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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04/02
    사형제와 성정치(13)
    혁사무당파
  2. 2010/03/27
    주디스 버틀러(83)
    혁사무당파
  3. 2010/03/26
    깃발만 나부껴..(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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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0/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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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10/03/21
    국가주의 페미니즘 척결, 가족이데올로기 타파(149)
    혁사무당파
  6. 2010/03/19
    '여성권한척도'가 뭐길래..
    혁사무당파

사형제와 성정치

사형제·보호감호제 추진에 '성性정치' 메카니즘 작동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성폭행 살인범, 신속하게 사형해야”한다고 주장하는 등 사형제 부활이 여권에서 본격 추진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모든 성폭행 범죄자에 대한 보호감호제 적용도 추진 중이다.  

이번 사형제 부활 조짐과 보호감호제 추진을 변혁운동의 관점에서 그리고 원인제공의 측면에서 들여다 보기로 하자.

여기서 ‘성폭행’ 부분은 각별히 눈여겨 볼 대목이다. 이는 현 정권이 내세우는 ‘성도덕’적 포퓰리즘이 대 국민 선전전에서 우위를 점할 가능성과 이를 통한 사형제 부활과 보호감호제야말로 진보진영의 족쇄를 채우는데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즉, 사형제 부활 등 전술의 기저에는 비가시적인 ‘성정치’ 메카니즘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여권이 사형제 등에까지 끌어들이며 애용하는 성정치에 있어 사실상의 사부는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 아래서 정치적으로 대거 약진한 여성계라는 아이러니가 있다. 당시 여성계는 성주류화 전략을 기조로 성매매 특별법을 만들어 냈고 정치권과 일반시민을 불문하고 비도덕적인 성에 노출된 남성이면 가차없이 맹폭해 항복을 받아내곤 했다.

이때 한나라당은 여성계의 끊임없는 성정치 공격에 시달리면서도 역설적으로 성주류화 전략을 학습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정권이 바뀌었다. 지난 10년을 지우고 싶은 여권은 즉각 여성계의 요술방망이인 성정치를 벤치마킹했고, 성폭행 살인범 사건 등을 통해 성을 부각시키니 그림이 절로 나왔다.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법이었다. 이들은 정적이 지녔던 성정치라는 무기를 이용해 마음에 들지 않는 자들을 일거에 평정할 기회를 잡았다. 사회구조를 논하기보다 단지 생물학적 남성의 성적 문제만 집중적으로 공격하던 급진적 여성주의자들의 성정치 장난질이 파시즘 계절을 맞아 사형제 부활과 보호감호제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장난질에는 급진적 여성주의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사회주의 여성주의자들도 상당수 포함된다. 정권의 부침과 함께 패닉상태에 빠져버린 급진적 여성주의자들, 급진적 여성운동과 사회운동·사회주의운동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 채 길을 잃어버린 사회주의 여성주의자들이 이번 사태에서 원인제공의 한 축인 셈이다.  

상황이 이럴진데, 그간 엄중한 정세 앞에서조차 오직 성정치로 좌충우돌 에너지를 소진하며 귀한 세월을 낭비한 이 아마추어들을 변혁운동은 과연 정리할 수 있을 것인가. 변혁운동은 그런 역량이 있는가. 변혁운동에 비해 그들의 기득권이 아직까지도 강고한 건 아닌가. 목전의 혹독한 대가가 보이지 않는가. 
  

 

 [혁사무당파]  ▒ MB들어 적용되고 있는 성정치는 급진여성주의자들의 버전을 본딴 것이지만 진행과정은 가공할 수준으로 발전하는 중이다.  앞으로 정부가 집시법 위반자에게도 전자발찌를 달자고 할 거라는 이호중 교수(서강대)의 예상처럼 사형제나 보호감호제도 역시 부당한 권력에 대한 민의의 저항을 억압하는데 애용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권위주의 국가의 통치기술인 국민들에게 겁주는 방식과 국민들의 기를 꺽는 방법에 성정치가 빛을 발하고 있다. 기존의 성정치가 MB에게 날개를 달아주다니.. 무서운 인과응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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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스 버틀러

덧글논쟁에서 '암담'님이 권한 버틀러에 대해 입장을 밝힌다.

아마도 '주디스 버틀러'를 지칭하는 듯 해서 '조세핀 버틀러'는 배제했다. 참고로, 조세핀 버틀러는 "매매춘 추방을 위해 대대적인 전쟁을 수행하는 것은 신이 내린 사명"이라고 주장한 인물이다. 

 

다음은 [주디스 버틀러 읽기/ 임옥희 저, 여이연] 의  yes24 리뷰인데 여기서 정리한 여성주의 이론은 간결하고 맹점도 있지만 나름대로 유의미하다. 한번 보자.

 

1.시몬 보부아르로부터 파생된 여성주의. 여성은 만들어지는 것(섹스와 젠더를 분리)

2.생태주의와 여성주의를 결합한 에코페미니즘

3.경제력이 가부장제를 유지하는 근간으로 보는 맑시스트적 여성주의

4.서구페미니즘이 제3세계 억압에 협력한다는 탈식민주의적 여성주의

5.섹스조차 해체하려는 퀴어 이론.

