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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9호] 코뮤니즘(공산주의)이란 무엇인가? Ⅱ

  • 코뮤니즘(공산주의)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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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뮤니스트 혁명

     

    “부르주아 혁명, 즉 18세기의 혁명은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여 맹렬히 돌진한다. 그 극적 효과들은 서로 자신을 내세우며, 사람과 사물은 불꽃의 찬란함에 묻힌 것처럼 보인다. 황홀경이 그 날 그 날의 정신이다 ; 그러나 이것은 수명이 짧다. 이것은 얼마 안 가서 그 정점에 도달한다. 사회는 이 질풍노도의 시기의 결과를 냉정하게 자기 것으로 하기까지 기나긴 회한의 시기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반대로 프롤레타리아 혁명, 즉 19세기의 혁명은 항상 자기비판을 행하고, 진행 도중에 반복해서 걸음을 멈춘다. 그 임무를 다시 수행하기 위해서, 완수된 것처럼 보이는 것들로도 다시 되돌아온다. 처음 시도된 것의 불완전함, 허약함, 빈약함을 가차 없이 철저하게 비웃는다. 또한 이 혁명은 마치 자신의 상대를 땅에다 메다꽂아, 그 상대가 땅에서 새로운 힘을 흡수하여 더욱 거대해져서 자신에게 대항하도록 만드는 듯하다. 이 혁명은 언제나, 자신의 목표가 너무나 거대하다는 것에 놀라 거듭 뒤로 물러난다. 그러다가 마침내 어떠한 반전도 있을 수 없는 상황이 창출되어 관계 자체가 다음과 같이 외치게 되면 이러한 물러섬은 끝나게 된다 :

    여기가 로두스다. 여기서 뛰어라

    여기 장미가 있다. 여기서 춤 춰라! (맑스,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1852)

     

    이러한 끊임없는 운동과 지속적인 자기비판이라는 기초 위에,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코뮤니즘을 향한 험난한 길을 걸어간다. 사실상, 코뮤니스트 혁명은 하나의 경제적 과정에서 그 최절정이 아니라, 오히려 경제적 사회적 변혁을 위한 정치적 수준에서의 전제조건이다. 또한 코뮤니스트 혁명은 옛 사회를 변혁하는 모든 과정을 위한 출발점이다. 과거에는, 계급의 경제적 권력과 그 계급이 사회관계의 새로운 시스템을 강제하는 능력은 실질적으로 같은 의미였다. 사회적 진보의 체화로서, 설득이나 힘에 의해 사회에 부과되는 새로운 사회구조는, 그 혁명 계급의 특정한 경제적 이해관계 속에서 그 정당성을 찾았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중세 봉건 사회가 부르주아지에 의해 파괴되었는지를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15세기부터 16세기까지, 거대한 부르주아 가문들은, 특히 남부 유럽에서, 무역과 상업의 명백한 주인이었다. 대지와 바다를 넘나드는 무역로를 따라서 금속과 직물, 향신료의 끊임없는 파도가 흘러들어왔다. … 황금이 새로운 무역의 중심지를 연결하는 무역로에 그리고 많은 도시에 흘러넘쳤다. 미술, 과학, 문학, 그리고 지식이 번영했다. 과학과 기술의 발견이 산업 도시처럼 증가했다. 머지않아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발표했다. 인간의 이해에 있어서 놀라울 정도의 진보도 일어났다. 어디든 속도와 정확성이 필요하다는 점이 명확했고, 산업 생산과 관련해서 뿐만 아니라 금융과 상업 문제에 있어서도 특히 그러했다. 한 사회 계급이 사회를 지배하고 세계를 정복하는 과정에 있었다. 이를 위해, 이 계급은 하나의 본질적인 힘, 즉 금융과 돈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부르주아지는 중세 귀족정치의 수중에 남아있던 정치권력에 직접적으로 도전하지 않고서도 그들 자신의 법을 사회에 강제했다.

     

    “중세 귀족세력에 대항한 부르주아지의 투쟁은 농촌에 대한 도시의 투쟁이었으며, 토지 재산에 대한 산업 재산의 투쟁이었으며, 자연경제에 대한 화폐경제의 투쟁이었다. 이 투쟁에서 부르주아지의 결정적인 무기는 그들의 경제적 권력이었고, 이것은 산업의 발전 - 첫 번째로 수공업, 그 다음 단계로 증가하는 메뉴팩쳐, 그리고 상업의 확장을 통해 - 과 더불어 끊임없이 증가해 온 것이었다. 이 모든 투쟁 동안, 정치적인 힘은 귀족세력의 편에 있었다.” (엥겔스,『반뒤링론』)

     

    자본주의에서 코뮤니즘으로의 이행을 위해서, 모든 착취 형태의 파괴를 위해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이런 종류의 경제적 권력을 갖지 않는다. 투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돈, 재산, 또는 산업 권력을 갖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권력을 해체하고, 코뮤니즘으로 점차적으로 이행해 갈 수 있는 어떤 경제적 권력도 없다. 자본주의의 사회관계가 지배하는 일반적인 틀 속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노동의 도구, 기계, 또는 심지어 공장 전체를 소유함으로써 대체 어떤 물질적 권력을 얻을 수 있는가? 자본주의적 틀 안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생산 수단이나 그 결실을 부분적으로라도 소유한다는 발상은 객관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것이며, 덫이며, 신비화이다. 오직 폭력적이고 세계적인 혁명만이 생산수단과 그 결실의 집단적 전유를 위한 기초를 제공할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어떤 특정한 경제적 이해관계나 소유형식에 기반 하지 않는 만큼, 새로운 종류의 착취 사회를 만드는 것 따위를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역사에서 마지막으로 착취 받는 계급으로서, “잃을 것이라고는 오직 그 족쇄뿐”인 바로 그 계급으로서, 프롤레타리아트는, 객관적으로 착취가 없는 사회, 계급이 없는 사회의 건설로 나아갈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혁명 후에도, 정치적 권력을 쟁취한 후에도 착취 받는 계급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이러한 권력 쟁취 -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실현 - 와 코뮤니즘 사이에서는 일종의 이행기가 필요할 것이다. 이 시기에 프롤레타리아트는 전 사회를 통해 다른 사회 계급을 생산적 노동에 통합함으로써 자신의 조건을 일반화시켜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회 변혁 없이, 계급의 이러한 점진적인 해체 없이는, 프롤레타리아트는 심지어 세계적으로 정치적 혁명이 일어난 이후에도 여전히 ‘착취받는’ 계급 (다른 사회 계층들의 기생적 소비를 위한 잉여 가치를 생산하는)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매우 자주 다음과 같은 질문이 코뮤니스트 혁명과 관련하여 제기된다 : “일단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잡으면 (복수를 위해) 또 다른 사회 계급을 착취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 러시아에서 일어난 일을 보라!” … 또는 “아무리 최선의 의도를 지녔다 해도 권력은 부패 한다” 등등. 이러한 질문이 제기되는 그 방식은 그들의 잘못된 추론을 드러낸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착취 받는 계급이자 혁명적인 계급이라는 본질을 이해할 능력이 없다. 그들은 다음을 설명할 수 없다 :

     

    · 계급 억압을 할 수 있는 유일한 토대인 경제적 권력을 위한 어떤 물질적 토대도 노동자계급에게는 없다는 점

    · 생산력의 계속적인 발전의 유일한 기초로서 계급 없는 사회가 이뤄질 필요성과 객관적 가능성

     

    이러한 것들을 볼 수 없는 이들은 매우 쉽게 그러한 진부한 의문에 빠지는데, 그것은 사실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의 유지를 위한 변명과 자기합리화이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서 특징적인 이러한 근시안은, 혁명이 일어난 후 노동자계급의 일부분이 나머지를 착취하기 시작한다면 (모든 노동자계급이 그 자신을 착취한다는 것을 상상하기만 해도 우스꽝스런 일이 될 것이다), 이는 혁명의 후퇴를 의미하고 자본주의의 재등장을 의미할 뿐임을 보지 못한다. “착취하는 노동자”는 실제적이고 객관적인 의미에서, (새로운 계급이 아니라) 부르주아지의 대리인으로 되어버린 것에 불과할 터이다. 혁명과 자본주의의 파괴는 오직 지연될 뿐이다.

