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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2호] 선거 서커스 반대! 계급투쟁을 위해!

 선거 서커스 반대계급투쟁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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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부르주아 선거는 노동자를 똑같이 속인다투표가 이 자본주의 정치경제사회 체제의 틀 안에서 노동계급의 생활 조건과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유용한 도구라는 것이다.

 

거짓말에는 항상 민주주의라는 이름이 붙는다하지만 정치권력은 지배계급즉 대기업금융지주 같은 부르주아지가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어떠한 것도 지배할 수 없다.

 

정치권력은 이 사회를 통치하는 계급인 부르주아지가 국가기구를 통해 주로 노동계급에 행사한다여기서 국가기구는 시민을 위해 봉사하는 중립적인 실체가 아니라 오히려 노동자의 지배와 억압의 도구로서 주인인 부르주아지의 이익을 위해 행사된다.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있어 국회의원시의원의 숫자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그들은 지금과 같은 인류 재앙의 시기에 프롤레타리아에 불리한 법(사회보장코로나19 재난지원금 등)을 통과시켰고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의 국가기구와 언론에 대한 조종통제는 선거와 선거 참여 정당들이 여전히 자신의 이익을 방어하는 다음 정부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지배계급에 보장한다.

 

지금까지 선거전에 뛰어들었거나 참여하고 싶은 정당들은 부르주아지 편에 서기 위한 유일한 선택을 했음을 공표해왔다.

 

하지만 우리 혁명적 코뮤니스트들은 선거 준비냐혁명 준비냐를 현수막으로 내걸었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한 표가 삶의 조건을 개선할 것이라는 사기에 속으면 안 된다투쟁이 아닌 투표로 우리의 주장(임금삭감 반대실업증가 반대인종차별반대 등)을 관철시킬 수 있다고 속이는 자들의 거짓 약속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설령 노동자 편에 서서 수백만 표를 얻는 정당이 있다 하더라도 현 정치사회 체제의 본질을 바꾸기에는 한참 부족하다그들은 항상 의회 내에서 소수에 속할 것이고만약 그들이 터무니없이 다수가 된다면지배계급은 노동자에 대한 자본 독재의 참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의회 자체를 폐쇄하고민주적 가면을 버릴 것이다.

 

이것이 파시즘의 교훈이었다.

 

부르주아 선거에서 노동자가 던진 수백만 표는 쓸모가 없다그러나 수십만의 노동자들이 벌인 파업 투쟁은 임금 인상과 선거 참여로는 해낼 수 없는 생활 조건의 실질적 향상을 며칠 만에 이룰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부르주아지의 심각한 경제적정치적 위기의 시기코뮤니스트 노동자와 노동자 투사들은 코로나19-자본주의 위기 전가에 맞서 파업 투쟁을 확산시켜야 한다노동자들의 가장 의식적인 부분인 코뮤니스트 노동자들과 아래로부터의 계급투쟁이 함께 만들어 낼 대대적인 파업 투쟁은 노동계급이 부르주아지로부터의 정치권력을 장악하고자본주의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킬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2020년 10

국제코뮤니스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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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미국 대선을 앞두고 부르주아 선거(서커스)의 본질을 밝히면서, ‘투표가 아닌 계급투쟁을 강조하는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의 입장을 지지하며지난 대선(2017년)에서의 우리 입장을 다시 싣는다.

 

 

정권교체의 본질은 야권세력이 과거 노무현 정권의 반노동자 정책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아서 그들을 지지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이 체제의 실질적인 지배계급이 최고 권력자의 얼굴만 바꾼 채 계속 노동자·민중을 지배한다는 것에 있다촛불의 민심이 정권교체를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실제로는 이 체제의 지배자인 자본가계급의 이윤추구를 보장하고 이 사회의 크고 작은 권력을 가진 지배계급을 지키기 위한 정권교체이다지배계급은 이러한 정권교체의 본질을 숨기기 위해 자신들과 적대적인 노동자계급을 국가의 일부인 시민사회로 통합시키려 촛불 투쟁을 시민혁명이라 칭송하고 노동자계급을 시민으로 머물게 한다촛불 투쟁에 참여한 노동자들이 시민이 되어 자본가계급과 함께 투표소에서 정권교체를 이루어 내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민주주의 혁명이다.

 

따라서 노동자 운동 진영에서는 대선을 맞이해 정권교체론에 대한 비판을 넘어 부르주아 선거에 대한 환상까지 넘어서는 투쟁을 해야 한다.

 

노동존중은커녕 최소한의 노동 삼권과 생존을 위한 최저임금도 보장하지 않은 반노동자 악법과 제도를 만든 주역이 규칙을 정한 자본주의 선거에서 노동자는 승리할 수도 권력을 가질 수도 없다어디에도 노동자를 위한 자본주의 선거는 존재하지 않으며그런 선거는 유일하게 노동자 고유의 투쟁이 지금의 촛불 투쟁과 같이 대대적으로 전 사회를 뒤덮을 때나 가능하다따라서 노동자계급은 절대 불리한 부르주아 선거에 뛰어들어 자본가 정치세력의 들러리를 서거나 권력에 구걸하지 말고노동자들에게 선거의 본질을 제대로 알리고 노동자 정치의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선거가 아닌 투쟁으로 노동자가 직접 정치에 참여하고 권력을 행사하기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

 

노동자 정치는 부르주아 국가기구와 자본에 포섭된 노동조합과 노동자 정당으로는 불가능하다부르주아 정치에 참여하면서 그들의 왼편에 자리 잡는 노동자 정치그들의 민주주의 방식을 따르는 가짜 노동자 민주주의로는 절대 불가능하다그것은 오직 자본과 국가권력그리고 부르주아 정치로부터 독립된 노동자 정치 세력화를 통해 실현할 수 있다노동자 정치는 대대적인 계급투쟁 속에서 다수 노동자 대중이 참여하는 정치광장에서 탄생한다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열정적이고 대대적인 토론과 직접행동계급적 연대가 그것을 확장시킬 것이다.

 

노동자 정치는 노동자 민주주의노동자 혁명노동자 권력이 실현되는 정치이며이것을 목표로 현실에서 투쟁하는 행동의 정치이다노동자들이 이러한 목표로 향하는 모든 곳에 부르주아 민주주의부르주아 정치부르주아 독재 권력이 막아서고 있다그것은 하나의 체제이다그것은 세상을 지배하는 폭력이며노동자를 착취하는 생산양식이며전쟁과 학살과 굶주림과 환경재앙과 인간 파괴의 근본 원인인 자본주의 체제이다노동자 정치는 바로 이러한 자본주의 체제와 싸우는 혁명적 정치이다.

 

박근혜 탄핵 과정에서 보듯이 주권자가 직접 권력을 끌어내리지 못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노동자계급의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노동자계급의 민주주의는 선출된 권력을 언제든 소환할 수 있어 선출한 자에 의해 통제되고모든 대표자의 특권을 폐지하여 위임받지 않은 권한을 행사할 수 없고소수()가 배제되지 않고 모두가 평등한 조건으로 향하며선출되지 않은 관료제는 점진적으로 폐지하고 노동자가 직접 정치와 행정에 참여하는 아래로부터의 직접 민주주의이다이러한 민주주의만이 노동자의 생산과 일상을 스스로 조절하고다수가 사회를 통제할 수 있다이것은 노동자들의 삶을 위선과 불평등의 부르주아 민주주의-법 제도에 맡기지 않고 투쟁으로 돌파하면서 스스로 조직하고 민주주의를 창조해 나갈 때 가능하다촛불 투쟁과 노동자 투쟁이 나아갈 길은 바로 지배계급의 민주주의 환상을 깨고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만들어 나가는 것모든 권력을 누구에게도 위임하지 말고 스스로 권력에 참여하고 행사하는 것정권교체를 넘어 선거를 넘어 자본주의 체제와 싸우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무게에 눌려 후퇴하고 움츠렸던 노동자 운동과 혁명운동세력은 이제 반격에 나서야 한다자본가계급과의 협력은 노동자 투쟁의 무덤이다노동자가 시민으로 후퇴하는 자본주의 선거는 노동자 투쟁의 독약이다자본주의 체제와 싸우지 않고 재벌해체와 자본주의를 개량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현재 위기와 참상의 원인이 자본주의 체제인 것을 가리고 건강한 자본주의 환상을 퍼뜨린다.

 

우리 앞에 이러한 걸림돌은 늘 있었다우리가 후퇴할수록 걸림돌은 더 늘어만 갔다하지만 우리가 길을 돌아가지 않고 정면 돌파할 때 길은 다시 열릴 것이다둑은 큰 물결에 허물어진다그러나 작지만 곧고 강한 물살이 먼저 균열을 내지 않으면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비록 우리는 지금 소수지만곧고 강한 물살이 되어 싸울 것이고촛불 투쟁보다 더 크고 높은 투쟁의 물결과 만나 세상을 바꿀 것이다.

 

선거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노동자를 위한 자본주의 선거는 없다.

정권교체를 넘어 선거를 넘어 자본주의 체제와 전면적으로 투쟁하자!

노동자민주주의노동자혁명노동자 권력을 향한 노동자 정치 실현하자!!!

 

2017년 4월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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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2호] 트럼프와 바이든: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잘못된 선택

 트럼프와 바이든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잘못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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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와 지구상의 모든 국가를 지배하는 생산체제인 자본주의는 깊은 쇠퇴의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한 세기의 쇠퇴기가 마지막 단계에 도달해 광적인 전쟁의 소용돌이경제 불황환경 재난 및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지구상 모든 국가는 이 죽어가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공공연한 친()자본주의 정부든 가짜 사회주의’ 정부든민주적이든 독재의 옷을 걸쳤든모든 정부는 자본의 진정한 목표를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인간의 필요 충족이라는 단 하나의 생산 목표를 가진 세계 공동체인 우리 종()에게 하나뿐인 미래를 희생하면서 이윤을 확대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당과 대통령이 정권을 잡느냐를 선택하는 것은 자본주의 문명을 재앙으로 향하는 길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는 잘못된 선택이다이는 다른 선거 서커스와 마찬가지로 다가올 미국 대선에도 적용된다.

