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22/03

전쟁에 맞선 러시아 국제주의자 성명

전쟁에 맞선 크라스-국제노동자협회(KRAS-IWA) 성명

 

 

photo_2021-01-04_00-41-48.jpg

 

전쟁 반대! 국제노동자협회(IWA) 러시아 지부 성명

 

전쟁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일, 경고한 일, 믿고 싶지 않은 일,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지배 엘리트들은 세계 자본의 선동과 도발, 권력에 대한 탐욕, 노동자들로부터 훔친 수십억 달러로 부풀려진 치명적인 전투를 벌였다. 그들의 이익과 지배에 대한 갈망은 이제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피로 치른다.

 

첫 번째 공격은 더 강하고 약탈적이며 오만한 도적인 크렘린이 시작했다. 그러나 제국주의 분쟁에서 항상 일어나듯, 직접적인 원인 뒤에는 지독하게 역겨운 이유가 얽혀 있다. 그것은 가스 시장을 둘러싼 국제적인 투쟁이며, ‘위생’ 독재의 폭정과 ‘소비에트 이후 공간’의 분할과 재분배를 위한 구(舊)소련 국가들의 지배계급 투쟁으로부터 국민의 관심을 돌리려는 모든 국가 당국의 바람이다. 그리고 그것은 더 크고 세계적인 모순,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나토(NATO) 간 세계 지배를 위한 투쟁, 오래된 패권에 대한 도전과 크렘린의 ‘동생’을 전차에 고정시켰다. 오늘날 이러한 모순은 국지전을 일으킨다. 내일이면 그들은 제3차 세계 제국주의 전쟁으로 번질 거라고 위협한다.

 

‘휴머니스트’, 민족주의, 군국주의, 역사적... 등등 어떤 미사여구로 현재 갈등을 정당화하더라도 그 이면에는 정치, 경제, 군사적 권력을 가진 자들의 이익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 노동자, 연금수급자, 학생에게 그것은 고통과 피와 죽음만을 가져다줄 뿐이다. 평화로운 도시에 대한 폭격, 포격, 인명 살상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우리는 적대 행위의 즉각적인 중단과 전쟁 시작 이전에 존재했던 국경과 전선으로 모든 병력의 철수를 요구한다.

 

우리는 파병된 군인들에게 서로 총을 쏘지 말고, 더욱이 민간인에게 발포하지 말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파병된 군인들이 지휘관의 범죄 명령 수행을 집단으로 거부할 것을 촉구한다.

 

전쟁을 멈춰라!

 

총을 내려라!

 

우리는 전선 양쪽의 후방에 있는 사람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노동자들에게, 이 전쟁을 지지하거나 돕지 말고, 반대로 온 힘을 다해 저항할 것을 촉구한다!

 

참전하지 말자!

 

전쟁을 위해 우리 주머니에서 단 한 푼도 내주지 말자!

 

할 수 있다면 전쟁에 맞서 파업하라!

 

언젠가 (노동자들이 충분한 힘을 갖게 되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노동자들은 우리를 서로 적대하게 만든 모든 뻔뻔스러운 정치인과 과두정치인에게 모든 책임을 물을 것이다.

 

우리는 기억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노동자 사이에 전쟁은 없다!

 

계급 사이에 평화란 없다!

 

가정에 평화를 - 궁전에 전쟁을!

 

 

2022년 2월 26일

국제노동자협회(IWA) 러시아 지부

 

<출처>

https://iwa-ait.org/content/kras-iwa-against-war

 

 

 

 

러시아 국제주의자 성명에 대한 ICC의 소개

 

 

우리는 국제노동자협회(IWA)에 소속된 아나키스트 생디칼리스트 그룹 크라스(KRAS)가 발표한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성명을 게시한다. 우리는 러시아에서 전쟁에 반대하는 모든 시위가 러시아 국가에 의해 맹렬한 탄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명백히 국제주의적인 이 성명을 발표한 크라스 동지들의 용기와 확신에 경의를 표한다. 이 성명은 양 진영을 제국주의자로 비난하고 전쟁에 반대하는 노동계급 투쟁을 촉구한다.

 

물론 크라스 동지들과의 연대가 성명의 모든 내용에 동의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보기를 들어 '적대행위의 즉각적인 종식‘ 요구는 두 부르주아지 진영이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한 양보로 보인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침공과 폭격에서 철수하더라도 지난 8년 동안 해왔던 것처럼 낮은 수준에서 교전이 계속될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런 점에서 국제노동자협회 소속 세르비아 아나키스트 생디칼리스트 계획(the Anarcho-Syndicalist Initiative)의 성명은 부르주아지 일부가 퍼뜨리고 있는 평화주의적 환상을 더 명확하게 비난한다. 

 

"전쟁의 공포에 직면하면 실수하기 쉽고 무기력하게 평화를 외친다. 그러나 자본주의 평화는 평화가 아니다. 그러한 ‘평화’는 사실 노동계급에 대한 다른 이름의 전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관된 반(反)군국주의자의 입장은 자본주의 전쟁을 멈추기 위한 직접적인 노력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국가의 상황을 통제하고 사회경제 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 즉 조직적인 계급전쟁이 필요하다.”[1]

 

우리는 또한 이 두 그룹이 전쟁에 대한 대응에서 전혀 동질적이지 않은 국제 아나키스트 네트워크의 일부라는 것에 지적해야 한다. 보기를 들어, 국제노동자협회 영국 지부인 연대 연맹(Solidarity Federation)의 웹페이지에 접속해보면, 글을 쓰는 시점에 전쟁에 대한 정보는 전혀 찾을 수 없고, 단지 지역 분쟁과 연대연맹 활동에 대한 설명만 찾을 수 있다. 프랑스 지부인 CNT의 전쟁에 대한 성명은 전쟁의 비인간성에 반대하지만, 노동계급 진영의 대응 필요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2]

 

이와는 대조적으로 크라스는 ‘자신의’ 지배계급의 악행에 맞서 프롤레타리아적이고 국제주의적인 입장을 옹호하는 일관된 기록이 있으며, 우리는 과거에 그들의 성명을 여러 차례 게시한 바 있다.[3]

 

2022년 3월 20일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주>

 

[1] 자본주의 전쟁을 노동자혁명으로 바꾸자! 국제노동자협회(IWA)

https://iwa-ait.org/content/lets-turn-capitalist-wars-workers-revolution

 

[2] 오두막에 평화를, 궁전에 전쟁을! | 국제노동자협회(IWA)

https://iwa-ait.org/content/peace-cottages-war-palaces

 

[3] 러시아 : 체첸 전쟁에 반대하는 국제주의자 목소리 |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https://en.internationalism.org/wr/263_russia_int.htm

 

조지아 전쟁에 관한 KRAS(러시아)의 성명서 |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https://en.internationalism.org/icconline/2008/08/kras-on-war-in-georgia

 

리비아 전쟁 : KRAS로부터의 국제주의자 입장 |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https://en.internationalism.org/icconline/2011/07/kras-statement-war-libya

 

러시아 국제주의자 선언 |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2014년 러시아/우크라이나 긴장에 관한)

https://en.internationalism.org/worldrevolution/201403/9565/internationalist-declaration-russia

 

 

<ICC 기사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7154/internationalist-statement-inside-russia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14호] 150년 전에 찰스 다윈의 「인간의 유래」가 출간되었다

150년 전에 찰스 다윈의 「인간의 유래」가 출간되었다

 

  photo_2021-01-04_13-50-44.jpg

 

우리는 올해 파리 코뮌 150주년을 기념한 바 있다. 또한 우리는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책,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도 기념해야 한다. 이 책의 초판은 파리의 노동 인구들이 대포들을, 아돌프 티에르(Adolphe Thiers)가 몰수하기에 앞서, 몽마르트르(Montmartre) 언덕 등지로 옮기기 며칠 전인 1871년 2월 23일에 런던에서 출간되었다.

 

과학의 혁명과 프롤레타리아혁명

 

이 두 사건의 근접성은 그 날짜보다는 정치적이다. 19세기 후반에 자본주의는 모든 곳으로 팽창하여 산업, 기술, 사회, 과학 같은 모든 수준에서 사회에 혁신을 일으키고 있었다. 자본주의의 진보는 아주 현실적이었지만, 직선적이지도 조화롭지도 않았다. 자본주의는 가스와 전기 사용을 촉진했지만, 프롤레타리아트를 끔찍한 고통에 처하게 했고, 식민지들에서 끊임없는 대량학살을 수행했으며, 인간성을 말살했다. 자본주의는 여전히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에 기초한 궁핍한 사회이지만, 생산력의 어마어마한 발전을 초래했다. 그러한 사회에서, 적어도 그 초기에는 과학이 엄청나게 발전했다. 그것은 지식의 축적과 인간 문화의 발전에 기여했다. 하지만 또한 종종 그것은 과학이 무력하게 부르주아지에 지배당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부르주아지는 과학적 발견의 성과들을 포착하여 인간의 필요를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윤과 전쟁, 파괴와 죽음을 향하도록 했다. 이것은 오늘날 아주 분명한 사항인데, 과학적 진보의 대부분(보기를 들어 우주 정복, 인터넷, 인공지능)이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요청을 통해서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점차 그것의 역사적 임무의 끝에 도달하게 되면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인간에 의해서 축적된 문화적·과학적 유산의 수호자가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로자 룩셈부르크는 다음과 같이 썼다. “계급으로서 노동자들의 이익을 위대한 문화적 형제애로서 인류의 발전과 인류의 미래와 연결한 사회주의는 프롤레타리아의 투쟁과 문화 전반의 이익 사이에 밀접한 관계를 낳았으며, 그리하여 오늘날 모든 나라의 의식적인 프롤레타리아트를 (이제는 상속권을 상실한 의붓자식이 된) 저 부르주아 문화의 지식과 기예에 대한 가장 열렬하고 가장 이상주의적인 옹호자로 만드는 아주 모순적이고 역설적인 현상을 창출한다.”1)

 

분명 맑스주의는 과학이 아니지만, 상이한 영역에서 일어난 과학적 진보를 점진적으로 통합한 과학적이고 투쟁적인 이론이며, 또한 유물론의 발전에 기여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봉건제 안에서 부르주아지와는 반대로)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아무런 재산도 지니지 못함으로써, 그 의식과 이론을 최고도로 발전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을 해방하는 동시에 인류를 계급 사회의 감옥으로부터 구해낼 수 있는 이유는 프롤레타리아의 의식, 혁명 이론(맑스주의), 단결, 자체의 조직, 그리고 세계 혁명 정당으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윈의 발견 그리고 과학 전반의 발견이 아주 중요한 이유가 그것이다. “인간의 유래” 문제에 착수하면서, 1868년 2월 4일 다윈은 새로운 코페르니쿠스 혁명의 두 번째 에피소드로 넘어갔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영국 해군함 비글(Beagle)호로 세계 일주 여행(1831-1836년)을 하고 돌아오면서 시작되었는데, 이때 그는 「종의 변화에 관한 노트북들」(Notebooks on the Transmutation of Species)을 쓰기 시작했다. 여행하면서 관찰한 모든 것과 참고문헌을 나열한 이 강렬한 저술은 1859년 「종의 기원」의 출간으로 결실을 보았다.

