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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18/01/30

1917~2017 승리와 실패의 교훈 그리고 혁명적 소수의 복원 2

  • 1917~2017 승리와 실패의 교훈 그리고 혁명적 소수의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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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7년 최초의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반혁명

     

     1917년 러시아 혁명에 대한 단호한 지지, 그리고 혁명 패배의 교훈과 이로부터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승리의 조건을 찾아내는 것은 혁명적 소수의 필수임무이다. 1917년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해 탄생한 소비에트 국가는 노동자권력 아래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위한 시도가 있었지만, 스탈린주의 반혁명 이후에는 노동계급에게 더는 권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러시아 혁명 이후 몇 달 안에 이루어진 소비에트(노동자평의회)의 제도적 성과를 높이 평가한다. 1917년 신분제 폐지, 철도노동자 노동시간 1일 8시간 실시, 군대 계급 폐지, 1,886개 전략산업부문 회사 몰수, 종교의식을 하지 않는 결혼제도 시행, 낙태법 제정, 모자보호 연구소 개소, 1918년 소비에트 연방 러시아 공화국 선포, 사회주의 적군의 창설을 위한 법령 선포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혁명적 조치에도 소련의 노동계급은 생산과 권력의 주체가 되지 못했다. 1차 대전 패배와 내전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던 러시아는 일부 자본주의적 이행 형식을 들여온다. 1918년 봄 테일러주의의 재도입과 1인 경영의 강제 그리고 혁명의 성과를 방어하려는 임시조치들, 즉 정치반대의 분쇄, 차르 관료의 재고용, 자본주의 생산방식과 인센티브 제도는 노동계급의 실질적 권력을 깨뜨리고 ‘노동자정부’와 노동자 사이의 틈새를 벌려놓았다. 이러한 틈새의 가장 비극적인 표현은 크론슈타트 반란에 대한 프롤레타리아 자신의 볼셰비키당에 의한 진압이었다.

    그것은 3년간의 내전 동안 혁명적 노동계급의 죽음으로 더욱 굳어졌고, 세계혁명 물결의 연이은 실패는 볼셰비키를 고립시켰고, 이러한 조건은 후진적인 저개발 경제의 책임으로 돌려졌다. 이를 이어받은 스탈린은 5개년 계획 도입과 농업 집산화로 소련이 사회주의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발표했지만, 노동자 권력이 아닌 당 독재의 강화를 가져왔다. 당이 곧 계급이라는 잘못된 결정에 당이 모든 권력을 장악했고, 당이 노동계급을 대신하는 사회가 시작되었다.

    1917년~1920년은 러시아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 봉기가 일어나는 시기였고, 러시아혁명은 세계혁명의 첫 단추였다. 하지만 독일 등 주요 유럽국가에서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물결이 패배하고 소비에트 러시아가 고립되면서 좌절된다. 레닌의 죽음과 세계혁명의 명백한 침체에 힘입은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 선언은 국제주의와의 공개적 단절이었으며 세계 제국주의 권력으로 러시아를 건설하는 약속이었다. 이것은 사회주의가 세계혁명의 열매임을 주장한 1917년의 볼셰비즘과 완전한 대조를 이루었다.

     

     소련의 노동자들은 그들 자신의 필요를 생산하기 위해 일하지 않았고 임금을 위한 교환을 위해 일했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자신의 노동을 소외시켰고 자본을 생산했다. 자본주의 사기업의 형식으로 자본에 노동력을 파는 대신, 소련 노동계급은 단순히 국유화 기업의 형식으로 자본에 그들의 노동력을 팔았다. 소련의 이러한 현실은, 생산수단 및 생존수단이 국가 소유로 되었다고 해서 자본과 임노동의 사회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소련의 지배적인 사회관계는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자본과 임노동의 관계에 기초했다. 결국, 국가와 그 관료조직에 의한 자본주의적 생산의 집중화와 계획화는 소유의 폐지를 향한 한 걸음 진전이 아니라, 단지 착취 강화를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했다. 따라서 공산주의(코뮤니즘)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양립할 수 없지만, 사적 소유의 부재가 (공산주의 경제 창조를 위한 필요 불가결한 전제조건임에도) 곧 공산주의적인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의 억압과 착취에 맞선 계급투쟁의 역사는 끊이지 않고 이어졌지만, 매번 성공하지는 못했다. 제1 인터내셔널은 상승하는 자본주의의 능력 때문에, 제2 인터내셔널은 혁명주의의 포기와 민족주의 때문에, 그리고 제3 인터내셔널(코민테른)은 사회주의 혁명을 포기한 스탈린주의의 반혁명 때문에 실패했다.

    1차 제국주의 전쟁의 과정과 결과는 러시아와 유럽에서 혁명의 물결을 넓혀나갔고, 세계 노동계급에 자본주의의 타도라는 역사적 과제를 최초로 시도하는 흐름을 형성하게 했다. 이는 1차 세계대전의 유혈과 폐허에서 나온 1917년 10월 러시아혁명에서 극적으로 입증되었다. 또한, 이 시기의 경험은 제국주의 전쟁에서 자신의 국민국가를 지지해서 노동계급 간의 상호 살육을 묵인, 방조함으로써 사회배외주의로 전락한 사회민주주의의 본질을 명확히 폭로했다. 이것으로 제2 인터내셔널 다수당들은 파산을 맞이했고, 새로운 유형의 혁명 정당, 코뮤니스트 정당의 시기가 열렸다.

     

     1919년은 세계적으로 혁명 물결의 정점이었고, 코민테른 창립총회의 입장은 당시 프롤레타리아 운동에서 가장 혁명적인 것이었다. 사회-애국주의 반역자와의 단호한 단절, 자본주의 쇠퇴의 새로운 시기에 요구되는 대중행동 방법, 자본주의 국가의 파괴 및 노동자 소비에트의 국제적인 독재 등 강령의 명확성은 거대한 혁명 물결을 반영했다. 또한, 그것은 낡은 사회민주주의 정당 내부 혁명적 좌파(이후 코뮤니스트 좌파로 자리매김했다.)의 투쟁과 공헌으로 준비된 결과였다.

    하지만 러시아혁명의 고립과 관료주의 반혁명의 공세, 이에 맞선 코뮤니스트 좌파의 패배, 중국 상하이 및 관동에서의 노동자 봉기의 잔인한 진압으로 마무리되는 1927년의 혁명적 물결의 비극적 패배는, 전 세계에 걸친 노동계급의 장기간의 일련의 혁명과 패배의 시대를 종결했다. 코민테른의 혁명적 원칙은 반혁명 과정에서 변질되는데, 코민테른은 소속 당에 러시아 국가 방어를 요구했고, 사회민주주의 전략과 전술로 후퇴하도록 한다. 1920년대 중반 이후 코민테른은 결국 코뮤니스트 좌파, 혁명운동 세력을 배제하고, 국제주의를 포기한다. 타락해가는 코민테른에 맞서 코뮤니스트 좌파들은 투쟁했으나 분리해 나왔고3), 독일 이탈리아에서 파시즘 등장과 함께 반혁명의 시기가 열린다. 파시즘과 스탈린주의 반혁명의 무게에 눌려 결국 세계 프롤레타리아트는 패배한다. 반혁명 과정에서 수많은 코뮤니스트와 프롤레타리아트를 학살한 스탈린주의 범죄는 사실은 세계 부르주아계급과의 공범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4)

     

     러시아에서의 반혁명은 국가가 주도하고 명령하는 특수한 형식을 취했고, 이것은 10월 혁명의 이행과 사회주의의 건설이라는 핑계로 민족경제의 재조직화로 나타났다. 이 과정은 그 후 중국, 동유럽, 쿠바, 북한 등에서 추진되었고, 이들 모든 국가는 사회주의적인 요소는 말할 것도 없고 노동계급적인 그 어떤 것도 찾아볼 수 없다. 사회주의라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회를 참칭하며 자본과 관료의 독재가 가장 쇠퇴한 형식으로 지배하고 있다. 현재의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와 이들의 이데올로기 모두는 자국 자본의 이익을 위해 프롤레타리아를 희생시키면서, 오히려 그들을 탄압하는 것에 사용되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세계적인 혁명 물결이 패배한 후, 이른바 사회주의, 코뮤니즘(공산주의), 그리고 맑스주의라는 용어만큼 더 왜곡되고 남용된 사례는 없다. 과거 동유럽 스탈린주의 체제, 그리고 현재 중국, 쿠바, 북한과 같은 나라가 사회주의, 코뮤니즘과 연관되어 있다는 건 역사상 가장 큰 ‘거짓말’이다. 거짓의 핵심은 스탈린주의 국가가 ‘10월 혁명의 연속선상’ 에 있다는 것과 자신들의 체제가 코뮤니즘으로 이행하는 ‘사회주의’ 국가라는 것이다. 이것은 곧 이데올로기로 정당화되어 거짓이 진실인 듯 오랫동안 유지된다. 또한, 스탈린주의 정권이 아무리 타락하고 변질되었더라도 그것이 노동자 국가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방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노동자 국가론자들도 거짓을 응원했다.

