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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18/12/31

[코뮤니스트 8호] 맑스 탄생 200주년 특집 : 혁명 투사 칼 맑스

  • 혁명 투사 칼 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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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닌은 “국가와 혁명”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억압계급은 위대한 혁명가들을 끊임없이 평생 추적했으며, 가장 야만적인 악의, 가장 격렬한 증오, 거짓과 중상의 가장 파렴치한 캠페인으로 그들의 이론을 대했다. 혁명가들이 죽은 후에는 혁명가들을 무해한 아이콘으로 만들며, 억압받는 계급에 ‘위안’을 주기 위하여 그들의 이름을 어느 정도까지는 거룩하게 만들고 그들을 성인으로 떠받드는 동시에 그들 이론의 혁명적 본질을 강탈하고 혁명적 칼날을 무디게 하여 평범하게 만든다.” 

     

    부르주아 계급은 맑스를 일생에 걸쳐서 경찰기구를 통해 박해하고 악마와 동일화시켜 그의 활동을 막기 위한 모든 것을 했다[1]. 그의 죽음 후, 부르주아 계급은 자본주의를 파괴하고 코뮤니즘(공산주의)의 미래를 열기 위해 그의 전투를 왜곡하기 위한 모든 것을 했다.

     

    악명 높은 선전

     

     

    맑스 탄생 200주년에 맞추어 제작된 모든 출판물, 라디오, 텔레비전의 프로그램은 이러한 규칙을 따른다. 많은 학자는 경제학, 철학, 사회학에 대한 맑스의 업적에 대해서 경의를 표하는 한편, 정치영역에서는 ‘현실과는 멀어져’ 전적으로 실패했거나 완전히 실수한 사람으로 그를 소개한다. 이것은 맑스의 예리하고 전투적인 혁명이론의 칼날을 무디게 만드는 것 이상은 아니다! 오늘날 제기되는 논쟁 중 하나는 맑스가 20세기와 21세기의 미래 혁명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19세기의 사상가"[2]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추론에 따르면 혁명적인 관점은 오늘날 타당성이 없다. 노동계급은 존재하지 않고, 게다가 맑스의 정치적 프로젝트는 스탈린주의의 공포로 귀결될 뿐이다. 맑스의 모든 정치적 업적은 마침내 역사의 쓰레기통에 던져진다.

     

    그러나 이러한 선전의 좀 더 교활한 견해는 맑스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한 옹호와 소외에 대한 비판이라는 요소를 확인하여 ‘진정한’ 맑스의 요소를 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단언한다. 근본적으로, 이것은 우리에게 맑스를 혁명가로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국가통제 없이 불평등과 경제위기를 만드는 ‘규제되지 않는’ 자본주의를 개선하고 이해하게 하는 업적을 남긴 위대한 사상가의 하나로 보여주는 것이다. 부르주아 가운데는 맑스를 자본주의의 위기, 세계화의 예측, 불평등의 성장 등을 예견한 ‘경제학의 천재’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 세기보다 더 오랜 기간 맑스에게 아첨한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이른바 맑스 상속자를 자처했으며, 이들 가운데는 스탈린주의자로부터 트로츠키주의자를 포함한 좌파도 있었다. 이들은 레닌이 앞에서 비판한 것처럼 혁명적인 맑스를 망가뜨리고 손상하고 왜곡하여 반(半)종교적인 우상으로 그를 추앙하고 받들어 모셨다. 이 모든 것은 소련(USSR), 동유럽 국가들 그리고 중국에 세워진 국가자본주의(쇠퇴의 시대에서 자본주의의 위장된 형태이자 반혁명의 산물)의 지배를 사회주의 또는 코뮤니즘으로 위장하기 위한 것이다.

     

    맑스는 무엇보다도 먼저 투사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맑스는 엥겔스와 함께 무엇보다도 우선 혁명가였으며 투사였다. 그의 이론적 연구는 이러한 출발점 없이는 이해할 수 없다. 누군가는 맑스를 책에 둘러싸여서 세계와는 단절된 순수한 학자로 만들기를 원하지만, 오직 혁명적 투사만이 맑스주의자가 될 수 있다. 그가 1842년 베를린의 청년헤겔학파(Hegelians)에 참여한 이후부터 맑스의 삶은 프러시아 전제주의에 대항한 투쟁이었다. 이 투쟁은 그가 사회 대다수의 비참함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파리 노동자들과의 토론에서 노동계급의 잠재력을 보았을 때 코뮤니즘을 위한 투쟁으로 변화되었다. 이 투쟁은 그를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추방당해서 떠도는 유배자로 만들었으며 그를 극도의 빈곤으로 몰아넣어서 아들마저도 죽어야 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프랑스 TV ‘문화’ 프로그램에서 아르테(Arte)가 맑스의 가난에 대한 원인을 맑스나 그의 부인이 유복한 집안 출신이기 때문에 가정경제를 잘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암시한 것은 정말로 역겹다. 