 

엄격하게 과학적으로 접근함으로써, 이 저술에서 그는 생명 세계의 계보학이 존재하며, 유기체의 여러 세대가 다양화를 통해 이어져 왔다는 것을 예증했다. 그리하여 그는 “변이를 동반한 계승”과 그것의 원동력인 “자연 선택”을 발견했다. 모든 유기체는 완전히 변칙적인 변화를 나타냈다. 환경 때문에 변화할 필요가 있거나 환경 자체가 변했을 때, 유리한 변이가 선택되어서 어떤 개체들은 더 많은 자손을 낳고 다른 개체들은 점진적으로 제거되도록 만들었다. 조만간 이 과정은 상대적 안정성을 지니는 새로운 단계에 부합하는 새로운 종의 출현을 낳았다.

 

자연 선택 이론은 변형 관념을 뒷받침하고 활력을 불어넣었는데, 이 관념은 라마르크(Lamarck) 이후에 획득(후천) 형질의 전파 이론으로 상징되는 교착상태에 빠져 있었다. 이제 각종 역사(계통학)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그 종이 이전에 어떤 종의 산물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몇몇 종의 공통 조상을 재발견함으로써 지구상의 생명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것으로 형질 변화에 대한 견고한 과학적 기초가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이 코페르니쿠스 혁명의 두 번째 에피소드는 훨씬 더 중요했다. 「종의 기원」 이래로 형질 변화가 일반적으로 인정되었으며 “인간이 유인원의 후손이다.”(더 정확하게는 사람과 유인원은 공통의 조상을 지닌다)는 사실이 대략적으로나마 이해되었다.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으로 다윈은 두 가지 새로운 중요한 과학적 진보를 제시했다.

 

- 종으로서 인간(homo)은 분명 동물들의 계열에 속했지만, 그것의 출현은 파열 없이 이루어졌다. 본성의 차이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만 있었다. 갑작스러운 출현이 아니라 출현의 과정이었다.

 

- 인류의 출현과 더불어, 선택과 도태(가장 유능한 것이 선택되고 가장 적절하지 못한 것이 도태되는 것)는 점차 약해져서 최약자와 최빈자에게 혜택이 가는 경향이 있었다. 존재하기 위한 싸움은 동정심의 점진적인 발전과 서로에 대한 상호 인정에 의해 대체되었다. 자연 선택은 인간종의 출현과 통합되는 문명을 생산했다. 그것은 연대, 집단적 합리성 그리고 도덕적 정서의 발전으로 특징지어진다.2) 이 진화는 사랑과 합리성을 통합하여, 문명 진보의 중요한 족적인 이타주의를 제도화하기에 이르렀다.

 

진화의 반전 효과

 

서로 분리할 수 없는 이 두 가지 결과는 생물학적 변화, 사회적 본능, 행동, 합리적 능력도 유전으로 전달된다는 사실에 의해 설명된다. 다윈에게서 우리는 자연이 문명으로 이행하는 것을 목격하는데, 그것은 최약자의 도태로 특징지어지는 자연 선택이 덜 유능한 자의 보호로 이끄는 사회적 본능을 선호하게 된 이래로 파열 없이 이루어진다. 도태의 도태가 있다. 이 파열 없는 전복을 설명하기 위하여, 파트리크 토르(Patrick Tort)는 “진화의 반전 효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3) 그것은 도태의 억제가 자연 선택 자체의 중요한 결과물이라는 사실, 다시 말해 문명은 도태적 선택을 통해서 유리한 것으로 선택되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다.

 

「종의 기원」이 출간되었을 때, 지배계급 특히 그 종교와 과학 권위자들의 저항은 맹렬했다. 그렇지만 진화 이론의 수용은 시간의 문제였다. 자연 선택의 행위와 그 결과는 즉각적으로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농부, 식물 재배자, 가축 사육자들의 인공적 선택의 사례들이 있었으며, 부모와 그 부모에게서 나온 아이들 사이에서처럼 어떤 종들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맑스와 엥겔스는 새로운 이론을 열렬히 환영했다. 1860년 12월 19일에 맑스는 엥겔스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써 보냈다. “이 책에서 우리의 관점에 대한 역사적-자연적 토대를 발견할 수 있다.” 경험적·기계적 유물론을 넘어서기 위해 싸우는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연 과학에서 또다시 동맹 세력을 발견한다. 1848년에 「코뮤니스트 선언」이 출간된 이후, 1859년에 「종의 기원」은 다시 현대 유물론이 생명과 사회 양쪽 모두에서 변형 과정을 설명하는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되었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맑스와 엥겔스에게 있어 이러한 호의적인 반응은 회의론으로 그리고 그다음 전면적 거부로 대체되었다. 1862년 6월 18일에 맑스는 엥겔스에게 다음과 같이 썼다. “동물과 식물들 가운데에서, 다윈이 분업, 경쟁, 새로운 시장 개방, 맬더스적 생존 투쟁을 지니고 있는 자기 자신의 영국 사회를 어떻게 인지하는지 보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맑스와 다윈 사이의 이 만남은 맑스주의 이론적 발전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했던 것 같다. 1907년에 작성된 플레하노프(Plekhanov)의 무지의 사례를 보라. “많은 사람이 변증법을 진화의 학설과 혼동한다. 사실 변증법은 진화의 학설이다. 하지만 그것은 속류 ‘진화론’과는 본질적으로 다른데, 속류 진화론은 자연도 역사도 급속한 진보를 창출하지 못하며 세상의 모든 변화는 점진적으로만 일어난다는 원리에 주로 의존하고 있다. 이미 헤겔은 그런 식으로 이해된다면 진화의 학설은 모순적이며 터무니없는 것임을 보여주었다.”4) 다윈에 대한 이 빈약한 해석의 결과는 연속성에 대한 거부와 “질적 도약”이라는 사변적 관념으로 표현된다.

 

  photo_2021-01-04_13-50-28.jpg

 

맑스주의와 다윈주의

 

이러한 실수는 1859년부터 영국과 독일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사회 다윈주의가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비롯했다. 다윈은 「인간의 유래」를 출간하기 전에 10년을 기다렸는데, 그 책에서 그는 자신의 진화 이론을 마침내 인간에게 적용했다. 그는 자신의 인류학 저술의 출간이 폭발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을 잘 알고 있었으며, 비판에 답하고 논박하는 데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그리고 여러 개정판을 감독하고 검토하여 「종의 기원」을 완성했다.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는 종합적인 진화의 철학을 창조함으로써 이득을 보았는데, 그것은 자유주의에 고무되어 다윈이 식물과 동물의 세계에 명백하게 한정했던 원리인 생존 투쟁, 약자 제거의 원리를 인간에게 적용한 새로운 체계였다. 다윈은 스펜서나 멜더스로부터 자기 자신을 명확하게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되었지만, 이미 너무 늦었고, “사회 다윈주의”라는 사기 이론은 곳곳에서 존재를 드러냈다. 그 이론의 가장 열렬한 옹호자 중 한 사람이 카를 포크트(Carl Vogt)였는데, 그는 맑스를 비방했던 나폴레옹 3세의 열렬한 지지자였으며 「인간의 유래」의 프랑스어판 번역을 책임졌던 인물이다.5)

 

점진적으로, 1980년대 내내, 그다음 다윈 탄생 200주년을 맞이한 2009년에 우리는 그의 진정한 인류학이 (재)발견되는 것을 목격했다. 자본주의, 경쟁과 전쟁, 그리고 약탈적인 수컷의 행위가 증대하는 속에서 가장 불리한 조건을 지닌 층들의 위태로움은, 우리가 유리한 변화의 선택, 덜 유능한 자의 제거, 그리고 생존 투쟁이 인간 사회에서도 여전히 지배적인 요소라고 생각하도록 이끌 수 있었다. 이것이 자본주의를 자연적이고 이로운 숙명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사회 다윈주의가 성공하는 토대이다. 강자가 약자에게 손실을 입혀 진보하도록 방치함으로써, 국민과 국가는 진보하고 존재를 각인시키고, 결국에는 군사적·경제적 경쟁에서 승리하고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착취율을 증대할 수 있다는 것이 사회 다윈주의의 입장이다.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그러나 실제 사정은 아주 다르다. 문명은 반전을 통해서 발전한다. 진화의 반전 효과에 대한 설명에서 보았듯이, 연속과 불연속이 모두 있다. 제거적 자연 선택으로부터 정서적·사회적 연대(“문명화된” 사회라면 널리 퍼져 있다고 추정되는 것)로 나아가는 과정을 묘사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파트리크 토르가 설명하듯이 단절이 인류애를 낳는다기보다는 단절이 인류애의 산물이라고 결론 내려야 한다. 비로소 종은 어쩔 수 없이 환경에 순응하는 것(가장 유능한 자를 선택함)이 아니라 생존 수단을 생산함으로써 환경을 개조하고 변형시킬 수 있다.

 

환경 운동가들이 반복해온 어리석은 행위와는 반대로, 자연을 파괴하고 있는 것은 인간 종 그 자체가 아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는 인간이 자연에서 직접 먹을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생존 수단을 생산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인간종이 아니라 특정한 생산 방식, 즉 자본주의이다. 자본주의는 생물 다양성을 공격하고 인간과 자연 사이의 유기적인 균형을 파괴한다.

