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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5호]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반성과 코뮤니스트 운동의 전망 2

    •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반성과 코뮤니스트 운동의 전망 2

       

       

      3. 한국 혁명운동의 현실과 코뮤니스트 운동의 가능성

       

      운동이 전반적으로 퇴조하고 혁명적 사회주의자/코뮤니스트들이 여전히 극소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위와 같은 평가는 우리에게 수많은 과제를 남겨주었다. 낡은 운동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운동을 지배하고 있다. 낡은 것뿐 아니라 오히려 운동을 과거로 돌리려는 세력이 늘어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낡은 운동과 철저히 단절하면서도 새로운 운동을 창출해야 한다. 한국 혁명운동의 내일은 현재의 운동을 넘어서는 일이자, 모든 가능성을 최대한 현실로 바꾸는 일이다.

       

      이에 한국 혁명운동의 현재와 가능성을 살펴보고, 과거의 혁명적 사회주의/코뮤니스트 운동을 넘어선 새로운 코뮤니스트 운동8)과 그 실천을 제안한다.

       

      1) 한국 혁명운동의 현재

       

      한국 혁명운동의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암담하다.

       

      첫째, 한국 사회에 수세대에 걸쳐 강요되고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사회주의/공산주의에 대한 오해와 반감은 기성세대 스스로 극복할 수 없을 만큼 대중의식을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다. 이것은 반공주의와 스탈린주의 모두에 경도되지 않은 새로운 주체가 대중의식을 주도해야만 극복할 수 있다.

       

      둘째, 혁명운동과 적대하는 민족주의(김일성주의)와 사민주의 세력의 장기적인 운동지배는 대중운동 전반을 타락시키는 것을 넘어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단결과 계급의식의 발전을 막는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어버렸다. 이들의 분열적이고 반혁명적인 영향력은 현실에서는 어용세력, 조합주의, 개량주의, 의회주의 흐름 등으로 뒤섞여 대중운동을 갉아먹고 있다. 혁명운동 세력과 전투적 노동자들은 자본(주의)과 투쟁하면서도 이들과의 투쟁을 동시에 해나가야 하는 이중적 어려움이 처해 있다. 게다가 이들의 반동적 영향력으로부터 계급의식을 발전시키는 역할을 해야 하는 자칭 사회주의 조직 일부는 이들과 단호하게 내부투쟁을 벌여가기는커녕 ‘대세를 추종’하며 이들을 묵인하거나 연대나 공동전선이라는 이름으로 야합까지 하고 있다.

       

      셋째, 코뮤니스트 운동이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위와 같은 낡은 운동(어용세력, 조합주의, 의회주의 등)이 이제는 기존의 노동자 운동(민주노조 운동) 스스로 극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시스템(조직질서)으로 굳어져 버렸다. 이것은 새로운 운동이 내부에서 생겨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새로운 운동과 주체가 외부에서 진입하기도 불가능해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넷째, 작업장, 고용형태, 업종, 지역, 국가 등 각종 울타리에 갇힌 조직노동자 운동은 배타적 노동자 정서와 자본의 계급 분리 정책의 결합을 막기는커녕 오히려 촉진했다. 이미 굳어진 계급의 분열은 코뮤니스트 운동의 현재와 미래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이것은 혁명조직과 각성한 노동자들의 의식적인 노력 없이는 해결할 수 없다.

       

      2) 코뮤니스트 운동의 가능성

       

      한국에서의 혁명운동은 장기간의 경험 단절과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 새로운 주체가 형성된다면 오히려 더 많은 가능성을 갖게 될 것이다.

       

      첫째, 자본주의 쇠퇴기의 파국적 상황과 계급운동의 퇴조가 동시에 나타나는 시기, 새로운 주체에게는 낡은 운동을 넘어선 혁명적 운동과 자본주의를 넘어선 근본적인 대안을 동시에 제시하는 코뮤니스트 운동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둘째, 맑스주의 연속성과 혁명적 전통을 계승한 코뮤니스트 운동의 사상적 명료함과 풍부함만이 현실의 다양한 계급운동과 만나 이를 혁명 강령으로 발전시킬 수 있고, 여러 운동을 부차화하지 않고 총체적인 운동으로 상승시켜 정치적인 최종목표로 모아나갈 수 있다.

       

      셋째, 코뮤니스트 운동은 역사적일 뿐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국제적 수준의 혁명운동이라서, 이러한 혁명적 흐름과의 실질적인 연대와 공동행동이 실천적으로 가능하며, 세계적인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이다.

       

      넷째, 그동안 코뮤니스트 운동은 권위적 위계질서를 거부하고 아래로부터의 직접민주주의와 수평적 소통을 기반으로 조직운영, 토론문화 등을 발전시켜왔기 때문에 새로운 주체의 창출과 확산에 가장 적합하다.

       

      다섯째, 코뮤니스트 운동은 일상과 운동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뿐 아니라 당-평의회, 계급의식에 관한 총체적 인식에 기반을 둔 운동이다. 또한, 고용형태, 업종, 성별, 정치, 세대별로 분리되고 분열된 노동자계급이 자기 권력과 자기해방으로 향하도록 계급의식을 발전시키고 투쟁 속에서 단결시킬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다.

       

       

      4. 새로운 코뮤니스트 운동의 전망에 대하여

       

      그렇다면 위와 같은 현실과 가능성 속에서 새로운 코뮤니스트 운동의 기본은 무엇인가?

       

      첫째, 새로운 코뮤니스트 운동은 총체적이어야 한다. 모든 것을 정치사상의 문제로 환원하지 않고 여러 운동과 다양한 대중행동과의 유기적인 결합을 통해 더욱 창조적이고 풍부하게 발전해야 한다. 코뮤니스트 운동은 정치뿐만이 아니라 생산과 소비, 문화와 심리 등 인류의 삶을 규정하는 모든 영역으로 문제의식을 확장하여, 자본주의 가치법칙과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넘어설 수 있는 총체적 운동이어야 한다.

       

      둘째, 코뮤니스트 운동은 혁명적 계급의식의 집단적이고 역사적인 산물이다. 따라서 개별 활동의 연합이 아니라 ‘집단적 활동’, ‘지속성’, ‘실현 가능성’을 가져야 한다. 혁명 강령과 코뮤니스트 노동자의 집단적 존재가 이를 가능케 해주며, 이것은 코뮤니스트 조직의 생존 기반이자 물질적 힘이다.

       

      셋째, 코뮤니스트 운동은 조직에서도 코뮤니즘 원리가 실현되어야 한다. ‘각자의 능력에 따라 모두가 기여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코뮤니스트조직은 과거 왜곡된 전위당 노선이나 스탈린주의 공산당들과 같이 일방적 지도체제와 획일적 성원 규정을 갖는 것이 아니라, ‘정치의식의 균질화’에 기반을 두고 성원들의 자발성, 다양성, 창조성을 극대화하는 조직체계를 가져야 한다. 또한, 모든 조직 운영은 총회에 책임을 지는 직접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며, 내부 소통에서는 이론과 지식, 정보에 대한 정직한 표현과 전달, 그리고 토론에서 상호 존중과 모욕금지, 차별금지를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위와 같이 코뮤니스트 운동의 기본을 갖추는 것과 동시에 국제적 수준의 운동을 창출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첫째, 쇠퇴하는 자본주의의 끝없는 위기 상황 속에서 새롭게 분출될 계급투쟁에 능동적이고 장기적으로 대응할 수 있기 위해 코뮤니스트 운동은 노조와 대중운동의 배후정치가 아니라 대중(운동)과 만나 직접 코뮤니스트 정치를 펼쳐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코뮤니스트 혁명을 염원하고 그 운동을 지지하는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작업장, 정규직-비정규직, 조합원-비조합원을 뛰어넘어 기존의 현장조직과는 질적으로 다른 코뮤니스트 노동자 그룹을 형성해야 한다. 코뮤니스트 노동자 그룹은 현장에서 노동자 운동과 노동자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블라인드 협상, 이면 합의, 어용 행위 등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직접행동에 나설 수 있도록 앞장서야 한다.