     

    스탈린주의 정권은 실제로 자본주의였지만, 왜곡된 형태의 자본주의였기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다른 사회를 대표하는 거로 보였다. 스탈린주의 정권을 특징짓는 비참함, 결핍, 그리고 억압이 자본주의를 더욱 높은 형태의 사회로 바꿀 수 없다는 불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자본주의 경쟁, 제한 없는 부를 축적하고자 하는 욕망, 이런 것이 인간 본성의 본질이라는 걸로 정당화되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소련과 동유럽 정권이 몰락했을 때 그 정권의 실패가 맑스주의 또는 코뮤니즘의 실패였다는 ‘거짓말’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코뮤니즘에 대한 오해와 반감(증오)은 더욱 커졌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거짓 선전은 노동계급 일반에 심각한 혼란과 무질서를 가져왔다. ‘현재 자본주의 사회를 넘어설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라는 의식은 노동계급이 자신의 투쟁을 정치화하고 자본주의 체제에 맞설 수 있는 역량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계속>

  • <주>

     

    3)  코민테른 내에서 “코뮤니스트 좌파”의 전투는 특히 노동자 운동의 가장 끔찍한 시기, 1920년대 말에 시작한 역사 속에서 가장 길고 가장 끔찍한 반혁명의 시기 동안 싸웠기 때문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러한 반혁명의 상황 속에서, 노동자 운동의 강력한 쇠퇴기 속에서 코민테른의 좌파 혁명가는 잊지 못할 투쟁을 수행했다. 당과 코민테른을 바로 세우는 실낱같은 희망이 남아 있었지만, 그들도 스탈린주의의 철권으로부터 그를 구하려는 것이 그들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오늘날 이 투쟁은 기껏해야 최소화되고, 처음의 의견 불일치로 조직을 떠나거나 “상처뿐인 영광” 때문에 떠난 인자들에 의해 완전히 잊혀졌다. 이러한 태도는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이며 때로는 생명을 희생한 노동자와 혁명가 세대의 어려운 투쟁에 대한 소부르주아의 경멸을 나타내고 있다. <<인터내셔널의 퇴행에 직면한 혁명가의 책임 >>, ICC (International Review, 1997, 4th Quarter)

  • 4) 혁명의 실패 이후 러시아에서 만들어진 제도는 자본주의의 한 가지 변형일 뿐이었고 반혁명의 첨병이었다. 그 제도가 불과 몇 년 전 소비에트 권력을 무너뜨리기 위해 맹렬히 싸운 세계 여러 나라의 부르주아계급으로부터 열렬한 지원을 받은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1934년에는 실제로 이와 같은 부르주아계급이 레닌이 설립 당시 ‘도적들의 소굴’로 묘사했던 국제연맹에 소련이 가입하는 것에 동의한다. 그것은 1917년의 볼셰비키를‘야만인'으로 보았던 세계 여러 나라의 지배계급이 스탈린을 ‘존경할만한’ 인물로 인정한 상징적인 일이 되었다.

     

    제국주의자들이 스탈린을 자신들 동료의 일원으로서 인정한 것이다. 그 후로 전 세계의 부르주아계급으로부터 비난을 받는 사람은 바로 스탈린주의에 반대했던 수많은 코뮤니스트와 혁명가들이었다. 그것은 1917년 혁명의 가장 중요한 지도자의 한 사람이었던 트로츠키를 전 세계에서 추방자 신세로 만들었고, 수많은 코뮤니스트를 살해위협에 시달리게 했다. 트로츠키는 1929년 소련에서 추방되어 상시적인 경찰의 감시 아래 여러 나라로 쫓겨 다녔는데, 스탈린주의자들이 실행하고, 유럽과 미국의 부르주아계급이 은근히 즐겼던, 혁명가에 대한 가장 비열한 중상모략 캠페인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 스탈린은 1936년부터 비열한 ‘모스크바 재판’을 계획했고, 고문에 의해 처참히 무너진 레닌의 옛 동료들은 가장 경멸할만한 수많은 범죄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그리고 그 본보기로 가혹한 징벌을 스스로 요구했을 때, 부르주아계급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느냐’며 스탈린을 지지했다. 그리고 스탈린이 비인간적인 각종 범죄를 저지르며 강제 수용소에서 10만 명 이상의 코뮤니스트와 천만 명 이상의 노동자와 농민을 처형한 것은, 이와 같은 세계 부르주아계급과의 공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파산한 제도이다.>>, 이형로, (코뮤니스트 4호, 2014.4)

  • 2017.11

     

    국제코뮤니스트전망 ㅣ 이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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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2017 승리와 실패의 교훈 그리고 혁명적 소수의 복원 1

1917~2017 승리와 실패의 교훈 그리고 혁명적 소수의 복원

 

 

 2017년 가을,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맞은 우리는 ‘10월 혁명’이 준 자유와 평등의 실패한 '약속'을 달성시키기 위해 다시 혁명을 꿈꾸는 노동계급과 붉은 계절을 보내지 못하고 이렇게 소수가 모였다. 지난겨울 촛불은 거대하게 타올랐지만, 어디에도 혁명의 불씨는 보이지 않았다.

1919년 3월 2일,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제1차 회의 개회에서 레닌은 “소비에트 체제는 많은 나라에서 일상어가 되었고, 무엇보다도 그것은 노동자 투쟁에서 아주 흔한 형태”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오늘날, 노동자들에게 ‘소비에트(노동자 평의회)’는 낯선 용어가 되어 버렸다. 게다가 반공 이데올로기를 접한 세대에게는 전체주의(스탈린주의) 체제를 상징하는 용어로 잘못 각인되어 있다. 1917년~23년까지의 세대에게 너무나 익숙했던 소비에트가 지금 세대에게는 아주 낯설거나 본래 의미에서 완전히 벗어나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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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지워진 혁명

 

1917년 러시아혁명은 노동계급에 세계혁명의 길고 험난한 과정을 깨우치게 했다. 반면에 지배계급에는 혁명의 위협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했고, 혁명을 억누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게 했다. 1917~1921년 노동계급의 혁명적 투쟁이 패배한 이후 지배계급은 노동계급을 학살하며 직접 공격했는데, 이 시기가 바로 파시즘과 반혁명이라는 전대미문의 길고 깊은 계급투쟁의 암흑기1)이다.

이후 1945~1989년 미-소 제국주의 블록의 냉전 시대에는 서로 간의 대립과 경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왜곡하고 음해했다. 동유럽에서는 러시아 자본의 제국주의적 야망을 정당화하기 위해 스탈린주의 국가를 10월 혁명의 연속선상에 있는 사회주의 국가라고 왜곡’했고, 서구권에서는 ‘소비에트 전체주의에 대항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한다면서 제국주의 간 대립을 정당화했다.

그리고 1991년 소련 붕괴 이후에는 소련의 붕괴가 ‘공산주의의 사망’, ‘맑스주의의 파산’ 심지어는 ‘노동계급 자체의 종말’을 의미한다며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인다. 이러한 이데올로기 공세로 혁명운동은 강력한 타격을 받는다. 그리고 지금은 지배계급뿐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에 포섭된 노동계급 내부의 억제력으로 혁명의 불씨는 물론 일상적인 계급투쟁까지 잠재우고 있다.

 

‘공산주의(코뮤니즘)의 붕괴’에서 포퓰리즘의 등장까지 지난 수십 년간, 아직도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좋게 봐도 세상과 관계없는 괴짜, 멸종 위기에 처한 희소 동물로 비치고 있다. 현재 노동계급의 다수는 1917년 러시아 혁명과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에 대해 대부분 잊었고, 혁명 전통의 일부로 존재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망각 과정은 우연이 아니다.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그 이전보다 생산 수단에서뿐만 아니라 소비의 대상에 이르기까지 더욱 ‘새로운 것’에 의존한다. 무엇이 ‘구식인가’, 무엇이 진정한 역사적 경험인가에 대한 왜곡은 노동계급에 기억상실을 유발한다. 새로운 것에 대한 의존은 소비뿐 아니라 노동계급 혁명의 기억도 구식으로 만들어 버리고 그 교훈까지 잊게 하는 데 유용했다. 이렇게 노동계급은 미래의 투쟁에 적용할 진정한 교훈까지 버리면서 자신의 혁명적 전통을 망각할 위험에 처해 있다.

 

하지만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여전히 인류의 미래와 함께하는 계급이며, 과거 투쟁에서 교훈을 끌어내 공산주의(코뮤니즘)를 위한 투쟁으로 발전시킬 역량을 가진 유일한 계급이다. 따라서 역사적 과거에 대한 교훈을 찾고 혁명전통을 계승하는 것은 지워진 혁명의 기억을 되살릴 뿐 아니라 노동계급의 현재 위기를 돌파해 낼 첫걸음이다.

 

 

문재인 정부와 정권교체 환상의 대가

 

지배계급은 자신에 불리한 혁명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지배이데올로기를 강요하고, 거짓 환상을 퍼트린다. 특별히 부르주아 민주주의 승리를 상징하는 역사적 사건에는 ‘(시민)혁명’이라는 단어 붙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것이 사회주의/공산주의(독재)에 대한 승리, 계급 간 분열을 넘어선 부르주아 국가-시민사회의 승리로 보이기 때문이다.

연인원 1,700만 명이라는 기록을 세웠지만, 혁명과는 거리가 먼 촛불투쟁을 현 정부에서 먼저 ‘촛불혁명’이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일상과 일터 어디에서도 혁명을 하지 않았는데, 촛불혁명의 수혜자들은 가만히 새 정부의 적폐청산 쇼를 지켜보며 기다리라고 강요한다.