 

도구 제작이 종으로서 인간의 독특한 기준이라고 생각하는 잘못을 범했다. 하지만 과학적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동물 종(척추동물, 무척추동물, 포유동물, 조류, 파충류, 물고기 등)은 도구를 제작하거나 사용할 수 있으며 인간(호모) 속의 출현에 따른 근본적인 변화는 모든 생활필수품의 생산이다.

 

다윈과 맑스 사이의 조화가 마침내 가능하게 되었으며 맑스의 첫 번째 반응은 올바른 것이었다. 다윈이 발견한 이념은 맑스의 저작의 한가운데에 포함되었다. 보기를 들어, 맑스와 엥겔스가 1846년에 작성한 「독일 이데올로기」에 나오는 한 구문은 진보에 대해서 다윈과 동일한 문구를 사용하고 있다. “인간은 의식, 종교, 또는 그가 원하는 다른 무언가에 의해 동물과 구별될 수 있다. 인간이 자신을 동물과 구별하기 시작한 것은 생존 수단을 생산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이것은 그들이 육체적 조직에 의해 규정되는 단계이다. 자신들의 생존 수단을 생산함에 의해 인간은 간접적으로 그들의 물질적인 삶을 생산한다.”

 

연속성은 특히 “육체적 조직에 의해 규정되는 단계”라는 정식화를 통해서 완전하게 인정된다. 반전 효과라는 개념을 통하여, 진화적 연속성과 “질적 도약”도 유물론적으로 그리고 변증법적으로 재통합된다.

 

문명을 창조하면서, 인간종은 자연과 생물학적 활동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강렬한 퇴화의 국면에서 야만과 최약자 제거가 명백하게 다시 나타나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 역사의 기초는 아니다. 문명은 생산양식들의 연쇄라는 형태를 취해왔고 결국에는 자본주의를 낳았다. 자본주의에서는 인간에 의해 창조된 사회적 힘에 대한 통제력 상실이 모든 범위에서 나타났고, 그리하여 그 힘이 인간에게 적대적이고 인간의 생물학적 자연적 뿌리에 적대적이게끔 변화되었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프롤레타리아혁명만이 인류가 자기 자신의 발달 과정에 대한 통제력을 재설립하는 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부르주아지의 권력을 전복시킴으로써, 그리고 인류가 지구라는 우주선을 타고 여행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마주치게 될 새로운 생물학적·전염병적·생태적 문제들에 대처할 수 있는 사회를 창조함으로써 이것은 가능해질 것이다.

 

이론 대 허무주의

 

자연 선택을 수단으로 한 수정된 유전 이론과 다윈주의 인류학이 온전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았다. 그런데 지금껏 다윈주의 인류학은 왜곡되고, 무시되고, 사방에서 공격받았다. 그리고 창조론자와 종교적 근본주의자들뿐 아니라, 「종의 기원」(과학적 가치를 인정한다)과 「인간의 유래」(철학 저작으로 소개한다)를 분리하라고 말하는, 다시 말해 과학과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다윈을 분리해버리는 모든 관념론자에 의해서도 오늘날 계속해서 공격받고 있다.

 

프롤레타리아트(그리고 그들의 혁명적 관점)가 사회 현장으로부터 잠시 자리를 비운 현 상황에서, 과학과 모든 과학적 이론을 거부할 길은 열려 있다.

 

17세기에 아일랜드 아마(Armagh)의 대주교 제임스 어셔(James Ussher)는 기원전 4004년 10월 23일의 전날 밤에 창조가 일어났다고 포고했다. 심지어는 그 시간이 토요일 밤에 시작되었는지 일요일 아침에 시작되었는지를 두고 격렬한 토론도 있었다. 19세기에도 여전히 대다수 과학자는 여섯 번째 날에 인간과 가축이 “그 종류대로” 창조되었다는 성서의 전설을 옹호하고 있었다.

 

오늘날 과학에 대한 음모론들, 불합리한 믿음들, 그리고 회의론은 기존 사회에 의해 제공된 전망의 부재를 반영한다. 그와는 반대로 착취에 맞선 노동계급의 싸움과 노동계급의 혁명적 전망에 대한 확신은 의식의 자유로운 발전 그리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의 자유로운 발전을 수반할 것이다.

 

2021년 6월 20일

A. Elberg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옮긴이 ┃ 김종원

 

 

 

 

<주>

 

1. 로자 룩셈부르크

 https://www.marxists.org/archive/luxemburg/1909/national-question/ch05.htm

 

2. 아래 사이트 참조

https://en.internationalism.org/icconline/2009/04/darwin-and-the-descent-of-man

 

3. Patrick Tort, The Darwin Effect (2008).

 

4. Plekhanov, The Fundamental Questions of Marxism.

 

5. Anton Pannekoek, Patrick Tort, Darwinism and Marxism (2011).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7049/descent-man-charles-darwin-came-out-150-years-ago-yea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지배계급은 전쟁의 제단에 희생을 요구한다.

지배계급은 전쟁의 제단에 희생을 요구한다.

 

  photo_2021-01-08_12-19-56.jpg

 

만약 여러분이 수십만 명의 피난민과 함께 우크라이나 전쟁 지역에서 가족과 함께 피난하려고 한다면, 그중에서 18세에서 60세 사이의 남성이라면 여러분은 아내, 자녀, 노부모와 강제로 분리될 것이다. 여러분은 이제 징집되어 진격하는 러시아 군대와 싸울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도시에 머문다면, 군사 목표물을 겨냥한 것으로 여겨지는 포격과 미사일 공격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1991년 영광스러운 걸프전에서 처음 들었던 것처럼 주택가, 학교, 병원이 파괴되고 수백 명의 민간인이 사망하는 "부수적인 피해"를 항상 야기할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러시아 군인이라면,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여러분을 해방자로 환영할 것이라고 들었을지 모르지만, 그 거짓말을 믿는 대가를 피로 치르게 될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제국주의 전쟁의 현실이며, 오래갈수록 죽음과 파괴의 피해는 더 커질 것이다. 러시아군은 체첸과 시리아에서 그랬던 것처럼 도시 전체를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우크라이나에 쏟아져 들어오는 서방 무기들은 전쟁의 참상을 확대할 것이다.

 

암흑의 시대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최근 기사 중 하나에서 영국의 우익 신문인 「데일리 텔레그래프(The Daily Telegraph)」는 세계가 빈곤, 비합리성과 전쟁의 새로운 암흑기로 접어들고 있다는 헤드라인을 게재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해체로 빠져드는 세계적인 체제 안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점점 더 감추기 어려워지고 있다. 그것이 전 세계적인 코로나 대유행의 영향이든, 지구가 직면한 생태 재앙에 대한 최근의 끔찍한 예측이든, 경제 위기로 인한 빈곤의 증가든, 제국주의 사이 갈등 심화로 인한 매우 명백한 위협이든, 또는 한때 주변적인 종말론적 전설과 음모론에 의해 촉발된 정치, 종교적 세력의 출현이든 상관없이, 비록 그들의 의견을 쓰는 작가들이 자본주의의 모순 속에서 이 모든 것의 뿌리를 찾기는 힘들다 할지라도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헤드라인은 현실의 묘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1989~91년 동구권과 소련의 붕괴 이후, 우리는 20세기 초부터 이미 낡은 것이 되어버린 세계 사회 체제가 쇠퇴의 새로운 마지막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우리는 ‘냉전’의 종식이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세계 질서를 가져올 것이라는 약속과는 반대로 새로운 단계가 무질서의 증가와 군사주의 확대로 특징지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90년대 초 발칸반도의 전쟁, 1991년 걸프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리비아 침공, 시리아의 분쇄, 아프리카 대륙에서의 무수한 전쟁, 세계 강국으로서 중국의 부상, 러시아 제국주의의 부활 등이 모두 이러한 예측을 확인 시켜 주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 과정에서 새로운 걸음을 내디딘 것으로, 구(舊) 블록 체제의 종말은 제국주의 질서에서 이전의 종속 세력이나 약화한 세력들이 새로운 지위를 주장하는 모든 세력에 대한 광란의 투쟁을 불러일으켰다.

 

새로운 유럽 전쟁의 심각성

 

유럽 대륙에서 공공연한 전쟁의 이 새로운 라운드의 중요성은 무시할 수 없다. 발칸 전쟁은 이미 제국주의 혼돈이 주변 지역에서 체제의 심장부로 되돌아가는 경향을 보여주었지만, 그것은 주요 제국주의 열강 사이의 대립 수준이 훨씬 덜 직접적이었던 붕괴해가는 한 국가의 ‘내부’ 전쟁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국가 간의 유럽 전쟁 그리고 러시아와 서방 경쟁국 간의 훨씬 더 공공연한 대립을 목격하고 있다. 감염병이 여러 수준(사회, 건강, 생태 등)에서 자본주의 해체의 가속화를 표시한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전쟁이 쇠퇴기 자본주의의 삶의 방식이 되었고, 군사적 긴장과 갈등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심화하고 있음을 강력하게 상기시킨다.

 

러시아의 신속한 우크라이나 진군은 많은 정통한 전문가들을 놀라게 했고, 우리 자신도 그렇게 빠르고 대규모로 이루어질지 확신할 수 없었다.1) 우리는 이것이 우리의 기본적인 분석 틀의 결함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대로, 그것은 90년대 초 이미 특정 핵심 문서2)에서 정교화했던 분석 틀을 완전히 적용하는 것을 주저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쇠퇴의 새로운 단계가 점점 더 혼란스럽고 잔인하며 비이성적인 군사적 충돌로 특징지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본주의 자체의 관점에서조차 비합리적이다.3) 자본주의 상승 국면에서 전쟁은 무엇보다 식민지 확장의 길을 닦은 모든 전쟁이 승리자들에게 분명한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었지만, 자본주의 쇠퇴기에 전쟁은 점점 더 파괴적인 역동성을 띠게 되었고 다소 영구적인 전쟁 경제의 발전은 자본의 생산성과 이윤에 막대한 손실을 주고 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까지만 하더라도, 그 충돌의 끝에는 ‘승리자들’, 특히 미국과 소련이 있었다. 하지만 현 단계에서는 심지어 세계의 '최정상‘국가들이 일으킨 전쟁마저도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실패로 판명되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의 굴욕적인 철수는 이것을 명백히 보여준다.