       

      둘째, 특정 혁명 그룹의 확장이나 몇몇 써클의 정치적 연합이 혁명당 건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므로, 코뮤니스트들은 '혁명 운동의 확산'이라는 대의에 맞게 열린 자세로 '혁명당 건설의 주체(세계혁명당의 국제적 분파)'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먼저 그동안의 당 건설 운동 실패에 대해 평가, 반성하고, 새로운 조건에서의 코뮤니스트(노동자)당 건설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주체형성과 혁명 강령 건설에 다시 나서야 한다. 새롭게 건설될 코뮤니스트(노동자)당은 세계혁명당(인터내셔널) 건설에 복무하는 혁명조직이어야 한다. 러시아 혁명 100주년을 맞은 현재로써는 국제적 수준의 연대와 교류를 실현할 수 있는 찜머발트 좌파9)의 정치적 원칙과 실천을 계승하는 흐름이 중심이 되어 혁명 강령 건설10)과 혁명세력의 재조직화, 새로운 주체의 창출을 위한 준비와 노력을 동시에 기울여야 할 때다.

       

      셋째, 국제적인 수준에서 코뮤니스트, 국제주의 세력과의 교류와 연대를 활성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정기적으로 동아시아와 한국에서 코뮤니스트 국제대회와 포럼을 개최해야 한다. 아시아 코뮤니스트11) 공동 정치 입장을 발표하고, 제국주의와 전쟁, 핵 문제, 계급투쟁에 대한 국제주의 원칙을 고수12)하고 국경을 뛰어넘는 노동자들의 공동행동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러한 국제연대와 신뢰를 바탕으로 공동의 매체를 여러 언어로 발간하고, 아시아 지역 수준에서 국제적인 계급투쟁 개입을 실현해야 한다.

       

      코뮤니스트들은 노동자들이 한국이라는 지역에 갇히지 않고 국제주의 관점에서 국제적 계급투쟁의 흐름과 새로운 운동의 경험을 받아들일 수 있는 토대를 조성해야 한다. 세계적인 계급투쟁은 다시 한 번 혁명의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새롭게 분출되는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이 보여준 용기와 결단, 그리고 깊은 연대의식은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세계가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비공인파업, 점령운동 등 아래로부터의 계급투쟁을 확산시키는 국제적인 계급투쟁 경험의 공유는 새로운 노동자 행동의 창출을 촉진할 것이다.

       

      넷째,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내외부의 적들과 전면전인 이데올로기 투쟁을 벌이는 것과 동시에, 장기적이고 계급의식 발전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새로운 혁명의 주체가 물리적 힘을 갖기 위해서는 새로운 주체의 ‘계급의식’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새로운 주체가 노동자 계급 고유의 계급의식인 전투성(직접 행동), 단결의식(투쟁의 확장), 창조성(자기 조직화와 자기 권력 창조)’을 갖게 되는 계기와 과정을 밝히고, 그것을 촉진하는 일을 혁명조직이 수행해야 한다. 노동자계급은 분열되었을 뿐 해체되지 않았고, 자본주의 쇠퇴의 시기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지배가 전면화 된 상황에서 새로운 주체를 창출하는 것과 전체 프롤레타리아 투쟁이 혁명적 투쟁으로 향하는 데 있어 노동자계급의 계급의식 발전에 기반을 둔 계급 중심성(지도력)은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

       

      다섯째, 그동안 계급운동을 왜곡하고 새로운 운동과 주체의 성장을 가로막아온 운동사회 내부 모순과의 단호하고 전면적인 투쟁이 필요하다. 피억압 계급은 생산과 생존의 현장에서만 고통 받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다양한 차별과 억압구조 아래 고통 받고 있다. 이러한 차별과 억압은 적대적인 계급사회뿐 아니라 운동사회 내부로까지 스며들어 운동을 왜곡하고 주체를 분열시키며 결과적으로 지배계급에 봉사하는 역할을 해왔다. 권위주의/관료주의, 반여성주의, 소수자/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인종과 이주민·노동자에 대한 차별 등이 그것이다. 운동 사회 내부에 이러한 차별과 억압구조를 용인하거나 조직보위 등을 위해 방어하는 모든 세력13)과 전면전을 벌여야 한다. 새로운 주체와 운동은 바로 이러한 내부투쟁을 통해 내부모순을 극복하면서 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섯째, 계급투쟁의 새로운 전형을 창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현실에서는 두 가지 축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는데, 하나는 미조직, 비정규직, 실업노동자 중심의 평의회적 운동의 창출이고 하나는 조직노동자 운동에서 어용-조합주의 세력과 맞서는 전선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어용세력과의 비타협적 투쟁뿐 아니라 그들이 장악한 노동조합 조직 질서 자체를 넘어서려는 급진적인 투쟁이 필요하다. 노조집행부를 장악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본과 협력-상생해가는 조합주의의 한계를 넘어 계급적으로 투쟁하는 ‘직접행동’을 제안하고, 이러한 두 축이 공동으로 행동하는 실제 ‘노동자 행동그룹’이 출현하도록 해야 한다.

       

      일곱째, 계급의식을 발전시키기 위해 투쟁 시기에는 대중(조합원)총회, 일상 시기에는 노동자 광장(캠프)을 자주 열어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직간접으로 경험하고 발전시킬 수 있게 하고, 노동자 토론문화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노동자들의 토론능력(문화)과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실현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맞서 강력한 계급의 무기가 될 것이다. 이러한 토론문화와 직접민주주의의 발전이 직접행동을 촉발하고 확산시킬 것이며, 노동자 운동에 깊게 뿌리박힌 부르주아 민주주의 악습과 조합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다.

       

      현재 한국의 혁명적 사회주의/코뮤니스트 운동 진영과 전투적 노동자들 안에서 작게나마 형성되고 있는 흐름이 바로 위와 같은 운동과 실천의 공유에서 시작되었다. 노동자 투쟁에서의 어용/조합주의 반대와 아래로부터의 공동행동, 운동 내부에서의 성폭력 사건 공동해결과 가해세력과의 투쟁, 찜머발트 좌파 수준의 정치적 공동행동과 토론,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국제주의 노선 고수가 그것이다. 이 흐름이 중심이 되어 더 많은 투쟁과 실천의 원칙을 공유하고 조직적으로 집중하고, 대중적으로 확산시켜 나갈 때 한국 운동은 질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나오며

       

