. <중략> 일본에서는 쉼터가 거의 없다. 쉼터가 등장한 것도 최근의 일이다. 따라서 노숙자들은 공원이나 강변에 텐트를 치고 집단 거주하는 경향을 띠기도 한다. 노숙자들이 젊은이들의 습격을 받아 사망하는 사건이 일본에서 발생하는 것도, 이처럼 노숙의 문제를 정부의 책임이라기보다는 개인의 무능력으로 환원해 버리는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 도시 연구소, 일본 노숙자 운동의 시사점 (2003)>

 2003년에 발간된 참고자료에서처럼, 우리는 IMF체제 하에서 수많은 실직자와 그에 따른 노숙자들을 양산했다. 당시만 해도 그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최소한의 생존권을 박탈당한 희생자로서의 의미가 강했다. 그들은 블루컬러부터 화이트 컬러까지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각종 언론매체에서는 일순간에 노숙자로 전락해버린 각 개인의 기구한 사연과 더불어, 그렇게 전락해 버린 개인들의 재기를 심도있게 다루었다. 이것은 그들을 ‘주(住)’를 해결하지 못한 ‘homeless’로써 정의하려는 사회적 분위기와도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어쩌면 차가운 IMF체제 종료 후엔, 머지않아 따뜻한 봄이 오리라는 당시의 희망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노숙인에 대한 우리의 시각이 변하기 시작했다.


 故손창호 퉁퉁한 얼굴에 특이한 목소리. 전영록과 함께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을 풍미한 청춘 배우. '동경 아리랑'이라는 영화로 감독으로 데뷰. 한동안 사라졌다 병원 24시라는 TV프로를 통해 행려병자로 발견. 마흔 일곱의 나이에 온통 망가진 몸과 정신마저 흐릿해져 도무지 손창호라 믿을 수 없는 상태로 그는 우리에게 돌아왔다. 그의 존재가 알려지자 그를 잊었던, 그를 버렸던, 그를 멀리했던 사람들이 그를 찾아왔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그는 참으로 기구한 삶을 마감했다.           <네이버 개인 블로그에서 무단 발췌(2004.1)>


 건교부는 행정사범의 경우 최근 주요 역의 노숙인이 늘어나면서 철도 시설 및 열차 안에서 소란을 피우는 등 기초질서를 저해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열차 내 고성방가 늘었다. 연합뉴스 2007-05-02>


철도공사 부산지사는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4시까지 부산역 1층 출입구를 폐쇄하는 노숙인 야간 출입제한 2단계 조치에 들어갔다고 2일 밝혔다. 부산역 1·3층 맞이방(대합실)일부를 폐쇄하는 1단계 조치에 이어 시행되는 이번 조치를 통해 부산역은 3층 출입구와 일부 공간을 제외하고는 야간에 모두 폐쇄된다.
철도공사는 부산진역에 노숙인 무료급식을 위한 간이천막을 설치해 부산역에 남아 있는 노숙인들을 유도할 예정이다. 박태우기자
 

               <“노숙인 야간출입 통제" 부산역 2단계 조치 시행 부산일보 2007-05-02>


지금의 관점에서 한국의 노숙인 들은 더 이상 'homeless'가 아니다. 그들은 단순히 기거할 집 없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합법적인 승인아래 이동의 제한까지 받게 되었다. 이들은 잠재적 범법자로 규정되어 어디에도 발붙일 수가 없으며, 우리는 그들에게서 실직한 아버지의 모습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국가경제 회생’이라는 엄청난 불을 끄기 위해 희생된 그들은 결국 그 국가로부터 버림받고 마는 것이다. 참고자료에서 보듯 초기단계부터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했던 것은, 노숙인 운동을 정착 시키고 자립심을 길러, 노숙인의 권익을 보호해 주기 위한 장기적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당장의 여론을 무마시키려는 것에서 비롯되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정부의 부실한 정책은 노숙인들의 자활을 효과적으로 지원하지 못했고,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쉼터와 명목뿐인 사회사업을 양산했다. 그러나 이것은 노숙인들을 위한 공공정책의 실패로만 끝날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쉼터와 수많은 사회단체가 난립할수록 그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 졌는데, 쉼터에서의 부적응을 개개인의 탓으로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위에 예로든 ‘故 손창호’ 역시 노숙인을 위한 무료병원에서의 통제된 생활을 참지 못해 뛰쳐나와 곧 사망했다. 얼핏 이것은 충분히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데도, 개인의 어떤 이유 때문에 죽음을 맞은 듯 보이는 사건이다. 하지만 왜 그들이 쉼터를 뛰쳐나오고, 무료병원을 퇴원해 다시금 노숙 하거나, 죽음 맞으려 했는지에 대한 문제제기는 뒤로 물러나 있다. 오히려 충분한 공적지원이 되는 상황에서, 그러한 ‘도움의 손길’로 부터의 이탈은 앞서 언급한 일본의 사례처럼 ‘노숙인’의 삶을 개인적인 문제로 축소시킬 좋은 구실을 가져다 준 것이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정부당국과 일반이 가지는 차별의식이 단단하게 뿌리 내리고 있다. 노숙인 들을 우리와 같은 ‘동등한 인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교육되어져야 할 인간’으로 보고 있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집이 없다는 이유만으로(엄밀하게 돈이 없는) 그들에게 갱생을 강요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3. 자활 의지 vs 불신


