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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뮤니스트 12호] 코로나19 팬데믹과 자본주의 해체기에 관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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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2호] 코로나19 팬데믹과 자본주의 해체기에 관한 보고서

코로나19 팬데믹과 자본주의 해체기에 관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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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고서는 ICC 프랑스 지부에서 최근 열린 회의를 위해 작성되었고 세계 상황에 대한 다른 보고서들이 곧 이어질 예정이다.

 

 

재앙은 계속 악화하고 있다공식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자가 8,000만 명을 넘어서고 사망자도 170만 명에 달한다.[1] 세계 부르주아지의 여러 분파는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예방 정책 도입을 무모하게 지연하다가 결국 경제의 광범위한 부문을 잔인하게 폐쇄(Shutdown)한 이후팬데믹이 일부 국가에서 일시적으로 약화한 상황을 틈타 사회를 재개방함으로써 결국 훨씬 더 많은 희생자를 대가로 한 경제회복에 도박을 걸었다겨울이 다가오면 이러한 도박은 승산 없음이 분명한데적어도 중기적으로는 경제적으로나 의료적으로나 악화를 의미한다이 재앙의 부담은 국제 노동자계급의 어깨에 떨어졌다.

 

지금까지 자본주의가 역사적 쇠퇴의 마지막 국면즉 사회적 해체의 시기에 진입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 중 하나는, 1989년 동유럽 몰락으로 열린 현시대가 세계대전이나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같은 명백한 지표들이 정의하고 지배하던 자본주의 쇠퇴 이전 시대와 달리겉으로 명백한 상호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증상들이 급증함으로써 표면적으로 드러난다는 점이다[2]. 그러나 2020년 현재, 2차 세계대전 이래 세계사에서 가장 심각한 위기인 코로나 팬데믹은 자본주의 체제의 전면화된 부패를 나타내는 일련의 혼돈 요소를 결합함으로써 해체기의 확실한 상징이 되었다이러한 요소는 다음과 같다:

 

- 1967년에 시작된 장기적인 경제 위기[3]의 연장그리고 뒤이은 긴축 정책의 축적과 강화는 팬데믹에 대해 부르주아지가 부적절하고 무질서하게 대응하도록 내몰았고 이는 다시 지배계급이 중요한 시기에 생산을 중단함으로써 경제 위기를 엄청나게 악화시키도록 만들었다;

 

팬데믹의 기원은 과잉 생산이라는 자본주의의 고질적인 위기로 인해 지속적이고 가속적인 환경 파괴에 분명히 놓여있다;

 

이전의 동맹국들 사이에서 보이듯제국주의 열강의 지리멸렬한 경쟁 관계로 인해 팬데믹에 대항한 세계 부르주아지의 대응은 국제적인 대실패로 나타났다;

 

이 보건 위기에 대한 지배계급의 부적절한 대응은 각 나라 내부에서 부르주아지와 국가가 사회에 대한 정치적 통제력을 점점 더 상실해 가는 경향을 드러낸다;

지배계급과 국가의 정치적 사회적 능력의 쇠락은 놀라운 방식으로 이데올로기적 부패를 동반한다자본주의 최강 국가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정당화하기 위해 터무니없는 거짓말과 미신적인 난센스를 유포하고 있다.

 

따라서 코로나19는 이전보다 훨씬 분명하게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주요 수준에 대한즉 경제적제국주의적정치적이데올로기적 및 사회적 수준에 대한 해체 영향을 한꺼번에 통합해서 보여주고 있다.

 

현 상황은 자본주의가 무질서와 사회적 붕괴라는 마지막 시기에 진입했다는 분석에 대해서 모순적으로 간주한 많은 현상의 중요성을 또한 일소해버렸다이러한 현상은우리를 비판하는 사람들에 따르면우리의 분석이 의문시되거나 단순히 무시되어야 하는 증거로 통했었다특히몇 년 전 중국 경제의 놀라운 성장률은우리를 비판하는 이들에 따르자면해체기 심지어는 쇠퇴기가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반증처럼 보였다이러한 관찰자들은 실제로는 중국 산업 성장이 방출하는 현대성 향기에 사로잡혔다오늘날코로나 팬데믹의 결과의 하나로서중국 경제는 정체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저개발과 부패라는 덜 유쾌한 냄새를 방출하는 만성적인 후진성을 드러냈다.

 

ICC가 1989년부터 갖게 된 전망은일시적인 유행을 따르거나 낡은 공식에 얽매이는 대신에저변에 깔린 국제적이고 장기적인 경향의 맑스주의적 분석에 기반을 두고 도출해낸 전망이다그것은 세계 자본주의가 내부적 해체의 최종 시기에 들어섰다는 것이고이 전망은 충격적으로 확인되었다현재의 보건 대재앙은 무엇보다도 자본가계급이 체제에 대해 점점 더 통제력을 상실하고 있고 인류 사회 전체의 전망에 대한 지배력을 점점 더 상실하고 있음을 보여준다자본주의가 생산 양식의 역사적 쇠퇴의 효과를 억제하고 방향을 틀기 위해 지금까지 발전시킨 수단에 대한 자본주의의 지배력 상실이 심각해지는 것은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다.

 

게다가 현 상황은 자본가계급이 증대하는 사회적 혼돈을 막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전에는 통제할 수 있었던 바로 그 해체를 점점 더 악화시키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팬데믹쇠퇴해체

 

코로나 팬데믹이 왜 자본주의 해체기에 상징적인지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서 그것이 이전 시대에는 오늘날과 같은 방식으로 발생하지 않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물론 팬데믹은 이전 사회 유형에서도 알려져 있고고대 노예사회 말기의 저스틴 역병이나 봉건제 말엽의 흑사병과 같이 이전 계급사회의 쇠퇴에 파괴적이고 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그러나 봉건제 쇠퇴에는 해체기가 없었는데이는 새로운 생산양식(자본주의)이 이미 낡은 양식 내부에서 그것과 함께 형성되고 있었기 때문이다치명적인 전염병의 참상은 심지어 부르주아지의 초기 발전을 가속했다.

 

역사상 노동력 착취의 가장 동적인 체계인 자본주의 쇠퇴는 필수적으로 사회 전체를 포괄하며 어떤 새로운 생산 양식도 그 내부에서 출현하지 못하도록 막는다이것이 바로세계대전이나 프롤레타리아적인 대안 경로가 없음에도, ICC가 해체에 대한 테제에서 표현했듯이[4], 자본주의가 -쇠퇴(ultra-decadence)’의 시기에 진입하게 된 이유이다따라서 현재의 팬데믹은 현존 사회 내부에서 인류 생산력의 그 어떤 재생을 초래하지 않을 것이고대신에 우리는 이 팬데믹을 통해서세계 자본주의 전체가 전복되지 않는 한 인류 사회 전체가 붕괴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성을 희미하게나마 감지할 수밖에 없다전염병의 분출을 이해하고 방지하고 억제할 과학적 기술적 사회적 수단들을 개발한 (하지만 그것을 사용할 수 없는자본주의가코로나에 대한 대응으로 격리라는 중세적인 방법에 의지하는 것은썩어가는 그리고 스스로 만들어낸 생산력을 이용하는데 점점 더 무능해지는 한 사회의 난국을 증언한다.

 

자본주의 일생에서 전염병의 사회적 영향의 역사는 한 체제의 쇠퇴와 1914년에 시작된 그 쇠퇴기 내부에서 해체라는 특정 시기 사이의 구분에 대한 더 나은 통찰을 우리에게 제공한다자본주의의 상승과 그 쇠퇴 대부분 역사는 사실상 특히 선진국에서 전염 질환에 대한 의학과 공중 보건의 증대된 지배력을 보여준다보기를 들어 천연두와 소아마비의 정복 그리고 말라리아의 퇴치와 같이 공중위생 및 위생시설 증진은 이러한 진보 증거이다결국, 2차 대전 후에는 비전염성 질환들이 자본주의 주요 국가에서 조기 사망의 주된 이유가 되었다우리는 역학의 역량에 있어서 이러한 개선이 부르주아지가 주장하듯이 인류애적인 관심에서 발생했다고 상상해서는 안 된다결정적인 목표는 자본주의의 영구적인 위기로 인해 요구되는 착취의 강화를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국주의 블록의 군사적인 이해에 적합하도록 국민을 준비하고 최대치로 동원하기 위해 안정적인 환경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1980년대부터 전염 질환에 대한 긍정적인 추세가 역전되기 시작했다. HIV, 치카에볼라사스메르스니파, N5N1, 뎅기열 등과 같은 새로운또는 진화하는 병원체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이러한특히 동물성 바이러스 발달은 자본주의 주변 지역에서 도시 성장(이러한 성장의 40%는 거대한 빈민가의 증가가 차지한다), 벌목기후변화와 연계되어 있다역학이 이러한 바이러스를 이해하고 추적할 수 있게 되었지만 국가가 대책을 구현하는 것은 그러한 위협과 보조를 맞추는 데 실패했다코로나19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불충분하고 무질서한 대응은 전염 질환의 소생과 공중보건에 대한 자본주의 국가의 점증하는 태만그래서 최소한의 수준에서 사회적 보호의 중요성에 대한 무관심을 확인해 준다부르주아 국가에 의한 증가하는 사회적 무능력의 이러한 발전은 수십 년간 이루어진특히 건강 서비스의 사회적 임금에 대한 삭감과 관련된다그러나 공중보건에 대해 증가하는 무관심은지배계급 대부분에 의해 무책임하고 단기적인 대응이 선호되는 해체 시기라는 틀 안에서만 완전히 설명될 수 있다.

지난 수십 년에 걸친 전염 질환 통제의 진행에서 발생한 이러한 역전으로 끌어낼 수 있는 결론은 피할 길이 없다그것은 쇠퇴하는 자본주의가 최종 시기인 해체 시기로 이동했음을 나타낸다.

 

물론자본주의의 영구적인 경제 위기의 악화가 이러한 이동의 근본 원인인데이러한 위기는 쇠퇴의 모든 시기에 공통적이다그러나 바로 이 위기의 영향에 대한 관리또는 오히려 증가하는 부실 관리가 변했고해체라는 특정 시기의 특징인 현재 및 미래의 재앙의 핵심 구성 요소이다.

 

이러한 변형을 포함하는 데 실패한 설명들보기를 들어 국제코뮤니스트경향(International Communist Tendency)의 경우처럼그런 설명은 팬데믹은 이윤 동기 때문이라는 진부한 문구만 남긴다그들에게는 특정한 상황들재앙의 시기와 규모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는다.

 

팬데믹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반응은 마치 제국주의 열강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제국주의 군사 목적으로 무기화하고 대량 격리를 이러한 측면에서 국민 동원인 것 마냥냉전 시대의 틀로 돌리는 것으로 설명할 수 없다이러한 설명은 주요 제국주의 열강들이 더는 제국주의 블록으로 조직되지 않으며그들의 전쟁 목적에 따라 자유롭게 국민을 동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망각한다이는 해체기의 근본 원인인두 주요 계급의 사이에 놓인 교착 상태의 핵심 요소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제국주의 블록의 군사적 야망에 도움이 되는 것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백신이다[5]. 부르주아지는 이러한 측면에서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부터 교훈을 배웠다몇몇 미국 항공모함과 프랑스 항공모함 하나가 코로나19에 의해서 작동 정지된 것에서 보이듯이통제되지 않은 감염증은 군부에는 엄청난 부담이다대조적으로치명적인 병원체를 엄격하게 통제하고 유지하는 것은 항상 모든 제국주의 열강의 생물학적 전쟁 능력의 조건이었다.

 

이것은제국주의 열강들이 보건 위기를 그들의 경쟁자들을 희생해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증진하는 데 이용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그러나 이러한 노력은미국이 남긴 세계 제국주의 지도력의 진공 상태가 증가하고 있고중국을 포함해서 그 어느 다른 열강도 이 역할을 맡을 수 없거나 대안적인 견인 축을 형성할 수 없음을 전반적으로 보여주었다제국주의적 충돌의 수준에서 무질서는 코로나 대재앙에 의해 확인되었다.

 

오늘날 제국주의 국가에 의한 대량 격리에는 확실히일상생활에 군대의 더 많은 투입과 국가에 의한 전쟁 같은 권고문 사용이 병행된다그러나 국민의 이러한 제한에는노동자계급이 비록 조용하지만 패배당하지 않고 남아있는 시기에 사회적 동요라는 위협에 대한 국가의 두려움이 상당한 정도는 동기로 작용한다.

 

자본주의 쇠퇴의 모든 시기의 공통적인 특성인 근본적인 자기 파괴 경향은 해체기에 지배적 형식이 세계대전이 아니라 세계 무질서로 바꾸었다그러한 세계 무질서는 사회와 인류 전체에 대한 자본주의 위협을 증가시킬 뿐이다.

 

 

팬데믹과 국가

 

이 팬데믹을 특징짓는부르주아지의 통제력 상실은 국가라는 도구에 의해 매개된다이 재난이 해체 시기 국가자본주의에 관해 폭로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상부구조의 전복에 관한 ICC의 팸플릿 자본주의의 쇠퇴에서의 언급을즉 사회 안에서 국가 역할의 증대는 모든 생산양식에서 쇠퇴의 한 특징이라는 점을 환기할 것이다국가자본주의 발전은 이러한 일반적 역사적 현상의 극단적 표현이다.

 

1952년 프랑스 코뮤니스트 좌파(GCF)[6]가 지적했듯이국가자본주의는 자본주의 모순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라모순의 영향을 지연시킬 수 있다 하더라도자본주의 모순의 표현이다따라서 쇠퇴하는 사회를 유지하는 국가 능력은 그것이 아무리 개입하더라도시간이 지날수록 약화할 수밖에 없고 결국 그것이 억제하려 애쓰고 있는 바로 그 모순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된다자본주의의 해체는 지배계급에 의한 통제력 상실이 증가하고 그것의 국가가코로나가 극적으로 보여주듯이사회적 진화의 지배적 경향으로 되는 시기이다.