     

    실제로 맑스는 전적으로 프롤레타리아 연대에 철저했으며, 정기적으로 그의 적은 수입을 혁명운동에 사용했다! 게다가 조나손 스펜서(Jonathon Spencer)가 말한 것과는 반대로, 맑스는 ‘언론인’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프러시아 전제주의에 대항한 투쟁과 부르주아에 대항한 투쟁에서 선전의 필요성을 이해한 전사였기 때문에 ‘라인신문’, ‘독일-브뤼셀 신문’, ‘프랑스-독일 연보’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라인신문’에 기사를 썼다. 맑스는 투사로서 ‘코뮤니스트동맹’의 전투에 전적으로 함께 했고, ‘코뮤니스트동맹’이 노동운동의 주요 문서인 ‘코뮤니스트 선언’ 작성을 위임한 것에 대하여 수락했다. (보리스(Boris Nicolaievsky)와 오토(Otto Maenchen)가 쓴 ‘Marx, Man and Fighter’라는 맑스 전기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투사로서 혁명가들의 재편성과 조직화가 그의 활동의 핵심이었다. 같은 방식으로, 그의 이론적 작업 전체의 원동력은 노동계급에서 진행되는 계급적 명확성을 위한 투쟁이었다.

     

    맑스의 이론 연구

     

    맑스는 자본주의에서 지킬 것은 어떤 것도 없으며, 착취에 대한 투쟁을 통해서 “잃을 것이라고는 사슬밖에 없는” 노동계급의 관점으로부터 출발하여 엄청난 이론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그의 이론작업은 이 전투가 사회계급의 출현 이후 나타난 인간에 의한 인간 착취의 종결 가능성을 포함하며, 노동계급의 해방이 코뮤니즘을 통한 인간성의 회복을 가져올 것이라는 자명한 원리로부터 진행되었다. 자크 아탈리(Jaques Attali)의 맑스가 ‘현대 민주주의의 창시자’라는 말은 부르주아의 거짓말일 뿐이다. 이 거짓말은 현 사회가 존재하는 최고의 사회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선전의 목적은 사멸하는 자본주의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관점은 코뮤니즘이라는 것을 노동계급이 이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맑스가 확립한 과학적 방법과 역사유물론은 계급전투를 지도하기 위한 노동계급의 필요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 방법론은 헤겔의 철학을 비판하며, 실재의 변형은 항상 변증법적 과정이었다는 헤겔의 발견을 ‘거꾸로 뒤집어’서 넘어선 것이었다. 맑스는 이 방법론을 1848년 파리코뮌과 같은 위대한 노동자들의 투쟁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었다. 코뮤니스트 좌파와 같은 후속 세대의 혁명가들은 맑스가 남겨준 똑같은 방법론을 이용하여 1917년 혁명적 물결의 실패로부터 교훈을 끌어낼 수 있었다. 맑스의 접근법은 효과적이다. 그의 방법을 이용하여 실재를 조사하고 그 분석 결과를 실제 결과와 비교하는 것을 통해서 혁명가들은 이론을 풍부하게 할 수 있다.

     

    노동계급의 관점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은 노동계급이 무엇에 대항해야 하는지와 사슬에서 벗어나 그 자신을 해방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파괴해야 할 것인가를 근본적으로 이해하게 한다. 따라서 맑스는 자본주의를 비판하기 위하여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 기초를 연구했다. 이 연구는 자본주의의 기초가 상품교환이며, 이 상품교환은 자본주의에서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 형태인 임금노동의 기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이 연구결과를 「리베라시옹(Liberation)」1)이 맑스의 탄생 기념일에 말한 다음의 말과 비교하는 것은 흥미롭다. "칼 맑스는 자본가에 의한 노동력 구매가 임금노동자가 투여한 노력을 현실화하는 데 있어서 불확실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말은 만약 누군가가 노동자가 견딜 수 있는 노동력을 측정할 수 있다면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는 좋은 일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자본주의를 정당화하는 데 맑스가 사용되는 방법의 보기이다. 이와는 반대로 맑스에게 있어서 ‘노동력 구매’는 ‘잉여가치의 생산’을 의미하므로 착취를 의미한다!