 주정수는 크게 만족했다. 그러나 원생들은 물론 만족할 수 없었다. (...) 섬 안의 시설이 한 가지씩 늘어날 때마다 그 만큼 섬전체가 천국에 가까워지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더 지옥으로만 변해가고 있었듯이, 이번에도 이 섬에는 공원이 하나 더 늘고 그곳에 바쳐진 자신들의 노력과 희생이 크면 클수록 그 노력이나 희생의 크기만큼 섬은 점점 더 낙원과는 인연이 멀어져갔다.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전국노점상연합회’ 전 회장이자 ‘더불어 사는 집 고문’인 양연수씨는, ‘최초’로 노숙인 스스로가 주체가 되는 자활단체를 조직했다며, 자화자찬을 늘어놓고 노숙인들을 선동한다. 각을 세우고 ‘역사를 세로쓴다는 사명감’을 가진 그는 스스로를 ‘빈민 운동가’라고 부르기도 하고, ‘혁명가’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사실, 영화 속 양연수는 악역이다. 그의 이력이 말해주듯, 여러 사회적 문제에 관여해 그것을 쟁점화하고 여론의 주목을 받고자 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자 직업인 셈이다. 개량 한복을 입거나 무스탕을 걸치고, 단 3일 밤을 ‘더불어 사는 집’에서 보냈던 그가 부르짖는 노숙인의 유토피아는 마치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에 등장하는 소록도 병원장들의 행위처럼 스스로의 ‘동상’을 세우기 위한 과정일지 모른다.

 그런데 앞서 설명한 것처럼 양연수씨가 내세운 ‘노숙인 스스로의 자활’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 성공여부가 불투명하다. 우선 빈집을 점거한다는 행위자체가 불법이며, 그렇기 때문에 공적지원을 받을 가능성마저 스스로 줄여버린 꼴이 되었다. 거기다 양현수씨가 개인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사업장이나 소득원도 존재하지도 않는 상황에서, 더 많은 노숙인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무료급식’을 한다는 것 자체가, ‘더불어 사는 집’의 목적이 노숙인 자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선전에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더불어 사는 집’ 사람들이 점점 지배자가 되어가는 그의 독선 앞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채, 그곳을 떠나거나 무기력하게 끌려 다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현실에서 주거를 박탈당하고 ‘노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인적-사회적 관계들과 단절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 재진입 기회마저 박탈당했다는 것과 동일하다. 흔히 노숙 생활을 ‘한계상황’ 이라고 표현하는데, 그럼에도 노숙인들의 거리 생활이 길어지고 만성화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제약들 때문이다. 첫째, 노숙인들의 건강상태나 근로능력에 대한 문제를 차치해두더라도, ‘주민등록 문제’는 노숙인들이 노동을 통해 사회진입을 하는데 가장 큰 장벽이 되고 있다. <중략> 둘째, 노숙인들은 각종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되어있다. 범죄조직은 노숙인의 특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으며, 이를 이용하여 주 노숙지인 공공역사를 중심으로 인신매매가 이루어지거나 신분도용을 통한 경제사기에 노숙인을 이용한다. <중략> 셋째 노숙인들이 지불하는 것이 가능한 수준의, 노숙탈출을 가능하게 하는 주거자원이 우리사회에 없다. 우리나라의 공공임대주택 재고율은 2.3%(그 중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가 23%)에 불과하며, 그나마 있는 공공임대주택에서조차 노숙인은 입주자 선정대상에서 배제되고 있다.        <이동현, 주거정책 빠진 노숙자 대책은 ‘포장지’일 뿐, (2005.1)>


