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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국회의사당 공격 사건 : 전 세계 자본주의 해체의 중심부에 서 있는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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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국회의사당 공격 사건 전 세계 자본주의 해체의 중심부에 서 있는 미국

 

이건 마치 바나나 공화국에서 선거 결과를 논쟁하는  같다.” 이 선언은 조 바이든의 승리 인증을 막기 위해 모여든 수백 명의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이 1월 6일 국회의사당을 침범한 뒤 나온 것이다미국 정치 상황에 대한 그러한 가혹한 판단은 미국에 철저히 적대적인 사람이나 미국 좌파로부터 유래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전혀 그렇지 않다이것은 트럼프와 같은 당 소속인 조지 부시 전(대통령이 한 말이다이는 그날 워싱턴에서 일어난 사건의 심각성에 대해 많은 것을 우리에게 말해 준다몇 시간 전백악관 앞에서 대선에 패배한 대통령은 마치 제3세계 선동가처럼 자신의 지지자들을 이렇게 부추겼다. “우리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우리는 결코 승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약함으로는 우리나라를 되찾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평화롭고 애국적으로 국회의사당 건물로 행진해서 목소리를 높일 것임을 알고 있습니.”  

 

폭동에 대한 살짝 가려진 외침에 따라프라이드 보이스(Proud Boys)와 같은 세미 파시스트 트럼프주의 갱단이 이끄는 복수심에 불타는 군중들은 국회의사당을 향해 내셔널 몰 거리를 걸어 내려가서완전히 압도당한 보안군이 보는 앞에서 그 건물을 공격하기만 하면 되었다.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M)가 시위하는 동안 바로 그 건물 앞에 배치된 인상적인 경찰이 통제력을 전혀 잃지 않았음에도 국회의사당 진입을 막는 역할을 하는 경찰 저지선이 어떻게 공격자들에게 뚫렸을까이러한 충격적인 장면은 미국 민주주의의 상징에 대한 공격이 정치적 9월 11이라는 이론을 뒷받침할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혼돈에 직면해 당국은 상당히 신속하게 폭동 진압군을 배치했고주 방위군을 투입했다시위 참가자 한 명이 총에 맞아 죽었고다른 세 명이 사망했다군대가 워싱턴의 거리를 순찰하고 통행금지가 내려졌다이 경악스러운 장면들은 마피아 파벌 간의 유혈 경쟁으로 분열된 제3세계 바나나 공화국에서 선거 후 밤과 참으로 닮았다그러나 전 세계 신문 일 면을 장식한 이 사건들은 일부 과대망상적 군 장성이 초래한 일이 아니었다그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민주주의’ 내부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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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대하는 혼돈의 중심에 서 있는 세계최강국

 

셀카봉으로 무장한 백인우월주의자들광적인 무장 민병대뿔 달린 모피 헬멧을 쓴 음모론자들에 의해 자행된 미국 민주주의 성전에 대한 신성 모독은 미국 사회에 점점 더 거세지고 있는 폭력과 비합리성의 노골적인 표현이다정치 기구의 균열트럼프 당선 이후 포퓰리즘의 폭발은 자본주의 사회가 발끝에서 썩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사실우리가 1980년대 말부터 주장해 온 것처럼(1), 1차 세계대전과 더불어 쇠퇴기에 접어든 자본주의 체제는 지난 수십 년에 걸쳐 쇠퇴의 최종 단계인 해체 단계로 빠져들고 있다이 상황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30년 전 동구권 붕괴였다이 주요 사건은 단순히 이 블록 국가를 지배했던 정권들의 취약성을 보여 주는 것만이 아니었다그것은 그 이후로 점점 더 악화한 전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영향을 미치는 역사적 과정을 표현했다지금까지 이러한 해체의 가장 분명한 징후들은 이미 아주 허약한 주변부’ 국가들에서 볼 수 있다이런저런 부르주아 파벌 이익을 위해 총알받이 역할을 하는 분노한 군중들일상화된 극심한 폭력모든 거리 한 귀퉁이에서 볼 수 있는 비참한 빈곤국가와 전 지역의 불안정화… 이 모든 것이 바나나 공화국에서만 일어날 일인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수년 동안이러한 일반적 경향은 점점 더 뚜렷하게 ‘중심부’ 국가를 강타해 왔다물론모든 국가가 같은 방식으로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해체가 이제 가장 강력한 국가들을 타격하고 있음은 분명하다유럽에서 테러리스트 공격이 증가하고 있고트럼프나 보리스 존슨과 같은 무책임한 사람들이 예상치 않게 승리를 거두며비합리적인 이데올로기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무엇보다도해체가 전례 없이 가속되고 있다는 걸 그 자체로 표현하는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에 대한 대응은 재앙적이었다가장 문명화된’ 부분을 포함해서 자본주의 세계 전체가 야만성과 점점 더 심한 경련을 향해 비참하게 진화하고 있다.

 

만약 오늘날가장 발달한 국가 중에서 미국이 이러한 부패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면그것은 또한 불안정성의 주요 요인 중 하나를 나타낸다리얼리티 TV에서 성장한 억만장자 광대가 대통령직에 접근하는 것을 막지 못한 미국 부르주아지 무능이 이미 미국 정치 기구의 증대하는 혼돈을 보여주었다그의 임기 동안트럼프가 능숙한 비지니스맨의 섬세한 작전이라고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모든 종류의 신랄한 선언들과 혼란스러운 거래를 통해 미국 사회의 분열 악화특히 인종 분열 악화와 전 세계에서 혼돈을 부채질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우리는 그가 이란을 폭격하는 것을 마지막 순간에 막은 미군 사령관과의 충돌이나그가 단지 몇 주 전에 로켓맨이라는 별명을 붙인 김정은과의 역사적인 만남 떠올릴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한 후수십 년 동안 보건 체계를 축소했던 모든 국가는 범죄적인 과실을 드러냈다그러나 여기에서도 도널드 트럼프가 이끄는 미국 정부는 국내 기록적인 사망자 수(2)와 더불어세계보건기구(WHO)와 같은 세계협력기구를 불안정하게 하여 국제 수준에서도 재앙의 선두에 서게 되었다

 

광적인 트럼프주의자 무리의 국회의사당 공격은 전적으로 사회의 모든 수준에서 폭발하는 혼돈의 일부이다이것은 인구의 다양성(흑인 대 백인엘리트 대 민중여성 대 남성이성애자 대 동성애자 등사이 전적으로 비합리적이고 폭력적인 갈등 증가의 표현이었다그것의 캐리커쳐는 중무장한 인종주의 민병대와 망상적인 음모론자들로 대표된다.

 

그러나 이러한 균열은 무엇보다도 미국 부르주아지 파벌 간의 공공연한 대립의 반영이다한편으로는 트럼프 주변의 포퓰리스트들과다른 한편으로는 국가 자본의 장기적인 이해관계에 더 관심을 두는 이들 사이의 대립의 한 표현이다민주당 내에서 그리고 공화당 인사들 사이에서 국가와 군사 기구들 안에서주류 언론 매체에서 또는 할리우드 의식의 무대 위에서 포퓰리스트 대통령의 몸짓에 반대하는 야당의 캠페인은 꾸준했고 가끔은 매우 적의에 차 있었다.

 

서로 다른 부르주아 파벌 간의 이러한 충돌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미국과 같은 민주주의에서그리고 제세계 국가들에서 일어나는 것과는 달리 그러한 충돌은 제도의 틀 안에서 어느 정도 질서를 존중하면서 일어났었다그러나 이제 그러한 충돌이 민주주의의 모범’ 국가 내부에서 이러한 폭력적 형태를 띤다는 사실은 지배계급의 정치 기구 내부에서 엄청난 혼돈이 고조되고 있음을 증명하고이는 자본주의 해체로 빠져드는 중대한 발걸음임을 의미한다.

 

트럼프는 자신의 지지자들을 채찍질하면서 여전히 인정하지 않는 대선 패배 이후 그의 초토화’ 전술에서 새로운 선을 넘었다미국 민주주의 입법 상징인 국회의사당에 대한 그의 공격은 공화당 내부에 분열을 야기했고에이브러햄 링컨 당을 구하기 위해 공화당의 가장 온건파’ 부분은 트럼프가 민주주의에 대해 자행한 이러한 쿠테타를 비난하고 트럼프와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민주당은 이제 그의 가장 열광적인 지지자들을 더욱 자극했던 트럼프의 무책임과 범죄 행위를 소리 높여 비판할 수 있었다.

 

전 세계 부르주아지의 경악에 직면하여 미국의 이미지를 복원하고 '자유와 민주주의의 땅'에서 혼돈의 폭발을 억제하기 위해 조 바이든과 그의 일행은 즉시 트럼프와의 필사적인 싸움에 더욱 몰두했다신임 대통령 취임 직전에 더는 그의 대통령직을 허락하기 어려운 행동을 한 문제가 있는 국가 원수의 무책임한 행동을 비난하며 그를 권좌로부터 퇴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공화당 각료들의 일련의 사임트럼프 사임 또는 탄핵 촉구그리고 그가 핵 버튼을 누르지 않도록 그의 행동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도록 국방부에 촉구하는 것은 정치 게임에서 현직 대통령을 배제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준다국회의사당에 대한 공격 이후정치적 위기로 인해 트럼프를 지지했던 유권자의 절반은 트럼프에게서 거리를 두었지만나머지 절반은 민주주의의 신성한 사원에 대한 공격을 계속 지지하고 정당화하고 있다트럼프의 정치 경력은 심각하게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그의 당선 자격을 박탈하고 2024년 선거에서 출마가 불가능하도록 모든 조치가 취해질 것이다선거에서 패배한 이 대통령은 이제 단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그가 반란을 요구한 것에 대한 법적 조치에 직면해 제 살길을 찾는 것이다국회의사당 공격 당일 저녁 트럼프는 공격자들의 행동을 비판하기를 거부하면서 그들에게 평화적으로 귀가하라라고 요청했다이틀 후 그는 한 발 더 뒤로 물러서면서 공격을 혐오스러운 것이라 부르며 폭력불법신체 상해에 분노했다고 말했다그리고 그는 조용히 자신의 선거 패배를 인정하고 바이든을 위해 왕좌를 비우겠다고 선언하면서, 1월 20일 신임 대통령 취임식에는 참석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트럼프를 정치 무대에서 완전히 제거할 수 있지만포퓰리즘은 그렇지 않다이러한 반동적이고 모호한 이데올로기는 오직 사회적인 해체의 악화와 함께 입지를 넓힐 수 있는데오늘날 미국은 이러한 악화의 진원지이다미국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분열되고 갈라져 있다폭력은 계속 증가할 것이고국민 내부 간 대립(무장 충돌을 포함)의 끊임없는 위험과 함께 계속될 것이다바이든이 미국 국민을 향해 '화해'를 외치는 것은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이것이 부분적 또는 일시적으로는 성공일 수 있지만세계열강 내부의 사회적 혼돈으로의 근본적인 경향을 막을 수는 없다.

 

미국 프롤레타리아트에 가장 큰 위험은 부르주아지의 다른 파벌 간의 대결에 말려드는 것이다트럼프를 지지하는 유권자의 대부분은 '엘리트'를 거부하고 '운명의 남자'를 찾는 노동자들로 구성되어 있다트럼프는 산업을 재건하겠다는 약속으로 러스트 벨트에서 많은 실업자 프롤레타리아를 결집할 수 있었다트럼프 지지 노동자와 바이든 지지 노동자 사이에 충돌 위험이 있다더욱이 해체로 빠져드는 것은 정체성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 백인 대 흑인의 대결 구도를 설정하면서 미국 고유의 인종적 분열도 악화시킬 위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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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민주주의 페인은 노동자계급에게는 함정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직에 올랐을 때 보았듯이정치 게임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통제력 상실 경향은 노동계급이 자본주의 해체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반대로 지배계급은 이러한 해체의 영향을 노동계급에 돌리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이미 1989동구권 붕괴가 자본주의 해체를 분명하게 드러냈을 때주요 국가의 부르주아지는 이 사건을 스탈린주의 정권의 야만성과 진정한  코뮤니스트 사회 사이의 동질성 주입을 목표로 거대한 민주주의 캠페인을 전개하는 데 이용했다. ‘혁명적 전망의 죽음과 노동자계급의 소멸에 대한 거짓말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방향성을 잃게 했고그 결과 계급의식과 전투성에 심각한 역류를 불러일으켰다오늘날 부르주아지는 국회의사당 사건을 이용해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영광을 위한 새로운 국제 캠페인을 시작하려 한다.

 

반란자들이 여전히 국회의사당을 점령하고 있을 때 바이든은 즉시, “다른 많은 미국인과 마찬가지로 나는 오랫동안 민주주의에 대한 빛과 희망의 등대였던 우리나라가 ... 그렇게 암울한 순간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충격을 받고 슬펐습니다지금과 향후 4년의 임무는 민주주의의 회복이어야 합니다.”라고 선언했다그 후 공화당 내부를 포함하여 같은 흐름의 성명서가 이어졌다특히 서유럽 주요 국가의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진들은 나를 화나게 하고 슬프게 했습니다그러나 나는 미국의 민주주의가 침략자들과 폭도들보다  강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라고 앙겔라 메르켈은 선언했다엠마뉘엘 마크롱은 우리는 민주주의를 의심하는 사람들의 폭력에 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그리고 보리스 존슨은 덧붙였다. “ 평생 미국은  가지 매우 중요한 것들을 옹호해왔습니다자유에 대한 이상민주주의에 대한 이상입니다.

 

기록적인 참여를 보인 대통령 선거를 중심으로 한 동원과 더욱더 공정하고 깨끗한’ 경찰을 요구하는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 이후세계 부르주아지의 많은 부분이 포퓰리즘에 반대해 민주 국가 수호라는 구호 아래 프롤레타리아트를 동원하려고 노력하고 있다프롤레타리아트는 독재자’ 트럼프에 맞서 민주당’ 파벌 뒤에 줄을 서도록 요구받고 있다이 잘못된 선택은 순수한 사기극이자노동자계급에는 함정이다!

 

트럼프가 부추긴 국제적 혼돈의 여파 속에서 민주당 바이든은 더욱 공정한 세계 질서를 확립할 것인가확실히 그렇지 않다노벨 평화상 수상자 버락 오바마와 그의 부통령 조 바이든은 8년 동안 끊임없는 전쟁을 치렀다중국러시아이란 및 다른 모든 제국주의 상어들과 긴장은 기적적으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바이든은 이민자들에게 더 인간적인 미래를 제공할까우리는 모든 위대한 민주주의자들처럼 그의 전임자들이 이러한 달갑지 않은’ 사람들을 얼마나 잔인하게 처리했는지 살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우리는 바이든이 부통령직에 있던 오바마 대통령 집권 8년 동안에 조지 부시 대통령 집권 8년 동안보다 더 많은 이민자 추방이 있었다는 것만 기억하면 된다오바마 행정부의 이민자 대책은 트럼프 시절 반()이민 확대의 물꼬를 트는 데 그쳤을 뿐이다.

 

노동자계급에 대한 경제적 공격이 민주주의로의 복귀와 더불어 끝날 것인가확실히 그렇지 않다어떤 해결책도 없이 위기에 빠진그리고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더욱 악화한 세계 경제는 민주정부가 이끄는 모든 중심부 국가에서 실업과 빈곤그리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의 생활과 노동 조건에 대한 공격의 폭발적 증가를 가져올 것이다그리고 조 바이든이 그럭저럭 경찰을 정화할 수 있다면모든 국가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민주주의 국가의 억압세력은 여전히노동자계급의 어떠한 투쟁도 막을 것이며그들의 생활 조건과 최소한의 기본적인 필요의 방어를 위한 모든 시도에 맞서 경찰 공권력을 동원할 것이다.