     

    그러므로 세계적 코뮤니스트 혁명의 승리는 그 자체로 결정론적이지도 않으며, 코뮤니즘의 승리를 절대적으로 보장하지도 않는다. 그 이행기 동안, 자본주의 사회로의 후퇴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한 후퇴 가능성에 대항하여 투쟁하기 위해서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엄청난 노력을 다해 그 자신의 의식과 연대를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기 때문에, 이 투쟁을 위해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제한된 수의 무기만이 유용하다. 무엇보다도,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옛 부르주아 권력의 어떤 잔재도 용인할 수 없음은 명확하다. 오히려 옛 부르주아 권력의 잔재들은 이행기동안 점진적으로 분해되고 파괴되어 사라져야 할 것이다. 과거에는 이렇게 과거의 제도와 기구를 깨끗하게 철폐시키는 것이 필수적이진 않았다.

     

    부르주아 혁명은 많은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 구조들 뿐만 아니라, 사고와 행동의 방식들 …의 전복을 포함했다. 그러나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와 이 착취를 강제하는 기구라는, 자본주의 이전 사회의 근본적 토대까지는 아니었다. 이단 심문의 도끼는 길로틴의 ‘민주적’ 칼날로 대체되었다. 중세의 노예 상태로부터 미래에 착취당할 계급을 ‘해방시킨’ 우리의 새로운 주인은 구체제의 ‘덜 공격적인’ 측면, 중세 국가의 억압적인 기구와 같은 것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그들은 간단히 이 기구를 근대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적용했다. 경찰, 공무원, 검찰 … 들은 그들의 제복을 바꿔 입었다. 사색가, 선생, 철학자 등은 그들의 학설을 바꿨다. 특정 경우에는, 20세기가 시작했을 때의 독일과 러시아처럼, 부르주아의 경제적 권력은 귀족, 귀공자, 제국의 장교와 행정 관료, 귀족, 왕자와 황제 등의 토지와 공존할 수 있었다.

     

    이것은 단순히 한 억압적 사회가 다른 억압적 사회로 바뀐 것에 불과했기 때문에, 부르주아지는 이전의 억압적인 중세적 권력 구조를 이용할 수 있었다. 실제로 그것은 부르주아 경제적 권력을 유지하는데 정말 필수적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종류 중 어떤 것도 프롤레타리아트에겐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오직 부르주아 국가의 모든 측면을 사전에 파괴한 그 기반 위에서만 지배적인 계급으로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리코뮨의 경험은 프롤레타리아트가 단순히 현존하는 국가를 전복시켜서만은 안 되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파괴해야만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그러므로 반드시 코뮤니스트 사회의 본질에 어울리는 투쟁과 사회 변혁의 무기를 만들어야 한다. 혁명 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의 조직 양식은, 사회 혁명의 본질에 조응해야 하고 프롤레타리아트가 주도할 사회의 새로운 형식의 본질에 조응해야 한다.

     

    “이러한 전유는 더욱이 그것이 달성되어야 하는 방식에 의해서 결정된다. 전유는, 오직 프롤레타리아트의 성격상 그 자체가 다시 하나의 보편적인 연합일 수밖에 없는 일종의 연합에 의해 그리고 혁명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혁명 속에서 한편으로 지금까지의 생산 및 교류에서, 그리고 사회적 편제에 있어서 이전의 양식의 권력이 전복되고, 다른 한편으로 그 속에서 혁명 완수에 불가결한 프롤레타리아트의 보편적 성격과 에너지가 발전한다. 더욱이 그러한 혁명 속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지금까지의 자신의 사회적 지위로 인해 아직 그에게 남아 있던 모든 것을 벗어 던지게 된다. ”(맑스, 『독일 이데올로기』)

     

    노동자계급의 집단적 조직화, 계급연대, 혁명적 의식의 성장, 명확한 전망과 지칠 줄 모르는 행동, 눈앞에 놓인 거대한 의무에 대해 전체 노동자계급의 창조적인 참여 … 이 모든 것은 혁명, 권력 장악, 그리고 코뮤니즘의 비옥한 토양이다.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은, 집단적이며 폭력적인 과정이라는 점 외에도, 무엇보다도 계급의식의 발전에 달려있다.

     

    과거에는 객관적인 조건이, 인간의 의지와 의식보다 훨씬 큰 역할을 했다. 다른 생산 양식의 계승은 어느 정도 인간과 사회 계급의 ‘머리 위에서’ 발생했다. 생산력의 불충분한 발전으로 인해, 혁명 계급은 자동적이고, 신비스러우며, 변치 않는 것 같은 현실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역사의 원동력은 자연적 힘으로서 나타났고, 그 힘은 보이지 않으며, 폭력적이고, 제멋대로이며, 제어되지 않는 그러한 것처럼 보였다.

     

    “코뮤니즘은, 그것이 지금까지의 모든 생산 관계 및 교류 관계를 변혁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모든 운동과 구별된다. 또한 그것은 최초로 의식적으로 모든 자연적인 전제를 지금까지 존재하는 인간의 창조물로서 간주하고, 그 전제에서 자연적이라는 성격을 벗겨내며, 그 전제들을 연합된 개인들의 힘에 복속시킨다.”(맑스, 『독일 이데올로기』)

     

    그러므로 코뮤니즘과 코뮤니즘을 향한 진행은, 다시 말해, 혁명은 같은 과정의 일부이며, 같은 문제를 제기한다. 이 운동의 각각의 특정한 단계는(그 단계는, 각각 다른 단계와 고립되어 있다고 할 수 없다), 이미 최종적 목표의 특징적 성격을 포함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만약 코뮤니즘이 인간 필요를 위한 생산을 의식적으로 조직함을 의미한다면, 코뮤니즘에 앞선 사회 변혁과 혁명은, 그 스스로 의식적인 행위일 수밖에 없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그러므로 반드시 편견 없이 현실을 이해하여야만 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최초의 계급이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혁명적 계급은 그 이전의 사회 질서에 비해 진보적인 사회 질서를 위해 투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회질서는 새로운 착취의 형식에 기반하고 있었다. 투쟁을 통해 얻어진 이 계급의 의식은 그들의 착취를 정당화하거나 은폐해야 했기 때문에 그저 신비화된 의식일 뿐이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투쟁은 새로운 형태의 착취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모든 착취의 형식으로부터 해방하는 것을 지향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프롤레타리아 계급 의식은 진정으로 과학적인 방법으로 사회 현실을 파악할 수 있는 최초의 의식이다.