 거리 노숙인들의 50%이상이 쉼터를 경험하였지만 거리노숙인의 증가는 점차 두드러지고 있으며, 그곳은 통한 사회복귀는 역시 16% 정도로 낮다. 쉼터 입소를 중심으로 한 지원정책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것은 노숙인들이 양현수씨에게 끌러다는 요인 중 하나는 될 수 있어도 근본적인 문제는 아닌듯하다. 영화 말미에, ‘노숙인 스스로’의 자활을 외쳤던 양현수씨는 공적 지원을 받고자 관계기관을 찾아 서류를 꾸민다. ‘더불어 사는 집’의 정체성이 처음의 취지와 다르게 그가 대표가 되는 일종의 ‘쉼터’로 바뀐 셈이다. 결국, 영화의 도입부에 등장했던 많은 이들은 ‘더불어 사는 집’을 떠나게 되었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거리급식을 통해 모집한 더 많은 노숙인들이 그곳을 거처 갈 것이다. 노숙인들이 양현수씨를 떠나지 않는 이유가, 쉼터로의 입소를 꺼리기 때문이라면, 점점 쉼터로 변해가는 ‘더불어 사는 집’을 떠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다시말해, ‘더불어 사는 집’의 정체성이 쉼터와 유사하게 변해가고, 그것이 결국 양현수씨 개인의 입신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는 와중에도 떠나지 못하는 노숙인들이 존재하는 것은, 그곳이 쉼터와는 다른 무언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동생활을 기본으로 하는 쉼터는 개인의 사생활을 전혀 보장해 주지 못할뿐더러, 물리적 공간 역시 협소하다. 쉼터별 입소정원은 쉼터 개소당시 시설의 규모에 따라 ‘몇 명이나 들어갈 수 있는가’라는 작위적인 기준으로 책정된 것이다. 실제 이 인원에 맞춰 입소를 받게 되면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 된다. <중략> 그럼에도 정부는 정원기분에 따른 공실률을 운운하며, 상담활동을 강화하여 쉼터에 입소시키겠다고 한다. 그것을 ‘동절기 대책’이라고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중략> ‘자활의 집’이라는 일부 주거지원제도가 존재하나 프로그램식 임시사업으로 물량이 적고, 조건이 까다로워 극소수의 노숙인만이 이용할 수 있을 뿐이다. 게다가 현재 상태로는 기본 입소기간 6개월이 지나면 자력으로 주거지를 확보해야한다. <중략> 노숙인들이 거리를 선택하는 것은 거리생활에 강한 내성을 가지고 있어서도, 집을 마다하는 별종이기 때문도 아니다. 거리 외엔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동현, 주거정책 빠진 노숙자 대책은 ‘포장지’일 뿐, (2005.1)>


 노숙인들은 ‘더불어 사는 집’을 쉼터나 ‘자활의 집’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다. 영화에 반복적으로 등장했던 식사장면과, 술자리가 말해주듯 ‘더불어 사는 집’은 불법 점유된 빈집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들의 소유인 것처럼 느껴진다. 노숙인들은 잔치를 하듯 모여 밥을 짓고, 청소를 하고, 술잔을 부딪치며 ‘더불어 사는 집’이 정말 그들의 유토피아가 되길 바라는 작은 희망을 품고 있었는지 모른다. 생각해보면, 양현수씨의 선동에 이끌린 이유가, 그곳이 다른 곳보다 더 나은 물질적 혜택을 제공하기 때문이 아닌, 그들이 원하는 것을,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 스스로가 실천토록 돕겠다는, ‘더불어 사는 집’의 취지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많은 사회복지관련 연구자들이 외국의 사례를 분석해하며 나름의 방법을 찾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이 반영된 정부의 대책이나, 개인 활동가들의 노력이 무의미 하다고만 불수도 없다. 그러나 노숙인들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인간적 존중을 무시한 채, 그들을 배제시키고 정부당국이나 사회활동가가 꿈꾸는 유토피아를 건설하려한다면 어떠한 방법으로도 노숙인의 확산을 막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노숙인 운동과 노숙인 사이에 불신과 배반이라는 넘기 힘든 골을 파게 된다. 그것은 곧 노숙인들의 자활의지를 상실 시킬 뿐 아니라, 그들을 ‘천성’부터 게으른 ‘잠재적 법죄자’로 낙인찍게 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4. 나오며 하는 말