 

미국이 민주주의로의 회귀를 이룬다고 해서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노동자계급은 부르주아 국가의 민주적 파벌들의 사이렌에 잠들거나 갇혀서는 안 된다지배계급이 대부분 좌파와 인민전선의 지도 아래 수천만 명의 프롤레타리아를 제2차 세계 대전에 동원하는 데 성공한 것은 '파시즘에 대항하는 민주주의 수호'라는 명분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자본 독재의 숨겨진 위선적인 얼굴일 뿐이다!

 

국회의사당에 대한 공격은 인류를 지옥으로 서서히 끌어들이는 죽어가는 시스템의 새로운 증상이다썩어가는 부르주아 사회의 현실에 직면하여 오직 세계 노동자계급만이 경제 위기의 영향에 맞서 자신의 계급 영역에서 투쟁을 발전시킴으로써 자본주의를 전복시키고 지구와 인류에 대한 파괴 위협을 종식할 수 있다.

 

2021년 1월 10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원문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6955/assault-capitol-washington-usa-heart-world-wide-decomposition-capitalism

 

<>

 

1) 영문판 국제평론」 107호 해체에 대한 테제(Theses on decomposition)” 와 국제평론」 164호 오늘날 해체에 관한 보고서(Report on decomposition today)” 참조

2글 작성 당시공식적인 미국의 코로나19 사망자는 363,581명이고 확진자는 거의 2,200만명이다. (출처 : “Coronavirus : el mapa que muestra el número de infectados y muertos en el mundo por covid-19”, BBC News Mu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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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윤주형 열사 8주기 추모문화제

  • 분류
    계급투쟁
  • 등록일
    2021/01/19 15:03
  • 수정일
    2021/01/19 15:05
  • 글쓴이
    자유로운 영혼
  • 응답 R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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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윤주형 열사 8주기 추모문화제


"반짝반짝" 윤주형 동지의 비정규직 철폐!
해고와 차별없는 세상의 의지는 더욱 빛나야 한다!


추모제 일시 : 2020년 1월 23일(토)

추모제 장소 : 마석 모란공원 1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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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리프크네히트를 추모하며 (1871년 8월 13일 ~ 1919년 1월 15일)

칼 리프크네히트를 추모하며 

야만의 자본주의에 살해당한 노동자 투사들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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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년 1월 15일, 두 명의 프롤레타리아 지도자,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가 향년 47세로 사회민주주의자들과 구스타프 노스케(Gustav Noske)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당했다.  

 

 1918년 11월, 독일 부르주아지는 노동자평의회를 해체하고 노동자와 병사의 투쟁을 피로 물든 진흙발로 짓밟았다. 1918년 12월, 스파르타쿠스 동맹의 구성원들이 독일 코뮤니스트당을 창설했다. 블러드하운드(집요한 추적자)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자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노동자 탄압 시기, 유럽 심장부에서 수백 명의 노동자를 살해했다. 룩셈부르크는 적기(Red Flag) 신문사 사무실에 있었는데,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동지들에 의해 몸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뒤이어 범죄자들이 군중들을 설득하여 룩셈부르크와 리프크네히트를 가두고 베를린 벽보에 포스터에 그들을 죽이라고 요구했다. 벽보의 주제는 명백했다:

 

  “평화, 일자리, 빵을 원한다면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를 죽여라.”

 

  결국, 그들의 은신처는 발각되었다. 1919년 1월 15일 밤, 베를린 부유한 빌머스도르프(Wilmeersdorfin) 거리의 무장한 부르주아 자경단 위원회 구성원 5명은 룩셈부르크와 리프크네히트를 납치했다. 범죄자들은 인질을 경찰에 넘기지 않고, 기병 수비대 소총 사단이 최근 새 본부로 삼은 호화스러운 에덴 호텔(Eden Hotel)로 데려갔다. 범죄자들은 그들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재판이 열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자들은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범죄자들은 리프크네히트가 도망치려는 와중에 총에 맞았다고 했으나, 구타당한 뒤 총살되었다. 그들은 룩셈부르크 또한 총으로 구타하고 머리에 총을 쏜 다음 수로에 시체를 버렸다. 부르주아 언론은 리프크네히트가 도주하던 중 총에 맞아 숨졌으며, 룩셈부르크는 폭도 중 한명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썼다. 노스케(Noske)는 프롤레타리아트 지도자 암살에 연루된 공무원들의 무죄방면에 사적으로 사인했다. 기병대 사단의 우두머리로 살해를 명령한 발데마르 파브스트(Waldemar Pabst)는 후에 나치 정권, 독일연방공화국에 봉사했다. 몇 년 후, 그는 자신이 저지른 독일혁명을 억압한 일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으며, 결과적으로 자본주의를 구원했다고 이야기했다. 

 

  특히 로자 룩셈부르크, 칼 리프크네히트와 같은 혁명가의 암살은 노동 운동과 세계 혁명의 진전에 회복할 수 없는 일격을 가했다. 독일혁명은 선구자들과 사상가들을 잃었다. 불행히도, 그 결과는 무척 중대했고, 고통스러웠다. 한 편에서는 독일 부르주아지가 러시아혁명의 경험에서 배운 것들을 독일 프롤레타리아트에 써먹었다. 다른 한 편에서 독일 코뮤니스트들은 사회민주주의 사체로부터 탯줄을 끊는데 벌벌 떨었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위 정당 건설을 연기했다. 이는 모두 독일혁명 패배로 길을 닦는 것이었다. 이 패배는, 또한 세계 혁명의 패배로 길을 열었다.

 

***      ***     ***
  

 칼 리프크네히트(Karl Liebknecht)는 위대한 이론가가 아니었다. 로자 룩셈부르크와 달리 그의 이름과 영원히 연결될만한 주장 글이나 정치 경제에 관한 주요 논문을 그는 쓰지 않았다.(심지어 노동가치설에 대해 의심하기까지 했다.)(1) 그는 능숙한 정치가도 아니었다. 전쟁 전에는 맑스의 동료이자 독일사회민주당(SPD) 공동창립자의 아들로 유명했는데(2) 전쟁 후 그는 사회민주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를 매우 꺼렸다.

 

그러나 리프크네히트는 원칙적인 사람이었다. 유명한 자유주의 역사학자 세바스찬 하프너(Sebastian Haffner)는 그를 "독일이 배출한 가장 용감한 사람 중 한 명"이라고 묘사했다. 그는 자신이 어느 날 갑작스러운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증명했으며, 그중 일부는 다음의 단편에서 읽을 수 있다. 리프크네히트는 1918 4월에 루카우(Luckau) 감옥에서 이 글을 썼다. 때로는 장황하고 급하게 쓰기도 했지만, 내부와 외부 변증법, 주제와 대상, 의식과 조건 같은 중요한 주제를 다뤘다. 따라서 그것은 오늘날에도 관련이 있다.

 

리프크네히트가 여기서 확인하기를 바라는 것은 트로츠키가 몇 년 후 "적절한 순간"으로, 특히 실패한 독일 혁명과 관련하여, 1917 10월의 교훈을 되새기며 이론화하려고 시도한 것이다.(3) 게오르크 루카치(Georg Lukács)는 이 문제를 아우겐블릭(Augenblick : 순간) 이라는 다소 철학적인 용어로 표현했다. , 계급의식이 있는 프롤레타리아트가 객관적인 사건 과정에 주관적으로 개입하여 자본주의를 총체적으로 교란할 수 있는 순간 또는 눈 깜박할 사이로 표현했다. 종종 이것은 조건의 "성숙"으로 논의되었다.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는 거의 엉망진창으로 죽었다.”고 폴 매틱은 나중에 회상했다. 사실, 그들의 마지막 글에는 이미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는 것처럼, 불길한 예감이 감돌고 있었다. 오늘날, 스파르타쿠스 반란을 진압하고 지도자들을 살해한 지 100년이 지난 지금, 이 살해당한 혁명가들이 남긴 작품을 다시 읽어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019년 3월

월트 아워(Walt Auerbach)

 

<주>
    (1)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1922년 사후에 출판된 그의 맑스의 비판의 주요 특징(Grundzüge einer Marxkritik)을 참조 바란다.

(2) 빌헬름 리프크네히트(Wilhelm Liebknecht)와 룩셈부르크는 때때로 리프크네히트가 당에서 "태어났다"고 농담을 하곤 했다. 1914 8월 이전에 그는 독일사회민주당(SPD)의 청소년 부문을 보강하기 위해 대부분의 노력을 기울였다. 전쟁 채권에 반대표를 던지기로 한 그의 결정은 그를 반대파의 유일한 주창자로 만들었고, 결국 1915년에 재판을 받고 1918 11월까지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3) 어쨌든, 이것은 보르디가가 가장 좋아하는 트로츠키 팸플릿이었다. (테러리즘과 코뮤니즘을 제외하고) “적절한 순간을 잃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반란에 가장 유리한 조건은 분명히 힘의 관계에서 우리에게 유리한 최대 변화가 일어났을 때이다. 우리는 물론 의식 영역에서의 힘의 관계, 즉 정치적 상부 구조의 영역에서의 관계를 언급하고 있으며, 혁명적인 시대 전체에 걸쳐 다소 변하지 않은 것으로 가정 할 수 있는 경제 토대의 영역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와 같은 경제 토대에서, 사회의 계급 분열과 함께, 힘의 관계는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분위기에 따라 변하는데, 그들의 환상이 깨지고 정치적 경험이 커지는 정도, 국가 권력에서 중간 계급과 집단의 신뢰가 깨지는 정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후자가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잃는 정도에 따라 변화한다. 혁명 기간 이러한 모든 과정은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모든 전술상의 기술은 이것으로 이루어진다. : 여러 사정이 우리에게 가장 유리한 순간을 포착하는 것" 레온 트로츠키. 10월의 교훈. 나오미 알렌(Naomi Allen) 번역. 좌익반대파의 도전, 1923-1925. (Pathfinder Press, New York, NY : 1975).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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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외교 정책

 

  국제 사회주의는, 그 사회주의적이고 국제주의적인 특성 때문에(다시 말해서 사회주의이면서 국제주의이므로), 내부 정치와 외부 정치 사이의 모순을 전혀 알 수도 없고, 용인하지도 않는다. 국제 사회주의의 내부 정치와 외부 정치의 동질성과 연속성은 다른 부가적인 조건을 필요로 하지 않는 그것을 위한 선결 조건이다. 내부와 외부 양쪽에서 국제 사회주의는 아주 동일한 사회주의적, 국제주의적, 혁명적 정신을 요구한다.

  사회주의 정치의 과업은, 계급의식을 지닌 프롤레타리아트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다음과 같다. 프롤레타리아 계급 운동의 도움을 받아서, 사회주의 체제의 방향으로 사회 발전을 촉진하는 것, 등등. 시민 기동대를 통하여 사태가 급변하는(peripety)(1) 순간에 이 운동은 아주 좁은 의미에서 사회 혁명의 특성을 띤다. 하지만 사회 혁명은 인류의 결정적인 부분이 무르익어 사회주의 체제에 적합할 때에만 가능하다. 그런데 이 무르익어 원숙해진다는 말은 자본주의 체제가 너무 익어 썩어간다는 것, 다시 말해 자본주의가 사회 발전과 관련한 자신의 과업을 완수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간혹 피상적인 도식이 상정하듯이, 사회 혁명에 필요한 전제 조건이 더 빨리 출현하도록 만들기 위하여, 사회주의 정치가 자본주의적 발전을 촉진해야만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는가?

  [혁명을 위한] 사회의 무르익음은 절대적인 척도가 아니라 상대적인 것으로, 경제적·기술적 측면에서조차 그러하다. 사회가 사회주의 체제에 적합할 정도로 무르익었는지 아닌지는 그것의 경제적 발전 정도에 달려있을 뿐 아니라, 가장 넓은 의미에서 그것의 전반적인 사회적 발전에도 달려있다. 무엇보다도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 통찰력, 의지, 그리고 적극적인 결단력이 [발전한] 정도에 달려있다. 다시 말해서 노동 대중의 정신적, 도덕적, 심리적 수준에 달렸다.

  이 심리적 요소가 저 맑고 푸른 하늘에서 임의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중 각각의 생활 여건 전체의 결과로 생기는 것인 한, 그것의 척도는 초인적인 힘이나 초사회적인 힘에 의해 거의 결정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심리적 재능도 어떤 한도 안에서 자기 운동을 할 수 있는 능력, 즉 이러한 한도 안에서 체계적인 행동을 통하여 타고난 재능을 증대시킬 능력을 포함한다. 이것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에도 적용된다. 교육을 비교해보라.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이러한 능력이 존재하는 한, 그들이 객관적으로 조건 지워지거나 결정될지라도, 인간이 어떤 한도 안에서 그 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 다양한 인간 집단이 자신들이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는, 조사하고 해결하고 행동할 자유가 사회 심리의 관점에서는 가상의 것으로 보이는 것처럼, 개인 심리의 관점에서는 개인의 자유의지 관념도 그렇게 보일 것이다. 인간의 심리적·정신적 특성을 가장 넓은 의미에서 고려할 때, 인간 정신이 지닌 힘의 효과는 개인들과 집단들이 함께 일하고, 서로 대응하고, 상호 작용하면서 객관적으로 서로 뒤엉켜 있다는 것(그들이 서로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외에 다른 것일 수 없다. 자기기만전체적인 사회 심리와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물질적인 사회적 활동은 이 안에서 완전히 표현된다이 넘쳐나는 이 대단히 복잡한 과정에서는, 누구나 그들이 스스로 그리고 다른 사람과 관계 속에서 갖출 수 있는 모든 물리력과 추진력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사회 전체를 위하여 객관적으로 요구되고 결정된 삶의 과정을 실현하는 데에 자신들의 몫을 기여하게 될 것이다.

  사회주의 사회의 가능성을 앞당기기 위하여, 그 심리적 요소를 북돋우는 일은 사회주의 정치의 명확한 임무, 즉 혁명적 과업이다. 이 과업을 수행함으로써, 사회주의 정치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특히 정치적·경제적 조건에서, 사회주의 사회의 싹과 조건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기 위한 조건을 창조하는 데 기여한다. 그러므로 변증법적으로, 그것은 사회의 무르익는 시점을 가능한 한 가깝게 끌어당기는 효과를 지닌다.

  종종 자본주의에 대하여, 그것이 승리하면 할수록 그것은 점점 더 자신의 무덤을 파는 처지가 된다고들 이야기한다.  파국 이론의 핵심이 올바른 것은 오직 그에 대한 반작용이 그것과 동일한 비율로뿐만 아니라 훨씬 더 높은 비율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파울 렌쉬(Paul Lensch)에 따르면, 그러한 반작용은 자본주의 승리를 옹호하지도 그것의 떠들썩한 부산물도 옹호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작용은 우리의 임무, 다시 말해 투쟁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이다.

  자본주의의 전개(자본주의적 본질 안에서)와 관련한 문제에서, 사회주의 정치는 전적으로 비판적이다. 하지만 이 비판은 또한 그것이 [이 전개를] 여전히 제어하고 있는 재능을 개척하고 육성한다는 점에서 창조적인데, 사회주의 운동은 그 재능을 사회주의 운동 발전의 잠재적 요소로써 이용할 수 있다.

  사회주의 외교 정책은 단순히 그 내부 정치를 국경사회주의적 관점에서 이것은 우연적이다을 넘어서 확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 어떤 사회 원리보다 더, 그것은 이념과 실천 양쪽 모두에서 사회주의의 내부 정치와 동일하다. 사회주의의 내부 정치뿐 아니라 외부 정치도 똑같이 국제적인 사회적 모순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는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 이익을 표현하는바, 여기서 각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는 고립된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국제적인 계급투쟁의 맥락에서, 모든 국가에서 일어나는 계급들 사이의 다툼은 의존적인 하위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그것들이 단지, 본질적으로 국제적인 사회주의 원칙을 (계급 적대가 계급투쟁개별 국가의 내부에서 특별하게 나타나거나 국가의 국경을 넘어 전체적으로 나타난다의 구체적인 조건에서, 지역적으로든 전반적으로든, 세부적이고 총체적으로 나타나는) 구체적인 형태에 특별하게 적용하는 것임을 말해준다.