 

트럼프는 노동자의 친구가 아니다

 

많은 사람에게 트럼프는 코로나-19의 현실과 기후 위기에 대한 부정에서부터 법과 질서라는 이름의 경찰 폭력에 대한 사과인종주의자와 극우세력에 대한 구애그리고 그의 측근 여성에 대한 역겨운 개인적인 대우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의 썩어가는 모든 것에 대한 공공연한 옹호자임이 분명하다그러나 그의 저격수 마이클 코헨(전 변호사)의 말에 따른 거짓말쟁이사기꾼인종주의자라는 사실이 자본가계급의 중요한 파벌들이 그를 지지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왜냐하면그의 노골적인 국가주의적 경제와 환경 및 보건 서비스 규제 완화가 그들의 이윤을 증가시키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 선거에서 트럼프는 많은 미국 노동자들에게 미국 우선’ 보호주의가 일자리를 구하고 전통 산업을 부활시킬 것이라고 확신했다하지만 코로나19 위기 이전부터 중국을 포함한 세계 경제는 이미 새로운 불황에 빠져들고 있었고대유행의 경제적 결과는 훨씬 더 심각할 것이다보호주의는 어떤 경제도 세계 시장의 무자비한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환상이며트럼프의 미국 노동자에 대한 약속은 2019년 불황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공허한 것으로 입증되었다.

 

하지만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트럼프에 따르면 조 바이든은 버니 샌더스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lexandria Ocasio-Cortez), 일한 오마르(Ilhan Omar) 등 주변의 '스쿼드()'가 체현한 '급진 좌파'의 손에 있는 꼭두각시일 뿐이기 때문에 미국을 '사회주의 유토피아'로 만들 것이라고 위협하고 있다.(1)

 

사실 바이든은 트럼프와 공통점이 많은 오바마와 클린턴의 주류 민주당 정책의 지속성을 대변하기 때문에 민주당 후보로 선택되었다중국 제국주의에 맞서기 위한 "동양으로 회귀"는 오바마 정권하에서 시작되었는데오바마는 불법’ 이민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접근법 때문에 최고의 추방자로도 알려져 있었다물론 민주당은 트럼프와 차이가 있다그들은 푸틴 러시아에 대한 트럼프의 아첨을 의심하는 군사 및 안보 기득권 세력과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트럼프의 무분별한 국제조약과 동맹 파기로 미국의 외교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 때문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그러나 이것은 미 제국주의를 위한 최선의 전략에 대한 차이점이다마찬가지로그들은 민주주의적 신비화가 사회질서 유지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기에 트럼프가 민주주의’ 규범을 경시하는 것에 반대한다.

 

민주당은 미국 자본주의의 양자택일 정당에 지나지 않는다지난 몇 년간 민주사회주의동맹과 같은 내부 압력 단체와 그린뉴딜,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BLM), 그리고 공식 정당 안팎에서 다양한 형태의 정체성 정치 옹호자들이 성장한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이 급진 좌파는 위기와 전쟁으로 황폐해진 세계에서 자유기업 우파와 광신도를 포함한 지배계급의 모든 파벌이 고수해야 하는 국가자본주의보다 좌파적 버전만을 제공한다좌파의 어떤 정책도 자본주의의 본질이자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의 근원인 민족국가이윤을 위한 생산임금 체제의 존재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노동계급이 미래의 열쇠를 쥐고 있다

 

자본주의 정치인이나 정당은 체제의 위기에서 벗어날 방법을 제시할 수 없다세계의 미래는 우리가 살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생산하는 계급에 달려있으며그들은 모든 나라에서 자본에 의해 착취당하고모든 곳에서 똑같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진정한 사회주의또는 맑스가 그것을 코뮤니즘이라고 부르기를 선호했던 것처럼인류는 마침내 국가국경그리고 임금 노예제도로부터 해방될 것이다.

 

이것은 아주 먼 전망으로 보일런지도 모른다일상생활 속에서 노동계급은 수천 가지 방식으로 분열된다일자리 경쟁국경성별인종 그리고 무엇보다도 노예제도와 인종주의의 해로운 유산을 가진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 말이다.

 

그러나 노동계급은 집단으로 일하고 집단으로 자신을 방어해야 하는 연합의 계급이기도 하다그들이 고개를 들었을 때 패배를 피하려면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계급의 분열을 극복하는 경향이 있다인종주의와 민족주의는 노동자를 분열시키는 강력한 도구지만계급투쟁이 전진하려면 극복할 수 있고극복해야 한다코로나19 대유행이 처음 발생했을 때미국 노동자들은 자동차공장병원슈퍼마켓 또는 창고에서 감염 보호 대책 없이 일하도록 강요당하는 것에 반발했다그리고 백인’, ‘흑인’, ‘라틴계’ 또는 다른 모든 노동자가 피켓 라인에서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러한 단결의 순간은 백인 우월주의와 자본주의의 썩어가는 몸에서 흘러나오는 파시스트 운동과 같은 인종 분열의 고전적’ 표현과 상반된다그러나 그들은 또한 인종을 계급보다 우선시하고 민주당에 의해맥도날드나 애플과 같은 대기업의 이익에 의해노동조합에 의해 한마디로 국가 체제에 의해 완전히 도구화하여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의 동원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인종에 기반을 둔 투쟁은 노동계급의 통일로 이어질 수 없다.: 지배계급 일부는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착취하는 사회로서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현실을 감추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기꺼이 무릎을 꿇고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을 축복한다.

 

미국 노동계급은 선거를 앞두고 엄청난 이데올로기적 공세에 직면해 있는데정치인과 미디어 슈퍼스타들은 진정한 권력이 투표소가 아닌 작업장과 거리에 있는 게 아니라 유일한 희망은 투표할 때뿐이라고 주장한다또한최근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에서 보았듯이흑인과 백인의 무장 '민병대사이 폭력적인 충돌에 휘말릴 위험에도 직면해 있다미국 사회는 베트남 전쟁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양극화되고 있으며특히 트럼프가 이미 암시한 대로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전체 부르주아 지형에서 내전’ 위험은 선거 이후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이는 노동자들이 좌우 사이렌 소리를 거부하고민주적 슈퍼마켓(부르주아 투표)의 잘못된 선택을 거부하고자신의 계급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단결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할 뿐이다.

 

2020년 9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1] 참조 : “트럼프 대 스쿼드()” : 미국 정치기구의 악화 세계혁명 384, 2019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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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미국 대선을 앞두고 부르주아 선거(서커스)의 본질을 밝히면서, ‘투표가 아닌 계급투쟁을 강조하는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의 입장을 지지하며지난 총선에서의 우리 입장을 다시 싣는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는 전 세계적인 재앙이면서도 노동자계급에게 더욱 큰 고통과 희생을 예고하고 있다한국의 상황도 마찬가지다선거 이후 그 결과와 관계없이 자본가계급과 정부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을 시작할 것이다문재인 정부가 코로나19 사태를 상대적으로 잘 대응하고 있다는 선전에는 노동자계급의 일방적인 희생과 인내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의 위기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자본주의는 이미 오랜 기간 깊은 위기에 빠져 있었고코로나19 사태는 더 큰 위기를 불러올 최신 경보 신호일 뿐이다자본주의 위기를 막을 수 없는 부르주아 정치의 무능은 포퓰리즘과 파시즘에 이어 인종주의와 배외주의를 부추기면서 노동자들을 더욱 심각한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코로나19 사태와 함께 자본주의는 인류의 평화와 공존이라는 보편적 가치마저 공식적으로 내팽개쳤다코로나19는 인류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지만지배계급은 이윤 창출을 위해 착취를 멈추지 않고 있고오히려 위기를 노동자계급에 전가하고 있다.

 

 

 

이렇게 자본주의가 야만으로 질주하는 것은 착취 체제 자체가 작동한 결과이다이것은 선거를 통해 지도자나 대표를 잘못 선출해서가 아니라 명백하게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이다해결책은 오로지 자본주의 체제를 혁명적으로 전복하고 생산노동인간 자원과 자연 자원을 인간의 필요에 따라 조직해 소수의 착취자에게 봉사하는 이윤의 법칙을 대체하는 것뿐이다.

 

 

 

노동자계급은 노동자의 해방이 대통령 당선/의회 장악이나 다수파 선출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는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노동자계급의 권력 장악과 완전한 정치참여는자본주의와 그 국가기구의 파괴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비록 지금 소수이지만선거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다수가 사회를 통제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려는 노동자들이 우리의 희망이다자신의 삶을 위선과 불평등의 부르주아 정치에 맡기지 않고투쟁을 통해 스스로 민주주의를 창조하는 사람들모두에게 평등하고 모두가 참여하는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노동자계급의 미래이다.

 

 

 

자본주의 쇠퇴기 모든 부르주아 선거는 사기와 다름없다매일 세계 곳곳에서 수백 번 넘는 투쟁이 일어나고노동자들은 1년에만 수만 번의 투쟁을 벌인다하지만고작 몇 년에 한 번 치루는 선거만으로 노동자계급은 자신이 누려야 할 권력을 빼앗기고일상의 대부분을 지배받는다이것이 노동자들이 선거를 통해 노예가 되는 민주적인 권리의 실체다노동자들이 이러한 부르주아의 정치와 선거제도에 복종하는 한자본주의를 결코 넘어설 수 없다.

 

 

 

노동자계급의 정치는 투표소가 아니라 저항하고 투쟁하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노동자들이 살아 숨 쉬며 토론하고 행동하는 곳계급적으로 연대하고 단결하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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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정부의 디지털/그린 뉴딜은 전형적인 자본의 이윤추구 정책

부르주아 정부의 디지털/그린 뉴딜은 전형적인 자본의 이윤추구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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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 제로(탄소 중립사회는 이윤이 생산 목적이 되지 않는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코뮤니즘 사회에서만 환경 파괴로 인한 기후변화바이러스 창궐을 막을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7월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를 개최하였다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을 고용·사회 안전망 강화라는 기반 위에서 추진하고, 2025년까지 국고 114조 원을 포함한 총 160조 원을 투자하여 19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하였다그러나 조금만 내용을 살펴봐도 넷 제로(탄소 중립)는 구체적 방법과 내용이 빠졌고노동자에게는 더 많은 고통 분담과 자본에는 이윤추구의 새로운 방법만을 말하고 있을 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이라는 화려한 수사는 빈 깡통이 요란하다는 말처럼 속 빈 강정에 불과하였다역시나 소문난 부르주아 정치판은 빛 좋은 개살구라는 역사적 명제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 그린 뉴딜은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동시에 탈 탄소 산업이라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해 녹색 일자리도 창출하고 지구도 살리고 돈도 버는 정책으로 포장되어 있다하지만 탄소배출 제로 의지와 전망이 없는 부르주아 정권의 추진과제들은 공허한 내용뿐이었다. "정부가 2025년까지 수십조 원의 예산을 들이는 그린 뉴딜을 추진하지만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더 늘려 잡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린 뉴딜로 인한 감축 효과는 애초 줄이기로 한 6천만 톤 중 약 20%인 1,230만 톤가량에 그친다는 것이다." (한겨레, 2020.07.16)

 

이는 탄소 문명이 탄생한 사회적 배경더 나아가 환경 파괴의 근본 원인에 대한 성찰할 능력도의지도 없기 때문이다이러한 철학 부재는 당연히 대안의 부재로 나타나기 마련이다부르주아 정부는 자신의 무능과 대안 빈곤을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해 장밋빛 청사진으로 제시했지만그들의 계급적 성격은 감출 수 없었다탈 탄소 문명을 탈피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빠져 있고 오로지 자본의 이윤추구 정책에 맞춰져 있다위기에 처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에 인색한 금융자본이 이른바 한국판 뉴딜에 수십조의 금융을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은 그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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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권은 그동안 대북 화해 제스처와 한일 무역 분쟁을 계기로 민족주의 각을 내세워 이명박박근혜 정권과 차별화를 시도하였다그러면서 그린 뉴딜은 이명박 정권의 녹색성장과는 다르다고 주장하였다이명박 정권은 표면적으로 친환경 정책을 표방했지만실제로는 토건 사업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였고 그 결과물이 최악의 4대강 사업이었다하지만 문재인 정권에서도 그동안 세계 곳곳에 노동자의 필요와 생존보다는 자본의 입맛에 맞는 토건 사업을 추진한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이런 연장선에서 그린 뉴딜은 최소한의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구체적 목표·계획이나 어떠한 규제책도 제시하지 않았다그동안 친자본적인 정책 추구를 이번 뉴딜정책에서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이전 정권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음을 스스로 보여주었다이쯤 되면 그린 뉴딜은 자본 뉴딜로 불러야 할 것이다.

