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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의기술>

파산의 기술_ 낯설음

                                                                                                           박지연

 

 

《파산의 기술記述》은  우리 주위를 낯설게 만든다. 제작방식과 표현, 소재들은 충분히 익숙한 방식으로 이해가 가능하지만, 영화가 시사되면서 영화가 보여지는 모습들은 상당히 낯설다. 지하철의 사람들과 주거지역의 사람들, 도로와 자동차들, 영상 밖에서 말하고 있는 뉴스나 라디오의 목소리들은 언제나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는 ‘환경’들이다. 이런 환경들이 낯설어 지는 것은 《파산의 기술記述》이 일반 영화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풀어나가기 때문이다.

 

감독은 -“‘파산’이라는 소재를 선택해 지난 10여 년 간의 한국사회를 보여주는 장면들을 나열한다. 분석이나 설명이 아닌 이 같은 ‘기술’은 세계의 변하지 않는 작동 방식을 발견하게 한다.” – 영화가 사회에 대한 대항으로서 영화를 바라보지 않았다. 이러한 ‘기술記述’은 관객들이 보았을 때 불편한 영화로 다가온다. 구체적인 흐름이나 형식은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인지 영화는 일반적인 영상들의 나열임에도 불구하고 거리감을 둔채 진행 되어져 간다. 사회적 문제로 ‘파산’은 개인이나 가족이라는 집단에 가장 큰 고통이다.  이러한 문제가 사회의 체제나 경제의 불공정한 성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큰 고통을 겪는 이들은 상당히 이성적이며 긍정적이다. 여기서 《파산의 기술記述》이 낯설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자신들의 문제를 견뎌내고 다시 시작할 준비를 하는 사람들에 대해 어디서부터 문제가 커지게 되었는지 또 무엇이 문제이며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 영화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단지 TV 광고들과 파산한 이들의 인터뷰, 카드회사의 인터뷰가 교차되어 나타나면서 영화는 ‘기술’되고 있는 것이다. 조세희의 소설과 사진들, 감독 자신의 나래이션은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파산’이라는 소재와 더불어 영화를 이해하기에 상당히 애매모호하게 만든다. 무겁고 진지한 주제를 다루면서 감독의 생각과 의도 또한 분명하게 드러나지만-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공과 사진의 분석-이러한 요소들이 영화가 가진 진지함을 더욱 어눌하게만 이끌어나간다.

 

《파산의 기술記述》은 소재에서, 표현 방식에서, 그리고 감독의 의도, 모두가 일반적인 태도와는 분명히 다르다. 영화가 낯설게 느껴지는 부분-파편화된 영상과 인터뷰 때의 카메라 앵글들, 갑자기 나타나는 이산가족 찾는 방송-이 처음부터 낯선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요소들이 친근한 것도 아니 였다. 《파산의 기술記述》은 객관적인 시선에서 사회와 사람이 만나는 부분을 어색하게만(익숙한 것들이 한데 모여 의미를 만들어낸)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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