 

이전 기사에서 우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이나 점령은 1980년대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직면했던, 그리고 소련 자체의 몰락에 강력한 요인이 되었던 수렁의 새로운 버전으로 러시아를 몰아넣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 침공은 상당한 무력 저항에 부딪히고 있고, 지배계급 자체의 일부를 포함한 러시아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인기가 없으며, 러시아 국민 대다수가 직면한 물질적 궁핍을 확실히 더 심화시킬 러시아의 주요 경쟁자들로부터 일련의 보복 제재를 유발한 우크라이나 침공이 직면한 전망이라는 징후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 동시에, 서방 강대국들은 이념적으로나 무기 공급과 군사적 조언을 통해 우크라이나 군대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예측 가능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침략 이전 러시아 제국주의에 대한 압력은 우크라이나 주변의 군대 동원이 단순한 무력 과시에서 멈출 가능성을 날마다 줄이고 있었다. 특히, 나토가 우크라이나로의 궁극적 확장 배제를 거부하는 것을 푸틴 정권은 용인할 수 없었고, 그 침략은 우크라이나의 군사 기반 시설의 대부분을 파괴하고 친(親)러시아 정부를 세우려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옛 러시아 제국을 복원하려는 거의 메시아적인 비전과 관련된 전체 프로젝트의 비합리성, 그것이 조만간 새로운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푸틴과 그 주변 사람들이 도박을 하는 것을 결코 막을 수 없었다.

 

새로운 제국주의 블록의 형성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표면적으로 러시아는 이제 서방 민주주의 국가들의 '연합전선'과 미국이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이 분명한 새롭게 활기찬 NATO에 직면해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이길 수 없는 전쟁과 러시아 팽창주의의 공통된 위협에 직면한 나토의 응집력 강화로 인해 수렁에 빠지면 미국은 주요 수혜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응집력은 깨지기 쉽다. 침략 직전까지 프랑스와 독일은 외교적 해결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푸틴 대통령과 별도의 회담을 추구하면서 자신의 게임을 하려고 했다. 적대 행위의 시작은 미국보다 훨씬 더 직접적으로 그들의 경제에 타격을 줄지라도 제재 이행에 동의하면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독일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러시아 에너지 공급을 중단한 사례). 그러나 유럽연합(EU)이 독자적인 군사력을 개발하려는 움직임도 있고, 독일이 무기 예산을 크게 늘리기로 한 결정도 이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 또한, 미국 부르주아지 자체가 러시아의 세력에 대한 태도를 놓고 주요한 분열에 직면해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는데, 바이든과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러시아에 대해 적대적인 접근을 유지하는 경향이 있지만, 공화당의 상당 부분은 매우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특히 트럼프는 침략이 시작되자 푸틴의 '천재성'에 대한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만약 새로운 미국 블록의 형성이 머나먼 일이라면, 러시아의 모험 또한 러시아-중국 블록의 구축을 향한 발걸음을 나타낸 것이 아니다. 중국은 최근에는 합동 군사 훈련에 참여하고, 시리아와 같은 문제를 놓고 러시아에 대해 이전에 지지를 표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경우에는 러시아와의 거리를 두고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에서 러시아를 비난하는 투표를 기권하고 적대 행위 중단을 요구하는 '정직한 중개인'으로 자신을 제시했다. 그리고 우리는 러시아와 중국이 미국에 반대하는 공통의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히 중국의 ‘새로운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관해서 그들만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차이의 이면에는 러시아가 자신이 중국의 팽창주의 야망에 종속되는 것을 경계하는 데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안정의 다른 요인도 나타나고 있는데, 특히 터키가 맡은 역할이 그것이다. 터키는 세계적인 위상을 높이려는 노력 속에서 어느 정도 러시아에 구애하고 있지만, 동시에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리비아 전쟁을 놓고 러시아와 갈등을 빚고 있다. 터키는 현재 다르다넬스(Dardanelles) 해협을 통해 흑해에 접근하는 러시아 군함을 차단하겠다고 위협했지만, 여기서 다시 이 조치는 전적으로 터키의 국익에 따라 계산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제24차 ICC 총회의 ‘국제 정세에 관한 결의안’에 썼듯이, 국제 제국주의 관계가 여전히 원심적인 경향으로 특징짓는다는 사실은 “우리가 아마겟돈 핵전쟁의 위협에 시달리던 냉전 시대보다 더 안전한 시대에 살고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만약 해체의 단계가 부르주아지의 통제력 상실 증가로 특징짓는다면, 이것은 또한 핵, 재래식, 생물학적, 화학적인 방대한 파괴 수단에도 적용된다. 이것은 지배계급이 축적해 왔고, 이전 시대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국가에 걸쳐 더 널리 분포되어 있다. 우리는 훈련된 군사 블록이 주도하는 전쟁을 향한 통제된 행진을 보고 있지는 않지만, 일방적인 군사적 도발이나 야만적인 사고의 위험을 배제할 수는 없다.”4)

 

러시아를 고립시키려는 엄청난 국제적 캠페인과 우크라이나에서의 러시아 전략을 저지하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에 직면하여 푸틴은 핵 억지를 담당하는 부대에 '특별 경계' 태세에 돌입할 것을 명령했다. 이것은 현재로서는 얄팍한 위협일 뿐이지만, 세계의 착취당하는 사람들은 지배계급의 어떤 부분에 대해서도 궁극적인 합리성을 신뢰할 여유가 없다.

 

노동계급에 대한 이데올로기 공격

 

지배계급은 민중을, 무엇보다도 노동계급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폭탄, 포탄과 함께 이데올로기 공격을 시작해야 한다. 러시아에서는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운영하는 “나치와 마약 중독자”에 관한 조잡한 거짓말에 주로 의존해 왔는데, 전쟁을 둘러싼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크게 투자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계산 착오로 판명될 수 있다. 왜냐하면 자신의 지배계급 내부에서, 지식인 사이에서, 그리고 사회의 더 넓은 계층 사이에서 불화의 소문이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거리 시위가 있었고, 약 6,000명이 전쟁 반대 시위에서 체포되었다. 또한 우크라이나에 파견된 일부 병력의 사기가 저하되었다는 보고가 있다. 그러나 수십 년간의 스탈린주의로 인해 혁명적 전통과 단절된 러시아에서 노동계급에 기반을 둔 전쟁 반대 운동의 조짐은 지금까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자체에서 노동계급이 직면한 상황은 더욱 암울하다. 러시아 침략의 공포에 직면하여 지배계급은 “고국”의 방위를 위해 국민들을 동원하는 데 크게 성공했으며, 수십만 명이 손에 잡히는 어떤 무기라도 들고서 침략자들에게 저항하려고 자원하고 있다. 수십만 명이 또한 전투 지역으로부터 피난하는 것을 선택했지만, 민주주의와 민족국가라는 부르주아의 이상을 위해 싸우라는 요청에 계급 적대의 현실이 잊힌 곳에서 우크라이나 ‘국민’으로 흡수되어버린 프롤레타리아트의 분파가 확실히 응답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우크라이나 아나키스트의 대다수는 이 대중 전선의 극좌파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5)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지배계급이 노동자를 전쟁으로 끌어들이는 능력은 국제 노동계급이 동질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상황은 주요 서방 국가에서는 다르다. 부르주아지는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노동계급이 모든 어려움과 좌절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 전쟁의 제단에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꺼리는 태도에 직면해 왔다. 러시아의 점점 더 호전적인 입장에 직면한 서방 지배계급은 “지상군”을 투입하는 것과 직접적인 군사력으로 크렘린의 모험에 맞서는 것을 조심스럽게 피해왔다. 그러나 이것은 통치자들이 수동적으로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우리는 수십 년 동안 볼 수 있는 가장 조화로운 이데올로기적 친(親)전쟁 캠페인, 즉 “러시아 침략에 대항한 우크라이나와의 연대” 캠페인을 목격하고 있다. 언론은 좌우를 막론하고 친(親)우크라이나 시위를 홍보하고 지지하며, 현재 크렘린의 미치광이로부터 위협을 받는 서방 민주주의 이념의 표준적인 전달자로서 '우크라이나 저항'을 칭송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희생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있다. 러시아 에너지 공급에 대한 제재는 이미 사람들의 주택 난방을 어렵게 하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중할 뿐만이 아니라, "민주주의 수호를 원한다면, "방위"지출을 강화해야 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언론지 옵서버(Observer)의 수석 정치 평론가인 앤드류 론슬리(Andrew Rawnsley)는 다음과 같이 썼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그에 따른 군축 이후, 영국과 그 이웃 국가들은 노령화 인구에게 그들이 누렸던 것보다 더 나은 건강 관리와 연금을 제공하는데 주로 "평화 배당금"을 사용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점점 더 호전적으로 되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방에 더 많은 돈을 쓰기를 꺼리는 경향이 계속되었다. 나토의 30개 회원국 중 1/3만이 현재 GDP의 2%를 자국 군대에 쓰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있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은 목표치에 매우 못 미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냉전 시대에 보여준 것처럼 폭정에 맞서 자신의 가치를 방어하겠다는 결의를 재발견할 필요가 시급하다. 모스크바와 베이징의 독재자들은 서구가 분열되고 퇴폐하고 쇠퇴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유에 대한 모든 미사여구는 패배하기 전의 소음일 뿐이다.”6) 히틀러가 말했듯이, 총을 가질 수도 있고 버터를 가질 수도 있지만, 둘 다 가질 수는 없다.