 

그린 뉴딜의 이러한 성격은 디지털 뉴딜에서도 마찬가지이다한국판 뉴딜의 배경 중 하나인 코로나19는 사회적 연대(기본적으로는 환경 파괴를 방지해야 하지만의료의 공공성 강화혈장 치료제 개발 등등)로만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하지만 스마트 의료 인프라를 목적으로 디지털 기반 스마트병원디지털 돌봄 등과 같은 원격의료 정책 등의 비대면 산업 육성 정책의 사례를 보면 의료 공공성은 처음부터 관심 밖이고 자본의 이윤추구 정책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여기에 더해 공공서비스의 디지털 전환율을 2025년까지 80% 이상 달성하겠다는 목표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노동강도 강화와 사회적 약자에게 더 많은 고통을 전제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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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딜정책은 고용·사회 안전망 강화라는 기반 위에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을 추진한다고 했다그렇다면 자본 중심이 아닌 노동계급의 이익에 기반하고 추진되어야 한다자본은 그린보다는 뉴딜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고 디지털 뉴딜에서도 마찬가지이다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이해관계를 배제하고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국가정책은 추진될 수 없다그런데도 조합주의자들과 의회주의자들을 비롯한 온갖 개량주의자들은 일부 유럽국가나 미국처럼 정의로운 전환을 바탕으로 그린 뉴딜로 수정한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넷 제로가 가능하다는 환상에 빠져있다그러나 일부 유럽국가미국에서 넷 제로 대응에 사회적 약자를 참여시키는 것은 세계화된 자본의 본질을 미화시키기 위해서이다.

 

환경 파괴는 이윤을 생산의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근본 원인이다자본주의에 대한 근본 문제 제기 없이는 환경 파괴를 막을 수 없다또한고용·사회 안전망 구축 역시 마찬가지이다자본주의에 대한 문제 제기 없는 정의로운 전환은 근본 해결은 고사하고 환경 파괴와 사회안전망 부재라는 구렁텅이 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노동자·인민의 필요에 따른 생산체제와 생산수단을 노동계급이 통제할 수 있는 코뮤니스트 사회에서만 환경 파괴를 방지하고 고용·사회 안전망을 구축할 수 있다.

 

모든 사람에게 건강하고 안전한 환경을 누릴 권리와 자연환경 파괴를 막을 의무가 함께 주어지는 세상은 오로지 코뮤니스트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2020년 7

국제코뮤니스트전망 윤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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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건설] 세계 혁명당 건설이 절실하다.

세계 혁명당 건설이 절실하다.

 

 

<편집자 주>

올가을 본격적으로 진행될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진영(이른바 '좌파' 또는 '사회주의 자임 세력'과 분명히 구분되는)의 '당 건설' 논의를 앞두고, 당(분파)에 대한 기본 개념과 당 건설 원칙을 정립하기 위해 ICP를 포함한 코뮤니스트좌파 진영의 입장과 자료를 공유합니다.

 

 

앞으로의 연재에는 과거 '사회주의당 건설 운동' 실패에 대한 최소한의 반성과 성찰 없는 조직보존 도구로서의 (사이비) 당건설 논의 흐름, 혁명적 주체와 전망이 부재한 후퇴한 당 건설 경로에 대한 엄중한 경고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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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은 세 번째 세계 혁명당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이 창설된 지 100년이 되는 해였다. 100년 동안 무엇이 달라지고 무엇이 그대로인가왜 세계혁명은 인류의 역사적 과제였으며아직도 인류의 유일한 희망인가우리는 대답해야 한다.

 

100년 동안의 근본적 변화를 자본주의와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에서 찾아보기로 하자. 1차 세계대전을 자본주의의 번영과 쇠퇴를 가르는 역사적 기점이라는 점에 세계의 맑스주의자와 코뮤니스트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20년 동안의 자본주의의 번영을 보고 그리고 지금의 자본주의의 표피적 성장 모습을 보고 쇠퇴를 부정하는 이른바 자본의 좌파도 있지만여기서는 논외의 대상으로 한다핵심적 논쟁은 쇠퇴의 국면을 총체적 해체국면인가 아닌가에 놓여있다자본주의의 위기가 잉여가치의 생산과 분배 모두에 있음은 당연하지만경제적 위기를 포함하여 정치·사회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며 생태적 위기라는 총체적 위기임을그리고 인류 미래의 재앙임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본은 전쟁이고 프롤레타리아트는 혁명인가라는 100년 전의 역사적 과제는 여전히 유효한가항상 혁명보다 전쟁이 먼저라는 것은 자본의 능력이 프롤레타리아트를 제압하고 통제할 수 있을 정도로 커졌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혁명을 향한 세계적 투쟁의 몸부림이 있었지만민족주의에 굴복한 기회주의적 사회민주주의 그리고 성공한 러시아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스탈린주의라는 반혁명 세력에 의한 변질과 실패 등으로 세계혁명은 이루어내지 못한 프롤레타리아트의 뼈아픈 과오와 패배의 역사로 남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혁명을 향한 어떠한 투쟁도 없었고 자본주의의 일시적 번영의 착시와 사회민주주의의 외피를 쓴 복지국가 모델케인즈주의의 일시적 위기 극복 그리고 이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신자유주의의 공격과 또 다른 형태의 케인즈주의의 활용 등이 지금의 자본주의의 위기를 넘기려 하고 있다그러나 자본주의는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는 능력을 점차 상실하고 있으며계급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프롤레타리아트 앞에서 100년 전과 비슷한 이데올로기로 겨우 버티고 있다트럼프를 비롯한 민족주의국가 제일주의좌우를 막론한 포퓰리즘인종주의 그리고 크고 작은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의 긴장과 충돌이 지속되고 있다.

 

세계자본주의 체제에서 크든 작든 제국주의가 아닌 국가는 없다. 100년 전과 변화된 자본주의 모습이다한국도 제국주의 국가다중심과 주변의 차이밖에 없다한국과 일본의 긴장과 충돌은 제국주의 사이의 필연적 과정이다이 대결을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로 활용하는 것 역시 제국주의의 본질이다세계전쟁의 가능성은 100년 전보다 훨씬 커지고 있고 이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은 자본에게는 없다그렇기 때문에 세계전쟁의 화약고는 늘 수면 아래 있다전쟁을 막아내고 진정한 계급의 평화를 혁명을 통해 이루어내고 인류를 구원할 대안은 오직 자본주의를 대체한 코뮤니즘밖에 없다.

 

전 세계의 코뮤니스트들과 프롤레타리아트는 100년 만에 다시 한번 혁명을 통해 평화를 이루자는 코민테른의 교훈을 상기하고, 100년의 사이비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청산하고 자본주의의 질곡과 재앙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할 혁명적 무기세계 혁명당 건설을 함께 선언하고 그 구체적인 역사적 과업에 나서야 한다코민테른 창설 100주년을 맞이한 우리의 임무는 진정한 맑스주의의 복원과 그 실천인 세계 혁명당 건설임을!

 

(실천 복간 3오세철, 2019.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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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건설] 프롤레타리아 국제정당을 위해

프롤레타리아 국제정당을 위해

 

<편집자 주>

올가을 본격적으로 진행될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진영(이른바 '좌파' 또는 '사회주의 자임 세력'과 분명히 구분되는)의 '당 건설' 논의를 앞두고, 당(분파)에 대한 기본 개념과 당 건설 원칙을 정립하기 위해 ICP를 포함한 코뮤니스트좌파 진영의 입장과 자료를 공유합니다.

 

 

앞으로의 연재에는 과거 '사회주의당 건설 운동' 실패에 대한 최소한의 반성과 성찰 없는 조직보존 도구로서의 (사이비) 당건설 논의 흐름, 혁명적 주체와 전망이 부재한 후퇴한 당 건설 경로에 대한 엄중한 경고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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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코뮤니스트경향(ICT) 이탈리아 동지들의 이전 번역 글에서 우리는 무엇이 프롤레타리아 국제정당이 아닌가에 대해 다루었고여기서는 무엇이 프롤레타리아 국제정당인가에 관해 설명하고자 한다다시 한번 당과 계급의 관계에 대한 보다 포괄적인 이해를 위해우리의 웹사이트(www.leftcom.org)에 올려진 문서들을 참조한다.

 

 

맑스주의 분석을 견지하면서우리는 자본주의의 진정한 코뮤니스트 대안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행동으로만 건설될 수 있다고 믿는다어떤 당도 계급을 대체할 수 없다. 그러나 경제 체제와 사회의 혁명적 전환을 위해 우리는 혁명정당의 역할이 근본적이라고 믿는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우리는 모든 제도권 정당에 반대한다최근 모든 사람이 이라는 단어를 선거와 부르주아 제도와 연관 짓는다이것은 톨리아티(Togliatti)의 구(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공산당)과 그 구성원들 때문이기도 하다역사적으로 혁명가들이 코뮤니스트당에 부여한 기능은 오늘날 사람들이 (심지어 스스로 코뮤니스트들조차도생각하는 것과 꽤 다른 것이다코뮤니스트당의 기능은 다음과 같다:

 

”... 프롤레타리아트 대중에게 사회주의 사상과 정치적 의식을 부여하고자발적인 노동-계급 운동과 불가분으로 연결된 혁명정당을 조직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노동계급의 정치적 조직화와 정치적 발전을 촉진하는 것이다. “(레닌우리 운동의 시급한 책무)

 

”... 투쟁하는 조직 건설과 정치적 선동 행위는 어떤 단조로운평화로운’ 환경에서도 필수적이다어떤 시기에서든, ‘혁명정신이 쇠퇴하는’ 것으로 특징지어지는 시기라고 할지라도오히려 이러한 종류의 활동이 특히 필연적인 것은 바로 그러한 시기그러한 환경에서인데폭발과 분출의 시기에 조직을 만드는 것은 너무 늦기 때문이다정당은 시기의 도래에 활동을 전개할 수 있도록 준비된 상태여야 한다. “(레닌어디서 시작할 것인가?)