  국가의 관점보다 국제적 관점이 우위에 있다는 점에서, 원칙상 내부 정치보다 외부 정치가 우위에 있다는 사실이 뒤따른다. 따라서 사회주의의 내부 정치는 외부 정치의 특별한 경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제국주의가 말해주는 것은, 비록 반대의 의미에서이지만, 필연적으로 사회주의에도 적용된다. “내적 승리와 외적 승리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사회주의 외교 정책의 목표는 그 수단이 그래야 하는 것처럼 사회주의적이어야 한다. 사회주의는 사회주의 체제의 방향으로 사회 발전을 촉진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범위에서] 국제적이어야 한다. 이러한 발전을 촉진하는 일은 사회적으로 적합한 모든 재능노동 계급의 사회주의적 재능은 자본주의 사회의 기초 위에서도 여전히 자본주의에 대립한다을 통해서 발생한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자본주의 자체의 발전하는 힘의 영향을 통해서도 발생한다. 사회주의적 변형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자본주의 지역들의 무르익음을 가능한 한 동시에 확보하기 위하여, 사회주의 운동이 (그와 대립하는 제국주의적 힘의 세기와 그것의 반사회주의적 위험 정도에 반발하는) 힘의 유형과 에너지를 측정하는 한에서는 말이다. 사회주의 외교 정책의 방식은 혁명적 계급투쟁의 다양한 형태와 방법이다.

  계급투쟁 외부에 있을 수 있는 사회주의 외교 정책의 사회주의적 도구가 존재하는데, 그것은 내부 정책의 하나일 뿐이다.

1918 4

칼 리프크네히트(Karl Liebknec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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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eripeteia 또는 peripety는 운명의 급변(사태의 격변)을 말하며, 문학에서 자주 사용하는 기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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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 10

 

    부끄럽다나는 아직껏 당파를 취하지 않고 있다아무 당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그 이유는 내가 비겁하기 때문이다본래 나는 혁명론자가 아니라 발전론자다그런데 사람들이 나를 프롤레타리아와 혁명의 예술가로 간주하고 칭송하면서 내게 그런 일들을 떠맡겨버렸기 때문에 나는 이런 일들을 계속하기가 꺼려진다

 

  한때는 혁명론자였다. 어린 시절과 소녀 시절에는 혁명과 바리케이드를 꿈꾸었었다. 지금 내가 젊다면 틀림없이 코뮤니스트였을 텐데. 아직도 그 꿈이 완전히 사그라든 것은 아니지만 내 나이가 벌써 50대다. 그리고 전쟁을 겪었고 페터(1차 대전 때 전사한 둘째 아들)와 마찬가지로 수천의 젊은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았다. 세상에 퍼져 있는 증오에 이제는 몸서리가 난다.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사회주의 사회가 어서 왔으면 좋겠다.

 

  이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살인, 거짓말, 부패, 왜곡 즉, 모든 악마적인 것들에 이제는 질려버렸다. 이 지구상에 세워질 코뮤니즘 사회는 신의 작품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내 입장은 소심하기 짝이 없고 마음속으로도 늘 회의한다. 나는 평화주의자임을 한 번도 고백하지 못한 채 그 주변에서 동요하고 있다. 어쩌다가 사람들이 페테르스부르크 거리에 전시된 내 작품을 보고서 나를 칭찬하는 말을 들으면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다. 젊은 노동자들이 만나자고 하는 것도 거절하기 일쑤다. 그들이 내가 확고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제발 사람들이 나를 좀 조용히 내버려 두었으면 한다. 사람들은 나 같은 예술가가 이 복잡하게 얽힌 상황 속에서 똑바로 제 갈 길을 찾아가길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나는 예술가로서 이 모든 것들을 감각하고 감동을 하고 밖으로 표출할 권리를 가질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리프크네히트의 정치 노선을 추종하지는 않지만, 리프크네히트를 애도하는 노동자들을 묘사하고 또 그 그림을 노동자들에게 증정할 권리가 있다. 그렇지 않은가?    

 

 

 1920년 10월 

케테 콜비츠(Käthe Kollw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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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룩셈부르크를 추모하며 (1871년 3월 5일 ~ 1919년 1월 15일)

로자 룩셈부르크를 추모하며
  • 야만의 자본주의에 살해당한 노동자 투사들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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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년 1월 15일 - 추운 겨울밤의 학살

     

     

      따뜻하고 포근한 안개에 둘러싸인 로자 룩셈부르크의 의식세계와는 달리 1919년 1월 15일의 밤은 살을 에는 추위 때문에 길이 얼음으로 꽁꽁 덮여 있었다. 숨을 헐떡거리고 있는 룩셈부르크는 군용트럭의 화물칸에 거칠게 내팽개쳐졌다. 거친 폭음을 내며 어둠을 향해 트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병사 하나가 트럭 위에 올라탔다. 다시 한번 그의 머리를 개머리판으로 내리쳤다. 그것을 통증으로 느낄 수 없을 만큼 룩셈부르크의 기력은 쇠잔해져 있었다. 살아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죽은 것도 아닌 상태로 트럭에서 세찬 삭풍에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중위는 무관심한 표정으로 잔인한 눈길을 룩셈부르크에게 돌려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마치 그에게 아직도 생명이 붙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허술하게 만들어진 우리에서 피에 굶주린 짐승이 피를 찾아 으르렁거리며 달려들듯이 중위는 피스톨의 방아쇠를 끌어당겼다.

     

      촛불은 꺼졌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산산이 부서졌다.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운하와 동물원 사이의 좁은 길을 따라 엔진 소리가 여운을 남기며 사라지고 있었다. 바로 옆의 운하에 멈춰서 있는 두세 명의 병사의 그림자가 물 위에 떠 있었다. 그곳으로 다가가서 급히 생각이 난 듯 차는 급정거 하였다. 병사들의 그림자가 한쪽 발에는 신발도 신지 않은 중년 여성의 그림자를 귀찮은 듯 다리 위에서 운하로 집어 던졌다. 튀어 오르는 물방울이 어둠 속으로 하얗게 흩어졌다. 삽시간에 어둠과 정적만이 감돌았다. 임무를 다했다는 듯 트럭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여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다음날 로자 룩셈부르크의 죽음이 동지 칼 리프크네히트의 죽음과 함께 전해졌다. 그가 선동한 군중의 광폭한 노여움에 의해 자신의 죽음을 초래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그리고 시체는 무질서한 혼란의 와중에도 분실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독일의 5월은 아름답다. 시인 하이네가 노래하듯이 ‘우아하고 아름다운 5월, 모든 초목이 싹틀 때’ 그것은 로자 룩셈부르크의 재생 시기였다. 진흙 속에 파묻힌 그의 육체가 운하 위로 떠오른 것은 5월 31일이었다. 6월 13일, 로자 룩셈부르크는 동지 칼 리프크네히트가 32명의 희생자와 함께 고이 잠들어 있는 베를린의 프리드리히 스펠데 묘지의 같은 장소에 묻혔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묘지 앞에는 생전에 좋아했던 꽃다발이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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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자 룩셈부르크의 최후 -비극의 종말

     

     

      독일혁명의 폭풍 속에서 혁명의 패배가 분명해진 순간에도 로자 룩셈부르크는 자신의 원칙과 방법을 포기하지 않고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베를린은 유지되고 있다」라는 논설에서 혁명의 와중에, 반혁명 승리의 환상 속에 있더라도 아직 혁명적 노동자는 사건에 대한 검토를 거듭하고, 경과와 결과를 역사의 척도로써 측정할 것을 요구했다.

     

     

      1월 이후, 로자 룩셈부르크의 심신의 피로는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고, 혁명에 대한 의욕과 의지가 간신히 그것을 지탱하고 있었다. 최종적인 승리를 눈앞에 두고 과로와 병세로 쓰러질 수도, 아니면 반혁명 군의 총검에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 순간까지도 룩셈부르크는 대중을 신뢰하고, 대중에게 미래를 걸었다. 그리고 이렇게 썼다.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이번 투쟁은, 해결해야 할 문제는 대단히 날카로운 데 반해 혁명이 발전할 수 있는 초기 단계에 필요한 전제 조건은 모자랐습니다. 그런 모순을 안고 따로따로 맞붙은 싸움이 시작되어 결국은 패배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혁명이 가진 특수한 생명 법칙이 있다면 그것은 거듭되는 패배를 통해서만 최후의 승리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질서가 베를린을 지배한다

     

     

      "지도자는 대중에 의해 거부되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지도자는 대중 속에서 만들어질 수 있고, 또한 만들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최후의 결정자는 대중입니다. 대중은 혁명의 최후 승리가 쟁취되는 전장입니다. 그들은 이 패전으로 인해 국제 사회주의 사회의 과시이며 힘인 역사적 패배의 연속 일환이 되었습니다. 바로 그래서 이 패배로부터 미래의 승리가 꽃필 것입니다." 로테 파네 1919.1.14

     

      1월 16일의 <폴베르쯔>는 칼 리프크네히트가 도망치려고 하여 사살되었고, 로자 룩셈부르크 또한 분노하여 광폭한 대중에 의해 살해되어 스스로 죽음을 초래했다는 뉴스를 보도했다. 그 전날 밤 9시경, 리프크네히트와  룩셈부르크는 만하임 가의 은신처에서 체포되어 에덴 호텔로 연행되었다. 바프스트 대위가 두 사람을 심문했는데, 살해의 준비는 이미 끝나 있었다. 호텔을 나서는 순간 한 명의 수병이 개머리판으로 리프크네히트를 때려 넘어뜨렸다. 정신을 잃은 그는 차에 실려 가 틸가르텐 호수 근처에서 끌어 내려져 그곳에서 학살되었다. 시체는 신원불명자로 취급하였다. 이어 룩셈부르크가 호텔에서 끌려 나왔다. 그리고 그의 최후 역시 비참하게 마감되었다. 이 학살에 대해 슬픔과 격노에 찬 요기헤스는 사실 자료를 모아 공개하고 그들의 범죄를 폭로하였다. 그것 때문에 그도 역시 3월 10일 체포되어 경시청의 감방 안에서 형사에 의해 학살되었다. 기력이 다한 늙은 메링도 역시 그들의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독일혁명은 비극의 막을 내렸다.

     

      그리고 비극의 역사는 반복되었다. 한때 세계 최고와 최대의 사회주의 세력으로 성장하고 국제 노동운동의 지도적 지위를 확고히 했었던 독일사회민주당(SPD)이었지만, 배신과 학살에 의해 독일혁명의 실패를 초래하더니, 결국 그 독일사회민주당이 그곳에서 파시즘을 탄생시키고 육성하게 된 것이다. 그 탄생과 양육의 부모였던 독일사회민주당은 과거 자기들이 로자 룩셈부르크와 동지들을 학살할 때 사용했던 방법에 의해 그들이 기른 자식에게 조직 자체가 압살 되는 운명을 겪었다.

     

      1933년 나치는 자본의 지지와 원조 하에 권력을 장악하고 국회의사당을 방화하고 그 죄를 독일사회민주당과 코뮤니스트당(KPD), 노동조합에 전가했고, 독일사회민주당은 이 상황에서도 나치의 눈치 보기에 급급했고 코뮤니스트당의 총파업 요구는 거부되었고 결국 세 곳 모두 결사금지의 탄압을 받게 된다. 이런 나치의 만행은 죽은 자의 묘를 파헤치고 일련의 사회주의 문헌과 함께 로자 룩셈부르크의 모든 저작을 불태우고야 만다. 결국, 전 인류의 불행과 파멸을 초래했던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야 룩셈부르크의 묘지는 해방되었고, 아직도 그의 저작과 사상, 혁명을 향한 실천은 복원 중이며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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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 동안 로자 룩셈부르크의 혁명 정신

     

      인류에 있어 이러한 역사적 재앙에 직면하여, 예전의 노동자당에 의한 이러한 배반에 직면하여 로자 룩셈부르크는 혁명 정신의 본보기, 지칠 줄 모르는 결연함과 장기적 관점에서 이론적-정치적 분석을 이뤄내는 역량의 한 본보기였다.

     

      전대미문의 수준으로 전개된 야만성과 당의 배반은 혁명가들에게 진정한 충격이었고, 그들 중의 일부는 침울함에 빠졌다. 독일의 많은 혁명가들이 수감되거나 추방되었다. 로자 룩셈부르크도 전쟁 기간 대부분을 감옥에 있었다. 4년 4개월간의 전쟁 기간 총 3년 4개월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그러나 그의 결연함을 굴복시키고 침묵하게 하려는 것이 수감의 의도였다면, 수감된 후 그의 반응은 이론이라는 무기로 반격하는 것이었다. 룩셈부르크는 자신의 책, 「자본의 축적」에 대한 비판들에 대한 대답으로 「반비판」을 썼다. 전쟁발발 전 독일사회민주당 학교의 교사로 활동하는 동안 그는 정치경제학에 관한 강의를 했었다. 수감 중에 그는 당 학교 교사로서 사용했던 초기의 그 강의 자료로 정치경제학입문을 썼다. 그리고 그는 문학과 문화 문제들도 다루었는데, 러시아 작가 코롤렌코의 동시대인의 이야기를 독일어로 번역하고 그 서문을 작성했기도 했다. 그가 러시아혁명에 대한 분석, '러시아혁명에 대하여'를 작성하고 러시아에서의 혁명에서 행해진 실수들에 대한 비판을 위한 최초의 몇몇 중요 점들을 발전시킨 것도 수감 중인 상태에서였다.

     

      물론 로자 룩셈부르크는 감옥에 갇힌 상태로 고통받았지만, 이것은 결코 그의 의지를 꺾거나 사기를 저하시킬 수 없었다. 그가 수감 중에 쓴 기록들이나 서신들을 읽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가 감옥 속에서 다룬 화제들의 다양성과 예술과 문학에 대한 일련의 편지들은 길들여질 수 없는 창조적 정신을 증언한다. “나는 종종 아침 6시부터 저녁 9시까지 책 읽기와 글쓰기로만 하루를 보냅니다.”

     

      자본주의의 도덕적 파산과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라는 전망에 직면하여 로자 룩셈부르크는 스스로 가장 결연한 투쟁에 투신했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매우 소중한 사람들을 잃는 깊은 슬픔을 겪으면서도 용감한 정신을 유지했다. 그가 강인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론적인 노력과 다른 열정들(보기를 들어 그림 그리기나 식물학)을 추구하는 능력을 통해서 그리고 외부로부터의 거대한 지원망을 통해서였다. 위장이 약해서 특별 식이요법이 필요했던 그는 감옥 밖으로부터 음식을 제공받을 수 있었다. 그의 저작들은 반복적으로 감옥 밖으로 밀반출되었고, 이는 때때로 간수들의 묵인하에 이뤄졌다. 수감 중에 룩셈부르크는 많은 동지들과 서신 교류를 했고, 그들에게 충고를 주고 감옥에 갇혀서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그들을 지원했다. 감옥을 둘러싼 어떤 벽도 그를 침묵시키고 그가 개인들에게, 동지들에게 그리고 노동자계급 전체에게 그의 지원을 제공하는 것을 막을 만큼 두껍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목소리는 정치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감옥 밖에서도 '들릴 수' 있었다. 룩셈부르크가 감옥에서 풀려나는 날 약 천 명의 노동자들(대부분이 여성노동자)이 감옥 정문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가 집까지 동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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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자 룩셈부르크의 생애

     

     

      로자 룩셈부르크는 1871년 3월 자모치(폴란드)에서 유대인 가정의 다섯째이자 막내로 태어났다. 1871년은 파리코뮨의 해였고, 제1 인터내셔널 내에서 바쿠닌의 음모에 대항한 투쟁이 있었던 때였다. 17살 룩셈부르크는 폴란드에서의 억압 때문에 스위스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고, 취리히대학에서 몇몇 과목들(식물학, 수학, 경제학, 역사 및 법학 등등)을 수학했다. 1897년 그는 '폴란드의 산업발전'에 관한 박사 논문을 제출했다. 1890년대에 이미 그는 폴란드 출신의 다른 동지들과 함께 제2 인터내셔널의 오래된 원칙들에 의문을 제기했다. 룩셈부르크는 자본주의에서 새로운 발달을 감지할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제2 인터내셔널의 저항에 맞서, 폴란드의 민족자결권이 더 이상 의제가 아니라고 결론지을 용기를 갖고 있었다. 이러한 입장은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지배적인 입장과 특히 레닌의 입장과 마찰을 일으켰다.