한편 촛불투쟁 내내 노동자의 요구는 ‘정권교체’ 환상을 넘어서지 못했다. 촛불투쟁의 근본 원인인 불평등하고 불안정한 사회에 대한 불만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 분출하지 못했다. 촛불의 규모는 엄청나게 커졌지만, 저항의 수준은 낮아지고 분출의 힘은 통제당했다. 촛불투쟁 이후에도 주류 노동자 운동은 근본적인 반성과 쇄신보다는 ‘정권교체-적폐청산’ 환상에 기대어 ‘노조하기 좋은 나라’라는 ‘국가적’ 캠페인에 나선다. 촛불투쟁 기간 작지만 정권교체 환상을 지속해서 비판한 세력이 있었고, 촛불투쟁과는 다르게 소수의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계급의 현안으로 공동투쟁을 벌여나갔지만, 노동자운동 내부의 거대한 대중추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아래와 같은 현실은 거짓 환상을 막지 못한 대가를 치르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

 

- 정권이 바뀌었어도 노동자 현실은 그대로이고, '노동존중'을 내건 문재인 정부에서도 농성장 폭력 철거, 폭력 진압, 불법연행 등 노동자 민중 탄압이 벌어지고 있다는 현실.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 18일 청와대 100m 앞에서 문재인 정부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들이 속한 투쟁사업장공동투쟁위원회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지만, 거리로 쫓겨난 노동자들은 여전히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전국 곳곳 노동자들은 다시 고공농성에 오르고 있다’며 ‘정치 권력이 바뀌었어도 노동자 현실은 그대로다. 문재인 정부는 이제 검찰, 경찰을 동원해 노동자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를 규탄하기 위해 결의대회를 열었다’는 취지를 밝혔다.

공동투쟁위원회 김혜진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노동존중이 실현되려면 박근혜 정부 때 거리로 쫓겨난 노동자들이 다시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며 “그런데 문재인 정부 경찰은 지난 8월 농성장을 폭력 철거하고, 2명을 불법 연행했다. 기자회견도 집회라며 출석요구서를 남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참세상, 11.18>

“국방부가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지에 공사 장비를 반입했다. 경찰은 공사 장비 반입을 반대하던 주민과 연대단체 회원을 강제 해산시켰고, 이 과정에서 주민 20여 명이 다치고, 1명이 연행됐다.” <뉴스민, 11.21>

 

- 촛불투쟁의 성과물을 전취한 문재인 정부에 입성한 노동운동 출신 명망가의 '사회적 대화' 참여 주장 : '노조'를 국가기구로 통합시키겠다는 의도와 이를 벗어난 ‘계급적’ 투쟁은 고립될 것이라는 협박

 

“지난 10일 정부서울청사 노사정위원장실에서 만난 문성현은 ‘산적한 노동현안을 풀기 위해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새로운 사회적 대화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며 생각이 달라도 함께 논의하며 대안을 모색하는 ‘숙의 민주주의’가 노동에서도 실현되기를 희망했다.

그는 ‘최저임금 문제는 사용자나 정부만 바라볼 게 아니라 노동운동이 연대정신을 발휘해 풀어야 한다.’며 SK이노베이션 노조가 기본급 일부를 갹출해 협력업체 지원 등 상생기금에 출연하기로 한 사례에 주목했다.

노동을 존중하는 대통령이 나왔으니 내 모든 걸 던져 풀어보고 싶다. 노조가 광장으로 나와 합리적 토론을 거쳐 국민들이 바라는 것을 하나라도 풀어나가 봤으면 한다.” <경향신문, 11.17>

 

민주노총 선거에서 ‘사회적 대화’가 쟁점이 된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지만, 선거 공약과는 별개로 사회적 합의주의로 이어지는 ‘사회적 대화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거부 흐름’이 ‘정권교체-적폐청산-노동존중/노조하기 좋은 나라’ 환상에 가려 사라지고 있는 현실.

 

“민주노총 2기 임원직선제가 한창이다.

선거 쟁점과 관련해 ‘사회적 대화’가 부상했다. 지난 1기 직선제에서 한상균 후보는 ‘민주노총을 투쟁사령부 체계로 재정비하고 즉각적인 총파업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1기 직선제 쟁점은 박근혜 정부에 맞선 ‘총파업’으로 모아졌다. 반면 2기 직선제에 나선 4개 후보조는 출마의 변으로 ‘사회적 대화’를 강조해 1기 직선제의 쟁점과 차별화했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 사회를 이루겠다고 공약했다. 민주노총 선거 쟁점도 이를 반영한 셈이다.“ <매일노동뉴스, 11.17>

 

이러한 현실은 100년도 아닌 불과 10~20년 전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교훈을 잊은 노동자 운동이 같은 성격의 자본가 정부에 전면적으로 포섭되어 가는 과정이며, 앞으로 제대로 싸우지 않으면 당시보다 훨씬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을 보여주는 신호이다. 

 

 

혁명적 소수의 문제

 

올해는 ‘최초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이자 세계혁명의 미래’를 꿈꾸게 했던 러시아혁명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오늘날의 계급투쟁과 러시아혁명의 교훈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혁명적 상황과 무관한 지금의 노동자투쟁은 러시아혁명의 엄청난 경험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더욱이 지금은 러시아혁명과 같이 혁명적 투쟁이 분출하는 시기가 아니라서, 그런 대중행동을 예측할 수도 우리가 인위적으로 만들 수도 없다. 하지만 모든 정세에서 일관된 목표를 갖고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혁명적 소수’의 문제는 러시아혁명의 교훈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이다.

1905년 자발적으로 출현한 소비에트를 촉진시켰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도 혁명적 소수의 역할이었고, 1917년 소비에트를 다시 등장하게 만든 것도, 부르주아의 도발과 함정에 맞서 참을성 있게 대중을 설득하고 계급의 원칙을 고수하며 10월 봉기의 기반을 마련한 것도 혁명적이고 계급적인 소수였기 때문이다.

 

혁명적 소수는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최종목표와 혁명의 전망을 갖게 된 인자로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부터 나오고 계급 전체의 이해관계에 복무하기 때문에 ‘계급의 일부’이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부르주아계급의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이기 때문에 이들은 어쩔 수 없이 계급의 소수일 수밖에 없다. 노동자투쟁에서 계급적 소수파도 운동의 최종목표까지 나아가지는 못하지만, 계급투쟁에 원칙적이며 가장 활성화된 부분을 차지한다. 계급투쟁의 확산과 계급의식의 발전은 바로 이들이 얼마나 계급 안에 뿌리 깊게 자리 잡아 투쟁에 활력을 불어넣고 상승시키느냐에 달려있다. 물론 이들이 대중행동을 대신할 수 없고, 정세와 무관하게 대중의식을 고양할 수는 없다. 따라서 대대적인 투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이러한 소수가 계급투쟁에 커다란 영향을 줄 수는 없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어 대대적인 투쟁이 일어났을 때 우리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그런 투쟁이 일어나기까지 끊임없이 투쟁을 자극하고 전형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오랜만에 분출된 투쟁은 우리 희망과는 다르게 지배계급의 의도대로 좌절되거나 왜곡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소수파 운동의 존재이유며, 단순히 소수라서 항상 다수를 추종하고 계급투쟁의 최종 승리보다 다수파가 되기 위한 운동은 혁명적 소수의 운동이 아니다.2)

지금의 암울한 현실에서 러시아혁명의 교훈을 끌어내면서 혁명적 소수의 복원에 중점을 두는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계속>

 

<주>

 

1) 빅토르 세르쥬(Victor Serge)의 말에 따르면, 1930년대는 "그 세기의 자정"이었다. 혁명 물결의 마지막 파고- 1926년 베를린에서의 총파업, 1927년 상하이봉기-는 이미 소멸하고 말았다. 공산당들은 민족수호의 정당이 되어 버렸고, 파시즘과 스탈린주의적 테러는 혁명운동이 최고점에 도달했었던 나라들에서 가장 극심했으며, 자본주의 세계 전체가 또 다른 제국주의적 대학살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혁명적 소수들은 추방과 억압과 증가되는 고립에 직면해야만 했다. 계급 전체가 사기저하와 부르주아의 전쟁이데올로기에 침식되어 있었기 때문에, 혁명가들은 계급투쟁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2) "계급에 대한 당의 궁극적 목표는 계급을 혁명적 의식으로 무장시키고, 그들이 다수가 되어, 계급 스스로의 힘으로 혁명을 만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일상시기(계급의식이 충분히 성숙되어 있지 못하고 균질화되어 있지 못했을 때) 당의 역할은, 이러한 상태의 계급안에서 다수를 획득하거나 국면적 인기를 얻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수가 되더라도 혁명의식으로 무장하지 않은 계급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이다. 그래서 “노동계급에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당장의 인기와 계급 대중의 다수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판단하여 “미래에 계급이 얼마나 혁명적으로 변화되었나”로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계급에 대한 영향력'이라는 것도 혁명적 정세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지, 일상시기 또는 침체기에 혼란스러워하는 다수의 계급의식과 타협하는 영향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다수에 대한 영향력을 잃더라도, 혼란에 대해 단호하게 단절하도록 밀어붙이는 것이 노동계급에 진정으로 공헌하는 길이다. 혁명조직이 노동계급에 근거하고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끈기 있는 인내만이 아니라, 오히려 조직의 모든 활동의 방향이 진정으로 노동계급을 변화시키고, 계급적 단결을 도모하고, 코뮤니스트 혁명에 실질적인 공헌을 하는 것에 있다." <<사노위 실패의 교훈과 혁명당 건설 투쟁의 연속성>>, 이형로, (마르크스21 제11호, 2011.9)