 

여러 나라의 노동계급이 자신의 생활과 노동 조건을 방어하려는 새로운 의지를 보이던 것처럼,7) 지배계급의 이 대대적인 이데올로기 공세, 즉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이러한 희생 요구는 계급의식 발전 가능성에 큰 타격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전쟁으로 살아간다는 증거가 늘어나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이 동서양의 모든 체제가 정말로 "퇴폐하고 쇠퇴하고 있다"는 인식, 자본주의 사회적 관계가 지구로부터 뿌리째 뽑혀야 한다는 인식의 출현에 한 요인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우크라이나에서 목격하고 있는 공포에 대한 분노가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지지로 향하도록 탈선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현재의 이데올로기 공격에 직면하여 노동계급의 국제주의자 소수의 임무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지배계급의 모든 거짓말에 대응하고, 노동계급은 자본주의와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동과 생활 조건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동시에, 그것은 이러한 방어적 투쟁의 발전을 통해,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경험을 최대한 널리 반영함으로써 노동계급이 과거의 혁명 투쟁- 특히 부르주아지를 강제해 제1차 세계대전을 종식시켰던 1917~18년의 모든 투쟁 -과의 연결을 새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제국주의 전쟁에 맞서 싸우고 인류에게서 전쟁의 근원인 세계 자본주의 질서를 전복하는 길을 준비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2022. 03. 02

아모스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주>

1. 우크라이나 참조 : “동유럽의 군사적 긴장 악화”, 「국제코뮤니스트흐름」 (internationalism.org) ; “러시아-우크라이나 위기 : 전쟁은 자본주의 삶의 방식이다”, 「국제코뮤니스트흐름」 (internationalism.org)

2. 특히, 오리엔테이션 문서 : “군사주의와 해체”, 「국제코뮤니스트흐름」 (internationalism.org)

3. 미래가 없는 사회 체제의 이러한 근본적인 비합리성은 물론 이데올로기와 심리학 수준에서 증가하는 비합리성을 동반한다. 현재 푸틴의 정신 상태에 대한 히스테리는 반쪽 진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왜냐하면 푸틴은 자본주의의 해체와 포퓰리즘의 성장으로 배출된 지도자들의 한 보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언론은 이미 도널드 트럼프 사건을 잊었는가?

4. ICC 제24차 총회에서 채택된 “국제정세에 대한 결의안”, 「국제코뮤니스트흐름」 (internationalism.org)

5. 보기를 들어 CrimethInc : 우크라이나 침략에 대한 러시아 아나키스트들 : 업데이트와 분석

6. “자유민주주의는 자신의 가치를 방어해야 하고, 서방이 약하지 않다는 것을 푸틴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앤드류 론슬리, 「가디언」)

7. “미국, 이란, 이탈리아, 한국에서의 투쟁… 대유행도, 경제 위기도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력을 꺾지 못했다!”, 「국제코뮤니스트흐름」 (internationalism.org)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7151/ruling-class-demands-sacrifices-altar-wa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선거는 짧고 자본주의 위기는 길다

선거는 짧고 자본주의 위기는 길다
 
photo_2021-01-03_11-14-39.jpg
 
또 한 편의 부르주아 서커스 쇼가 끝났다. 
 
이번 선거는 최악의 선거라고 불리지만, 누굴 뽑든 임기가 끝날 무렵 노동계급은 늘 최악이었다. 문제는 새 정부 초기부터 전면적으로 싸울 것인가 몇 년을 지켜보다가 싸울 것인가였다. 
 
그것은 늘 선거 환상과 관련이 있었다. 선거와 무관하게 투쟁을 준비할 것인가, 선거에 몰입해 투쟁 의지와 동력을 소진할 것인가.
 
이번엔 처음부터 싸워야 한다. 정권에 대한 비판을 넘어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싸워야 한다. 어떠한 선거 환상도 갖지 않았던 동지들과 선거와 관계없이 꾸준히 싸워왔던 동지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 
 
노동자는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어쩔 수 없이 투표했더라도 이번에는 빠르게 선거 환상을 털어내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투쟁에 나서야 한다.
 
우리가 실망할 것은 선거 결과가 아니라 부르주아 정치와 단절하고 계급투쟁을 이끌 노동계급 정치의 부재이다. 그로 인해 새로운 투쟁의 주체/세대 다수가 부르주아 정치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언제나 걸림돌은 선거 자체였다. 노동자들이 빠져들수록 걸림돌은 더 커져만 갔다. 하지만 천천히 가더라도 돌아가지 않고 투쟁으로 돌파할 때 길은 다시 열릴 것이다. 
 
선거는 짧고 자본주의 위기는 길고 더욱더 깊어지고 있다.
 
쇠퇴하는 자본주의 위기가 그대로 반영된 부르주아 선거! 
착취와 차별의 정치, 전쟁과 야만의 정치, 혐오와 배제의 정치! 
이번엔 끝장낼 수 있도록 제대로 준비해서 투쟁하자!!!
 
 
2022년 3월 10일
국제코뮤니스트전망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부르주아 선거와 세계여성의날 그리고 페미니즘

부르주아 선거와 세계여성의날 그리고 페미니즘

 

  photo_2021-01-10_12-25-05.jpg

 

1. 들어가며

 

세계여성의날 하루 뒤 치러지는 20대 대선은 역설적이게도 안티 페미니즘 논란으로 선거 국면을 성별 대결과 혐오로 몰아갔다. 부르주아 정당과 정치인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남성 역차별을 부각하며 이른바 이대남에게 표를 읍소하고 있다. 특히 윤석열은 언론 인터뷰에서 ‘더 이상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고 차별은 개인적 문제’라며 무지와 혐오를 자랑하고 있다. 이에 앞서 윤석열 선본에 결합했던 녹색당 출신 부르주아 페미니스트 신지예는 “윤석열은 여성 대상 범죄 해결을 약속했다.”는 것을 강조하며 결과적으로 그의 여성 공약을 지지했었다.

 

이에 맞서 지난 연말 여의도에서는 여성가족부 폐지 및 개편, (성폭력) 무고죄 신설 공약 등 사상 초유의 여성 혐오 선거에 대한 비판 집회가 열렸다. 집회참석자들은 정치인들이 청년 취업 문제, 주거 문제 등을 가리기 위해 여성 혐오를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1) 또한 사회운동 단체에서도 자본주의 모순이 첨예화된 현실을 왜곡하기 위해서 안티 페미니즘을 이용한다며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부르주아 정당들은 왜 여가부 폐지/개편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안티 페미니즘 논쟁을 만들고 있는가? 왜 구조적 여성차별이 사라졌다며 차별의 개인화를 주장하는가? 그 과정에서 지배계급이 얻는 것은 무엇이고 의도는 무엇인가? 이 글에서는 세계여성의날을 맞이하여 그러한 배경을 살펴보고 현재 페미니즘의 한계와 코뮤니스트 전망을 제시하고자 한다.

 

2. 부르주아 선거에 안티 페미니즘이 등장한 배경

 

자본주의 모순 증가와 기존 지배 이데올로기 약화

 

이번 대선은 기존 지배 이데올로기 약화와 그 빈자리에 안티 페미니즘을 비롯한 성별, 세대별 갈등 부각이 뚜렷하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반공주의, 지역주의는 여전히 밑바닥에 남아있지만, 과거에 비하면 많이 약화하였다. 반공주의는 여전히 한국 자본주의 체제의 주요한 지배 이데올로기이고, 이번 대선에서도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론이 나왔지만, 과거처럼 선거판 전체를 흔들 만큼 영향력이 크지는 않았다. 지역주의 또한 이미 형성된 것에서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대신 반공주의와 지역주의를 경계한다는 문재인 정권이 반(反)정부 정서가 강해질 때마다 민족주의를 이용해 대중의 시선을 돌려왔다. 이번 선거에서도 그들은 지배계급의 다른 분파인 야권과 노동계급에 대한 이데올로기 장치로 민족주의를 이용하고 있다. 민족주의에서 파생한 극우 반공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보수 야권에 대해서는 반일(反日)민족주의를 내세워 도덕적 우월감의 근거로 활용2)하는 동시에 노동계급에는 집권 기간 내내 친(親)자본, 반(反)노동자 정책을 펼쳐온 자신들의 계급적 본질을 가리고 진보적 민주주의 세력으로 보이도록 민족주의를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도 선거판 전체에서 기존의 지배 이데올로기의 파급력은 여야 지배계급 분파의 정치적 차이가 줄어든 만큼 함께 줄어들었다. 물론 노동자 대중 의식 저변에는 여전히 반공주의, 지역주의가 자리 잡고 있고, 한편에서는 그것을 근본적으로 넘어서지 못하는 민족주의/국가주의가 지배이데올로기로 작용하고 있다. 그것은 자본주의가 생존하는 한 끈질긴 생명력으로 재생산될 것이다. 이러한 지배이데올로기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사회주의/코뮤니즘에 대한 근본적 인식 변화,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노동자 민주주의,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의식이 계급투쟁을 통해 계급의식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한편 해외 언론에서까지 ‘기이한 현상’이라고 보도한 안티 페미니즘 논란은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한국 사회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청년에 대한 호칭은 삼포세대, N포세대에서 최근에는 이대남, 이대녀로 변화했다. 청년 세대는 연애∙결혼∙출산뿐만 아니라 삶의 기반이 되는 조건 대부분을 포기하도록 강요당하며 살았다. 취업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고, 취업하더라도 비정규직이 일상화되었고, 저임금/불안정 노동에, 부동산값 폭등으로 주거 불안을 강요당했다. 청년 세대는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거치면서 학력과 스펙 경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그래서 그들은 사회 구조적 모순에 대한 문제 제기보다는 개별화, 파편화, 공정한 경쟁과 규칙이라는 덫에 빠지게 되었다.

 

그런데도 지배계급은 정치평론가, 문화비평가, 일부 페미니스트 등의 입을 빌려 20대 남자 현상(20대 남성의 안티 페미니즘)은 가부장적 남성성을 성찰하지 않는 태도이거나 여성 혐오 정서의 발로라는 딱지를 붙였다. 문재인 정권도 20대 지지율이 하락하자 젠더 갈등 탓으로 돌렸다. 20대 여성은 개인주의와 페미니즘 등으로 무장한 새로운 집단이기주의로, 20대 남성은 낮은 의식 탓으로 돌렸다. 청년 실업, 부동산값 폭등으로 인한 지지율 이탈을 아주 쉽게 집단의 정체성으로 매도했다.

 

또 다른 쪽에서는 문재인 정권의 정책실패에 대한 청년층의 불만을 젠더 갈등 프레임으로 이용했다. 젠더 갈등의 원인을 문재인 정부의 친(親)페미니즘 정책으로 돌리며 여성가족부 폐지, 성폭력 무고죄 처벌 강화, 여경 무용론 등을 주장한다. 이처럼 지배계급은 젠더 갈등을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없고, 그들의 모든 여성 정책은 허구에 불과하다.

