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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킹 패밀리 Shocking Family> (이경순, 2006) 발제문...

"빨간눈사람"이 <쇼킹 패밀리>를 이야기하다 안창현 (영상이론 3) Ⅰ. "빨간눈사람"은... 독립프로덕션 빨간 눈사람은 1998년 4월 20일 창립되었습니다. 스스로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은 항상 난감한 일입니다. 때문에 "빨간눈사람"에 대한 소개를 우리의 "영화 선언"으로 대신합니다. Ⅱ. "빨간눈사람"의 영화 선언... 우리의 인습, 제도가 완전히 자의적이라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우리를 억압하고 우롱하는 체제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실체를 폭로하고, 그것을 변화시켜야 한다. 우리(내)가 영화(저술)작업에서 할 일도 바로 그런 것이다. 완전히 뒤집어 엎어 버리는 날까지 이 정신과 작업은 지속될 것이다. - 미셸 푸코의 1971년 어록을 재구성함 우린 억압없는 세상, 차별없는 세상, 착취없는 세상, 편견없는 세상, 인간과 자연이 평화롭게 공생하는 세상을 꿈꾼다. 이 꿈을 실현하는 도구로 우리가 선택한 것이 "영화"다. - 빨간눈사람의 오리지널 어록 Ⅲ. 우리의 적과 현실... 1. "CONTACT"를 믿지 않는 오만한 인간 우주인에 대한 일체의 편견과 조장된 적개심을 경계하고자 한다. 생명과 자연의 가능성을 짓밟고 서려하는 인간의 오만함은 가장 우려할만한 파시즘이다. 우리는 우주에 비해 지극히 작은 인간으로서 우주를 동경한다. 우리는 우주 곳곳에서 문명을 번창시키고 우리의 존재를 지켜보고 있을 그들에게 살아있는 자로서의 우정을 표시하고자 한다. 2. 자연을 잠식하는 문명인들 문명과 자연의 이원론적인 인식이 지구전체의 물질적 기반을 파괴하고 있다. 만물의 영장이라 스스로 칭하는 낯 뜨거운 왕자병, 人本主義라 부르는 我田引水격 가치관의 썩어가는 속내를 보여주고자 한다. 3. 성과 인종을 차별하는 자들 유색인종, 소수인종, 국외자들의 차별은 모순의 적나라함으로 인해 쉽게 인식하고 분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느 차별보다도, 지능적이고 조직적이며 일상적인 차별이 여성에 대해 작동되고 있다. 인류의 절반에 대한 노예화에는 어떻게 이처럼 관대할 수 있을까. 그것은 인류의 절반이 가해자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4. 제3세계의 식민지화에 열 올리는 제국주의자들 경제와 문화를 앞세워 우리의 영혼을 잠식해 오는 제국주의를 우리는 경계한다. 전 인류의 2/3가 그 나머지 인류의 포식을 위한 식민지가 되어 있음을 인식한다. 5. 한국이라는 미친 개 애국, 혹은 민족, 윤리란 미명하에 자행되는 전 국가적 규모의 비이성적인 광기가 우리를 당혹케 한다. 파쇼적인 극우와 완고한 보수의 이데올로기가 팽배한 이 땅의 현실을 마냥 함구하고 지켜볼 수는 없다. Ⅳ. 우리의 믿음과 자세... 1. 영화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또한 세상은 영화로 바뀌지 않는다. 인간의 의식과 기술과 자본으로 생산되는 "영화"란 매체는 우리의 지적, 정서적 환기를 유발할 수 있다. 그러한 이유로 "영화"는 변혁을 도모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 반면 세상이란 거대한 유기체는 수많은 인간과 자연의 역사란 화학작용으로 생성, 변화해 가기에 "영화"란 일개 매체 하나만으론 결코 바뀌지 않는다. 다시 말해, 영화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순진하고도 낭만적인 믿음을 우리는 갖고 있지 않다. 동시에 많은 역활과 매체중에서 우리가 특별히 선택한 "영화"란 무기로 발언하고 변혁의 일익을 담당하는 것 역시 정당하다고 믿는다. "카메라를 무기 삼아"란 낡아 보이는 수식이 우리에겐 여전히 유효하다. 2. 우리는 "독립영화"를 만든다. 우리가 믿는 독립영화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영화. 그리하여 작가의 창작정신이 작업 전 과정에 걸쳐 온전히 살아있는 영화" 3. 다큐멘터리와 픽션, 영화 자신은 이러한 구분을 모른다. 태초에 영화가 있었고 후세사람들이 형식을 규정지었다. 하지만 영화란 존재 자체는 규정지워진 형식을 비웃으며 스스로 자유로이 발전한다. 우리는 "다큐멘터리"나 "픽션"을 만들지 않는다. "영화"를 만들 뿐이다. 4. 전술은 바뀐다. 전술의 변경은 언제든 가능하다. 본 영화선언정신을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 안에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5. 문제는 다시 "자기로부터의 자유"다. 스스로를 깨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인습과 체제속에서 자유롭지 않은 자신의 내부로 카메라 렌즈를 들이댄다. 스스로 자유롭지 않은 자가 떠드는 자유는 누구도 설득시키지 못한다. 몇 십년에 걸쳐 자신에게 거짓 입력된 가치를 깨부수는 아픔을 감내하고자 한다. 6. 적과 현실앞에 겸허해 진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과 적을 보지 못하고선 내부에 더 큰 적을 키우게 된다. 적과 현실 속에서 스승과 교훈, 그리고 전술을 찾는 자세만이 진정한 변혁의 싹을 틔우게 될 것이다. 7. 우리는 싸움꾼임과 동시에 창작인이다. 또한 "우리"에게 "영화"는 무기임과 동시에 작품이다. "우리란 주체"와 "영화란 객체"의 정체성에 관한 이러한 양면은 함께 공존하며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한쪽이 다른 한쪽의 희생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러한 이분법적인 사고는 위험할 뿐 아니라 진실이 아니다. 이 인식은 곧 영화의 내용과 형식이 분리될 수 없음을 이야기 한다. 내용이 형식이고 형식이 내용이라는 익히 들어온 얘기는 여전히 진부한 것이다. 진보적 내용은 진보적 형식을 필요로 한다. 형식의 변혁은 내용의 변혁을 수용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것은 창작의 제1의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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