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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주의 우파에게 1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오늘날 트로츠키주의자들의 분파가 수십여개로 많은것은, 트로츠키주의의 중요 구성요소 자체에 모순이 많기 때문이다.  트로츠키주의의 불모지였던 한국같은 짧은 역사를 가진 곳에서 조차,  그들은 5개 이상의 경향으로 존재하고 있다.

 

사노위와 노동자혁명당 같은 당 지향적 조직간의 일부 트로츠키 경향 사이에서도 리비아 사태를 두고 서로간에 적대적인 경향(카다피의 무조건적 방어 주장과,  제국주의 물리력을 빌려서라도 카다피를  우선 타도해야 한다는 주장)을 드러내는 것은 트로츠키주의의 치명적 한계가 역사적으로 극복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끊임없이 계승될 것임을 보여준다.

 

 

2. 그리고  이들의 우파가 분파와 그룹을 형성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실제로는 부르주아 정치기구의 좌익을 의미한다. 이들이 말로는 사회주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외쳐대면서도, 타도해야 할 대상인 부르주아 정치기구(그것이 노동자 당이건, 사회민주주의 당이건)에 입당전술을 펼치면서 기생하고 있는 현실은 노동자계급의 자립성에 치명적 장애물이다. (물론 혁명적 트로츠키주의자들 안에서도 일부는 여전히 명백한 사상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다수파에 기생한 운동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계급의 자립화를 위한  조직적 전망과 장기적 계급투쟁에의 결합이 아니라, 이들의 시시때때로 변하며 임기 응변적인 반정립운동은 노동자계급뿐 아니라 사회주의자들까지도 스스로 자신들을 조직하는 자기조직화의 기본을 잃어버리게 했다.  과거 스탈린주의가 없었더라면 트로츠키 이후의 트로츠키주의가 성립 가능했을지 여전히 의문인 것은, 한국의 현실운동에서도 그들이 벌이는 다른 운동에 대한 반정립운동의 형태로  수시로 목격되고 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의해방을 대표하지 않고 새로운 지배자가 될 국가자본주의자들이나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질서를 대표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회민주주의나 스탈린주의당(그것의 변종들 -김일성주의등 포함하여)의 좌익으로 기능하며, 이 당들이 혁명적인 정치적 입장으로 부터 공격을 받지 않도록 보호하며, 무엇보다 중요하게 이 당들이 노동자계급의 눈에 진실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다함께가 개입한 민노당은 다함께에 의해 혁명적으로 진화했거나,  노동자당원들의 의식이 진전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명백하게 퇴보했거나,  정치적으로 적대적인 세력들과 한지붕아래 동거함으로 인해 김일성주의 같은 반혁명적 조류들을   혁명세력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는 결과만을 초래하였다.

 

 

3.프롤레타리아트는 오직 지도력이 부족할 뿐이라는 트로츠키의 선언을 맹종함으로써, 그들은 혁명 정당의 부활을 위한 실제조건을 깨닫는 데 실패한다. 이 조건은 프롤레타리아트 대중의 투쟁과, 당 강령의 명확화에 대한 객관적 필요 속에 있다. 이러한 기초적인 조건들을 인지할 수 없었기에, 트로츠키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이미 취한 혁명적 교훈의 길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 추적하지 않고서는 , 그들의 역사적 궁지에서 탈출할 수 없다.

 

그래서 어렵더라도, 고통스럽더라도, 다시 트로츠키를 외우고, 맹종할것이 아니라,  트로츠키 근본으로 돌아가서 잘못된 점을 시정하고, 폐기하고,  절반이상을 버리고 도려내서  그 노선의 10%만 남더라도 혁명적인 전통만 계승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맑스주의 정통으로 가는 길이자,  혁명적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함께,  부르주아 이데롤로기에 조종당하지 않고 스탈린주의에 목졸림 당하지 않은 새롭게  소생하는 젊은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새로운 혁명적 인터내셔널을 건설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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