그런데이러한 통제 상실이 국가의 모든 활동 영역에서 균일하게 전개될 거라고또는 그것이 모든 나라를 동등하게 강타하거나 단지 단기적인 현상에 그칠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국제적인 차원에서

 

동유럽 몰락과 그 결과 서구권 해체와 더불어, NATO와 같은 군사 기구들은발칸전쟁과 걸프전의 경험이 보여주었듯이응집력을 잃게 되었다군사적 전략적 수준에서 혼란은 모든 국제기구가 다른 속도로 위력을 상실하는 것과 병행되었다그러한 기구들보기를 들어 사회적 차원에서 국제보건기구(WHO)와 유네스코경제적 차원에서 EU(예전의 형태로서), 세계은행국제통화기금(IMF), 국제무역기구(WTO) 등은 2차 대전 이후 미국 제국주의의 주도 아래 세워졌었다이들은 미국의 지도력 아래 서구권의 안정성과 부드러운 힘(soft power)’을 유지하도록 고안되었다.

 

이러한 국제 조직의 해체와 약화 과정은 2016년 미국 대통령 트럼프 선출로 특히 강화되었다.

 

팬데믹 동안 WHO의 상대적인 무기력은 이러한 측면에서 웅변적이고각 나라가 각자 자신만의 게임을 무질서하게 진행해서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마스크 전쟁과 이제 곧 있을 백신 전쟁, US의 WHO 탈퇴 선언이 기구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조작하려는 중국의 시도 등에 대해서는 부연 설명이 따로 필요 없을 것이다.

 

국제기구의 무기력과 그 결과 경쟁하는 국가 사이에서 모두에 맞서는 각자’ 경향은 병원균 위협을 국제적인 재앙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국제 경제 차원에서무역 전쟁과 지역화 경향의 가속화에도 부르주아지는 보기를 들어 경제 폐쇄 초기인 3월에 전 세계적으로 달러 유동성을 유지하기 위한 연방 준비은행의 행동과 같은 본질적인 대책을 조정할 수 있었다독일은 처음 좀 머뭇거린 후에는 프랑스와 함께 유럽연합 전체에 대한 경제적 구제 패키지를 조정하기로 했다.

 

그런데도 국제 부르주아지가 여전히 세계 경제 주요 부분의 완전한 붕괴를 막을 수 있다면코로나19에 지연되고 무질서한 반응으로 인한 폐쇄로 발생한 경제성장 및 세계무역에 가해진 엄청난 장기적 피해를 피할 수는 없었다. 2008년 금융 위기에 대한 G7의 대응과 비교해서 현 상황은 경제 위기를 늦추기 위한 행동을 조정하는 부르주아지의 능력이 장기적으로 고갈되었음을 보여준다.

 

물론, ‘모두에 맞서는 각자’ 경향은 항상 자본주의의 경쟁적 성질이고 이것은 국가 단위로 분할한 까닭이기도 하다그러나 오늘날 제국주의 블록 규율과 전망의 부재는 경제적 난국과 쇠락의 시기에 이 경향이 소생하도록 자극했다예전에는 특정 분량의 국제적인 협력이 유지되었지만코로나19는 그것이 점점 부재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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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적 차원에서

 

해체에 대한 테제 제 10항에서 우리는 세계 전쟁이라는 전망 소멸은 국가 자체뿐만 아니라 각 국가 내부에서 분파 간의 경쟁을 격화시킨다고 지적했다코로나19와 관련해서 국제적 차원에서 혼란과 준비 부재는 각 국가 내부에서특히 행정 차원에서 다소 재현되었다:

 

우리가 강조해야 할 자본주의 사회 해체의 주요 특징 하나는 정치 상황의 진화를 통제하는 것이 점점 더 곤란해지는 것이다.” 제 9.

 

이것은 스탈린주의 체제(지배계급 자체를 정의하는 일당 국가)의 기형적 본질에 의해 심화한 동유럽의 몰락에서 주요한 요소였다그러나 만성적인 경제위기전략적 전망의 상실 그리고 외교 정책의 대실수국민 혐오 등과 같이 전체 부르주아지 집행위원회’ 안에서 충돌의 기본 원인은 이제 선진 자본주의를 강타하고 있는데이점은 어느 곳에서보다도 포퓰리스트이거나 포퓰리스트의 영향을 받는 정부들특히 도널드 트럼프나 보리스 존슨이 이끄는 당이 권력을 잡은 주요 국가에서 현 위기에서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이러한 주요 국가에서 충돌은당분간 더 민족주의적 정책을 따르는 다른 국가에서 불가피하게 반향을 일으킨다.

 

이전에 두 나라는 세계 자본주의의 상대적 안정성과 설득력의 상징이었다오늘날 부르주아지의 한심한 행태는 그들이 이제 불합리와 무질서의 등대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미국 행정부와 영국 정부는 민족주의자들의 호령 안내를 받으며 코로나 재앙에 대한 대응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지체했으며 심지어 국민이 위험을 경시하도록 부추겼다그들의 학계 권위자들의 충고를 토대부터 약화하고 바이러스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동안 경제를 개방하고 있다.

 

두 정부는 코로나 위기의 전야에 팬데믹 TF를 해체했다.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M)’ 시위에 대한 대응에서 트럼프가 군사적 규약을 폐기하고 사법부를 허위적으로 조작한 것이나존슨이 민간 서비스국을 최근에 분열시킨 것 등의 보기에서 보이듯이두 정부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고의로 민주국가의 확립된 절차를 훼손하고 다른 국가부서 사이에 불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모두에 맞서는 각자의 시기에 각 민족 국가들이 저 자신의 길을 걷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건 사실이다그런데다른 국가에 비해 더 현명했던 국가마저 점점 더 분열과 통제력 상실에 직면하고 있다.

 

해체에 대한 테제에서 언급된노쇠한 자본주의는 2의 아동기로 회귀하고 있다는 생각을 포퓰리즘은 증명하고 있다포퓰리즘 이데올로기는 이 체제가 단순히 선동적인 구호들과 분열적인 결정 등을 통해서 자본주의적 역동성과 더 작은 관료주의라는 어린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는 것처럼 가장한다그러나 실상은 해체기에 놓인 쇠퇴한 자본주의가 모든 임시방편을 소진해 가고 있다.

 

포퓰리즘이 프롤레타리아 부활의 부재로 인해 일시적으로 방향성을 잃은 불만스러운 사람들의 인종 혐오와 소부르주아적인 환상에 호소한다면포퓰리즘 강령 또는 반대강령은 부르주아지와 그것의 국가 내부에서 발전했음은 현재의 보건 위기로 볼 때 분명하다.

 

선진국 중 미국과 영국이 팬데믹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 비율을 갖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런데대다수 선진국에서 국가의 경제기관은 대조적으로 안정성을 유지하며 그들의 경제가 자유낙하 상태에 빠지는 것을 방지할 급속한 비상 대책을 펼쳤고 국민에 대한 대량실업의 효과를 지연시켰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실제로우리는 중앙은행들의 행동 결과의 하나로서경제에 대한 국가의 역할이 커지고 있음을 똑똑히 보고 있다보기를 들어서,

 

모건스탠리(투자은행)는 G4 국가(미국일본유럽 및 영국)의 중앙은행이 회기 중에 그들의 대차대조표를 다 합쳐서 국내총생산(GDP)의 28%로 확장할 것으로 본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동안에 해당 수치는 7%였다”(출처파이낸셜 타임즈 2020년 6월 27).

 

그런데근저에 국가자본주의 발전 전망은 위기와 자본주의의 해체에 대한 국가의 통제 능력이 점점 약화하고 있다는 징후이다.

 

사회생활 전반의 모든 측면으로의 국가 개입의 증가하는 무게는 사회 전반의 점증하는 해체에 대한 해답이 아니다.

 

전통적인 자유주의 정당들 또는 그들 중의 중요한 부분이 포퓰리즘이 자행하는 파괴 행위에 대항해 이 나라 내부에서 강력하게 저항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이 나라에서 국가 부르주아지의 이 부분은 특히 대중 매체를 통해서 반대의 목소리를 형성하는데이러한 반대는 우스꽝스러운 포퓰리스트적 광대 짓과 마찬가지로포퓰리스트의 판도라 상자를 지금 닫을 수 있는 실제 역량은 없을지라도 민주적 질서와 합리성으로 회귀에 대한 희망을 대중들에 제공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 나라에서 부르주아지는 프롤레타리아트를 결코잊지 않았고 때가 오면 프롤레타리아트의 모든 헌신적인 기관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다.

 

 

이 해체의 시기에 경험한 부메랑효과

 

2017년의 해체에 관한 보고서는 60년대 말 경제 위기 출현 후 첫 몇십 년 동안 부유한 국가들은 위기 효과를 체제 주변으로 밀어낸 반면 해체기에는 이 경향이 역전되거나 자본주의 핵심 국가로 되돌아오는 것 같다는 점을 강조한다테러리즘의 확산난민과 이주민의 대대적인 유입대량실업환경 파괴 그리고 치명적인 감염병이 유럽과 아메리카의 문제가 된 것에서 보기를 들 수 있다세계 최강의 자본주의 국가가 팬데믹으로 가장 고통받는 현 상황은 이러한 경향의 확인이다.

 

보고서는 또한 다음과 같이 통찰력 있게 언급했다:

 

“...우리는 (해체)가 자본주의 위기 발전에 어떤 실제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만약 현재의 포퓰리즘 상승으로 몇몇 유럽의 주요 국가에 이러한 경향이 권력을 잡게 된다면그러한 해체 영향이 발전하게 될 것이다.”

 

현재 재앙의 가장 중요한 측면 중 하나는 해체가 실제로 파괴적인 방식으로 경제에 재()반영되고 있다는 점이다그리고 이 경험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지속적인 경제 전쟁 또는 영국 정부가 자살적이고 파괴적인 브렉시트 경로를 추구하겠다는 결정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더 많은 경제적 혼란에 대한 포퓰리즘의 갈망을 줄이지 않았다.

 

상부구조 해체는 그것을 낳은 자본주의적 경제 토대에 보복을 하고 있다.

 

경제가 흔들리면그것에 기반을 둔 모든 상부구조가 위기와 해체로 진입한다 … 한 체제의 귀결로 시작하지만쇠퇴 과정에서 아주 종종 가속 요인으로 된다.” 자본주의의 쇠퇴제 1

 

2020년 7월 16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

 

[1] 2020년 12월 29일 현재. (이 글은 2020년 7월에 작성되었다그리고 수치만 12월 29일 자로 업데이트했다 – <역자주>)

 

[2] 이렇게 인지되는 문제는 2017년 ICC 22차 총회로부터 해체에 관한 보고서 International Review」 163호에서 언급되었다.

 

[3] 50여 년간 지속되어 오고 있는 이 장기적 경제 위기는 선진국에서 20년 동안 지속된 전후 번영기에 뒤이어 1960년대 말에 출현했다이 위기의 악화는 몇몇 경기 침체 및 회복에 따라 잠시 중단되곤 했지만 이러한 중간 시기들은 근본적인 난국을 해결할 수 없었다.

 

[4] International Review」 107, 1990

 

[5] 페니실린의 항진균 성질은 1928년에 발견되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그 약은 미국에 의해 대량생산되었고 23십만 투여량 분량이 1944년 6월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위해 준비되었다.

 

[6] Gauche Communiste de France – ICC의 전신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6924/report-covid-19-pandemic-and-period-capitalist-decompos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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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 : 사랑하는 딸에게

칼 맑스 :  사랑하는 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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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 : 1818년 5월 5일~1883년 3월 14일)

 

 

맑스의 예언자 수염

 

맑스가 알제(알제리의 수도)에 머물 때 예언자처럼 하고 다녔던 수염을 면도하였고, 덥수룩한 머리카락을 짧게 하였을까?

 

1882년 4월 28일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의 추신에서 맑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그런데 햇볕 때문에 예언과 같은 내수염과 모발을 제거해버렸어. (딸들은 간직하고 있는 것이 좋다지만) 그러나 알제의 이발사가 제단에 내 모발을 바치기 전에 사진을 찍어 두었네. 다음 일요일(4월 30일) 원판을 가질 걸세. 귀하가 마르세이유로부터 보낼 복사판을 볼 걸세. 8주간 계속 발랐던 콜로디온 성분의 칠을 볼 걸세. (바바리아의 루드비히 2세 스타일) (사실 나는 하루도 완전한 휴식을 갖지 못했어). 싫어하는 일에도 환한 얼굴을 하였다네." 

 

이 사진의 몇 복사원판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원판 하나를 날짜(착오로 1882년 2월 말이 찍혀있다)를 넣어 둘째 딸 라우라에게 선물했고, "나의 사랑하는 귀여운 예니"라고 써서 보낸 또 다른 원본의 날짜(1882년 4월 말)는 정확하다. 세 번째 원판은 엥겔스에게 보냈다. 맑스는 자기 사진을 친구 쇼르레머와 와이트섬의 벤트너에서 간호해 준 의사 부인에게도 보내고 싶어 했다.

 

우리가 지니고 있었던 맑스의 마지막 모습이다. 이 사진은 자주 재생되었다. 머리카락과 흰 수염, 콧수염과 눈썹은 검은 색깔이나 코 양쪽 면은 더 하지만 눈가에는 보일 정도로 주름살이 배어 있다. 있는 그대로 맑스를 보여 주는 아름다운 사진... 사진 찍는 자세의 어느 것도 건방진 곳 없다.

 

이상하게도 사진에서 맑스는 병자의 얼굴이 아니다. (사진작가가 약간 손질한 것일까?) 8주간의 치료 기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병자 게임에서 건강한 얼굴을 하고 있음을 당신네들은 볼 것"이라고 적어 놓았다.

 

4월 말 맑스는 새롭게 건강을 회복하여 산책을 시작하였고, 알제 열대 식물원과 프랑스 군함을 보러 다녔다. 엥겔스는 그의 사진을 보면서 맑스가 새롭게 아주 좋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맑스는 라우라에게 사진을 보내면서 "어떤 예술도 사진보다 사람 모습을 이상하게 만드는 것은 없을 것이야."라고 내린 결론은 애교스러운 표현일까?

 

아직도 의문은 남아 있다. 맑스가 그의 계획을 실행했을까? 정말 그는 예언자의 수염을 희생했을까?