 

여기서 5번에 해당하는 흐름이 버틀러다. 간단히 말해 퀴어이론은 이성애 중심주의를 해체하자는 급진적 주장이다. 인간은 인간이지, 여성이나 남자가 아니다. 사람에게 정해진 성 정체성 따위는 없다. 전형적인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사유 방식이고 불교적 사유 방식이다.  

 

▒  1,2,5 번과 여기 명시하지 않은 '사회주의 여성주의'는 모두 성 분리주의에서 비롯된 <급진적 여성주의>와 깊은 관련이 있다. 주디스 버틀러는 <급진적 여성주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이성애 중심주의 해체를 주장함으로써 불교적 사유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본의 덫에 갇히고 말았다. 

 

운동은 경제적 이해관계에 종속된 가족이데올로기를 해체하자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1인가구 및 성소수자(LGBT)를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평등하게 요구하면서 <사회적 성>을 진전시켜야 한다. 혁사무당파는 기본적으로 마르크스 여성주의 입장(3번)이며, 탈식민주의적 여성주의(4번)에 동의한다. 이 사회 페미니즘은 정치적으로 서구페미니즘 특히 미국페미니즘에 종속된 측면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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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만 나부껴..

[최장집이 예전에 한 말]  "민주화 운동은 시대적으로 볼 때 역사적 역할이 끝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운동의 역할이 끝났고, 운동세력이 해체됐다는 이 말을.. 효능면에서 운동은 항상적으로 유지될 수 없고, 과거 민주화운동시기처럼 분명한 목표도 없다. 다룰 수 있는 이슈도 한미에프티에이 반대냐 찬성이냐와 같이 찬반양론으로 구분될 때만 가능하다. 복잡한 이슈는 운동이 다루기 어렵다.“ 
 

운동은 끝났다?.. (지가 뭔데..)  문제는 최장집만이 아니라 이른바 진보를 표방한 오피니언 리더들 상당수가 그와 유사한 생각을 한다는 것, 갸들이 대중이나 무현이 그리고 애매모호한 시민단체와 엮인 기회주의 지식인들이기에 좌파가 이를 간단히 무시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자성할 게 너무 많다)

 

 "동지는 간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라고 한 김호철의 본뜻과 달리, 진보단체? 진보인사? 활동가? 사이에 이제 남은 거라고는 '깃발'밖에 없다는 느낌.. 진보?속의 역겨운 계급화 현상.. 바닥을 좀 알고 들여다보면.. 운동논리도 논리지만.. 동지?끼리도 소가 닭보듯 하는 건 예사.. 웬수 사이도 다반사.. 어떤 곳은 광신도 집단?.. '연대'라는 외피의 이용가치만 유행처럼.. 급진적 여성주의(우파페미니즘)가 운동전반을 파괴해도 침묵하다 자리를 다 내준 무능한 좌파?들..

 

언제까지 안티만 할 건데.. 언제까지 성폭력론만 반복할 건데..  해서 집을 언제쯤 지을 건데.. ( '진보의 재구성' 생각하면 머리에 쥐난다). 어쨌든.. 1차 정리대상은 급진적 여성주의다. 20년 이상 묵은 권력이다. 좌파 설계도면 작성은 어차피 지난한 일.. 당장 할 수 있는 건 불필요한 가지부터 쳐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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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체트킨

 

클라라 체트킨이 제2인터내셔널 창립대회에서 행한 <여성해방을 위하여>라는 주제의 연설은 자본주의 사회의 여성문제를 마르크시즘에 입각하여 분석한 최초의 것이다. 연설 요지 (* 혁사무당파)

 

1. 여성노동의 사회 진출은 사회 발전의 필연적인 산물이다.

   (*열악한 노동형태에도 불구하고 여성노동의 사회 진출은 PT여성들을 사회화 하는데 기여한다.) 

2. 남성의 임금을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여성노동을 금지(*혹은 폄하?)시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산업체/정규직 노동 중심의 사고를 하는 고전학파들에게는 매우 불편한 얘기다. 여성노동은 임금이 낮은 비정규직과 비공식부문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3. 여성 해방의 문제는 결국 '경제적 문제'로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적인 변혁 없이는 해결될 수 없다.

    (* 자본주의 기초를 공격하지 않는 여성운동은 운동으로서의 아무런 의미가 없다.) 

4. 자본주의 사회에 존재하는 여성문제는 계층별로 서로 다르다.