     

    확실히, 노동자계급 의식의 발전은 완결된 과정이 아니다. 노동자계급의 최초의 투쟁의 ‘자생적’ 성과는 말할 것도 없이 더 미완적이다. 그 계급의식은 물질적 환경의 압력, 계급의 역사적 경험 아래에서 차츰 발전하며, 성장과 풍부화의 지속적 과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비록 계급의식의 발전이 ‘완전한’ 수준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 맞다 하더라도, 이는 혁명적 계급의식 없이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자생주의나 자발주의, 그 어느 것도 혁명의 토대가 될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권력 쟁취는 그 계급이 자신의 ‘역사적 임무’를 완전히 의식하고 있을 것을 요구한다. 요구되는 의식의 수준을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뮤니즘과 혁명의 필요에 상응해야만 한다. 더욱이, 계급의식의 발전은 집단적인 과정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발전은 계급의 객관적인 조건과 주체적인 능력, 이 두 가지로부터 비롯되는 상이한 요소들이 결합한 산물이다

     

    국제코뮤니스트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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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9호] 코뮤니즘(공산주의)이란 무엇인가? Ⅰ

코뮤니즘(공산주의)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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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에 정확하게 대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그것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압력이 항상적(恒常的)으로 존재하기 때문에미래 사회를 객관적으로 묘사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목적은 자본주의가 영원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그래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압력은 코뮤니즘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정의하려는 모든 시도를 단절하고 훼손한다.

 

많은 노동자들에게 코뮤니즘은 그래서 러시아중국쿠바 등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에서 볼 수 있었던 (국가)자본주의와 군사화된 노동의 천국으로 비친다그러나 이와 더불어코뮤니즘의 본질 자체로 인해서 코뮤니즘을 자세하고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코뮤니즘이란 우리에게 있어서 조성되어야 할 하나의 상태가 아니며혹은 현실이 따라가야 할 하나의 이상도 아니다우리는 코뮤니즘을 현재의 상태를 폐기해 나가는 현실의 운동이라 부른다.”(맑스,독일 이데올로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이것은 코뮤니스트 사회가 소수의 계몽된’ 사람들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추상적인 목표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헤겔(19세기 초독일의 철학자로 맑스는 그에게서 변증법을 도출했다)의 개념과는 대조적으로역사는 관념(인간의 관념코뮤니즘의 관념)의 진보적 실현이 아니다코뮤니즘은 인류의 목표로서 기능하는 정신적인 창조물이나 환상이 아니다코뮤니스트 사회는 실재적이고 인간적이며객관적이고 역사적인 신기원이다이것은 구()사회에 내재된 모순으로부터 그리고 그 사회 발전의 필수적인 귀결의 하나로서 출현한다.

 

그러나 코뮤니즘이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비록 코뮤니스트 사회가 자본주의에 내재된 경제적사회적 모순의 결과이자 실재적이고 객관적인 조건의 산물이라 할지라도그것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실천적이고 집단적이며의식적인 창조물이다역사상 최초로 하나의 사회 계급이 그들의 운명을 통제할 수 있다그러나 그것은 오직 조직화되고 의식적인 방법으로만 가능하다이것이 코뮤니즘이 지적인 계획도 아니며맹목적이고 기계적인 필연성도 아닌 이유다코뮤니즘은 인류 공동체가 이전 사회관계의 폭력적 파괴에 뒤이어 구세계를 의식적이고 점진적으로 변혁시킨 결과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코뮤니즘을 향한 현실의 운동을 지배하는 주체적이고 객관적인 조건은오늘날 존재하는 조건의 산물이다일단 코뮤니즘이 역사적인 측면에서 하나의 가능성이 되고 나면그것의 실현은 주체적 발전다시 말해 현 시대의 의식 발전에 달려있다왜냐하면 혁명 그 자체도 코뮤니즘과 마찬가지로반드시 의식적인 정치 행동의 형식을 취해야 하고그 성공 여부가 프롤레타리아트가 획득한 의식과 조직화의 수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바로 이러한 기초 위에서 인류 공동체는 단지 객관적인 가능성이 아니라 현실이 될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코뮤니스트 사회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면서도코뮤니스트 혁명의 주요 국면과 혁명이 지향해야 하는 최종 목표를 정의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코뮤니스트 혁명은 오직 스스로를 의식하고 있는 운동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코뮤니즘에 의해 확립되는 새로운 사회관계의 특징 자체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의식과 조직양식이 발전하는 방식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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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즘의 본질

 

코뮤니즘은 유토피아라든가추상적인 이상향이 아니기 때문에그 뿌리를 이전 사회에 두고 있다코뮤니즘의 가능성과 코뮤니즘을 이루기 위한 객관적인 조건은 자본주의 자체의 모순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를 전복하려는 혁명적 계급의 정치적 역량이 두 가지로부터 나온다미래 사회의 자양이 되는 것은생산력의 발전 정도와프롤레타리아트에게 구체화된 사회관계의 본질두 가지 모두이다코뮤니즘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객관적 필요성이 되는 시기는 오직생산력의 발전이 일정한 수준에 이르렀을 때생산력의 계속된 발전과 자본주의의 생산 관계 사이의 모순이 발전함에 따라 이전 사회가 더는 발전할 가능성이 없을 때이다.

 

사회가 모든 생산 수단의 통제를 장악하는 것은 이것이 일어날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이 존재할 때에야 비로소 가능해지고역사적 필요성으로 될 수 있다다른 모든 사회적 진보와 마찬가지로 그것은계급이 존재함이 정의나 평등 등등에 모순된다는 통찰이 얻어진다고 해서이러한 계급을 폐지하겠다는 단순한 의지가 있다고 해서 실행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일정한 새로운 경제적 조건에 의해서만 실행 가능한 것으로 된다.” (엥겔스반뒤링론1894)

 

이러한 새로운 객관적 조건은자본과 노동 사이의 구별을 철폐하고 자본과 임금 체계상품 생산그리고 모든 민족적이며 계급적인 분리를 철폐할 수 있는 그러한 사회관계만이생산력의 진보적 발전을 허용하고 인류의 현재 필요에 대응하게 될 사회관계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것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

 

 · 코뮤니즘은 계급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어떤 종류의 개인적집단적 소유도 없는 사회여야만 한다자본주의가 이뤄놓은 생산의 사회화의 유일한 최절정은 사회 전체에 의한생산수단의 사회적인 몰수이다오직 계급 특권과 사적인 몰수의 철폐만이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사회관계의 자본주의적 성격 사이의 현존하는 모순을 극복할 수 있다모든 생산력과 생산수단의 사회적 몰수는 오직경제적으로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으면서 하나의 생산적인 집단으로서만 기능하는 피착취 계급프롤레타리아트만이 수행할 수 있다.

 

  · 코뮤니스트 사회는 그러므로 결핍의 철폐와 인류의 필요를 위한 생산에 근거한다코뮤니즘은 풍요의 사회이며이 사회는 인류의 다양한 필요를 충족시켜줄 것이다생산력인문학기술과 지식의 수준을 통해서 인간은 보이지 않는 경제적 힘의 지배로부터 해방될 것이다역사상 처음으로인간은 자신의 삶과 재생산을 결정짓는 조건에 대한 통제력을 의식적으로 획득함으로써, “필요가 지배하는 시대로부터 자유가 넘치는 시대로” 나아갈 것이다.

