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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노동자 시와 노래 (2012~2021)

코뮤니스트 노동자 

시와 노래 

(20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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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말한다. 현실은 확장되고 변하는 것이라고. 또 어떤 이들은 우려한다. 프롤레타리아트라는 깃발 아래 예술가들이 똘똘 뭉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고! 그렇다. 우리는 보고 있다. 세상이 변해 가는 것을. 하지만 그 속에서 지향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다.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중대한 도전이 가로놓여 있고 노동예술의 내용은 그 예술적 미학이나 형상화가 늘 낡은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날로 버텨내기 힘겨운 강퍅한 삶 속에서, 부르주아들이 만들어놓은 공고한 질서의 전복을 꿈꾸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밤은 별빛처럼 찬란하다. 사라지려야 사라질 수 없는 노래는 뜨겁다. 인류 문명과 문화예술이 낳은 생명이 노동이라면, 문학도 그 생명의 유기체로서 노동의 구성물질이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1%와 99%, 부자와 가난뱅이들로 전 세계 민중과 노동자들의 삶이 철저하게 분할된 오늘의 시대를 살면서, 다시 한번 선연한 프롤레타리아계급 문학의 복원을 꿈꾸며...

 

해고당한 노동자들이 스무 명이 넘게 죽어 나가도 세상은 노동자를 외면하고 있다. 문학의 눈이 분명하게 바라보아야 할 것은 바로 이 서글픈 역사이며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될 노동의 현실이다. 자본은 세계화되었고 자본의 지배는 총체적이다. 노동자들은 꼼짝달싹 없이 자본에 포위되었다. 지구촌 전체가 그들의 식민지다. 중세 이후, 너무나 잔학한 형벌이라고 해서 금지되었던 화형(火刑)을 이명박이 남일당에서 자행하지 않았던가? 기억하라, 우리도 똑같이 너희를 산 채로 불에 태우리라!"

 

('문학, 그것은 짓눌린 삶으로부터', 임성용, 「코뮤니스트」 창간호,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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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창간호,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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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창간호, 2012년

 

 

 

가슴이 저미도록

 

 

 

잊지 마라

사랑은 빗방울 같은 것

내가 이 땅 위에 한 방울 빗물로 떨어져

코뮤니스트의 이름으로 스며들기 위하여

오로지 그 하나의 신념을

사상과 실천으로 펄펄 담금질하기 위하여

나는 내 몸을 거침없이 달구는 풀무가 되고자 했나니

 

나는 이미 부박한 삶을 떠난 내 영혼이

가장 가까운 지척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음을 안다

사무치게 안타깝지만 조금은 빨리 돌아가

회호리바람 같은 청춘을 여기내려놓고

붉은 가슴 붉은 글씨에 새겨진 혁명의 씨앗을

내 육신의 마지막 핏줄 속으로 흘려보내고 간다

저주받은 노동의 대지에 뿌려진 피와 땀들이

세상의 모든 선과 악으로 부딪쳐 싸울 때

나는 가슴이 저미도록 못다한 내 노래를 부르리라

 

오늘내가 고요하게 잠든 노을빛으로 사라져도

내가 맞선 적들은 여전히 나를 밟고

욕창처럼 욱쑤시는 뼈마디에 투쟁의 노래 그치지 않고

나는 사랑하는 계급과 동지와 혁명의 숨통을 끌어안고

환한 웃음으로 한 걸음한 걸음씩 되돌아오리라

날마다 나는 다시 태어나 내 앞의 일생을 마저 살고자

나를 찾아 내가 내일낯선 사람처럼 걸어온다면

나는 얼마나 가슴이 저미도록 기쁠까

 

어머니시여아내와 아들과 누이들이여

벗들이여눈물겹게 보고픈 사람들이여

내 끈질기게 빛나던 눈동자와 열렬한 음성을 기억해다오

살다 살다 언젠가 나는

덧없이 잊혀지는 내가 못견디게 그리워지면

나는 터벅터벅 나를 찾아와

가슴이 저미도록 내 이름을 부리리라

마음이 애달픈 친구여

차마 나에게 작별을 고하려거든

너는 끝까지가슴이 저미도록 살다 죽어라!

 

 

詩 ┃ 임성용

코뮤니스트」 2, 2013

 

 

 

 

 

코뮤니스트의 운명

고 남궁원 동지의 3주기를 기억함

 

 

 

이름 없이

한 명의 코뮤니스트가 사라지는 것이

유독 슬픈 것만은 아니다

그의 생이 온통 프롤레타리아트의 곁이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도록 눅진한 날이었으나

그는 좀처럼 비 개인 맑은 하늘을 포기 하지 않았다

 

곁을 내어주고 난 그의 빈 몸에

비 개인 맑은 하늘처럼 채워지는 코뮤니즘의 길

 

남궁원 동지의 몸은 이미 저승으로 저물었으나

그가 남긴 웃음은

혁명정당 강령의 첫 번째 문장 같았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곁이 되고 그 웃음에 베어드는 일,

낮은 곳에서 솟구치는 외침은 죄다 그의 문장이었다

조용조용 들어주는 그의 문장문장들

토닥토닥 토닥여 주는 그의 문장문장들을 거치면

 

아물지 않는 것이 없고

견디지 못할 것이 없고

해내지 못할 일이 없다

 

이름 없이 계급투쟁을 살고

이름 없이 혁명을 살고

이름 없이 사멸하는 국가와 함께 사라지는 것은

코뮤니스트의 운명,

가장 빛나는 전망이다

가장 빛나는 전망

남궁원 동지여!

더 할 수 없는 명예여!

 

 

詩 ┃ 조성웅

코뮤니스트」 5, 2017

 

 

 

 

 

미루나무

 

 

미루나무는

비바람에 쓰러진 게 아니었다

가슴이 저미도록 사무친 것이 있다

 

어떤 통곡이 있다

어떤 기억이 있다

달그림자 드리워진 올가미가 있다

 

울며 울며 땅을 치더라는

울지도 못하고 하늘을 보더라는

목 놓아 부여잡던 손톱자국이 있다

 

검은 구멍 속으로

깊숙이 햇볕이 든다

시구통으로 질질 끌려나오는 사람이 있다

미루나무 혼자서 붉은 담벼락 언덕을 본다

 

피맺힌 것이 있다

잊혀진 것이 있다

무덤의 유골로도 남아 있지 않은 것

사라진 뼈에 사무친 것이 있다

 

외로운 목숨이 질 때

미루나무가 쓰러질 때

인간의 땅에 태어나 푸르른 미루나무가 있다

인간의 핏줄을 타고 흐르는 마지막 숨결이 있다

 

 

詩 ┃ 임성용

코뮤니스트」 7, 2018

 

 

 

 

 

동태

 

 

 

동태는 강자였다 콘크리트 바닥에 메다꽂아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동태를 다루려면 도끼 같은 칼이어야만 했다

아름드리나무 밑둥을 통째로 자른 도마여야 했다

실패하면 손가락 하나정도는 각오해야 했다

얼음 배긴 것들은 힘이 세다

물렁물렁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한때 명태였을지라도,

몰려다니지 않으면 살지 못하던 겁쟁이였더래도

뜬 눈 감지 못하는 동태가 된 지금은

다르다

길바닥에 놓여진 어머니의 삶을

단속반원이 걷어차는 순간

그 놈 머리통을 시원하게 후려갈긴 건

단연 동태였다.

 

 

詩 ┃ 박상화

코뮤니스트」 9, 2019

 

 

 

 

 

마트 계산대에서

 

 

무겁고 긴 발을 끌고 들어와

시간의 목을 쥐고 걷듯이 가게를 한 바퀴 돌고

마침내 천 원짜리 아이스티를 한개 갖다 놓고

꼭 다문 지갑을 열어

보풀이 인 고지서들을 주섬주섬 꺼내놓다가

지갑의 바닥엔 바닥뿐임을 확인하고는

다시 주워 담는 동안

여기저기 삐져나온 살들 숨쉬며

오래 묵은 번뇌를 흘리고

퉁퉁한 큰 손이 작은 호주머니를 몇 번 파더니

우물 밑처럼 깊은 곳에서 건져 올린 건

먼지단추돌멩이그리고 수많은 주름을 가진

지전 한 장!

 

다시 먼지들을 주머니 깊이 묻어두고

두 손을 받쳐 아이스티를 가슴에 품고

느릿느릿 무겁고 긴 발을 끌고 환한 세상으로

나가시는 기나 긴 그림자

 

 

詩 ┃ 박상화

코뮤니스트」 9, 2019

  

 

 

 

 

슬픈 대문짝

 

 

대문짝에 폐업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써 붙인 가게

그의 슬픔도 대문짝만했을 것이다

절을 한번 할 때마다 시를 한편씩 쓰는 마음으로

백팔 배를 하고,

천팔십 배를 하고,

삼천 배를 하며 하루하루를 살았을 것이다

참새처럼 종종 뛰며

똥 싸고 해탈할 시간도 없이

뱃속이 사리로 가득 찰 때까지

친구도 끊고

술도 끊고

죽기 살기로 매달렸을 것이다

희망과 놀람을 거쳐 오기와 끈기,

다음은 겸허와 근면이었으나,

허무에 와서 무릎이 꺾인 그는

열망이 그를 다치게 했다는 걸 깨달았다.