 

1882년 4월 말 이전 모든 서신 교류 어디에도 수염 없는 맑스의 얼굴을 찍은 사진을 발견하지 못했다. 맑스의 모든 편지교환자 중 수염과 덥수룩한 머리칼의 그를 보는데 습관이 된 모든 이들은 자본론의 저자의 얼굴이 완전히 변한 사건에 아무도 조금의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럼 여기서 어떤 결론을 내릴까?

 

그러니까... 마지막 순간 맑스는 당초 계획을 포기하고 그렇게 사랑하는 딸들을 기쁘게 하려고 수염과 머리카락을 간직하였다고...

 

*마르벤베스퍼는 알제에서 백방으로 사진사와 맑스를 면도한 이발사의 흔적을 찾으려고 끈질기게 집요한 조사를 벌였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큰 딸 예니, 둘째 딸 라우라 셋째 딸 엘레노어 그 뒤에선 마르크스와 엥겔스(1864년).jpg

 

 

1882년 5월 6일 둘째 딸 라우라에게 보낸 편지

 

라우라 라파르그에게

몬테칼로(1) 러시아 호텔

 

나의 사랑하는 카카두(2)

이곳 몬테칼로에 도착한 지 몇 시간 되었구나. 엥겔스에게 띄운다고 알린 편지내용도 살펴볼 시간이 없을 지경이야(어쨌든 네가 받을 이 편지보다 하루는 늦게 받을 것이야).

이제 쓸 일용품을 사러 가야 하는구나. 너와 프레드(3)에게 사진 한 장씩을 동봉하여 보낸다. 어떤 예술도 사진보다 사람 모습을 이상하게 만드는 것은 없을 것이야.

 

늙은 닉(4)이

 

 

1882년 3월 27일 첫째 딸 예니 롱게에게 보낸 편지

 

예니 롱게에게

 

1882년 3월 27일 월요일

 

내 사랑하는 애야(5)

오늘 (3월 27일) 네 편지를 받았다. 네 소식을 접할 때 마다 늘 기뻐한다는 것을 너도 알지. 내 편지는 나쁜 어느 것까지도 너에게 숨기지 않았다. 앞서 너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 건강에 차도가 있다고 너에게 알린 것이 지어낸 말이 아니란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제일 힘들었던 불면증이 사라졌고, 식욕이 다시 돌아왔고, 기침의 발작증세가 완화되면서 기침하는 횟수가 많이 줄어들었단다. 물론 효험이 있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번은 아직도 발포성 약을 바르고 있다. 결국 왼쪽 켠의 늑막염 (피부 깊숙한 곳에는 약의 효과가 미치지 못한데) 치료는 별로인 것 같아.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계속하는 이 변덕스런 날씨 – 천둥, 무더위, 추위, 비, 아주 드문 화창한 날 –  에서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한없이 마르고 더운 공기인 계절의 공기란다! 어저께 날씨가 어느 정도 좋아졌어. 하루 종일 따뜻해서 산책을 했었지. 오늘은 잿빛 하늘에서 폭우가 치더니 바람소리가 세차다. 지겨울 정도로 이런 날씨가 계속되니 좋다는 이곳도 이제는 끝난 거지. 12월을 포함한 달부터 알제리에서 이런 날씨를 본 일이 없었다는 거야. 기러기를 사냥하기 전에 반드시 사전조사를 했어야지. 이는 날씨에도 해당되지.

우리끼리 얘기지만 와이트 섬의 날씨도 그저 그랬으나 내가 런던에 다시 돌아왔을 때 내 건강상태가 좋아진 걸 보고 사람들이 놀랬었지. 그리고 그 섬의 벤트너 마을에 있을 때는 아주 편했어. 반면에 런던에서 엥겔스의 권고 극성이 아빠의 건강을 헤쳐버렸단다. 그리고 라파르그 이 허풍선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시원한 공기를 마시면서 “걷는 것” 이라고 생각한 거야. 마다 할 수가 없었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런던을 벗어나야 하겠다는 조급함이 앞섰거든. 너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도 너를 파멸 시킬 수 있거든. 이와 같이 환자를 위험에 빠트리는 것이 없다고!

나의 사랑하는 얘야. 너에게 얘기한 것처럼 접대 잘하고 단순하면서도 친절한 사람들을 만난 것이 나에게는 행운이다. 이 빌라호텔에는 스위스 로망지방의 스위스인들과 프랑스 본토의 프랑스인들이 있는데 독일인이나 영국인은 없단다. 스테판 의사의 지시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모리스 카스텔아즈씨가 있다. 님(Nym)(6)은 더는 친절하지도 신경을 쓰지도 않고 있어. 어쨌든 얘야, 애비에게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모든 사람이 네 애비에게 무관심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돌봐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병자”의 특권은 말하지 않고 구석에 쳐박혀 있는 거란다. 혼자 있을 때는 혼자 있고 더는 사람과 사귀기 싫을 때는 그렇게 할 수 있는 특권 말이다.

이제 프랑스나 영국 일간지를 꼼꼼히 보는 것도 내동댕이 쳐버렸어. 속보만 읽고 있지. 읽고 싶은 것은 파업에 관한 롱게의 기사란다. 그의 편지 중 어느 편지에선가 라파르그는 롱게가 잘 썼다(7)고 하더라. 마사르 에밀 마사르(8)의 어리석은 짓거리에 대해서는 네가 알려준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전혀 없어.

히르쉬(9)에게 그의 “아담-컨트리뷰션” 이라는 기고문을 보내달라고 편지해줘. 여기 날씨가 좋을 때 나르는 융단(10)으로 죠니를 오게 하고 싶네. 내 귀여운 손자인 무어인, 아랍인, 베르베르인, 터키인, 니그로(11), 바벨탑과 그들의 의복(상당히 시적인 면이 있는)을 보고 놀랄 것이나, “질서” 를 세운 프랑스인들과 슬픈 영국인들이 섞여 있는 이 동양 세계! 내 귀여운 해리, 고상한 월프, 다 큰 파(12)에게 안부를 전해다오.

나의 친애하는 애야. 잘 지내기를 바라면서 롱게에게도 내 인사를 전해다오.

너의 올드 닉

 

재간(13)때  자본론 을 다듬거나 고칠 생각하면 안 된다.

 

 

 

 

 

<주>

 

1. 몬테칼로 : 모나코 수도

2. 카카두(Kakadou) :  맑스의 둘째 딸 애칭

3. 프레드 :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일반 호칭. 프리드리히를 프레드라고 함.

4. 닉 : 맑스의 별칭. 애칭

5. 이 편지는 영어로 되어 있으며 피에르 클랭카르가 번역했다.

6. 님(Nym) : 헬레나 델무트

7. 로안(Roanne) : 프랑스 서남쪽 섬유도시. 이 도시의 공장파업에 관한  라 주스티스 에 게재된 기사를 말함.

8. 에밀 마사르(Emile Massard) : 프랑스 사회주의자. 게드 신문인 르 시투와엥  기자 편집위원이었으나 편집상 충돌로 상기 신문을 떠남.

9. 칼 히르쉬 : 파리로 이민 온 독일 사회민주주의 기자. 사회주의 계열 여러 신문에 기사를 썼고, 아담 부인이 발행하는 공화파 출판물인  누벨 르 뷰 에도 기고하였다. 이 출판물로 인해 “아담-기부금” 공식이 생긴다. 이 문제의 기사는 “독일의 사회주의” 라는 제목으로 실림.

10. 일식 표현과 대등. 니벨룽겐(Niebelungen)의 에피소드에서 암시한 요술 모자 덕분으로.

11. 아프리카 흑인. 당시는 경멸의 뜻이 없이 사용하였을 것으로 보고 있음. 

12. 맑스의 다른 손자들. 해리, 애칭 월프의 에드가 그리고 마르셀은 맑스 가족 거의 모두가 애칭으로 불렀다.

13. 자본론 독일어 3판은 맑스 사망 다음해인 1884년에 출간됨.

 

 

「알제리에서의 편지」 ,  정준성 옮김,  빛나는전망,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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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3호를 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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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3호를 내면서

 

 

 

코로나19 팬데믹은 자본주의 민낯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장기적인 경제 위기제국주의 대립과 전쟁 위기의료 붕괴인종주의죽음과 감염병의 빈부 격차이윤과 임금의 급격한 격차환경위기국가주의 …… 자본의 끊임없는 이윤추구는 탐욕을 넘어 지구와 종 전체의 생존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자본의 위기는 끊임없이 프롤레타리아에 떠넘겨지고 착취의 강도는 더욱 가혹해지고 있다.

 

보건의료노동자들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환자 다수에게 치료는 바이러스 전파 차단을 위한 격리가 거의 전부이다그곳은 인권도 연대도 차단된 삭막하고 고립무원의 공간이다하지만 팬데믹 이전부터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관계와 삶의 공간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다이런 점에서 자본주의는 최악의 바이러스다코뮤니즘이냐 야만이냐는 더는 실체 없는 유령도책 속 의제도먼 미래도 아닌 바로 지금현재에 제기되어야 하는 투쟁 의제이다.

 

코뮤니스트는 창간호에서부터 지금까지 국제주의-코뮤니스트의 원칙으로 지금의 정세를 바라보고 투쟁의 전망을 제시해 왔다우리는 세계의 혁명 세력(특히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과 국제 노동계급의 투쟁 흐름에 주목하면서도 한국 노동자들의 계급의식 발전과 새로운 주체의 형성을 위해 길고 험난한 길을 마다하지 않으려 한다계급투쟁이 고조되고 집중되는 곳에서부터 일상의 계급의식과 내부 모순이 생기는 곳까지 가장 구체적이면서도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며 투쟁의 최종 목표를 밝힐 것이다.

 

코뮤니스트」 13에서는 지금 정세와 이후의 전망에 집중해 세 개의 <특집>을 마련했다.

 

□ 특집자본주의 이후 세계 코뮤니즘 세상에서는 자본과 상품노동력이 상품이 되는 자본주의를 극복한 코뮤니즘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전망하고 있다이것은 단순히 유토피아적 상상이 아니다생산의 사회화생산력으로서 노동의 발전을 통해 코뮤니즘에 좀 더 확실한 이해를 갖게 해 준다한편으로는 현실을 왜곡시키는 것은 오히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이며자본주의 사회 그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 특집자본주의와 감염병백신 전쟁에서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자본주의라는 바이러스의 산물이며팬데믹은 자본의 이윤 추구 경쟁 사회에서는 결코 극복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자본주의 백신 전쟁을 고려할 때면역사회는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한 나라에 백신을 접종하고 다른 나라에 백신을 접종하지 않고 백신을 한 나라의 70~80%만 확보하면 바이러스 변이가 백신 미접종 국에서 백신 접종 국으로 확산하기 때문에 효과가 없을 것이다이 대유행 병이 국제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한어떤 나라도 안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대유행에 대항하는 투쟁 또한 국제적이어야 한다.”

 

또한올해는 크론슈타트 봉기 100주년이 되는 해로 □ 론슈타트 봉기 100주년을 특집으로 실었다크론슈타트 봉기의 역사적 교훈(당과 계급의 관계세계 혁명 등)을 평가하고 있다.

 

고립된 어떤 노동계급의 전초 기지도 사회주의 건설의 책무를 완수할 수 없으며상대적으로 노동계급의 비율이 낮은 나라에서는 특히 그러하다혁명은 세계적이어야 한다긍정적으로 보자면크론슈타트의 그 파괴적인 경험조차도소비에트가 역사적으로 발견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형태임을 확인해주었다소비에트는 그 자체로 계급 대중을 다른 사회로 끌어들일 수 있는 역량이 있다이것은 단순히 당에 의해 이뤄질 수 없다자본주의를 압도하는 데 있어 계급의 단결을 위한 국제적인 정치 조직이 필수적이다그 구성원은 확산하는 세계 혁명에 가장 열정적일 것이다그러나 인터내셔널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 비극적인 오류는 볼셰비키당과 그 지도부만의 문제가 아니었음이 명백하다사실상 볼셰비키는 단지 비극적으로 잘못된 정책을 시행했을 뿐이다다만 이 정책은 당시 전체 노동자 운동이 반혁명은 봉기 이후에 국가 그 자체로부터 자라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해 발생한 당연한 결과였다.”

 

□ 국제정세에서는 미얀마 항쟁을 실었다국제코뮤니스트전망은 미얀마 노동자민중의 투쟁을 지지하고 연대한다더불어 미얀마 투쟁이 "쿠데타 세력과 동전의 양면인 아웅산 수치(민족민주연맹정권의 복귀를 넘어 노동자민중의 자기권력 쟁취 투쟁으로 발전해야 한다.” 는 국제주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렇다면쿠데타는 왜 일어났을까노벨 평화상 수상자는 혁명가처럼 행동하지 않았다그리고 미얀마 자본주의의 자본주의 빈곤의 법칙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도 않았으며게다가 군부에 대한 저항에 철권을 행사했다오히려그녀는 자치권이나 종교의 자유를 요구하는 로힝야족의 주장을 짓밟는 "더러운 일"을 했고그 나라의 북쪽 국경에서도 비슷한 행위를 했다그동안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했으며이런 태도 때문에 개인 신뢰도가 떨어졌지만아주 높은 지지율을 유지해 왔다.

 

쿠데타의 이유는지구상의 이런 곳에서 종종 일어나듯이군부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찬양하는 가두시위가 더 급진적인 무언가로 번질 수 있다는 지배계급의 두려움에서 비롯되었다.”

 

이 외에도 자본주의의 쇠퇴이론 회고와 전망자본주의 경제 비판엥겔스의 혁명적 기여코뮤니스트 정치 등 다양한 분야의 목소리가 실려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투쟁하는 노동자계급뿐만 아니라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에 사회적 고립을 가져왔다지금과 같이 매우 예외적인 상황에서는 노동자들이 저항할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이 제한적인 것도 사실이다하지만 자본주의 세계는 온갖 종류의 사회적 반란과 전쟁 위협이 고조되고 있고세계 곳곳에서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이 위기는 노동자계급이 계급투쟁을 강화함으로써 세계혁명의 지평을 넓히고 수십억 인류의 불행을 종식할 수 있는가를 질문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온갖 악취와 야만의 본색을 드러내며 막다른 길로 향하고 있다인류 전체의 위기는 제국주의 전쟁을 통해서 뿐만이 아니라 자본의 잔혹성감염병 및 환경 파괴를 통해서도 진행되고 있다이제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의 혁명적 전복 없이는 그 어떤 전망도 가질 수 없다자본주의 야만성과 잔혹성을 종식하기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와 코뮤니스트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계급투쟁의 부활국제적 수준의 노동자계급 투쟁코뮤니스트 노동자와 혁명 세력의 결집(코뮤니스트 강령과 혁명적 실천)을 통한 혁명당 건설!