      쇠퇴하는 자본주의 끝 모를 위기 상황에서 노동자계급에 일방적으로 전가된 고통, 끊임없는 제국주의 전쟁위협, 그리고 민주주의 후퇴와 대형 참사라는 재앙 속에서도 아직 전면적인 투쟁에 나서지 못하는 대중들과 후퇴와 추락을 반복하는 한국의 사회주의 정치운동의 현실은 암울하기만 하다. 하지만 작년 말 자발적으로 타오른 촛불 투쟁은 연인원 1,500만 명을 넘어 대대적으로 분출하면서 반격의 계기를 마련했다. 이러한 촛불 투쟁에서 노동자 계급과 혁명운동 세력은 여전히 중심에 서지 못한 채 박근혜의 파면 이후 대선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우리는 이보다 더 혹독하고 길었던 반혁명과 암흑의 시대도 있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반혁명 시대에도 코뮤니스트의 가장 명료하고 원칙적인 입장을 가졌던 혁명가들은 소규모지만 고립된 상황을 고통스럽게 인내하면서 혁명전통을 계승하고 새로운 운동을 창출하기 위해 투쟁했고, 그 덕분에 기나긴 암흑기에도 생존할 수 있었다. 바로 그때 반혁명의 안개가 걷히면서 새로운 혁명세대의 출현 속에서 이러한 입장들이 새로운 생명을 얻었고 그들은 혁명당의 기반이 되었다. 파시즘 아래에서도 그들은 반파시즘 민주주의 투쟁으로 후퇴하지 않고 “미래는 코뮤니스트의 것이다”라고 당당하게 주장하며 코뮤니스트 혁명을 위한 실천을 벌여나갔다.

       

      한국의 코뮤니스트들이 과거를 반성하면서 새롭게 시도해야 할 노력도 바로 그것이라 생각한다. 코뮤니스트 운동의 기본과 혁명적 원칙을 지키는 것, 그리고 동시에 새로운 주체와 새로운 운동을 창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국제적인 수준의 운동 창출은 국제 조직의 한국지부 건설이나 이러저러한 해외 운동조류의 복제물 이식이 아니다. 그것은 소규모, 소수파 운동에 머물고 있지만 현재의 고립된 상황과 퇴보하는 정세를 인내하면서 새로운 운동을 창출하려는 고된 노력의 결과물로 나타날 것이다. 한국의 혁명운동은 늦게 시작한 만큼 기초를 튼튼히 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국제적 수준의 운동으로 상승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조직적 개인적 성숙이 필요하다.

       

      지금의 암울한 상황이 자본주의 타도와 코뮤니스트 혁명으로 향하는 길에 우회로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야만의 자본주의를 넘어 인류의 미래를 밝혀줄 유일한 목표가 코뮤니스트 혁명임을 증명해주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프롤레타리아 계급 운동의 최종 목표를 분명히, 공개적으로, 공세적으로 주장하며 새로운 운동을 창출해 나가야 할 때이다. “미래는 야만이 아니라 코뮤니즘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 동지들, 우리는 우리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지점에 도달했습니다. 우리는 맑스로 되돌아왔으며, 그의 깃발 아래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강령에서 선언합니다.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사회주의를 진실로, 사실로 만들며, 자본주의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파괴하는 것 외에 더욱 긴급한 일은 없습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더 이상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조건 아래서 살 수 없기 때문만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가 그 계급적 의무를 수행하지 않거나, 사회주의를 실현하지 못하면 소멸한다는 위협을 받아왔기 때문에, 사회주의는 필수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강령과 정치적인 상황’, 로자룩셈부르크, KPD(LS) 창립대회, 1918)

       

      국제코뮤니스트전망│이형로

     
     
    <주>
     
    8) 현재의 세계적인 혁명적 공산주의 운동 세력은 자신들을 스탈린주의자(공산당)들과 구분하기 위해 국제주의(자)-공산주의자라고 표기한다. 한국에서는 스탈린주의 경향의 조직들이 자신을 공산주의자라고 표기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혁명운동을 ‘공산주의(코뮤니스트) 운동’이라고 표기했다.
     
    9) “1차 대전이 발발한 후, 유럽의 모든 사회주의 세력들이 애국주의의 광풍에 휩쓸려가고 있을 때, 제2인터내셔널로 대표되는 기존의 사회주의 운동과 노동운동이 전반적으로 파산하고 붕괴하는 시기에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는 극소수의 좌익들 ― 즉, 독일의 로자 룩셈부르크 지지자들과 좌익 공산주의자들, 러시아의 볼셰비키와 트로츠키주의자 등 ― 이 시대의 유행에 반해서 새로운 흐름을 창출하고자 침머발트에 결집했다. 이 운동은 러시아혁명으로 이어졌고, 새로운 인터내셔널, 코민테른의 건설로 이어졌다. 세계적으로 혁명적인 좌익은 모두 침머발트 좌파로부터 시작했다.” [붉은글씨] 창간호 발간사 중 -
     
    제3인터내셔널(코민테른)의 기반을 이룬 흐름, 분파, 전통 그리고 입장은 바로 제2인터내셔널의 좌파인 침머발트 좌파가 발전시키고 방어한 것들이었다. 이러한 침머발트 좌파의 교훈은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근본 원칙이 위선적인 선언들이나 정당의 간판에 의해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실천에 의해서 입증된다는 사실을 결정적으로 보여주었다. 제국주의의 대학살 동안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깃발을 홀로 나부끼게 한 것도, 러시아에서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수호로 다시 모여든 것도, 전쟁 발발 시 수많은 나라에서 발생했던 파업들과 봉기들을 주도한 것도 모두 침머발트 좌파와 같은 흐름이었다. 그리고 1919년 창설된 새로운 제3인터내셔널(코민테른) 핵심을 제공한 것도 이들 동일한 흐름들이었다.
    그리고 제3인터내셔널(코민테른) 창립총회에서 발표한 입장은 프롤레타리아운동의 역사상 가장 진보된 입장이었다. 사회-애국주의적 반역자들과의 전적인 단절, 자본주의 쇠퇴의 새로운 시기에 의해 요구되는 대중행동의 방법들, 자본주의 국가의 파괴 및 노동자 소비에트의 국제적인 독재. 이러한 강령적 명확성은 혁명 물결의 거대한 기세를 반영했지만, 그것은 이미 기회주의 정당들 내부의 좌파들이 정치적 이론적으로 준비했던 것이었다. [붉은글씨] 4호 발간사 중 -
     
    10) 혁명 강령을 국제적 혁명 운동의 수준에서 건설하기 위해 강령에 필수적으로 들어갈 조항은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 위기와 쇠퇴의 문제 규명, 러시아 혁명에 대한 평가와 소련과 중국, 북한 등 사회 성격 규명,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에 대한 원칙, 노동조합과 노동자 정당에 대한 입장, 의회주의와 선거에 대한 원칙, 제국주의 문제와 국제주의 원칙, 인민전선, 공동전선에 대한 입장, 혁명가 조직(당)과 계급의식에 대한 원칙, 노동자 자치경영과 복지에 관한 입장, 장애인 소수자 이주노동자에 대한 연대와 계급적 입장, 여성해방, 성해방애 대한 공산주의 원칙,  계급 투쟁(전쟁)과 공산주의 혁명의 경로 등이 그것이다.
     
    11) 아시아에서 침머발트 좌파, 공산주의 좌파 입장을 가진 국제주의 공산주의 세력은 대부분 잘 알려지지 않았고, 상호 교류도 제한적이었다. 이들은 국제조직의 아시아 지역 지부나 소규모 혁명그룹으로 존재하는데 한국, 일본, 필리핀, 홍콩, 인도와 중동지역에서 활동 중이다.
     