 

인간의 필요를 위한 생산은인류의 해방은 오직 세계적 규모로 그리고 경제적 사회적 삶의 모든 측면에서 혁명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그러므로 코뮤니즘은 가치 법칙을 철폐한다모든 인간에 의해 모든 수준에서 사회화되고 계획되는 코뮤니스트 생산은 오로지 사용가치의 생산에만 기반하며그 사용가치의 사회화된 직접적 분배는 교환시장화폐(등을 배제한다.

 

 ·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 사회경제적 경쟁과 경제적 무질서의 사회그러므로 개개인과 계급이 서로 충돌하고 경쟁하는 사회로부터인류는 코뮤니즘 아래에서 인류 공동체가 지배하는 사회로 진입한다.

 

이 공동체에서는하나의 계급이 다른 계급을 지배하는 체제를 유지하는 정치권력의 모든 형식(정부국가경찰 등)은 착취와 계급 분리가 사라짐과 동시에 사라질 것이다통치권들의 존재는다시 말해 인간성과 인간의 창조성을 억압하는 모든 방식의 존재는 사물의 단순한 관리,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에게 자리를 내줄 것이다.

 

코뮤니즘의 이러한 특징은 최소한의 윤곽에 지나지 않는다이를 넘어서더 서술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광범위한 일반화에 국한된다더구나이러한 간단한 묘사 속에는 인간관계와 관련된 새로운 삶의 방식의 결과들이 다루어지지 않았다또한 사회 내부의 분리와 차별소외인간 사이의 세력 관계 등을 철폐가 담고 있는 의미도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심지어 이렇게 대략적인 개괄을 통해서도 자본주의 사회와 이전에 있었던 모든 사회들과 미래 세계 사이의 엄청난 차이를 볼 수 있다.

 

착취가 없는 사회우리의 필요와 욕구에 따라 살 수 있는 곳정신노동과 육체노동 사이의 분리가 없는 곳자유의 의미가 자신의 노동력을 팔 수 있는 자유 이상을 의미하는 곳놀랄만하지 않은가!

 

비록 이렇게 인류가 만들어 가야할 거대한 도약의 자세한 부분까지 생각할 수는 없을 지라도인류의 역사상 아직까지 이와 같은 종류의 질적 도약을 위한 필요성은 없었다는 점이것 하나는 명확하다.

 

이 발언은 양날의 칼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음이 분명하다이런 종류의 도약은 오직 한 사회 계급이 자신의 역사적 과업을 완벽하게 의식하고 있을 때야 비로소 성취될 수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이 의식 수준을 성취할 수 있는 계급인 노동자계급은 가장 극단적인 박탈가장 사나운 착취영속적인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압력에 종속되어 있는 바로 그 계급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가 이전의 모든 사회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 이르도록 하는 코뮤니즘의 모든 특징 그 자체는 프롤레타리아트 존재의 취약함궁핍그리고 비인간성에 달려있다.

 

사회 존재의 모든 비인간성이 프롤레타리아의 존재 조건에 집중된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노동자계급은 현재 그 자신의 상황에 집중되어 있는 사회의 모든 비인간적 측면을 극복하지 않고는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없다.”(맑스엥겔스신성 가족, 1844)

 

착취당하는 계급으로서 프롤레타리아트의 바로 그 입장 때문에 프롤레타리아트는 모든 사회를 해방시키고또한 계급이나 착취 없는 사회를 만들도록 강제되는 것이다.

 

사회 내부에서 어떤 경제적 권력도 소유하지 않고생산의 지점에서 착취 받는 프롤레타리아트는그 자신의 해방을 위해서 오직 스스로에게만 기대할 수 있다그들은 자신의 연대와자신의 의식으로써만 자본주의에 반대할 수 있다이 두 무기는 그 자체가 미래 사회의 특징적인 원칙의 체화이다.

 

그러나 이 사실은 마찬가지로 부르주아 사회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반대가 매우 취약하고 깨지기 쉽다는 것을 의미한다프롤레타리아는 부르주아지 사회와 대결할 때 기반으로 삼을 수 있는 경제적 특권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그 해방을 위한 최종적 투쟁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계속적인 압력에 극단적으로 취약하다.

 

이것이 코뮤니즘을 향한 길이 필연적이지 못한 이유이다코뮤니즘은 길고 고통스러운 투쟁의 열매다이것이 어째서잃을 것은 그 쇠사슬뿐이며 쟁취할 것은 세계라는 프롤레타리아의 특별한 혁명적 역량에도 불구하고 혁명의 승리를 절대적으로 보장할 수 없는지그 발전에 대한 결정론적인 전망이 있을 수 없는지 이유다그러나 만약 이 새로운 역사적 신기원이 쟁취되지 못한다면인간성은 이름 없는 야만으로 전락하고아마도 그 최종적 파멸에까지 이를 것이다.

 

따라서 코뮤니즘을 향한 길계급투쟁은일련의 승리와 패배로서일보 후퇴와 그에 뒤이은 새로운 승리라는 패턴의 연속으로서 나타난다이것은 의지와 의식 사이의 긴장끊임없는 재평가와 자기비판 사이의 긴장이라는 형태를 취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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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9호] 마트 계산대에서

      마트 계산대에서

 

     무겁고 긴 발을 끌고 들어와

시간의 목을 쥐고 걷듯이 가게를 한 바퀴 돌고

마침내 천 원짜리 아이스티를 한개 갖다 놓고

꼭 다문 지갑을 열어

보풀이 인 고지서들을 주섬주섬 꺼내놓다가

지갑의 바닥엔 바닥뿐임을 확인하고는

다시 주워 담는 동안

여기저기 삐져나온 살들 숨쉬며

오래 묵은 번뇌를 흘리고

퉁퉁한 큰 손이 작은 호주머니를 몇 번 파더니

우물 밑처럼 깊은 곳에서 건져 올린 건

먼지단추돌멩이그리고 수많은 주름을 가진

지전 한 장!

 

다시 먼지들을 주머니 깊이 묻어두고

두 손을 받쳐 아이스티를 가슴에 품고

느릿느릿 무겁고 긴 발을 끌고 환한 세상으로

나가시는 기나 긴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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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픈 대문짝 

 

대문짝에 폐업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써 붙인 가게

그의 슬픔도 대문짝만했을 것이다

절을 한번 할 때마다 시를 한편씩 쓰는 마음으로

백팔 배를 하고,

천팔십 배를 하고,

삼천 배를 하며 하루하루를 살았을 것이다

참새처럼 종종 뛰며

똥 싸고 해탈할 시간도 없이

뱃속이 사리로 가득 찰 때까지

친구도 끊고

술도 끊고

죽기 살기로 매달렸을 것이다

희망과 놀람을 거쳐 오기와 끈기,

다음은 겸허와 근면이었으나,

허무에 와서 무릎이 꺾인 그는

열망이 그를 다치게 했다는 걸 깨달았다.

폐업을 써 붙이면서

누군가 다시 이 문을 열고

똥 싸고 해탈할 시간도 없이 살지 않기를

잠시 기도했지만

절 한 번에 시를 한편씩 쓰는 마음으로

매일 삼천 배를 하는 정성 가지고는

이 문짝 안에서 성공할 수 없으리라고

대문짝은

폐업을 덧바르면서

자꾸 얼굴이 두꺼워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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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박상화 詩

     

     

    <저자 소개>

     

    박상화 朴橡樺

    (필명 상화橡樺는 상수리나무와 자작나무 곁에서 사는 사람이란 뜻으로 지음)

     

    1968년 서울생.