     

    맑스는 또한 그의 전투적 관점을 통한 이론작업에서 자본주의 이전의 다른 생산양식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가 영원한 체계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고, 이 자본주의 시스템은 그 한계에 부딪혀 역사적으로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발전의 특정 단계에서 사회의 물질적 생산력은 기존의 생산관계(이를 법률적 용어로 다시 표현하면 지금까지 운영된 체계에서의 소유 관계이다)와 충돌하기 때문이다. 생산력 발전으로부터 이러한 관계는 생산력의 족쇄로 변하며, 혁명의 시대가 시작된다(정치경제학 비판)." 또한, 맑스는 자본주의가 자신의 무덤을 파는 프롤레타리아트, 즉 역사의 마지막 피착취 계급이자 모든 것을 빼앗긴 계급이며 그 자신이 가진 노동력의 성격 때문에 혁명적 가능성이 유일한 사회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를 만든다는 것을 논증하였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계급과 착취가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세계적 차원에서 국경을 넘어 연대함으로써 자본주의를 전복할 수 있는 유일한 계급이다.

     

    20세기와 21세기의 "위대한 분석들"은 맑스가 반박되었거나, 과거의 일이거나, 또는 맑스가 ‘경제학’ 덕분에 또는 자본주의의 ‘너무 심함’을 바로 잡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반(反)세계주의자의 이론에서 “위대한 선지자”가 된 덕분에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모든 이데올로기의 혼란은 프롤레타리아 혁명투쟁을 모호하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

     

    주 1) 리베라시옹(Liberation)은 1973년 사르트르가 창간한 좌파 일간지로, 최근에는 그 선명성을 점차 상실해서 ‘부르주아 보헤미안 성향의 파리지앵’을 위한 일간지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받았다(이하 각주 옮긴이).

     

    혁명가조직과 노동계급에 대한 맑스의 관심

     

    칼 맑스에게 자본주의를 전복하고 코뮤니즘의 도래를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행위자로서의 노동계급에 관한 확인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을 조직해야 할 필요성과 관련 있었다.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이것에 대한 맑스의 공헌은 아주 중요했다. 그는 독일, 프랑스, ​​영국의 사회주의자들이 서로 소통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통신위원회(Correspondence Committee)’를 조직했다. 그는 “행동의 시점에, 모든 사람이 국내 상황만 아니라 해외의 상황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라고 했다. 맑스는 프롤레타리아트 안의 국제혁명조직을 만들고 이를 방어하기 위한 투쟁에 꾸준히 참여하면서 프롤레타리아 조직화의 필요성을 구체화했다. 맑스의 코뮤니즘을 위한 투쟁과 이 투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그의 가장 깊은 이해는 1847년에 ‘의인동맹(League of the Just)’2)이 ‘코뮤니스트동맹’에 합류할 수 있도록 변화시키기 위한 싸움에 그를 밀어붙였다. 맑스와 엥겔스는 혁명가들의 역할에 대한 예리한 이해가 있었기 때문에 ‘코뮤니스트동맹’이 강령을 채택해야 할 필요성을 주장했으며, 이는 1848년 ‘코뮤니스트 선언’의 작성으로 나타났다.

     

    ‘코뮤니스트동맹’은 1848년 혁명의 패배 이후 탄압의 타격을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그 후 투쟁은 1860년대 초에 다시 시작되었고 다른 조직화의 노력이 나타났다. 맑스는 1864년에 결성된 ‘국제노동자협회(IWA)’의 창립 초기부터 참여했다. 그는 규약을 작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창립선언을 쓰기도 했다. 조직의 중요성과 그의 이론적 명확성에 대한 그의 확신은 그를 조직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코뮤니스트동맹’의 조직원으로 그는 IWA안에서 ‘코뮤니스트동맹’ 조직이 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단호한 투쟁을 했다. 그의 이론적 관심은 투쟁의 필요와 절대 분리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맑스가 ‘코뮤니스트동맹’에서 바이틀링(Weitling)3)과 만났을 때, 바이틀링의 코뮤니즘에 대한 이상주의적이고 관념적인 시각 때문에 “지금까지의 무지는 누구에게도 쓸모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맑스가 국익의 옹호에 IWA 활동의 초점을 맞추고 싶어 했던 마찌니(Mazzini)4)에 맞서서 IWA에서 싸웠던 근본적 이유였으며,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중행동 대신에 음모적인 모험을 내세우며 IWA를 통제하려고 계획했던 바쿠닌(Bakunin)5)에 반대한 근본 이유이다.