    12) 2006년 10월 한국에서  처음으로 혁명적 맑스주의자(공산주의자) 국제대회가 열렸다. 이때도 2016년 초와 비슷하게 북핵 문제와 한반도의 전쟁위협이 고조되던 때였다. 당시 국제대회 기간 중 긴급하게 북핵문제에 대한 국제주의자 선언이 제안되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중요하고 진지한 토론을 거쳐 선언서가 채택되었고, 이때 참가한 국제주의 조직들은 전원 기꺼이 선언에 서명했다. 안타깝게도 당시의 한국 혁명적 사회주의자? 일부는 북한체제에 대한 명확한 규정과 민족, 제국주의 문제에 대한 국제주의 입장을 갖고 있지 못했었고 이러저한 이유로  선언에 참여하지 않았다.
     
     당시의 선언문은 다음과 같다.
     
    <전쟁위협에 대항하여 한국으로부터의 국제주의자 선언>
     
    북한의 핵실험에 관한 소식에 이어, 서울과 울산에서 회합을 갖고 있는 우리들, 공산주의 국제주의자들은:
     
    1. 또 하나의 자본주의 국가의 손 안에서의 새로운 핵무기 개발을 비난한다: 핵폭탄은 제국주의자들 간의 전쟁에서 최종적인 무기이다. 그 유일한 기능은 일반 민간인의 특히 노동자계급의 대량학살이다.
     
    2. 자본주의 국가 북한에 의해 자행된 전쟁으로 향한 이러한 새로운 단계를 전적으로 비난한다. 이때 북한은 자신이 노동자계급이나 공산주의와는 전혀 무관함을 그리고 군사적인 야만주의로 향한 쇠퇴한 자본주의의 전반적 경향의 가장 극단적이자 괴기한 판본에 지나지 않음을 (필요하기라도 한 것처럼 )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3. 그들의 적 북한에 대항한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위선적인 캠페인을 가차없이 비난한다. 그러한 캠페인은, 오늘의 이라크에서와 같이 노동자인민이 결국은 그 주요 희생자가 될 선제공격들의 개시 – 그들이 이렇게 할 능력을 갖고 있다면 –를 위한 그들의 이데올로기적인 준비에 불가하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민간인을 절멸했을때의 그 미국이 지금까지 전쟁에서 핵무기를 사용한 유일한 세력임을 우리는 잊지 않고 있다.
     
    4. 중국과 같은 다른 제국주의 갱스터들의 비호 아래 출현할 수 밖에 없는 이른바 평화발의 “peace initiative“들을 가차없이 비난한다. 이것들은 이 지역에서의 평화가 아니라 그들 자신의 자본주의적 이해관계의 옹호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노동자들은 어느 자본주의 국가의 어떤 ”평화적인 의도들“도 믿을 수 없다.
     
    5. 국가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옹호라는 미명아래 남한 부르주아계급이, 국제주의적 원칙을 방어하는 노동자계급에 또는 그 활동가들에 대항하여 억압적 조치들을 취하려는 모든 시도들 가차없이 비난한다.
     
    6. 발생하게 될 군사행동으로 인해 제일 먼저 고통당할, 남북한의, 중국의, 일본의 그리고 러시아의 노동자들과의 우리의 전적인 연대를 선언한다.
     
    7. 자본주의 아래의 인류를 엄습하는 야만주의의의, 제국주의 전쟁의, 그리고 핵파괴의 위협을 영원히 종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노동자들의 전세계적인 투쟁임을 선언한다.
     
    노동자들에게 있어 수호해야할 국가는 없다!
    전 세계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2006년 10월26일
    국제공산주의흐름/사회주의정치연합/국제주의자전망/SJ(노동자평의회 서울그룹)/MS(노동자평의회 서울그룹)/LG/JT/JW(울산)/SC(울산)/BM
     
    13) 최근의 문제만은 아니지만, 운동사회 내부에 큰 파장을 일으킨 민주노총과 정치조직이 관련된 여러 성폭력 사건에서의 ‘조직보위’ 흐름은 한국의 정치조직과 운동사회가 얼마나 성폭력사건의 운동적 해결에 무능하고 성평등 실현을 위한 실천에 무관심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이러한 문제의 운동적 해결과 성평등 실현 없이 노동자 운동과 혁명운동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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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5호]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반성과 코뮤니스트 운동의 전망 1

  •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반성과 코뮤니스트 운동의 전망 1

     

     

    들어가며

     

    “코민테른 내에서 ‘좌파’의 전투는 특히 노동자운동의 가장 끔찍한 시기, 1920년대 말에 시작한 반혁명의 시기 동안 싸웠기 때문에 특별하게 의미가 있다. 이러한 반혁명의 상황 속에서, 노동자 운동의 급속한 쇠퇴 속에서 코민테른의 좌파 혁명가는 잊지 못할 투쟁을 수행했다. 당과 코민테른을 바로 세우는 실낱같은 희망이 남아 있었고 그들도 스탈린주의 철권으로부터 당과 코민테른을 구하려는 것이 그들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이탈리아 공산주의 좌파는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이론적으로 풍부하게 했다. 제국주의 전쟁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대한 코민테른의 입장은 계급을 배반하여 되돌릴 수 없게 했다. 조직의 반역이 분명하지 않고, 당이 적 진영에 무기와 짐을 건네주지 않는 한 진정한 혁명가의 역할은 프롤레타리아 진영 내에서 싸우고, 필사적으로 당을 지키는 것이다. 이것이 좌파가 거센 반혁명의 가장 어려운 조건에서, 코민테른에서 했던 일이다.“(‘인터내셔널의 퇴행에 직면한 혁명가의 책임’, 국제코뮤니스트흐름, 1997)

     

    전대미문의 길고 깊은 반혁명기에도 코뮤니스트들이 혁명가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냈기에 현재의 혁명 운동이 존재할 수 있었다. 현재의 암울한 상황은 반세기 전 혁명가들의 경험을 되살려 새롭게 발전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의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평가와 반성은 바로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이란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을 풍미한 PDR과 NDR 등 스탈린주의 이론에 기초한 민주주의 혁명론을 받아들인 기존 운동과 단절하고 보다 철저하게 맑스-레닌주의에 기초한 노동계급 운동을 창출하려 했던 일군의 정치그룹들을 가리키는 것이다.”1)

     

    ‘사회주의’와 ‘코뮤니스트'에 대한 엄밀한 구분은 별개로 하더라도, 이 용어 앞에 ’혁명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이유는 사회주의/코뮤니스트 운동의 역사에서 맑스주의 연속성과 혁명 전통을 벗어난 조류가 너무 많아서 이들과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직 규모나 활동 성과와 관계없이 ’프롤레타리아 계급(혁명의 주체)의 세계혁명(아래로부터의 노동자평의회 국제권력 창출)을 통해 자본주의 착취체제(임금노동, 상품생산, 화폐)를 폐지하고 코뮤니스트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현실에서 투쟁하고 조직적으로 실천하는 운동‘을 혁명적 사회주의/코뮤니스트 운동이라 규정할 수 있겠다. 여기서 사회주의 또는 코뮤니스트(맑스에게 이 두 개념은 동의어였다)는 당이나 국가 수준에서 실천할 수 있는 조건이나 강령이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 상품생산 및 가치법칙을 폐지하기 위한 운동, 즉 자본주의 사회 관계를 의식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혁명운동이다. 그동안 존재했던 한국의 이른바 ’혁명적 사회주의/코뮤니스트 운동(이하 혁명운동)‘ 조직들이 이론, 조직, 실천적으로 이 규정에 얼마만큼 부합하는지는 별도의 검토가 필요하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필자는 한국에서의 혁명운동에 대한 그간의 평가가 노선별, 시대별 평가에 머물렀던 한계를 극복하고 국제적 시각으로 토론의 폭을 넓히기 위해 한국 혁명운동을 세계적인 코뮤니스트 운동 흐름과 비교하면서 평가해 보고자 한다.