그것은 한마디로 원장님과 섬사람들의 길이 다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원장님이 아무리 섬사람들을 생각하고 섬을 위해 노고를 바치고 계셨다 해도 원장님은 결국 섬사람들과 같은 운명을 사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원장님께서 꾸미고자 하신 섬사람들의 낙토가 원장님과 섬사람들의 공동의 천국이 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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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년> 발표 자료

 

<흡년>

김상현, 남효주 감독/ 13분/ 다큐멘터리/ 2004

 

발제자 : 박선영

 


1. 담배

담배는 남아메리카 열대가 원산지이다. 여러해살이풀이지만 온대 지방에서 재배할 때는 한해살이풀이다. 꽃은 7∼8월에 피고 줄기 끝에 큰 원추꽃차례를 이루며 달린다. 열매는 삭과이고 달걀 모양이며 꽃받침으로 싸여 있고 많은 종자(1과에 약 2,000개)가 들어 있다. 한방에서 담배의 잎을 연초(烟草)라는 약재로 쓰는데, 소화 불량과 통증을 완화시키는 데 쓰고, 종기·악창·옴·버짐에는 환부에 붙여 치료하며, 개나 뱀에 물린 데도 효과가 있다.

 


2. 담배의 역사

담배는 미대륙 인디언들이 종교의식으로 또는 질병의 치료를 위해 사용했었다고 한다. 1492년 스페인의 콜럼버스가 미대륙을 탐험하고 담배를 선물로 받아 귀국한 후 담배를 만병통치약으로 소개한 것을 계기로 담배가 유럽 전역에 주로 상류층을 대상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100년 후인 1590년 임진왜란 때 일본군에 의하여 담배가 처음 소개되었으며 그 이후 1602년경 광해군 초에 담배씨를 일본에서 도입 재배하기 시작함으로써 담배가 퍼지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담배가 유럽대륙에 확산될 때 담배가 해롭다는 논쟁이 일부 일어난 적이 있다. 그러나 1600년도에 들어와 영국의 황실에서 세수의 확보의 일환으로 담배를 전매하기 시작하고, 유럽 대부분의 황실에서 담배전매가 시작되면서 담배의 해로움에 대한 논쟁은 자취를 감추었다.

1890년대에서 1900년대 초에 이르러 유럽과 미국에서는 흡연율이 급속하게 증가하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궐련을 마는 기술이 발명되어 다량 생산이 가능하게 되어 담배 가격이 낮아졌고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게 된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담배가 도입된 초기에는 양반계급으로부터 퍼졌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에 20세 이상 성인남자 흡연율이 79.3%로 최고조에 달했으며 1990년대 중반까지 70% 정도로 세계 최고 흡연율을 유지했다. 우리나라 청소년과 여성흡연율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사회적 금기 문화 때문에 흡연율이 높지 않았지만, 1980년대부터 그러한 사회적 금기가 무너지면서 청소년과 여성흡연율이 급증하여 왔다.

 


3. 우리나라의 흡연율(2005년 통계)

전체 28.9%

남성 52.3%

여성 5.8%

청소년 14.9%

- 남성 흡연율은 1990년대 말까지는 세계적인 수준이었으나 2001년 이래로 계속 조금씩 감소하는 추세인 반면, 여성 흡연율은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세계의 흡연율(1999년 통계)은 남성이 47%, 여성이 12%이다).

 


4. 여성의 흡연 피해

1) 수정 능력

흡연은 여성의 수정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 한 연구에 따르면 피임약을 복용하는 여성 중 담배를 피우는 여성은 피임약을 중단한 후에도 불임일 확률이 비흡연자에 비해 2배나 된다고 한다. 또한 흡연하는 여성은 비흡연자에 비해 자궁외임신이 2.2배나 높게 나타났다.

2) 임신과 출산

1980년 미국 Surgeon General Report에 의하면 흡연하는 여성의 유산 확률이 비흡연자보다 1.7배 높다고 하였다. 또한 임신한 여성의 흡연은 태반 박리, 전치태반, 임신 중 자궁출혈, 조기양수파열 등의 위험을 야기한다.