폐업을 써 붙이면서

누군가 다시 이 문을 열고

똥 싸고 해탈할 시간도 없이 살지 않기를

잠시 기도했지만

절 한 번에 시를 한편씩 쓰는 마음으로

매일 삼천 배를 하는 정성 가지고는

이 문짝 안에서 성공할 수 없으리라고

대문짝은

폐업을 덧바르면서

자꾸 얼굴이 두꺼워져 갔다.

 

 

詩 ┃ 박상화

코뮤니스트」 9, 2019

 

 

 

 

 

새벽 여명은

 

 

이 소박한 권리조차 엄두가 나지 않는 사람들은

빨간 날 새벽 여명 속으로 출근하고 있었다

정규직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새벽 출정처럼 한 무리였으나

새벽 여명은

그들이 서로 다른 업체에 소속된 비정규직 노동자란 걸

하청의 재하청인 사내들이 뼈마디 성한 곳 없이 서로 경쟁하고 있다는 걸

물량을 달성하기 위해 서로 짜증내고 윽박지르고 화내고 있다는 걸

명령에 익숙하고 명령이 당연하며 명령에서 벗어 날 생각이 조금도 없다는 걸

매일 매일이 위험한 작업다행히 죽지 않았음으로 용접사가 되고 배관사가 되었다는 걸

좀처럼 친절할 수 없었다는 걸

살피지 않는다

새벽 여명은

더 이상 붉지 않았다

 

 

詩 ┃ 조성웅

코뮤니스트」 10, 2019

 

 

 

 

 

개량주의자들에 대한 첫 번째 포고

-2012년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 부쳐

 

 

 

더 이상 날 동지라 부르지 마라

민주노총 소속 같은 조합원이라고 하더라도

투쟁 현장에서 몇 번 구호를 함께 외쳤다고 하더라도

나는 너와 뜻을 함께하는 동지가 아니다

 

1998민주노총 합법화를 위해

정리해고제변형근로제파견법을 합의해 준 너는

 

2004국회의원 선거 한다고 날 찾아 와

박일수 열사 투쟁을 접으라고 한 너는

민주노총 깨려고 아예 작정한 거냐

박일수 열사 투쟁을 접지 않으면 철수하겠다고 날 협박했던 너는

 

2005비정규직 악법 폐기를 위한 민주노총 총파업 투쟁을 기꺼이 폐기한 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항의를 양아치라 조롱하며

사회적 합의주의로 게걸음질 친 너는

 

2005년 류기혁 열사를 열사가 아니다라고 규정했던 너는

열사투쟁을 조직하라는 항의를 종파주의자들의 분열책동이라고 매도했던 너는

 

2007민주노조 깃발을 위로금 몇 푼으로 맞바꿔치기 한 합의서에 직권조인 한 너는

하청노동자들의 생사여탈권을 움켜쥐고

사람 목숨을 매매했던

대공장 정규직노동조합 간부였던 너는

노동자는 하나다란 슬로건(11노조 방침)을 외치며

기아비정규직노조 공장점거파업을 파괴했던 너는

2010모든 사내하청의 정규직화는 지금 당장 불가능하니

현안문제부터 풀자며 CTS점거파업 해제를 중재했던 너는

CTS점거파업 해제를 위해 금속노조 총파업을 유예시킨 너는

배고픔과 추위에 떠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김밥 가지고 장난친 너는

 

2012년 11월 11자본가들을 만나고 악수하고 반갑게 협력하는 것이

확고한 정치적 신념인 너는

2012년 11월 11밥 처먹고 허구한 날 교섭하고 중재하고 타협하고

굴종을 강요하는 것이 하는 일의 전부인 너는

2012년 11월 11고작 부르주아 야당이 돼 보겠다고

저요 … 저요 부르주아 선거제도에 목매달고 있는 너는

 

노동자계급이 아니다

자본가계급이 노동운동 내부로 파견한 자들,

자본가계급의 마름이다

내게 다가와 반갑게 웃으며 악수하려 하지 마라

난 너의 적이다

 

난 나의 권리를 대의하겠다고 나선 자들을 믿지 않는다

난 너와 바리케이드를 앞에 두고 마주 설 것이다

 

 

詩 ┃ 조성웅

코뮤니스트」 10, 2019

 

 

 

 

 

백만 촛불 마이너

- 2017노동악법 철폐노동3권 쟁취광화문 고공삭발단식농성을 기억하며

 

 

사람만이 결정적인 봄이다라고 안간힘으로 외쳐보지만 사람 추린다는 소리에 휴무도 없이 출근한 공장 담벼락 안엔 어떤 꽃소식도 없었다 툭하면 영구퇴출’ 입에 달고 사는 하청업체 안전팀장 새끼 아가리를 박살내지도 못했다

 

하청업체 안전팀장 새끼도 촛불을 들었고 박근혜 탄핵을 고대했지만 그는 여전히 내게 명령을 하고 나를 사람 취급하지 않았다 어떤 것도 결정할 수 없는 하청의 재하청인 내게 촛불은 봉기로 다가오지 않았다 어떤 것도 계획할 수 없는 하청의 재하청인 내게 촛불은 혁명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하청의 재하청인 내 삶은 하루하루가 폭력적이었다 자본주의가 요약되어 있었다

나는 외친다

차별은 폭력이다

위계는 폭력이다

억압은 폭력이다

명령은 폭력이다

조합주의는 폭력이다

가부장제는 폭력이다

민족주의는 폭력이다

개량주의는 폭력이다

관료주의는 폭력이다

군대는 폭력이다

의회제는 폭력이다

 

촛불은 흐르고 흘러서 흐름 자체가 되는 것머물러 무대만을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난 촛불의 흐름이 느려지기 시작하는 것이 위험해 보였다 촛불이 멈춘 곳화려한 조명의 대형스크린과 크레인으로 들어 올린 대형스피커로 꾸며진 무대가 내 눈엔 마치 명박산성 같았다 무대 앞에서 내 관심사였던 그대 표정을 결정적으로 잃어 버렸고 유독 주목하고 싶었던 그대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난 목소리를 잃고 그대를 데울 국도 밥도 나오지 않는 무대를 오래도록 바라봐야 했다 고착 당했다

 

물론 촛불은 하나의 구호가 아니고 여럿의 삶이었다 노빠도문빠도어용도노사협조주의자도조합주의자도민족주의자도김일성주의자도가부장주의자도개량주의자도관료주의자도중도주의자도여성주의자도생태주의자도자율주의자도코뮤니스트도 함께 참여하고 함께 행진했다 촛불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계급투쟁의 소용돌이었다 이질적이고 심지어 적대적인 정치적 경향들이 함께 지배질서를 잠시 정지시키는 압도적인 다수의 힘을 이뤄냈지만 국가 앞에서 갑자기 온순해졌다 국가에 대한 분노가 이토록 순종적 일 수도 있다니내겐 참 기형적으로 보였다

 

촛불의 흐름이 무대 앞에서 멈춰 섰을 때 나는 어떤 계획도어떤 결정도 할 수 없는 하청의 재하청인 사내로 죽도록 일만 하다 죽어갈 것이다 촛불의 흐름이 무대 앞에서 멈춰 섰을 때 노사협조주의자는 죽어라고 자본가계급에게 협력만을 할 것이고 조합주의자는 지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계급을 배반할 것이다 촛불의 흐름이 무대 앞에서 멈춰 섰을 때 성폭력 가해자들은 반성하지 않을 것이고 개량주의자들은 오늘도 투쟁 현장에 나타나서 선거가 다가오니 투쟁을 접자고 압력을 넣고 민주노총 깰 거냐고 협박하면서 계급화해의 정책들을 생산해낼 것이다 촛불의 흐름이 무대 앞에서 멈춰 섰을 때 민족주의자들은 계급투쟁을 파괴하며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사냥을 멈추지 않을 것이고 관료주의자들은 모든 비판을 진압하며 자신의 명령을 완성할 것이다 또한 촛불이 무대 앞에서 멈춰 섰을 때 나와 그대는 표정을 잃고 목소리도 잃게 될 것이며 나를 대신 해 내 운명을 결정하는 자들의 목소리만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될 것이다

 

거리로 내쫒긴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촛불이 됐고 가장 먼저 박근혜 퇴진투쟁을 외쳤지만 백만 촛불 내내 발언권조차 얻지 못했다 촛불그 한 뼘의 빛조차 서러웠지만 죽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모든 투쟁을 조직했던 투명한 맨몸들은 자립적이었다 촛불은 민주주의를 위해 한사코 계급투쟁을 배제하려 했지만 자립적인 몸짓들은 선거를 넘어 (계급투쟁으로” 나아갔다 투명한 맨몸의 사람들은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무대를 우선적으로 폐지했다 밀착되어 서로를 느끼고 그 몸의 언어를 경청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몸을 비우면서 그 곳에 배제하지 않는 힘평평하고 너른 마당을 키워내기 시작했다 스스로 결정하고 직접행동으로 비상했다 의회 없이도 운영되는 노동자민주주의였다 부재함으로 증명되는 삶은 끝났다 나와 그대의 이야기로 가득 채워지는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방법이 내가 생각하는 정치였다 모든 폭력에 맞선 가장 뛰어난 무장이었다