     

      1898년 로자 룩셈부르크는 독일로 이주하여 독일사회민주당에 참여했다. 독일사회민주당 내부에 하나의 경향이 출현했는데 그 주요 대표자가 베른슈타인이었다. 그 경향은 자본주의가 다소 위기에서 벗어난다는 그리고 사회주의로의 이행이 평화로운 수단을 통해 가능하다는 생각을 옹호했다. 사실상 베른슈타인은 운동의 목표를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룩셈부르크는 그의 답변, 「혁명이냐 개량이냐」(1899)를 썼다. 그 시기 동안에 이미 그는 기회주의에 대항한 투쟁에 앞장섰다.

     

      1903년 그의 글 「맑스주의의 침체와 진전」에서 그는 맑스와 엥겔스의 죽음 이후 맑스주의 운동에서의 침체를 비탄하며 새로운 이론적 노력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맑스주의 자체가 더 정교해질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이러한 이유로 로자 룩셈부르크는 1916년 옥중에서 쓴 「반비판」의 끝머리에서 다시 한번 강조하기를, “맑스주의는 언제나 새로운 인식을 얻으려고 애쓰는 혁명적인 세계관이다. 이는 한번 유용했던 표식에 형식적으로 되는 것을 철저히 혐오하며, 자기비판이라는 정신적인 격렬한 울림에서, 그리고 정신적인 천둥·번개에서 생명력을 가장 잘 유지한다.”

     

      1904년 일본과 러시아 사이의 전쟁에 뒤이어 러시아에서 최초로 대대적 파업의 큰 물결이 일어났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20세기 계급투쟁의 새로운 원동력을 최초로 발견한 이들 중의 하나였는데, 이제는 노동자들의 주도성이 특징적인 요소가 되고 계급투쟁은 노동조합이나 당 기구에 의해 '계획' 될 수가 없다. 비록 룩셈부르크가 '노동자평의회'의 역할을 아직 이해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책, 「대대적 파업, 당 그리고 노동조합」에서 그는 이러한 대중 활동을 강조했다. 계급투쟁의 이러한 새로운 원동력을 노동조합과 증가하는 독일사회민주당 내부 인자들은 격렬한 투쟁으로 꺾어버리려 했다. 노동조합 기구와 밀접하게 협력하면서 독일사회민주당 지도부는 당 내부에서 대대적 파업에 대한 논쟁을 금지했다. 1906년 룩셈부르크는 대대적 파업에 관한 책 출판 후 “계급 증오를 조장했다”는 선고를 받고 2개월 동안 수감되어야만 했다. 독일사회민주당의 이전의 지도자로 맑스주의의 정통적인 “교황”으로서 알려진, 칼 카우츠키는 룩셈부르크의 과격한 노선에 점점 더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이 시기 동안 룩셈부르크를 “평화롭고”, “조화를 사랑하는”독일 사회민주당 안에 곤란을 유발하는 “유대인”, “외국인”, 그리고 “노처녀”라고 비방하는 캠페인과 중상모략이 강화되었다.

     

      1907년 점증하는 전쟁위협에 대응하여 조직된 제2 인터내셔널 슈투트가르트 대회에서 로자 룩셈부르크, 레닌 그리고 마르코프는 전쟁이 발발할 경우 “자본주의 계급지배의 철폐를 촉진한다”는 공통된 지향을 위해 투쟁했다. 1912년 「자본의 축적」에서 룩셈부르크는 맑스의 저작들 속에 존재하는 한계와 모순들을 용감하게 지목했었다. 그의 책은 아직 자본주의에 포섭되지 않고 그 외부에 존재하는 시장들의 역할과 군국주의의 특수한 기능을 파악하는데 기본을 제공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2년 전에 쓴 그 책은 자본주의의 기본모순들에 대한 필요불가결한 통찰을 제공한다.

     

     

      1914년 8월 독일사회민주당 지도부의 배반이 있자마자 로자 룩셈부르크는 전쟁 반대 투쟁에서 지도적 인물이 되었다. 유니우스 팸플릿」은 그래서 1890년대 이래 새로운 조건들을 이해하려는 그의 투쟁, 제1차 세계대전으로 치닫게 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조건들을 설명하려는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가 직면한 도전을 설명하려는 그의 투쟁과 직접적인 연장선 속에 놓여있다. 1917년 여전히 감옥 속에 있으면서 그는 러시아에서 그때 막 시작된 혁명의 중요성에 대해 최초의 분석을 제공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1918년 11월 감옥에서 풀려났을 때 지배계급은 그를 어느 때보다도 더 두려워했다. 특히 독일사회민주당은 노동자계급에 반대한 그 당의 투쟁의 표적을 룩셈부르크로 삼았다. 1918년 12월 베를린 노동자평의회에 그와 독일 노동자계급의 가장 유명한 지도자 중 하나였던 칼 리프크네히트의 참여가 허용되지 않았는데, 핑계는 그들이 노동자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1918년 12월 독일코뮤니스트당(KPD) 창립대회에서 강령에 대해 행한 연설에서 로자 룩셈부르크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역사적 차원을 강조하면서 혁명이 테러로 복귀할 수 없으며 노동자계급 전체의 모든 에너지와 의식을 동원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매우 교활한 적에 대항한 재빠르고 쉬운 승리라는 당면(當面)주의적 환상에 대항해 목소리를 높인 극소수 중의 하나였다. 결국, 그를 겨냥한 중상 비방 캠페인은 1919년 1월 그 극에 달했다. 1919년 1월 중엽 소위 스파르타쿠스 봉기가 진압되고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학살된 뒤 로자 룩셈부르크도 암살되었다. 지배계급은 당시 가장 용감하고 통찰력 있는 혁명가 중 하나를 일소해버리는 데 마침내 성공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이제, 동지들, 우리는 우리가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할 수 있는 지점에 도달했습니다. 우리는 맑스로 되돌아왔으며, 그의 깃발 아래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강령에서 선언 합니다 : 프롤레타리아에게 사회주의를 진실로, 사실로 만들며, 자본주의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파괴하는 것 외에 더욱 긴급한 일은 없습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더 이상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조건 아래서 살 수 없기 때문만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가 그 계급적 의무를 수행하지 않거나, 사회주의를 실현하지 못하면 소멸한다는 위협을 받아왔기 때문에, 사회주의는 필수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로자 룩셈부르크, 『우리의 강령과 정치적 상황』독일코뮤니스트당 (KPD) 창립대회,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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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1호] 과학기술에 몰두하며, 자본은 자신의 무덤을 파고 있다.

과학기술에 몰두하며자본은 자신의 무덤을 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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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으로 치닫는 자본주의

 

기술혁신이 지속해서 진전되고 있는 반면에 이른바 사회적·경제적 진보는 후퇴하고 있다시장의 세계화는 생산적인 발전을 잠시 겪은 후전 세계 수억 명 프롤레타리아 노동과 생활 조건의 악화를 가져왔고이제는 실업자 또는 불완전 취업자의 꾸준한 증가를 가져왔다예전의 조립 설비에서 노동 분업은 자동차부터 텔레비전가전제품기계화학제약섬유제조업식품 산업까지 생산 모든 영역을 침범해 온 마이크로 전자공학통신생명공학이 발전하면서 점차 사라졌다마이크로프로세서는 점진적인 노동자 감소를 유도하며모델과 제품의 지속적인 다양화와 적기생산시스템(just-in-time)으로 재고를 줄여 자본이 이익을 얻을 수 있게 한다.

 

수십 년 전컴퓨터 기술(통합회로기술부터 시스템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에 투자된 거액의 자본은 미국의 실리콘 밸리 공장들과 하이테크 분야 전체에 혁명을 일으켰다따라서 미국의 평균이윤율은 기술혁신이 확산함에 따라 다른 산업 부문에서 발생한 이윤율 하락을 초기에는 상쇄할 수 있었다그 이후컴퓨터 기술 적용은 매우 높은 수준에 도달했고이는 먼저 제조업의 고용을 감소시켰고현재는 서비스업에 대한 고용을 줄였다지난 40년 동안 미국에서 7백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 것으로 추산한다그러나 생산되는 상품 양은 매년 증가해 결국 시장이 왜곡되고어떤 경우에는 남겨진 노동자에게 더 많은 시간을 더한 노동 강도로 일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기술발전이 자본의 유기적 구성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났다마르크스는 기술발전이 노동생산성을 증가시킨다고 말했다(자본론」 3이윤율 하락의 법칙). 그 결과 자본의 유기적 구성(고정자본인 생산수단과 가변자본인 노동력과의 관계)이 고도화하여 결국 이윤율(잉여가치와 투자된 총자본의 비율)은 감소한다더 발전된 기술이 생산 과정에 적용되어 노동생산성은 향상하지만동시에 노동생산성 향상은 노동자의 노동일 가운데 자본가가 착취하는 상대적 잉여가치를 늘리고임금으로 보상받는 부분은 줄인다그러나 이는 물리적’ 한계(어떤 경우에도 고용된 노동자 수에 항상 좌우된다)에 도달할 때까지만 자본에 이익을 허락한다최종적으로 상품은 반드시 판매되어야 한다만약 상품 판매가 증가하지 않는다면생산은 주로 산 노동의 이용 축소를 목표로 하는 경쟁 전략을 따르기 때문에 임노동자의 수는 감소하게 된다.

 

직장이 있는 사람들에게 임금 삭감·간접적인 세금 인상공공지출(연금교육건강)의 삭감이라는 극적인 그림을 보여주는 사례들은 충분하다막을 수 없는 탄압이 전 세계 수억 명의 남녀를 목 졸라 죽이는 사슬을 더욱 조인다자본가계급은 자동화 기계와 기술로 달성되는 생산성 향상을 자극하지만 동시에 상품 판매는 감소한다그리고 산 노동의 사용이 줄면서 자본주의의 위기는 심화한다로봇은 임금을 받지 않고(로봇은 일정한 기간 비용으로 변할 기계들이다상품을 사지 않는 결함을 갖고 있다로봇은 소비자가 아니다로봇의 생산능력은 지급 능력이 있는 구매자를 찾을 수 없는 많은 상품을 만든다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좋은 자본주의가 부를 창출하기 때문에 좋다고 말한다하지만부는 소수 사람만이 누릴 수 있기에 나쁜 자본주의가 된다세상에는 유용한 상품에 대해 많고 긴급한 요구가 있지만수억 명의 남녀는 그런 상품을 살 수 없다금융시스템을 통한 신용은 상품에 대한 부분적인 수요를 제공할 수 있을 뿐신용은 자본주의 체제 전체를 훨씬 더 심각하고 깊은 위기에 빠뜨리는 데 도움을 주고공적 부채와 사적 부채를 증가시킨다이는 일개 국가적 차원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 비용의 감소로 국제적 경쟁력이 강화되기 때문에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된다.

 

자동화와 로봇

 

로봇은 많은 노동자보다 상품을 더 빨리 생산하지만상품을 구매하지 않기 때문에 자본이 상품 판매가격에 포함하는 잉여가치(이익)가 실현되는 것을 막는다심지어 상품 가격이 내려도 살 소비자는 없다로봇과 소프트웨어 때문에 과잉’ 노동자가 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보면 거의 3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수백만 명 이상이 더 증가할 것이다자동화는 이미 슈퍼마켓콜센터은행의 현금자동입출금기에 침투했으며컴퓨터가 트럭과 버스를 운전하고로봇이 음식을 준비하고행정 사무소를 장악한다모든 곳에서 직원들의 대폭적인 감원이 일어난다컴퓨터 프로그래머와 컴퓨터 네트워크 설비인력 업무 절반도 정보기술과 전자 분야에서 혁신적 자동화된 기술로 인해 필요가 없어진다산업 부문과 상업 부문에서 자본의 유기적 구성 증가는 자본주의적 발전의 결정적인 측면인 동시에 이윤율이 감소함에 따라 위기를 초래한다는 것이 경험적으로 증명되었다사회의 물질적 생산력 발달과 지금 존재하는 사유재산제에 기초한 생산 관계 모순은 더욱 악화한다.

 

자본주의는 그 자신을 합리화한다.

 

산업혁명 4.0’은 자동화 과정에서 디지털 기술을 완성하고 작업 속도를 높이는 또 하나의 도약대가 될 것이다오류와 시간 낭비는 부가가치의 극대화를 목표로 해 최소화될 것이다수치제어기계는 희미해지는 기억이 된다유연한 자동화를 통해 모델과 제품이 조립 설비에서 직접 변경되며시장의 수요에 따라 실시간으로 재프로그래밍이 가능하다자원의 조직적 합리화는 낭비와 재고를 없앤다세계경제포럼의 연구는 로봇과 지능형 프로그램의 발전이 모든 직업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한다. ‘업무 기술 보고서 2.0’에 따르면, 2025년까지 영국 노동자의 35%, 미국 노동자의 47%, OECD 국가 노동자의 평균 57%가 자동화로 대체될 수 있다고 한다중국의 경우는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세계적으로 산업 부문에서 로봇은 약 6천만 개의 일자리를 없앨 것이다현재 일본 자동차 회사의 조립 설비에서 사용되고 있는 로봇들은 유지·보수 없이 최소 30일 동안 일한다로봇 팔은 생산 설비에 배치될 것이다컴퓨터에 의해 제어되는 자동운영은 감독할 사람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다그리고 로봇 비용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개인 서비스 로봇은 미국에서 25,000달러 이하의 비용이 든다중국과 일본에서 가정용 청소 로봇은 싼 가격에 살 수 있다산업 부문에서 로봇 비용은 수십만 달러도 되지 않지만 살아 있는’ 노동 창조는 50만 달러 이상의 투자가 필요할 것이다컴퓨터, 3D 프린터전자두뇌를 장착한 수치제어기계는 어디서나 판매되고 있다또한농업에서는 자동화 씨앗 파종기와 추수기 사용이 증가하고 있다그것들은 인공위성의 안내를 받기까지 한다마지막으로커피머신식품 판매용 자판기책과 기기은행카드를 이용한 자동 수납 서비스 등이 상업 활동에서 확산하고 있다그리고 이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중국의 자본가적 사회주의가 자동화와 로봇 기술에 강력한 투자를 하며 주도하고 있다중국은 현재 산업용 로봇컴퓨터 그리고 다른 복잡한 자동조정장치 기계들의 가장 중요한 시장이다사용되는 로봇의 수에 따라 한국일본독일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살아 있는 기계인 노동자는 그들에서 독립된 죽은 기계로 대체되고노동자는 인간 부품으로 합쳐진다 (마르크스자본론).

 

멈출 수 없는 기술 진보

 

마이크로칩은 2년마다 두 배씩 속도가 향상한다소프트웨어컴퓨터로봇은 인공지능을 향상하고 있다수만 명의 노동자를 대체하기 위한 소프트웨어가 발전하고 있다맥킨지 보고서(2017년 1)는 앞으로 10년 이내에 현재 임금’ 노동 50%가 자동화할 것이라고 했다보스턴 컨설팅 그룹 최근 분석은 아시아(중국일본한국)에서 정점을 찍을 것이라고 해앞에서 말한 인력 감축을 확인시켜 준다유럽에서는 독일이 이러한 지진을 주도할 것이며이탈리아 산업에서도 로봇 설치가 매년 수천 건씩 진행된다고정자본(기계에너지원자재반제품)이 증가하고 있고가변자본은 비례적으로 감소하며문제가 다시 발생한다제품의 각 단위는 잉여가치를 점점 더 적게 포함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많은 잉여가치를 얻기 위해서는 더 많은 양의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해야 한다.