3) 폐경

대량의 흡연은 여성의 폐경을 촉진한다는 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44~53세의 여성 5,645명을 대상으로 코펜하겐에서 시행한 이 연구에 따르면, 48~51세의 연령층에서는 담배를 피우는 여성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폐경이 더 많았다고 한다.

4) 암

1999년 헨쉬케 박사의 연구는 동일한 기간 동안 동일한 양의 담배를 피운다고 하더라도 여성이 남성보다 폐암에 걸릴 확률이 2.3배 높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뿐만 아니라 여성이 흡연을 할 경우에는 남성에게서는 볼 수 없는 유방암과 자궁 경부암의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고 한다.

5) 각종 질병에 대한 저항력 약화

흡연하는 여성은 호흡기 질환이나 심장병, 만성 기관지염 등에 걸릴 위험이 높아지고, 동맥 경화, 심장병, 중풍, 폐암에 걸릴 확률 또한 남성보다 크다. 여성 흡연자가 호흡기 질환으로 숨질 위험은 남성 흡연자의 2배, 심장마비, 중풍 등 혈관성 질환으로 숨질 위험은 1.5배 가까이 높다.

6) 흡연이 아기에게 미치는 영향

① 태아의 발육 부전

② 유아의 행동적, 정신적 발달에 영향

③ 미숙아 출산의 가능성 높아짐

④ 유아 돌연사 증후군이 발생

⑤ 모유의 맛 변화

7) 여성의 외적인 신체 영향

① 주름살

흡연은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주름살이 생기는 조기 피부 노화 현상을 가져온다. 이는 담뱃진의 찌꺼기가 모세혈관 내의 혈액순환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 흡연자들은 대게 윗 입술에 잔주름이 많은데, 이는 담배를 물기 위해 계속 입술 근육 운동을 하기 때문이다.

② 피부색

흡연은 피부색도 변화시킨다. 담배는 피부색을 누르스름하게 만들 뿐 아니라 성적으로 흥분했을 때 보이는 홍조도 나타나지 않게 만든다.

③ 성형 수술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피부의 기능이 떨어져 있으므로 비흡연자보다 성형 수술에서 기대하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담뱃진의 찌꺼기가 혈관벽에 변화를 가져오고, 혈소판의 응집력을 크게 하여 혈류의 흐름을 방해함으로써 흉터가 크게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④ 치아 색

흡연자는 예외 없이 치아가 누렇게 변한다. 젊은 사람은 그래도 한동안 본래의 치아 색을 유지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결국 변색을 피할 수 없다.

⑤ 잇몸 질환

흡연자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에 비해서 잇몸 질환에 걸릴 확률이 4~5배나 더 크다. 또한 비흡연자보다 치아가 잘 빠진다. 미국에서 실시된 한 조사에 따르면, 흡연자의 경우 잇몸과 기본 턱 골격이 자기 연령보다 약 15년 정도는 노화된 상태였다고 한다. 골다공증이 있는 여성들 가운데에서도 흡연 여성은 비흡연 여성에 비해 이가 많이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⑥ 다이어트의 적

흡연이 일시적으로 체중을 줄이는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건강에 해로운 복부형 비만을 초래한다. 흡연이 복부형 비만을 일으키는 원인이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담배에 들어 있는 니코틴이 교감신경과 비슷한 관계로 체내 지방을 팔다리에서 배로 옮기는 데 일조를 했을 것으로 보여진다.

8) 흡연과 여성의 우울증

1999년 Archives of General Psychology라는 학술지에 독신이면서 아이가 없고, 담배를 피우며, 생리 전 증상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우울증에 더욱 시달린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또한 여기에는 우울증이 있는 여성이 흡연을 할 경우, 암이나 기타 질병들과 싸우는 면역 기능이 약화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우울한 상태의 흡연자는 비흡연자에 비해 자연 억제(natural killer, NK) 세포가 감소되는데, 자연 억제 세포는 암을 일으키는 세포를 파괴시키는 중요한 세포로 알려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여성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일까? 그렇지 않다. 이것은 남성들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남자도 똑같은 사람이며, 아기 또한 여자 혼자 갖고, 낳는 것이 아니다.