    뿌림글 동인.

    동인시집 <거대한 뿌리>/2000

    해방글터 동인.

    동인시집 제1집 <땅끝에서 부르는 해방노래>/ 문예미학사/ 2001

    2집 <다시 중심으로>/ 삶이보이는창/ 2003

    3집 <하청노동자 전태일>/ 풀무질/ 2005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음
     

    #박상화 시인의 첫 시집 『동태』가 출간되었습니다.

    #코뮤니스트는 박상화 시인의 작품 게재에 감사드리며, 첫 시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응원합니다.

     

    #시집_동태에 대한 코뮤니스트 독자-지지자들의 많은 구독과 관심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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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9호] 동태

    동태

 

동태는 강자였다 콘크리트 바닥에 메다꽂아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동태를 다루려면 도끼 같은 칼이어야만 했다

아름드리나무 밑둥을 통째로 자른 도마여야 했다

실패하면 손가락 하나정도는 각오해야 했다

얼음 배긴 것들은 힘이 세다

물렁물렁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한때 명태였을지라도,

몰려다니지 않으면 살지 못하던 겁쟁이였더래도

뜬 눈 감지 못하는 동태가 된 지금은

다르다

길바닥에 놓여진 어머니의 삶을

단속반원이 걷어차는 순간

그 놈 머리통을 시원하게 후려갈긴 건

단연 동태였다.

 

- 박상화 詩

 

 

<저자 소개>

 

박상화 朴橡樺

(필명 상화橡樺는 상수리나무와 자작나무 곁에서 사는 사람이란 뜻으로 지음)

 

1968년 서울생.

뿌림글 동인.

동인시집 <거대한 뿌리>/2000

해방글터 동인.

동인시집 제1집 <땅끝에서 부르는 해방노래>/ 문예미학사/ 2001

2집 <다시 중심으로>/ 삶이보이는창/ 2003

3집 <하청노동자 전태일>/ 풀무질/ 2005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음
 

#박상화 시인의 첫 시집 『동태』가 출간되었습니다.

#코뮤니스트는 박상화 시인의 작품 게재에 감사드리며, 첫 시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응원합니다.

 

#시집_동태에 대한 코뮤니스트 독자-지지자들의 많은 구독과 관심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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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화 시인의 첫 시집 『동태』가 <푸른사상 시선 105>로 출간되었다. 시인의 주제의식과 작품들의 표현력은 콘크리트 바닥에 메다꽂아도 끄떡없는 동태처럼 단단하다. 우리 사회의 불의와 모순을 후려갈기는 통쾌함과 소외된 생명들이 한데 모여 숲을 이루려는 연대의식은 그지없이 소중하고도 아름답다. 2019년 8월 2일 간행.

 

■ 시인 소개

1968년 서울, 첫눈 펑펑 오던 날 태어났다. 본명은 흥열, 호는 위야(爲野), 필명은 상화.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다. ‘뿌림글’ 동인 시집 『거대한 뿌리』, ‘해방글터’ 동인 시집 『땅끝에서 부르는 해방 노래』, 『다시 중심으로』, 『하청 노동자 전태일』 발간에 함께했다.      이메일 getngomart@gmail.com

 

■ 시인의 말

언젠가 수국을 만난 적이 있다. 푸르지도 분홍빛이지도 희지도 않았다. 갈빛으로 꼿꼿이 마른, 목화된 꽃. 꽃이었으나 말라 나무가 돼버린 꽃. 꽃이 피어난 그 순간 그대로 시간을 멈춰버린. 세상에. 아무도 멈출 수 없던 시간, 그 시간을 멈춰버린 꽃이었다. 사랑하였으므로 피었고, 핀 그대로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멈춰버린 꽃이었다. 모든 시간은 순간이다. 너의 화양연화는 어쩌면, 힘든 삶을 버티고 말라가면서도 네가 꽃이었을 때 그 모습을 그대로 버티고 있는 고집은 아니었을까. 불안해하면서도 고집을 부리고 있다면 넌 잘하고 있는 거다. 잊지 말길. 지지 말길

 

■ 추천의 글

그가 미국으로 홀연히 떠난 지도 참 오래되었다. 그는 내게 <알함브라의 궁전>으로 기억된다. 국내 처음으로 이주 노동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았던 책, 이란주의 『말해요. 찬드라』 홍보 배너에 그가 배경 음악으로 넣어준 곡이다. 그는 문예지들이 아직 종이 권력 눈치를 보고 있을 때 노동자들의 딱딱한 시를 멋지게 디자인해 사이버 벽시 운동을 처음 만들던 진취적인 벗이었다. 오랜 시간을 지나 그가 내게“ 서로 어깨 걸어 단단한 돌담…… 네가 버텨야 네 동료들도 무너지지 않는 걸” 다시 새기라 한다.“ 큰 나무가 되려면 삼백 번쯤 헐벗어야 하고/하늘을 날려면 뼈를 비워야” 하는 삶의 투명한 고투와 비애를 사랑하라 한다. 꽃도 나무도 자신을 찢고 터트려 새로운 꽃과 열매를 내듯“ 아프지 않고 나아갈 길”은 없어“ 아픈 건 (비로소) 나아간다는 것”임을 명심하라 한다.태평양 건너 머나먼 곳까지 가서도 밀양, 강정, 구미 아사히글라스, 평택 쌍용차, 부산 생탁과 한진중공업 등 전국 노동자 민중 투쟁의 모든 현장에 함께해온 정의로운 자. 이제 와 고백이지만 나는 그의‘ 과학’보다 대책 없는, 그러나 금강석처럼 빛나고 단단하던‘ 순정’을 더 사랑했었다. 긴 이별의 시간 동안에도 그는 우리가 살며 끝내 간직해야 할 정치적 당파적 인간애적‘ 올바름’이 무엇인지를 시적 극한까지 밀고 나갔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 이젠 그만 아프길.“ 잎이 없어도/가지가 …… 없어도” 우뚝 선 겨울나무들의 아름다운 시의 집으로 나를 다시 초대해준 그가 오늘 몹시 그립다 . 

― 송경동(시인)

 

■ 작품 세계

새삼 시를 다시 생각한다. 시가 뭘까. 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기도 하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채워야 시가 되지만 비우지 않으면 사라진다. 한편으론 무겁고 한편으론 한없이 가볍다. 종잡을 수 없을 만큼 어지럽다. 마성이되 순정한 삶 아니면 헛것이다. 그런 점에서 시란, 순연한 통증들의 연속이다. 그런데도 시인들은 이 시라는 걸 붙들고 한 삶을 건너간다.