 

 

2017.11

 

국제코뮤니스트전망 ㅣ 이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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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6호] 2017년 세계의 노동계급 투쟁

세계의 노동계급 투쟁

 

 

뮤니스트의 역할을 혁명에 대한 단순한 선전으로 축소하는 경향은 계급투쟁의 자발적인 차원과 정치적 차원 사이의 변증법적 연결 고리를 보지 못한다. 파업이나 다른 저항 행동을 하는 동안 프롤레타리아트는 국가와 맞설 수 있는데, 국가는 일관된 업무 분담을 위해 국가기구의 여러 분야를 활용하게 된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의 선전, 다른 색조를 가진 미디어 캠페인, 다양한 정당, 경찰, 사회 복지 제도, 때로는 군대와 마주칠 수 있다. 보기를 들어, 프랑스와 같은 제국주의 국가에서는 매일 수천 명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참여하는 270건 이상의 파업이 벌어진다. 이러한 파업은 언론에 의해 검열되고, 노동조합에 의해 고립되며, 때로는 자본주의 법과 경찰에 의해 억압당한다. 이러한 투쟁은 매일 150~300건의 파업이 있는 모든 주요 제국주의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작게는 몇 명에서 수천 명의 프롤레타리아가 참여하는 모든 곳에서 항상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자본뿐 아니라 노동자 투쟁을 가로막는 노동조합과 정부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에 주목한다. 우리가 그러한 사례를 많이 소개할 수는 없지만, 진정한 계급적 단결과 국제주의 연대는 바로 그러한 걸림돌을 넘어서야하기 때문에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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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 퀘벡주에서는 5월 말에 175,000명의 건설노동자가 일주일간 파업에 돌입했다. 국가는 파업을 불법으로 선포하고 노동자들을 범죄자로 만들었다. 퀘벡시티, 5월24일 - 5월 30일 동안 총파업을 진행 중인 퀘벡 건설노동자들이 자유당 주정부 수상인 필립 퀴야르(Philippe Couillard)에 의해 현장복귀를 명령받았다. 국회(퀘벡의 의회)에서 통과되었던 이 법은 5월 31일에 그들의 파업을 중단할 것을 명령한다. 퀘벡주에서는, 건설노동조합들이 정부에 의하여 심한 규제를 받고 있다. 예를 들어, 정부가 노동조합 가입 투표와 심지어 조합 카드 발급조차 감독한다. 파업을 파괴하는 법안은 또 하나의 이러한 규제 연장이다. 노동조합은 늘 그렇듯이 변호사에 호소함으로써 더 큰 투쟁과 파업의 지속을 방해했다. Alliance Syndicate는 협회에 대한 부정한 협상을 위한 법적 절차를 발표했다. (퀘벡의 건설 사장 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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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 AT & T의 약 37,000명의 노동자가 지난 5월에 3일간 파업을 시작했다. AT & T 휴대폰 부문의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들은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이동 통신 사업자로 전체 직원의 약 14%를 차지하고 있다. 통신노조연맹(CWA)에 소속된 노동자들은 건강보험료의 인상에 직면해 더 나은 근무일정과 임금인상을 요구했다. 3일간의 파업 후 CWA는 복귀를 명령했다. 또한, 1,800명의 기술자를 고용한 시점에 뉴욕과 뉴저지 북부의 스펙트럼 케이블 회사의 창고와 기술 부문의 노동자는 3개월 내내 파업 중이다. 국제전기노동조합연맹은 노동자를 법적 테두리 안에서 관리하고 연방 중재인의 지명과 중요한 경제적 양보를 받아들였다.

 

그리스 : 5월 17일 수천 명의 그리스 노동자들이 정부의 조치, 특히 연금 삭감 및 세금 인상에 반대하여 파업을 벌였다. 그리스의 멜랑숑(또는 코빈)인 치프라스가 긴축 조치를 중단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일단 선출되면 정반대로 돌아서는 것을 기억하자. 지금까지 그는 여러 세금 제도, 연금에 대한 14번째 개정과 노동 시장 자유화를 받아들였다

 

이탈리아 : 4월 14일 전국노조연맹(CGIL, CISL, UIL)과 Alitalia 항공의 협약을 노동자 67%가 거부했다. 이 협약은 직원들의 희생을 요구했다: 1700 개의 일자리 감소, 8%의 임금하락 그리고 120일에서 108일로 휴가가 축소되는 협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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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 2017년 1월 파업 이후 ‘분란을 일으키는 노동자’에 대한 노조의 마녀사냥이 있었다. 노조 지도자들은 대기업의 사장들에게 특정 노동자들이 정치적 골칫거리이므로 계약하지 말라고 비밀리에 경고했다. 그들은 산업 현장의 동요를 막고자, 조합원들을 ‘과격파’와 ‘분쟁유발자’로 부르고, 그렇지 않으면 그들을 조심하라고 경고하기도 하면서 직장에서 배제하는 데 성공했다. 맨체스터 폭탄 테러 이후 그리고 선거 기간 동안, 영국 노동조합은 열차 검표노동자, BMW 자동차산업노동자, 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 대학 직원, 컴퓨터 대기업인 후지쯔, 그리고 여러 사업장에서 수많은 파업을 억눌렀다.

더럼에서는 사용자와 노동조합에 맞선 조교들의 투쟁이 있었다. 그들의 투쟁에 대한 파괴행위 이후, 그들은 모두에게 열린 행동위원회를 설립했다. 이 위원회는 투쟁을 조직하고 노조의 적대적인 행동에 대응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반면에, 그들은 노조가 자신들을 대신해 협상하도록 했기 때문에 활동이 막혔다.

“더럼 조교의 자기조직과 불의에 대항한 연대는 북동부 지역의 다른 노동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동료의 25%를 희생시키는 협상을 거부한 노동자들은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7월에 우리는 그들의 고립 위험성을 지적했고, 노동조합이 저지른 모든 걸림돌과 더러운 속임수를 지적했고, 그러한 노동조합과 노동(더럼 카운티 의회를 운영하는)에 너무 많은 신뢰를 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우리는 투쟁을 성공시켜서 TA의 신뢰를 얻고 있는 위원회의 주요 구성원이 노동조합과 이른바 노동운동에 너무 친하다고 경고했다. 일부는 ‘노동조합이 우리’라는 고정된 생각을 하는 좌파 그룹 구성원들 (사회주의 노동자당 및 노동 좌파)이었다. 더럼 라이온스의 경험은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참고> Durham Teaching Assistants – Conned by the Labour Movement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17-10-20/durham-teaching-assistants-%E2%80%93-conned-by-the-labour-movement

 

브라질 : 4월 28일 수백만 명의 파업 노동자와 수만 명의 시위대가 여러 도시에서 긴축 조치에 대한 항의에 나섰다. 특히 남성은 60에서 65세, 여성은 55에서 62세까지 정년을 연장했다. 지난 5월에는 정치인들의 부패를 규탄하는 시위도 있었다. 시위는 1986년 이후 처음으로 브라질리아의 폭동 진압 경찰과 함께 군이 개입할 정도로 큰 규모로 일어났다.

 

아일랜드 : 3월에 철도와 버스회사에서 파업이 있었다. SIPTU(아일랜드 서비스 산업 전문 기술 노동조합)의 운송 노조 위원장인 그레그 에니스(Greg Ennis)는 파업을 노동조합이 조직하지 않았으며, 열차와 버스를 어지럽히는 불법 행위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 “"우리는 Iarnrod Eireann와 Dublin 버스 서비스를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끼친 혼란(파업)에 대해 유감을 표합니다. 우리 노조는 이런 식의 공식행동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후 노동조합은 파업을 합법화하고 더 잘 통제하기 위한 투표를 조직했다.

 

이집트 : 8월 12일 Misr방적제직회사(MSWC) 노동자 17,000명이 마할라알쿠브라(Mahalla al-Kubra)에서 파업 중이다. 그들은 자주 받지 못한 연간 보너스를 요구했다. 한 달을 기다린 후, 파업은 10% 임금인상 등 더 많은 요구 사항으로 시작되었다. MSWC의 노동자들은 2006년과 2008년에 무바라크 독재정권에 대한 대대적인 파업을 조직했고, 무바라크가 몰락한 2011년 투쟁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12년 12월, 이 노동자들은 무함마드 무르시가 그들을 ‘무슬림 형제 국가’라고 한 것으로부터 자신을 ‘자주적’이라고 선언했다.

<참고> http://www.leftcom.org/en/news/2017-08-13/17-000-workers-strike-in-the-textile-sector-at-mahalla-al-kubra-nile-delta-egypt

 

튀니지 : 베지 카이드 에셉시(Béji Caïd Essebsi) 튀니지 대통령은 5월 10일, 특히 남부 지방에서 시위가 일어난 후 인산염 생산 현장과 가스와 휘발유 설비를 보호하기 위해 군대 배치를 명령했다고 발표했다. 이 시위는 튀니지 경제의 중앙 일부의 생산을 중단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 2011 년 ‘재스민 혁명’의 기원이 된 젊은이들의 경제적 어려움과 좌절은 튀니지, 특히 이 나라에서 실업률이 높아 주민에게 거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 중부와 서부지역과 여전히 관련되어 있다. 타타우인(Tataouine)시에서는 시위대가 높은 실업률을 비난했다. 지난 5월 말 시위참가자가 목숨을 잃었고, 경찰과 대치하는 동안 300명이 넘게 다쳤다.