 

 

詩 ┃ 조성웅

코뮤니스트」 1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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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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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뮤니스트」 12, 2020

 

 

 

 

 

 

비극을 위하여

 

 

그는 나무라고 생각하며 서 있다

그는 가스라고 생각하며 숨 쉰다

그는 박스라고 생각하며 잘린다

그는 기어라고 생각하며 끼인다

그는 포장지라고 생각하며 불탄다

그는 모터라고 생각하며 돌아간다

그는 망치라고 생각하며 떨어진다

 

그는 남편이고 그녀는 아내다

그는 아들이고 그녀는 딸이다

그는 아버지고 그녀는 어머니다

그는 죽고 그가 아니면 동료들이 죽는다

 

이런저런 말을 하고 생각할 겨를이 없다

이것저것 요구하고 기다릴 필요가 없다

 

피 묻은 손이 피 묻은 기계를 붙잡는다

목숨은 멈출 수 있어도 공장은 멈출 수 없다

매일 반복되는 비극은 증거를 지우지 않는다

 

살아있는 눈에 마지막 노동의 흔적이 그어진다

나도 언젠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날이 있으리라

 

 

詩 ┃ 임성용

코뮤니스트」 12, 2020

 

 

 

 

 

비정규

 

 

아버지와 둘이 살았다

잠잘 때 조금만 움직이면

아버지 살에 닿았다

나는 벽에 붙어 잤다

 

아버지가 출근하니 물으시면

늘 오늘도 늦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골목을 쏘다니는 내내

뒤를 돌아봤다

 

아버지는 가양동 현장에서 일하셨다

오함마로 벽을 부수는 일 따위를 하셨다

세상에는 벽이 많았고

아버지는 쉴 틈이 없었다

 

아버지께서 당신의 귀가 시간을 여쭤본 이유는

날이 추워진 탓이었다 골목은

언젠가 막다른 길로 이어졌고

나는 아버지보다 늦어야 했으니까

아버지는 내가 얼마나 버는지 궁금해하셨다

 

배를 곯다 집에 들어가면

현관문을 보며 밥을 먹었다

어쩐 일이니 라고 물으시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외근이라고 말씀드리면 믿으실까

거짓말은 아니니까 나는 체하지 않도록

누런 밥알을 씻었다

 

그리고 저녁이 될 때까지 계속 걸었다

 

 

詩 ┃ 최지인

코뮤니스트」 12, 2020

 

 

 

 

 

나에게 돈은 목숨이다

고 김용균 노동자 추모시

 

 

컨베이어벨트 위 석탄으로 실려 가 본 적 있는가

 

분진을 나르며 굉음을 내는 컨베이어벨트는 죽음을 운반하지 낙탄이 됐다가 삽이 됐다가 나는 찰리채플린처럼 시커매져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지

 

가까이 왔다가 멀어지는 별처럼 아득해지는 눈

 

스물네 살의 눈빛은 영롱하지 아니 참혹하지 누가 날 멈추지 않는 기계 속으로 떠밀었나 나에게 감성팔이를 하지 말라 하청과 비정규직이란 말은 나도 안다

 

열심히 일한 것이 죄인가

 

부릅뜬 눈으로 벨트와 함께 돌다가 속도에 휘말려보라 숨통을 틀어막다가 숨이 헐떡거리다가 먼지의 뽀얀 사막 속에서 길을 잃어 보았는가

 

컵라면 하나가 나의 유일한 위안거리다

 

나의 일터는 목숨을 거는 전쟁터다 엄마가 말했지 용균아 오늘도 무사히 일하고 와야 해 컨베이어벨트는 엄마 말을 집어 삼켰지

 

컨베이어벨트는 키득키득 지금도 누군가의 목숨을 돌리고 있을 것이다

 

 

 

詩 ┃ 봉윤숙

코뮤니스트」 12, 2020

 

 

 

 

 

30

 

 

 

30년 전에 야간고 실습생 영국이는 나사를 깎았다.

아침까지 일을 해야 되는 건 영국이뿐이었다.

영국이는 태핑기에 장갑이 끼였다.

손가락이 잘린 채 그대로 죽은 듯이 엎드려 있었다.

 

30년 후에 특성화고 민호는 기계에 끼여 죽었다.

민호와 영국이는 혼자 작업을 했다.

30년이 가고 다시 30년이 와도 영국이는 엎드려 있다.

30년 후에 민호가 죽어서 엄마의 통곡 앞에 누워 있다.

 

 

 

 

詩 ┃ 임성용

코뮤니스트」 13, 2021

 

 

 

 

 

백종원 김밥

 

 

 

 

편의점 김밥을 고르는데 백종원김밥이 눈에 띄었다.

조리 모자에 위생복을 입고 내 김밥 드시라고 엄지척한다.

 

음식장사로 성공한 백종원은 유명 요리사다.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골목 식당 주인들에게 호통을 친다.

이래 가지고 장사가 되겠어?

나는 그 말이 이래 가지고 나처럼 성공하겠어,라는 말로 들렸다.

 

새벽치킨집 오토바이 한 대가 교차로에 들어섰다,

직진 신호가 바뀌면서 승용차 한 대가 달려왔다.

오토바이를 탄 청년이 날아올랐다.

통닭이 죽고 오토바이가 죽었다.

 

누구도 백종원이 될 수 없다.

 

 

 

詩 ┃ 임성용

코뮤니스트」 13, 2021

 

 

 

 

 

저녁이 있는 삶

 

 

얼마 전에 과로로 사망한 서른두 살의 택배 노동자는 하루에 14시간을 일하면서 1만 건의 배달 물품을 처리했다고 한다일요일만 쉰다 치고, 25일이면 1일 400건이다. 1시간에 28.5건이다그러니까 2분에 1개씩은 배달해야 되는 중노동이었다두 아이의 가장인 그는 그렇게 일하다 쓰러졌다다시는 일어나 눈을 뜨지 못했다.

 

 

詩 ┃ 임성용

코뮤니스트」 13, 2021

 

 

 

 

 

나의 노동으로

 

 

1899런던에선 자동차 두 대가 등장했다고 한다.

그 자동차는 쌍두마차만큼이나 훌륭하게 영국 여왕의 편지를 배달했다.

그로부터 120년이 지났다.

 

나의 노동으로 나무가 베어지고 있다.

나의 노동으로 땅이 파헤쳐지고 있다.

아름다운 나무의 꽃과 순결한 땅의 벌레들이

나의 노동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나의 노동으로 숲이 사라지고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고

나의 노동으로 강물은 막혀 댐이 완공되고 있다.

나의 노동으로 수백만 대의 자동차가 쏟아져 나오고

나의 노동으로 수천만 대의 냉장고가 넘쳐난다.

나의 노동으로 총탄과 포탄이 만들어지고

나의 노동으로 탱크와 전폭기가 사람들을 살육하고 있다.

나의 노동으로 나무와 석탄과 석유를

마지막 한 그루까지 마지막 한 삽까지 마지막 한 방울까지 없애고 있다.

나의 노동은 고향으로 영원히 돌아갈 수 없다.

노동과 생산은 너무 위험해졌다는 말이다.

노동의 권리는 발전의 가치와 다르다는 말이다.

나는 노동력을 판매하면서 노동을 소진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윤에 지배당한 생산은 파괴적 종말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쌍두마차가 지나가고 자동차가 지나가고

영국 여왕이 보낸 편지는 스마트폰으로 전송된다.

다시 120년 후에 나의 노동은 무엇으로 남아 찬란한 고통이 될까.

 

 

詩 ┃ 임성용

코뮤니스트」 1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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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3호] 詩 : 나의 노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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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동으로

 

 

1899런던에선 자동차 두 대가 등장했다고 한다.

그 자동차는 쌍두마차만큼이나 훌륭하게 영국 여왕의 편지를 배달했다.

그로부터 120년이 지났다.

 

나의 노동으로 나무가 베어지고 있다.

나의 노동으로 땅이 파헤쳐지고 있다.

아름다운 나무의 꽃과 순결한 땅의 벌레들이

나의 노동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나의 노동으로 숲이 사라지고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고

나의 노동으로 강물은 막혀 댐이 완공되고 있다.

나의 노동으로 수백만 대의 자동차가 쏟아져 나오고

나의 노동으로 수천만 대의 냉장고가 넘쳐난다.

나의 노동으로 총탄과 포탄이 만들어지고

나의 노동으로 탱크와 전폭기가 사람들을 살육하고 있다.

나의 노동으로 나무와 석탄과 석유를

마지막 한 그루까지 마지막 한 삽까지 마지막 한 방울까지 없애고 있다.