박상화 시인도 이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오랫동안 시를 앓고 있는 것 같다. 시를 넘겨받기 전까지 나는 박 시인을 전혀 알지 못했다. 이력을 보니 과거에 한 번쯤은 서로 맞닿았음직하나,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장면들은 없다. 따라서 현재까지는 시만이 그와의 유일한 소통 면이다. 그래서 참 자유롭다. 눈치 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의 시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 나를 뒤척이게 한다. (중략)

그의 말대로 혼자서는 숲을 이룰 수 없다. “큰 나무 혼자서도 안 되고/앞장선 나무 혼자서도 안 된다.” “차비가 없어서 농성장에 오지 못하는 나무”도 데려와야 하고, “밥을 굶고 연대하는 바위”도 초대해야 한다. “피켓을 든 작은 풀도 있”어야 하고, 먼 데서 함께 우는 새와 “공장에서 일하는 마음을 띄”우는 구름도 어우러져야 한다. 그래야 숲이다. 숲의 세상이다. 어디 이뿐일 것인가. “일자리 찾아가는 냇물들도 모여/함께 다 같이” 생명의 숨결 맞비벼야 진정한 삶의 숲일 것이다.

자, 그러니 이제 어쩌겠는가 하고 그가 내게 묻는다. 당연히 함께한다. 내 등 기꺼이 내어놓고 이땅의 분투를 해소하는 화쟁의 숲에 들겠다. 당신은 어떠신가. 사람으로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당신도 등을 내어주고 그와 함께 등의 시간에 올라타시라. 현대인들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아 보인다. 

 

―정우영(시인) 해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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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9호] 코뮤니스트 정치원칙 소개 5 :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와 코뮤니스트(공산주의) 사회

코뮤니스트 정치원칙 소개 5

 

이   유

 

사회주의를 꿈꾸고, 사회주의를 유행처럼 주장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추상적인 노동해방을 목표로 투쟁한다 해도 노동자계급의 자기 권력을 실현할 수 없습니다. 반재벌, 반자본주의 투쟁 또한 자본주의 타도 ㅡ노동자평의회 (국제적) 권력 쟁취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반드시 개량의 길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코뮤니스트(공산주의) 혁명을 목표로 조직(집단)적으로 투쟁하지 않고, 주장/연구/학습만 하는 것은 "사회주의 확산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주의/코뮤니스트 운동을 개인의 정치적 취향이나 취미생활로 전락시키기 때문입니다.

 

국가보안법을 이유로 또는 대중(반공)의식을 이유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강령에서 삭제하거나 다른 언어(의미)로 왜곡하는 것은 사회주의/코뮤니즘을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부르주아독재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이고,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자유민주주의) 보다 훨씬 우월하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사회주의 또는 노동자 국가로 불렸던 체제를 (국가) 자본주의, 당 독재 국가로 규정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당과 노동자계급(평의회)의 관계, 프롤레타리아 반(半)국가의 성격을 분명히 할 때 코뮤니스트 혁명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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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레타리아트 독재와 코뮤니스트(공산주의사회

 

노동자계급은 혁명계급이면서 낡은 체제에서의 피착취계급이기 때문에자신의 정치·경제적 해방을 위해서 의존할 수 있는 특권이나 경제적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또한자본주의(부르주아) 국가기구나 제도에 의존해서는 해방을 달성할 수 없다노동자계급은 다수의 집단적 힘과 의지를 관철해낼 수 있는 권력을 새롭게 창출하지 않고서는 노동의 경제적 해방을 이루어낼 수 없다부르주아계급의 독재는 프롤레타리아계급의 독재로부르주아 민주주의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로 대체되어야 한다따라서 노동자계급의 코뮤니즘(공산주의)을 위한 투쟁 앞에는낡은 생산관계의 지배가 새로운 것의 이해관계를 위해 파괴되는 과도기곧 낡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로부터 코뮤니즘으로 이행하는 과도기인 프롤레타리아트 독재가 불가피하게 선행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사회를 혁명적으로 변혁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전 세계에 걸쳐 노동자계급이 권력을 장악해야 하는데그것은 전 세계에 걸쳐 자본주의 국가기구를 완전히 파괴하는 것을 의미한다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새로운 노동자(프롤레타리아)국가의 계급적인 목적을 정치적으로 공공연하게 선언하는 체제이며경제적 변혁을 수행하기 위해 착취계급의 소유권을 몰수하고 사회화 부문을 점진적으로 전체 생산부문으로 넓혀 나가는 사회이다프롤레타리아계급 독재의 형식은 역사적으로 노동자평의회와 프롤레타리아트 총회의 연합으로 나타났다노동자평의회는 노동자계급 전체를 망라하여 조직될 것이고계급 안에서 선출되고 언제나 소환 가능한 직접민주주의에 기초한 평의회 체제에 의해 중앙화(집중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기간을 포함한 코뮤니스트혁명 과정에서 코뮤니스트(공산주의자)와 혁명당은 평의회 내부에서 활동하지만그들이 노동자계급 전체의 조직인 평의회를 대신할 수 없다혁명당은 코뮤니즘의 필요성을 깨달은 가장 의식적인 노동자계급을 재구성하고 전체 계급의식을 코뮤니스트 강령에 가깝도록 일반화시키는 역할을 맡는다따라서 혁명당은 권력을 갖는 것이 아니라 평의회 안에서 코뮤니스트 강령을 위해 활동하고 투쟁해야 한다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이른바 사회주의 체제로 거짓 선전되었던 국가의 당 독재와 같이 프롤레타리아계급에 대한 혁명당의 명령을 의미하지 않는다오직 노동자평의회프롤레타리아트 총회로 구성된 전체로서의 프롤레타리아계급만이 정치권력을 가진다.

 

이러한 자본주의로부터 코뮤니즘(공산주의)으로의 이행기인 프롤레타리아트 독재기간에도 비()착취계급과 계층은 여전히 존재하며아직 해소되지 않은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에 내부적인 계급투쟁이 계속 존재할 것이다프롤레타리아트 독재에서 아직생산수단은 전체로서 사회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노동자계급의 국가체제인 노동자평의회에 속할 수밖에 없다계급이 폐지되기 전까지 생산수단은 사회의 절대다수인 노동자계급이 독점할 것이다따라서 아직까지 전면적인 코뮤니스트 생산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여전히 사회는 계급으로 나누어진 사회이며부르주아계급을 대신한 지배계급인 노동자계급이 존재한다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노동자계급의 정치권력을 창출하고 그것을 부르주아 반혁명세력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수단이자코뮤니즘을 향한 경제적 변혁을 위한 수단이다소수 부르주아가 독점한 생산수단의 박탈은 고립된 개인집단이 아닌 노동자계급의 조직된 힘인 노동자평의회를 통해 전 사회적으로 이루어지며이렇게 조직된 힘이 노동자 반()국가의 기초를 형성할 것이다이렇듯 이행기동안 노동자계급은 사회의 유일한 혁명계급이기 때문에사회 계급이 노동자계급의 사회화된 부문으로 통합되어 점진적으로 소멸하면서 모든 사회계급이 폐지되고 국가 자체도 소멸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계급내부에서의 특정한 부문이나 그룹이 프롤레타리아트에 맞서는 어떤 종류의 폭력도 배제한다혁명의 과정에서 노동자계급의 손에 있는 수단으로서의 폭력은 자본주의와 그 국가를 파괴하기 위해그리고 내전 동안의 반혁명적 계급의 저항과 폭력에 반대하는 노동자계급의 승리를 보증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하다하지만 이것과 상관없는 노동자계급 내부의 폭력은코뮤니즘을 건설하는 데 어떤 건설적인 과업의 일부도 담당할 수 없다이러한 폭력은 노동자계급의 활동을 일탈시키고다른 노동 계층과의 관계를 왜곡시킨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로 대체한 사회다평의회 체제에서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가 최고로 꽃피어 언론회합집단 의사결정의 자유가 최대로 이루어진다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프롤레타리아계급의 권력 참여만이 코뮤니스트 강령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기반과 원동력을 줄 수 있다누구도 전체 노동자계급의 자주적 활동 없이 코뮤니즘(공산주의)을 만들 수 없고누구도 코뮤니즘을 미리 준비해서 노동자계급에게 넘겨줄 수 없다서로에 맞서 분열되지 않는 노동자계급의 집단적 실천과 의식만이 어떠한 오류라도 정정하면서 코뮤니즘을 향한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코뮤니스트 사회는 노동자계급의 혁명과 권력 장악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생겨난 보다 낮은 단계의 사회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이 단계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권리가 부여되는즉 각자의 사람에게 각자의 노동에 따라서 분배하는 사회’ 이다이 사회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사적 자본가를 소멸시킨 사회이며평등한 권리란 이런 사회와 노동자 사이에 적용되는 권리이다그리고 이러한 낮은 단계를 경과한 다음 단계는 코뮤니즘의 고유한 토대에만 의존하고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전제로 하여 코뮤니즘으로 지향하는 보다 높은’ 단계이다이 단계는 개인의 분업에 근거한 노예적 종속이 소멸하고이와 함께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대립이 소멸해야 가능하다이 단계는 노동이 단지 생존수단이 아니고 그 자체로 생명적 욕구가 되는 때이다모든 개인의 다면적 발전과 함께 생산력 발전이 모든 것을 풍족하게 하는 때이다, ‘능력에 따라서 일하고 필요에 따라서 분배하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보다 높은 코뮤니즘으로의 이행기에노동자평의회의 의식이 코뮤니스트에 가깝게 진화해야 하며동시에 혁명당도 스스로 프롤레타리아트화 되어 국가의 완전한 소멸에 이르는 것을 준비해야 한다.