     

     

    1. 한국의 혁명운동은 왜 취약한가?

     

    먼저 세계적인 코뮤니스트 운동의 흐름에 비해 한국의 혁명운동은 왜 취약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알아보겠다. 여기에는 과거 운동뿐 아니라 현재 상황도 포함된다.

     

    첫째, 한국의 노동자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은 한국전쟁 이후 40년 넘는 오랜 기간, 그리고 계급투쟁의 결정적인 시기에 세계적인 코뮤니스트 운동, 혁명전통과의 단절이 있었다.

     

    현존하는 국제적인 혁명조직들은 맑스의 코뮤니스트 동맹(the Communist League)에서 시작하여 10월 혁명의 결과로서 창설된 제3인터내셔널에 이르기까지 노동자 운동의 혁명적 사상과 전통2)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혁명전통은 19세기 말 기회주의에 대항해 투쟁해온 제2인터내셔널의 좌익분파에서 시작하여, 1914년 제국주의 전쟁에서 국제주의를 방어했고, 1917년 러시아혁명에서는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수호했으며, 1919년 코민테른 창설에 공헌했고, 1920년대 코민테른 내부의 기회주의 흐름에 대항해 저항하면서 하나의 국제적 흐름을 형성했다. 그 후 코민테른의 타락과 스탈린주의 반혁명에 맞선 투쟁, 국제주의를 포기하고 자본주의 진영으로 돌아가 자본의 좌파로 자리 잡은 사회주의/코뮤니스트 정당들과 스탈린주의, 마오주의, 김일성주의 등 사회주의 참칭 세력과의 투쟁, 그리고 자본주의 방어역할을 하는 사민주의, 개량주의, 민족주의 세력과 오랜 투쟁을 해 온 혁명적 전통이다.

     

    이러한 혁명전통과 오랜 기간 단절되어 있던 한국 혁명운동은 극단적 민족주의 세력(김일성주의)이 대중운동의 다수를 장악하는 과정에서 무기력했고, 내부적으로는 사상 이론적 취약성과 혁명운동의 경험부족으로 잦은 분열과 퇴행을 겪었다. 지금도 이 문제는 여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계급투쟁과 정치운동 전반이 퇴보하는 상황에서 소수의 혁명운동 세력은 노동자운동 안의 조합주의조차 넘어서지 못한 채 노동자 계급 안에 의미 있는 정치세력으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둘째, 대부분 사회주의/코뮤니스트 운동의 선전그룹으로 시작했더라도 서클운동에 머물지 않고 운동의 양적 질적 성장을 통해 장기적인 당(혁명조직)건설 기초를 마련해야 하는데 그것에 이르지 못하고 좌초되거나 완전히 실패했다. 여기에는 정파적 이해관계, 형식과 일정에 집착한 당 건설 경로도 문제였지만, 근본적으로는 혁명조직의 전제조건인 강령 건설(토론-실천-검증-통일)의 연속되는 과정이 없거나 부족했다.

     

    1930년대 이후 기나긴 반혁명의 암흑기에도 살아남은 세계의 혁명운동세력들은 68혁명 이후 분출한 계급투쟁의 물결과 함께 유럽을 중심으로 남미, 북미, 아시아 일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고 새롭게 부활하게 된다. 그리고 각개 약진하던 이들은 1970년대 초부터 일련의 국제대회를 개최하여 국제그룹을 형성하고, 1977년에는 전 세계의 혁명적 코뮤니스트 그룹에 국제대회를 제안3)하여 이탈리아에서 제1차 대회를 하게 된다. 국제대회 참가 그룹들은 이미 내부강령을 갖고 있거나 여러 가지 쟁점들을 토론한 결과 국제적인 수준의 강령을 정립하게 된다. 국제대회 과정에서 10년 넘는 지난한 강령토론과 사상투쟁의 과정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국제적 수준의 행동통일과 혁명적 코뮤니스트 세력의 국제적 재조직화 가능성, 그리고 세계혁명당(인터내셔널) 건설의 전망은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2007~20011년 사노련-사노위 강령토론 과정에서 쟁점이 되었던 주제들 대부분은 사실은 이미 40년 전, 더 올라가 80~90년 전에 국제적으로 깊고 풍부하게 토론되었던 내용4)이었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서의 강령토론은 여기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민주집중제 원리에 기초한 비합법 전위정당의 건설, 프롤레타리아트 사회주의 혁명, 인민전선 같은 상층연대 방식이 아니라 노동자 대중투쟁에 입각한 전술, 평의회 권력으로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등이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이 내세운 공통의 지반이었다.”5)

     

    한국 혁명운동의 큰 성과라 할 수 있는 위와 같은 공통의 지반은 2000년대 초, 중반 비공개 그룹들의 공개 활동과 몇 차례의 연합운동 과정에서 차이와 공통점을 확인했음에도 ‘강령 건설’을 중심에 둔 장기적인 당 건설 투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조직형식, 전술문제, 써클주의 한계 등으로 좌절되었다. 당시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더라도 ‘강령 건설의 연속되는 과정’을 상정하고 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국내외 여러 혁명세력과 열린 자세로 강령토론을 추진했어야 했다. 이러한 시도조차 없었기에 각 정파의 이론과 노선은 객관적으로 검증받을 수 없었고, 대중운동으로부터 실천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도 없었다.

     

    지금도 당 건설을 목표로 하는 그룹이나 분파의 역할은 미래의 ‘당 노선’을 올바르게 하는 투쟁을 하는 것이고, 그것의 결과로 계급투쟁이 복원될 때 당의 본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더디고 고통스럽더라도 이 과정을 제대로 수행해야 한다.

     

    셋째, 한국 혁명운동의 가장 취약점은 조직과 운동 모두의 폐쇄성이다. 이것은 앞서 말한 세계적인 혁명운동 흐름과의 단절, 혁명조직 운동의 경험 부족, 혁명조직과의 교류 부재와 연결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세계적인 혁명운동의 물결을 만들었던 대대적인 계급투쟁과 그와 결합한 혁명운동의 경험이 없었고, 더욱이 이러한 결핍을 채워줄 국제 혁명조직과의 직간접 교류도 부족했기 때문에, 위대한 계급투쟁의 경험은 대중적으로 전혀 공유되지 않았다. 이렇게 사회주의 운동의 대중적 경험과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70~80년대 엘리트 운동가들 중심으로 이러저러한 맑스주의 이론이 비 맑스주의적인 것과 섞여 체계와 순서도 없이 수입6)되었다. 반공을 무기로 한 독재정권의 가혹한 탄압 아래, 일부가 독점했던 당시의 사회주의 운동은 전반적으로 폐쇄적일 수밖에 없었고, 특정 인물이나 정파가 조직과 운동을 오랜 기간 장악하는 폐해를 낳았다. 이는 90년대 중후반 이후에도 지속하였고, 현재에도 몇몇 그룹의 조직 운영 폐해 사례로 나타나고 있다.