 

안티 페미니즘을 부각시키는 지배계급과 페미니즘의 정체성

 

수많은 부르주아 정치인과 정당은 청년층의 젠더 갈등을 다루며 저마다 다른 해법을 내놓고 있다. 그들이 젠더 갈등을 언급하는 목적은 여야를 막론하고 공통적이다. 자본주의 모순이 낳은 실업, 주택난, 기후 위기, 환경파괴, 코로나 대유행, 노동 착취 강도 증가, 이윤과 임금 격차 상승 등의 현실을 감추기 위해서다. 자본주의에서 지배계급(부르주아지)의 모든 분파는 노동계급을 다양한 집단으로 나누어 대립시키고 갈라치면서 분열을 획책한다. 성, 성적 지향, 인종, 직업, 학벌, 지역, 사상 등을 이유로 한 각종 차별은 문제의 근원이 자본주의 모순이 아니라 개인과 특정 집단으로 원인을 돌리기 위해서이다.

 

20대 남자 현상의 안티 페미니즘 여론은 엄밀하게는 반(反)여성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기회의 공정과 균등을 왜곡해서 강조하는 반발임을 알 수 있다. 공정 담론은 사회경제적 생존기반에 대한 사회경제적 배경을 무시하고 개인의 능력 탓으로 돌리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자본주의에서 형식적 공정은 실질적 불평등을 은폐시킨다. 역으로 정의롭지 못한 사회이기 때문에 정의, 공정 담론이 주장되고 있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정의, 공정에 대한 개념을 필요로 하는 생산양식이다. 이렇게 정의, 공정을 필요로 하는 계급사회에서 공정은 실현될 수 없는 허구이자 환상에 불과하지만, 지배계급은 공정, 능력주의 담론을 유행시키고 있다. 이것은 경제 위기와 불평등한 사회 경제적 배경을 의도적으로 감추기 위함이다. 이런 점에서 안티 페미니즘은 공정주의와 동전의 양면이다.

 

한국 사회에서 포스트 페미니즘은 1997년 IMF 경제 위기 이후 노동 유연화 정책과 사회경제적 불안정성이 확대된 배경에서 출현했다. 여성은 언제나 자유롭고 강력하며 따라서 여성의 해방이나 진보를 위한 집합적 저항으로서의 페미니즘이 필요하지 않는 존재로 재현되었다. 그러나 여성노동자의 사회경제적 현실은 고용불안, 실업, 빈곤이 일상화되었다. 쇠퇴하는 자본주의는 여성노동자의 경제적 입지와 고용환경의 취약성을 심화시켰다. 그러므로 포스트 페미니즘이 판매한 여성 이미지는 여성의 불안정한 사회경제적 현실을 은폐하고, 그 자리에 신자유주의적 자기 경영모델의 신화를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2015년을 기점으로 재부상한 페미니즘 물결은 실제 여성의 난망한 사회경제적 조건을 배경으로 터져 나온 측면이 있다. 비록 대학 진학률과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에서 여학생이 남학생을 앞서고, 과거에 비해 차별적 위치에 있다는 인식을 크게 하지 않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여성은 남성보다 낮은 임금, 낮은 고용률과 경제 활동 참가율,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문제를 겪고 있다.3)

 

 

재부상한 페미니즘의 양상에는 특징이 있다. 그것은 여성의 정체성을 전면화한 담론의 확산이었다. 워마드와 이수역 폭행 사건, 숙명여대에서 벌어진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자행된 성소수자(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성차별은 성별 이분법, 이성애 중심주의, 성 역할 고착화를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이런 사례에서는 오히려 페미니즘이 성별 이분법과 성 역할 고착화 강요, 그리고 성소수자에 대한 공격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탈코르셋을 실천한다는 그들이 단톡방 가입 조건으로 내세운 것은 주민등록증과 목소리, 손과 손목 인증이다. 트랜스젠더 직업군인의 강제 전역을 결정한 국가는 계급의 발생과 대립, 차별과 착취에 기반을 둔 지배계급의 이해관계를 보호하고 관철시키는 강제 권력이자 성차별 고착화라는 본색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주민등록번호 인증이라는 이중적이고 자기 모순적인 행태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정체성 기반의 담론 일부는 특정 정체성 집단의 피해와 억압을 부각하는 데 비해 사회경제적 배경에 대한 고찰 및 구조적 불평등을 겪는 동일한 계급 간의 연대 가능성을 고취하지 못하고 있다. 억압에 대한 책임과 비난을 개인들에게 돌리며 인종과 성별에 따른 분열이 사회구조에 내재해 있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오히려 성별 이분법의 강화는 모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몰아갔다. 남성 개인과 여성 개인 사이의 갈등을 모두 여성 혐오로 치부하며 남성을 매도해 왔다.

 

여성 정체성 담론은 여성도 다양한 계급으로 나누어지고 성평등의 가장 큰 걸림돌인 자본주의 국가와 계급투쟁에는 문제의식이 없고 무관심하다. 대신 국가기구를 활용해 여성 정책을 추구한다는 명분으로 부르주아 정당과 국가기구로 진출해 왔다. 그런 측면에서 내부 권력투쟁 과정에서 사퇴했지만, 신지예의 윤석열선본 결합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자본주의 모순이 격화되는 쇠퇴기에 신분 상승의 환상을 가진 개별화되고 파편화된 부르주아 페미니즘은 여성해방 운동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국가기구로의 진출과 자본주의 본질을 은폐시키는 안티 페미니즘 논쟁에 이용당하며 지배계급의 질서유지에 복무하고 있다.

 

3, 구조적 차별

 

다음의 각종 지표는 한국 사회에서 성차별의 심각성을 드러낸다. 2019년 기준으로 여성의 임금은 남성보다 32.5% 낮다. OECD 평균 12.5%와 비교하면 2.5배가 넘는다. 여성가족부가 2021년 9월 2,149개 상장기업의 성별 임금 격차를 조사한 결과는 35.9%에 달했다. 이른바 ‘좋은 일자리’에서도 격차가 컸다. 또한 여성이 당하는 폭력 피해는 더욱 심각하다. 2011년~2020년까지 10년간 강력범죄 피해자의 남녀 비율을 보면 여성이 86.7%였다. 2019년 성폭력과 교제 폭력을 당한 여성의 수를 여성가족부가 집계한 통계를 보면 드러난 수치만도 하루 평균 113명꼴이었다. 이러한 구조적 차별이란 단지 현상적으로 보이는 차별을 넘어 사회체제에서 오는 차별이다.

 

사회 재생산이라는 개념은 노동계급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개별화된 노동력 재생산과 자본 축적 사이의 관계이다. 성별 분업은 사회의 맥락 속에서 구성된다. 여성이 직장을 다녀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가정에서의 가사/육아 노동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은 직접 생산자가 될 수도 있지만, 노동력 재생산에서 차별적 역할이 부여된다는 것이 계급사회 여성 억압의 근원이다. 가족제도와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회 재생산은 결론적으로 자본에 이익이 된다.

 

자본주의에서 가사노동의 중요성에 관한 논의에서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가사노동이 노동력 재생산의 구실을 하는 것이 실제로는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가정 안에서 여성이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다. 자본주의에서는 노동이 아니라 노동력이 사고 팔린다. 그래서 착취란 노동자와 사용자 간의 사회적 관계이다. 가사노동은 잉여가치를 직접적으로 생산하지는 않는다.

 

“현재의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관점에서 가사노동은 아무리 엄청난 희생과 에너지를 쏟아부은 것이라 할지라도 수많은 작은 노력이 모인 것이라 할지라도 생산적 노동이 아니다. ... 이것은 잔인하고 미친 소리로 들린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잔인함과 광기를 보여 주는 것이다”(로자 룩셈부르크)

 

따라서 사회적 책임과 사회화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 가사노동에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은 자본주의 질서를 인정하고 궁극적으로 개별화된 가사노동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오히려 이것은 성별 분업을 강화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회의 다음 세대를 양육하는 책임은 사회가 져야 한다. 사회가 포괄적 복지를 제공해야 하며, 성별과 관계없이 충분한 유급 육아휴직과 육아 수당 등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런 요구는 노동계급 전체를 위한 요구다. 왜냐하면, 어떻게 아이와 고령자와 아픈 사람을 돌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사회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는 개별화된 재생산으로 가사/육아 노동은 가족과 여성의 부담으로 된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구조적 성차별이다. 지배계급은 노동력 재생산 비용 부담을 최소화하려고 돌봄 부담을 개별 가족, 특히 여성에게 전가한다. 여성은 직장에서 일하면서도 가사·양육을 책임져야 한다. 이때 양육 부담과 경력 단절로 많은 여성이 저임금·비정규직 일자리를 강요받는다. 이것은 여성을 고달픈 처지로 내몰지만, 자본가들에게 막대한 이윤을 선사한다. ‘더 이상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라는 메시지는 바로 노동자에게 사회적 재생산 비용을 떠넘기고 막대한 자본의 이윤을 감추려는 의도로 이용될 것이다.

 

4. 나오며

 

자본은 노동계급을 파편화, 개별화시킨다. 여기에 더해 한국 지배계급은 안티 페미니즘과 공정 담론으로 노동계급을 분열시키고 자본주의 질서를 유지하려고 한다. 하지만 세계여성의날의 역사적 뿌리는 노동계급 여성과 남성에게 노동해방과 여성해방이 별개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1917년 2월 러시아혁명의 도화선이 된 페테르스부르크 여성노동자들은 세계여성의날에 거리로 나와 “아이에게 먹일 빵을 달라”, “참호에 있는 남편을 집으로 돌려보내라”라고 요구했다. 세계여성의날이 여성뿐만 아니라 전 세계 노동자들에게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기념일인 이유이다.

  photo_2021-01-10_12-24-59.jpg

 

노동계급은 성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계급으로 모든 차별과 착취를 근본적으로 철폐할 수 있는 계급이다. 노동자의 적(敵)은 여성/남성이 아니라 계급의 적인 자본주의 체제이다. 자본주의의 구조적 성차별은 성별을 넘어 모든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 속에서만 타파할 수 있다. 따라서 성차별에 대한 자본주의 사회의 작동방식에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가족을 경제단위로 하는 자본주의에서는 가사노동의 사회화는 불가능하다. 이윤을 목적으로 생산하는 자본주의에서는 불가능하다.