 


5. <흡년>

<흡년>은 다큐멘터리지만, 도입부를 영화처럼 극 형식으로, 화장실에서 여자가 면도를 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남자들만의 영역이라 생각했던 면도를 여성이 함으로써, 더 이상 면도가 남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담배 역시 더 이상 남자들만의 것이 아님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다큐멘터리는 더 이상 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 작품은 여성 흡연의 대한 사회의 시선을 여성 흡연자들의 입장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감독은 우리나라에서 담배피는 여성들이 겪는 육체적, 정신적인 피해를 이들의 인터뷰를 통해 전하고 있다. 하지만 여성 흡연자들의 입장을 결코 우울하거나 억울함을 호소하는 방식이 아닌, 현실적이지만 발랄하게  그리고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담배피는 여자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감독은 길거리에 담배피는 여자를 배치시켜 그 반응을 촬영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비슷했다. 젊은 남자들은 별로 좋지 않은 시선으로 힐끔거렸고, 담배를 피는 아저씨들도 자신의 상황은 생각지도 않는 듯 흡연 여성을 인상을 찌푸리고 안 좋게 바라봤다. 또한 같은 여자도 저런 대담한 여성이 있나, 라는 시선으로 바라봤고, 중년 부부는 서로 속닥거리며 쯧쯧, 세상 말세야 라는 시선을 보내왔다. 그리고 중년 아저씨는 가까이 다가와 시비까지 걸었다.

담배피는 여성은 아니꼬운 시선으로 바라봐질 수밖에 없는, 떳떳하면 죄가 되는 것이 대한민국 현실이었다.

 


여자는 담배피면 안 되지, 애 낳을 껀데.

 


뭐 요즘은 누구나가 다 피니까 상관 안 해요. 그런데 내 여자친구는 안 돼요. 이해 못하죠.

 


여성 흡연자 인터뷰어들은, 대부분 갈보 취급을 받았거나 담배를 핀다는 이유만으로 폭행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선배에게 성희롱을 당해야만 했고, 이국 땅에서 낯선 한국사람에게 나라 망신 시키는 갈보년이라는 욕을 들어야만 했으며, 길가던 행인에게 손지검과 무차별한 폭행을 당해야만 했다. 아무 죄도 짓지 않았지만 그들은 죄인이 되어 비난받은 것이다. 남자가 담배피는 것은 죄가 되지 않지만 여자가 담배피는 것은 죄가 되는 것이 대한민국이었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1항을 보면,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렇다. 모든 국민에 속하는 여성은 법 앞에 평등하기에 남성이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는 것이 무방하다면 여자 또한 길거리에서 담배를 필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동방예의지국’을 외치는, 유교사상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아직까지 남존여비 사상이 남아 있는 대한민국에서 여성은 법 앞에서 평등할 수 없는 것이다.

담배피는 여성들은 노는 여자일 거라는 생각,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생각이 만연한 무식한 대한민국에서 흡연 여성들은 앞으로도 꽤 오랜 시간을 무차별한 육체적, 언어적, 정신적 폭력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여성 흡연자들은 그들의 이러한 억울함을 호소한다. 이유없이 맞아야 하고, 욕먹고, 공평하게 즐길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서러움을. 화장실에서 몰래 숨어, 지붕이 있는 곳에서만 담배를 펴야 하는 답답함을.   

하지만 서러움과 답답함이 쌓일 수록 여성들은 더욱 강해진다. 그리고 더욱 대담해질 것이다. 더 큰 소리로 자유와 평등을 외칠 것이고, 외치고 있다. 이미 수많은 흡연 여성들이 떳떳해지고 있다. 이제 사회가 그 떳떳함이 정당함을 인정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감독은 이러한 이야기를 여자들의 수다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얼굴 전체를 보여주기 보다 담배를 피우는 입에 포커스를 두었다.

그들의, 말하는 입, 커피 마시는 입, 담배피는 입은 모두 같은 입이다. 그 입은 천박하지도 죄를 짓지도 않았다. 앵두같은 입술, 때론 수다스럽기도, 때론 사랑스럽기도 한 입은 그저 입일 뿐이다.