     

    파시즘 아래서도 살아남아 혁명운동의 전통을 이어나갔던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유럽 코뮤니스트 좌파의 경험, 68 이후 다양한 사상 운동적 조류 속에서도 혁명적 흐름을 재조직화하고 코뮤니스트 운동의 지평을 넓힌 국제주의-코뮤니스트들의 지난한 노력과 경험, 노조를 넘어선 수많은 비공인 파업과 파업위원회, 대중총회를 주도한 노동자 투사들의 노동자 민주주의의 경험, 수많은 국제대회와 포럼, 캠프를 통해 얻게 된 국제주의자 토론문화는 혁명 운동의 소중한 자산들이다. 이러한 운동 경험의 축적이 혁명 운동의 생존 시기와 확장 시기, 그리고 계급투쟁의 결정적 시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혁명운동의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이런 경험과 자산을 혁명 운동 진영에서 적극적으로 공유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 조직/노선의 이해관계에 따라 배척할 때 그 운동은 특정 국가, 지역, 정파에 갇히게 된다. 국제적인 수준의 토론과 검증 없이 국내에 갇힌 운동은 써클주의, 종파주의, 패권주의 등 운동의 여러 폐해와 결합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내부적으로도 조직(노선)의 창립자(수입자)나 이식자가 조직과 운동을 사적으로 지배하게 되어, 아래로부터의 자기혁신이나 운동의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어왔다.

     

    안타깝지만 한국 혁명운동의 이러한 취약점은 지금도 대부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수많은 혁명운동의 경험을 공유하고 세계적인 계급투쟁의 흐름에 함께 하기 위한 공산주의자 국제대회 참가-개최, 국제주의적 공동행동 등의 노력은 아직도 보이지 않고 있고, 상시적이고 공개적인 강령토론도 중단된 상태이다.

     

     

    2. 1992년 이후 사회주의 운동의 간략한 평가

     

    「국제코뮤니스트전망」은 출범 문서를 통해 1992년 이후 사회주의 정치운동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1992년부터 자의적이거나 타의적이거나 공개영역으로 나온 사회주의 서클들은 선거주의와 의회주의로 경도되면서 합법·개량주의로 나아갔다. 특히 1997년은 양날개론으로 표현되는 민주노총의 건설과 그에 기반을 둔 민주노동당의 건설로 혁명적 사회주의의 비공개영역과 적대적으로 분리되었다. 2002년의 대선은 이러한 관계설정을 마무리하는 과정이었다. 그 당시 「노동자의 힘」과 「사회당」은 선거전술에 집착하여 혁명정당 건설을 통한 혁명주의의 복원으로부터 이탈했다. 혁명적 사회주의 서클과 함께 혁명당을 건설하려는 노력은 무산되었다.

     

    2003년 「사회주의 정치연합」은 중도주의와 선을 긋고 혁명적 사회주의 세력의 연대와 단결을 위한 매개의 역할을 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노력의 하나로 2005년 7월 「혁명적 맑스주의자 모임」의 제안이 있었다. 그 제안은 다음의 몇 가지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첫째, 자본주의의 표면적 사멸이라는 역사유물론에 근거하여 비 맑스주의의 역사적 오류를 비판·극복해야 한다는 점.

     

    둘째, 자본주의의 객관적 구조와 혁명적 주체의 변증법적 결합을 총체적으로 인식하는 변증법적 유물론에 근거하여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실천을 통한 진정한 계급혁명을 이룩해야 할 역사적 과제를 인식했다는 점.

     

    셋째, 과잉생산이라는 자본주의의 축적위기가 자본의 전략으로 모면할 수 없고 전쟁과 파시즘이라는 야만에의 회귀로 나아가, 결국 인류의 파멸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인식했다는 점.

     

    넷째, 1920년대 초반의 세계 혁명의 실패, 스탈린주의의 등장은 반혁명의 역사적 반동으로 나아갔고, 이러한 역사적 퇴행에 도움을 주었던 사회민주주의, 무정부주의, 민족주의는 자본주의와 부르주아지의 유지·강화를 보완하는 반혁명적 이데올로기로 기능했고, 혁명세력의 복원을 가로막았다는 점.

     

    다섯째, 지금까지의 인터내셔널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진정한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건설을 목표로 한 각각의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당 건설의 과제가 우리에게 놓여 있으며,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권력기관인 노동자평의회와 변증법적 결합으로 혁명을 실천해야 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얻었다는 점이다.

     

    그 모임의 제안은 세계혁명을 향한 세계 혁명적 맑스주의(사회주의) 진영의 국제주의 실현을 위한, 세계 코뮤니스트 연대를 위한 것이며, 그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의 혁명적 맑스주의자(사회주의자)들도 함께 하면서, 우리의 혁명적 운동을 복원해내고 고립·분산되어 각개약진하고 고군분투해왔던 세력들이 새로운 각오로 힘차게 연대 전진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작을 하자는 취지였다. 2년간에 걸친 진지하고 열띤 토론을 기반으로 이 모임은 「사회주의 노동자 연합」을 공개적으로 제안하고 동의한 주체들을 중심으로 2008년 2월 출범하게 된다.

     

    혁명적 사회주의와 혁명당 건설을 공개적으로, 대중적으로 선언하고 계급투쟁을 통해 실현하겠다는 이 흐름은 새로운 시도로 한국의 코뮤니스트 운동사에서 역사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장기간에 걸친 혁명운동의 새로운 주체 창출이 아닌 운동의 몰락 속에서 발생한 단기적 연합운동이었기에 그 한계는 분명했다. 「사노련」은 서클연합으로 출범했기 때문에, 결합하지 못한 서클과 혁명주의자, 그리고 중도주의 세력 속의 혁명 인자들이 다시 한 번 공동실천을 통해 한 걸음 전진하자는 「사노위」 결성제안은 더욱 실험적인 시도였으며, 1년 반 동안의 공동실천은 결국 강령, 조직, 전술의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하며 종지부를 찍는다.

     

    「사노위」와 분화된 세력이 「노혁추」와 「노동해방」으로 각개약진하고 「사노련」의 잔존그룹은 「노건투」로 각각 실천하게 된 것은 혁명 세력의 분열이 아니라, 오히려 독자적인 실천을 하면서 계급으로부터 검증받는 과정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2012년 총선 선거전술 문제로, 「노혁추」에서 코뮤니스트좌파 세력이 분화한 것은, ‘종파적 철수’가 아니라 ’정치적 차이’의 결과였다. 그 차이는 혁명당 건설을 둘러싼 정치활동의 전망에 있었다.

     

    그리고 2012년 대선은 노동자독자후보에서 비판적 지지까지 늘 반복되는 선거전술의 재탕과 이합집산 속에서 두 명의 노동자 후보, 민주노총의 무능, 저조한 득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패, 사회주의 정치의 실종 등 최악의 선거결과를 초래했고 이는 노동자운동 전체의 쇠락을 가속하는 역할을 했다.“7)

     

    현재 더는 혁명조직 건설-확장을 통한(혁명 강령, 정치의식 균질화, 정치적 행동일치를 전제로 한) 당 건설 시도는 중단된 상태이다. 실패하고 타락한 당 건설 운동에 대해 제대로 된 반성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혁명주의 세력의 노선 투쟁을 통한 경쟁과 연대·단결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동안 혁명세력이 반혁명적 스탈린주의 세력이나 민족주의 세력, 각종 기회주의 세력과 대적 전선을 공고히 하는 데 주력해 온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독자적인 사상노선으로 논쟁하고 계급으로부터 검증을 통해 신뢰를 획득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러한 노선투쟁의 역사가 이미 유럽과 러시아 등지에서 100년 전부터 있었음을 상기하고 있다. 세계 혁명당 건설을 목표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실현하려는 현 단계 한국의 혁명운동 세력은 이제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혁명적 사회주의/코뮤니스트 사상과 실천의 원칙을 분명하게 내세우고 노선투쟁을 해야 하고, 진정한 의미의 정치 원칙, 강령의 통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세계적인 코뮤니스트 운동의 역사에서 「코뮤니스트 좌파」의 원칙과 투쟁을 계승· 복원하고, 다른 혁명주의자들과 논쟁하고 토론하며 다시 연대하고 단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국제코뮤니스트전망│이형로

     

    <주>

     

    1)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붉은글씨 2호], 이태영|사회주의노동자신문

     

    2) 맑스와 엥겔스의 코뮤니스트연맹(1847-52), 3개의 인터내셔널(국제노동자연합 1864-72,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1889-1914, 및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1919-1928), 1920년대에 타락해가는 제3인터내셔널로부터 분리해 나왔던 코뮤니스트좌파 분파들, 치머발트 좌파로부터 코민테른까지의 혁명가들은 로자, 레닌, 호르터, 판네쿡, 트로츠키, 팽크허스트, 보르디가 등이 있다.