 

원시 공산제를 제외하고 모든 초기 사회는 계급으로 분화된 계급사회였다또한 다른 모든 사회는 재산과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에 기반 했다하지만 코뮤니즘 사회는 계급 없는 사회이다역사에서 코뮤니즘 이전 사회는 인간의 필요에 따른 생산력의 불충분한 발전에 기초해 있었다그것은 희소성의 사회였다또한 과거의 모든 사회는 과거의 경제체제사회관계사상과 편견의 흔적을 지니고 있었다이것은 과거 사회가 사유재산과 다른 사람의 노동 착취에 기반 했다는 사실 때문이다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예제나 봉건사회가 남겨 놓은 사회관계와 사상과 편견들을 고스란히 유산으로 지니고 있었다하지만 코뮤니즘 사회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코뮤니즘은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사회적 낡은 유산을 전혀 갖지 않은 사회이다.

 

사유재산과 착취계급분열에 기초한 자본주의 생산은 가치법칙 및 시장과 화폐를 통한 분배와 소비에 종속됨으로써 경쟁과 무정부성을 벗어날 수 없었다코뮤니즘(공산주의)에서 가치법칙이 사라지며생산은 평의회 체제에 의해 사회화된다코뮤니즘은 전 지구적 사회이다국가적 경계와 분할은 사라지고 인간의 보편적 정체성과 창조성이 사회를 발전시킬 것이다코뮤니즘은 자유로운 사고를 억압하는 종교와 이데올로기낡은 전통과 윤리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다계급과 계급 적대가 사라지면 국가는 필요 없게 된다코뮤니즘 사회에서 국가는 소멸된다코뮤니즘은 국가 없는 사회다사회의 행정적 업무는 모든 구성원의 협력합의집단적 의사 결정에 의해 처리될 것이다따라서 코뮤니즘 사회에서 인간의 자유와 평등의 진정한 이상이 처음으로 실현된다.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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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9호] 제주의 난개발과 구조적 원인 -자본과 권력에 맞선 투쟁이야기-

<기고>

제주의 난개발과 구조적 원인 

자본과 권력에 맞선 투쟁이야기

노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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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난개발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차를 타고 조금만 나가보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포크레인이다평일주말 구분할 것 없이 쉬지 않고 포크레인은 작동되고 있다그 내용은 상,하수도관 공사도로 확장 공사, LNG가스관 매입 공사신축 건물 공사바다 매립 공사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다그만큼 제주의 풍경은 빠르게 변해 왔으며지금 필자가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제주도의 모습은 변해가고 있다더 정확하게는본래의 제주도의 모습이 상실되어 가고 있다.

 

 

필자가 느끼기에 제주시의 모습은 대도시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껴진다제주시에서 운전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교통체증 문제 역시 심각한 상태라는 것이다또한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최근 종종 올라오는 제주의 소식은 단연 쓰레기문제이다필자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제주의 발전제주의 눈물이라는 제목의 뉴스가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올라와 있다지난 3월에는 필리핀에 불법 쓰레기를 수출했던 것이 제주도 쓰레기였다는 사실이 밝혀져 제주지역 사회에 충격을 던져 주었다.

 

 

그렇다면 제주에 난개발이 일어나고 있는 구조적 원인은 무엇일까그리고 이런 난개발은 과연 제주도민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일까지금도 많이 늦었지만이제는 살펴봐야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또한제주 쓰레기 문제와 강정 해군기지 문제제주 제2공항 문제영리병원 문제비자림로 문제는 이슈는 다르지만 크게 보면 본질적으로 동일한 문제이다지금부터 그 이유를 살펴보자.

 

 

제주 난개발의 구조적 원인 >

 

1) 사회학적역사적인 측면

 

1948년 4월 3제주에서 4.3사건이 발생한다제주 4.3은 아직 이름을 찾지 못했다학살로 불러야할지항쟁으로 불러야할지 아직도 논쟁이 뜨거운 주제이다제주 4.3은 단순히 1948년에 일어났던 사건은 아니다. 1947년 3.1절 기념 제주도대회에서부터 1954년 한라산 금족령이 풀리기까지 7년에 걸쳐 일어난 사건이다제주 4.3사건이 일어날 당시 대통령은 이승만이었다이후 박정희 – 전두환 – 노태우에 이르기까지 군인에 의한 군사쿠테타가 두 번이나 일어났다서슬퍼런 군사 독재 시절제주 4.3은 입 밖으로 꺼내서는 안 될 주제였다게다가 피해자와 가해자가 한 마을에서 살아야했다는 점 역시 4.3을 이야기하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점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50년부터 제주도 개발 논의가 본격화되었지만전시 제주도개발계획은 정부가 비계획적비현실적으로 기획하였고 결국 현실화되지 못한 계획에 그쳤다.

 

1961년 박정희가 쿠테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쿠테타로 잡은 정권이라 정통성이 약했던 박정희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택했던 방법은 경제 성장이라는 기치를 대외적으로 내세운 것이었다그 결과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하게 된다이에 따라제주에서도 급격한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의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정부 주도의 관광개발의 일환으로 제주항이 개발되기 시작한다그리고 1963년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5.16도로가 개통된다이후 1973년 제주도 관광종합개발계획안이 확정되었다이 개발계획에 따라 중문관광단지 조성 1차 공사해수욕장 정비 등 관광지 개발제주국제공항과 제주항의 확장 및 카페리의 취항간선도로의 포장통신망의 확충 등 각종 기반시설의 확충과 정비가 이루어진다.