 

성평등을 위한 투쟁은 성차별, 성 억압, 성폭력이 구조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체제에 맞서 근본적으로 싸우면서도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억압받는 이들의 권리를 방어하고 연대하면서 계급적 단결을 이루어낼 때 발전할 수 있다. 진정한 성해방은 모든 차별과 착취의 근본 원인인 자본주의 체제를 혁명적으로 전복하고 연대와 협력과 존중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를 건설해야만 가능하다. 그 사회를 우리는 노동해방, 여성해방이 진정으로 실현되는 사회,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 코뮤니즘이라고 한다.

 

젠더 대결이 아니라 계급투쟁으로!

혁명을 통해 성평등! 여성해방으로!

전쟁이 아니라 계급전쟁으로!

혁명을 통해 평화로!

 

2022년 3월 8일

국제코뮤니스트전망 ┃ 윤태상

 

 

<주>

 

1. 「프레시안」, 사상 초유 여성 혐오 대선, 여성들은 언제든 뛰쳐나올 수 있어요, 2021. 12. 24.

2. 「프레시안」, 이재명 "윤석열, 3.1절 앞두고 '일본군 한반도 재진입' 망언", 2022. 02. 26

3. 허성학, ‘20대 남자 현상’이 던지는 질문, 「진보평론」, 85호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우크라이나: 나토(NATO)도 푸틴도 아니다! 전쟁이 아니라 계급전쟁을!

우크라이나: 나토(NATO)도 푸틴도 아니다! 전쟁이 아니라 계급전쟁을!

 

photo_2021-01-10_09-09-25.jpg

 

30년 넘게 지속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배권 다툼이 왜 이제는 전 영토에서 전면전으로 번진 것일까? 같은 이유로 생활비는 전 세계적으로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의 쇠퇴는 경제 위기가 심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그리고 이것은 대유행 때문만은 아니다)

 

30년 넘게 우크라이나는 빈약해져 가는 국가의 부를 대부분 통제하는 40명 정도의 과두 정치인을 통해 두 개의 주요 언어 집단 사이의 권력 투쟁이 있었다. 그리고 투쟁하는 파벌 배후에는 서방과 러시아 제국주의가 공존하고 있다. 소련 붕괴 이후 나토(NATO)는 17개 국가에서 30개 국가로 확대되었고, 이미 발트해 연안 국가의 러시아 정문에 탱크를 배치했다. 2004년부터 나토와 유럽연합(EU)은 우크라이나를 자신의 영향력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해왔다. 2014년 서방의 지원을 받은 마이단(Maidan) 시위가 친(親)러시아 대통령을 전복시킨 후 푸틴은 행동을 취했다. 그는 돈바스(Donbass)에서 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을 지원하여 크림반도를 "탈환"했다. 그의 의도는 우크라이나를 약하게 유지하려는 것이었지만, 나토의 무기 공급은 우크라이나 군대에 새로운 힘을 실어주었다. 따라서 병력증강은 현재의 위기를 초래했다.

 

서방세계는 러시아의 병력 철수를 요구했고,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반대를 요구했다. 어느 쪽도 양보하지 않자 푸틴은 침공을 결정했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 체제의 "부차적인 피해자"이다. 어느 쪽도 더는 양보할 여지가 없다. 우리는 위기와 역사에서 새로운 국면의 정점에 서 있다. 이것은 새로운 "냉전"이 아니라 훨씬 더 위험한 것의 전조이다. 푸틴은 이미 러시아가 핵보유국임을 서방세계에 상기시켰고, 침공 첫날 서방세계가 개입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세계가 지금까지 결코 보지 못했던"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우크라이나의 위기는 또한 2020년 이후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제국주의 결속의 통합을 강조한다. 이 위기에서 미국은 유럽이 (마지못해) 자신의 노선을 따르도록 강요할 수 있었다. 독일의 노드스트림2(Nord Stream) 승인 중단 발표는 미국을 위한 하나의 승리였다. 한편 중국과 러시아는 무역협정을 체결했고 러시아는 중국의 주요 연료 공급국이다. 의미심장하게도 러시아와 중국의 무역은 현재 달러가 아닌 유로화가 89%를 차지하고 있어서 미국의 영향력에 타격을 준다. 이러한 경제적 분리는 더 많은 경쟁의 길을 열어준다. 2020년 러시아와 중국은 처음으로 일본과 가까운 동태평양 지역에서 합동 군사 훈련을 했다. 기후변화보다 더 인류의 미래를 첨예하게 위협하는 광범위한 제국주의 전쟁의 무대가 열리고 있다.

 

노동자들은 어떻게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러시아의 많은 "전쟁 반대" 시위대의 용감함에도 불구하고, 시위만으로는 부족하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반대 시위는 영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시위였지만 전쟁은 계속 진행되었다. 그것은 적어도 수백만 명이 공식적인 거짓말을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국가 권력 약화를 위한 파업 투쟁에 나서기 위해 수백만 명이 움직일 수 있는 운동을 해야만 한다. 이것은 가까운 시일 내에 실현되지는 않겠지만, 계속되는 자본주의 위기는 모든 곳의 노동자에게 더 많은 고통을 의미한다. 이러한 악화에 맞서 싸우는 것은 우리가 살 수 있는 모든 세계에서 가장 좋은 곳에 사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궁핍과 내일의 제국주의 전쟁을 제공하는 세계에서 살고 있음을 인식하는 운동을 만들어야 한다. 이미 이란에서 미국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노동자들은 투쟁과 독립적인 형태의 조직을 위한 자신의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이다. 그러나 필요한 것은 자본주의가 국제적으로 끝장났다는 것을 인식하는 노동자들을 단결시키고 조직하는 반(反)자본주의 정치의 나침반이다. 이것은 빨리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많은 걸림돌에 직면하겠지만, 현재 수십 년간 지속한 자본주의 위기는 해결책이 없다. 전 세계의 노동계급만이 국가, 민족주의, 착취, 전쟁이 없는 대안 사회를 제기 할 수 있다.

 

전쟁이 아니라 계급전쟁을! 우리에겐 쟁취해야 할 세계가 있다!

 

2022년 2월 25일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국제주의노동자그룹(IWG)

 

<편집자 주>

우리는 제국주의 전쟁에 맞선 투쟁에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와 "혁명적 패전주의" 를 방어하며, 국제적 노동계급 운동인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을!" 지지하며 함께할 것이다.  

 


<출처>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2-02-25/ukraine-neither-nato-nor-putin-no-war-but-the-class-wa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부르주아 선거] 허구와 사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우크라이나 : 동유럽의 군사적 긴장 악화

우크라이나 : 동유럽의 군사적 긴장 악화

  

photo_2021-01-04_18-26-40.jpg

 

<편집자 주>

 

우리는 제국주의 전쟁에 맞선 투쟁에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와 "혁명적 패전주의"를 방어하며, 그것의 국제적 행동인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을!" 지지한다. 이 글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에 작성되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배경, 제국주의 대결 양상과 전망에 대한 유용한 토론 자료로 이글을 게시하며, 이어지는 글도 조만간 게시할 예정이다.

 

 

러시아군은 올 1월 이래 우크라이나 국경 전역에서 대대적인 “군사훈련”을 통해 그 세력을 과시했다. 미국은 러시아의 침공이 임박했다고 거의 매일 발표했다. 나토는 발틱(Baltic)국가들과 루마니아로 군대를 파병했다. “평화를 구원하기 위한” 강도 높은 외교적인 춤판이 벌어졌다. 러시아의 대중매체 캠페인은 서방의 히스테리를 비난하며 러시아 군대가 기지로 복귀했다고 보도하지만, 이는 미국과 나토(NATO)에 의해 즉각 부인되었다. 우크라이나군과 돈바스(Donbass)지역 분리주의자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제국주의 부르주아지들이 마치 악마들의 연회처럼 전쟁을 놓고 벌이는 이 무시무시한 소란에서 그 의도는 다양하고 복잡하며, 상이한 주인공들의 야망과 연결되어 있고, 자본주의 해체기의 특징인 비합리성과 연결되어 있다. 이로 인해 상황은 더 위험스럽고 예측불가능하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위기”의 구체적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든, 이미 이 위기는 유럽에서 군사화, 전쟁 긴장 및 제국주의 모순의 뚜렷한 강화를 의미한다.

 

1. 미국의 공격태세와 압박을 받는 대통령

 

임박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미국의 히스테리적인 비방 이전에 미국은 2021년 타이완에 대한 중국의 “임박한 침공” 에 대해 유사한 비방을 연출했었다. 미국의 지도적 역할의 체계적인 퇴락에 직면하여 바이든 정부가 추구하는 제국주의 정책은 트럼프가 도입한 군비 강화를 계속 이어가면서 우선적으로는 경제, 정치, 군사적 수단을 주요한 적(敵)인, 중국에 대항해 집중하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러시아의 목표에 대한 비타협적인 입장은 2021년 가을에 북경으로 보냈던 신호를 강화한다. 두 번째로, 조 바이든은 세계의 “분쟁지대”에 초점을 강조하여 긴장 강화정책을 전개하는데, 이 정책의 목표는 제각각 따로 놀고 있는 상이한 제국주의 열강을 설득해서 지배적인 보호자의 보호 아래 자리 잡는 것이 더 낫다고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책은 자본주의 해체가 강제한 한계와 충돌했고, 태평양에서 한국과 일본 및 인도와는 거리를 두면서 ‘백인’ 영어권 국가들(미국, 영국, 호주)이 결집한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 안보 동맹)를 창설함으로써 단지 미온적인 성공을 거두었을 뿐이다. 오늘날 같은 종류의 정책이 나토에서 유럽 국가를 미국의 주도 아래 다시 모으기 위해 러시아에 대항해서 시행된다. 이때 미국의 선동은 끊임없이 러시아의 침공을 비난하면서 동시에 미국은 냉소적으로 나토 내 국가들과는 대조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는 방어 의무가 없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않을 것을 분명히 한다. 이것은 유럽 국가에 대한 불성실한 메시지이다. 그런데 아시아에서 미국의 충실한 부관 역할을 했던 보리스 존슨 외에 마크롱과 숄츠가 모스크바로 향해 연출한 최근의 외교적인 춤사위는 독일과 프랑스의 부르주아지가 그들의 특수한 제국주의적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해 얼마나 애쓰는지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바이든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수와 사회경제적 계획의 반복된 실패로 인해 크게 훼손된 자신의 이미지가 이러한 대결정책을 통해서 개선되기를 바란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재임 1년이 지난 설문조사에서 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제외한 이제까지 모든 선출된 대통령 중에서 가장 낮은 지지율을 얻었다.”(CNN 폴리틱스, 2022년 2월 6일 자) 그리고, 그 결과로 “그의 당은 올해 11월에 있을 중간선거에서 패배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라 프레스, 몬트리올, 2022년 1월 23일 자) 요약하자면, 미국이 공격태세를 취하지만, 미국 대통령의 행동 범위는 국내에서의 비호감도 때문에, 그리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경험 이후 ‘지상군’을 대대적으로 투입하는 것은 거론할 여지가 없을 뿐만 아니라 제한적이다. 우크라이나 국경에서의 미군의 존재는 그래서 상징적인 것으로 머문다.