     

    맑스의 이론적 업적은 19세기 부르주아사회에 대하여 경이적인 빛을 비춘다. 그러나 이 업적을 단순히 ‘세상을 이해하는’ 수단으로 간주한다면, 마치 부르주아계급의 사이비 전문가가 맑스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처럼, 그의 업적은 보이지 않은 안개에 둘러싸인다. 부르주아는 ‘미래는 없다’라는 생각을 퍼트리지만, 노동계급은 사슬에서 자신을 스스로 해방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맑스에 대한 이론적 연구를 활용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의 투쟁적인 삶, 그의 전사로서의 생활로부터 영감을 얻어야 한다. 즉 그의 이론적 작업은 "세상을 변혁시키자!"라는 프롤레타리아의 투쟁목표와 일치해서 발전할 수 있었다.

     

    Vitaz, June 1, 2018

     

     주 2) 의인동맹(Just of League)의 회원은 주로 독일의 재봉과 목공에 종사하는 장인으로, 1847년 6월, 맑스와 엥겔스가 주도한 ‘통신위원회’와 합쳐 코뮤니스트동맹을 구성했다. 

     

     주 3) 유럽 도시에서 독일 수공업 직인의 결사 운동을 지도하고, 1850~60년대의 뉴욕에서 이민노동자의 사회건설을 주창한 독일의 공상적 사회주의자.

     

     주 4) 이탈리아의 애국자·혁명가로 가리발디(Garibaldi)를 도와 이탈리아의 통일과 독립을 꾀했다.

     

     주 5) 러시아의 아나키스트. 프루동의 영향을 받아 아나키즘을 주장했으며, 1868년 제1 인터내셔널에 참가했으나 맑스와 대립하다 제명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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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따라서 엥겔스는 맑스의 장례식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맑스는 그의 시대에서 가장 많이 미움을 받고 가장 거짓말로 평가된 사람이었다. 절대주의자와 공화정부가 그를 추방했다. 민주적 부르주아와 보수적 부르주아가 그에 반대해 연합했다".

     

    [2] 최근 미디어의 대규모 프로모션으로 혜택을 받은 미국학자 Jonathon Spencer는 “칼 맑스 전기”에서 맑스를 ‘19세기의 사람’으로 불렀다.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옮긴이 ┃ 한동이

     

    <출처>

    http://en.internationalism.org/icconline/201807/16482/karl-marx-revolutionary-milit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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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8호] 플랜트노조 충남지부 해산 사태와 민주노조 원칙

  • 플랜트노조 충남지부 해산 사태와 민주노조 원칙

    - 민주노총 세종충남본부 구재보 동지 인터뷰 -

     

     

    Q 동지가 활동 중인 민주노총 세종충남본부에서 올해 가장 큰 조직적 성과는 무엇이었나요? 반대로 문제가 되었던 사건은 무엇입니까?

     

    A 글쎄요. 조직적 성과라고 하는 것이 투쟁사업장이 승리했다던가, 혹은 조합원 수가 대폭 늘었다거나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서 한 마디로 답변드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만 현재 지난 8년간 끈질기게 투쟁을 이어오고 있는 유성기업지회 동지들이 이번에는 끝을 내자는 각오로 투쟁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본부 역시 유성 투쟁이 마무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겠죠.