끝없이 추락하는 낡은 운동과 단절한 동지들새롭게 시작하는 모든 동지들과 함께 흔들림 없이 이루어나갈 것이다

늦었지만제대로 해나갈 것이다.

 

혁명 세력의 결집이냐자본주의 체제흡수냐!는 혁명적으로 실천하는 동지들에 달려있다.

코뮤니스트 혁명이냐야만이냐역시 의식적으로 투쟁하는 노동자계급에 달려있다.

 

2021년 5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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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라, 세상

  • 분류
    계급투쟁
  • 등록일
    2021/05/03 11:26
  • 수정일
    2021/05/03 11:54
  • 글쓴이
    자유로운 영혼
  • 응답 R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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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라, 세상

 


우리는 쉬지 않고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죽고 싶어도 사는 사람들
우리는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사람들이다
살고 싶어도 죽는 사람들


다녀올게요
오늘까지 일하고 나는 죽었어요
저녁부터는 쉬어도 돼요
내일은 깨우지 마세요


어머니는 시커멓게 타버린 나를 낳았어요
꿈도 없는 아버지는 나에게 꿈을 묻지 않았어요
당신은 달아나는 꿈을 얼마만큼 쫒고 있습니까?
당신의 꿈은 누구의 편입니까? 


우리는 탈출하지 못했다
우리는 순식간에 갇혔다
우리는 한꺼번에 죽었다
우리는 보통 떼죽음을 당했다 
우리들의 시체는 여기저기 분산되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본 세상은 불덩어리였다


구급차는 날마다 우리에게 달려온다
우리를 태우고 떠나기 위해 줄지어 기다린다
나도 내 얼굴을 알아볼 수 없다
나는 내가 이렇게 죽을 줄 알았다


살아있는 눈에 뜨거운 노동의 흔적이 그어진다
나도 언젠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날이 있으리라
잘 가라, 세상!

 

詩 | 임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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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2021년 13호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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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2021년 13호가 나왔습니다

 

 

□ 코뮤니스트 13호를 내면서 

 

□ 코뮤니스트 정치

▸모든 부르주아 정치 세력의 부동산정책은 가격상승 대책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코뮤니스트 과제 

▸코로나19 위기 속 코뮤니스트 활동의 틀 

▸코뮤니스트 정치원칙을 제안하며 (2021) 

 

□ 특집. 자본주의 이후 세계 : 코뮤니즘 세상에서는

▸코뮤니즘 세상에서... 힘든 일을 누가 할 것인가?

▸코뮤니즘 세상에서... 누가 농업에 종사할 것인가? 

▸코뮤니즘 세상에서... 도시와 주택은 어떤 모습일까? 

 

□ 특집. 자본주의와 감염병, 백신 전쟁

▸자본주의, 전쟁 그리고 전염병  

▸반(反)코로나19 백신:보건은 단지 자본주의의 상품이다 

▸자본주의에 맞서는 백신은 없다 

▸백신 전쟁과 자본주의 바이러스 

 

□ 국제

▸미얀마 항쟁 

▸미얀마 군부와 결탁한 한국기업과 미얀마 노동자 투쟁 

 

□ 특집. 크론슈타트 봉기 100주년

▸크론슈타트 봉기; 반혁명 100년 

▸1921년 트로츠키와 크론슈타트 봉기 

▸1921년 크론슈타트 이해하기 

▸크론슈타트가 남긴 역사적 교훈들 

▸30년 뒤, 러시아혁명이 품은 이상과 현실 

 

□ 문화

▸[시] 나의 노동으로 外 

▸[영화] 「미나리」, 한국이 미국을 바라보는 어떤 초상화 

 

□ 이론. 자본주의의 쇠퇴

▸자본주의의 쇠퇴이론 : 회고와 전망 

 

□ 자본주의 경제 비판

▸하찮은 자본수익률과 막대한 부채가 세계경제를 무릎 꿇게 하고 있다 

▸경제에 대한 국가개입의 환상

 

□ 코뮤니스트 정신 계승

▸200년: 엥겔스와 그의 혁명적 기여 

 

 

"해결책은 코뮤니즘입니다"

 

**********************

 

□ 가격 :  15,000원

 

□ 구입문의 : communistlef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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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1호] 코민테른의 의회 전술 논쟁 : 보르디가의 의회주의에 대한 테제

[100년 전] 코민테른의 의회 전술 논쟁 :

보르디가의 의회주의에 대한 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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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이하 코민테른2차 대회 8차 전체회의에서는 코뮤니스트의 의회 전술에 대한 논쟁이 벌어진다트로츠키와 부하린이 기초한 위원단 테제에 대해 부하린과 볼프슈타인이 설명하고이탈리아 사회당의 기권주의파를 대표하여 보르디가가 자신이 작성한 의회주의에 대한 테제를 설명한다위원단 테제는 제인터내셔널 붕괴 이후에 혁명적 의회 활동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고 있기에 의회를 활용하는 전술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보르디가는 프롤레타리아트 대중투쟁 시기에 코뮤니스트가 의회에 참여하는 것은 의회주의의 해악적인 결과만을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는 보르디가의 발언(테제 낭독)과 그에 대한 지지 발언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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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제2차 대회

8차 전체회의

1920년 8월 2

 

 

지노비에프 개회선언 (발언 생략)

디트만 생략

윈쿱 생략

라덱 생략

지노비에프 생략

부하린 생략

볼프슈타인 생략

 

보르디가 : 이탈리아 사회당 좌파는 반의회주의적 관점을 갖고 있습니다이탈리아에서만 유효한 것이 아닌보편적 성격을 가진 이유가 있기에 그러합니다.

 

우리가 지금 오로지 원칙 문제만을 다루고 있는 겁니까분명 그렇지 않습니다원칙적으로는 우리 모두 결국 의회주의를 반대합니다우리는 의회 제도가 프롤레타리아트 해방을 가져올 수단이 될 수도프롤레타리아 국가 정치 형식이 될 수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아나키스트들은 어떠한 권력 행사든 모두 반대한다고 단언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의회주의를 반대합니다프롤레타리아트 해방 과정에 대해 완전히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는 생디칼리스트들은 당 정치 활동을 반대하며 우리와 마찬가지로 의회주의를 반대합니다반면 우리의 반()의회주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맑스주의적 비판에 근거합니다저는 여기서 비판적 코뮤니즘 주장들을 되풀이하지 않겠습니다그것은 경제적 불평등과 계급투쟁을 흐리게 만드는 정치적 평등이라는 부르주아적 허위를 폭로합니다이러한 개념은 프롤레타리아 해방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거치며 격심한 계급투쟁 이후에 성취되는 역사적 과정이라는 생각에 기초를 둡니다.

 

코뮤니스트 선언이 설명하고 있는 이 이론적 개념은 러시아 혁명에서 최초로 실현되었습니다이 두 사건 사이에 오랜 시간의 간극이 있었습니다그동안 자본주의 세계는 크게 발전했습니다맑스주의 운동은 사회민주주의 운동으로 하락했으며사소한 이익을 위해 개개의 노동자 집단과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협조하는 공동 활동의 영역을 만들었습니다똑같은 현상이 노동조합과 사회주의당 속에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전체 노동자계급을 대변해야 하고 그 오랜 역사적 임무를 기억하는 맑스주의당 임무는 거의 완전히 망각하였습니다평화적이고 민주적인 길을 통해 사회가 발전한다는 환상을 불어넣기 위해 폭력적인 수단을 거부하고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무시하는맑스주의와 아무 상관이 없는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만들어졌습니다.

 

 

러시아 혁명은 폭력 투쟁과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도입하는 것의 필요성을 증명함으로써 감탄스러운 방식으로 맑스주의 이론을 실현하고 있습니다하지만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역사적 조건과 서유럽과 아메리카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한 조건은 다릅니다러시아의 상황은 아마도 1848년 독일의 상황과 비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거기에서는 두 개 혁명이 연달아 발발했는데 하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었고다른 하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었습니다.

 

러시아 혁명 전술 경험은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이미 오래전에 도입되었으며 혁명적 위기가 부르주아 민주주의 질서에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로 직접 이행하는 과정이 될 다른 나라에 전수될 수 없습니다.

 

 

러시아 혁명이 가진 맑스주의적 중요성은 바로 다음과 같은 사실에 있습니다혁명이 그 최종 단계(제헌의회 해산과 소비에트 권력 장악)에서 맑스주의적 기초 위에 확고히 자리 잡았으며모든 새로운 운동의 발전과 전쟁 하는 동안 수치스럽게도 완전히 실패한 사민주의자들과 마침내 결별한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발전을 위한 바탕을 마련한 것입니다.

 

서유럽에서 혁명 문제는 무엇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지반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합니다그리고 의회 기구를 통해서만 정치투쟁을 할 수 있다는 부르주아의 주장이 틀렸으며권력 장악을 위해 새로운 방식즉 혁명적인 직접 행동을 통해서 투쟁해야 한다는 것을 증명하기를 요구합니다.

 

당은 새로운 기술적 조직즉 새로운 역사적 형태를 요구합니다그것은 집행위원회가 제출한 당 역할에 대한 테제에 나와 있는 것처럼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위한 직접 투쟁의 시대(4번 테제)”에 탄생한 코뮤니스트당을 통해 실현되었습니다.

 

코뮤니즘 경제를 건설하고 통치 기구가 될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새로운 메커니즘을 창출하기 위해 가장 먼저 파괴해야만 하는 부르주아 메커니즘이 바로 의회입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대중들 속에 간접적 방어수단으로 기능합니다반면 국가 기구는 언제든 직접적인 폭력 수단을 쓸 준비가 되어있으며 프롤레타리아트를 합법적 민주주의의 지반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가 끝내 실패한다면 곧바로 그것을 실행에 옮길 것입니다.

 

따라서 부르주아의 이러한 책략을 폭로하고 대중에게 부르주아 의회주의의 모든 속임수를 보여주는 것은 지극히 중요한 일입니다.

 

세계대전 이전에도 사회주의당의 관행적 실천은 프롤레타리아트 대열에 반의회주의적인 반작용을 불러일으켰습니다그러한 반작용은 아나코 생디칼리즘으로 나타났는데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 활동은 경제투쟁 조직에 집중하기 위해 정치 활동 가치를 모조리 다 부정하고 그렇게 해서 선거와 의회 활동 이외 정치 활동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잘못된 관념을 퍼뜨렸습니다우리는 사회 민주주의적 환상만큼이나 이러한 관념에도 맞서 싸워야 합니다이 개념은 진정한 혁명적 방식에서 멀리 동떨어져 있으며 프롤레타리아트 해방투쟁을 잘못된 길로 이끕니다.

 

선전은 대단히 명확해야 합니다대중들은 명확하고 간결한 표현 방식을 원합니다.

 

맑스주의 원칙들로부터 우리는 민주주의적 질서가 오랫동안 발전해 온 나라들에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위한 선동은 선거와 부르주아 기관에서 보이콧을 확대하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선거 활동에 막대한 중요성을 부여하는 실천은 이중적인 위험이 있습니다한편으로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활동이라는 인상을 주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당의 모든 힘을 빨아들여 당의 다른 모든 부분을 마비시킵니다사민주의자들만 선거에 막대한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집행위원회가 제출한 테제에도 선거 캠페인에서 모든 선동 수단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15번 테제)고 나와 있습니다.

 

선거 활동을 수행하는 당 조직은 혁명에 필요한 합법적 혹은 비합법적 활동에 맞는 조직의 성격과 뚜렷이 다른 매우 특수한 기술적 성격을 발전시킵니다당은 유권자들을 준비하고 동원하는 것에만 관심을 쏟는 여러 선거위원회로 쪼개집니다만약 문제 당이 코뮤니스트 운동에 가담하고 있는 오래된 사회민주당이라면예전에 했던 것처럼 의회 활동을 수행하는 데 큰 위험이 있습니다우리는 그 증거를 수없이 가지고 있습니다.

 

앞서 발언자들이 제출하고 옹호한 테제에 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테제에는 역사적 상황을 서술한 서문이 붙어있습니다저는 서문의 앞부분1)에 대해서는 거의 전적으로 동의합니다그에 따르면 제인터내셔널은 선동비판선전하기 위해 의회 제도를 활용했습니다그 뒤 제인터내셔널에서 의회주의의 해악적 영향이 나타났습니다그것은 개량주의와 계급협조를 가져왔습니다서문은 이로부터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이 의회를 내부에서 파괴하기 위한 의회 전술로 돌아가야 한다는 결론을 끌어냅니다그러나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이 제인터내셔널과 같은 원칙을 받아들이려면 당시와 완전히 다른 역사적 조건을 고려해야 합니다그래서 완전히 다른 활동즉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협력하지 않는 활동 방식을 개발해야 합니다.

 

서문 다음 테제의 첫 번째 부분 역시 제가 지지하는 생각과 전혀 모순되지 않습니다차이는 오로지 대중 행동을 위해 선거 캠페인과 의회 연단을 활용하는 문제에서 시작됩니다하지만 언론결사의 자유 등과 같은 방식으로 그것들을 활용할 수는 없습니다언론결사의 자유 등을 활용하는 것은 행동 방식 문제입니다선거 캠페인과 의회 연단을 활용하는 것은 부르주아 기관 문제입니다부르주아 기관은 노동자 소비에트 같은 프롤레타리아 기관으로 대체되어야 합니다우리는 혁명 이후에 언론선전 등의 활용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하지만 우리는 무엇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기구를 분쇄하고 그 자리에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세우기 위해 투쟁하고 있습니다우리는 운동 지도자들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언론선전 등의 활용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도 않습니다지도자들을 없애는 것은 전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지도자들을 없애기 위해 의회주의를 거부한다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으며전쟁이 시작됐을 때부터 아나키스트들에게 그렇게 이야기해 왔습니다우리는 늘 선전가와 문필가 등의 지도자들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혁명에서 노동자계급 활동을 이끄는 중앙집권적 당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당연히 이 당도 지도자들이 필요합니다하지만 당 역할과 지도자 역할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의 그것과 완전히 다릅니다당은 가장 큰 희생을 요구하는 가장 위험한 작업을 수행한다는 의미에서 프롤레타리아트 활동을 지도합니다당 지도자들은 승리한 혁명 지도자로 등장할 수도 있지만패배할 때는 적들의 탄압에 가장 먼저 굴러떨어지는 사람들입니다그들 지위는 의회 지도자들 지위와 매우 다릅니다의회 지도자들은 부르주아 사회에서 가장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의회 연단에서도 선전을 수행할 수 있다.”라고들 합니다저는 거기에 약간의 유치한 주장으로 답하고 싶습니다의회 연단에서 발언은 언론에 실리게 됩니다그 언론이 부르주아 신문이라면 모든 것이 왜곡될 것입니다그 언론이 우리 편 신문이라면 나중에 어차피 인쇄되어 나올 내용을 연단에서 발언하는 것은 시간 낭비입니다.