 

사회의 혁명적 변형은 프롤레타리아계급이 주역이 되는 행동이 되어야만 한다그러나 프롤레타리아 대중은 자발적으로 오직’ 계급 본능을 발전시킨다그것은 자본주의를 극복할 현실적인 필요에 대한 인지 없이즉각 경제 조건을 방어하도록 자극하는 의식이다그것은 장기적이고 단호한 투쟁을 가능케 하지만 전략적 관점에서 더 나아갈 수 없도록 한다물론 이것은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지가 보유한 이데올로기적 우월성의 지속적인 영향 때문이다특히부르주아지는 무엇보다도 이 경제 체제가 현실적으로’ 적용 가능한 유일한 것이고역사적 산물이 아니라 거의 자연적 결과이므로 만약 필요하다면 개선될 수 있는 가치 있는 자산으로서 보호되어야 하지 정면으로 공격받거나대체되어서는 안 된다고 우리가 믿도록 해 왔다.

 

코뮤니스트의 기능은 정확하게 이것이다 계급을 위한 혁명적 정치적 기준점이 되어혁명적 사상의식그리고 정치적 의제를 계급에 전달하는 것이다코뮤니스트당은 혁명적 전위의 조직혁명적 의식(자본주의의 본질과 이 체제를 극복할 필요성에 대한 깨달음)을 발전시켜온 이들의 조직이어야 한다따라서 코뮤니스트당은 가장 의식 있는 프롤레타리아트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이해를 자기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혁명적 의식을 발전시킨 (자신의 뿌리가 되는 계급의 이해를 포기한()프롤레타리아트를 집결시킨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정당은 대중정당이 아니라 코뮤니스트 핵심 그룹의 전위정당이 될 것이다그러나 이 정당은 계급 전체에 호소해야만 한다왜냐하면바로 혁명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힘과 독립적으로역사적 단계에도 불구하고코뮤니스트들은 계급에 개입해야 한다프롤레타리아 투쟁에 개입하여 사람들의 경험을 기름지게 하고계급의 현실을 경험함으로써 분석 능력과 정치적 강령을 풍부하게 해야 한다계급투쟁의 정치적 도구로서 당은 항상 계급투쟁에 함께하는 노력을 해야 하고그것은 투쟁이 퇴조기에 있든 회복기에 있든 관계없이 그러하다.

 

현장에서 혁명적 요구를 제안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아무리 작다고 하더라도노동자 투쟁의 불안정하고 허약한 현재 조건 속에서도글만 쓰고그리고 그 결과뿐만 아니라 의도에서도 언제나 논쟁적인 개인적 활동으로서의 이론화만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정치적 투쟁에 개입해야 한다. “(오노라토 데이먼)

 

코뮤니스트들은 혁명적 정치의 기준점으로 행동하며계급의 부문들을 자극하여 자신이 처한 착취의 조건에 대해 혁명적 비평을 할 수 있도록 개입함으로써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계급투쟁에 개입해야 한다.

 

혁명정당은 이론적 준비실질적인 조직과 정치적 지도력의 요체로계급투쟁의 산물인 동시에 요소이다그것은 프롤레타리아혁명 실현에 없어서는 안 될 도구이다.

 

혁명정당은 과학적 사회주의를 구분하는 이론과 비판의 지속적인 정교화를 먹고 자란다지도부 형성과 일상적인 정치 투쟁에 참여하여 계급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조직을 위해 조직적 성장을 이룬다.

 

혁명정당은 무분별한 그룹의 통일과 강령에의 순응의 결과는 결코 아니다오히려자발적으로 투사의 역할을 받아들이고원칙과 전술자신의 목적을 세우는 혁명가 모임의 중심이다.

 

혁명정당은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투쟁 조직이다그 구성원들은 작업장에서이웃들에서그리고 모든 다른 프롤레타리아 환경에서 계급의 강령을 방어하고 선전하는 데 적극 개입하거나 그 싸움에서 유용하게 통합하여보조적 업무를 담당한다.

 

혁명조직은 조직의 근본적인 문서(강령테제 등)에서 표현된방법원칙그리고 목적을 공유하는 조직이라는 사실이 특징이다.

 

부르주아 좌익정당이 자신을 지배체제 또는 심지어 그들의 지도자와 동일시 할 동안혁명정당은 투사들 전체를 중시한다그 내적 삶은 민주 집중주의 방식으로 지배되고강제적인 시행을 통해서는 결코 획득할 수 없는 유기적 통일이 실현된다물론 절대적인 보증은 있을 수 없지만그것은 공동 원칙에 기초한 토론을 통한 이론적실천적 균질화의 일부이며모든 투사가 정당의 정치적 전선에서 주역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그리고 그들 자신의 지도부를 선출하는데이것은 집단 집행 체제를 통해 당의 정치적 중앙화를 실현하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당은 국제적이고 국제주의적일 수밖에 없다자본주의 체제를 끝장낼 힘은 국제적인 프롤레타리아트의 연합에서 찾을 수 있다당을 위해 일하는 것은 미래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2020년 5월 12

국제코뮤니스트경향

 

<출처>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0-05-21/for-the-international-party-of-the-proletari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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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 임신중지를 범죄로 낙인찍는 부르주아 정부

임신중지를 범죄로 낙인찍는 부르주아 정부

육아가사출산의 사회화 없이 성·재생산권 보장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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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7일 문재인 정권은 형법상 낙태죄를 남겨 두고 낙태 허용 범위만 일부 확대한 형법과 모자보건법의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임신 14주까지 낙태는 조건 없이 허용되지만임신 15~24주 이내에는 성범죄에 따른 임신이나 사회경제적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허용된다이때 국가 지정 기관에서 상담을 받은 뒤 24시간의 숙려 기간을 거쳐야 한다임신 24주 이후 낙태는 지금처럼 금지된다또한 의사는 개인의 신념에 따라 임신중지 시술을 거부할 권리를 가진다결론은 허락받지 않은 임신중지는 계속 낙태죄로 처벌하겠다는 의미이다.

 

그동안 낙태죄 폐지 운동은 단순히 임신중지에 대한 처벌 반대를 넘어선 포괄적인 성과 재생산권을 마련하는 것이었다하지만 부르주아 국회와 정부 부처들은 성과 재생산권 보장은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오히려 퇴행적이고 기만적인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통해 낙태 처벌 유지와 규제를 계획하고 있었다.

 

낙태죄 전면 폐지임신 주 수·사유 제한 없는 임신중지권 완전히 보장하라!

 

임신 주 수(妊娠週數)에 따른 임신중지 제한은 다양한 사례에서 보듯이 후기 임신중지를 줄이는 데 효과가 없다의무 상담과 24시간 숙려기간 또한 유럽의 사례에서처럼 임신중지에 대한 장벽에 지나지 않는다사회경제적 조건에 따른 허용 사유의 추가는 사회적 재생산을 책임져야 할 사회적 책임을 여성 개개인에게 떠넘기는 행위이다역설적으로 임신중지를 할 수밖에 없는 사회경제적 배경과 조건은 완전히 무시한 내용이다여성이라도 사회계급은 다르며 계급에 따라 임신중지에 대한 대처도 다르다낙태 처벌과 규제는 노동계급 여성청소년에게 특히 해악적이다부르주아 여성들은 낙태 규제가 있더라도 자신의 재력을 이용해 어렵지 않게 낙태를 선택할 수 있지만노동계급 여성들은 그렇지 않다여성의 안전한 임신권출산권임신중지권의 보장은 여성 노동권뿐만 아니라 노동력 착취의 종식과도 밀접히 연관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신 주 수와 사유에 제한 없이 임부의 요청에 따른 임신중지권이 완전 보장되어야 하며모든 여성이 안전한 임신중지에 접근할 수 있도록 무상 임신중지 시술이 시행되어야 한다.

 

또한 여성의 결정권을 부정하기 위해 태아의 생명권을 대립시키는 논리에 장애인의 생명을 동원하는 모든 시도에 반대한다모든 장애인이 임신과 출산에 대해 자유롭게 결정하고양육에 참여하고 가족 구성의 권리를 확보할 수 있는 사회적인 지원이 보장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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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권을 지지했던 많은 지지자조차 여성의 출산권임신중지권을 국가가 법으로 제한하고 처벌하는 것은 여성 몸에 대한 국가폭력이라고 반발하고 있다그렇다면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에도 부르주아 정부는 왜 이토록 낙태 규제를 고수하려고 하는가그 배경은 무엇인가?

 

계급 분화와 사유재산 발생을 배경으로 탄생한 국가와 가부장적 가족제도, (형식적일부일처제는 모계 중심의 사회를 뿌리째 흔들며 여성을 종속적 존재로 전락시켰다이는 성차별은 물론 성 억압의 시발점이 되었다이처럼 성차별과 성 억압은 지배 질서 유지의 핵심이다그리고 성차별성 억압의 오래된 증거가 바로 낙태죄이다지배계급은 낙태죄에 대한 온갖 이데올로기(혼전 순결생명 윤리 등)를 동원하여 피지배 계급을 복종적이고 순종적으로 길들여 왔다이렇게 낙태죄는 여성뿐만 아니라 피지배계급에 대한 성 억압이다그것은 재생산에 대한 책임이 개인에게 있다는 것을 전제로 작동되었다따라서 낙태죄 폐지와 성과 재생산권 쟁취는 여성뿐만 아니라 노동계급과의 연대를 통해 가능하다.

 

육아가사출산의 사회화 없이 성·재생산권 보장은 불가능하다!

 

여성 몸에 대한 결정권을 여성 자신이 아닌 국가가 행사하는 것은 여성에게 그 역할을 어머니로 제한하고 부르주아 핵가족을 사회적 모델로 형성시키는 성도덕과도 연결된다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족제도는 온갖 성차별과 성 억압적 이데올로기의 재생산 통로이기도 하다낙태죄 폐지를 넘어서 포괄적인 성과 재생산권 보장은 성차별성 억압노동력 착취가 일상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불가능하다또한 자본주의는 사회화의 기본단위로서 가족을 넘어설 수 없다.