    문제가 되었던 사건은 아시다시피 전국플랜트건설노조 충남지부에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Q 충남지역에서는 올 초 노조 내부 테러 사건에서부터 사상 초유의 지부 해산 사태까지 민주노총 내부는 물론 노동운동 진영 상당수가 경악할 만큼 널리 알려진 사건이 있습니다. 이른바 “전국플랜트건설노조 충남지부 해산 사태”가 그것인데요. 이 사태에 대해 충남지부 해산과 세종충남본부 직가입 과정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A 충남지부 현재의 집행부는 작년 초 선거를 통해서 당선되었습니다. 당시 핵심적인 선거공약의 하나가 충남지부에 대해 외부 회계감사를 받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선 이후 세종충남본부에 외부회계감사를 요청했고, 본부 운영위원회는 회의를 통해 금속노조 법률원 회계사 출신의 변호사를 포함한 회계에 정통한 지역의 동지들로 TF팀을 구성해 감사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2월 24일 충남지부 정기모임 자리에서 그동안 진행됐던 회계감사 중간보고를 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임을 진행하는 도중 50여 명의 조합원들이 들이닥쳐 당시 충남지부 정책국장과 간부 그리고 조합원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했습니다. 그 결과 유승철 정책국장은 코뼈와 안구 뼈가 함몰되는 등의 부상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폭행을 자행했던 자들은 발언권을 주지 않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벌어졌던 일이라며 오히려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를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3월 10일 충남지부 3월 정기모임에서 결국 회계감사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그 결과는 실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전 집행부가 장악했던 6년여 기간 동안 횡령 유용으로 의심되는 금액이 무려 3억여 원에 이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조합원들은 분노했고, 그 자리에서 폭력을 저지른 자, 회계 비리를 저지른 자들과는 함께 일할 수 없음을 90%가 넘는 찬성으로 결정했습니다.

     

    충남지부가 임금교섭을 진행하던 중 갑자기 전플 본조가 충남지부의 교섭권을 회수했습니다. 당연히 교섭에 나오던 업체는 교섭권 박탈을 이유로 교섭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7월 2일 전플은 운영위를 통해 충남지부 해산을 결정합니다. 1만 명이 넘는 충남지부 조합원 중 단 한 명의 동의나 의견을 듣는 절차도 없었습니다.

     

    교섭권을 박탈하고 지부를 해산시킨 전플 본조는 업체에는 교섭에 임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는 한편 지부에는 조합비 등 지부의 모든 재산을 모두 본조로 회수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폭행범, 회계비리범과 함께 다시 현장에서 얼굴 맞대고 일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지부 조합원 동지들은 세종충남본부 운영위에 지부 해산이 철회될 때까지 직가입 승인을 요청했습니다.

     

    사측은 전플 본조의 결정을 근거로 교섭을 해태하고 충남지부를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현장에서부터 조합원들의 자발적인 현장 투쟁들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지도부의 지침이 없이도 현장 사안들을 정리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Q 민주노총 충남본부(운영위)에서는 충남지부의 직가입을 승인했고, 민주노총 중집 결정과는 달리 일관되게 충남지부 해산 철회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세종충남본부 입장의 판단 근거는 무엇입니까?

     

    A 노동조합의 주인은 조합원이라는 너무나 상식적이고 당연한 사실이 판단 근거입니다. 뭔가 대단한 논리나 명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10여 년 전 노동조합을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악질 자본과 검경을 상대로 노동조합을 지켜내기 위해 투쟁했던 조합원들입니다. 당연히 그 동지들이 노동조합의 주인이죠. 게다가 전플 본조는 충남지부의 교섭권마저 회수했습니다. 1만이 넘는 조합원의 생존이 걸린 교섭권을 어떻게 위원장 혼자 쥐락펴락할 수 있습니까? 도저히 민주노조라고 할 수가 없지요. 교섭권을 빼앗기고 지부가 해산된 상황, 그러나 민주노총 중집은 이 어이없는 사실에 대해서 아무런 입장도 내지 못하고 있었죠. 세종충남본부와 운영위 동지들은 ‘충남지부 조합원 동지들은 민주노총 조합원이고 노동조합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고자 했습니다. 그것이 지난 10여 년간 동지라고 부르며 함께 투쟁했던 전플 본조로부터 버림받은 조합원 동지들과 함께 하는 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민주노조의 원칙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세우는 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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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전국플랜트건설노조 운영위의 충남지부 해산 결정과 새로운 지부 설립을 다수의 현장 조합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A 세종충남본부 운영위 결과만 봐도 일련의 사태에 대한 현장의 의견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또 지난 9월 13일 플랜트 충남지부 해산 사태에 대해 지역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그 자리에 참석한 동지들 대다수는 어떻게 민주노조에서 지부 해산이라는 사태가 있을 수 있는가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요 시군위원회(서태안위원회, 당진시위원회, 아산시위원회)과 충남지역 열사회(이현중,이해남,박정식,박종길,최종범,한광호,김종중열사)가 지부 해산을 철회할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입장문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Q 현재 충남지부 조합원들의 뜻과 이해관계는 어떻게 반영되고 있고, 왜곡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A 뜻이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조합비를 횡령 유용한 자들과 2월 24일 조합원을 폭행한 자들에 대해서 징계하고, 지부 해산 결정을 철회하라는 것입니다. 반영되고 있는 부분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전플 본조와 여러 SNS를 통해 충남지부 동지들의 투쟁이 왜곡되고 있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예를 들어 횡령유용과 관련해서 고소를 한 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그 누구도 구속되지 않았고 아무런 결과가 없기 때문에 회계감사 결과가 잘못됐다는 것, 2.24 폭행은 우발적인 것이었으며, 오히려 충남지부 김준수 집행부가 조합원들의 일자리를 막고 생존권을 빼앗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지금의 사태의 본질이 노조 집행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정파 간의 갈등이라고 왜곡 하는 것입니다.