감독은, 순수하게 그녀들을 바라봐 주기를, 그녀들의 입을 바라봐 주기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마치며, 인터뷰어들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여주면서 그들이 담배를 피게 되면서 겪게 된 수모를 짤막한 문장으로 재미나게 그러나 가시를 담아 말하고 있다. 그들의 손에 들리게 된 것은 단순히 그들의 기호 식품이지, 남들에게 혐오감을 불러 일으킬만한 물건은 아니라는 것, 기호 식품이 한 가지 더 늘어났을 뿐이지 사진 속 그녀들의 본질이 악하게 변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삐뚤어진 것은 그녀들이 아닌, 그녀들을 바라보는 시선임을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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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에서 중심으로'에 대한 단상

 

변방에서 중심으로’에 대한 단상                                           20011165 연극학과

                                                                                                           김봉재


 우선 이번 영화의 리뷰가 얼마나 어렵고 힘들었던 것인지 말씀드립니다. 독립영화의 정체성, 그들이 그토록 토론하고 쌍욕을 해가며 쟁취하고자하는 독립영화의 정체성을 단순하게 영상의 동기부여만을 가지고 판단하기는, 우리가 아는 것이 얼마나 스스로의 자기검열에 입각한 것인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영상원의 중견 교수님들과 유명 감독, 평론가들의 출연으로 독립영화에 대한 그들의 언급과 정의에 동조하면서도, 정작 동시대를 살고 있는 저는, 앞선 세대의 진보적 행동에 대한 억압과 구속을 일종의 '문화적 저항'의 원천으로 규정하며, 그것이 문화적 순수성을 추구한다는 환상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독립영화’ 혹은 ‘단편영화’의 정의 앞에 ‘반드시 현실과 투쟁할 것’이라는 전제를 달아버렸는지도 모릅니다.

 독립(단편)영화는 분명, 현실과의 투쟁에서 오는 정신-물리적 고통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거라는 막연한 추측을 하고, 그러한 영화의 제작과 상영과정을 지켜보며, 개인적으로는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평범한 일상을 파고들어 그 평범한 사람들을 영웅으로 변모시키고, 그것을 영상으로 옮겨 담는 사람조차 영웅화가 된다면,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마저도 영웅이 될 거라는 착각은, 단순하게 ‘본다’는 의미를 ‘참여’의 의미로 재해석하는 오류를 범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독립영화가 변방에서 중심이 된다면 저는 그들의 투쟁을 축하하며 샴페인이라도 한 방울 떨어지지 않을까 내심기대를 해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이 차가운 사무실바닥에서 새우잠을 잘 때, 주점에서 막걸리나 한 사발 마시며 ‘저항이나 자유’따위를 외칠 뿐이며, 같이 경찰서로 가서 조서를 꾸미지도, 어디엔가 제 이름이 올라가는 것도 원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그들이 현실과 계속해서 투쟁해주기를 바라는 아주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이게 될 것입니다. 정말 그들이 할 줄 아는 것이 영화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을 변방으로 내모는 행위는 너무나 폭력적입니다. 어제의 저는 지친 그들에게 ‘변절’이나 ‘배신’ 혹은 ‘타락’등의 단어를 너무나 쉽게 붙였던 것 같습니다.

 변영주 감독의 말처럼 독립영화가 변방에서 변방으로 흘러가는 이유는 아무도 그들과 같이 하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변방으로 내몰리고 누군가의 나르시즘을 위해 희생당하게 될 운명을 타고 태어났습니다. 물론 독립영화가 누군가의 가슴에 불을 질러 고행의 길로 인도하더라도 그는 또 다른 누군가의 나르시즘을 위해 희생될 것이 분명합니다. 문제는 바로 그 순간에도 세상은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화가 세상을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지는 못합니다. 결국 남는 것은 영웅화되었던 출연자와 제작자와 감독과 대리만족을 느끼려는 관객들입니다. 세상이 독립영화를 쫓는 것처럼 보이지만 독립영화는 변방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변방으로 돌진합니다. 그들이 중심이 되는 순간은, 현실을 개혁하려는 독립영화의 혁명이 성공한 날이며, 모든 나르시즘이 허물어지는 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세상은 한발 앞서서 굴러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변방을 만들어 냅니다. 눈앞에 보이는 결승점을 향해 달리는 이유는 그곳에 결승선이 있기 때문이지 누군가가 뒤쫓아 오기 때문은 아닌 것입니다. 달리는 도중 결승선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을 계속해서 달리게 만드는 이유는 바로 그들을 지켜보는 누군가의 시선들 때문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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