 

낙태죄 전면 폐지는 여성의 몸에 대한 모든 차별 및 폭력 폐지와 가부장적이고 여성 억압적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첫걸음이다성과 재생산권 보장의 출발은 육아와 가사출산의 사회화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육아가사출산의 사회화는 성 억압성차별을 넘어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갖게 되는 근거가 될 것이다. 이러한 제도는 억압과 착취계급 분열을 지양한 코뮤니스트 사회에서만 실현할 수 있다낙태죄 전면 폐지와 육아가사출산의 사회화를 위해 투쟁하자!

 

육아가사출산의 사회화·재생산권이 완전히 실현되는 코뮤니스트 사회로!

 

2020년 10월 19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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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코뮤니스트전망 창립 8년] 인터내셔널 건설과 세계혁명을 위한 첫 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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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코뮤니스트전망을 창립하면서

 
 

1. 낡은 것과 새로운 것

 

  더는 ‘진보정치’, ‘좌파정치’, '노동자당 건설' 운운하면서 고리타분한 대립을 논하지 말자. 가까이에서 보든, 멀리에서 보든, 우리 주변에 펼쳐진 ‘노동자 투쟁’과 미디어에 비친 ‘진보정치’는 그 어느 것도 공통점이 없다. 정확히 말해, 96~7년 노동자 총파업 투쟁 이후,  ‘민주노총 정치방침’으로 형성된 ‘진보정당(정치)’시대는 끝이 났다. 그러나 여전히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말하면서,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진보정치가 노동자계급의 발목을 잡고 있다. 낡은 것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물론 지금 필요한 것은, 진보정당에 제물을 올리고 축문을 읽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렇다고 야권연대 진보정당을 비판하면서, 이른바 ‘지도력’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공동전선(통일전선)을 통한 ‘노동자 독자정당’이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정치노선적으로 실체도 불분명한 민족해방 좌파, 중앙파, 현장파를 포함한 공동전선 당은 무엇보다, 한국 프롤레타리아 정치운동의 위기를 ‘계급정치의 부활’이 아닌 ‘지도력의 정치’에서 찾는 점에서 노동자계급에 치명적이다. 또한, 통일전선 당은 그간에 진행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당 건설 공동 활동 경험과 노력을 폐기한다. 대선 정국과 맞물려 진행되는 공동전선 당 전략은 기껏해야 ‘계급성과 혁명성도 애매한 진보좌파연합’으로 수렴될 것이다.

 

  계급투쟁의 무기력함에서 오는 비관주의와 조급성, 여러 차례 패배의 자책감 등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미래를 내다보고 활동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보다 자본주의 위기가 눈앞에 진행되고 있으며, 국제적인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부흥을 보고 있다. 파업과 거리투쟁을 통해서 동지를 찾아내고, 자본과 노동의 적대적 투쟁을 통해서 새롭게 올라오는 대중의 잠재적 힘을 주목해야 한다.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다시금 혁명운동의 정치원칙을 강인하게 사고해야 할 때다.

 

  여기서 우리는 세계혁명운동의 역사와 한국 사회주의/코뮤니스트 운동의 평가와 원칙을 되새기려 한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반대하는 존재’가 아니라, 한국에서 ‘노동자국제주의’ 관점에서 코뮤니스트 운동을 생성해나가려는 주체로서 자신을 정립하려고 한다.

 

  첫째, 80~90년대, 아니 아직도, 여전히 한국 운동사회의 이론적 전통으로서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이른바 ‘맑스-레닌주의’ (혁명적 맑스주의와 구분되는 스탈린주의에 입각한 공식 전통)에 근거한 혁명이론과 실천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을 전제로 한다.

 

한국의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민족해방 해결을 주요 실천투쟁으로 전개한 다수파인 NL운동(스탈린주의 변종)은 한국 자본주의 지배계급으로 편성되거나 개혁적 부르주아지와의 통일전선 형성으로 귀결됐다. 또한, NL노선과 대립했던 이른바 80~90년대의 ND, PD운동의 이론적 뿌리가 사실은 소부르주아 민족경제론, 국민경제에 근거한, 소련 관변학자들의 반독점민주변혁론 -> (관제고지 선점으로서) 재벌 국유화-> 권력장악 -> (일국)사회주의 노선이었다고 성격을 규정짓는다.

 

  둘째, 1917년에서 1920년대는 전 세계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 봉기 상황이었으며, 1917년 러시아혁명은 세계혁명의 그 첫 단추로, 러시아혁명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노동자 봉기시도가 어떻게 좌절됐는가가 혁명적 맑스주의 실천운동의 복원과 연관되어 있다. 이 점은 ‘사회주의 조국 소련을 방어하자’는 일국사회주의 노선의 실천적 결과로서 소련의 대외협력기구로 전락한 코민테른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다.

 

1920년대 중반 이후 세계 프롤레타리아 투쟁과 더는 연결되지 않은 코민테른은 코뮤니스트 좌파, 혁명운동 세력을 배제하고, 국제주의를 포기한다. 독일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의 등장과 함께 반혁명의 시기가 열리고,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는 결국 패배했다.

 

한국사회의 이론적 실천적 풍토에서, 레닌의 『좌익공산주의- 유아적 무질서』에서 일방적으로 혹평된 좌익공산주의(코뮤니스트 좌파) 운동은, 역사적으로 혁명적, 비타협적 맑스주의 이론과 실천운동으로 재조명되어야 한다.

 

더욱, 발본적으로, 러시아혁명에서 ①‘프롤레타리아 독재와 국가자본주의 도입’을 통한 사회주의 건설의 모순 (레닌) ② 혁명의 타락으로서 만들어진 사회는 (국가) 자본주의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이른바 모종의 사회주의, 타락한 노동자 국가라는 규정에 대한 비판을 분명히 한다. 또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관료주의를 어떻게 낳았는가? 노동자평의회는 어떻게 무너졌는가, 그 과정에 볼셰비키당의 역할은 무엇이었는가? 가 이론적으로 검토, 직시 되어야 한다.

 

따라서 여전히 맑스주의·사회주의 활동가를 짓누르고 압박하는 이른바 보편적 ‘혁명 모델’로서 러시아 혁명 상황의 일반화는 분명히 지양되어야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실천과 사상 이론에 대한 논쟁을 시도하고 모색해야 한다.

 

  셋째, 현재 통합된 세계자본주의 체제, 자본주의 쇠퇴의 경제위기 정세와 점증하는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 투쟁, 국제주의에 입각한 세계혁명을 향한 혁명적 실천과 이론적 과제를 한국사회에서 (혁명적) 코뮤니스트 운동으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노동자 자기해방으로서의 사회주의’라는 혁명적 맑스주의 정치 실천과 이론  복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운동과 코뮤니스트 혁명 조직

 

  첫째, 자본주의 쇠퇴의 새로운 국면(대공황)은, 68혁명 이후 부활하기 시작한 세계적인 계급투쟁의 파고를 2008년 이후 혁명의 현실성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전쟁과 야만이냐, 혁명과 코뮤니즘이냐가 여전히 유효한 시대적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둘째, 한국에서의 1950년~1990년대의 반공, 반혁명 이데올로기의 길이와 깊이는 냉전체제 해체와 젊은 세대의 등장으로 얕아지고 있다. 대신 민족주의, 애국주의 등 파시즘의 요소는 언제든 창궐할 수 있다. 이렇듯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반공과 극단적 스탈린주의에 물들지 않은 새로운 세대들과 프롤레타리아 계급 내의 젊은 저항세력과 코뮤니스트 노동자의 소생은 혁명운동의 새로운 조건이다.

 

한편, 1987년 이후 성장한 대공장 정규직 중심의 민주노조운동과 1990년 후반 등장한 사민주의(진보정당)운동은 퇴보의 길을 걷다가, 현재는 총체적 파산 상태를 맞이하고 있다. 다른 한편 이러한 양 운동의 흐름을 거부하는 노동자들의 전반적 불신 현상, 새로운 운동에 대한 요구, 그리고 기성운동에서 소외된 비정규노동자, 실업자, 빈민, 장애인, 소수자들은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운동 출현의 기반이다.

 

  셋째, 자본주의 경제위기로 인한 불안정노동의 증대와 한국에서의 1998년 이후 노동자운동 패배의 연속은, 노동자 조직화의 기나긴 정체현상과 계급운동의 자신감 결여를 초래했다. 하지만 이것은 계급투쟁의 퇴조 현상이 아니라, 낡은 운동의 자연스러운 몰락이자 새로운 계급투쟁의 주체가생성되는 과정이다. 또한, 계급투쟁의 최종목표를 분명히 하면서 오랜 기간 계급 안에서 튼튼히 뿌리내린 혁명 조직과 아래로부터의 투쟁의지가 직접 실현되는 평의회적 계급조직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 모든 상황은 조합주의, 사민주의 등 제도권 운동과 지역(국내) 운동에 갇혀있는 노동자 정치운동에 새로운 조건의 창출과 전망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코뮤니스트 혁명 조직이 쇠락하는 낡은 운동과 철저히 단절하고, 아래로부터의 계급운동을 촉진하고 국제주의적 전망을 제시하며, 혁명의 현실성과 실현가능한 코뮤니스트의 정치적 목표를 분명히 하는 조직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 정세는 이러한 코뮤니스트 노동자 조직의 출현과 새로운 프롤레타리아트 운동을 공세적으로 펼쳐나갈 것을 모두에게 요구하고 있다.

 

 

 

3. 사회주의 정치 운동 평가와 전망

 

  1992년부터 자의적이거나 타의적이거나 공개영역으로 나온 사회주의 서클들은 선거주의와 의회주의로 경도되면서 합법·개량주의로 나아갔다. 특히 1997년은 양날개론으로 표현되는 민주노총의 건설과 그에 기반을 둔 민주노동당의 건설로 혁명적 사회주의의 비공개영역과 적대적으로 분리되었다. 2002년의 대선은 이러한 관계설정을 마무리하는 과정이었다. 그 당시 「노동자의힘」과 「사회당」은 선거전술에 집착하여 혁명정당 건설을 통한 혁명주의의 복원으로부터 이탈했다. 혁명적 사회주의 서클과 함께 혁명당을 건설하려는 노력은 무산되었다.