 

발언자들이 인용한 증거는 우리가 제출하는 테제에 손상을 입히지 못할 것입니다리프크네히트는 당시 그런 활동이 의회제도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권력을 비판하는 문제였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가 의회 활동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을 때 제국의회에서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배신이라는 커다란 덩어리 전체보다 리프크네히트와 회글룬트그리고 그 외몇 가지 사례들이 가진 무게를 저울질해본다면혁명적 의회주의에 아주 호의적일 수 없는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두마케렌스키 정부의 예비의회제헌의회에서 볼셰비키의 의회 활동은 우리가 의회 전술을 단념하라고 제안하는 상황들과 완전히 다른 상황에서 행해진 활동입니다굳이 러시아 혁명 발전과 다른 부르주아 국가들에서의 혁명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에 관한 이야기를 되풀이하진 않겠습니다.

 

저는 부르주아 지방 정부 선거를 활용2) 해야 한다는 생각도 지지하지 않습니다하지만 저는 매우 중요한 문제를 입 다물고 넘길 수 없습니다저는 코뮤니스트 혁명의 선전 선동을 위해 선거 캠페인을 활용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하지만 우리가 대중에게 부르주아 선거에 대한 보이콧을 강력하게 설파한다면이러한 선동은 더욱더 효율적일 것입니다.

 

더구나 코뮤니스트들이 의회 내에서 수행할 수 있는 논쟁 활동이 무엇으로 이루어질지 예측하는 것 역시 불가능합니다보고자는 우리에게 부르주아 의회에서 코뮤니스트들의 활동에 관한 규칙 초안을 제출했습니다그것은 말하자면 가장 순수한 이상입니다그것은 의회제도 원리를 부정하는 의회 활동을 결코 발전시키지 못할 것이며 의회 규칙의 경계를 넘어서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 레닌 동지가 좌익 공산주의에 대해 소책자를 쓰면서 인용한 주장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하겠습니다.

 

저는 우리 반()의회주의 경향을 받아들이는 것과 노동조합에서 철수를 요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썩었더라도 노동조합은 여전히 노동자들에게 주요한 환경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사민주의자들이 지배하는 노조에서 철수하는 것은 노조와 다른 혁명적인 경제투쟁 조직을 결성하고자 하는 생디칼리스트들의 관점에 동조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그들 주장은 우리 반의회주의가 근거하고 있는 주장과 아무 상관 없는 오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테제는 의회 문제가 코뮤니스트 혁명에서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다고 합니다그러나 노조 문제와는 사정이 다릅니다.

 

저는 의회 활동에 대한 반대를 기초로개별 동지들이나 코뮤니스트당에 대한 최종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매우 흥미로운 저작에서 레닌 동지는 코뮤니스트 전술이란 부르주아 세계 상황에 대한 매우 상세한 분석을 토대로 해서 매우 광범위한 활동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묘사했습니다레닌 동지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그런 분석을 할 때 러시아 혁명의 경험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레닌 동지 역시 여러 나라 간의 차이를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저는 여기서 그런 방식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진 않겠습니다.

 

저는 단지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 맑스주의 운동이 러시아 혁명에서 적용된 전술보다 더욱 직접적인 전술을 요구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을 뿐입니다.

 

레닌 동지는 자신의 슬로건이 우리에게 너무 어렵게 보이기 때문에반의회주의 전술이 가장 손쉬운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의회에서 코뮤니스트 활동을 회피하려고 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는 과제가 매우 거대하고 어려운 과제라는 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의회 활동 문제를 처리하고 나서 훨씬 중요한 다른 문제들에 대한 논의와 결정으로 넘어가게 된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아무 진보를 이루지 못할 것이며그 해결은 생각만큼 쉽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의회보다 더욱 중요한 영역에 코뮤니스트 운동의 주력을 기울이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떠한 난관 앞에서도 움츠러들지 않습니다우리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기회주의자들 역시 손쉬운 전술로 의회 활동을 선택했으며그런데도 그 활동에 필요한 일이 전혀 줄어들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가 내린 결론은 (제출된 테제를 채택해서테제를 따라 코뮤니스트 의회 활동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거대한 노고와 부단한 활동이 필요하게 될 거라는 사실입니다그러면 진정한 혁명 활동을 위한 힘과 자원은 거의 남아나지 않을 것입니다.

 

혁명 이후 자본주의에서 코뮤니즘으로 경제적 이행 과정에서 맞서 싸워야 할 그런 정치영역 단계들을 부르주아 세계 내에서 경험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착취자에서 피착취자로 권력 이전은 그 뒤로 대의제 기구 변화를 가져옵니다부르주아 의회주의는 소비에트 체제로 대체되어야 합니다혁명적인 직접 행동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계급투쟁을 은폐하는 민주주의라는 낡은 가면을 찢어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의회주의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며이 관점은 혁명적 맑스주의의 방법에 완전히 부합합니다.

 

저는 부하린 동지와 우리가 공유하는 관점으로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이 문제로 인해 맑스주의 운동이 분열해서는 안 되고 분열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이 코뮤니스트 의회주의를 창출할 것을 결정한다면 우리는 거기에 따를 것입니다우리는 이 계획이 성공할 거로 생각하지 않습니다하지만 우리는 그 활동을 가로막지 않을 것을 명확히 하겠습니다.

 

저는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다음 대회에서 의회 활동 결과를 논의할 필요 없이많은 나라에서 코뮤니스트 혁명의 승리를 점검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면 부하린 동지를 위해 바라노니다음 대회에서는 동지가 이번에 소개했던 것보다는 덜 암울한 코뮤니스트 의회주의의 상을 우리에게 제시할 수 있게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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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디가 동지의 테제 낭독

 

이탈리아 사회당 기권주의파를 대표하여 보르디가 동지가 작성한 의회주의에 대한 테제

 

1. 의회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에 고유한 정치적 대의제도의 형태이다의회제도와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해 혁명적 맑스주의 원칙에 따라 비판한 결과는국가 대의기구 선거에서 모든 사회계급의 모든 시민이 투표권을 부여받는다는 사실 때문에자본주의 국가 모든 정부 기관이 지배적인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는 위원회가 되는 것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대항하는 부르주아의 역사적인 투쟁 기관으로 자본주의 국가가 조직되는 것을 방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2. 코뮤니스트는 노동자계급이 국회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함으로써 권력을 획득할 가능성을 부정한다무장투쟁만이 노동자계급을 그 목표에 데려다줄 것이다코뮤니스트 경제 건설 출발점이 되는 프롤레타리아트 권력 장악은 민주주의 기구들을 폭력적으로 철저하게 파괴하고 프롤레타리아 권력 기구즉 노동자평의회로 그것들을 대체하는 것으로 나아간다이러한 방식으로 착취 계급의 모든 정치적 권리를 박탈하고프롤레타리아트 독재즉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계급적 대의기구를 가진 정부 체제를 세운다의회제도 폐지는 코뮤니스트 운동의 역사적 과제가 된다오히려 대의제 민주주의야말로 가장 먼저 타도해야 할 부르주아 사회 형태이다그것은 자본주의적 소유보다도관료적 국가 기구보다도 앞서 타도되어야 한다.

 

3. 지방정부 기관 역시 똑같이 타도해야 한다지방정부 기관을 이론적으로 국가 기관에 대립하는 것처럼 제기해서는 안 된다현실에서 지방정부 기관은 부르주아 국가 메커니즘과 똑같다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는 그것들 역시 파괴하고 지방 노동자대표 소비에트로 대체해야 한다.

 

 

4. 지금이 순간 정신적·물질적으로 혁명을 추진하기 위한 코뮤니스트 과제는 무엇보다도 낡은 사민주의 지도자들의 배신이 달콤하게 유포시킨 환상과 편견에서 프롤레타리아트를 해방하는 것이다민주주의 질서가 더 오랫동안 지배했고 대중 관습과 사고에 뿌리내린 나라들에서 이 과제는 특별히 중요하며당연히 혁명을 준비하는 문제 중에서 첫 번째 자리에 위치한다.

 

5.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권력 장악이라는 사상이 아직 까마득히 멀어서혁명을 직접 준비하고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실현하는 것이 아직 계급적 의제로 떠오르지 않는 시기에선거와 의회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선전과 선동비판에 큰 중요성을 부여할 수 있다다른 한편부르주아 혁명이 이제 막 시작하여 새로운 제도를 창출하고 있는 나라들에서코뮤니스트들이 아직 형성 단계에 있는 대의기구에 참가하는 것은 혁명과 프롤레타리아트 최종 승리에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오기 위한 사태의 전개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6. 세계혁명 종결과 그것이 부르주아 사회조직에 끼친 결과즉 노동자계급의 권력 장악이라는 사상을 처음으로 실현한 러시아 혁명과 사민주의 배신자들에 반대하여 건설한 새로운 인터내셔널과 더불어 시작한 현재의 역사적 시기에는 코뮤니즘의 혁명적 대의를 위해 의회 제도를 활용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선전 선명성을 위해서도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위한 최종 투쟁을 준비하기 위해서도코뮤니스트들은 노동자들이 선거를 보이콧하도록 선전할 필요성이 있다.

 

7. 프롤레타리아트 권력 장악이라는 혁명적 개념이 운동의 중심 목적으로 등장한 역사적 조건 아래에서는 당의 모든 정치적 활동은 바로 그 목적에 바쳐져야 한다적대적인 정당 사이 모든 충돌권력 장악을 위한 모든 투쟁이 선거 캠페인과 의회 토론즉 부르주아 민주주의 메커니즘 틀 안에서 펼쳐져야 한다고 믿게 만드는 거짓그 부르주아적 거짓과 단호히 절연할 필요가 있다노동자들에게 선거에 참여하라고 호소하고 그 속에서 노동자들이 부르주아 계급과 나란히 활동하는 전통적 방식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고서는착취자들과 프롤레타리아트의 대표자들이 의회라는 같은 지반 위에 등장하는 광경을 끝장내지 않고서는 이런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8. 낡은 사회주의당들의 극단화된 의회주의 실천은 선거 캠페인과 의회 활동이 정치 행동의 모든 것이라는 위험한 개념을 유포시켰다다른 한편 그런 배신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 혐오감은 정치 행동과 당 활동의 가치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생디칼리즘적이고 아나키스트적 경향에 비옥한 토양이 되고 있다따라서 코뮤니스트당 활동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와 노동자평의회에 직접 기초하지 않는다면그리고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완전히 단절하지 않는다면혁명적 맑스주의의 방법을 선전하는 데 크게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9. 선거 캠페인 및 그 결과에 부여하는 지나치게 큰 중요성당이 자신의 모든 능력인력언론재정을 상당 기간 거기에 쏟아붓는다는 사실은우선 집회에서 모든 연설과 이론적 선언에도 불구하고 선거야말로 코뮤니스트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중심 활동이라는 확신을 강화한다또한그로 인해 혁명적 활동의 합법·비합법적 요구와 완전히 모순되는 전문성을 당 조직에 부여함으로써 혁명을 조직하고 준비하는 모든 과제를 거의 완전히 포기하게 만든다.

 

10. 다수결에 의해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가입을 결정한 당에 선거 캠페인에 계속 참여하게 하는 것은 사민주의적 인자들을 걸러내는데 필요한 과정을 가로막는다그들과 단절하지 않고서는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은 그 역사적 역할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11. 의회와 기타 민주주의 기관에서 벌어지는 토론의 실제 성격은 반대당들이 비판에서 의회주의 원리에 반대하는 선전으로의회주의 제도 한계를 넘어서는 행동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다정확하게 같은 방식으로 선거 과정 공식 절차를 따르기를 거부할 경우 발언권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로지 그 제도 기본 원리라는 공통 무기를 사용하는 기술그 규칙의 미묘함을 이용하는 것에 의해서만 의회제도 내부 투쟁에서 성공할 수 있다그것은 선거 캠페인과 똑같이 점점 더 투표수와 의석을 얼마나 많이 획득하느냐에 따라 판단하게 될 것이다.

 

코뮤니스트당이 의회주의적 실천에 완전히 다른 성격을 부여하고자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은 시지프스의 노고처럼 힘만 허비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코뮤니스트 혁명 대의는 바로 착취자들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항하는 직접 행동을 요구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갈라처 지지 발언

 

지노비에프 생략

라덱 생략

지노비에프 생략

 

갈라처(영국)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역시 기회주의적인 길로 가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게 돼 유감입니다대중에게 반역 정신을 불어넣는 수단과 방법을 찾는 대신 여기 참석한 사람들은 의회 선거에 참여할 방법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믿을 수 없는 자들이 의회에 들어가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과 혁명의 노선에 따라 투쟁할 거로 생각하는 건 순진한 생각입니다.

 

영국에는 이에 대한 수 많은 예가 많습니다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선거에 합법적으로 참여하는 방법을 중심으로 생각합니다의회에 들어가면 연설로 선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흔히들 말합니다하지만 그 결과는 프롤레타리아트가 민주적 제도를 믿도록 길듭니다의회에 들어간 자들에게 선동을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전 세계 코뮤니스트당은 이제 의회 선거에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다른 할 일을 찾아야 합니다지금 중요한 것은 집행위원회의 지도력 아래 혁명적 수단과 방법전술을 연구하는 것입니다지금 동지들은 그 대신 관심을 이 목적에서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하고 있습니다영국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코뮤니스트당은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에 가입을 맹세했습니다하지만 그것은 유행에 불과합니다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지지한다고 밝히는 것도 똑같이 유행입니다.