나의 노동은 고향으로 영원히 돌아갈 수 없다.

노동과 생산은 너무 위험해졌다는 말이다.

노동의 권리는 발전의 가치와 다르다는 말이다.

나는 노동력을 판매하면서 노동을 소진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윤에 지배당한 생산은 파괴적 종말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쌍두마차가 지나가고 자동차가 지나가고

영국 여왕이 보낸 편지는 스마트폰으로 전송된다.

다시 120년 후에 나의 노동은 무엇으로 남아 찬란한 고통이 될까.

 

詩 | 임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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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3호] 모든 부르주아 정치 세력의 부동산정책은 가격상승 대책

모든 부르주아 정치 세력의 부동산정책은 가격상승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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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문재인 정부부르주아 정당들의 부동산정책의 계급적 본질

 

2020년 이전까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지난 코뮤니스트」 12호에 언급했듯이 일관되게 자본의 이익을 추구하는 정책이었다한마디로 집값 억제가 아니라 집값 폭락을 막는 것이 핵심이었다말로는 집값 상승 억제를 주장했지만, 20여 차례에 걸친 부동산 대책은 주거 안정을 원하는 사람들의 기대와는 반대로 오히려 부동산 가격을 끝없이 수직 상승시켰다그 이후에도 지배계급의 이해관계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한국의 주택보급률은 이미 100%를 넘었고수도권도 100%에 가까운 상황인데도 아파트 공급 확대를 계속 추진했다아파트 공급 확대가 자본에 개발 이익을 보장하는 길만 열어주고 집값 억제와는 관련이 없다는 것은 이미 지나간 수많은 사례에서 드러났다더 정확하게는 말로는 집값 억제를 떠들 뿐 노골적으로 자본의 개발 이익을 보장하였다. 2017년 시행된 임대사업자 등록 활성화 방안을 통해 취득세양도소득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감면 등 온갖 세제 혜택과 더불어 임대사업자에게 집값의 80%까지 주택담보대출을 허용한 것이 대표적 보기이다그리고 4재보궐 선거 직전 터져 나온 LH 직원들의 개발정보를 이용한 부동산 투기 및 공기업중앙/지자체 부동산 관련 업무 공무원들의 투기 의혹과 정부 자체 조사과정은 부동산 시장에서 문재인 정부와 국가기관이 짜고 치는 거대한 노름판임을 스스로 입증했다.

 

게다가 부동산가격 폭락 방지책에는 국가와 문재인 정부뿐만 아니라 부르주아 정당들 역시 같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아파트 공급에 대한 표면적 방법은 다르게 보이지만 본질은 똑같다부르주아 정당들은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서로 간 약속이나 한 듯 규제 완화와 아파트 공급을 공약으로 내세웠다여기에는 자본의 개발 이익은 보장되어도 집 없는 노동자의 내 집 마련은 끼어들 틈조차 없다또한 개발을 통한 주택 공급 과정에서 투자 정보는 덤으로 관료와 정치가자본의 주머니로 들어간다그래서 부르주아 정당들의 집값 억제대책은 노동자에 대한 기만이고 사기이다물론 다른 정책과 국책사업도 마찬가지지만집값 폭락 방지에서도 이른바 진보 대 보수의 구분은 전혀 의미가 없다부동산 가격 폭락 방지라는 일치된 이해관계뿐이다부르주아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지배계급의 정당과 정책밖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청년과 노동자의 분노를 의식한 듯 최근 LH 사태에 대한 여러 가지 재발 방지대책과 주택공급 확대를 거론하고 있지만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토지를 비롯한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하는 자본주의 생산관계에서는 주택공급으로는 주거 안정의 토대를 마련할 수 없다주거 문제는 공급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자본이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토지와 건물주택을 사적으로 소유하고 매매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그렇기에 아무리 주택을 많이 공급해도 무주택자가 아닌 자본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다.

 

주거 안정화는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철폐와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통해 가능하다

 

부르주아 정부와 정당들의 집값 안정 대책은 자본주의적 소유관계를 전제로 하고 그 바탕 위에 있다이것은 토지와 주택에 대한 사적소유와 매매 및 임대를 통해 소유주가 이득을 취하는 것은 물론 부동산 가공을 통해 증가한 부가가치까지도 보장한다이러한 상황에서 부동산 관련 세금을 올리고 공급을 확대해도 더 비싼 집값의 형태로열악한 주거환경으로 노동자의 삶에 전가될 뿐이다그렇다고 일부에서 주장하는 토지 국유화가 부동산 문제의 근본 대책일까자본주의 생산관계는 그대로 둔 채 일부 생산수단만을 국유화하는 것은 코뮤니즘의 사회화와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자본의 총체로서 국가의 역할을 간과하는 주장이다.

 

'국유화'와 '사회화관련해서 사회주의자/코뮤니스트는 맑스엥겔스뿐 아니라 이후의 논쟁과 이론도 검토해야 한다칼 코르쉬1)는 모든 사회화가 국유화의 형태로 완성되지 않으며단순한 국유화로는 사회주의적 사회화로 인정될 수 없다고 주장했는데, “일시에 또는 단계적으로 완성된 사회적 생산과정으로부터의 사적소유의 완전한 철폐 없이는 생산수단의 사회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이에 반해 베른슈타인은 사회정책으로 현존 자본주의 사회의 사회화를 점진적이고 합법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하지만 역사적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래 소개하는 코르쉬의 이론은 매우 논쟁적이고전체 내용(소련의 경험과 규정 차이 포함)을 동의하지는 않지만국유화사회화주택도시 문제에 대한 코뮤니스트 전망을 밝히기 위해서는 국제코뮤니스트그룹(G.I.C.), 보르디가 등의 글과 함께 반드시 토론되어야 한다.

 

코뮤니즘에서 요구되는 사회화는 자본주의적 사적 경제를 사회주의적 공동체 경제로 대체하려는 목적을 가진 생산의 새로운 규칙을 의미한다사회화의 첫 번째 단계는 생산수단의 사회화와 이로 인하여 실현되는 노동의 해방이며두 번째 단계는 노동의 사회화이다코르쉬는 생산을 모든 기술적 생산과 연결된 인간들 사이의 사회적 생산관계로 파악한다사회화의 새로운 규칙의 대상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로서의 생산이다따라서 생산수단의 사회화는 자본주의적 경제 질서를 지배하는 자본과 노동의 적대성과 이러한 적대성에서 유래하는 사회적 계급구분계급지배 그리고 계급투쟁을 제거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사회주의적 공동소유는 국가 소유와 절대 같지 않기 때문이다우리에게는 국유화는 사회화의 하나의 형태에 불과하며사회화의 모든 형태는 단지 결과적으로 우리가 산업 자치라고 묘사하였던 사회적 생산관계의 규칙에 도달했을 때만우리에 의하여 진정한 사회주의적 사회화로 인정된다모든 집중화된 국유화에 반대하여 일반적으로 제기되는 이의는 산업 자치의 형태에서의 사회화에 대하여는 근거가 없다산업 자치 형태에서의 사회화는 관료적인 획일화와 경직화는 있을 수 없고개인적 활력은 절멸되지 않고오히려 더 성장할 것이다왜냐하면개인적 활력은 자본주의적 사적 경제에서는 수행될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았지만생산참여자 집단에서 자치로 인하여 그러한 개인적 활력을 수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확대되기 때문이다그리고 비경제성의 위험은 기껏해야 생산으로부터 사적 소유자를 배제한 결과 사적 이익이 가능한 최고의 경제적 생산을 위하여 지속적인 자극을 주는 것을 멈추는 것에서 발생한다.”2)

 

코르쉬의 주장처럼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철폐 없이는 생산수단의 사회화는 불가능하다마찬가지로 자본주의에서의 주택과 토지문제는 '사회주의적 주거권'과 연계하여 원칙을 정립해야 한다주택과 토지의 공적인 성격과 이윤이 아닌 인간의 필요를 위한 생산 체제인 사회화 차원에서 검토해야 한다.

 

노동자통제 없는 사회주의가 있을 수 없지만사회주의 없는 진정한 노동자통제도 있을 수 없다자본주의에서 노동자통제의 점진적인 증가가 실제로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공동경영참여또는 공동결정 같은 말로 치장한 거짓 사회개혁으로 자신들의 절대적인 계급지배를 숨기려는 지배계급의 악선전에 놀아나는 짓일 뿐이다노동자통제는 계급 협조를 배제한다그것은 자본 생산 체계에 참여할 수 없고 대신에 그것을 폐지한다.” (폴 매틱노동자통제, 1967)

 

또한, (노동자통제와 마찬가지로공적인 영역의 통제와 사회화의 주체로서 프롤레타리아트 권력(평의회)과 국가의 성격을 분명히 해야 한다자본의 총체로서 국가가 주체가 되는 국유화는 사회주의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이것은 자본주의에서 토지 국유화를 통한 주거 안정은 불가능하며노동자인민의 주거 안정은 오직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철폐하고 평의회를 통해 생산수단을 사회화한 코뮤니즘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본주의 소유관계 폐지 없는 토지 국유화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자본주의 사적소유의 폐지를 통한 생산수단의 사회화만이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코뮤니스트 혁명과 평의회를 통한 사회화만이 주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모두에게 거주 장소를 선택할 권리와 주택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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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20년대와 1930년대 걸쳐 코뮤니스트 좌파로 활동하면서 코르쉬가 굳게 믿었던 맑스주의 혁명이론은 프롤레타리아 실천과 의식이었다… 코르쉬에게 맑스주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식 안에서 직접 정립되며부르주아 사회 제도생활양식과 완전한 단절을 이루는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 투쟁을 강조한다. (남궁원, “혁명적 코뮌칼 코르쉬”, 코뮤니스트2, 2013)

 

 

2. 칼 코르쉬 사회화란 무엇인가?