     

    Q 노동조합의 존재 이유인 전체 조합원의 이해관계 방어 차원에서 이번 사태와 같은 일이 발생할 경우 민주노총의 책임은 무엇이며, 세종충남본부는 어떠한 역할을 하고 계신가요?

     

    A 민주노총은 민주노조의 원칙과 기본, 상식을 바로 세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파 간의 갈등을 조정하고 중재하는 일이 중요하긴 하지만, 이번 사태는 정파 간의 갈등으로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민주노총 백석근 사무총장과 세종충남본부 운영위와의 간담회 자리에서 사무총장은 플랜트 충남지부 해산은 ‘노동운동의 상식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입장을 명확히 하는 것이 민주노총이 해야 할 가장 첫 번째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아직까지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 노동운동의 상식을 뛰어넘은 만행을 저지른 전플 본조의 입장을 두둔하는 것입니다.

    세종충남본부와 운영위는 토론을 통해 지부 해산이 철회될 때까지 함께 투쟁할 것을 결정했고, 그때까지 한시적으로 충남지부의 직가입을 승인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충남지부 조합원 동지들은 언제나 자랑스러운 민주노총 조합원임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충남지역 노동열사추모사업회와 세종충남본부 지역위원회 대표자들이 충남지부 해산 철회를 요구하는 입장을 발표했는데, 공통의 문제의식은 무엇입니까?

     

    A 앞서도 말했듯이 노동조합 설립과 가입, 탈퇴와 해산을 결정할 수 있는 주체는 바로 조합원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민주노조의 기본적인 원칙이니까요.

     

    Q 이 문제가 계속 해결되지 않는다면, 전체 노동운동 진영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함은 물론이고 충남지부 투쟁에 대한 지지와 연대가 확산되어야 할 것 같은데, 어려움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A 어렵네요.

     

    Q 이 문제가 민주노조운동과 노동운동에 던지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A 가장 중요한 것은 민주노조의 원칙을 바로 세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권력을 가진 그 누군가에 의해서 조합원들의 생존이 좌지우지되는 노동조합을 어떻게 민주노조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국가와 자본이 국민과 노동자를 상대로 하는 짓거리와 다를 게 뭐가 있겠습니까?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민주노총의 역할입니다. 사무총장도 밝혔듯이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밝히고 바로 잡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Q 민주노총 내 조직 갈등에 대한 민주노총의 역할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동지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A 플랜트 충남지부 해산의 문제는 조직(정파) 갈등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운동적 원칙과 기본을 바로 세우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조직 내 갈등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해보지 못했습니다.

     

    Q 이러한 문제에 있어 중립을 요구받는 노조활동가는 사실상 한계가 분명합니다. 이에 대한 동지의 원칙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A 가끔씩 저에게도 중립을 요구하는 동지들이 있기도 합니다. 반대로 중립을 지킬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중립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노조 활동가에 대한 중립 요구는 마치 정권의 공무원, 교사들에 대한 정치적 중립을 말하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밝히는 것이 제한되어서는 안 됩니다.

     

    Q 이 문제의 올바른 (운동적) 해결을 위해 충남지부 조합원 동지들, 충남지역 동지들, 민주노총, 그리고 노동운동 진영에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제한 없이 해 주십시오.

     

    A 플랜트 충남지부 사태는 매우 복잡합니다. 우선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사태의 진실과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기 위한 노력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충남지부 해산 철회에 대한 입장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민주노총 역시 눈치 보지 말고 옳고 그름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혀줌으로써 민주노조의 원칙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플랜트충남.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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