 

  2003년 「사회주의정치연합」은 중도주의와 선을 긋고 혁명적 사회주의 세력의 연대와 단결을 위한 매개의 역할을 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노력의 일환으로 2005년 7월 「혁명적 맑스주의자 모임」의 제안이 있었다. 그 제안은 다음의 몇 가지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첫째, 자본주의의 표면적 사멸이라는 역사유물론에 입각하여 비맑스주의의 역사적 오류를 비판·극복해야 한다는 점,

 

둘째, 자본주의의 객관적 구조와 혁명적 주체의 변증법적 결합을 총체적으로 인식하는 변증법적 유물론에 따라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실천을 통한 진정한 계급혁명을 이룩해야 할 역사적 과제를 인식했다는 점,

 

셋째, 과잉생산이라는 자본주의의 축적위기가 자본의 전략으로 모면할 수 없고 전쟁과 파시즘이라는 야만에의 회귀로 나아가, 결국 인류의 파멸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인식했다는 점,

 

넷째, 1920년대 초반의 세계 혁명의 실패, 스탈린주의의 등장은 반혁명의 역사적 반동으로 나아갔고, 이러한 역사적 퇴행에 도움을 주었던 사회민주주의, 무정부주의, 민족주의는 자본주의와 부르주아지의 유지·강화를 보완하는 반혁명적 이데올로기로 기능했고, 혁명세력의 복원을 가로막았다는 점,

 

다섯째, 지금까지의 인터내셔널(세계혁명당)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진정한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건설을 목표로 한 각각의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당 건설의 과제가 우리에게 놓여 있으며,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권력기관인 노동자평의회와 변증법적 결합으로 혁명을 실천해야 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얻었다는 점이다.

 

  그 모임의 제안은 세계혁명을 향한 세계 혁명적 맑스주의(사회주의) 진영의 국제주의 실현을 위한, 세계 코뮤니스트 연대를 위한 것이며, 그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의 혁명적 맑스주의자(사회주의자)들도 함께 하면서, 우리의 혁명적 운동을 복원해내고 고립·분산되어 각개약진하고 고군분투해왔던 세력들이 새로운 각오로 힘차게 연대 전진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작을 하자는 취지였다. 2년간에 걸친 진지하고 열띤 토론을 기반으로 이 모임은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을 공개적으로 제안하고 동의한 주체들을 중심으로 2008년 2월 출범하게 된다.

 

  혁명적 사회주의와 혁명당 건설을 공개적으로, 대중적으로 선언하고 계급투쟁을 통해 실현하겠다는 이 흐름은 새로운 시도로 한국의 코뮤니스트 운동사에서 획기적인 것이었다. 물론 국가보안법상의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재판 투쟁을 통한 사상 투쟁과 줄기찬 혁명주의 선전·선동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서클연합으로 출범했기 때문에, 결합하지 못한 서클과 혁명주의자, 그리고 중도주의 세력 속의 혁명인자들이 다시 한 번 공동실천을 통해 한 걸음 전진하자는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공동실천위원회」 결성제안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으며, 1년 반 동안의 공동실천은 결국 강령, 조직, 전술의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하며 종지부를 찍는다.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공동실천위원회」와 분화된 세력이 「노동자혁명당추진모임」과 「노동해방」으로 각개약진하고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의 잔존그룹은 「혁명적노동자당건설현장투쟁위원회」로 각각 실천하게 된 것은 혁명 세력의 분열이 아니라, 오히려 독자적인 실천을 하면서 계급으로부터 검증받는 과정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2012년 총선 선거전술 문제로, 「노동자혁명당추진모임」에서 코뮤니스트 좌파 세력이 분화한 것은, ‘종파적 철수’가 아니라 ‘정치적 차이’의 결과였다. 그 차이는 혁명당 건설을 둘러싼 정치활동의 전망에 있었다.

 

  우리는 혁명주의 세력의 노선 투쟁을 통한 경쟁과 연대·단결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동안 혁명세력이 반혁명적 스탈린주의 세력이나 민족주의 세력, 각종 기회주의 세력과 대적 전선을 공고히 하는 데 주력해 온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독자적인 사상노선으로 논쟁하고 계급으로부터 검증을 통해 신뢰를 획득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러한 노선투쟁의 역사가 이미 유럽과 러시아 등지에서 100년 전부터 있었음을 상기하고 있다. 세계혁명당 건설을 목표로 노동자 국제주의를 실현하려는 현 단계 한국의 혁명적 맑스주의(사회주의) 세력은 이제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맑스주의 사상과 실천의 원칙을 분명하게 내세우고 노선투쟁을 해야 하고, 진정한 의미의 정치 원칙·강령의 통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코뮤니스트 운동의 역사에서 「코뮤니스트 좌파」의 원칙과 투쟁을 계승· 복원하고, 다른 혁명주의자들과 논쟁하고 토론하며 다시 연대하고 단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바로 여기가 로두스다.

 

 

 

4. 코뮤니스트(공산주의자)의 역할에 대해

 

  첫째, 여전히 노동자계급을 지배하는 여러 분열적이고 반혁명적 경향의 민족주의와 개량주의의 영향력으로부터 노동자운동이 근본적으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이 반드시 혁명적 계급의식을 획득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 과정은 지난한 계급투쟁 속에서 주체들이 혁명적 계급의식을 획득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단련되며  매우 길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모든 과정에 혁명 조직이 필요하며, 그 조직은 코뮤니스트 좌파의 전통을 계승할 뿐 아니라 현실의 계급투쟁에 구체적이면서도 전략적으로 함께하는 정치조직이어야 한다. 여기서 현실의 계급투쟁과 코뮤니스트 정치를 직접 만나게 하는 활동이 코뮤니스트 조직의 기본적 역할이다.

 

  둘째, 정세측면에서 현 자본주의 쇠퇴기, 경제위기 상황에서 발생한 세계적인 계급투쟁의 물결에 세계혁명운동의 일부로써 조응해야 한다. 또한, 와일드 캣(비공인파업) 투쟁과 점령운동으로 표현되는 아래로부터의 프롤레타리아트 운동에 혁명 조직은 ‘노동자계급 스스로의 과업과 자기해방’이라는 명확한 코뮤니스트 전망으로 개입해야 한다.

 

  셋째, 과거 당 건설 운동 과정을 철저히 평가하고, 그간의 성과이자 한계였던 '철저한 강령 원칙과 실천 검증'에 따른 혁명적 사회주의자/코뮤니스트의 재구성을 지속해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당 건설 운동의 오래되고 치명적인 오류인 당면주의와 노동자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코뮤니스트는 현실 계급투쟁의 개입에 있어 ‘강령적 실천’이라는 기본 역할과 혁명적 주체의 자기조직화라는 전략적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하지만, 당면주의는 기본과 원칙 모두를 조급한 정세/전술 대응으로 놓쳐버린다. 따라서 낡은 조직 유지와 양적 확산만을 위해 강령원칙을 폐기하거나 당면한 경제투쟁에만 몰입하는 노동자주의와 조합주의를 극복한 코뮤니스트 노동자들이 주체가 되어 혁명 조직을 건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신들이 ‘가장 올바르다’라거나 ‘세계에서 유일하다’라는 종파주의는 자기 입장의 타당성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증거이다. 코뮤니스트는 결코 ‘진리의 담지자’가 아니기 때문에 토론과 사상투쟁에 있어 모든 것을 열어놓아야 한다. 이것은 조직 안과 밖으로부터 모든 비판적이고 건설적인 공헌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코뮤니스트 노동자들의 집단적이고 집합적인 정치적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다.

 

2012년 10월 13일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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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건설] 우리는 모든 제도권 정당에 반대한다.

우리는 모든 제도권 정당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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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올가을 본격적으로 진행될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진영(이른바 '좌파' 또는 '사회주의 자임 세력'과 분명히 구분되는)의 '당 건설' 논의를 앞두고, 당(분파)에 대한 기본 개념과 당 건설 원칙을 정립하기 위해 ICP를 포함한 코뮤니스트좌파 진영의 입장과 자료를 공유합니다.

 

 

앞으로의 연재에는 과거 '사회주의당 건설 운동' 실패에 대한 최소한의 반성과 성찰 없는 조직보존 도구로서의 (사이비) 당건설 논의 흐름, 혁명적 주체와 전망이 부재한 후퇴한 당 건설 경로에 대한 엄중한 경고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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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코뮤니스트경향(ICT)은 자신을 미래 국제 노동계급 정당의 핵심 중 하나로 여긴다그러나 이라는 단어는 종종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심지어 우리 정치에 대해 동의하는 이들 가운데에서도 그러하다어쨌든선거를 통해서든 군사적인 수단을 통해서든자본주의 국가를 지배하고자 하는 당은 좌우를 떠나 전혀 부족하지 않다우리가 종종 반복해서 이야기하듯이우리 비전은 이런 것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우리가 건설하고자 하는 당은 기다리고 있는 정부가 아니라 미래 세계를 위한 투쟁의 안내서이다코뮤니스트 투사(Battaglia Comunista)의 우리 동지들로부터의 이 짧은 번역문은 바로 그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반복하는데우리 웹사이트(www.leftcom.org)에 게시한 노동계급은 정치적인 조직이 필요하다.’ 그리고 미래의 인터내셔널에 대하여와 같은 글과 함께 읽어야 한다.

 

 

국가정부의회지역 정부... 이 모든 제도는 부르주아 계급이 창조하고 관리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그들은 자본가들의 억압적인 정치 도구를 대표한다그들은 자본주의 경제 구조를 투사하는 정치-관료적 상부구조와 다름없다국가는 부르주아 계급의 조직된 정치-경제-문화 영역이며다른 세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에서도 그것은 진실이다.

 

"근대 국가의 행정부는 전체 부르주아지의 공통된 문제를 관리하는 위원회와 다름없다.” (맑스 엥겔스코뮤니스트 선언)

 

자본주의의 발전단계와 프롤레타리아트의 반응 수준에 따라 국가는 민주적이거나 노골적인 독재’ 형태를 취한다.

 

"국가의 지배 양식은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선거권이나 다른 이러저러한 권리가 있든 없든또는 공화국이 민주적이든 그렇지 않든근본적으로 권력은 자본의 손에 있다."(레닌국가스베르들로프 대학에서의 강연 일부)

 

민주주의는 사실 부르주아 독재와 다름없다인구의 절대다수가 프롤레타리아이며따라서 그들이 우리가 믿기를 바라는 것처럼 이러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 다수가 제도를 통해 자신의 의지를 표현한다면어떻게 통과된 모든 법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이해에 반할 수 있는가?

 

"민주주의 공화국은 자본주의를 보호하는 가능한 최고의 정치적인 외피이다. ... 자본은 ... 그 권력을 매우 공고하게 확립하는데부르주아-민주주의 공화국에서 어떤 사람이나 제도또는 어떤 정당의 변화도 이를 흔들 수 없다."(레닌국가와 혁명)

 

이 민주주의’ 선거는 부르주아지 손에 있는 권력을 합법화하는 기만적인 정치 무대이다실제로 부르주아지는 이른바 "공공의 의견"을 매스미디어부터 시작하여 학교종교 제도로 모양 짓는 도구들을 통제한다이 민주주의에서 프롤레타리아계급은 아무것도 아니다모든 제도적 결정은 자본가들의 경제적 필요와 양립 가능한 것이어야만 한다따라서 국가의 관리자들은 지배계급의 대표들이다.