 

 

2021년 4

국제코뮤니스트전망 ┃ 윤태상

 

 

 

<관련 글> 

 

부르주아 정부의 부동산정책 허구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39048

 

코뮤니즘 세상에서... 도시와 주택은 어떤 모습일까?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4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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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3호] 자본주의에 맞서는 백신은 없다

자본주의에 맞서는 백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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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의 뉴스가 우리에게 인간 활동의 결과가 국경에 국한되지 않는 국제화된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빠른 변이 바이러스를 가진 코로나 대유행이든, (주로 지난 200년 동안지구상의 생명을 위협해 온 지구 온난화와 더 넓은 생태학적 피해를 줄이기 위한 마지막 시도이든 우리는 모두 그 치료법이 세계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다루기 힘든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생활양식 선택에 국한될 수 없다마치 대부분의 사람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중요한 선택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우리는 좋든 싫든 간에우리 삶의 거의 모든 측면이 자본주의를 뒷받침하는 화폐 경제와 그것의 존재 이유즉 이윤 창출로 형성되는 자본주의 세계에 살고 있다신용카드파운드달러동전심지어 비트코인까지 우리는 돈 없이는 살 수 없다우리는 휴가와 오락은 말할 것도 없고 음식의복주거비와 같은 생계비를 지불해야 한다연금 수령자는 제쳐두고그것은 적어도 모든 가정이나 가족의 누군가가 임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공적 원조(‘세계국가에 살고 있다면)와 같은 불충분한 정부 유인물이나 훨씬 더 나쁜 것으로 관리하려고 애쓰며국제노동기구(ILO)가 비공식경제라고 부르는 수단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비공식 경제'에 있는 사람들은 통계수치에 넣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날 전 세계 57억의 노동 연령 인구 중 22억은 세계 노동력의 일부로 분류되지도 않는다. (그리고 ILO는 그들의 "생계 활동"의 성격을 확장하지 않는다이로 인해 공식적으로 세계 전체 임금노동자는 약 35억 명이다코로나 감염병 이전에 그들 중 약 5%는 공식적으로 실업자였다그 숫자는 약 1억 7천 5백만 명이다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유급노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한편 지난해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가능한 국가의 3분의 2에서 평균 임금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나라가 UN 조사원들을 환영한 것은 아니다!) 브라질캐나다프랑스이탈리아미국을 포함한 나머지 3개 국가에서 평균 임금의 증가는 급여 상승이 아니라 많은 수의 저임금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노동시장을 떠난결과였다통계학에서 우리가 배우는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ILO 통계는 실업률이 증가하고 있고 임금이 감소하고 있다는 더 큰 그림만을 확인해 줄 뿐이다생계를 꾸려나갈 벌이를 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는 소비재가 넘쳐나는 세상임에도 불구하고누군가는 굶주리고 생활필수품도 없이 내버려지는 세상이다모든 것에는 일종의 자본주의 논리가 있다자본주의의 동력은 인류의 건강과 복지를 증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다노동력과 원자재 비용을 줄여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끊임없이 밀어붙이는 것이 자본주의 동력의 원천이다그러나 그것은 경제 위기와 자본주의 붕괴의 치명적인 경향의 원인이기도 하다차익 실현을 위한 추가적인 이윤 창출에 필요한 자본 지출이 점점 더 많은 회사가 '실물 경제'에 투자하는 대신에 그들의 최고 경영자들에게 엄청난 보너스를 지급하고증권 거래소에서 도박하고일상 사업을 벌이는 (좀비 회사동안기존의 부채를 재충당하기 위해 낮은 금리로 빌리는 것을 선호하게 되는 -또는 단순히 파산선언을 하고 가게 문을 닫게 되는시점이 온다반면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노동력을 투입하려는 '노동 유연화주급이 보장되지 않는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노동이 단조로운 오래된 노동주간의 남은 것을 계속해서 대체하고 있다이런 종류의 공격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수십 년 동안 우리는 자본가들이 이윤 위기 비용을 노동자계급에 떠넘기면서 노동자들의 임금노동 및 생활조건국민 총생산의 '점유율감소에 대해서 끊임없이 공격해 온 것을 추적해 왔다.

 

코로나19의 두 배의 공격

 

그런 다음코로나바이러스가 연이어 나타난다경제 안팎은 리시 수낙(Rishi Sunak)의 해고 계획으로 인해 해고 노동자들에게 80%의 급여를 지급하고새로운 실업자에 대한 구직 수당 삭감 주장에 대한 관료적 걸림돌로 인해 보류되었다하지만 임대료를 내지 못하는 세입자들에 대한 퇴거 명령의 중단처럼그러한 일은 계속해서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어쨌든 이러한 조치들은 증가하는 노동자계급 가구의 소득 손실을 보상하기에 충분한 것은 아니다. BBC가 '정상'으로 내세우고 싶어 하는 편안한 중산층이 '가처분소득'을 더 많이 저축하고 있지만더 많은 사람이 ('필수'노동자가 아닌 경우생활필수품을 살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수입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일 년에 2만 파운드 미만의 수입을 올리거나 100파운드 미만의 저축을 한 코비드19에 걸린 사람들이 다른 누구보다도 3배나 고립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작다는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 사회적 조사가 필요하지는 않다특히 영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낮은 병가수당을 받고 있고주당 120파운드 미만의 거의 2백만 명에 달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경우 병가가 제로이다현실을 직면하자이건 전면적인 계급전쟁이다가정에서 일하는 중산층이 새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골에서 더 큰 집을 사려고 하지만, '필수'노동자들은 현재 푸드뱅크를 보충하고 있는 급식소에 의존해야 한다.

 

공격은 이미 시작 되었다

 

백신 출시가 안도감을 불러일으키기는커녕 자본가들은 공격을 감행할 기회를 포착하고 있다그들은 해고와 재고용에 관한 기술을 연마해 왔다그들의 목표는 불안정한 저임금만이 아니다실업률이 증가함에 따라 그들은 일자리를 찾는 노동자들이 한트럭 이상 줄지어 서 있다고 생각한다. TUC에 따르면, 10명 중 거의 1명은 더 나쁜 조건으로 구직활동을 하거나 해고를 당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노동자들이 반격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놀라운 일이다그러나 그들은 노조의 경계를 넘어즉 사전 예고된 산발적인 '파업'의 날들을 잊고 자본가들의 공격을 분쇄하기 위한 저항을 조직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지속적인 투쟁과 그 안에서 노조의 역할특히 영국 가스영국 에어웨이즈 화물 노동자히드로의 노동자들에 대해서 웹사이트에 게재했다읽을 가치가 있다.)

 

다시 말해서코비드19가 있든지 없든지 간에우리는 여전히 전과 같이 절망적이고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를 보고 있다어느 한구석에 푸른 하늘이 있는 척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국제 노동자계급이 공동의 이해관계를 인식하고 자유롭게 연합한 생산자들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 자본주의를 전복하려는 여정에 착수하지 않는 한그 전망은 암울하다그러나 이 암울한 상황에서도 빛의 통로가 존재한다.

 

노동자들의 이전 승리와 패배의 모든 영역에서 배우기를 열망하고국제 노동자계급 투쟁을 이끌어 나갈 정치적 나침반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새로운 정치 단체들이 등장하고 있다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이 속해 있는 국제코뮤니스트경향(ICT)은 커지고 있다이탈리아의 코뮤니스트 투사(다른 것 중에서도 현재 노동력 지원을 위해 경쟁하고 있는 경쟁 기반 노조와 정치적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의 형태로 원래 정치적 원동력에서 미국과 캐나다의 ICT 단체들은 공동으로 온라인 정치 저널인 1919를 발행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동시에 지구상에서’ 계급투쟁에 가장 잘 기여하는 방법을 배우는 힘든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몬트리올과 온타리오에서 홈리스 쉼터가 폐쇄된 캐나다의 열악한 주택과 퇴거 위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지주와 세입자 이사회는 지난 3개월 동안 13,000건 이상의 퇴거 청문회를 개최했다뉴욕 헌츠포인트 생산시장의 노동자들이 코비드19로 10명이 죽고 100명이 감염된 후 1달러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봉쇄기간 동안 소수의 관심 있는 동조자들로부터 호주에서 실행 가능한 정치 그룹 구축을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이와 같은 도전은 자본주의의 부패한 시체 속에 생산자들의 세계 공동체를 위한 물질적 기반이 이미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새로운 세대에 의해 점점 더 많이 받아들여지고 있다지금 세계가 필요로 하는 것은 노동자계급이 혁명적인 투쟁을 하는 것이다.