 

미얀마 : 양곤의 30개 공장에서 파업 중인 12,000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6월 9일에 낮은 급여 및 근로 조건에 항의하며 그들의 기본 요구 사항인 3000kia(1,9kia / 2.75 달러 canadiens)를 요구했다. 2월 폭동과 같은 이러한 파업은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의 비슷한 운동과 관련이 있다. 점차 이들 나라의 자본주의 국가들은 노동조합을 합법화하여 투쟁을 통제하고 법적인 틀에서 유지하는 유럽과 미국의 노동조합처럼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다. 미얀마는 이미 이런 경우이지만, 프롤레타리아는 이러한 노동조합에 대해 매우 불신하고 있다.

 

세르비아 : 피아트-크라이슬러 공장 2000명의 프롤레타리아가 부족한 임금과 비인간적인 노동조건에 항의했다. 6월 27일부터의 파업으로 그들은 사장, 정부와 노동조합의 공동 압력을 받고, 2주 후 복귀에 동의했다.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계급투쟁은 계속되고 있고, 노동조합은 투쟁의 당사자가 되기도 하고 방해자가 되기도 한다. 오늘날 계급투쟁의 특징은 자본뿐 아니라 노동조합과도 맞서 싸워야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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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6호] 미국과 북한 사이의 전쟁 위협: 비합리적인 것은 바로 자본주의이다.

미국과 북한 사이의 전쟁 위협: 비합리적인 것은 바로 자본주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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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년 전, 1945년 8월 최초의 원자폭탄 두 개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되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동안 특히 방화 폭탄을 포함하여 온갖 종류의 무기들로 이미 자행된 대대적인 파괴에 뒤이은 이러한 핵무기 사용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위협하는 잠재적 파괴력의 새로운 단계를 열었다.

 

2017년 9월 9일 북한 정권의 창립기념을 계기로 국가가 조직한 거대한 파티에서 김정은이 자국의 수소폭탄을 “우리 인민의 역사상 특별한 성취이자 위대한 사건”이라고 칭송하며 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이 언론매체를 통해 보였다.

 

북한은 성능에 있어서 그 이전의 어떤 실험들도 능가하는 핵폭발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배타적인 세계 핵폭탄보유국 클럽에 북한이 속하게 되었다. 부르주아 사회의 쇠퇴가 야만주의로 내디딘 최근의 이 한걸음에 관한 소식은 허공에서 그냥 나타난 것이 아니다. 평양의 스탈린주의 정권 측의 대량파괴 기술의 무시무시한 승리는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사이에 몇 개월에 걸쳐 이뤄진 상호 간 위협의 절정점이다. 북한은 올해에만 벌써 17차례나 미사일 실험을 했는데, 이는 이전에 이뤄진 실험들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큰 수치다. 태평양에 있는 미국영토인 괌 또는 미국본토의 목표물들에 대한 공격 위협, 일본 상공을 지나간 미사일 그리고 미국의 공격이 있으면 핵무기로 자신을 방어하겠다는 위협과 더불어 북한과 미국 사이의 맞대결은 새로운 단계에 도달했다. 이에 미국은 군사적, 경제적 및 정치적 무기를 총동원해서 대응하겠다고 위협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나 미국의 동맹국 중 어느 하나라도 북한 정권에 의해 공격당한다면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로 북한을 찾아오겠다고 말한다. 핵무기 사용의 위험은 이전보다 훨씬 더 높고, 서울이나 도쿄 등 아시아의 몇몇 대도시들을 직접 위협한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인 남한과 일본이 취한 최근의 군사적인 행보들(특히, 새로운 사드(THAAD) 미사일체계의 한국 내 배치)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대결을 첨예화했고 다른 나라들을 이러한 대혼란 속으로 더욱더 끌어당기고 있다.

 

한국에서의 이러한 사건들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러한 사건들은 인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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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희망은 그 폭탄 덕분에 살아남는 것이다.

 

 냉전기 수십 년 동안은 주로 강대국들이 핵무기로 무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1989년 이후 수많은 나라가 핵폭탄에 접근했거나 접근하려 노력 중이다. 그래서 상호파괴의 위협은 훨씬 더 예측할 수 없게 되었다. 왜 북한 같은 “약소국(underdog)”이 핵무기를 통한 위협역량을 개발하고 있는지 이해하려면 여러 다른 요소들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이러한 상황전개들은 더 넓은 역사적 국제적 문맥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그 몇 년 후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인한 황폐화에 뒤이어 북한과 남한은 재건을 위해 그들의 “보호자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에 의존하게 되었는데, 이 두 나라는 더 발전한 자본주의국가들에 훨씬 뒤처져서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이 없는 스탈린주의 정권들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 러시아는 나치 독일의 패배 후 한 블록의 지도자가 되었지만, 전쟁으로 인한 심각한 고갈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군비경쟁에 자원 대부분을 전용해야만 했다. 민간부문은 군사부문보다 몇 세기나 뒤처져 있었다. 동서 블록 간의 차이는 피폐한 러시아의 경우 동유럽과 중부유럽의 공장들을 해체해야 했던 반면 미국은 서독과 남한 재건에 막대한 돈(마샬플랜)을 쏟아부었던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북한 재건은 스탈린주의 모델을 따랐다. 1945년 전까지는 남한보다 경제적으로 더 발전되었고 지하자원과 에너지원도 더 풍부했었지만, 북한은 군사주의로 질식당하고 스탈린주의 패거리 하나에 의해 운영된 체제들의 전형적인 후진성 때문에 고통 받았다. 소련이 세계시장에서 경제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없었고 군사력의 사용 또는 사용위협에 대단히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도 세계시장에서 경제적으로 경쟁할 수가 없었다. 그 주요 수출품은 무기, 몇몇 지하자원 그리고 최근에는 값싼 직물류와 일부 노동력이다. 북한 정권은 노동력을 다른 나라들에 “계약노동자”의 형태로 판다.1)

 

그와 동시에 그 체제의 옹호자들인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는 북한무역의 90%가 중국과 이뤄질 정도로 상승했다. 군대에 대한 견고한 통제력을 유지하는 일당독재 지배로서 어떤 경쟁적 부르주아 분파도 제거된 그 체제는 스탈린주의 통제 하 2)의 모든 체제와 마찬가지로 선천적인 약점들을 갖지만 몇십 년간의 결핍과 기아와 억압을 견뎌냈다. 군사 및 정치 기구들은 국민, 특히 노동자들의 어떤 봉기도 막을 수 있었다. 다른 후진국들에서 다른 왕조들의 몇 십 년에 걸친 지배와 비교해서 북한은 60년 이상(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국민을 억압하며 가장 기괴한 개인숭배3)에 머리 숙이도록 강요하는 단일한 왕조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한국의 민족주의적 야망과 미국의 제국주의적 이해에 직면하여 어떤 경제적 힘에도 의지할 수 없는 이 체제는 내부적으로 극심한 억압 그리고 외부적으로 군사적 협박을 통해서 생존을 위해 투쟁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핵무기시대에 협박은 적들을 막을 수 있을 만큼 아주 무시무시해야 한다.

 

김정은은 핵폭탄을 자신의 생명보험으로 여긴다. 김정은 자신이 공개적으로 선언했던 것처럼, 그는 한편으로 우크라이나와 리비아에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파키스탄에서 일어난 일에서 교훈을 얻었다. 소련이 붕괴한 후 신생 우크라이나는 자국 내의 핵무기를 모스크바와 워싱턴으로부터의 대단한 압력 아래 러시아에 인도할 수밖에 없었다. 리비아는 트리폴리에서 카다피 정권의 국제적 고립을 끝내는 대신에 핵폭탄을 얻으려는 시도를 포기하는 데 동의했다. 이라크도 비슷한 운명에 처했다. 그곳에서 특히 미국의 위협들4)에 뒤이어 사담 후세인 정권은 핵무기프로그램을 포기했다. 반면 파키스탄은 “그 폭탄”을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예들에서 놀라운 점은 핵무기역량을 갖느냐 갖지 않느냐에 따라 그 나라들이 얼마나 다르게 취급되는가이다. 오늘날까지 미국은 파키스탄을 군사적으로 위협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라호르에 있는 그 정권이 여전히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영원한 지지자이고 빈 라덴에 피난처를 제공하기도 했으며, 미국의 주요 경쟁자인 중국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음에도 그렇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크라이나는 핵무기를 빼앗긴 채 러시아에 의해 군사적으로 공격당했고, 리비아는 프랑스와 영국(미국을 배후로 하여)의 공격을 받았다. 교훈은 명백하다: 그 지도자들의 눈에 “폭탄”은 아마도 더 약한 세력들이 너무 심하게 떠밀리거나 심지어는 강자들에 의해 전복당할 위험을 피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일 것이다. 이러한 정책을 물론, 몇십 년 동안 핵무기를 보유하며 그 자신들의 제국주의적 이해를 위해 자신들 스스로 핵무기를 통한 위협을 활용해온 강대국들은 수용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한다. 냉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모든 핵무기세력들(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은 약 22,000개의 핵폭탄에 해당하는 거대한 핵무기 병창고를 유지했다. 그리고 약해지고 세계 곳곳에서 도전받기는 해도 유일하게 남은 초강대 세력인 미국은 오랜 동맹국 이스라엘이나 인도 같은 나라들이 미국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간주하는 한, 예를 들어 인도의 경우는 중국과 파키스탄에 대항해 미국에 무게를 실어주는 역할을 하는 한, 핵폭탄을 보유하도록 허용했다. 그래서 미국 자신이 핵무기의 확산에 이바지했다. 현존의 핵무기보유국들 사이에서 지금까지는 러시아와 중국의 미사일만이 미국 영토에 도달할 수 있고, 이란의 미사일은 핵이 장착되었든 그렇지 않았든 그럴 수가 없다. 북한은 아마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최초의 ‘깡패’국가가 될 것이다. 이를 미국은 견딜 수 없다.