 

이러한 제도들을 프롤레타리아계급이 자본가들의 착취에서 자신을 해방할 수 있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완전히 환상이며이 제도들이 진실로 부르주아지가 경제적 권력을 휘두르기 위해 보유한 가장 훌륭한 정치적인 수단인 한 그러하다파리 코뮨(1871이후맑스는 코뮤니스트 선언」 독일판 서문에 다음과 같이 썼다.

 

"코뮨으로 특히 한 가지는 증명되었다노동계급은 기존의 국가 기관들을 단순히 손에 쥐고 있어서는 안 되고그것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 (맑스 엥겔스1872년 서문)

 

다양한 제도권 정당들은 지배하는 자와 그 반대에 있는 자들 사이에서 기만적인 게임을 수행한다. ‘끼리 대립 뒤에는 종종 부르주아지의 서로 다른 분파 간의 권력 투쟁이 있을 뿐이거나더 단순하게는 더 안락한 제도권 의석에 앉으려는 서로 다른 정치인들 간의 무의미한 경쟁이 있을 뿐이다.

 

본질적으로어떤 제도권 정당도 이 체제의 경제적사회적 기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최선의 경우에도 정당은 관리에 있어서 환상에 불과한 차이를 제안할 뿐이다보다 인간적인공정한더욱 민주적인’ 얼굴의 자본주의 등의회에 의석을 차지하고 있거나 그러고 싶어 하는 자칭 코뮤니스트 정당들 또한 진정한 혁명적 강령을 보유하고 있지도 않을뿐더러그들은 노동자 투쟁을 위한 제도적인 경로라는 환상만을 확산시킬 뿐이며대부분 언제나 (이른바 급진 좌파’ 정당과 마찬가지라도지역 기관들에서 다른 부르주아 정당과 협력한다.

 

따라서 우리의 약속은 선거에서 대중 투표를 목표로제도권 내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정당의 건설이 아니다우리가 건설하고자 하는 당은 국제적이고 국제주의적인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의 정치적 기준점 역할을 할 수 있는 계급정당이다.

 

2020년 5월 13

국제코뮤니스트경향

 

<출처>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0-05-18/we-are-against-all-institutional-par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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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1호] 4년에 한번 5년에 한번 「빵과 서커스」

4년에 한번 5년에 한번 빵과 서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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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는 로마는 빵과 서커스로 유지된다.”라는 말로 로마 사회를 비판했다빵과 서커스(Bread and circuses)는 유베날리스가 고대 로마 사회의 세태를 시편에서 사용한 표현이다빵과 게임 (Bread and games) 이라고도 한다.

 

축제를 변형시킨 형식이 로마의 키르쿠스 (Circus 서커스)’ 서커스는 로마 황제가 정치적인 불만 세력이 될 농후한 프롤레타리아트(하층 로마시민)에 눈요깃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만든 대형 원형 경기장의 이름이다아울러 로마의 시민은 매일 빵도 배급받았다.

 

로마제정의 우민정책을 빵과 서커스라고 비꼰 사람이 바로 당대의 풍자시인 유베날리스다당시 원형 경기장에서 이루어진 구경거리는 벤허의 전차경주, ‘쿼바디스의 사자 (기독교도를 잡아먹는검투사의 검투 시합 등이다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는 44년 동안 재위하면서 총 44번의 대규모 서커스를 열었다.

 

2002년 월드컵이 열릴 때 나는 붉은 악마의 함성 뒤로 끌려가는 노동자를 보았고생존을 철거당하는 노점상도 보았다. 4년에 한 번 열리는 월드컵과 올림픽이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가 2~3년에 한 번씩 번갈아 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저들만의 축제를 보았다붉은 악마의 생동감을 느끼기 전에 씁쓸함을 먼저 느낀 것은 그만은 아닐 것이다.

 

조카와 축구 경기를 보러 간 적이 있다나는 그 원형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들을 보면서 검투사가 생각이 났다신분적으로는 자유롭게 보이나 여전히 자본주의 검투사처럼 느껴졌다그냥 축구를 축구로 보면 될 것인데 자꾸 답답하고허하다며칠 후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이 난투극을 벌인다용감무쌍하다검투사 같다.

 

그래 노래를 만들자곰곰이 생각해보고 하고 싶은 말을 노래로 만드는 거야...’

내 1집 타이틀곡인 빵과 서커스는 이렇게 만들었다아랫글은 나보다 더 이 노래를 잘 설명한 어느 기자의 글이기에 인용해본다좀 쑥스럽지만...

 

 

빵과 서커스는 시대 상황에 대한 촌철살인의 풍자곡이면서 권력과 관료화된 운동에 대한 신랄한 비틀기이다이 곡에서 우창수는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과 운동의 회절과 변절대의주의와 직접민주주의노동조합의 관료화와 권력화를 비판하며 혁명과 동학을 연결한다그리고 그들의 축제가 아니라 우리의 축제를 벌이자고 말한다이 곡의 테마가 된 글을 잠시 빌리면그는 월드컵과 수많은 관 주도 축제그리고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등을 로마의 풍자 시인이 말했던 그들만의 축제로 보고 21세기 한국사회의 오늘과 실업자철거민조합에서 해고된 노동자 등을 통해 민중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그의 눈에 대의제 국회는 정략적 이익을 위해 주먹질도 마다하지 않는 21세기의 검투장이며 민중은 대의제 아래 민중 의지와 상관없이 거수기로 전락하고 있음을 경고하며 풍자한다.

 

이러한 정치적 대안으로 동학의 와 이 가졌던 소통에 주목하고 사라진 광장정치와 높아만 가는 대중정치판의 단상을 허물어 우리들의 또 다른 축제를 벌이자고 노래한다그가 왜 2007년 말미 정치 계절에 음반의 제명을 빵과 서커스로 택했는지 알만하다.”

 

 

2020코로나19 사태 속에 한국에서는 4년 만에 총선이 치러졌고도쿄 올림픽은 연기되었다지난 국회에서 난투극을 벌인 몇몇 검투사 의원들은 낙선했고직접민주주의는 더욱 멀어졌다.

 

2020년 4월

우창수

 

 

 

빵과 서커스

 

 

 

작사작곡노래 우창수

 

 

 

 

 

1.

 

화려한 불꽃과 미끈한 다리

 

웃으며 행진하는 높은 양반들

 

쳐다보고 오르려 하지마라 축제를 즐겨라

 

달콤한 초콜릿 발렌타인 데이

 

코코아를 따러가는 어린 노동자

 

거대한 써커스 공을 굴려라 지문 없은 작은 손 헤 -

 

 

 

2.

 

지상의 방한칸 포크레인 삽날

 

아스팔트 노점상의 불안한 하루

 

빚더미 실업자는 멀리 떠나고 술병은 외롭다

 

조합에서 쫓겨난 황당한 해고자

 

추방당한 블랑카는 소식이 없고

 

생존의 벼랑 끝은 농성중이다 날 벼린 방패와 함께 헤 -

 

 

 

3.

 

오월의 핏빛 하늘은 맑게 개이고

 

87년 7,8,9는 다큐가 되고

 

광화문 네거리 촛불 밝혀라 팔려갈 진보를 위해

 

우리의 대표를 굳게 믿어라

 

의사당 검투사의 빛나는 용맹

 

민주의 시대를 굳게 믿어라 우린 모두 거수기 헤 -

 

 

 

4.

 

저아래 접들이 기포를 한다

 

은밀히 돌고 도는 사발통문이

 

혁명의 빨강색 비타민 우린모두 메신져

 

오늘은 우리들의 축제를 벌이자

 

저들의 빵과 총도 꺽어 버리자

 

공장의 담장은 헐어버려라 두려워 마라 헤 -

 

 

 

(후렴)

 

사년에 한번 이년에 한번 헤이 헤 빵과 써커스

 

오늘도 좋고 내일도 좋아 헤이 헤 빵과 써커스

 

 

 

나랏 말싸미 민중과 달라 서로 사맛디 아니할세 헤

 

어깨를 걸고 어깨를 걸고 헤이 헤 밥과 자유

 

손뼉을 치고 노래를 부르며 헤이 헤 평등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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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0호]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 최근 내부 논쟁(1)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 최근 내부 논쟁(1)

역사의 경로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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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나를 포함한 한국의 코뮤니스트 좌파는 세계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 내의 주요 논쟁을 역사적으로 점검하고 분석하면서 앞으로의 코뮤니스트운동의 올바른 전망을 제시하는 노력을 지속해왔다.(1) 이 글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잠정적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우리는 150여 년 전의 전쟁인가 혁명인가의 화두를 진지하게 꺼내 들고 다시 한번 야만인가 문명인가’, ‘코뮤니즘의 물질적 필요성을 말하는 역사적문명적 인식과 과학적 사회주의의 이론과 실천을 준비해야 한다자본주의 쇠퇴의 객관적 법칙과 조건이 생산권력역사의 주체인 노동계급과 만나 서로 침투하는 계급투쟁을 전개하는데 코뮤니스트의 역사적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코뮤니스트는 맑스주의 원칙 중에서도 국제주의의 원칙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자본주의 위기를 모면하려는 제국주의 전쟁과 파시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천」 복간 2, 66)

 

그런데 최근 코뮤니스트 좌파 그룹의 대표적 국제조직인 국제코뮤니스트흐름」 (International Communist Current) (이하 ICC)의 23차 대회(2019년 5월 개최)에서 발표한 결정문이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기 때문에 이를 둘러싼 논쟁의 핵심을 정리하고 이후 계속되는 논쟁을 논쟁(2)에서 계속 다루려고 한다.(2)

 

대회 결의문 중에서 특히 국제 상황에 대한 결의(2019) : 제국주의 갈등 부르주아지의 삶경제 위기에서 ICC는 22차 대회의 내용을 반복하면서도 역사의 경로인 전쟁인가 혁명인가의 패러다임이 변화되었음을 명시적으로 제출하여 패러다임 논쟁의 불씨를 던졌다이 논쟁에 뛰어든 코뮤니스트 좌파 그룹들은 설립된 지 몇 년이 안 된 새로운 소그룹들이다아직 이들 논쟁에 ICC와 국제코뮤니스트경향」 (Internationalist Communist Tendency) (이하 ICT) (3)의 본격적 논쟁이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에 논쟁(1)에서는 ICC와 코뮤니스트 좌파의 소그룹 사이의 논쟁을 간략히 정리하기로 한다.

 

2. 논쟁의 발단 : ICC의 23차 대회(2019년 5)의 패러다임 변화

 

2019년 5월 23차 대회에서 발표한 국제 상황에 대한 결의(2019) : 제국주의 갈등 부르주아지의 삶경제 위기에서 ICC는 자본주의 해체 국면의 역사적 틀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4)

 

“1) 30년 전 ICC는 자본주의 체제가 자본주의 쇠퇴기의 마지막 국면인 해체기에 들어섰다고 밝혔다이 분석은 수많은 경험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지만동시에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는 틀을 제시하고 있다.”