 

2021년 3월 10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오로라(54)

 

 

 

<원문 출처>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1-03-10/there-isn-t-a-vaccine-against-capit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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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3호] 미얀마 군부와 결탁한 한국기업과 미얀마 노동자 투쟁

미얀마 군부와 결탁한 한국기업과 미얀마 노동자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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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독재 국가가 황금의 땅이었던 한국 자본

 

미얀마에 대한 한국기업의 진출은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다이미 1962년 쿠데타로 집권한 미얀마 군부와 전두환 정권은 1983년에 발생했던 북한의 아웅산 묘소 테러 사건 이후에 지속하여 경제협력 확대를 합의한 상황이었다. 1984년에 대우를 시작으로 의류 봉제업을 중심으로 진출한 한국기업1)들은 미얀마 군부와 밀접하게 유착될 수밖에 없었다왜냐하면미얀마 군부는 미얀마 사회를 수십 년간 통치하면서 미얀마 사회 전반을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에한국기업의 미얀마 진출을 위해서는 미얀마 군부와의 유대관계 형성은 필수적이었다

 

미얀마는 넓은 국토와 풍부한 지하자원많은 인구를 보유한 국가로 미국과 유럽은 물론 일본도 눈독을 들이고 있는 시장이었다그러나 미얀마 군부의 폐쇄적인 고립정책과 독재정치특히 1988년에 있었던 대규모 민주화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이른바 선진국들의 미얀마 투자는 제한되어 있었다이 틈을 노리고 한국 자본들은 미얀마에 진출한 것이다한국 사회가 한국 자본의 해외투자에 있어서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지 않은 당시 상황에서-현재도 마찬가지이다.- 독재국가에 대한 투자는 시장개척이란 이름으로 칭송받기까지 하였다.

 

이른바 민주개혁 정권에서도 마찬가지였다노무현 정권 때 본격 추진된 미얀마 슈에가스 개발사업에는 대우인터내셔널뿐만 아니라 공기업인 한국가스공사까지 지분에 참여하여 사업이 이뤄졌다국제민주연대를 비롯한 한국 시민사회가 독재정권인 미얀마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가스개발사업의 인권침해 위험성을 계속 경고하였지만정부와 기업은 요지부동이었다오히려 대규모 가스개발사업의 성공으로 대우인터내셔널은 성공적으로 2010년에 포스코에 인수되었고 가스공사 역시 지속해서 수익을 벌어들일 수 있게 되었다.

 

미얀마 진출 한국기업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의류 봉제업도 마찬가지였다중국과 필리핀인도네시아를 거쳐 미얀마로 향한 한국 의류 봉제 기업들은 낮은 임금과 함께 미얀마 군부에 의해 억압된 노동자의 권리를 착취할 수 있었다더욱이 2000년대 중반부터 미얀마에서 한국 문화 콘텐츠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한국에 대한 호감도마저 형성되게 되었다. 2015년에 아웅산 수지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제사회의 미얀마에 대한 경제제재마저 사라지면서 한국 자본의 미얀마 진출은 계속 확대될 것으로 보였다.

 

군부독재와 협력한 대가

 

대우인터내셔널이 1984년부터 미얀마에 진출하면서 유착된 관계를 상징하는 사건이 바로 대우의 무기 수출 사건이다. 2006년에 검찰의 수사로 드러난 이 사건은 대우가 미얀마 군부에 포탄 제조기술과 설비를 몰래 수출하다가 적발된 사건이었다노다지로 불리는 가스개발 사업을 따내고 유지하기 위한 대가로 독재정권에 무기까지 팔아넘기는 회사라는 오명이 생겼다.

 

   그러나 대우가 포스코에 인수된 이후에도 이런 행태는 변하지 않았다아웅산 수지 정권이 들어서고 미얀마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존중하는 국가로 나아갈 것이라는 기대를 배신한 로힝야 학살이 2017년에 발생하였다미얀마 군부의 주도로 발생했지만주류인 버마족의 로힝야족에 대한 반감을 의식한 아웅산 수지 정권은 이에 침묵하거나 심지어 옹호하고 나서기까지 했다끔찍한 대량학살에 대해 국제사회의 제재 논의가 한창이던 2018년에 대우인터내셔널은 미얀마 군부의 요청으로 군함 판매 계약을 성사시켰다정부가 군함 판매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민간상선인 것처럼 꼼수를 부려가며 기어이 군함을 팔아넘겼다.2)

 

   포스코 역시 1997년에 미얀마 군부가 자금확보를 위해 설립한 기업인 MEHL과 합작으로 아연도금강판 회사를 설립하였다포스코는 미얀마 현지 생산법인이 별다른 수익이 나지 않고 있다고 강변하고 있지만미얀마 군부독재 시절부터 미얀마 군사정부의 큰 수입원이자 군사정부의 든든한 파트너인 중국의 이해관계를 만족시키는 가스개발사업을 수행한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한 포스코 입장에서는 군부와 결탁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처지이다심지어 포스코인터내셔널과 포스코건설은 미얀마 군부가 소유한 토지를 임대해 벌이고 있는 롯데호텔 사업의 지분도 상당 부분 보유하고 있다대우 시절부터 다져온 군부와의 끈끈한 관계로 미얀마에서 벌이고 있는 여러 사업이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 이후에 주목받게 되자 포스코는 당황하고 있다포스코는 MEHL과 합작사업인 포스코 강판의 생산법인에 대해서는 국내외의 비판을 의식하여 4월 16일 자로 MEHL의 지분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합작 관계를 종료하겠다고 발표하였다그러나 그동안 포스코가 군부에 직접 자금을 전달한 것은 아니라는 변명군함이 아니라 민간상선이었다는 변명그리고 잘못된 정보를 토대로 한 시민사회의 주장이 한국 기업과 교민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협박까지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포스코가 미얀마 군부와 결부된 사업들에 대해 추가조치를 내놓지는 않을 것이고포스코 강판의 지분인수를 하는 선에서 비판을 잠재우려 할 것으로 보인다.

 

   독재국가에서 한국기업의 활동을 제재할 수 있을까?

 

   한국 사회는 미얀마 군부 쿠데타 이후에 미얀마 시민들의 투쟁에 광범위하고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다른 국가와 비교해보아도 이례적일 정도의 이 강도 높은 지지 속에서도 한국기업의 미얀마 군부와의 결탁 문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낮다이것은 한국 사회가 한국기업의 해외투자 문제특히 도덕적으로 한국기업이 가해자가 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한국기업이 인권침해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과거 보다 포스코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것도 사실이고정부와 기업도 사태의 엄중함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그렇지만 포스코에 많은 이익을 안겨주고 있는 가스전 사업을 철수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설사 철수한다고 해도 포스코와 가스공사의 지분은 고스란히 중국과 미얀마가 인수해 갈 것으로 보인다.

 

   미얀마에서 벌어지는 투쟁의 선봉에는 의류 봉제업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들이 자리 잡고 있다이 여성 노동자들은 한국과 중국의 의류 봉제 업체에서 일하면서 갖은 탄압 속에서도 노조를 결성하고 파업을 결행하고 경찰과 용역의 폭력 속에서도 노조를 사수해왔다그렇게 단련된 노동운동은 군부와의 싸움에서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었고 군부는 노조 지도부를 겨냥한 체포를 지금도 지속하고 있다.

 

   적어도 독재국가에서 독재정권에 이익을 제공하면서 기업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한 한국사회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는 지금한국기업들의 독재정권과의 유착을 끊을 수 있는 제도의 도입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특히 노동자와 민중을 살상하고 억압하는 무기와 시위진압 용품에 대한 수출만이라도 금지할 수 있는 법은 시급히 도입되어야 한다아울러해외에서의 기업 활동에 대해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되어야 한다기업 이익을 자신의 이익으로 간주하던 한국 사회에 미얀마 시민들의 저항은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한국 사회는 한국기업의 이익을 포기하면서까지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지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국제민주연대 ┃ 나현필 사무국장3)

 

 

 

<주>

 

1. 이와 관련된 내용은 참세상」 기사에서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전두환에서 미얀마 군부까지독재와 손잡은 기업들” 2021.4.2.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105856

 

2. 포스코 군함 수출과 관련해서는 MBC가 계속 단독 보도하고 있다주목할 점은 다른 언론사들은 이 건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군함 수출이 문재인 정부에서 허가되었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 지지자들도 이 건에 대해선 침묵하는 상황이며보수 야당 역시도 한국기업과 관련된 문제에는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https://imnews.imbc.com/news/2021/econo/article/6151064_34887.html

 

3.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민주연대(이하 국제민주연대)는 2000년에 설립된 인권단체로 주로 해외 진출 한국기업의 인권침해 감시활동을 수행해왔다www.khis.or.kr 나현필 사무국장은 2006년부터 국제민주연대에서 상근활동을 시작하였고미얀마에 3차례(2006.2013.2016) 한국기업 인권침해 현지 조사를 수행한 바 있다.