    (* 자본주의에서 '여성'이란 단일한 계급/계층은 결코 존재할 수 없다.- 급진적 여성주의 부정) 

5. BG여성운동은 남성과 싸우고, PT여성운동은 PT남성과 손잡고 자본가와 싸운다.

   (*부르주아 여성운동은 부르주아들의 장식품이다. 클라라는 여성운동에서 BG를 분리했다. BG+PT 여성운동은 불가능한 관념에 불과한 것으로 '사회주의 여성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 

 

▒ 클라라 체트킨 [Clara Zetkin, 1857.7.5~1933.6.20]

독일의 여성해방운동가. 독일사회민주당에 들어가 주로 문화운동과 여성운동에 힘썼다. 1892~1916년 사회민주당 여성지 《평등 Gleichheit》을 창간, 편집하였다. 1907년 최초로 국제사회주의여성회의를 개최하여 반전 운동을 국제적으로 전개하였다. 1920년부터 연방하원에서 활동했는데 1932년 8월 국회 임시의장이 되어 230명의 나치스 의원단 앞에서 반()파쇼통일전선의 결성을 호소한 일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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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주의 페미니즘 척결, 가족이데올로기 타파

대한민국 정부와 여성부는 유난히 도덕적이며 가족사랑에 관심이 많고 불필요하게 친절하다.
그들은 전철에서 자살하려는 사람들에게 가족에 슬픔을 준다며 생뚱맞게 생명사상을 교육한다.





성매매는 가족제도나 예비가족제도(연애)에 반한다는 취지에서 처벌대상이라고 엄숙하게 교육한다.





그러나 그들은 언어의 성찬에만 머무를 뿐, 생활고로 자살할 위기에 처한 사람들과 생계를 위해 몸을 팔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그 어떤 구체적인 생존 대책도 제시하지 않는다/못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의 가증스런 위선을 가족이데올로기와 국가주의페미니즘이라고 간단히 조소하는 것이다. 국가주의 페미니즘의 기초에는 급진적 여성주의가 강고하게 또아리를 틀고 있으며, 이들은 무수한 성적 분리주의 장광설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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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권한척도'가 뭐길래..

‘세계 여성의날 102주년’을 맞아 여성권한척도(GEM)가 다시금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GEM은 유엔개발계획(UNDP)에서 국가별로 여성의 정치·경제활동과 정책과정에서의 참여도를 측정하여 고위직에서의 남녀평등정도를 평가하는 프로그램으로, UNDP이 최근 발간한 ‘2009 인간개발보고서’는 한국의 GEM을 조사대상 109개국 가운데 61위라고 발표했다.

이를 두고 우리 사회에서는 한국의 경제력 순위가 세계 15위권인데 정말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며 보수·수구세력은 물론 주류 진보진영 또한 ‘성주류화 전략’을 기조로 똑같은 목소리를 반복하고 있다.

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지표인 여성국회의원 비율에서 한국은 전체 평균(18.8%)보다 낮은 14.7%로 187개국 중 81위로 나타나는데,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여성의원을 20%로 높이면 GEM을 109개국 가운데 51위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성평등지수 개선 모의실험 결과를 대안으로 보고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들의 관심은 당연히 ‘여성의 정치세력화’에 모아질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이러한 발상은 아무런 문제없이 받아들여져도 괜찮은 것일까. 즉 이미 정당에서 시행되고 있는 ‘여성할당제’를 포함하여 여성국회의원, 여성지자체의원, 전문직여성인사들의 수가 증가하면 이 땅의 여성노동자민중들의 삶의 질이 그만큼 향상되는 것일까? 그리고, 여성의 삶과 남성 그리고 성소수자의 삶은 분리사고가 가능한 것일까?

마침, 지난 3월 9일 인도에서 전국의회 및 주의회 의석의 33%를 여성에게 할당하는 제도가 상원에서 통과됐는데 그 과정이 시사하는 바 크다. 애초 8일 세계여성의 날에 맞춰 통과시키려던 정부 발의 ‘여성 의석 할당법안’을 두고 소수민족, 이슬람, 하층카스트에 기반을 둔 소수정당과 사회당 출신 의원들은 저항했지만 끝내 강행처리됐다고 한다. 표면적인 ‘여권(女權) 신장’ 슬로건과는 달리 이 법안이 부유한 상층 카스트들의 세습에 이용된다는 점과 하층 카스트 출신에 대한 의석 할당이 없다는 점이 반대진영의 문제제기였다.

유엔에서 여성권한척도(GEM)와 같은 천편일률적인 기준이 나오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 전 세계에 유행처럼 번진 ‘여성주의’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 그 중에서도 특히 여성과 남성을 철저하게 분리 사고하는 이론인 ‘급진적 여성주의’는 각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차이를 불문하고 세계 여성을 마치 단일한 집단처럼 상정함으로써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고 급기야 모든 성性들의 계급·계층적 모순 해결을 지향하는 사회변혁운동에 가공할 재앙을 불러왔다.  

사실 어떤 사안에 대해 보수·수구세력과 진보진영이 같은 견해를 갖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정체불명의 무수한 ‘여성주의’에 관해 공통적으로 친밀도 높은 입장을 견지하거나 혹은 비겁하게 침묵함으로써, 마치 부르주아 정치권력이 스포츠·연예계를 이용해 철지난 ‘국가주의’로 인기몰이를 하듯 노동자민중들의 눈을 가리는데 치명적인 역할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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