 

 

제주 4.3과 한국전쟁을 거친 이후 개발주의가 제주도를 휘감기 시작했고그것은 관광개발정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선전되었다.

 

2) 법적제도적 측면

 

1991년에는 제주도개발특별법이 제정·공포되었다이후 2002년 1월 26일 제주특별자치도 특별법은 제주국제자유도시 특별법으로 변경되어 공포되었다이후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한다. 2011년에 수립된 제2차 제주국제자유도시 종합계획에서는 계획의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제주특별자치도가 규제완화 등을 통하여 사람·상품·자본의 이동이 자유롭고 기업 활동의 편의가 최대한 보장되는 이상적 자유시장 경제모델을 구축함으로써 경쟁력 있는 국제자유도시로 발전하는데 정책방향과 지침을 제공한다.

 

1997년말 IMF 경제위기 이후 전사회적으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개방이 필수적이라는 신자유주의 담론과 이에 대한 노동 및 사회단체들의 반발로 인해 타협책으로 영토적 예외성이 허용되는 특구 정책이 추진되었다그 결과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에 제주국제자유도시경제자유구역 등 다양한 예외적 공간이 도입되었다또한제주국제자유도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현실에 직면한 국가와 지역 차원의 불가피한 생존전략으로 인식되었다. (이승욱조성찬박배균 제주국제자유도시신자유주의 예외공간그리고 개발자치도)

 

 

이것은 쉽게 말하면 자본가가 마음껏 제주도를 수탈해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을 의미한다또한 법으로 이를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요약하자면제주도가 신자유주의의 실험장으로 전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제주 4.3 이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군사주의와 개발주의가 제주 지역 사회 내에 깊숙이 개입하였고제주지역 공동체를 서서히 해체하기 시작했다개개인의 관계가 파편화되기 시작했고이에 대한 투쟁은 점점 더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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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개발에 대한 저항제주 시민들의 투쟁이야기 >

 

1) 제주 제2공항 반대 투쟁 (도청앞 천막촌 사람들)

 

 

2015년 11월 10갑작스럽게 국토부에서 성산에 제주공항 인프라 확충 사전타당성 용역 결과를 발표하면서 성산읍 부지에 제2공항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이에 대한 저항으로난산리 주민 김경배 씨가 무기한 단식에 돌입하기 시작했다제주 제2공항을 반대하는 시민들이 모여서 천막을 제주도청 맞은편에 치기 시작했다그리고 국토부와 원희룡 지사에게 제주 제2공항 기본계획 수립 용역을 중단하라는 요구를 계속해서 하고 있다.

 

이 투쟁은 제주도 민주주의의 회복이라는 지점과 난개발에 대한 저항이라는 지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도민들의 자기결정권 문제

 

 

우선제주 제2공항 사업추진은 제주도민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5년 11월 10일 국토부에서 사업을 발표할 때이미 결정을 내리고 발표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제주도민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이 바로 자기결정권문제이다도청앞 천막촌 사람들은 계속해서 원희룡 지사를 향해서 제주도민들의 의견을 귀담아 들으라고 얘기하고 있다제주도지사는 제주도민들의 의견을 귀담아 듣고이를 중앙정부 부처인 국토부에 전달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이는 자치권이 과연 누구에게 있나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제왕적 도지사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을 살펴보면 제주도지사에게 막강한 권한이 있음을 알 수 있다심지어 제주시장 역시 도지사 임명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그 권한은 막강하다고 볼 수 있다. 1월 8원희룡 지사는 제주도청으로 진입하는 계단에서 제2공항을 반대하는 시민들의 피켓과 문구를 발로 밟고 지나가는 만행을 저질렀다이 장면만 보더라도제주도민을 얼마나 무시하는지를 단번에 알 수 있다이런 제왕적 도지사를 견제할 수 있는 기관이나 사람이 없다는 측면에서 절망적이지만민주주의가 회복되어야 함을 계속해서 주장하는 측면에서 천막촌의 투쟁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2) 비자림로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시민모임

 

2018년 8갑작스럽게 송당리에 있는 비자림로의 나무들을 베어내기 시작함에 따라 이에 대응하는 모임인 비자림로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시민모임이 결성되었다비자림로 이슈가 전국적 이슈로 급부상함에 따라 공사는 중지되었다가지난 3월 공사가 재개되었다이에 대해 비자림로 시민모임은 시민 모니터링단을 구성하고공사를 감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비자림로의 핵심은 제주 제2공항 연계도로라는 점에 있다그리고 제주 제2공항 사업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도로부터 확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또한 필요 이상으로 환경이 훼손되고 있으며천미천 역시 훼손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새롭게 드러나는 사실들

 

 

중요한 것은 시민 모니터링을 통해 공사 진행 과정에 있어서의 문제점들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이다이 지점은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최근에는 투융자 심사논란이 일면서 공사를 진행하는 법적 근거가 부실하다는 내용이 보도되기도 하였다.

 

비자림로 공사 투쟁을 계기로 제주 지역 사회와 전국에 난개발의 문제점을 환기시키고 있다는 지점에서 비자림로 투쟁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3) 영리병원 반대 투쟁

 

며칠 전 원희룡 지사는 제주영리병원 허가를 취소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그러나 제주도지사는 개인 유튜브 방송을 통해 영리병원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드러냈다. “미래 먹거리 산업이 바로 그 단어이다원희룡 지사가 영리병원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중요한 단어이다이것은 영리병원을 오직 자본의 논리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사실은 영리병원 허가를 취소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정이다그런데 스스로 신의 한 수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자신의 결정 미화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공론조사 결과를 뒤집은 도지사

 

작년 12공론화 조사 결과 영리병원을 반대하는 결론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도지사가 이를 뒤엎는 사태가 벌어졌다이것이야말로 제주도내 민주주의가 완전히 망가져버린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도지사 스스로 약속을 어겼을 뿐만 아니라 제주도민을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라고 볼 수 있다이에 대해시민사회단체와 제주 시민들의 가열찬 투쟁으로 끝내 영리병원 허가 취소라는 결과를 얻게 되었다.

 

정리하며 >

 

제주에 산적해있는 문제들 중 쓰레기 문제강정 해군기지 문제제주 제2공항 문제비자림로 문제는 사실은 연결되어 있는 문제이다제주에서 4.3이라는 사건 이후로 군사주의와 개발주의는 끊임없이 제주도를 노려 왔으며현재는 개발과 성장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 뒤에는 권력과 자본이 숨어 있는 것이다사실은 제주 4.3은 제주 역사와 동떨어져 있는 사건이 아니고 제주 역사 1000년을 관통하는 긴 역사의 한 부분이다오랜 기간 동안 수탈과 착취피지배는 이어져 왔으며 그만큼 제주에서 사는 것은 어려웠다동시에 이에 대한 투쟁 역시 존재했지만이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지금 가장 표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난개발의 이면에는 이런 제주의 깊은 역사성이 숨어 있다.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제주의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있다제주도 민주주의 회복을 외치며 제주 난개발의 문제점들을 하나씩 밝혀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무차별적인 자본의 폭격이라는 점에서 제주 4.3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다그러나 시공간을 초월해 권력과 자본에 맞서 싸우는 이들은 아직 있다그것도 가장 변방인 제주에이들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그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편집자 주>

이 글은 본지의 요청으로 싣게 된 소중한 기고 글로 국제코뮤니스전망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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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2019년 _ 10호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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