 

 

 

<편집자 주이 글은 본지의 요청으로 싣게 된 소중한 기고 글로 국제코뮤니스전망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관련 글>

미얀마 항쟁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39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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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3호] 詩 : 30년, 백종원 김밥, 저녁이 있는 삶

30년

 
30년 전에 야간고 실습생 영국이는 나사를 깎았다.
아침까지 일을 해야 되는 건 영국이뿐이었다.
영국이는 태핑기에 장갑이 끼였다.
손가락이 잘린 채 그대로 죽은 듯이 엎드려 있었다.
 
30년 후에 특성화고 민호는 기계에 끼여 죽었다.
민호와 영국이는 혼자 작업을 했다.
30년이 가고 다시 30년이 와도 영국이는 엎드려 있다.
30년 후에 민호가 죽어서 엄마의 통곡 앞에 누워 있다.
 
 
 


백종원 김밥
 
 
편의점 김밥을 고르는데 백종원김밥이 눈에 띄었다.
조리 모자에 위생복을 입고 내 김밥 드시라고 엄지척한다.
 
음식장사로 성공한 백종원은 유명 요리사다.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골목 식당 주인들에게 호통을 친다.
이래 가지고 장사가 되겠어?
나는 그 말이 이래 가지고 나처럼 성공하겠어,라는 말로 들렸다.
 
새벽, 치킨집 오토바이 한 대가 교차로에 들어섰다,
직진 신호가 바뀌면서 승용차 한 대가 달려왔다.
오토바이를 탄 청년이 날아올랐다.
통닭이 죽고 오토바이가 죽었다.
 
누구도 백종원이 될 수 없다.
 

 


저녁이 있는 삶


얼마 전에 과로로 사망한 서른두 살의 택배 노동자는 하루에 14시간을 일하면서 1만 건의 배달 물품을 처리했다고 한다. 일요일만 쉰다 치고, 25일이면 1일 400건이다. 1시간에 28.5건이다. 그러니까 2분에 1개씩은 배달해야 되는 중노동이었다. 두 아이의 가장인 그는 그렇게 일하다 쓰러졌다. 다시는 일어나 눈을 뜨지 못했다.

 

詩 | 임성용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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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2호] 카피에로와 맑스: 요약된 「자본」?

카피에로와 맑스요약된 자본?

 

  KakaoTalk_20210507_144134973.jpg

 

서평아나키스트 코뮤니스트 그룹(ACG)이 출판한 카를로 카피에로(Carlo Cafiero)의 맑스 자본론」 요약본

 

 

우리는 카피에로가 1877년과 1878년에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기간과 1879년 석방된 후에 쓴 맑스 자본론」 1권의 100페이지 요약본을 ACG가 출판한 것을 환영한다이 요약본은 맑스 저작을 단순화하여 더 넓은 독자층이 접할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로 쓰였고맑스 자본론」 1권의 구성을 참조해 총 10개의 장과 결론으로 되어 있다이 책의 주된 목적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자본의 축적에 따른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에 관한 설명을 위한 것으로이를 위해서 상품가치통화를 다루었다또한 본원적 축적을 다루며 프롤레타리아트 성립 과정의 야만성을 보여주는 자본론」 1권의 긴 인용 글을 포함하고 있다카피에로는 세 종류의 독자들을 위해 이 책을 쓰고 있다고 설명한다첫째어느 정도의 교육을 받은 노동자들둘째자신과 같이 노동운동의 대의를 받아들인 부르주아 출신 배신자들셋째학생들을 위해서.

 

ACG가 서문에서 조심스럽게 설명했듯이카피에로 자신은 부유한 배경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비극적이고 짧은 생을 살았다그는 처음에는 맑스와 엥겔스에게서 깊은 감동한 맑스주의자였고이탈리아에서 인터내셔널 건설 임무를 맡은 제인터내셔널 총회의 대표자가 되었다그러나 그는 나폴리에서 아나키스트 바쿠닌을 만나 아나키스트가 되었다그렇지만 그는 맑스의 경제 분석에 확신이 있었고옥중에서 자본론」 1권의 프랑스어 번역본을 읽은 후에 요약본을 썼다그리고 그로부터 약 150년 후에 ACG가 이 요약본을 처음으로 영어로 번역해 출판하기로 했다.

 

우리는 맑스 저작을 더 널리 읽히고 이해시키려는 어떤 시도도 환영한다카피에로의 문체는 생동감 있고 흥미롭지만이번 출판물에서는 비판할 것이 두 가지 있다첫 번째는 번역이다. ACG는 페론(Paul Perrone)의 marxists.org에 있는 버전을 사용했다페론은 카피에로에게 그 번역을 자랑스럽게 바치지만우리는 페론이 카피에로에게 형편없는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생각한다부정확한 어법 때문에 의미 파악이 어려운 경우가 많으며번역은 검토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더 심각한 것은 영어 번역이 이탈리아어 원문과 정반대의 뜻으로 번역되는 곳도 몇 군데 있다이에 대한 두 가지 보기를 들어보자

 

21(1)은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 있다.

 

"그는 노동자 임금을 속여서 갈취하는 것이 좋아 보일지도 모르는 부르주아지의 지극히 정직하고 종교적인 일원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야 한다.

 

그는 지극히 정직하고 심지어 종교적인 부르주아지의 구성원이며 노동자 임금을 속여서 갈취하지 않도록 조심할 것이다.”

 

58쪽에서는 더 심각한 실수가 발생한다.

 

"따라서 급여는 노동력의 가격을 나타낼 수 없다."

 

이 문장은 다음과 같이 읽혀야 한다.

 

"따라서 임금은 노동력의 가격만을 나타낼 수 있다."

 

이어지는 설명은 카피에로가 쓰려고 했던 것임을 분명히 하지만이러한 종류의 번역 오류는 맑스에 대한 이해를 쉽지 않게 해준다!

 

이러한 실수와 서투른 번역은 때때로 본문에 대한 이해를 혼란스럽게 만든다부분적으로 다행인 것은 페론이 무어/어벨링(Moore/Aveling)의 영어판 자본론을 이용해 카피에로가 자본론으로부터 직접 인용한 장문의 인용문을 번역했다는 점이다.

 

두 번째 비판은 카피에로가 제시하는 상대적 잉여가치의 사례로노동력의 가치와 노동력이 생산한 가치의 구분이 혼란스럽게 번역되었다맑스는 자본론」 1권 제19장에 이 구별을 길게 설명하고 있다카피에로가 33쪽에서 든 사례는 약간 엉성하다.

 

그는 첫 번째 사례에서 노동자는 12시간의 노동에 대해 3파운드를 받고, 1.5파운드의 생산수단을 사용하며총 7.5파운드의 가치를 지닌 6개의 품목을 생산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아래와 같이 읽힌다.

 

"12시간 노동력의 가치는 6파운드이다."

 

그러나 카피에로가 이 사례의 나머지 부분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12시간 노동력의 가치는 분명히 3파운드다. 12시간의 노동력으로 생산되는 총 가치가 6파운드이며이 가운데 3파운드는 노동자의 임금을 나타내고 3파운드는 잉여가치를 나타낸다노동자는 6시간을 일하여 임금 3파운드를 생산하고, 6시간을 무급으로 노동하여 잉여가치 3파운드를 생산하는데이 잉여가치는 자본가에게 가는 것이다.

 

노동력의 가치와 노동력에 의해 생산된 가치의 구분은 맑스 이론이 고전경제학보다 우월한 핵심적인 이론이다노동력 그 자체는 자신의 교환 가치보다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상품이다이것은 세심하게 설명될 필요가 있다불행히도 카피에로의 보기는 명확하지 않다이는 카피에로가 33쪽에서 생산량 증가로 생산된 상품의 가치에 대한 수치로도 이해되지 않으며 잘못 설명되었다. 62.5파운드가 아니라 75파운드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결점만을 지적하고 싶지는 않다맑스 이론을 단순화하고 대중화하려는 카피에로의 노력은 ACG가 영어로 번역한 것처럼 칭찬할 만하다그러나 우리는 번역본을 수정하고 확인하며 인터넷 버전의 사례들을 정리할 것을 권한다.