 

냉전 동안 핵무기 사용의 위협은 강대국들에 제한되어 있었다. 1989년 이래 핵확산은 더 많은 나라가 핵무기에 접근하게 되었거나 그러한 무기들을 재빨리 생산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그리고 이러한 무기들이 테러리스트 그룹들의 손에 들어갈지도 모르는 위험을 아무도 배제할 수 없다. “양극(bi-polar)”의 핵 대학살의 위협이 더 심각한 “다극(multi-polar)”의 핵 대학살이라는 악몽으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상황 격화는 북한체제의 특이성과 그 생존투쟁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남북한에서 충돌 자체는 그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그리고 미국과 중국의 세계적 제국주의적 경쟁을 격화시킴에 있어 이 국가들에 대한 갖는 한국의 중요성 때문에 또 다른 성질을 갖는다.

 

 

제국주의적 장기판 위의 한국

 

 한국은 늘 그 이웃 나라들의 제국주의적 야망의 표적이 되어왔다. 극동아시아 지역에 대한 우리의 국제평론 특별호에서 우리가 썼듯이, “그 이유는 명백하다: 러시아와 중국과 일본에 의해 둘러싸인 지리적 위치 때문에 한국은 한 나라가 다른 나라로 팽창하기 위한 발판이 된다. 한국은 일본이라는 섬 제국과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두 개의 대륙제국들 사이의 호두까기기계 안에 헤어날 수 없이 끼어있다. 한국을 통제하게 되면, 동해와 황해와 동중국해라는 3개의 바다를 통제할 수 있게 된다. 만약 한국이 다른 나라의 통제 속에 있게 된다면, 한국은 다른 나라들의 등 뒤의 칼 역할을 할 수 있을 터이다. 1890년대 이래 한국은 그 지역의 주요 도적들의 제국주의적 야망의 표적이 되었다. 이 도적들은 처음에는 러시아와 일본과 중국 이렇게 3개국이었고, 이들은 각각 배후에서 활동하는 도적들인 유럽과 미국으로부터 지원과 저항을 받았다. 특히 한국의 북부가 몇몇 중요한 자원들 보유하긴 하지만, 한반도가 그 지역 제국주의에 중요한 주춧돌 역할을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 전략적 위치 때문이다.5)”

 

특히 한반도가 한국전쟁에서 현 상태로 분단된 이래, 북한은 중국과 남한, 그래서 중국과 미국 사이의 완충지대 역할을 해오고 있다. 만약 북쪽의 체제가 무너진다면, 남한의 군대뿐만 아니라 미국의 군대도 이전보다 훨씬 더 중국 국경에 가깝게 배치될 것이다. 이것은 중국에는 악몽이다. 그래서 중국은 자신의 국경을 특히 미국에 대항해 방어하기 위해 북한의 체제를 지원할 수밖에 없다. 북한 정권이 예측할 수 없고 이단자처럼 행동하려 하면 중국은 평양에 대항한 특정 제재에 동참할 수밖에 없지만, 그 체제를 완전히 질식사시키는 것에는 반대한다. 중국에 북한 정권의 공격적 정책은 양날의 칼이다. 한편으로 그것은 미국과 남한과 일본으로부터 더 강력한 군사적 대응을 자극하며 북쪽 지대에서의 중국의 위치를 약화시키지만 남쪽 지대(예를 들어 남중국해)에서 작전에 더 많은 여지를 남길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 정권의 붕괴는 미국과 자신의 숙적 일본에 맞닥뜨려 중국이 더 공격당하기 쉽게 만들 것이다. 북한 정권의 붕괴 그리고 중국으로 들어오거나 중국을 통과해 가는 난민 물결의 결과는 베이징으로서는 극도로 위협적일 것이다.

 

그 지위가 위협당하고 침식당하긴 했지만 그래도 미국은 역설적이게도 동시에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이득을 본다. 왜냐하면, 그러한 위협들은 중국 주변에서 미국 자신이나 동맹국들의 군사적 존재성을 강화하는데 환영할 만한 정당화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추측하건대, 만약 북한이 그렇게 도발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면 미국이 새로운 사드 무기체제를 그렇게 쉽게 남한에 설치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남한의 설치된 어떤 무기도 손쉽게 중국을 겨냥해 사용될 수 있어서, 남한에는 ‘방어용’무기로 제시된 것이 동시에 중국에는 ‘공격용’ 무기이다.

 

북한과 한국 및 미국 사이의 충돌은 극동아시아에서의 새로운 조합에 의해 악화한다. 1990년대 중국도 경제적 상승과 거의 동시에 다시 제국주의적 야망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군대의 현대화와 자국 영토 주변과 인도양 및 남동아시아의 바다에 “진주목걸이(string of Pearls)” 해상기지들의 건설을 우리는 보았다. 이는 적어도 남중국해 일부에서는 일종의 군사적 점령이었다. 또한, 지부티에 군사기지건설,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증가한 경제적 무게, 발트해와 지중해 그리고 극동아시아 등에서 러시아와의 합동군사훈련을 목격했다. 미국은 중국을 제한되어야 할 제1의 위협으로 지목했다. 그래서 일본의 재무장(심지어 일본이 핵폭탄을 보유하게 허락할지도 모른다)은 한국에서의 증가한 군사적 노력과 마찬가지로 한국을 보호함과 동시에 중국을 견제하려는 세계적 전략의 일부인 것이다. 물론 이는 미국 군비 산업에 부가적인 뒷받침을 제공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한국은 미국 군비 산업의 가장 중요한 고객 중 하나가 되었다. 미국의 거대한 군사기구의 재정에 대한 그 기여도는 오늘날 상당하다.

 

동시에, 북한이 지금 핵 공격 역량을 가진 상황에서, 미국 제국주의가 이 지역에서 군사적으로 대응 공격을 하기는 더 힘들어질 것이고 그래서 다른 분쟁지대에서 중국에 대응하려는 그 결의를 강화할 것 같다.

 

북한과 어떤 직접적 군사적 대치도 양측에 파괴의 연쇄반응을 개시할 것이다. 한국 인구의 절반이 서울-수도권 지역에 살고 한국에 거주하는 25만 명의 미국인 중 다수가 이 지역에 살고 있다. 이 지역은 모두 북한 미사일의 도달 범위 안에 있다. 트럼프의 “화염과 분노”위협은 무수한 한국인뿐만 아니라 많은 미국인의 죽음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북한 체제의 타도는 이것이 전 세계 제국주의 수준에서 의미하게 될 격화는 말할 것도 없이 한국에서의 거대한 파괴를 대가로만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주류 언론에서 이러한 전개를 다루는 지배적인 견해는 평양에 미친 자가 권력을 쥐고 있다는 사실에서 또는 김정은과 트럼프 양자의 자아도취와 비합리성의 대결에서 오는 결과로 여기는 것이다. 두 사람이 정신분석적 연구에 많은 흥미로운 특성들을 보여주는 것은 사실이고 그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상황 격화에 더 스펙터클하고 거의 히스테리컬한 톤을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신의 국가 자본을 방어한다는 관점에서 김정은의 핵 정책은 상당히 이치에 맞는다는 점을 우리는 이미 살펴보았다. 진정한 비합리성은 더 깊은 곳에 놓여있다, 진전해 가는 자본주의 부패의 시기에 국가의 경쟁이라는 비합리성에 놓여있다. 극동에서의 군비경쟁은 군국주의라는 퍼져가는 종양의 한 표현일 뿐이고, 그것은 역사적인 막다른 길에 갇힌 사회체계의 필수적인 산물이다. 그 어떤 정치가도 그 정신적인 프로필과는 무관하게 이 체계의 지독한 논리를 피할 수 없다. 영리하고 언어적 표현에서 분명한 버락 오바마는 중동에서 부시 행정부의 재앙적인 관여를 축소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미국이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 군대를 철수할 때마다 극동아시아에서 그 존재를 더 강화할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는“외국 전쟁”, 특히 중동에서의 전쟁에 개입하는 것을 피하지 못한 무능력을 들어서 자신의 전임자들을 비판했지만, 지금 거의 모든 지역에서 미군의 존재를 증대해야 했다. 실상, 오바마와 트럼프 모두는 군국주의의 장악이 정치가 개인들의 선언이나 바람보다 더 강력함을 보여주었다.