 

많은 유·무형 직업에서 형태와 내용은 점점 더 최소한의 사회적 관계에서 멀어지고자본주의 손아귀와 부르주아 사회의 지배적인 관계에서 기술발전은 정신적으로는 소외 과정을 심화시키며 노동력이라는 상품 구매가 일어나는 상황과 조건 모두를 악화시킨다자본이 노동력 착취로부터 잉여가치를 얻지 못하면 실업 예비군은 팽창한다자본주의 체제에서 자동화는 생산 과정에 남겨진 나머지 노동자들에게 부담을 준다우리는 국가 경제 경쟁력을 해치는 노동 관련 규제의 과도한 경직성에 대한 불만을 듣게 될 것이다그리고 남겨진 노동자는 더 낮은 가격에 자신을 팔려는 생각이 있는 실업 예비군으로 대체될지 모른다는 협박을 받게 될 것이다.

 

막을 수 없는 과정

 

마이크로 전자기술 때문에 보다 커진 생산 유연성은 포드주의테일러주의토요타주의 같은 상품 생산에 대한 관리 시스템들보다 시간과 품질을 더 엄격히 통제할 수 있게 한다새로운 응용 분야(3차원 프린팅 기술나노 기술지식 기술)도 마찬가지다자본주의는 현재 기술적이고 과학적인 현대화를 진행하고 있으며이는 전체 시스템을 폭파할 준비가 된 폭탄이 되어가고 있다기계와 공장 그리고 시스템 유지를 위해 필요한 비용을 지급하기 위해서는 상품의 지속적인 생산 주기를 유지하는 것이 기본적인 의무가 되었다기술적이고 과학적인 현대화는 시장의 공급과잉 상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고확실히 인류 고통과 절박한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인류는 기술혁신과 자동화 소용돌이에 휩쓸려 가고 있는데기술혁신은 자본의 지휘 아래에서 그들의 조직과 생산 주기를 매우 유연하게 분리할 수 있다상품 생산과 이동은 최대 속도까지 빨라져 종종 지속 가능하지 않고 고갈되는 작업 이동과 리듬을 요구한다그리고 부가가치는 감소한다통신생명공학제약항공민간용 드론 뿐만 아니라 소위 성숙한 산업 분야’(철강운송 수단기계 도구식품 가공 등의 산업)에서도 부가가치는 감소한다. ‘부가가치의 상승을 목표로 새로운 소재와 대체에너지가 도입된다그러나 평균이윤율이 하락함에 따라 상품 가치는 불가피하게 감소한다그 결과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이윤을 되살리려는 자본의 필사적인 노력은 심지어 아동 노동의 착취로까지 확대된다. 1억 6천 5백만 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전 세계 자본에 의해 노예가 되었다!

 

그러나 모든 상품 생산이 로봇에 의존한다면 자본주의는 사멸할 것이다실제로잉여가치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자본주의 삶과 죽음의 문제인 이익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잉여노동과 그에 따른 잉여가치를 만드는 노동자가 더 충분하지 않다면 누가 그 상품을 구매하겠는가노동자들은 영구적으로 과잉이 되고다시는 자본에 의해 그 자신의 재생산이나 심지어 미래를 위한 노동력의 회복으로서 이용되지 않을 것이다자본의 피할 수 없는 의무가 된 생산성 향상은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많은 노동력을 불필요하게 했다또한개별 자본은 생산 과정의 기계화 및 재편성을 통해서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에 모든 것을 걸었을 뿐만 아니라임금 억제와 삭감노동 강도의 증가여전히 고용되어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초과 근무 등을 통한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을 통해 더 큰 경쟁력을 추구한다그러나 결국 자본은 소위 노동시장에서 넘쳐나는 노동자들의 공급을 흡수하기 위한 생산적 투자 기회를 더는 찾지 못한다노동자의 계급적 활동이 진행 중인 곳에서는 자본이 임금 노동의 수요를 결정한다는 이데올로기에 예속되어여전히 노동의 역동성이라는 합리화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임금 노동에 대한 수요는 자본주의 위기와 생산과 유통 방식의 구조조정에 직면해서 붕괴하고 있다동시에우리는 무역에서도 점점 더 치열해지는 국가 사이의 경쟁 때문에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지속해서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우리의 자연적이고 역사적으로 발전된 필수적 필요는 최근 수십 년 동안 확대하여 왔지만자본주의는 이제 세계 각지의 수억 명의 사람에게 필수적 필요를 부정하게 되었다자본의 유기적 구성은 향상되었지만노동자 수는 계속 감소하여 노동력에서 추출할 수 있는 잉여가치는 감소할 것이다.

 

잉여가치 희소성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썼듯이 기계는 항상 "마모와 찢김을 통해 잃는 것보다 더 많은 가치를 더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에서 인간의 사회적 노동만이 교환가치 생산에서 유일하게 생산적 요소로 남아 있다그리고 자본주의에서 로봇 활동은 이러한 목적을 촉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그러나 기술 및 정보통신과 같은 고정자본에 대한 투자 규모가 커질수록 엄청난 자본의 중앙 집중화가 이루어지며금융 자본은 노동자 축소를 대가로 고도의 기술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게 된다.

이윤율 하락은 불가피하게 되고따라서 기생적 금융 자본 일부는 주식시장의 게임으로 눈을 돌린다주식채권파생상품으로 향한 자금 흐름이 상품 생산부문으로 향하던 자금 흐름을 대신하며축적률이 반전하기보다 둔화가 더 분명해졌다투자 펀드에 자금이 산더미처럼 쌓인다하지만 펀드가 상품을 생산하는 산업부문의 잉여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사용되지 않는다면펀드에 조달된 자금은 정지되어 있으며, M에서 로 변화시켜야 하는 이윤을 만들지 못한다생산적 산업에 투자가 안 된 화폐는 무()에서 더 많은 화폐를 버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거의 20억 명의 노동자가 생산한 잉여가치는 이자배당연금지방세서비스 직원과 공무원의 임금경찰군대 등을 지원하는 데 쓰인다.

 

잉여가치의 자본화

 

자본주의 성장은 자본축적 없이는 불가능하다상품 생산에서 잉여가치의 지속적인 추출이 필요하다점진적으로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잉여가치의 흐름이 끊임없이 지속해야 한다그러나 고정자본과 기계에 대한 투자가 증가하고 가변자본에 대한 투자가 감소함에 따라 고용의 상대적 감소가 동반된다면축적도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산 노동의 이용과 착취에 따라 추출 가능한 잉여가치의 양은 투하자본의 양을 증가시킬 만큼 충분히 증가하지 않는다상품을 생산하는 노동력을 가진 노동자 수는 일정 시점까지만 노동생산성 향상과 함께 늘어난다게다가잉여가치율을 증가시키기 위해서 자본회전에 걸리는 시간은 감소해야 하고 상품은 판매되어야 한다따라서 자본은 상품 유통시간을 줄여서 상품이 오랫동안 창고에 머물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윤율

 

기계 사용은 고용 감소와 더불어 이윤율 경향적 감소의 원인이다이는 직장에 남아 있는 노동자로부터 착취하는 잉여가치의 지속적인 증가가 필요하다이윤율은 잉여가치를 총자본(공장기계원자재 같은 고정자본에 대한 투자와 가변자본인 임금에 대한 투자를 더한 값)으로 나누어 계산한다로봇에 대한 투자 증가로 분모가 커지는 동안 발전의 일정 시점에서 분자인 잉여가치가 증가를 멈춘다면 이는 필연적으로 이윤율이 하락하기 시작한다는 뜻이다축적은 멈추고 위기가 시작된다자본은 과학을 적용해 생산성 향상을 사회화한 노동력의 생산력 때문이 아닌 고정자본에 속하는 생산력 때문으로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헛수고이다실제로 육체노동과 지적노동 모두에서 산 노동은 불필요해졌기 때문에 버려지거나 바깥으로 밀려나게 되었다현재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수십만 명의 노동자들이 참여했을 분야에서 작동하고 있다이는 알고리즘 침입으로 흔들리는 데이터 분석절차 개발 및 의사결정을 수행하는 회계사변호사은행 관계자이사재무 분석가기자 등의 사무직 분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한편세계 각지에서는 가난과 굶주림의 늪으로 빠져드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한편자본가와 연합한 과학자들은 상품 비용과 가격 사이의 올바른’ 균형에 관한 가설을 얘기하고 있다그러나 지불할 수 있는 소비자가 없다면생산과 소비 사이의 중재자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현재 부르주아 지식인들은 심지어 자본주의가 프롤레타리아트를 정치적·이데올로기적으로 포섭시켰다며프롤레타리아트 소멸까지도 발명했다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에 기술과 자본은 하나이며하나가 된 기술과 자본은 자본주의를 옹호하고 모두를 위해 자본주의를 완성하는 유일한 자동 주체(마르크스)’라고 설득한다!

 

새로운 소비?

 

전문가들의 몽롱한 생각은 스마트 공장에서 생산된 상품들이 쌓여 있는 환상적인 대량 소비의 새로운 물결을 예측한다그들은 엄청난 이익을 꿈꾸며 말한다. “우리는 몇백만 개의 일자리즉 소비자를 잃게 될 것이지만이것은 진보를 위해 지급해야 할 대가입니다!” 자본주의의 옹호자들은 최소한 인류 절반(현재 35억의 인간!)에게 문을 닫은 채 점점 더 위기에 처한 상품과 서비스 시장을 보면서 방황하고 있다실업이 증가할 뿐만 아니라여전히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판매하는 데 성공한 사람들도 평균 임금의 60% 이하를 받으며 빈곤 노동자’ 수를 늘린다그리고 우리는 엄청난 양의 고정자본(기계에너지원자재반제품)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가변적이고 생산적인 자본은 비례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제품 각 단위에 포함된 잉여가치는 점점 감소하고 있다그리고그 결과 자본은 더 많은 양의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하기 위해 노력한다.

 

자본주의에서 선에서 악으로 변한 생산성

 

자본주의에서 생산성 향상은 새로운 자본(화폐)이 될 수 있는 상품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필요하다그러나 더는 구매자를 찾지 못하는 상품 더미들은 산더미처럼 쌓인다부르주아 경제학자들과 정치학자들도 오랜 침체에 빠진 세계 경제를 애도한다초기에 인플레이션으로 나타났던 걱정스러운 경제적’ 상황은 디플레이션으로 변했고, ‘자본주의 발전을 위해서 참을 수 없는’ 상태이다. ‘공식과 수학적 모델은 공개되자마자 엉망이 되며모든 것이 예측과는 반대로 작용하는 현재 상황에서 적용할 수 없음을 증명한다.

 

적용을 시도할 때마다 무너졌던 케인즈식 해결책(양적 완화무이자재정지출)의 신화처럼이제 우리는 모든 위기 근원인 자본의 이윤 저하에 직면하게 되었고이제는 경제 회복의 가능성은 없다이 시점에 자본주의는 전체 시스템을 폭파할 준비가 되어 있는 지뢰들 위에 있다이른바 성숙한 산업 분야’(철강 산업운송 수단기계 공구식품 가공 등)와 통신생명공학 및 제약항공 및 민간 드론 분야 그리고 신소재와 대체 에너지 분야가 지뢰들이다오직 하나의 목표는 부가가치를 늘리는 것이다하지만 부가가치는 평균이윤율이 하락하면서 줄어든다!

 

자본주의에서 "기계는 노동자들을 굶주리게 하고 지치게 한다." "생산력과 우리 시대 생산 관계 사이 이러한 적대감은 누구도 감히 부정하지 못할 압도적인 증거들에 의해 뒷받침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자기 활동은 그것에 이질적인 힘이 되고그 힘은 지배당하는 대신 지배한다." 이러한 "사물의 인격화 및 생산 관계 객관화"에서사적자본주의와 국가자본주의는 지구상 모든 생물 종에 대한 완전한 착취와 지배를 실행했다그러나 정확히 마르크스가 말한 것처럼 노동력의 잉여가치를 추출하는 것이 자본 활동이고이 활동이 생산에서 무한하게 작은 것으로 축소되었을 때어떠한 관계도 사라진다자본은 "사회적 두뇌의 일반적인 생산력인 과학과 능력의 축적을 흡수한다." 그리고 "노동자는 자본이 필요에 따라 조건화되지 않는 정도까지 불필요하게 된다. (중략작업과 작업량은 상품 생산의 결정적 원리에서 사라진다." 일은 순수한 추상으로 환원되고자본은 가치 기반을 상실한 생산 공정의 감시 아래 최소한으로 일하는 시간을 단축했고이제는 모순적이게도 자본은 "어떠한 잉여 생산물도 착취할 수 없다."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기술의 현대화

 

결론은 무엇인가마르크스는 독일 이데올로기(1845)에서 생산력의 발전은 다른 생산력(기계)을 낳고 현재의 교환수단(화폐)을 확대한다고 썼다이런 상황에서 기계와 화폐는 파괴적인 힘이 된다기술발전은 자본주의 노동력 착취를 가능하게 하는 산 노동의 노동시간을 지속해서 감소하게 한다. ‘산 노동은 자본주의에서 재산의 측정과 원천이다그러므로 자본은 이용 가능한 모든 생산력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지구의 모든 거주자 대다수가 빈곤과 야만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사회 질서에 반대한다자본주의는 사회·경제적으로 그 자신을 계속 유지함으로써 인류 미래에 대한 걸림돌이 되었다자본주의 생산 방식의 기본 구조와 기본 범주들(가치임노동상품과 화폐)을 관찰하면자본주의 사회의 생산과 분배 구조는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분명한 쇠퇴 징후를 보인다자본주의를 지배하는 범주들은 영원하지 않다자본주의에서 모든 생산은 인류 요구가 아닌 자본증식과정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루어진다자본은 잉여가치 추출을 위한 과정의 자동적 주체가 된다자본 대부분은 오로지 자본 이익을 충족시키기 위해 생산력을 발전시킨 후에 허구의 자본이 된다그러나 자본은 세계적인 축적을 위해서 인간노동력을 이용해야 한다만약 이것이 실패한다면점점 더 정교한 기술사용으로 일반적인 이윤율의 양적인 감소가 촉발된다자본가는 이러한 모순을 노동계급에 항상 적대적인 일시적 처방을 통해서 완화할 수 있을지 모른다생산성을 높인다는 것은 더 많은 양의 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을 줄인다는 것을 의미하지만그것은 금융시장이 추구하는 잉여가치의 창조가 이제는 자본 성장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게다가 생산체계에 더는 통합할 수 없는 잉여’ 인구 증가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2020년 1월 15

프로메테오(Prometeo)

 

국제코뮤니스트경향(ICT)

옮긴이 우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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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2호

  • 분류
    분류없음
  • 등록일
    2021/01/13 13:17
  • 수정일
    2021/02/18 17:40
  • 글쓴이
    자유로운 영혼
  • 응답 R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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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쇠퇴기, 코로나19 이후 세계에 대한 토론 : 리버테리언 코뮤니즘

자본주의 쇠퇴기코로나19 이후 세계에 대한 토론 :

리버테리언 코뮤니즘

 

 

<편집자 주>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겪으며 이후 세계에 관한 대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하지만대부분 현 자본주의 개혁 수준이거나 자본주의 체제를 내버려 둔 채 몇 가지 사회주의적제도를 도입하려는 제안에 머물고 있다우리는 그동안 자본주의를 대체할 유일한 대안으로 코뮤니즘을 주장해왔다우리는 코뮤니스트 혁명(세계혁명)을 통하지 않고 사회주의/코뮤니즘을 건설하자는 거짓 대안에 반대한다.