 

2. 함정에 빠진 그리고 방어태세에 있는 러시아

 

지난 10년간 우리가 강조해온 것처럼, 러시아는 경제적으로 왜소체(矮小體)에 불과하지만, 한때 하나의 제국주의 블록 전체를 이끌었던 시기의 유산인 강력한 전투력과 무기 덕분에 세계에서 “분쟁 야기자”의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러시아가 지금 세계적으로 공격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와는 반대로, 러시아는 전반적으로 그 국경을 따라 증가하는 압력을 받는 상황에 놓여있다.

 

- 탈레반이 카불에서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중앙아시아에서 “스탠스(Stans)” 동맹국들(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에 대한 이슬람의 위협이 큰 부담이 되고 있다. 2008년 남오세티야(South Ossetia)와 압하지야(Abkhazia)를 점령한 후 조지아(Georgia)와의 전쟁은 은폐되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는 2020년 나고르노카라바흐(Nagorno-Karabakh) 전쟁 이후 후자가 터키에 의해 크게 구애를 받는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사이의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카자흐스탄의 불안정화는 러시아에 악몽인데, 이 나라는 러시아의 동쪽 요새의 방어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 유럽에서 러시아의 서쪽 요새에서 중심 지역인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우크라이나 국경에서 모스크바까지 45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음)는 최근 몇 년간 강력한 압력을 받고 있다. 러시아는 그곳에서도 친(親)러시아적인 체제를 계속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었지만, 2014년 키예프(Kiev)에서의 오렌지 혁명이 우크라이나를 유럽 쪽으로 기울게 했고, 2020년에는 벨라루스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뻔했다. 2014년 크림반도를 점령하고 동(東)우크라이나(도네스크와 루간스크)에서 러시아어권 분리주의자들을 후원함으로써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체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기를 바랐다. “정말로 러시아 대통령은 돈바스공화국[그 나라의 연방제 구조는 상당한 수준의 지방 자치를 포함한다] 이라는 우회로를 거쳐서 우크라이나 정치에서 발언권을 확보하기 위해 2014년 9월에 서명한 민스크(Minsk)협약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 반대 상황이 발생했다: 민스크협약의 실행은 진전이 없는 상태에 놓여 있을 뿐만 아니라 2019년 4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의 대통령 선출은 모스크바에서 키예프와의 관계개선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켰던 그의 전임자가 도입한 ‘러시아 세계’와의 결별 정책을 더 강화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와 나토 사이의 군사적-기술적 협력은 더욱더 긴밀해진다. 동맹국의 회원국인 터키는 키예프가 돈바스의 군사적인 재정복을 시도할까 봐 두려워하게 하는 전투용 드론을 공급했다. 그러므로 아직 시간이 있을 때 모스크바가 다시 주도권을 잡아야 할 문제이다." (르몽드 디플로매틱, 2022년 2월호, 8쪽).

 

점점 더 중국에 중점을 두는 미국의 경향을 놓고 볼 때, 푸틴은 이 시기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압력을 높이고 그런 다음 “제국주의의 무대 위에서 자신의 입지를 협상하기에”에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하이브리드(hybrid) 전쟁’ 정책을 추구하는데, 이때 군사적인 긴장, 사이버 공격, 경제적 위협(러시아 가스)과 정치적 위협(배신하는 공화국들의 인정) 등 여러 가지 압력수단이 동원된다. 그러나 미국의 정치 및 매체의 공세가 그를 억제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점령하기 위한 군사 작전을 요란스럽게 예보함으로써 미국은 러시아 측의 작은 행동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나고 위험하고 아마도 장기간의 군사 작전으로 밀어 넣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러시아 국민도 역시 전쟁에 동원되어 대다수가 “시체”로 되돌아오길 바라지 않는다. 러시아의 정치학자이자 러시아 국제정치전문가인 표도르 루캬노프(Fyodor Lukyanov)는 강조하기를, “힘의 과시와 힘의 사용 사이의 선을 넘는 것은 위험과 결과에 있어서 다른 수준으로의 이동이다. 현대사회는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그들의 지도자들도 이러한 점을 알고 있다.” (드 모르건에서 인용, 2022년 02년 11일)

 

 

3. 유럽에서의 증가하는 긴장과 군사화

 

우크라이나 사태는 지금 이미 유럽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첫째, 제국주의 충돌의 첨예화, 미국의 압력 그리고 ‘각자도생’ 원칙의 강조는 여러 유럽 국가의 위치에 극도로 강한 압력을 행사한다. 바이든의 비타협적인 발언은 그들이 입장을 취하도록 강제하고 그들 사이의 틈은 점점 더 커지고 있는데, 이는 나토 또는 유럽연합(EU)에 광범위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한쪽에는 유럽연합 내부 합의의 제약에서 벗어난 영국이 미국의 충실한 부관으로서 위치한다. 영국 외무장관은 타협점을 찾으려는 독-프랑스의 시도를 심지어 ‘두 번째 뮌헨’이라고 부른다. 루마니아, 폴란드 또는 발틱국가들과 같은 여러 동유럽 나라들은 나토의 강경한 태도를 요구하며 미국의 보호 아래 단호하게 입장을 정하고 있다. 반면 프랑스와 독일은 마크롱과 숄츠의 푸틴과의 치열한 협상에서 강조했듯이 훨씬 더 주저하며 갈등에 대한 독자적인 접근법을 개발하려 하고 있다. 이 갈등은 어떠한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제국주의적 이해관계가 이들 국가가 러시아에 대한 그들만의 정책을 갖게 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 부분이 바로 미국이 압력을 행사하는 대상이다.

 

전반적인 수준에서 우크라이나에서의 대결은 유럽대륙에서 전쟁의 목소리와 경제의 군사화 경향에 영향을 미칠 것인데, 그것도 무질서와 각자도생의 문맥 안에서 모순의 심화를 놓고 볼 때 우리가 1990년대의 전(前)유고슬라비아에서의 전쟁 또는 2014년 러시아에 의한 크림반도 점령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심층적인 수준에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각자의 제국주의 이해를 방어하기 위한 여러 나라(특히 독일과 프랑스)의 위치는 유럽 내의 긴장을 더 첨예화하고 각자도생 경향의 발달과 연결된 혼란을 한층 더 강화할 것이며, 단기적 그리고 중기적으로 상황의 예측 불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4. 전망은 어떠한가?

 

의심의 여지 없이 그 주역 중 누구도 전면전을 펼치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편으로 동맹은 증가하는 각자도생 경향 때문에 신뢰할 수 없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특히 관련국 어디에서도 부르주아지가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은 여전히 주요한 적인 중국에 집중하고 바이든 대통령은 한편 그의 전임자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지상군’ 파병을 어떻게든 피하고(비교, 러시아는 ‘아프가니스탄 신드롬’에서 볼 수 있듯이 경제와 군사적 강도를 약화할 장기적이고 대대적인 전쟁을 두려워한다), ‘더러운 임무’는 사적인 회사들(러시아의 경우 바그너(Wagne)그룹 같은)이 해결하게 만들면서 정규군을 너무 많이 투입하는 것을 마찬가지로 피한다. 러시아 국민은 백신 접종률을 높이는 데 있어서 계속되는 어려움에서도 볼 수 있듯 국가를 깊이 불신한다. 유럽으로서는 결국 전쟁은 경제적인 자살이 될 것이다. 그리고 국민들은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전면적이고 대대적인 전쟁의 부재는 교전 행위가 결코 일어나지 않는 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행위는 우크라이나에서 지금 이미 하리코프(Kharkov)와 루간스크( Luhansk)에서 분리주의자 민병대와의 ‘저강도’ 전쟁을 통해 일어나고 있다. 자본주의 해체기와 연결된 ‘각자도생’의 증가와 비합리성과 결합된 다양한 제국주의자들의 제국주의적 야망은 돌이킬 수 없이 유럽 자체에서, 점점 더 혼란스럽고 잔인한 형태를 보여줄 수 있는 갈등의 배가라는 전망을 의미한다. ‘하이브리드’ 갈등(군사, 경제, 정치적 압력의 조합)의 배가뿐만 아니라 미국(푸틴에 대한 트럼프의 ‘호감’을 참조)과 보기를 들어 독일에서처럼 유럽 부르주아지 내부에서의 긴장, 그리고 그들의 정치기구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점증하는 통제력 상실(포퓰리즘의 물결) 등.

 

민족주의의 증오에 찬 비방에 대항해 코뮤니스트 좌파는 러시아든 미국이든 독일이든 프랑스든 아니면 우크라이나든, 상이한 부르주아지의 이해에만 봉사하며 노동자를 야만적인 충돌에 끌어들일 수 있는 모든 면에서의 제국주의 거짓말을 비난한다. 노동계급은 조국이 없고, 자본주의의 착취에 대항한 노동자 투쟁은 국제적이며, 성별, 인종, 민족 등을 근거로 하는 그 어떤 분열도 거부한다. 제국주의 상어들 사이에서 대결의 심화에 대항해 노동자들이 투쟁으로서 대응하지 않으면 각자도생, 군사화 및 비합리성이 증가하는 맥락에서 이러한 대결은 모든 층위에서 증대할 것임을 노동계급은 의식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특히 자본주의의 중심에 있는 국가의 중심부에서 노동자 투쟁의 전개는 군국주의적 야만의 확산에 반대하는 필수적인 무기이기도 하다

 

2022년 2월 18일

허배너스(R.Havanais)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7144/ukraine-worsening-military-tensions-eastern-europe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