 

 

중국의 북한과의 불화

 

 역사적으로 중국은 한반도를 놓고 벌어진 투쟁에서 비싼 대가를 치렀다. 한국전쟁에서 마오쩌둥의 군대는 그 최초의 외국 침략에 나서 심각한 손실을 보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로는 더욱더, 미국은 그 지역에서 거대한 군사기지를 유지하는 것을 정당화하는데 중국의 위협을 이용해왔다. 게다가 중국은 일본과 경쟁 관계에 있다. 그러한 문맥에서, 중국이 한국에 대해 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한 현재로서, 중국은 경제 카드를 활용해 오고 있다. 한국을 되도록 중국 경제에 의존적으로 만드는 것이 그 목적이다. 오늘날 이미 한국 수출의 주요시장은 중국(대략 23%)이지 더는 미국(12%)이 아니다. 그리고 한국은 중국생산품이 수출되는 네 번째로 큰 시장이다. 이러한 정책이 당한 심각한 패배의 상징이 바로 사드 미사일 방어체제의 한국 내 배치이다. 베이징은 즉각 서울에 대한 경제적 제재를 가하겠다는 위협으로 대응할 필요를 느꼈다. 지금까지 베이징의 평양에 대한 정책은 북한이 중국이나 베트남의 예를 따르도록 설득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즉, 스탈린주의 당이 권력을 유지하면서도 국가 소유 공장들을 사유화하고 외국 투자에 개방적으로 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김정은은 이러한 생각에 그 아버지보다 더 개방적임이 드러났다. 경제의 30%~50%는 오늘날 사유화된 것으로 말해진다. 이렇게 사유화된 부분은 동유럽 국가들과 러시아 그리고 중국의 경험으로 볼 때 당에 속하거나 당에 충성적인 무리 그리고 군대 자체가 주로 소유함을 의미한다. 비록 이러한 사유화가 공식적이지는 않지만(어떤 법적 근거도 없기에 언제라도 번복될 수 있다), 경제의 몇 부문들을 더 효율적이게 만든 것 같다. 백만 명의 이용자를 가진 자체의 이동통신체계가 (한 이집트회사의 도움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베이징과 평양의 관계는 최근 몇 년간 지속해서 악화하여 왔고 전자의 후자에 대한 영향력은 분명하게 약화하여왔다. 주요한 상충 영역은 핵무기개발이다. 어느 정도 경제적 발전을 도모하라는 중국의 제안을 수용하는 대신 김정은은 그의 최우선 과제는 경제가 아니라 “폭탄”이라고 늘 주장해 왔다. 그에게 폭탄은 정권의 생존을 보장하는 것이다. 일단 이것이 성취되고 나면 경제를 생각해 볼 거라고 그는 말한다. 김의 폭탄은 그래서 중국 영향력의 한계의 상징뿐만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군사적 이해의 무게가 경제적 이해들보다 얼마나 더 큰지를 또한 보여준다.

 

중국은 블록 지도자가 아니어서 북한에 어떤 “징계”도 부과할 수 없고 이점은 부가적인 요소를 첨가해서 여기서 “각자 제 홀로(every man for himself)”의 경향은 상황을 훨씬 더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 결국, 김정은과 그 군대는 미국이 핵 충돌을 피하기를 원한다는 판단 아래 생존을 위해 폭탄을 가지고 도박을 하고 있고 반면, 그러한 계산은 자본주의 지배자들이 권력 유지를 위해서든 단순한 복수욕구 때문이든 지구의 초토화를 자행하고 결국 자신들 자체의 절멸 위험을 무릅쓰는 것을 막지 못해 왔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히틀러가 자신의 목숨이 다할 때까지 학살과 처형 명령을 주저했던가? 아사드는 통제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제 나라 대부분의 파괴를 받아들이지 않았던가?

 

극동아시아에서 우리는 그래서 주요 경쟁자들인 미국과 중국 사이에 긴장이 첨예화되고 이 두 주도적 열강의 뒤에 러시아와 일본이 무리를 짓는 것을 본다. 그러나 이 주도적 열강들은 그들 뒤에 군사 블록을 형성하지는 않는다. 일본과 한국은 북한과 중국에 대항해 미국이 제공할 수 있는 보호 수준에 걸맞게 미국을 지지하지만, 그들은 미국의 하인들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들의 운신 여지를 찾는다. 한국과 일본도 특정 섬을 놓고 영토분쟁을 해오고 있다. 그동안 국내의 온갖 테러리스트들에 대항한 투쟁에서 미군의 지원에 의존하는 필리핀과 같이 과거에 미국을 지지했던 다른 나라들은 남중국해에서의 충돌에서 중국의 편을 들겠다고 위협했다.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서방국가의 무기 대신에 러시아와 중국의 무기를 구매할 가능성을 내비쳐 오고 있다. 그리고 남한 내부에서도, 여전히 없어서는 안 될 경호원으로 남아 있는 미국은 그런데도 남한 지배 분파들의 조건 없는 충성에 의지할 수 없다. 이 남한 지배 분파들의 몇몇은 미국의 장기판의 장기 말 정도에 지나지 않음을 느끼고 있다.

 

한국 지배계급의 민족적 이해

 

 남북한 모두 더 큰 경쟁자들에 대해 중요한 완충 역할을 하기에 그 지역의 모든 제국주의적 도적들은 한반도의 분단을 유지하려 한다. 이것은 평양 정권에도 해당한다. 그런데 한국 지배계급은 통일을 늘 꿈꿔왔고 주기적으로 목표로 해왔다. 평양과의 협력 확대를 주창하는 소위 “햇볕 정책”은 최종적으로는 통일을 바라며 좀 더 장기적 해결을 도모하려는 시도이다.

 

한국 지배계급 내부의 이러한 꿈은 1990년 독일의 통일 이후 더 강해졌다. 이 사건은 한반도의 통일을 세계정치의 현안에 올려놓으려는 한국의 열망에 힘을 실어주었다. 독일의 예를 따라서 한국 정치인들은 1970년 서독 수상 빌리 브란트의 동독 정책의 일종의 한국판인 자신들의 ‘햇볕 정책’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 목적은 한국에 대한 북한의 경제적 “인도적” 의존성을 재통일의 준비 수단으로서 확립하는 것이었다. 남북한은 서로를 외교적으로 인정하고 1991년 9월 유엔의 회원국이 되었다. 그 3개월 후 그들은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reconciliation, non-aggression, trade and collaboration)’ 합의를 체결했다. 이 합의서는 비록 평화협정은 아니었지만, 남북한 두 나라 사이의 전쟁상태를 종결했다. 그 당시 한국 정부가 지적했듯이, 한국이 요구해왔던 평화협정은 북한을 외교적으로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는 미국 때문에 이뤄질 수 없었다. 워싱턴의 이러한 태도는 ‘햇볕 정책’을 약화해서 결국 후임 대통령 김영삼은 당시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의 도움을 받아 대북강경책으로 전환했다. 이 후자의 정책은 냉전 중에 미국이 소련에 대항해 발전시킨 소위 캐넌 독트린(Kennan Doctrine)을 모델로 삼는다. 이는 적의 정권을 굴복시키기 위한 군사적 봉쇄와 경제적 목조르기를 내용으로 한다. 1994년 북한의 핵무기개발 시도에 대응하여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그 정권의 핵발전소시설에 대한 방어적 공격을 고려했다. 1994년 가을 제네바협정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북한에 대한 그들의 입장을 강화했다. 그 결과로 생겨난 남북 간 충돌의 악화는 1995년과 1998년 사이에 북한을 엄습한 심각한 굶주림에 기여했다. 이 재앙은 다시 햇볕 정책 지지자들이 권력에 새로이 도전하는 데 이용되었다.

 

한국의 대기업 현대의 창업자 정주영은 1998년 소 1,000마리를 북한에 상징적으로 기증함으로써 한국 정부의 북한경제 목조르기정책에 의문을 제기했다고 한다. 가장 열렬한 햇볕 정책 신봉자이고 이것을 기반으로 대선에 승리한 김대중은 2000년대 초 북한의 상대자 김정일(김정은의 아버지)을 만났다. 이 “역사적 정상회담”은 그 참여하기를 북한이 처음에는 꺼렸음에도 현대가 제공한 1억 8천 6백만 달러의 힘으로 그리고 한국 국가정보원의 도움으로 성사되었다. 이에 2004년 중요한 경제적 모험이 뒤따랐다. 중국을 모델로 하여 북한의 개성에 경제특구가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에서 한국 기업들은 투자하고 북한 노동력을 값싸게 착취할 수 있었다. 그의 햇볕 정책으로 김대중은 노벨상을 받았다. 그러나 이것은 그와 그의 후임 노무현에게 한국의 경쟁자와 미국의 반대를 초래했다.

 

북한은 한국에서 햇볕 정책이 득의양양하게 귀환한 것에 분노했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독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한번 살펴보기만 하면 된다. 그곳에서 스탈린주의자들이 지배하고 있던 동독은 1990년 모조리 삼켜졌다. 그러한 상황에서 북한의 스탈린주의자들은 동베를린에서 일어난 것처럼 자신들의 권력을 잃을 위험을 감수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명을 거는 것이었다. 서울의 좀 더 화해적인 접근도 그것이 곧 북한의 종말의 시작일 것임을 느끼는 평양의 스탈린주의자들의 두려움을 쓸어내 버릴 수는 없었다. 북한 정권이 “협력을 통한 변화(transformation through cooperation)라는 한국 측 정책을 지지할 것이라는 한국 햇볕 정책 주창자들의 희망은 산산이 부서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햇볕 정책은 워싱턴으로부터 어떤 지지도 받지 않았다.