 

사회의 두 가지 결정적이고 적대적인 계급이 스스로의 결정적인 반응을 부여하지 않고 부딪치고 있는 이 상황에서 역사는 그냥 멈추지 않는다아직 자본주의는 이전의 사회형식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삶의 동결“ 또는 정체를 가능하게 한다위기를 안고 있는 자본주의의 모순더욱 깊어질수록 총체로서의 사회를 위한 가장 가벼운 전망을 제공할 부르주아지의 무능력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의 무능력은 오직 보편화된 해체의 상황으로 이끌 뿐이다자본주의는 발끝에서 썩어가고 있다.”

 

이어서 ICC는 1989년 소련 동유럽의 몰락이 자본주의 사회의 보편적 역학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왔다고 본다그 이전에는 계급 사이의 힘의 균형이 그 역학의 결정적 요소로서 자본주의 모순의 심화가 세계전쟁으로 나가던지 아니면 자본주의의 전복을 전망으로 하는 계급투쟁의 발전이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아직 나타나지 않은 새로운 두 제국주의 블록이 재구성될 때까지 현재 상황을 규정하는 패러다임 안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는 패배가 너무 깊어 결정적으로 회복하지 못하는 고통을 받을 것이지만사회의 보편적 진화를 위한 결정적 결과 없이도 깊은 패배의 고통을 느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왜 역사적 경로의 의미가 더 이상 현 세계의 상황과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의 힘의 균형을 규정할 수 없는지의 이유라는 결론이다.(5) 그리고 이어서 최근의 제국주의 사이의 긴장을 상세하게 설명한다.(6)

 

3. ICC의 역사적 경로 패러다임」 포기에 대한 코뮤니스트 좌파 소그룹들의 비판

 

2019년 5월 ICC의 23차 대회의 결의문이 발표된 이후 특히 전쟁인가 혁명인가라는 역사적 경로에 대한 ICC의 입장 변화를 둘러싸고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 내의 신생 소그룹들이 정면 비판과 방어에 나섰다그중에서 코뮤니스트 좌파 국제그룹」 (International Group of the Communist Left) (이하 IGCL)(7), 그리고 국제주의자 목소리」 (Internationalist Voice) (이하 IV)가 논쟁의 주역이다.

 

특히 IV는 지속적인 논쟁을 ICC뿐만 아니라 ICT 등 다른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과 벌이고 있다보기를 들면ICC와의 논쟁 노동자계급인가 대중인가?」 (2019년 3), GCCF(Gulf Coast Communist Fraction)와의 논쟁 자본주의 발전의 이해에 있어서 약점」 (2019년 5), 국제코뮤니스트당(Proletarian)과의 논쟁 노동자 코뮤니즘은 소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본의 좌파에 속한다」 (2019년 5월 24), ICT와의 논쟁 국제주의 임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의 모호함」 (2019년 4월 27), 통일의 새로운 관점에 대한 GCCF에의 편지」 (2019년 7월 20), ICC와의 논쟁 혁명조직인가 혁명적 출판인가」 (2019년 여름), ICC와의 논쟁 혁명적 출판의 변명」 (2019년 8월 23), 등이 있으며 앞으로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이 두 그룹 이외에 미국의 GCCF(8)와 WORKERS' OFFENSIVE」 그룹스페인의 해방」 (Emancipation)(9)이 있다.

 

ICC와 가장 많이 논쟁을 벌이는 IV는 ICC와 친화적이다. ‘역사적 경로’ 문제에 대해서 IGCL을 빗대어 ICC에 대한 비난을 상쇄하려 한다불명예의 교향곡」 (2019년 8월 22)에서 이 그룹은 “ICC와 23차 대회에서 최근의 스탈린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트가 혁명화하지 않고 세계 사회주의에 대한 이전의 이해가 잘못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라고 하는 IGCL의 맹비난을 전하면서 자신들은 코뮤니스트 가치와 원칙을 지키고 있다고 방어하고 있다.(10)

 

이제 ICC의 내부분파였던 IGCL의 ICC에 대한 본격적 비판을 살펴보기로 한다.

 

이 그룹은 2019년 7월 ICC의 23차 대회의 대차대조표와 전망 새로운 혁명 세력 중에서 기생주의(parasitism)의 기회주의적이고 파괴적 이론의 독을 소개하기」 (2019년 7라는 글에서 ICC의 23차 대회가 역사적 경로를 포기하고 계급투쟁까지도 청산했다고 맹렬히 비난하고 있다. 2001~2002년 ICC의 조직 위기가 2003년 15차 대회로 이어져 혁명이냐 전쟁이냐의 역사적 대안을 제3의 방식인 기회주의의 영원한 제안다시 말하면 묵시적 전쟁이 아닌 해체의 점진적 진전을 통한 인류의 파괴라는 제3의 대안을 만들었다고 설명한다.(11)

그리고 소련동구가 몰락한 1989년 이후 세계 자본주의의 역동성은 계급 사이의 힘의 균형에 의해 더 이상 결정되지 않는다고 규정하면서 힘의 균형이 어떠하더라도 세계전쟁이 더 이상 의제에 올라와 있지 않지만자본주의는 계속해서 몰락의 길로 가라앉을 것이라고 말한다.

 

맑스주의의 중심적 정치원칙의 하나인 역사유물론과 계급투쟁이 역사의 동력이라는 코뮤니스트 강령은 더 이상 배반할 수 없다고 보는 IGCL은 오직 유효한 척도는 계급 사이의 힘의 균형을 평가하는 것이라는 ICT의 입장에 동조한다.

 

ICC의 최근의 활동이 최근에 새로운 혁명 세력으로 형성되어 등장하고 있는 그룹과 써클미국호주영국남미 등의 그룹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으로 보이기보다 특정 기생그룹을 향한 공격적 외교로 보이며, ICT의 진정한 몰입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한다.(12)

 

23차 대회를 둘러싼 토론과 문제 제기는 ICC Forums에서도 이어졌다여전히 해체의 조건에서 계급투쟁은 역사의 동력이 아닌가코뮤니즘도 역사적 의제에서 떠난 것인가해체는 야만을 의미하는가부르주아지는 70, 80년대에 노동계급을 통제할 수 있었는데 왜 90년대 이후에는 점차 통제력을 잃게 되었는가역사적 경로에 대한 ICC의 패러다임 변화는 완전히 새로운 출발인가?(13)

 

그러나 진정한 논쟁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코뮤니스트 좌파 진영 내의 논쟁은 두 국제조직인 ICC와 ICT 간의 대립과 치열한 논쟁으로 촉발되고 지속되었기 때문이다.(14) 새로운 논쟁의 시작은 다시 제국주의 전쟁에서 시작되고 있다.

 

4. ICT의 문제제기 – 중국-러시아 블록의 창조와 새로운 제국주의 전쟁의 가능성

 

1989년 이후 두 진영 사이의 균형이 깨어지고 3차 세계대전의 가능성이 사라졌다는 ICC의 주장에 대해 새로운 제국주의 블록이 반()미국 블록에 대항하여 모스크바-베이징으로 재구성되고 있으며지역의 중요한 제국주의 세력으로 이란의 부상을 주목하는 해석을 ICT는 제안하고 있다.(15)

 

세계전쟁은 더 이상 쟁점이 아니라는 ICC의 주장이 ICC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 코뮤니스트 좌파의 방법과도 어긋나는 관념론적 역사관이라고 비판한다. 1946년 프랑스 코뮤니스트 좌파는 국가 사이의 이해갈등과 강대국이 약소국의 지배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았으며제국주의 사이의 이해갈등이 중국과 러시아그리고 이란의 경우 러시아와의 (그리고 중국동맹또는 미국과의 동맹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을 시사하고 있다고 본다.

 

세계전쟁의 위험성을 부정하는 것은 전쟁과 평화라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저항할 수 없게 만들 뿐 아니라 위기와 전쟁으로부터 파생되는 삶의 조건의 피폐화에 맞서는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을 요구할 수 없게 만든다고 주장한다그리고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 내의 국제회의에서의 공개토론다시 말하여 새로운 찜머발트가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앞으로 전개될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 내부의 논쟁은 코뮤니스트」 11호에 정리하여 싣기로 한다.

 

2019년 10

국제코뮤니스트전망 ㅣ오세철

 

 

 

<>

 

1. 최근의 정리 글은 자본주의 쇠퇴기의 코뮤니스트 운동의 전망” 실천」 복간 2, 2019.3.15., 42~73, <사회실천연구소>

 

2. ICC의 22차 대회(2017년 5월 개최)의 결의문은 “22차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대회 국제 계급투쟁에 대한 결의” 코뮤니스트」 7, 2018.4.30., <국제코뮤니스트전망>을 참조할 것이른바 자본주의 쇠퇴기의 마지막 단계로서 ICC가 설정한 해체」 (Decomposition)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실려 있다.

 

3. ICC와 함께 대표적인 코뮤니스트 좌파 국제조직이며그 전의 IBRP(혁명당 국제서기국)와 CWO(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이 통합한 새로운 조직의 명칭이다.

 

4. 이 결의문은 23개 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항의 내용이다.

 

5. 위 결의문 6

 

6. 위 결의문 7~15

 

7. 이 그룹은 원래 ICC의 내부분파였는데조직 내부 사건으로 분리된 그룹으로 오래전부터 ICC와 대립해 왔다특히 ICC의 해체를 놓고 2005년부터 본격적인 논쟁을 한 바 있다이 그룹의 입장은 사회적 해체 국면의 ICC 이론의 역사적이론적 절벽’ (ICC의 내부분파, 2005)에 잘 드러나 있다.

 

8. IV와 공동성명 자본주의는 전쟁을 의미한다!를 낸 미국의 코뮤니스트 좌파 그룹

 

9. 2019년 7월 24일 창립대회를 개최했다.

 

10. ICC와 IV, 그리고 IGCL과의 논쟁은 더 지켜볼 일이다.

 

11. 윗글, 2

 

12. 윗글, 4~5

 

13. 국제 상황에 대한 2019 결의 몇 가지 관찰과 질문, ICC Forums

https://en.internationalism.org/forum/16708/2019-resolution-international-situation-some-observations-and-questions

 

14. (1)에 소개한 긴 글은 두 조직의 논쟁이 자본주의 위기세계전쟁의 원인맑스주의 원칙과 방법론등으로 이어졌고, ICC가 2017년 22차 대회에서 ICC가 자본주의 쇠퇴기의 마지막 단계인 해체를 규정하면서 ICC는 세계에서 동떨어진 코뮤니스트 좌파처럼 보이고 있다.

 

15. 중국-러시아 블록의 창조에 대하여, 2019.9.28, <An internationalist Articles Selection &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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