     

    3) 국제대회 참가 제안 그룹 명단은 다음과 같다.

    이탈리아 : Battaglia communista(제안자), 프랑스 : Révolution Internationale, Pour Une Intervention Communiste, Union Ouvrière, Combat Communiste, 영국 : CWO, W.R, 스페인 : Fomento Obrero Revolucionario, 미국 : Revolutionary Workers Group, 일본 : 일본혁명적공산주의자연맹, “혁명적맑스주의분파”(Kakunaru-Ha), 스웨덴 : Forbundet Arbetamakt(Workers Power Leage), 포르투갈 : Combate

     

    4) 반혁명기였던 1930년대에 '빌랑(Bilan)' 주변의 이탈리아 좌익분파는 당시의 임무들을 정확히 정의했는데, 첫째, 전쟁에 직면해서 국제주의의 기본적인 원칙들을 배신하지 않을 것. 둘째, 러시아 혁명 실패의 대차 대조표를 작성할 것. 그리고 미래의 계급투쟁 부활 시 나타나게 될 새로운 당에 이론적인 기초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적절한 교훈들을 이끌어낼 것 등이었다. 

    이때 이미 러시아혁명에 대한 평가와 소련 사회의 성격, 프롤레타리아 독재(이행기) 문제, 당과 평의회 관계, 제국주의 전쟁과 국제주의 원칙,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통일전선의 허구성, 의회주의 반대 등에 대한 깊고 풍부한 토론을 통해 강령 원칙을 정립했다.

    이후 프랑스 코뮤니스트 좌파(the Gauche Communiste de France)는 1930년대~1950년대까지 빌랑의 정신에 입각하여 활동을 계속했고, 한편으로 계급의 직접적인 투쟁들에의 개입에 대한 사명감에 태만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정치적 및 이론적 규명작업에 총력을 집중하여, 수많은 진전을 이뤘는데, 특히 국가자본주의의 문제, 이행기, 노동조합과 당에 대한 강령적 원칙의 진전을 이뤄냈다. 

     

    5)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붉은글씨 2호], 이태영|사회주의노동자신문

     

    6) 예를 들어 이탈리아의 그람시 이론을 수입, 소개하면서 그가 이탈리아에 스탈린 정책을 이식시켰고, 이탈리아 공산당에서 혁명분파를 축출하고 당을 타락-변절시켰다는 역사적 사실을 소개하지 않았다.

     

    7) ‘코뮤니스트 정치조직을 출범하면서’, [코뮤니스트] 창간호,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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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5호] 실비아 팽크허스트 : 혁명가들은 왜 노동당에 반대하는가?

 

실비아 팽크허스트: 혁명가들은 왜 노동당에 반대하는가?
 
 
 1917~23년의 혁명 물결 속에서 공산주의좌파였던, 실비아 팽크허스트와 노동자전함(Workers’ Dreadnought)을 중심으로 한 소그룹이 영국 공산주의자당을 건설하는 투쟁을 이끌었는데, 그들은 노동당이 노동자 혁명에 미치는 위험성에 대해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노동당은 1914년 초 약간 주저한 뒤 '사회 애국주의자'의 대열에 합류했고, 제1차 세계대전의 학살에서 영국 제국주의의 지지자가 되었다. 1920년 팽크허스트가 쓴 기사에서 발췌한 이글은 노동당을 여전히 자본가 정당이 아니라 ‘개혁주의자’라고 언급하고 있지만, 자본주의 국가의 반혁명적 역할을 강력하게 비난한 것은 매우 명백하다.

사회 애국주의 노동당의 계획에 반대하여 노동자전함 그룹은 자본주의 전복과 임금제도의 폐지와 공산주의를 향한 단계로 소비에트를 통해 행사하는 노동 계급 독재의 필요성을 방어했다.
 
 
"영국 노동당 같은 개혁적 사회 애국주의 정당들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모든 곳에서 자본가를 지원하고 있다 : 세계 대전으로 인해 발생한 충격과 점증하는 러시아 혁명의 영향력에 의해 자본주의가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부르주아 사회 애국주의 정당들은 그들이 자신을 노동당이라고 부르던 사회주의자당이라고 부르든 간에 공산주의 혁명에 맞서 어디에서나 활동하고 있는데, 그들은 공격적인 자본가들보다 더 위험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도입하려고 하는 개혁이 자본주의 체제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사회 애국주의 개혁주의자들이 권력을 잡게 되면 그들은 노동 계급의 이상적 방법과 전술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때문에 자본가들이 보여주는 것과 같이 강력한 결단력으로 노동자 혁명을 막기 위해 싸운다.

영국 노동당은 다른 나라의 사회 애국주의 조직처럼, 사회의 자연적 발전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권력을 잡을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은 사회 애국주의자들을 전복시킬 세력을 구축해야 하며, 우리는 이 나라에서 그 일을 지연시키거나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노동당에 힘에 보태어 우리의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 그들이 권력에 오르는 것은 필연적이다. 우리는 그것을 정복할 공산주의 운동을 만드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노동당은 곧 정부를 구성할 것이다; 혁명적 반대세력은 그들을 공격할 준비를 해야 한다."

- 1920년 2월 21일. '공산주의자당을 향하여', 노동자전함(Workers’ Dreadnought)에서 발췌.
 
<원문 출처>
http://en.internationalism.org/icconline/201510/13478/sylvia-pankhurst-why-revolutionaries-are-against-labour-par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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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팽크허스트 / Sylvia Pankhurst
 
1882-1960
 
처음엔 전투적 여성 참정권운동가였지만, 다른 여성 참정권운동가들이 제국주의 전쟁을 지원하는 것을 보고, 영국 좌익공산주의 경향의 ‘노동자전함(Dreadnought)그룹'의 지도자가 된다. 독일공산주의노동자당(KADP)에 관여했으며,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에 참석하여 논쟁한다. 특히 레닌과 논쟁하면서 영국 좌익공산주의, 반의회 노동자평의회운동의 선구가 된다.
 
-주요저서
 
1915: Force Feeding of a Suffragette
1917: An anti-Jewish pogrom in London
1919: The New War
1919: The British Workers and Soviet Russia
1920: The Communist Party: Provisional Resolutions towards a Programme
1921: The forgotten Keir Hardie
1921: On Entry into the Labour Party at the 2nd Congress of the Comintern
1921-3: Communism and its Tactics
1922: Communism versus Reform in Ireland
1923: The Future Society
1923: Soci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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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5호] 선거 – 실비아 팽크허스트|

선거 – 실비아 팽크허스트

                            1918년 영국 총선 당일 ‘노동자전함’에 발표한 반(反) 의회 기사
 
                  “아니, 투표하지 않을 거야.” “영국 정부는 당신의 심장에서 피를 뽑고 있어요.”
 