 

그러는 중간에 북한에 대해 더 강경한 노선을 택한 박근혜의 탄핵이 있고 난 뒤 현재 문재인이 2017 이 정권을 넘겨받았다6). 문재인은 북한과의 대치보다는 대화와 협력을 원칙으로 하는 “햇볕 정책”의 확고한 옹호자로서 권력에 도달했다. 그는 북한과 미국 사이의 새로운 격화에 격분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적어도 초기에는 미국의 사드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한국에 배치한다는 도널드 트럼프의 결정(문 정부와 상의 없이 이뤄진 것이 분명한)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 결정은 탄핵당한 전임 대통령인 박근혜 집권 당시 이미 계획된 단계였다. 현재의 충돌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편을 드는 대신에 서울의 정부는 처음에는 양측 모두에게 자제할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가장 최근의 핵무기 실험과 위협들이 있었던 뒤 문재인은 갑자기 미국 핵무기의 전개를 요구하고 사드와 같은 새로운 미사일 시스템의 한국 내 배치를 관철했다. 또한 (지금까지 800km로 거리가 제한되어 있던) 한국 미사일의 반경과 500kg의 운반용량은 상당히 증가할 예정이다. 이 모든 것은 그의 햇볕 정책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결론짓기는 어렵지만, 그 정책을 확실히 위태롭게 한다.

 

 

노동자계급의 핵심역할

 

 모든 나라에서 지배계급은 노동자계급을 민족주의 영역에 묶어두려 애쓴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은 그러한 함정으로 유혹당하기를 거부해야 한다. 진정, 북한 노동자계급의 투쟁성과 의식을 가늠하기는 어렵다. 일상적인 감시와 테러에 직면해서 그 어떤 저항도 대대적이어야만 할 것이고 국가와 군대 그리고 정치기구에 직접 맞서게 될 것이다. 이것은 현재 있을법하지 않다. 게다가, 유엔 제재의 효과는 북한 정권을 질식시키지 않을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노동자계급을 강타할 것이다. 권력자들이 성공적인 미사일 실험들을 환영할 때마다 노동자들과 농민들은 새로운 제재가 다가오고 있음을 그리고 그 대가를 자신들이 치러야 함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굶주림의 위험에 대해 권력자들은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더 많은 무게가 한국과 중국의 노동자계급의 어깨에 놓여있다. 비록 수십 년간의 “반공산주의 캠페인” 때문에 많은 노동자의 공산주의(코뮤니즘)에 대한 시각이 왜곡되어 있지만, 한국과 중국 노동자들은 지난 몇십 년 동안 전투적이고 대대적인 많은 투쟁에 참여해 왔고, 이것은 자신들의 착취자들의 제국주의적 전쟁에 순순히 희생양이 되지는 않겠다는 한 표현이다. 그리고 노동자계급 내의 저항이 그 어느 정도일지언정 전쟁 몰이에 맞서려면 “노동자들에게 조국은 없다”라는 노동자계급의 가장 오래된 원칙이자 슬로건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존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한국의 국제코뮤니스트전망(International Communist Perspective) 동지들이 쓰고 우리가 여기에 공개하는 국제주의자의 성명서를 지지한다.

 

우리는 이 성명서에 약간 비판적이다. 특히 사드 배치에 그 중점이 놓여있기에 자칫하면 이것은 단일한 사안 캠페인들이 마치 전쟁 기계의 요구들에 대항해 노동자들의 이해를 방어하는 노동자들의 투쟁과 동등하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계급이 의식을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은 이런저런 무기체계에 대항한 캠페인에 의해서가 아니다. 혁명가들의 임무는 “민족적 단일성(national unity)”이라는 환상을 깨고 다른 나라의 노동자들과 진정한 연대를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급의 요구들을 위한 투쟁들에 참여하면서 체제 전체의 난국을 폭로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관점들은 국제주의자들 사이에서 논쟁 되어야지 그들이 공유하는 원칙의 방어를 위해 협력하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제1차 대전 발발 후 레닌과 로자 룩셈부르크가 제국주의 충돌에 대항해 함께 싸웠지만, 민족문제에 대해서는 열띤 논쟁을 펼쳤음을 환기한다. 그래서 우리는 ICP 동지들과 이 지역에서 진정한 국제주의를 위해 싸우는 모든 이들과의 진정한 연대에 참가한다.

 

2017년 9월 18일

국제코뮤니스트흐름 (International Communist Current)

 

 

<주>

 

1. 노동자들은 한 달에 이틀 쉬고 노예처럼 일해서 120-150달러 정도를 받는다.

 

2. “동유럽 나라들에서 경제적 정치적 위기에 대한 테제“, "Theses on the economic and political crisis in the eastern countries" 를 참조

 

3. 지도자의 명칭 목록은 끝이 없다. "김정일의 호칭 목록" 을 참조

 

4. 파월 미국 외무장관과 블레어 영국총리 모두는 사담 후세인이 이미 핵무기를 보유한다고 경고했다. 그것은 “허위 뉴스”로 판명되지만 2003년 당시 이라크 침공의 빌미가 되었다.

 

5. "International Review - Special Issue - Imperialism in the Far East, past and present" 참조

 

6. 박근혜의 탄핵 이유는 다층적이었다. 한편으로 그것은 “햇볕정책파”와 “강경노선파”사이의 권력투쟁이었고 우리는 박근혜에 반대한 큰 시위 물결의 배후에서 “햇볕정책파”도 어느 정도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동시에 엄청난 부정부패에 관한 국민의 분노도 박근혜의 종말에 기여했다. 어쨌든 이 모든 것은 민주주의의 이미지를 끌어올리는 데 이용되었다.

 

번역 ┃ 국제코뮤니스트흐름

 

<출처> http://en.internationalism.org/icconline/201709/14384/threat-war-between-north-korea-and-us-it-capitalism-which-irrational

 

<관련기사> 한반도에서의 전쟁위협에 맞서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3&document_srl=9477

 

 

 

 

<북한 문제에 대한 국제 토론>

 

위 문서가 나오기 전인 지난 8월 ‘북한 문제’에 관한 국제 토론이 있었다. 여기서 국제코뮤니스트전망은 아래와 같은 의견을 전달했다.

 

1. 북한 체제의 성격에 대해

 

북한은 자본주의 체제임을 확인한다. 또한, 북한 체제는 노동계급이나 코뮤니즘(공산주의)과는 전혀 무관한 군사적 야만주의 사회의 특징을 보인다.

계급투쟁의 면에서도 북한의 인민 다수가 오랜 기간 김일성주의로 교화되어 대중투쟁 물결과 혁명적 계급의식 유입이 차단된 채 고착되어 있다. 여전히 북한 노동자계급의 가능성은 내부의 계급투쟁 여부에 달려있다.

 

2. 전쟁 위협과 전쟁 가능성에 대해

 

한국에 주둔 중인 미군과 거대한 중국인 체류자 때문에, 한국 주요 도시에 대한 전면적 공격은 현실적인 가능성이 크지는 않지만, 연평해전(서해상 해군 교전)과 같은 국지전은 언제든 가능하다. 미국 또한 한반도 전쟁 발발 시 중국이 개입하는 북-중 관계와 북한의 반격 위협(한국, 일본, 미국 본토) 때문에 북한을 직접 타격하기는 어렵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ICBM 등 미사일 실험은 미국에 대한 대응( 김정은 체제 안전보장과 경제제재 해제 등 북미 직접협상 요구)과 체제 내부 단속(이른바 선군정치)에 목적이 있다.

미국의 북한에 대한 제재와 전쟁위협은 1) 동아시아에서의 중국 제국주의 견제 등 패권 경쟁 2) 북한 핵무기의 미국 본토 및 우방 국가 타격 위협 대처 3) 한국 정부(자본)에 대한 통제 4 )김정은과 마찬가지로 트럼프 정권의 내부(우파) 결속에 목적이 있다.

 

동아시아에서의 제국주의 대립(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은 항상 위기상황을 연출하고 있으나, 실제 ‘전쟁위기’라기 보다는 위기 상황을 자국 정부(국내외 정치와 계급투쟁 억제에 이용)와 자본의 이해관계에 이용하는 것이 본질이다. 변수는 트럼프와 김정은이라는 예측 불가능? 한 ‘사멸해가는 사회체제의 상징’ 현상이다.

 

3. 북한이 한국의 계급투쟁에 미치는 영향

 

한국의 뿌리 깊은 지배이데올로기인 ‘반공주의’는 반공=반북=반노동자 의식으로 자리 잡았고, 계급투쟁과 혁명운동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노동자 민중운동 내부에서도 김일성주의(민족주의) 경향이 노동자 운동과 대중운동의 다수를 차지하면서 ‘계급 운동’을 ‘민족주의, 민주주의 운동’으로 꾸준히 후퇴시켜왔다. 그러나 이들도 지배계급으로부터 국가보안법의 주적(또는 이적세력)으로 간주하여 감시와 탄압을 받기 때문에, 한국의 민중들에게 이들은 ‘저항세력’ 또는 ‘빨갱이(공산주의자)’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민족주의 세력의 막대한 영향력과 북한과의 대치 상황을 이유로 한국 내 다수의 사회주의 세력들은 북핵 문제, 제국주의 문제, 전쟁과 평화 문제, 북한 정권과 북한 노동자들에 대한 태도 문제에서 확고한 ‘국제주의 원칙’을 고수하지 못하고, 모호한 태도를 보인다. ‘방어적 북한 핵 옹호’, ‘노동자국가(중국, 북한 등) 방어’, ‘혁명이 아닌 평화협정을 통한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 ‘노동자 국제주의가 아닌 반제국주의 인민전선’ 등이 그것이다.

 

국제코뮤니스트전망과 국제주의자/코뮤니스트 노동자들은 노동자계급의 계급의식을 후퇴시키고 계급투쟁을 파탄으로 몰아넣는 이들에 맞서 단호하게 투쟁할 것이며, 국제주의자 동지들과의 실질적인 국제연대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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