 

우리가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까요사람들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위해 활동할 준비가 되어있을까요저는 아니라고 말합니다리프크네히트 동지는 분명 위대한 일을 했습니다하지만 그 역시 의회 밖 대중들 속에서 활동하는 한에서만 그랬습니다만약 리프크네히트 동지가 의회 안에서 발언만 했었다면맥도널드나 다른 많은 자처럼 아직 살아있었을 것입니다러시아 예에 관해 말하자면그것은 그 자체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하지만 그것을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러시아 혁명가들의 투쟁과 경험은 피와 눈물로 벼려진 것입니다러시아 두마에서 볼셰비키들 태도는 수년 간에 걸친 노동자 대중의 힘든 투쟁이 낳은 결과입니다모든 나라 인민들이 그런 것처럼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앞에도 이제 양자택일의 선택이 있습니다두 가지 전술이 있습니다하나는 갖가지 민주적 단계를 통해 인민들 속에 순종의식을 키우는 것입니다다른 것은 대중들 속에 혁명적 정신을 발전시키는 것입니다의원의 전형적인 예로 맥클린이 있습니다맥클린은 커다란 선거 집회에서 자기가 볼셰비키이며 의회를 뒤엎을 거라고 말했습니다의회에 들어간 뒤로 맥클린은 스스로 볼셰비키가 아니라고 선언하는 쁘띠부르주아 사회주의자가 되었습니다이제 우리 힘은 대중들 속에서 혁명적 투쟁을 날카롭게 만드는 데 사용하여야 합니다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은 지금 순종의 길이냐투쟁의 길이냐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샤블린 생략

 

5시 15분 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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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기즉 제인터내셔널의 시대에 의회주의에 대한 사회주의 정당 태도는 선동을 목적으로 부르주아 의회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었다의회 참여는 계급의식 발전의 관점에서즉 지배계급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 적대의식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고려되었다이러한 관계는 이론 영향이 아니라정치 발전 영향에 의해 변화하였다방해받지 않는 생산력 증대와 자본주의 착취 영역의 지속적인 확대자본주의그리고 이와 함께 의회제 국가들은 더욱 견고하고 더욱 번영하였다.

 

이로부터 부르주아 의회의 유기적인’ 입법 활동에 사회주의 정당의 의회 전술이 적응하게 되고다시 이로부터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개량을 위한 투쟁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었다그 결과 이른바 사회민주주의 최소강령이 지배적인 것이 되었고최대강령은 단지 머나먼 궁극목표를 향한 토론용 공식으로 바뀌고 말았다이러한 기초 위에서 의회주의적 출세주의타락그리고 노동자계급의 가장 기본적인 이익에 관한 공공연하거나 은밀한 배신이 자라났다.

 

 

의회주의에 대한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태도는 새로운 교의가 아니라 의회제도 자체 역할 변화에 의해서 결정된다지난시기의회는 자본주의 발전 도구로서 일정 정도 역사적으로 진보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그러나 오늘날 고삐 풀린 제국주의 조건 아래서 의회는 거짓말사기폭력그리고 소모적인 말장난을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제국주의적 참화약탈성폭력강도 그리고 파괴에 직면하여체계도 항구성도 방도도 없는 의회주의적 개량은 노동대중에게 실천적 의의를 완전히 상실하고 있다코뮤니스트당과 의회주의 -위원단 테제」 1새로운 시기와 새로운 의회주의 中 앞부분

 

2) 지방정부에서 코뮤니스트들이 다수를 점한다면, a) 부르주아 중앙권력에 대한 혁명적 반대파 역할을 수행하고, b) 빈곤 대중을 위한 사업(경제적 조치무장한 노동자 민병대 도입 혹은 도입 시도)을 위한 모든 것을 하며, c)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부르주아 국가권력이 만들어 놓은 진정으로 커다란 변화에 대한 한계를 지적하고, d) 이러한 기초 위에서 국가권력과 투쟁을 두려워하지 말고 가장 단호한 혁명적 선전을 발전시켜야 하며, e) 특정 조건으로는 지방 행정부를 지방 노동자평의회로 대체해야 한다그러므로 지방 행정부에서 코뮤니스트의 활동 전반은 자본주의 체제를 분쇄하는 일반적인 활동 일부가 되어야 한다코뮤니스트당과 의회주의 -위원단 테제」 13번 테제

 

 

[영문 출처https://www.marxists.org/

[한국어 출처사노신

[편역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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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교육에 대한 코뮤니스트 개념을 향하여

교육에 대한 코뮤니스트 개념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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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글(1)에서 우리가 지적했듯부르주아지에 있어서 교육의 중요성은 그것이 노동자에 필수 불가결한 것과는 매우 다른 본질적 이유 때문이다교육이란 국가 건설의 한 방법인 까닭에부르주아지는 그것을 항상 국가 이미지 형성(프레이밍)을 위한 도구로 간주했던 반면노동자계급에 있어서 교육은 언제나 자신들의 해방을 위한 필수요건이자 즉각적이고 보편적 필요의 일부로 여겼다.

 

 

소외의 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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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슈루즈베리(영국), 1,000명의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최초의 랭커스터 학교

 

자본주의가 발전 단계에 있던 시기에는 오로지 교회가 통제하는 학교만이 낡은 사회의 대들보로서 부르주아지에 등장할 수 있었다그들은 배타적으로 암기에 근거한 교육종교적인 이야기들과 미신들로 들쑤셔진 교육을 증진한 것에 대해 비판을 받았다그러나 학교에 과학을 도입하겠다는 미명하에 부르주아지의 대안 프로그램은 단지 내용에만 국한한 것이 아니었다그 목적은 비효율적인 전통 학교를 전복하는 데 있었다이는 교육 과정을 하나의 워크샵으로 간주하기 위함이었는데조직적인 기술적 향상은 제조업이 경험하기 시작한 것과 유사한 도약을 가져다줄 것이기 때문이었다목표는 교육의 과학을 발견하는 것이었다이는 교육 과정이 공학으로 기능하기 위함이었으며학교를 사회적 기계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루소는 새로운 과학이 되고자 했던 부르주아 교육적 담론의 첫 삽을 떴다그의 출발점에 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데혁명적이었던 것은진정한 자유란 지구에 묶여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이가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말하자면그는 노동력을 팔기 위해 자유로워야 하며따라서 본성에 가장 가까운 직업인 육체노동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아동을 낡은 중세 시대 동안의 반()본성적으로 세뇌되어 있는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하여그를 본성대로 재통합하는 것이 목적인데이는 새로운 자본주의 세계가 잉태한 본성을 아동이 독립적으로 배우도록 하는 것이다이 아동은 자신이 개인이라는 것을 배워야만 한다사회성을 개인에게 종속시키는 것이다.

 

이게 근거하여루소는 한 가지나 그 외의 방식으로 오늘날까지 강력하게 남게 될 훈련의 주제구호를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다 자연은 아동의 스승이 되어야만 한다실질적 경험과 직접적 관찰을 통해 학습해야만 한다고아동에게 있어서 무엇이 진리인지 아닌지에 관한 경험주의적 범주에 대한 설정은 자연과 부르주아지의 특별한 관계라기보다는 경험을 재생산하기 위한 기초이다.

 

그렇지만 물론... 부르주아지의 자명한 진리는 아동에게 결여되어 있다고 정의되는 특정한 상황에서만 명백할 뿐이다훈련의 목표는 학생 자신에게 전혀 분명하지 않은 것을 분명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근본에서 벗어날 수 없는-이런 모순을 둘러싼 담론들을페스탈로치(Pestalozzi)에서 피아제(Piaget)몬테소리(Montessori), 서머힐(Summerhill)...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살펴볼 것이다이를 전복하려는 노력 속에서 교육학이 발전했을 뿐만 아니라결국 같은 곳으로 귀결되는 아동심리학과 특수지식 및 전체적인 세부 분야들 역시 그랬다 성숙과 학습이 상업적인 삶으로 수렴된다는 다소 노골적인 생각그리고 그것은 노동자의 경우그들의 생애를 상품으로 환원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자 운동은 곧 보편적인 공교육 기저에 자리한 다층적인 덫을 간파하기 시작했다알다시피 맑스는 노동자계급 아동에 대한 교육을 국가에 넘기려는 모든 생각에 반대한다이후 수십 년 동안계급의 여러 주장이 매우 조직적으로 짜임새 있게 전개된다그리고 그것들과 함께 교육의 의미와 목적에 관한 기본적 의문에 응답할 필요성이 제기된다이후 교육이란 계급투쟁과 미래 사회 모두와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그것으로 향해야 한다는 사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말하자면 비()계급-분화 사회 내에서 등장할 새로운 관계들의 관점자본주의가 사회에 가하는 제약과 비참함에서 벗어난 노동을 통해 그러한 사회적 관계들을 자연과 더불어 전체로서 함께 한다는 관점이다시 말해 그들의 교육적 노력은 코뮤니스트 도덕성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이해하기 시작했다그러나 진실은 그 어느 것도 계급운동 자체가 사라진 곳 그 이상으로 전진할 수 없다는 점이다지식적 도약은 소비에트가 권력을 장악했던 러시아에서 아주 짧은 기간에만 일어날 수 있었다.

 

 

러시아 혁명기의 교육학적 이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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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비고츠키(Vigotski)와 그의 딸

 

세계혁명 기간 발생한 인간 행동 및 아동발달에 관한 진정한 지식의 분출은 자주 잊힌다지식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마법처럼 등장한다거나 몇 사람들의 천우신조를 통해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게다가 지식은 그것을 발전시킬 뿐만 아니라 필요에 따라 지식을 사용할 수단과 능력을 지닌 사회적 주체의 사회적 조건 및 필요에 응답한다이는 계급 간 권력의 상관관계가 항상 내포하는 사회적 관계들의 집합이며훗날 이데올로기에 의해 역사의 원동력으로 등장할 특별한 인물들을 낳는다.

 

소비에트에 의한 권력 장악은 모든 분야에서 완전히 새로운 필요의 세상을 가져왔다먹을거리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했는데모든 구성원을 먹여 살리는 것이 사회의 처음 목표였기 때문이다상징과 아이콘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했다보편적 메시지가 처음으로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이다물론 어린 시절 및 학습의 의미와 형태에 새로운 이해가 필요했다착취를 위한 교육이 더는 제공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전반적인 학습 장애를 이해하는 것그리고 그것들 안에서 아동들의 학습 장애를 이해하는 손상학이 보편적 욕구를 표현하는 의식적인 사회적 목표가 된 것이다.

 

이것이 비고츠키(Vigotski)의 연구에 등장하는 틀이다오늘날 손상학에 접근하는 것은 매력적이다다른 것들 사이에서 이것은 과학의 비()선형적이며 비()기계적인변증법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이는 증상이나 현상을 해결할 수 있기 위해 단일한 측면에 답하기를 원치 않는다손상학은 언제나 어느 정도는 사회적이라고 알려진 현실을 탈바꿈시킬 수 있는 지식을 생산하기를 원한다이러한 이유로 당시 소비에트에서 노동했던 과학자들은 부르주아지의 특성인 기계적인 개념을 극복할 필요가 있었다그리고 그것은 현재도 과학의 한계로 남아있다.

 

비고츠키에게아동의 학습 문제청각장애인을 가르치는 것초등교육그리고 교수법에 관한 연구는 같은 것이며인지 과정과 개인의 사회적 형성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는 같은 세트의 일부이다작업은 광범위하다언어의 역할과 의미사유아동의 상상력감수성예술적 표현과의 관계 등을 다룬다... 이들 작업은 인접 문제를 연구한 후 다양한 각도에서 반복적으로 같은 주제로 돌아간다그들은 부분과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전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신경학의학종의 진화 및 기호학이 아동과 그들의 필요에 따른 심리적 발달을 이해하기 위해 통합된다그들은 진정으로 과학적 지식을 발전시키기 시작한다.

 

사회가 세계의 반()혁명과 전쟁으로 후퇴했기 때문에그 이후의 모든 과학방법론적으로 후퇴한 모든 과학과의 비교는 엄청난 것이다. : , 60년대 미국의 행동 생물학자와 심리학자들이 침팬지의 수화를 실험했을 당시 (와슈Washoe〕 프로젝트님 침스키Nim Chimpsky 사례 등.), 그들의 방법론적 실험 특성으로 인한 제약으로 인해 공허하며 빈약한 고립된 인과관계로 귀결될 것이다.; 다시 말해이미 비고츠키는 파생적이고 제한적인 것으로 귀결되었으며사회적 요구에 적용될 가망은 거의 없었다.

 

혁명의 시기에 소비에트 팀이 이룬 모든 것을 한쪽의 글로 요약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그들의 저서를 직접 읽어 볼 것을 우리는 강력히 추천한다그러나 지금까지 발전해 온 교육학의 모든 토대를 무너뜨릴 아동 교육에 대한 어떤 근본적인 출발점을 강조할 수는 있겠다.

 

비고츠키와 그의 동료들은 인간은 노동을 통해 본성을 변화시키며그렇게 함으로써 본성 자체 역시 변화시킨다는 유물론적 관념을 주목한다동물행동 생물학에 대한 초기 연구를 통해그들은 유의미한 상징에 대한 창조 및 사용은 의식적 의지에 대한 종속적 행동의 능력에서 오는 인간의 특징적 기술이라고 결론 짓는다언어는 도구이며자본주의 형태를 벗어난 인간의 실질 노동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필수 요소이다우리를 통해서 사회화하고 변형시키는 도구이며우리는 사회적 맥락 안에서 변형된다.

 

이러한 상징의 사용은 사회적 논리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논리는 다른 사회적 동물의 그것과는 같지 않을 뿐 아니라특히 인간과도 부합하지 않는다이러한 종의 논리는 인간과 상호작용할 때에만 인간에게 적용될 뿐이다인간은 논리를 내면화하고심지어 혼자 있을 때도 그것에 따라 행동한다우리는 항상 우리 안에 사회적 총체를 지닌다환경에 대한 인간의 이해는 구두로든플라스틱이든아니면 다른 어떤 형태로든지 언어에 대한 사용 및 명령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우리들 각자의 언어 진화를 통한 인간 심리의 발달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욕구 및 변혁과도 필연적으로 연결된다사회 총체는 첫 생명의 순간부터 우리들 개개인의 모습을 형성한다.