 

아래는 리브콤(libcom.org)에서 발행한 '리버테리안 코뮤니즘'에 대한 짧은 소개 글이다이 경향은 정치 원칙에서 우리(코뮤니스트 좌파)와 몇 가지 공통점이 있지만, '당의 역할‘ 문제 등에서 다르다이 글은 자본주의 쇠퇴기/코로나19 이후 세계에 대한 토론 자료로 '새로운 사회를 조직하는 방식의 원리'로 참고할 점이 많아 다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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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노동자 총회

 

1. 소개

 

우리는 코뮤니즘(공산주의)에 대해 두 가지를 이야기하려 한다첫째사회를 조직하는 방식의 원리로 각자의 능력에 따른 원칙에서 각자의 필요에 따른 원칙으로의 전환둘째오늘날 세계에서 코뮤니스트 사회를 향한 현실 운동에 관한 것이다여기서 우리는 후자인 현실 운동에서부터 설명해 나갈 것이다.

 

 

2. 현실 운동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 경제를 묘사하고자본의 필요(이윤과 축적)가 어떻게 노동계급으로서 우리의 필요와 반대되는지를 지적할 것이다.

 

자본가는 임금연금일자리를 삭감하고노동 시간을 연장하고노동 속도를 높이고환경을 파괴하려 한다그리고 이러한 조건이 노동자를 자본에 대항할 수밖에 없게 만들기 때문에 우리는 저항한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할 때임금 삭감이나 과도한 노동에 반대하여 파업을 조직하거나 규칙을 만들 때우리가 협력할 때직접 행동과 연대로 우리의 요구를 주장할 때우리는 새로운 유형의 사회 기반을 쌓기 시작한다.

 

협력연대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가 코뮤니스트 사회.

 

따라서 운동으로서의 코뮤니즘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계급의 협력상호부조직접행동 그리고 끊임없는 저항의 흐름이다.

 

때때로 이러한 흐름은 미국의 전후(戰後비공인 파업 물결, 1969년 이탈리아의 뜨거운 가을 또는 1978년 영국의 불만의 겨울 또는 2010년 이후 그리스에서의 긴축반대 저항과 같은 사회의 불안과 현장 투쟁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엄청나게 많은 노동계급을 참여하게 했다.

 

때로는 이러한 사회적 불안은 심지어 혁명적인 사건의 폭발로 귀결되었다보기를 들면 1871년 파리, 1917년 러시아, 1919~1920년 이탈리아, 1921년 우크라이나, 1936년 스페인과 1956년 헝가리이러한 사건들은 노동계급이 집단행동을 통해 자본의 이해가 아니라 자신의 이해에 따라 사회를 재조직하려고 했던 운동들이다.

 

 

3. 각자의 필요에 따라서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잘 준비된 청사진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정치인 또는 정치 단체가 세상에는 널려있다그러나 코뮤니즘은 정당 또는 개별 정치인이 존재를 선포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 수많은 참여와 실험을 통해 만들어야 하는 세상이다.

 

따라서 '코뮤니즘'은 구소련이나 현재의 쿠바북한과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이들은 단지 국가라는 하나의 자본가가 존재하는본질에서 자본주의 사회이다그리고 집권당이 공산당이라고 자칭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자본주의 국가 중의 하나를 감시한다는 중국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다양한 혁명적인 사건(이전에 언급한 사건의 일부)에서 노동계급의 구성원들은 코뮤니즘을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실험을 했다이 과정에서그들은 자신의 계급이익을 위해 함께 행동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실질적인 경험뿐만이 아니라 코뮤니스트 사회를 조직하는 방법에 대한 원칙을 수립했다.

 

자본가 없는 사회

 

개인이나 국가의 수중에 있는 생산수단(토지공장사무실 등등)의 소유 또는 통제 대신에코뮤니스트 사회는 그 수단의 공동소유 및 통제를 기반으로 한다그리고 교환과 이윤을 위한 생산 대신에코뮤니즘은 안전한 환경을 위한 요구를 포함하여 인간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생산을 의미한다.

 

이미 오늘날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생산하고 모든 서비스를 하는 것은 우리 노동자이다우리는 도로를 건설하고집을 짓고열차를 운행하고환자를 돌보고아이들을 양육하며음식을 만들고제품을 설계하고옷을 만들고다음 세대를 가르친다.

 

그리고 자본가들이 종종 우리를 돕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를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모든 노동자들은 알고 있다.

 

노동자가 효율적으로 작업장을 직접 운영할 수 있는 예는 풍부하다그리고 사실 자본가들이 위계적으로 조직한 작업장보다 더 잘할 수 있다.

 

최근의 한 예로 국가 산업의 3분의 1이 노동자 통제 아래 있었던 아르헨티나에서의 2001년 봉기 기간에 점거한 공장이 있다그리고 역사적으로 더 크고 더 광범위한 예가 있다.

 

보기를 들면, 1936년 스페인 내전 기간스페인 혁명에서 노동자들은 산업 대부분을 장악하고 집단적으로 운영했다그것이 가능했던 어떤 지역에서는 노동자가 화폐를 폐지하거나 부족하지 않은 상품을 무료로 배분하는 등 코뮤니스트 사회에 근접하게까지 나아갔다.

 

1919년 시애틀에서는 총파업 기간 노동자들이 도시를 점거하여 운영했다. 1917년 러시아에서는 볼셰비키가 자본가들의 권리를 돌려주기 전에 노동자들은 공장을 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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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936년 스페인, 공장을 장악한 정비노동자들

 

임금 없는 사회

 

코뮤니즘은 또한 우리의 활동과 생산물이 더는 사고파는 상품의 형태를 취하지 않는 돈이 없는 사회를 의미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코뮤니스트 사회가 과연 인간이 임금 체계에 의해 강요된암묵적인 빈곤의 위협 없이도 생존할 수 있는 충분한 생산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생산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빈곤이나 기아의 위협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에서우리는 돈이나 임금노동이 없었지만필요한 일은 여전히 행해졌다.

 

보기를 들어수렵 채집사회는 일과 놀이 사이에 차이가 없는 전적으로 평화스럽고 평등한 사회였다.

 

오늘날에도 필요한 많은 일이 무료로 이루어진다보기를 들면영국에서는 장시간 노동에도 불구하고사람들(주로 여성)이 매일 3시간 이상 무급 가사 일을 한다이 사람들의 10% 가까이는 무급 돌봄 일을 하고 있으며영국 성인의 25%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자원봉사하고 있다전 세계적으로, 2011년 무급 노동의 경제 가치는 연간 약 11조 달러로 추정되었다.

 

여러분이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유용한 일의 형태 역시 임노동이 아니라 일부 사람들이 무료로 수행한다이것이 임노동이 반드시 필수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작물 기르기아이 돌보기음악 연주하기차 수리하기청소하기사람들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기환자 돌보기컴퓨터 프로그래밍옷 만들기제품 설계하기... 이러한 형태의 일은 끝없이 많다.

 

연구에 따르면 돈이 복잡한 업무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효과적인 동기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자신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방식으로 할 수 있는 자유와 통제를 가진 사람들그렇게 하는 건설적이고 사회적으로 유용한 이유가 최상의 동기부여가 된다.

 

무료 소프트웨어 운동 같은 것들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목적을 위한 비()위계적이고 집단적인 조직이 이윤을 위한 위계적인 조직에 비해 얼마나 우월할 수 있는지그리고 사람들이 생산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임금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윤 동기가 없다면어떤 기술의 발전이 노동자를 해고하고 나머지 일을 더 힘들게 만드는(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것이 아니라작업 과정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수록 우리는 모두 일을 조금 덜 할 수 있고 더 많은 자유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국가 없는 사회

 

국가에 대한 소개에서 우리는 정부를 소수의 사람에 의해 통제되고 운영되는 조직... 주어진 지역 안에서 정치적법적 결정을 내리고필요한 경우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조직으로 정의한다.

 

자본가와 노동자그리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분할이 없다면더는 부자들의 재산을 보호하고 빈곤임노동그리고 심지어 기아까지 강요하는 경찰과 같은 소수의 사람이 통제하는 조직적 폭력기관이 필요하지 않다그리고 자본을 축적하거나 이윤을 창출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더는 군대가 새로운 시장과 자원을 확보할 필요가 없다.

 

물론 여전히 반사회적이거나 폭력적인 개인으로부터 인민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그러나 이것은 폭력성과 심지어 살인조차 거의 항상 처벌받지 않는 무책임한 경찰이 아니라위임되고 소환 가능하며 순환하면서 역할을 맡는 조직에 의해지역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수행할 수 있다.

 

집단적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현재 대부분의 국가를 지배하고 있는 대의 민주주의” 대신 우리는 직접 민주주의를 제안한다진정한 민주주의는 소수의(보통 부유층개인들을 선출하여 몇 년 동안 우리를 대신해 정치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리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반면다른 결정들은 심지어 시장의 독재자들에 의해 기업의 이사회에서 무책임하게 이루어진다.

 

우리는 직장동료 그룹에서부터 직장 및 지역 모임(회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투쟁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으며통신 기술을 이용해 광대한 지역에 걸쳐 서로 협력할 수 있고위임되고 소환 가능한 노동자평의회를 통해 조정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투쟁을 조직할 수 있듯이노동계급이 때때로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우리는 결국 스스로 사회를 조직 할 수 있다보기를 들어, 1956년 헝가리 봉기 동안 노동자들이 노동자 계급의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사회주의를 요구함에 따라 사회 운영을 조직하기 위해 노동자평의회가 만들어졌다더 최근에는, 1994년 봉기 이후 멕시코의 치아파스 지역은 지도자가 없는 직접 민주주의를 통해 국가로부터 독립적으로 운영되었고공무원의 임기는 2주로 제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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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치아파스의 사파티스타 반군

 

4. 결론

 

많은 사람이 코뮤니즘이 좋은 생각 같지만실제로 작동할지 의심한다그러나 가장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가?”이다.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부자들과 함께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심각한 빈곤 속에 살고 있고환경재앙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면서 우리는 아니오.”라고 아우성치고 있다완벽한 시스템은 없지만우리는 코뮤니스트 사회가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훨씬 더 잘 기능할 것이라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생각한다심지어 자신의 부에도 불구하고 종종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자들에게도 말이다.

 

코뮤니스트 사회라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코뮤니스트 사회는 광범위한 빈곤과 환경파괴와 같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주요 문제를 해결할 것이며이로 인해 우리는 훨씬 더 흥미로운 문제들을 다룰 수 있게 될 것이다.

 

더 많이 일하고더 많이 생산하고더 많이 축적해야 할 필요성 대신우리는 어떻게 하면 일을 적게 하고해야 할 일을 더 즐겁게 하고더 흥미롭게 하고더 많은 행복을 느끼고더 많은 기쁨을 누릴 수 있는지에 집중 할 수 있다.

 

한 사회의 성공을 GDP로 측정하는 대신에우리는 그것을 진정한 삶과 행복으로 측정할 수 있다. '직원' '고객' '감독또는 '경쟁자'로서 서로 관계를 맺는 대신에 인간으로서 서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우리 생애에는 아마도 완전한 (리버테리안코뮤니스트 사회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하지만 현실 운동인 코뮤니즘은 자본의 이윤에 맞서 우리의 요구를 주장하는 일상의 싸움은 현재 우리의 삶을 개선하고우리 자신과 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의 생활노동 조건뿐만 아니라 지구를 보호할 수 있는 더 나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현실 운동으로서의 코뮤니즘은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로서 코뮤니즘의 토대를 마련하는 진정한 운동즉 우리의 현재 조건을 방어하고 개선하기 위한 일상의 투쟁이다.

 

그동안 이 운동은 아나키스트 코뮤니즘’ '리버테리언 코뮤니즘또는 단순히 '사회주의'나 '코뮤니즘'이라고 불려 왔다그러나 중요한 것은이름이나 이데올로기적 꼬리표가 아니라 그 존재이다즉 미래의 이상이 아닌 일상생활에서의 우리의 요구욕망과 저항 정신의 생생한 구현이다불의와 착취가 있는 모든 사회와 권력에서 이러한 저항 정신은 항상 존재하고 존재해 왔다그래서 모두를 위한 자유와 평등을 기반으로 하는 세계에 대한 가능성은 열려 있다.

 

리브콤(libcom.org)

 

번역 ┃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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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0호] 코뮤니스트의 발자취를 따라 2

코뮤니스트의 발자취를 따라

기억과 망각의 도시를 찾아 -

 

 

기억과 망각의 도시셋 트리어(Trier)에서 브뤼셀(Brussels)까지

 

다섯째 날, 이날은 이번 여정에서 가장 긴 시간긴 거리를 이동한 날이다새벽 5시 반에 숙소에서 출발한 우리는 독일에 도착할 때까지 A로 시작되는 유럽의 고속도로를 끝없이 달리고 달렸다파리를 조금 벗어나자 가로등도 없고 지나는 차량도 별로 없는 어두운 고속도로를 계속 달리게 되었다한밤중처럼 너무 깜깜해서 주변 풍경도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이런 상태로 한참을 가다가, 운전이 마치 우주선을 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쯤주변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프랑스 동부 농촌 지역은 정말 넓고 평탄했다중세와 근대에 이곳에서 벌어진 전쟁 이야기를 들었다몸도 숨길 곳이 없는 전투그들은 어떻게 싸웠을까아니 희생당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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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14> 드넓은 프랑스 동부 농촌 지역

 

프랑스와 룩셈부르크의 경계에 가까워졌을 때 주유도 할 겸 휴게소에 들렀다정말 신기하게도 각자 출발해 다른 경로로 독일에서 만나기로 한 일행과 여기서 만났다우리가 한 팀이었다는 것이 증명된 걸까사실 오늘 늦게 합류하는 동지를 위해 한 동지가 독일 행을 포기하고 파리에 남았기에 우리가 일찍부터 움직일 수 있었다누군가는 동지 사이의 고마운 배려라고 생각하고누군가는 희생이라고 생각하겠지만이러한 배려는 여행 기간 내내 모두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었다특별한 공동체 의식을 느끼는 것은 우리가 함께 여행한다는 것 자체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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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5> 프랑스 고속도로 주유소에서 주유를 위해 토론하는 일행

 

프랑스에서 룩셈부르크룩셈부르크에서 독일독일에서 룩셈부르크다시 벨기에까지 다섯 번 국경을 넘었지만이정표를 자세히 보지 않으면 언제 국경을 넘었는지 알 수 없는 고속도로였다다만고속도로 통행료가 있는 프랑스와 무료인 나머지 나라휴게소 화장실이 유료인 벨기에와 무료인 나머지 나라속도제한이 있는 프랑스와 없는 독일로 구분하는 게 편했다.

 

트리어(Trier)에 진입하면서도 길을 잘못 들어독일의 시골 마을 몇 개를 작은 강을 따라 드라이브하는 즐거움이 있었고, 6시간 넘게 걸려 드디어 트리어에 진입했다이곳은 맑스가 태어나 자란 곳으로 유명한 도시라서 우리의 방문이 특별하지는 않았다예상대로 맑스 생가는 박물관처럼 꾸며져 볼거리도 많고 사람도 꽤 있었다유료로 입장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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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6> 맑스 생가독일 트리어

 

어제는 파리에서 맑스의 신혼집을 보았고아르장퇴이에서는 그의 말년을 보고 왔는데오늘 방문한 이 집은 그의 일생 전체를 보여주는 곳이었다수많은 망명지와 이주의 삶...