버스 안에서 가난한 여성이 말했다. 이 쓴소리 속에서 그녀는 의회 후보자들과 지지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그리고 모든 신문을 채우는 다양한 경향의 현재 논점, 즉 공허한 정치적 헛소리에 대한 그녀의 태도를 요약했다. 우리는 이 선거에서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노동자가 자본주의 체제의 기구와 산물인 국회를 폐지하도록 촉구하고, 사회주의 공동체를 창설하고 유지하기 위한 집행 도구가 될 노동자 대표 평의회 설립을 촉구한다. 현재 선출된 의회는 임박한 크고 중요한 변화에 대처할 수 없다. 연합은 반동 자본가 당이며, 자유당은 같은 것을 약하게 구현한 당이다. 노동당은 비록 모든 후보자가 모두 선출된다 해도, 그 숫자로 정부의 권력을 잡을지라도, 그것은 정말 중요한 모든 문제를 결정할 때, 자본주의 정책의 결과로 휩쓸리게 될 우유부단한 개혁주의 정부 이상의 것을 우리에게 줄 수 없을 것이다. 노동당의 후보자 명단은 과거 자유주의자들, 전직 보수당, 좁은 전망의 맹목적 조합주의자들, 중산층 평화주의자들이 사회주의자들의 작은 뿌리와 함께 이상한 잡동사니로 구성되어 있다. 정말 중요한 문제에 대해 그런 집단으로부터 결정적인 행동을 보장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
엉터리 개혁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그들은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을 가난하게, 부자는 여전히 부자로 남겨 둘 것이다. (…)
웨브(Webb)와 집행부, 의회 후보자, 그리고 노동당의 저명한 인사 등 대다수는 계급과 참전 사이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철학에 맞서 싸우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 볼셰비즘이라고 부르는 것이 편리한 철학. 물론 단지 사회주의이다. 웨브는 12월 10일 데일리 뉴스에서 발했다.
 
“볼셰비키의 본질은 의회 기관에 대한 경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의 상실; 임금 노동자 자신의 ‘직접 행동’에 따라; 육체노동자 이외는 모두 제외된 노동자와 병사평의회에 의한 하원의 교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다.” 이것은 지금 유럽을 넘어 서쪽으로 퍼지고 있는 혁명적인 유행병이다. (…)”
 
정치적 세대에 웨브는 사회주의자로 불렸다. 그는 정말 젊은 시절에 사회주의자였을까? 그가 지금까지 사회주의 전망을 어렴풋이라도 알고 있었다면, 그는 사회주의 아래서 우리는 모두 프롤레타리아트가 될 것이며, 하나의 계급만이 존재하리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만 한다. 이행기에 타인을 고용하여 그 수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직 남아 있을 때, 분명히 노동자에게 투표의 힘을 집중시키는 것이 현명하다. 명예는 노동자의 상징이며, 타인이 생산한 부로 기생충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행기에 웨브뿐 아니라 노스클리프와 록펠러가 투표권을 박탈당한다면, 펜은 여전히 그들 영향력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다 줄 것이다. 사회주의 흐름은, 노동자들에게 모든 힘을 불어넣으며, 유럽을 휩쓸고 있다. 그리고 노동자 계급이 갈망하는 사회주의 사상의 물결이 이 나라에서 만나 상승하고 있다. 웨브와 노동당에서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의 무의식적인 하수인들은 본능적으로 그 체제의 붕괴를 두려워한다. 그들의 영혼에 사회주의 우애의 호소에 답할 정신은 존재하는가? 그렇지 않다.
- 노동자 전함 (Workers ' Dreadnought), 1918
 
 
<원문출처> http://www.freecommunism.org/the-election-sylvia-pankhu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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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5호] 영국 좌익공산주의의 선구(先驅) 실비아 팽크허스트

영국 좌익공산주의의 선구(先驅)
실비아 팽크허스트


다가오는 대선을 앞두고 한국 노동자들에겐 생소한 코뮤니스트 혁명가를 소개하려 한다. 그녀가 활동한 유럽에서조차 실비아 팽크허스트는 여성참정권 운동가, 급진적 페미니스트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가 그렇게 불리기를 원하는 세력들의 의도된 왜곡이다. 실비아 팽크허스트는 페미니스트에서 출발했지만, 좌익공산주의자가 되어 영국에서 100년 전부터 이미 의회주의를 거부하고 노동자평의회 설립을 촉구했고, 사회애국주의 개혁주의 세력인 노동당에 반대하여 자본주의 전복과 임금제도의 폐지와 공산주의를 향한 단계로 노동 계급 독재를 주장했다.
본지에서는 추후 코뮤니스트 실비아 팽크허스트에 대해 심층적으로 소개할 예정이며, 이번 호에는 선거 정세를 맞아 ‘선거’와 ‘노동당’을 반대하는 주장 글 두 개를 싣는다.
 
소개
 
2015년 영국에서는 주목받는 주류영화 서프러제트(여성참정권운동가)가 상영되었고, 실비아 팽크허스트의 새로운 전기가 발표되었다. 1980년대에는 실비아 팽크허스트의 삶과 정치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저작물도 구하기가 어려웠다. 당시 실비아 팽크허스트를 다뤘던 책들은 1914년부터 전쟁 초기까지 설명하지 못하는 큰 틈새를 남기려는 경향이 있었다. 즉, 실비아 팽크허스트에게는 여성참정권 운동과 휴식기가 있었고, 이후 전쟁에 대한 국제주의적 반대 입장을 가진 그녀는 러시아 혁명에서 볼셰비키를 열정적으로 지지하고 영국에서 소비에트 권력을 요구한 것이다.
1990년대 이후 그녀의 삶과 정치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전기와 서적의 출판 물결이 있었다. 이때, 자유주의 좌파들은 실비아 팽크허스트를 세계 평화와 사회 정의에 대한 페미니스트, 급진주의자, 반란군, 반파시스트, 반식민주의자 운동가로 자리매김하려 노력했다. 그들은 2007년 실비아 팽크허스트 페스티벌 기사에서 "부르주아에게 실비아 팽크허스트는 페미니스트 좌파 또는 자유주의자로 기억될 것이다.” 라고 썼다.
하지만 실비아 팽크허스트는 프롤레타리아트에, 급진적 여성참정권 정치를 포기하고 공산주의로 전향한 사실을 숨기지 않았고, 동시에 계급투쟁의 영향을 받아 부르주아 정치를 깨고 공산주의자로 선언했다. 팽크허스트와 잘 알려지지 않은 여러 노동계급 투사들(대부분 여성)의 확고한 결단 덕분에 이 나라에서 좌익공산주의자들의 미약하지만 확실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그들은 새로운 세대의 혁명가들이 힘을 얻고 배울 수 있는 글을 남겼다. 이것이 실비아 팽크허스트의 진정한 유산이다. 이것이 오늘날 코뮤니스트들이 지키려는 유산이다. 이것이 우리가 부르주아의 하수인인 자유주의자들과 좌파에게 말하는 이유이다. “실비아 팽크허스트에게서 손을 떼시오!” (실비아 팽크허스트 - 페미니즘에서 좌익공산주의로 - I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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