 

첫 번째 교육학적 결론 아동발달에 대한 경험적 개념즉 언어영역은 전에 이미 이해된 것을 소통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라는 것은 오류다.

 

우리는인간 사회에 이질적인 어떤 것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개념에 상반된다진리를 지탱하는 순수한 자연에 상반되는 부패한 사회에 루소의 이분법-오늘날에도 여전히 깊게 뿌리박힌-은 산산조각 난다아동 발달은 성인의 경우처럼 개별적이지 않다그것은 중립적 자동장치로부터 처리된 감각 및 경험의 축적으로 축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아동 발달은특정 인간의 개입 및 능력에 의존한 그것의 이해에 있어 경험뿐 아니라 질적 변화가 일어난다아동을 자극 A에 노출시켰을 경우, B처럼 발달할지를 알려주는 선형 관계의 매트릭스는 없다단순히 조건화한다는 것 이상으로 서로가 상호작용하는 복잡한 관계들이다교육과정은 아동을 일정표에 넣기 위하는 것도보상에 관한 것도 아니다아동들에 대한 이해는 우리가 가르치고자 했던 것즉 그들이 이미 독립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앞서 구성된 문제들로부터 그들이 겨우 무엇을 배웠는가에 관해서 측정되어서는 안 된다우리는 아동이 도움을 받아 성취할 수 있는 것보기를 들어 숙달하는 과정그리고 그 상황에서 자신을 주장하도록 해주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아동 발달의 현재 상태를 결정하는 것은 이미 과거에 그들이 무엇을 습득했는가가 아니라미래의 관계그들이 성취할 수 있는 것과의 관계이다.

 

사회적 지식이 종의 역사에 종속된 것과 마찬가지로학습은 삶과 분리된 장이 아니며순간마다 마주칠 수 있는 미래와 분리된 것이 아니다.

 

 

인간교육학의 문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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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아이들에 둘러싸인 크루프스카야(Krupskaya)

 

당시 노동자들이 고려했던 것과 시도했던 것은 특정 계급 사회뿐만 아니라모든 계급 사회를 전복하는 것이었다사회로부터 인류 공동체로 이동하는 것이었다그리고 즉각적 가능성으로 제시된 그러한 미래는 이미 당대에 지식을 확장하고 있었다학습은 더는 공동체의 필요로부터 분리된기계적인 어떤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예견된 인간 노동의 중심이었다.

 

부르주아지는 개인주의적인 아동들이 자신을 다른 어떤 것보다 우위에 두도록 갈구하며대중에 반대하도록 만들려고 한다우리는 개인주의적인 것이 아닌 집단주의집단주의에 반대하는 것이 아닌그것을 강화하고 그것의 중요성을 증대시키는 다면적이고의식적이며신체가 건강한 아동으로 만들려고 한다. (N. 크루프스카야, “청년 교육”)

 

육체노동과 지식노동의 분리시골과 도시의 분리성별 분리에 대한 종식소비에트 권력그리고 그것을 전제로 한 계급의식의 거대한 발전은 진정한 인간 교육에 대한 사유를 가능케 했다여러 부가적 형태가 필요하지 않고아동들이 어떤 목적으로든 노동할 수 있도록 하는 일반화되고 방대한 형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려되었다학습이 의식적인 것이 되는 형태그들에게 다차원적 존재로 살아갈 능력을 부여하는 것 자체에 목적이 있는 형태 말이다.

 

그리고 자신을 속이도록 하지 않으며누구도 교육학적 지식의 공백을 제기하지 않는 형태 말이다극복한다는 것은 이상적 개념에서처럼 0부터의 시작을 위해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과거의 지식 역시심지어 시의적절하며 무해한 것 이상인 체제에 대한 개념적 경계를 떠나지 않은 동시대의 지식도문화적이고 물질적 유산의 부분이다프롤레타리아트가 잉태한 변화의 가능성이자현재 정권을 완전히 전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의 일부이다그것이 그들이 레오 톨스토이와 존 듀이의 작품에 가치를 두는 이유이다보기를 들어 소작농 아동들을 교육하는 자신의 경험담인 톨스토이의 작품은 아동들이 과제를 어떻게 함께 풀어나가는지 보여준다노동이 교육에 기여해야 하는 역할에 대한 존 듀이 학파 및 그의 관점은 아동들이 그들을 다차원으로 존재하도록 해 줄 지식과 기술을 습득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기초한다아동들은 공동체에 훌륭한 구성원이 될 것이다타인을 돕는 것이 학습의 기본적 부분이며거기에 속임수에 대한 개념은 없다시험도경쟁도 없기 때문이다인간 존재는 더는 그들 자신으로부터타인으로부터아니라면 자연으로부터 소외되지 않을 것이다.

 

내전이 야기한 비참한 상황에도 불구하고그것은 단순한 희망이 아니며빈곤의 끝에 그려진 미래의 당근이었다그것은 현재에 작동하는 미래였으며그 자신을 한계에 도전하도록 하는 미래였다볼셰비키가 과학기술 교육을 증진했을 당시그들은 아동들을 전문화된 노동자로 훈련시킬 순수 기술 교육을 염두에 두었던 것은 아니다사회주의의 문턱에 있었던 세계 사회에서러시아의 보루인 아동들은 생산을 의식적으로 지시하는 법을 학습할 필요가 있었다그것이 바로 그 새로운 기준이 그들을 생산에 최적화된 도구로 여기지 않은 이유이다반대로 그것은 그들이 보편적인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회적 도구를 생산하도록 훈련시키는 문제였다크루프스카야의 주장에서과학기술학교 설립 목적은아동들이 학업 종료 시 생산의 모든 조건 및 동시대 수준의 기술을 완전히 정확하게 이해해야 하며약간의 과학적 가르침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스탈린주의 반()혁명이 국가 자본주의를 확립하기 위해 한 첫 번째 일 중 하나가 전통적 교육그것의 가치와 상징으로 회귀하는 것이었다훈련은 다시 사람들을 도구로 준비 시켰다 다소간 국가가 통제하는 자본 축적의 경제인간의 욕구와 그들을 대표하는 계급인 의식적 프롤레타리아트를 또다시 정복했다교실은 다시 동료 국민들로 구성된 공장이 되었고노동자들이 착취를 극복하는 대신 인정하도록 준비시킨 교육 정권의 불길한 안개 속으로 다차원적 삶에 대한 생각은 다시 숨겨졌다.

 

2020. 11. 21

해방 저널(JOURNAL OF EMANCIPATION)

번역 :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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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학교에 대한 그들의 필요와 우리의 필요

https://en.communia.blog/their-and-our-need-for-school/

 

 

<원문 출처>

 https://en.communia.blog/towards-a-communist-conception-of-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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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적 봉쇄, 부르주아국가의 야만성을 드러내다.

국민적 봉쇄부르주아국가의 야만성을 드러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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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 대참사에 직면하게 된 세계 각국의 부르주아지는 인구의 절반 이상인 거의 40억에 달하는 국민을 격리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만약 자본주의 국가와 그들의 보건 시스템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창궐을 어떻게든 막을 능력이 한계에 달함으로써 필수적인 것이 된 것이라면부르주아지의 진정한 주된 관심사는 가능한 한 그들의 경제를 보호하는 것이고손해를 최소한으로 막고자 함이다이런 이유로가장 취약한 계층을 유지하고 보호한다는 핑계로 지배계급은 전 국민에게 바이러스를 퍼뜨리려는 진지한 고민을 해왔다나머지 인구의 사망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믿으면서그러나 바이러스의 전파는 통제 불능에 빠질 것이며세계 경제는 마비될 위험이 크다그래서 강대국은 봉쇄(lockdown) 전술을 택했는데말하자면 시행할만한 다른 보건 조치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중세의 관습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는데이는 바이러스 희생자들을 1/4로 줄이기 위해 고립소외격리한 것이었지만이번에는 전 지구적 규모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세계 인구에 있어서필수적 봉쇄는 그들의 열악한 생활 여건을 악화시켰을 뿐이다그들 대부분은 위험하고비좁고비위생적인 환경 속에서또 수백만 인구가 밀집해 있는 위험한 대도시에서 살아간다.

 

봉쇄의 결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임금을 받는 피착취계급이다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아시아와 같은 후진국의 경우수천만 노동자들의 삶의 조건은 이미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되었으며상황을 악화시킬 뿐이었다.

 

광범위한 고립사회적 상호작용을 규제한 것과밀한 가정이동과 여행을 제한한 것은 건강에그것도 특히 국민의 정신 건강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이런 조건하에 있는 피착취계급에 대한 격리로 인한 트라우마는 부르주아계급이 필요한 모든 물질적 풍요를 갖춘 넓은 주거시설에 살아온 것과 비교되지 않는다따라서 격리조치는 사회계급으로 나뉜 사회에 가증스럽고 소름 끼치는 불평등을 더욱 부각시켜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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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과 집단생활의 위험이 더욱 증가하고 있다.

 

부르주아지가 우리에게 믿도록 했던 것과는 정반대로인생의 역경에 직면했을 때 모두가 동등한 건 아니다봉쇄에 따른 결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자본주의 사회에서 프롤레타리아는 언제든지 이 부패한 체제가 양산한 비극에 과도하게 육체적인 대가를 치른다이들 피착취계급의 가장 취약한 이들혹은 자본주의의 시각에서 보기에 쓸모없어진’, 그리고 원치 않는’ 이들이 그것의 비인간성과 야만주의의 결과로 가장 먼저 고통받는 이들이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1912년 나이트 쉘터’(Night Shelter)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매해 수천만 명의 프롤레타리아들이 노동자계급 보통의 생활 여건에서 비극의 밤으로 추락한다그들은 침전물처럼 사회의 나락으로 침묵 속에 추락한다더는 한 방울도 나오지 않을 만큼 쥐어짜 낸 자본주의로 인해 닳아버린쓸모없어진 요소가 된 인간쓰레기는 쇠 빗자루로 쓸려나갔다.”

 

부패한 자본주의는 물질적 궁핍에 더해 계속하여 개개인을 주변화시키고원자화시켰다가족 관계는 파괴되었고정신적 고통을 겪는 이들과 노약자는 배제당했다... 이는 자유 기업의 이름으로 불행의 씨앗을 뿌린 것이다말하자면 노동할 의무살기 위해 착취당해야 하는 의무인 것이다.

 

맹목적 분노 속에서자본주의는 신성한 이윤의 제단에 피착취계급의 생명과 건강을 희생시킨다노동자계급 내의 모든 인간적 유대를 파괴하고특히 고독에 대한 감정적 유대를 파괴한다이들 지배계급이 우리들 사이에 있는 취약한 이들과 노인누구보다도 특권이 없는 아이들을 보호하겠다고 위선 떨었을 때그들은 파렴치하게도 거짓을 말했다우리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을 제공하는 복지가 수명이 다해 와해되어 가고 있는 것을그리고 이에 대한 정책의 결과를 보고 있다이는 거대한 이데올로기적 캠페인으로 숨겨지고 말 것이다그들은 대유행 동안 국가가 가장 취약한 이들을 돌볼 것이라고 우리를 믿게끔 할 것이다사실 국가 자신은 전염병이 야기한 모든 사회적이고정신적이며육체적인 고통에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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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로부터 버려진 노인들

 

전 세계적으로 요양 병원의 휴먼드라마는 끝이 없다처음에는 부르주아 국가에 의해 침묵 속에 가려져 있었지만추악하게 드러나는 현실을 더는 숨길 수 없게 되자 그것은 뉴스가 되었다프랑스 가정의 공식 사망자 수는 이미 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기록되었다스페인에서는 지난 5월 1만 6천 명에 이르는 사망자가 기록됐는데수백 구의 시체들이 수일간 버려져 침대에 뉜 상태로시설에서 발견되었다비슷한 극단적 사건들은 다른 많은 국가에서도 벌어졌다자본주의에 있어서 노인들이 먹여 살려야 하는 넘쳐나는 입에 지나지 않게 되자사회로부터 그들을 격리하여 죽음을 기다리게 하는 것이 얼마나 최선이었는지를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이는 운명에 맡겨진 채 자신들의 가정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한 모든 다른 이들을 간과하라고 한 것이 아니다요양 중인 노인들을 바이러스로부터 보호해줄 적절한 지원의 부족은봉사자들의 부족까지 더해져 너무도 분명한 냉소와 뻔뻔한 태만 속에서 부르주아지가 책임져야 할 사실상 대참사를 양산한 것이다.

 

이 최후의 시설의 이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프랑스에서만 70만이다.), 극도로 취약하며 적절한 보호도 없이 바이러스의 먹잇감이 되기 쉽다.

 

그렇기에 격리를 나머지 국민들에게 적용하면서까지 노인들을 그들의 방에 감금하고고립시키고격리하는 것이 필요했던 것이다그들의 가족친척또는 바깥에 살고 있는 여전히 건강한 친구들과 모든 외부와의 접촉이 금지된 것이다보육원구치소난민시설이주민수용시설소년원은퇴자의 집과 같은 곳들은 감염이 확산하기 쉬운 용광로인데특히 이들은 이미 나이나 질병으로부터 취약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휴먼드라마의 풍경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대유행으로 인한 피해에 더해피해자로 불리는 이들은 그들의 선을 위해’ 고립되어 암울하게 절망하도록 강제하고사랑하는 이들과의 모든 연결고리를 차단하고, ‘노년기 우울증의 피해자로 진단받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가 그들에게 주는 것이라고는 뼈저린 상실감과 고독을 느끼게 할 뿐이다이는 삶에 흥미를 완전히 잃게 만들고 심지어는 정체성마저 잃어버리게 한다대유행으로 사망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그들 또한 탄식과 고독으로 자살하게 할 뿐인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맥락은 가족에게 사회의 야만성을 목도하도록 하는 것이다그들이 사랑하는 이들에게 안녕과 도움을 주기 위한 시도들이 벌금형에 처해 졌다아버지의 임종을 곁에서 지키기 위해 금지 규정을 어길 용기를 내어 약 300km에 달하는 거리를 이동한 사람혹은 요양 시설에 거주 중인 남편에게 인사를 하려고 바로 건너편 옆집에서 요양원으로 건너온 여성의 경우다.