 

가난하고 고단한 혁명가의 삶이란 200년 전이나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물론 지금은 혁명과 반혁명의 긴박한 상황이 아니라서 망명 생활까지 하면서 투쟁하는 코뮤니스트는 찾기 어렵다그래서 조직 활동과 기본 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혁명운동을 한다거나 직업적인 사회주의자/코뮤니스트라고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은 가짜일 가능성이 크다여전히 109년 전의 볼셰비키처럼 학습을 조직하고 (당 건설을 위한코뮤니스트 노동자들을 규합하는 것이 혁명운동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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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7> 맑스 생가 뒤편 정원

 

이곳에는 맑스와 가족그리고 엥겔스 등의 동지뿐 아니라 그들의 후예라고 불리는 혁명가들도 전시되어 있다여기서 다시 레닌을 만나니 무척 반가웠다로자 룩셈부르크의 이야기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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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8> 맑스 생가 전시실

 

하지만 딱 여기까지이다. 3층으로 올라가자 내 눈을 의심할 만한 전시물이 계속 펼쳐져 있었다맑스주의를 심각하게 왜곡했거나 사회주의/코뮤니즘과 무관한 이들이 맑스의 전시관에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던 것이다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과거 스탈린주의 국가의 (향수에 젖은관광객과 자신들의 체제가 자본주의 체제임을 감추기 위해 맑스주의사회주의를 참칭하는 나라의 관광객들이 많기 때문이라고는 한다할 말을 잃은 나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전시를 하느니 차라리 파리에서처럼 작은 문패 하나 걸어 놓고 전시실은 없애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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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9> 트리어칼 맑스 버스 정류장

 

트리어에서 맑스와 맑스 후계자들에 대한 기억을 과도하게 접하고 난 우리는 맑스의 망명 도시 브뤼셀로 향했다트리어에서 지체하지 않았다면중간에 룩셈부르크의 작은 마을에 들러 피크닉 분위기를 느끼며 샌드위치 도시락이라도 먹고 출발하려고 했으나시간이 부족해 최선을 다해 브뤼셀로 달렸다.

 

브뤼셀에 도착한 우리는 곧장 그랑플라스(Grand Place)로 향했다물론 브뤼셀 입구에서도 길을 잘못 들어아담하고 조용한 주택가 골목길을 십여 군데 지나치고서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사거리마다 하나씩 있는 회전교차로는 정말 벨기에 운행의 진수였다.

 

브뤼셀 중심에 있는 그랑플라스는 소설가 빅토르 위고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고 극찬했을 정도로 유명해서 관광객들로 가득했다우리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이 관광명소에도 맑스의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바로 그랑플라스 입구의 전망 좋은 곳에 있는 레스토랑이 그곳이다여기서 맑스는 브뤼셀 망명 시절 유럽의 여러 동지들과 자주 회합했고역사적인 사건을 만들었다. 1846년 맑스는 브뤼셀에서 코뮤니스트 통신위원회를 결성하고, 1847년 11월에 개최된 코뮤니스트 동맹 2차 회의에 따라 조직의 강령으로 코뮤니스트 선언을 작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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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0맑스가 자주 방문했다는 그랑플라스 레스토랑벨기에 브뤼셀

 

이 레스토랑에는 맑스가 유럽의 동지들과 신년회를 했다는 명판이 붙어 있다이곳에 맑스 명판을 붙여놓은 것도 신기했지만한국인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이곳에 브뤼셀 야경이나 벨기에 맥주의 맛을 즐기러 온 게 아니라 맑스의 흔적을 찾아온 우리가 있다는 것이 더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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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1브뤼셀그랑플라스 야경

 

 이렇게 우리는 트리어를 거쳐 브뤼셀까지 즐기고중간에 워터루라는 작은 마을도 들르고안전할 것 같지만위험천만한 고속도로를 달리고 달려 자정이 지나 숙소에 도착했다이날 운행한 총 거리는 알 수가 없지만운전 시간은 14시간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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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2브뤼셀에서 체포되는 맑스

 

여섯째 날은 오후에 차량을 반납하고드디어 대중교통을 이용한 두 번째 투어가 시작되었다넷째 날과 이날 방문한 파리 코뮨의 역사적 장소파리 시내 투어를 하면서 방문한 68혁명 관련된 이야기는 이 글에서는 생략하고 사진으로 대신한다그런 역사는 책으로 제대로 읽어야 하고타자의 눈이 아닌 본인의 관점으로 보고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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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3> 1871년 5월 21~28파리 코뮨 마지막 항전을 벌이다 총살당한 전사들을 기리는 벽페르라셰즈 공동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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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코뮨 전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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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4> 파리 코뮨의 첫 전투가 있던 몽마르뜨

 

그전까지 몽마르뜨는 공동묘지와 오래된 교회와 포도밭이 있던 곳으로 유명했다그뿐이었다화가들이 모여들었다는 몽마르뜨는 파리 코뮨의 패배 이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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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5> 1968년 맑스의 사진 아래 앉아있는 소르본대학의 학생세르지오 델 그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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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6> 소르본대학 근처의 카페 거리, 1686년 문을 연 카페

 

맑스가 태어난 지 200년이 넘었고, 4대가 지나갔다그는 떠났어도 코뮤니스트 정신은 여전히 살아있다코뮤니스트 정신은 무덤에 묻혀 있지 않고 세계 곳곳에서 혁명의 기운으로 살아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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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7> 맑스의 증손자 칼장 롱게의 묘(1904~1981), 페르라셰즈 공동묘지

 

 

10월의 어느 날그리고

 

먼저 가신 혁명가/코뮤니스트를 기억하고 제대로 계승하는 일은 원칙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인 것 같다꼭 필요한 기억은 망각되고어떤 기억은 왜곡되고어떤 기억은 과장되어 후세대들에게 제대로 전해지는 것조차 힘든 게 우리 운동의 현실이다나는 이전 세대 코뮤니스트를 기억하고 계승하는 일에 있어 그들을 우상화하거나 일상적인 삶까지도 특별하게 보존하고 상징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하지만여전히 소수의 이른바 운동권 좌파들은 혁명가들과 혁명의 역사를 이용하여 노동자들의 계급의식 발전과 조직화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정파지위세력 유지에 이용하면서 코뮤니스트 정신을 왜곡하고 있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코뮤니스트의 발자취는 계속 남아있고우리의 여행은 이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우리의 여행이 꼭 지리적 방문에 한정될 필요는 없다코뮤니스트의 사상과 삶그리고 당대의 생생한 투쟁 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앞서간 코뮤니스트들이 지켜왔던 원칙과 함께할 동지만 있다면 언제든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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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8> 자유여행 일정

 

이번 여행은 결론을 내리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시작을 의미하는 여행이라서 이 정도로 정리하고 다음을 준비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여행을 준비하고 안내하고 무사히 마칠 수 있게 애써주신 파리의 정 선생님일정상 다소 무리가 있었음에도 기꺼이 함께하고 서로를 배려해준 동지들이 있었기에 다시 경험할 수 없는 감동적이고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우리가 방문한 도시는 잊혀 질수도 있으나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잊지 않을 것이다.

 

코뮤니스트의 발자취인터내셔널을 향한 발걸음!

우리의 삶은 여행! 여행은 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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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9> Montreuil 역사박물관 맑스 조형물 앞에서

 

2019년 11

 

국제코뮤니스트전망 ㅣ 이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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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0호] 코뮤니스트의 발자취를 따라 1

코뮤니스트의 발자취를 따라

기억과 망각의 도시를 찾아 -

 

 

지난 가을 우리는 아주 특별한 여행을 했다오랜 시간 함께 투쟁하고 연대했던 동지들과 코뮤니스트 활동가들이 처음으로 공동의 목적과 각자의 의미를 찾아 함께 여행을 다녀온 것이다그중 하나는 코뮤니스트의 발자취를 따라 유럽의 몇 개 도시를 여행하면서 혁명가들의 삶과 시대를 느껴보는 것이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모두의 안전과 함께 계획한 일정(1~2주)을 무사히 마치는 것에 우선을 두었다하지만개인적으로는 방문하는 도시의 일부분이 되어보고 싶었고찾고자 하는 시대의 어느 순간과 마주치고도 싶었다내가 도시와 역사의 일부분이 되었는지흔한 관광객이 되었는지는다음 여행을 기약했으니 그때야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9월의 어느 날

 

우리는 1차 일정으로 파리를 중심으로 여러 도시를 돌며 코뮤니스트(맑스와 레닌 그리고...)의 발자취를 따라 가보기로 했다방문할 도시의 이동 거리가 멀어 차량을 빌려서 움직였고중간에 파리 코뮨 등의 역사적 장소도 방문했다.

 

첫째 날, 파리에 가장 먼저 도착한 나는우리를 초대하고 안내해주신 정선생님과 함께 렌터카를 인수했다처음 계획했던 것보다 인원이 늘어 14명이 7인승 두 대로 움직이기에는 자리가 좁을까 걱정했는데다행히 내가 인수한 차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고급사양의 9인승이었다.

 

다음 일행을 기다리는 시간에마침 공항에서 가까운 곳에 우리가 방문할 박물관이 있다고 하여 먼저 둘러보기로 했다그런데 공항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렌터카 회사의 차량 관리 소홀로 사소한 문제가 생겨 박물관 방문을 취소하고 근처의 대형쇼핑몰로 향했다쇼핑몰에서 차량 문제를 해결하고 공항으로 돌아가 일행을 픽업해 초대해주신 정선생님 댁에 도착했더니 늦은 저녁이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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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겉과 속이 달랐던 차량

 

9월의 어느 날 파리에서의 첫 운행은복잡한 공항 주변을 두 시간 넘게 돌며 낯선 차량 운전에 익숙해지고파리의 신호체계를 익히기도 전에 파리 시내를 관통하는 야간운전을 하면서 시작되었다파리에서 (대중교통 여행을 하기 전) 렌터카로 장거리를 이동한 첫 일주일간의 여행기에는 국경을 넘나드는 운행 일기와 여행 일기가 섞여 있기에 미리 알려둔다.

 

파리에서의 첫날은 이렇게 운전에만 집중했기에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하지만대형마트와 렌터카 회사에서 노동자들이 손님 눈치를 전혀 보지 않고편하게 앉아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일하는 모습기다리는 데 익숙해져서인지 급한 일에도 재촉하지 않고 그냥 기다리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이 느낌은 이번 여행에서 낯선 풍경에 적응하거나 착각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물론 파리에 50여 년 거주하신 정선생님은 내게 파리에서는 서두른다고 되는 일도 없고설득해서 안 되는 일도 없으니 느긋하게 대처하면 된다.”고 하셨지만...

 

 

기억과 망각의 도시하나 롱쥬모(Longjumeau)에서 마리로즈(Marie-Rose)까지

 

둘째 날, 가장 많은 일행이 도착하는 날이라 아침 일찍 공항으로 향해 동지들을 픽업했고엄청나게많은 짐을 풀기 위해 숙소로 먼저 향했다예상대로 공항 가는 길은 많이 막혔고다른 공항 터미널에서 찾아오는 일행도 길을 헤맸다하지만넓고 안락한 숙소에 도착하자 마치 자기 집에 온 것처럼 편한 느낌이었고매우 여유로운 여정이 되겠다는 착각에도 잠시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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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각자 가져온 식량,  가방의 절반을 풀기도 전에 식탁이 가득 찼다.

 

숙소에서 짐 정리와 잠시 쉬고 나서 우리는 첫 방문지로 망명 시절 레닌과 볼셰비키 동지들이 머물렀던 파리 남부의 롱쥬모(Longjumeau)라는 작은 도시를 찾아갔다.

 

 

1911년 롱쥬모에서는 망명 중인 볼셰비키들이 노동자들을 교육하는 당의 비합법 학습조직을 운영했고지노비에프 등이 가르쳤다고 한다이에 앞서 레닌은 파리에서 이네사를 만나고, 1910년 7월 코펜하겐에서 열린 국제사회주의 회의에 로자 룩셈부르크트로츠키 등과 함께 이네사를 초대한다그 후 이네사는 롱쥬모에 학교를 만들어 볼셰비키와 함께하며 레닌과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우리는 먼저 롱쥬모에 있는 볼셰비키의 활동(학습장소를 찾아갔다현지 주민들도 모를 정도로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은 창고 같은 건물을 다행히도 찾아냈다아주 오래된 건물이었지만학습하고 훈련하기에 적당한 공간이었다무엇보다 침탈에 대비해 도피하기 좋은 구조였다이곳에서 학습하고 토론하고 혁명을 꿈꾸던 볼셰비키의 모습을 그려보니 기본적인 학습조차 게을리 하는 지금의 활동가들과 많이 비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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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3롱쥬모 볼셰비키 비밀 학교

 

다음은 레닌의 흔적이 예상치 못한 형태로 남아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곳은 예정에 없던 곳이었으나, 여행을 준비하면서 파리의 정선생님이 사전답사하면서 알게 된 곳이었다.) 이곳도 롱쥬모에서 레닌이 잠시 머물렀던 곳이다이네사도지노비에프도다른 동지들도 자주 들렀을 곳이다지금은 케밥 레스토랑이 자리 잡고 있다여기에서 반전은 레스토랑 주인이 어떻게 알았는지레닌을 기억하고 가게 상호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이제는 레닌 간판이 사라지고메뉴판에 작게 적혀 있을 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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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4> 롱쥬모 레닌의 숙소, 현재는 케밥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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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5레닌 케밥 레스토랑 메뉴판

 

건물 내부를 보려고 들어가 보니볼셰비키의 비밀 학교와 같이 이 동네의 오래된 건물은 구조가 거의 같았다최근엔 이 작고 오래된 도시에도 우파의 집권으로 재개발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한다실제로 한가로운 골목길 담벼락에 신축주택 광고가 줄지어 붙어 있었다.

 

이렇게 프랑스의 작은 도시를 한가롭게 거닐며 109년 전을 떠올릴 무렵 다음 여정이 우리를 파리로 이끌었다물론 우리는 그곳에서 레닌 이야기가 아닌 저녁에 먹을 음식 이야기를 하며 걸었다.

 

레닌과 그의 동지이자 아내였던 나데주다 크룹스카야이네사는 1911년 여름 다시 파리로 돌아간다이들은 삼총사라 불릴 만큼 가까웠는데레닌 부부와 이네사는 파리폴란드스위스 등 망명지에서 가족처럼 지냈다.

 

우리도 그들을 따라 파리로 향했다레닌은 1909년 7월부터 1912년 6월까지 파리 14구 마리로즈(Marie-Rose)가의 한 낡은 아파트에서 살았다처음 들렀던 롱쥬모는 파리 망명 생활의 일부분이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레닌이 살던 마리로즈(Marie-Rose)가 4번지 아파트도 간판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물론 일부 매체와 특별한 방문객들의 여행 후기에서 이곳에 대한 정보를 찾아볼 수 있지만롱쥬모와는 정반대의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그동안 프랑스 공산당에서 이 집을 레닌의 소형 박물관처럼 활용하다가 방문객이 줄어들고 재정난에 허덕이자 결국 처분했기 때문이다예전에는 “1909년 7월부터 1912년 6월까지 레닌 이곳에 살다라는 명패가 붙어 있었다고 한다지금은 명패가 떨어져 나간 곳에 흔적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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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6레닌이 살던 마리로즈가 4번지 아파트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마지막 흔적마저 지워지고 있는 느낌이었다하지만당시의 레닌은 이곳에서 밀려드는 망명자들을 만나고러시아의 상황을 전해 들으며미래의 혁명을 도모했다레닌은 자주 자전거를 타고 몽수리 공원(Parc Montsouris) 근처 도서관에서 공부했고몽파르나스(Montparnasse) 지역의 카페에서 동지들을 만나 술도 마셨다고 한다한번은 동지들이 망명 자금으로 어렵게 마련해준 자전거를 잃어버려 매우 상심했는데다시 마련해 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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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7레닌이 자주 찾았다는 카페

 

이외에도 레닌의 파리 망명 생활에 대한 다양한 일화와 장소에 대해 들었지만무겁게만 들려왔다기억하려는 사람과 망각하려는 도시 사이에서 나는 도시의 일부가 되려던 생각을 잠시 보류했다.

 

숙소로 돌아오기 전우리는 장기간 먹고 사용해야 할 물품을 사기 위해 근처 대형마트를 찾았다한 시간 넘게 여러 명이 꼼꼼하게 장을 보고 계산을 하려는데계산대 앞의 줄이 줄어들지 않았다잠시 후 알아보니 전산이 마비되어 계산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한국 같았으면 난리가 날 일이었지만누구도 항의하지 않고 더 기다리거나다른 방법으로 계산하거나그냥 돌아가는 것이었다우리도 허탈하지만그냥 빈손으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파리에서는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으므로...”