 

보다시피격리조치 기간 동안 국가는 사회적 격리를 아주 강력하게 강화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여기에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사회적 연대에 대한 고려는 거의 없었고특히 가장 취약한 이들을 위한 것이 그랬다.

 

반대로 모두의 욕구를 충족시키겠다고 주장함으로써취약한 이들의 건강을 보호하는 데 관심을 두는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행동함으로써국가는 사회에 악취가 진동하는 통제와 과도한 강제 정책을 펼쳤다금지를 넘어그다음에는 강제적 규제를 시행했다경찰은 사람들이 장례식에 접근하는 것을 거부했다이러한 사회에서는 죽음 역시 다른 어떤 것과 마찬가지로 상품이기 때문에대유행의 시기에 그것은 매우 이윤이 남는 것이다프랑스의 장례 업체는 파리 근교의 거대 도매식품시장인 Halles de Rungis 앞에서 15분 동안 가족 모임을 하는데 250유로를 청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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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자본주의 봉쇄의 또 다른 희생양

 

학생은 상황이 위태로울 것으로 지목되는 이들이다이들 미래의 프롤레타리아 상당수는 별난 직업에서 살아남기 위해 학업을 수행한다가정으로부터 떨어져 살며 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예리한 고독을 경험할 것이다그러나 무엇보다도 미래가 어떨지 보장할 수 없는 심오한 불안을 경험할 것이다봉쇄는 이러한 생활상을 악화시켜온 것일 뿐이다수년 동안 학생의 자살이 증가해왔다보기를 들어 몇 달 전 좌절한 프랑스의 한 학생이 리옹 대학교의 학생회관(Centre Régional des Œuvres Universitaires et Scolaires) 밖에서 분신자살을 시도했다별난 직업의 감소전반적 폐쇄가족 방문에 대한 물질적이고 물리적인 제한이 현실이 되었다.

 

심리치료센터로 걸려오는 절망에 찬 전화가 그토록 끊임없던 적이 없었다그리고 이는 최강 선진국(미국캐나나영국프랑스 등)을 포함한 몇몇 국가에서만 증가할 것이다이들 국가는 학생 보건에 대한 권위가 실효성이 없어졌고수많은 대학이 새 학기를 재개하지 않기로 했으며강의실 수업을 온라인 과정이나 화상회의로 대체하기로 했다이제 학생들은 반강제적으로 직접적인 물리적 접촉이 전무한 채 컴퓨터를 뒤에 두고 온종일 작은 방 안에 고립되어 남겨질 것이다이는 사회적 고립 및 사회 개별 구성원에 대한 분자화로의 또 다른 이행이다.

 

결국 부르주아 국가가 사회에서 수많은 노인들을 효과적으로 제거했지만미래의 프롤레타리아를 다루는 데는 실패한 것이다그들 다수는 실직이라는 암담한 미래에 직면해 있으며경제 위기가 가속화되고 악화할수록 훨씬 더 위태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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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아이들을 상대로 한 폭력의 증가

 

몇 주아니 몇 개월 사이 미디어는 우리에게 너무도 많은 압력을 행사해 왔다. ‘가정에 머무르시오책임감 있는 행동을 하시오자신과 타인을 보호하시오!’ 물론 이러한 지침을 따르지 않은 이들은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받았고그것이 아니라면 건강과 생명을 위태롭게 한 것이었다결국 모범 시민으로 보이지 않는 이 모든 이들이 바이러스를 전파했다고 비난받는 것이다.

 

사실 봉쇄는 고집스러우리만치 잘 지켜졌다국민 대부분은 다른 선택이 없다는 것을 인지했고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방어벽을 치는 것이 필요했다그러나 봉쇄가 삶 다른 모든 영역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에 관한 측면에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동등한 권리에 대한 환상을 퍼뜨린 것이다지배계급은 대다수의 거대한 노동자계급그것도 가장 취약한 이들과 실직한 이들의 삶인 가난과 열악한 주거환경을 모른 척한다전 가족이 밤낮으로 비좁고 갑갑한 방에서 살아야 한다또다시 이윤 및 시장 권력이 주택의 품질 전반을 지배하는 것이다.

 

만약 어린아이들과 여성들에 대한 폭력이 불행하게도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면이러한 봉쇄 환경에서 (폭력은심각하게 증가할 것이다국가의 관심은 오직 경제를 구하는 것이기 때문에삶이 두려워 겁에 질린 사람들에게 긴급 번호를 누르라고 제안하는 사회 복지 외에는 그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거의 없다사람들은 폭력의 조류에 대처할 능력이 없다.

 

결과적으로 전 세계의 가정 폭력이 급소도로 확산하였는데프랑스에서는 경찰 신고가 48% 증가하여 (가정폭력은) 30% 증가했다유럽의 응급 구조대 호출은 60% 증가했다튀니지의 여성에 대한 폭행은 다섯 배 증가했다인도의 가정폭력 사건 수치는 곱절 이었다브라질에서 가정 폭력으로 보고된 사건은 40에서 50% 증가했다멕시코의 폭력 사건 신고는 방역 기간 동안 60% 증가했으며여기에 200건의 여성 살해 사건이 추가되었다페루에서는 900여 명의 여성들이 실종된 것으로 보고되었다.

 

그런데도 부르주아지에 이들 인재(人災)는 종이에 적힌 숫자혹은 수치에 지나지 않는다그리고 그들은 너무도 빠르게 그것을 망각한다건강관리복지를 삭감한 지 수십 년 이래어린이 보호폭력으로부터의 여성 보호취약자라든지 심각한 장애를 지닌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 복지 모든 영역에 충분한 예산을 들이지 않았다.

 

실질적 고통의 규모가 얼마나 클 것인가하루의 끝에 숨겨진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이 얼마나 클 것인가봉쇄와 격리와 같은 상황으로 인하여 쌓여 온 고통과 우울그리고 자살 시도 사례가 얼마나 많겠는가?

 

심각한 봉쇄 조치와 사회활동에 대한 제약은 국민의 몫이었다. ‘경제를 지키기’ 위해 감염될 위기를 안고 그들의 동료들과 함께 가칭 바이러스 총알받이가 되어 일터로 끌려나간 노동자들은 자본주의의 비인간적이고 추상적인 사회적 관계의 본질을 강조해왔다.

 

바이러스가 몇몇 대륙으로 지속해서 확산하고재확산 국면에 접어든 유럽의 몇몇 국가에서 상당한 호전을 보여주자미디어는 젊은이들을 상대로 오명을 씌우기 시작했다그들을 노인과 일반 국민에게 무책임하다 했다몇 주간의 격리가 지나자 그들이 대규모로 무리지어 모였기 때문이다이는 세대 간에 이데올로기적인 분열 이상을 일으키려는 목적이다물론 모든 예방 조치는 받아들여져야 하겠지만이들 모임은 사회적 연대에 대한 갈증과 몇 달간의 고독과 심리적 고립 이후 가족과 친구친척들과 만나고 싶은 갈망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사회화된 존재의 필수적 욕구인간 종()으로서의 그것을 표출할 뿐이다유럽에서 그들을 바이러스 급속 확산의 새로운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미디어가 몇 주 동안 해온 것과 마찬가지로부르주아 사회의 잔인성과 비인간성 그 이상을 증명하는 것이다.

 

위기의 시기자본주의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나다.

 

부르주아지는 자신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사회모두에게 자리가 주어지고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의 열쇠를 쥔 계급으로 보이기를 바란다하지만 이 엄청난 규모의 건강경제사회적 위기가 강타하자장막은 걷히고자본주의 착취의 뻔뻔한 끔찍한 모습이 등장 한다삶이 주목받을 가치가 있는 상품이 되는 체제그것이 이윤이 될 것 같고너무 값나가지 않는 조건에서 인정받는 체제경제 위기로 이들 사회는 혼돈과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극도의 비인간성의 나락으로 타락하고점차 무책임하며 생명까지 위협하는 정책들이 삶 자체에 적용된다이런 거짓말쟁이 계급언론그리고 이데올로기를 쏟아내는 다른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미래의 세계는 더는 이전의 세계와 같지 않을 것이다.

 

미래에는 더 나은 보건 서비스가 있을 것이다’, ‘마스크가 있고 실험을 할 것이다’, ‘세계는 더욱 단결될 것이다’, ‘요양원의 노인들을 돌볼 것이다’, ‘고독은 끝날 것이다’,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등을 오늘의 우리는 믿어 버린다이 위선적이고 장황한 이야기들은 이번이 정말 마지막!’일 것이라거나 다시는 없을!’ 것이라며 부르주아지가 가슴에 손을 얹고 맹세했던 제1차 세계대전 당시만큼이나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광범위한 야만주의의 갱신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이 바짝 뒤쫓아 왔다그러므로 이후의 세계가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리라는 말은 진실이다세계는 훨씬 더 악화될 것이다부르주아지의 약속은 믿기 원하는 이들에게만 확신을 줄뿐이다하지만 부르주아지가 사회에 잉태시킨 고통 받고 있는 세계악몽의 세계에 대해 프롤레타리아계급은 더 이상의 어떤 환상도 가질 수 없다.

 

 

2020년 5월 2

(Sam)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옮긴이 지나

 

<원문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6917/population-lockdown-bourgeois-state-shows-its-brut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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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7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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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7주기 
 
 
 
세월호 참사 책임자들의 공소시효는 그날로부터 7년 후인 오는 16일 종료될 예정이었으나 1년 이상 연장됐다. '임경빈군 구조 방기'를 포함해 유족들과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가 제기한 총 17건의 의혹은 대부분 '무죄'와 '혐의없음'이라는 결론만 나왔다.

 

 
세월호 상설특검’이 6개월 표류 끝에 겨우 첫발을 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힘이 특검 후보추천위원 2명을 추천하겠다고 밝히면서다. 여야는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세월호 참사 증거자료 조작·편집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요청안’을 통과시켰지만, 특검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특검 후보 추천·임명에 여야 합의가 필요한 데다 '부르주아 국회'의 세월호 참사 관심도도 떨어져 특검 진행 과정은 난관이 예상된다.

 

 
지난 3월 25일 '부르주아 대법원'은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 집회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전 공동운영위원장 김혜진·박래군 활동가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김혜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과 사회봉사 명령 120시간, 박래군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으로 중형이다.

 

 
 
여전히 진상을 규명하지 못하는, 아니 의지조차 없는 '국가에 책임'이 있습니다. 
 
 
[정말 이제 세월호 진상규명을 외치면 안 되는 건가요. 수사 외압과 유가족 사찰에 대한 벌도 받지 않았는데…세월호를 '지겹다'고 말씀하실 수도 있겠죠. 그럼에도 다시 한번 말을 걸어 보고 싶습니다.]
지난 4월 10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광장에 간이 설치된 세월호 기억관. '태극기 부대' 회원들이 쏟아내는 욕설을 뒤로하고 기억관에 들어온 예은 아빠 유경근씨는 아무 말 없이 노란 리본을 다시 한 움큼 챙겨 쥐었다.

 

 
세월호 참사 7주기를 앞두고 제주도에 거주하는 세월호 생존자 15명이 국가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도 세월호 생존자를 지지하는 모임이란 이름으로 모인 이들은 지난 2015년 3월 마련된 4·16 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세월호 피해지원법)에 의거해 배·보상을 신청하고 일정한 금액을 '부르주아 국가'로부터 지급받은 바 있다. 국가배상 청구 소송에 나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제는 모든 사회적 재난과 참사에 대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물론, 끝까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다시는 희생과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동자민중이 직접 사회를 통제'하여 위험과 죽음의 자본주의 체제를 멈추어야 합니다. 
 
노동자민중이 만들고 모두가 누려야 할 미래는 야만과 (자본가) 독재가 아니라 안전하고 평등하고 민주적인 '코뮤니즘 세상'이어야 합니다.
 
 
2021년 4월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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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선거쇼가 끝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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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의 사기극에 끌려가지 않았지만, 노동자민중의 고단한 목요일, 그리고 미래

 

노동자민중의 삶과 정서를 철저히 이용했다가 곧 버리고 무시하는 또 하나의 부르주아 선거가 끝났다. 보궐선거는 끝이 아니라 대선의 전초전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부르주아 분파 간의 권력투쟁, "선거 서커스 판"이 열릴 것이다. 즉, 무대와 배우를 통제할 수 없는 관객들에게 더 크게 이용당하고 버려질 "대사기극"이 시작된 것이다.

부르주아 선거라는 측면에서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는 본질에서 같다. 오히려 경제적인 이해관계와 일상생활과 관련된 정치에서는 중앙정치보다 계급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계급은 없었다. 노동자민중의 민주주의도 없었다. 성평등도 없었다. 소수자, 약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도 막지 않았다. 오직 추악한 부르주아 정치만이 있었다.

자본주의 쇠퇴기 모든 부르주아 선거는 사기와 다름없다. 매일 세계 곳곳에서 수백 번 넘는 투쟁이 일어나고, 노동자들은 1년에만 수만 번의 투쟁을 벌인다. 하지만, 고작 몇 년에 한 번 치루는 선거만으로 노동자계급은 자신이 누려야 할 권력을 빼앗기고, 일상의 대부분을 지배받는다. 이것이 노동자들이 선거를 통해 노예가 되는 ‘민주적인 권리’의 실체다. 노동자들이 이러한 부르주아의 정치와 선거제도에 복종하는 한, 자본주의를 결코 넘어설 수 없다.

노동자계급의 정치는 투표소가 아니라 저항하고 투쟁하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노동자들이 살아 숨 쉬며 토론하고 행동하는 곳, 계급적으로 연대하고 단결하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노동자계급의 권력 장악과 완전한 정치참여는, 자본주의와 그 국가기구의 파괴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 비록 지금 소수이지만, 선거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다수가 사회를 통제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려는 노동자들이 우리의 희망이다. 

자신의 삶을 위선과 불평등의 부르주아 정치에 맡기지 않고, 투쟁을 통해 스스로 민주주의를 창조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평등하고 모두가 참여하는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노동자계급의 미래이다. 

 

- 코뮤니스트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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