 

 

기억과 망각의 도시둘 바노(Vaneau)에서 아르장퇴이(Argenteuil)까지

 

셋째 날, 어제의 레닌에 이어 오늘은 맑스의 발자취를 따라 파리 7구의 바노(Vaneau)가로 향했다. 1843년 초 예니와 결혼한 맑스는 1843년 10월 말 신혼여행지로 파리를 택한다맑스와 예니는 파리 7구 바노(Vaneau)가 38번지 아파트에서 17개월간 머물렀고, 1844년에는 큰딸 예니 롱게가 태어난다맑스는 파리에서 시인 하이네와 알게 되고, 1789년의 프랑스혁명 연구에 몰두했으며영국 고전 경제학 저술도 읽었다물론 평생 동지 엥겔스와의 만남은 극적이었다.

 

맑스와 예니의 신혼집은 영화에도 나올 만큼 유명하지만레닌의 집과 마찬가지로 파리에서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우리는 첫 번째 신혼집(38번지)과 근처에 있는 두 번째 집(23번지)까지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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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8맑스와 예니의 신혼집바노가 38번지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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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9맑스와 예니의 두 번째 신혼집바노가 23번지 아파트

 

이 집들은 젊은 맑스가 신혼 생활을 시작하고당대의 혁명가들을 만나고이론을 공부했던 곳이다그래서인지 이곳에서는 신혼 생활 이후 가난한 생활고로 세 아들을 모두 잃은 맑스·예니 부부의 비극적인 미래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몇 년 전 프랑스 TV ‘문화’ 프로그램에서 아르테(Arte)가 맑스의 가난에 대한 원인을 맑스나 그의 부인이 유복한 집안 출신이기 때문에 가정경제를 잘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암시한 것은 큰 왜곡이다실제로 맑스는 전적으로 프롤레타리아 연대에 철저했으며정기적으로 그의 적은 수입을 혁명운동에 사용했다.)

 

나는 맑스 가정사의 비극 대신, 1844년 8 파리의 프랑스 극장 앞 광장 카페에서 엥겔스와의 역사적 만남을 가졌던 일을 떠올리며, “나의 역사적 만남은 언제쯤일까이미 평생의 혁명 동무를 만난 것은 아닐까?” 되돌아보며 다음 장소로 향했다.

 

파리 북서부 아르장퇴이(Argenteuil)로 가는 길서울 주변의 도시와 다르게 한가로워서 길을 잘못 들어도 다시 돌아가는 데 문제가 없었다이곳을 찾아가는 이유는 맑스의 큰딸 예니 롱게의 집이 있고이곳에서 병든 맑스가 자신의 말년 일부를 딸의 가족과 함께 보냈기 때문이다파리와 다르게 맑스의 딸이 살았던 곳에는 칼 맑스 길()도 있고예니 롱게의 집에는 “1882년 맑스가 머물렀다는 명판도 붙어있다현재의 주소는 27 Boulevard Karl Marx, 95100 Argenteuil이다맑스와 레닌이 살았던 곳 주변에는 늘 혁명가뿐 아니라 예술가들이 머물렀는데예니 롱게의 옆집도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가 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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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10예니 롱게의 집아르장퇴이 맑스가 27번지

 

이곳에는 아직도 동유럽이나 아시아(중국베트남)의 관광객들이 종종 찾는다고 한다여기서 사진을 찍고 있던 우리와 마주친 이탈리아 방문객이 우리에게 관심을 보였다한국의 코뮤니스트들이 이렇게 많이 방문한 것에 놀라면서 여러 가지를 물었다차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동네 주민들이 코뮤니스트’ ‘코뮤니스트’ 하면서 엄지를 세워 보였다.

 

이 도시는 어제 방문한 망각의 도시와 다르게 특별한 것까지 기억하는 곳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맑스와 그의 아픈 가족사를 제대로 기억하는지는 의문이었다예니 롱게의 집과 맑스 가족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는 우리를 안내해주신 분의 설명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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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1아르장퇴이칼 맑스 거리

 

아르장퇴이에서의 맑스는 파리 신혼집에서의 청년 맑스가 아니었고수많은 망명지와 영국에 정착한 혁명가 맑스도 아니었다늙고 병든 인간 맑스였을 뿐이다앞서 말한 생활고로 인한 비극적인 가족사를 간직한 채말년을 맞이한 맑스는 요양하면서 딸들에게 쓴 편지에서 애정 넘치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유럽여행12IP4A0218.jpg  <사진12> 클로드 모네가 살았던 집, 아르장퇴이 맑스가 25번지

 

 

예니 롱게에게 보낸 우편엽서

1882년 5월 26

 

아주 귀여운 아가,

너로부터 편지를 받을 때는 언제나 행복하단다너의 올드 닉이 너에게서 몇 시간씩 잠을 훔쳐 가서 후회스럽기도 하지만 말이다.

쾌청한 날씨 때문에 내 건강도 많이 회복되고 있다. 6월 초 칸느에 가서 한 일주일 머물다 올까 한다이 모든 계획은 의사의 소견과 초여름 날씨에 달려있다. (...)

내 마음은 너와 네 아이들 곁에 있단다보고 싶구나아주 싫었던 일련의 의학적 경험을 치른 후 전혀 서두를 것이 없어졌다어쨌거나 곧 너희들 곁으로 가기를 희망하고 있다.

 

너의 올드 닉 (알제리에서의 편지칼 맑스 지음 정준성 옮김)

 

*올드 닉(Old Nick)은 맑스가 딸들에게 편지를 보낼 때 애칭으로 사용한 이름이다.

 

맑스는 이 편지에서 한 약속처럼 예니 롱게의 집으로 갔다인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혁명가들이 잠시라도 돌아갈 곳은 어디인가현장인가가족인가동지의 곁인가아무도 모르는 혼자만의 장소인가돌아갈 곳이 있기는 한 것인가?

 

나는 아직 답을 알지 못하기에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차를 몰았다파리와 대서양 방향으로 갈라지는 곳에서 방어운전을 하다 차선을 잘 못 들어 한참을 서쪽으로 갔다가 돌아왔다혼자만의 여행이었으면어차피 잘못 들어선 김에 대서양까지 달렸을 것이다다행히 지름길로 가서 늦지 않았다그리고 시라크 장례식 전날이라 통제하는 구간이 많아 골목길로 돌다 보니어느새 세느강 가장 가까운 강변길을 천천히 구경하며 드라이브하는 호사를 누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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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3> 강폭이 좁은 세느강

 

2019년 11

 

국제코뮤니스트전망 ㅣ 이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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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심 재판, 윤석열 징계 논란 : 계급 착취 왜곡하는 검찰개혁이 아니라 부르주아 국가기구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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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심 재판윤석열 징계 논란 :

계급 착취 왜곡하는 검찰개혁이 아니라 부르주아 국가기구 폐지!

 

  지난 12월 23(서울중앙지법은 자녀 입시 비리와 사모펀드 등의 의혹을 대부분 인정하며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게 징역 4년에 벌금 5억 원을 선고했다여기에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시장경제 질서를 흔드는 중대 범죄와 증거 인멸 지시 등의 수사 방해를 덧붙였다이른바 조국 사태에서 비롯된 정경심 동양대 교수 재판은 1년여 이상을 끌어오면서 지지자와 반대자 사이의 치열한 여론전뿐만 아니라 검찰개혁사법개혁 등의 이슈를 부각시켰다정 교수 측은 재판 내내 "가족이 비판 없이 혜택을 누렸던 건 반성하지만조 전 장관 낙마를 위한 표적 수사"였다며 무죄를 주장해왔다, 검찰개혁의 이면에는 국가 권력 기구에 대한 지배계급 내부 분파 간의 권력 투쟁이 진행되고 있다그 싸움은 그들이 계급 이해관계에 얼마나 투철한지를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 요구는 환상이다그것은 막강한 검찰권을 행사하는 억압적 국가기구에 대한 노동자의 민주적 통제가 아니라 검찰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정권의 입맛에 맞게 검찰을 통제하려는 시도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검찰을 개혁하는 것즉 검찰을 덜 독점적이고 덜 부패한’ 기관으로 바꾸겠다는 것은 지배계급 안에서의 통제 방향만 바꿀 뿐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생산소비분배는 겉으로는 폭력을 배제하고 자유와 평등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그러나 자본 임노동 관계는 계급 적대적이고 자본의 재생산을 위해서는 강권을 확보해야 한다이 모순이 겉으로는 사회 구성원으로부터 분리된 공적 권력체계인 국가기구로 조직되었다이는 자본주의 국가를 초계급적 성격으로 왜곡하게 된 근원이고 국가 참여를 통한 사회개혁과 변혁이 가능하다는 오류에 빠지게 만든다따라서 이러한 적대적 계급 관계가 사라지지 않은 한 자본주의 국가기구는 노동자민중의 요구에 따라 개혁될 수 없다.

 

 

  지금과 같은 지배계급 내부 분파 간의 권력 투쟁에서 노동자들은 어느 편도 들어서는 안 된다()노동자/반민주적 검찰 권력을 비판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가짜 검찰개혁을 지지해서는 안 되고반대로 부르주아 정권인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면서 검찰과 언론의 논리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누가 이기든 노동자들은 이용만 당할 뿐이고노동자의 통제력 강화가 아닌 지배계급의 독재(부르주아 민주주의안에 갇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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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가 주장하는 공정성 – 부르주아 이해관계의 수단

 

  권력 기구에 대한 (민주당 주도권을 보장하는개혁안을 갖고 법무부 장관에 취임했던 조국 전(법무부 장관과 문재인 정권은 개혁의 근거로 공정성을 내세웠다공교롭게도 검찰 역시 정경심 재판에서 같은 근거를 내세우고 있다정경심 재판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이번 사건을 특권층의 반칙이자 신종 정경유착으로 규정하였다그러면서 "형사재판에서 평등의 원칙은 사회 고위층에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부르주아 분파의 공정성그 공정성의 실체는 무엇인가한마디로 부르주아 분파의 밥그릇 싸움이자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착취의 수단에 불과하다. 계급사회인 자본주의에서 기회와 과정과 결과의 공정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그렇다면 부르주아 정당들이 공정성을 제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이 물음 속에는 당연히 기회과정결과에서 모든 개인은 평등하다는 논리를 전제로 깔고 있다이러한 전제에서 생산수단을 소유하기 때문에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있기 때문에 지배한다는 부르주아의 허구가 재생산되고그것은 이데올로기로 노동자들에게 강요되고 있다하지만자본주의 탄생 자체가 인민을 폭력적으로 생산수단에서 분리해 무산자를 양산하면서 자본의 원시적 축적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은 기회와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될 수밖에 없다지배계급의 아주 작은 일상만을 보여주는 조국의 사례에서만 보아도 조국 딸은 고등학생 때 의대 실험실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의대 교수와 함께 논문을 작성해 제저자가 되었다하지만 노동자계급의 자식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상상 너머의 현실이다즉 공정성은 계급 간 불평등을 덮으려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장치일 뿐이다부르주아 공정성의 범위에 노동자는 처음부터 철저히 배제되었다.

 

  부르주아의 공정성은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공격수단이자 계급지배 수단이다결국 노동자들 스스로 무능력을 체화시킴과 동시에 노동자의 잠재력을 무력화시키고단결과 연대보다는 치열한 생존경쟁에 내물리게 한다이렇게 해서 부르주아는 자본주의 논리 속으로 단결된 노동자계급이 아닌 개별적 노동자로 포섭한다.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이 검찰개혁의 유일한 적임자라고 호명한 조국의 행태는 부와 지위를 세습하려는 부르주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검찰개혁의 대상인 검찰이든 수사권 독립의 혜택을 얻게 될 경찰이든 본질적으로 지배계급의 이해관계를 방어하고 노동자를 억압하는 역할에서는 아무런 차이도 없다그런데도 문재인 정권은 사법개혁이 마치 공정한 국가정의로운 국가의 밑거름인양 떠들면서 사회적 불평등은 철저하게 침묵과 왜곡으로 일관한다이처럼 사법개혁의 본질은 계급 지배의 정당성을 공고하게 할 부르주아의 철옹성에 지나지 않는다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떠한 검찰/경찰/사법기관도 친자본-반노동자적 억압 기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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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개혁이 아니라 부르주아 억압 기구 폐지!

 

  지난 16일 문재인 대통령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제청을 받아 재가한 징계 결정에 대해 윤석열 총장은 집행정지 신청을 법원에 제기했고서울행정법원은 이를 일부 인용했다이에 따라 직무에서 배제된 윤 총장은 8일 만에 직무에 복귀했다직접선거로 선출되고 의회의 압도적 다수파까지 차지한 문재인 정권이 통제할 수 없는 검찰 권력을 선출되지 않은’ 또 다른 국가기구인 공수처에서 견제할 수 있을까검찰 개혁은 추미애-윤석열 갈등에서 보여준 것처럼 인적 청산으로 가능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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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주아적 개혁은 코뮤니즘으로 향하는 점진적 변화'가 아니다정치 검찰부패한 검찰을 민주적이고 청렴한 기구로 바꾸는 것으로는 검찰의 반노동자성이나 노동자계급에 대한 국가 폭력을 종식할 수 없다. ‘덜 해로운’ 정치인을 권력의 자리에 앉힌다고 부르주아 정부가 기능하는 방식을 바꿀 수 없듯이검찰을 개혁하고 그것에 새로운 위상을 부여한다고 해서그들 모두가 자본의 이해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구라는 사실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따라서 이 사회의 다수인 노동자민중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폭력으로 통치하는 그들은 견인이나 포섭의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그동안 검찰과 사법기관이 구조적으로 저질러 온 범죄행위는 '사건 재조사와 진상 규명',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는 것과 책임자 처벌'만으로는 종식할 수 없다그것은 오직 그들과 적대하는 사회 계급인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물리적 힘과 집단 이성으로 그들이 독점하고 남용하는 모든 특권을 폐지해야 가능하다따라서 검찰 개혁사법개혁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대안은 코뮤니스트 혁명을 통해 모든 억압적 국가기구를 폐지하고노동자평의회/프롤레타리아트 총회 같은 계급 조직으로 대체하는 것이다새로운 세상에서도 특권계층이 존재하지 않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개인과 특정 집단이 갖는 모든 특권을 폐지하고모든 공직자가 노동자 평균 급여를 받으며사회 전체의 통제(선출자의 소환속에서 노동자민중의 이해관계에 복무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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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개혁을 둘러싼 현재의 갈등과 논쟁은 자본주의 위기코로나19 팬데믹 재앙의 고통 속에 살아가는 노동자민중의 삶과는 전혀 관계없는 지배계급 내부의 권력투쟁이었다하지만그것은 지배계급이 현재의 위기를 노동자민중에게 전가하면서 대중의 시선을 돌리는 데 유효했고계급의식을 왜곡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따라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지배계급 내의 여러 분파와 그들의 계급적 본질을 정확히 인식하고그들을 개혁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동자민중에게 진정한 검찰개혁은 오직 자본주의 억압적 국가기구와 착취 체제의 폐지뿐이다그것은 어떠한 급진적 부르주아적 개혁으로도어떠한 부르주아 진보좌파의 집권으로도 불가능하다그래서 노동자계급의 근본적인 사회혁명은 그들의 개혁보다 훨씬 힘들고 엄청난 힘이 필요하다노동자계급은 부르주아 국가기구의 어떠한 권력보다 더 큰 힘이 있다하지만 자본주의 체제에 포섭되고 분열되어 있는 한 그 힘은 지배계급을 위해 쓰일 뿐이다따라서 비록 지금은 소수일지라도 부르주아 국가기구와 정치세력에 의탁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투쟁하는 노동자계급부르주아 공정성/민주주의의 위선을 넘어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싸우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우리의 미래다.

 

2020년 12월 28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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