 

아나키스트 코뮤니스트 그룹(ACG)과 맑스

 

ACG는 서문에서 자본론이 최고의’ 작품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맑스의 어떤 것이든 출판하고 있는 것에 대해 약간 유감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인다그들은 반혁명에 의해 야기된 권위주의적 경향들(ACG는 여기에 트로츠키주의와 모든 종류의 맑스-레닌주의를 포함한다)을 거부하면서 맑스 경제 이론에 동의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이 점에서 우리는 동의할 수 있다맑스는 국가계급국경이 없는 자유로운 생산자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사회를 원했다그들이 자주 언급하는 맑스주의자(Marxist)’ 경향은 국가자본주의와 코뮤니즘 사이의 차이를 거의 보지 못하며 따라서 맑스와는 관련이 없다그들 맑스주의자는 한마디로 러시아혁명이 레닌의 죽음 훨씬 이전에 패배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반혁명의 산물이다그러나 맑스는 그의 사후 40년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없다자본론은 단순한 경제작품이 아니다. ACG가 자본론을 우리의 혁명적 이해를 위한 최고의 공헌이라고 설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본론의 역사적철학적 기초의 수용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카피에로는 맑스의 원시적 축적에 대한 설명과 프롤레타리아트의 형성을 분명히 받아들인다이것은 카피에로가 역사적 변화의 근간으로 역사적 유물론을 받아들이고 계급투쟁을 역사 원동력으로 수용한 것이다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카피에로는 역사적 유물론에 의존하는 프롤레타리아트 형성과 관련해서 자본론에서 길게 인용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전복 이후 노동자계급이 직면하게 될 상황에 대한 이해도 자본론」 1권에서 발견되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에 달려 있다. ACG가 맑스 작품을 최고라고 했다면맑스 분석에서 비롯된 코뮤니스트 사회를 위한 그의 처방을 논리적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우리는 물론 맑스가 고타강령 비판에서 요약한 것처럼노동자계급(그리고 노동자계급만)이 독재를 통해 권력을 장악하는 과도기를 언급한다세계 자본가계급의 위협이 줄어들고 과도기적 사회가 완전한 코뮤니즘으로 발전함에 따라 국가의 필요성은 줄어들게 된다.

 

카피에로가 9장에서 인용한 자본축적이 노동자계급의 상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맑스 글은 시스템이 노동자계급의 지적 능력을 실질적으로 얼마나 잔혹하게 훼손하는지를 보여준다.

 

"결국 상대적 과잉 인구 또는 산업예비군을 축적의 규모 및 활력에 알맞도록 유지한다는 법칙은 불카누스(불과 대장일의 신)의 쐐기가 프로메테우스를 바위에 결박시킨 것보다도 더 단단하게 노동자를 자본에 결박시킨다이 법칙은 자본축적에 대응한 빈곤 축적을 확립한다그러므로 한 쪽 끝의 부의 축적은 동시에 반대편 끝(자기 자신의 생산물을 자본으로 생산하는 노동자계급의 축)의 빈궁노동의 고통노예상태무지야만화도덕적 타락의 축적이다.”

 

위의 글이 쓰여진 지 이제 1세기 반이 지났지만어떻게 노동자계급이 임금 노예에서 해방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세계 차원에서 중심 질문이다맑스는 이를 위해 국제정치조직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결론지었다그것의 기능은 노동계급의 입장과 코뮤니즘의 필요성에 대한 이해 발달에 도움을 주고코뮤니즘을 이루기 위한 강령과 지침을 제공하는 것이다인터내셔널은 맑스와 엥겔스가 이 일을 시작하려는 노력의 실질적인 결과였다이 서평에서는 인터내셔널의 붕괴와 관련해서는 따로 검토하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우리는 카피에로와 맑스가 위에 제시된 정확한 이유로 그들이 살아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국제정치조직의 필요성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주장한다이 요약본의 끝에 발표된 ACG의 목적과 원칙에서 우리는 그들이 아나키스트 세계 혁명 운동을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주목한다아마 카피에로의 요약본 출판이 일부 아나키스트들의 과거 맑스주의 비난에 대한 재평가로 이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2020년 9월 17

CP

 

 

<>

(1) 쪽 번호는 인쇄본 버전이다. ACG 온라인 버전은 약간 다르며쪽 번호는 일반적으로 책 버전 이후의 쪽이다.

 

 

국제코뮤니스트경향(ICT)

옮긴이 우연이

 

 

 

<원문 출처>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0-09-17/cafiero-and-marx-capital-in-a-nutsh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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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2호] 나는 어떻게 사회주의자가 되었나

나는 어떻게 사회주의자가 되었나

 

 

1912년 9월 21일 뉴욕 타임스에 경멸스러운 붉은 깃발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깃발은 자유다하지만깃발은 몹시 혐오스럽다그것은 전 세계에서 무법과 무정부의 상징이며깃발은 그 자체로 올바른 시민들에게서 경멸받는다."

"붉은 깃발을 든 사람은… 무법의 상징을 들고 있기 때문에 존중받고 공감 받을 모든 권리를 박탈당할 것이다붉은 깃발은 이 나라를 세운 원칙들을 파렴치하게 무시한다.”

 

같은 해 11월 3일 뉴욕 콜이 반박 기사를 실었다.

 

나는 어떤 색깔의 천 조각도 숭배하지 않는다하지만 나는 붉은 깃발과 그것이 나와 다른 사회주의자에게 상징하는 바를 사랑한다나는 붉은 깃발을 내 서재에 걸어두고 있다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붉은 깃발을 들고 타임스 사무실 앞을 즐겁게 행진하면서 모든 기자들과 사진기자들에게 최고의 광경을 선사할 것이다.”

 

나는 어떻게 사회주의자가 되었나?라는 제목의 이 기사를 쓴 사람은 바로 헬렌 켈러(Helen Ke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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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헬렌 켈러에게 수화를 배우고 있는 찰리 채플린, 1919년

 

 

몇 달 동안 내 이름과 사회주의가 신문에 자주 함께 등장하곤 했다한 친구는 내가 야구루즈벨트 대통령그리고 뉴욕 경찰의 부패 사건과 함께 신문의 첫 면을 전부 차지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그런 결합이 나를 전적으로 행복하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사람들이 나와 메이시 부인(Mrs. Macy, Anne Sullivan)의 교육적 성취에 관심을 가져주어 기쁘게 생각한다나쁜 평판도 쓸모가 있을 때가 있다그리고 내 활동을 보도하려는 신문들이 기사에 사회주의라는 단어를 더 자주 사용하게 된다면 기쁘겠다언젠가 나는 사회주의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그리고 또 나와 내 의견에 쏟아졌던 엄청난 양의 평판에 대해서도 조금이나마 해명하고 싶다나는 지금까지 사회주의에 대해서는 조금밖에 쓰지 않았고거의 말하지 않았다아주 가끔 편지에 썼는데프레드 워런(Fred Warren)동지에게 쓴 편지는 이성에 호소한다에 실려 출판되었다몇몇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그 중 뉴욕 월드(the New York World)의 아일랜드(Ireland) 기자는 나를 몹시 추켜세우는 기사를 작성했고내가 말한 것을 충분하고공정하게 실어주었다나는 스키넥터디(Schenectady)시에 가본 적이 없다그리고 나는 런(Lunn) 시장을 만난 적이 없다런 시장이 나에게 직접 편지를 보낸 적이 없지만메이시 씨(Mr. Macy)를 통해 친절한 메시지를 보내온 적은 있다메이시 부인의 병환 때문에 스키넥터디시의 노동자들과 함께 어울리려던 계획은 포기하고 말았다.

 

그런 부정적이거나 상대적으로 사소한 사건들에 대해 자본주의 언론과 사회주의 언론은 많은 논평을 했다모아놓은 기사가 서랍에 가득하다난 그중에 4분의 1도 읽지 못했고그걸 다 읽을 수 있을지도 의심스럽다그렇게 작은 일에 엄청나게 많은 논평이 따라왔는데만약 내가 사회주의를 위해 말하고글을 쓰기 시작한다면 신문들은 어떻게 할까나는 지금 내 입장을 발표하고잘못된 기사들을 정정하고부당한 몇몇 비난에 대해 해명하고 싶다.

 

첫째나는 어떻게 사회주의자가 되었을까독서로내가 처음 읽었던 책은 H.G.웰즈의 구시대를 대신할 신세계였다메이시 부인의 추천으로 그 책을 읽었다그녀는 그 책의 고급스러운 상상력에 매료되었고그 책의 강렬한 문체가 나를 자극하고 흥미를 끌어 주기기를 바랬다그 책을 나에게 가져다줄 당시그녀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고지금도 그녀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다아마도 나와 메이시씨가 그녀와 논쟁을 끝내기 전에 그녀가 사회주의자가 될지도 모르겠다.

 

내 독서는 한계가 있고느리다나는 두 달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점자로 인쇄된 독일의 사회주의자 정기간행물을 받아보고 있다. (우리의 독일 동지들은 많은 관점에서 우리보다 앞서 있다그리고 나는 독일어 점자로 된 에어푸르트(Erfurt) 강령에 대한 카우츠키(Kautsky)의 토론도 가지고 있다내가 읽었던 다른 사회주의자들의 문서들은내가 무엇을 고르던지 간에 일주일에 세 번씩 방문하는 친구가 내 손에 한 자 한 자 읽어준 것이다내가 그녀의 생기 넘치는 손가락에 열망 가득한 내 손가락으로 전달해달라고 가장 자주 요구하는 정기간행물은 전국 사회주의자(the National Socialist)이다그녀는 기사의 제목을 읽어주고나는 그녀에게 언제 읽을지생략할지 이야기한다나는 또한 그녀에게 국제사회주의비평(the International Socialist Review)에서 장래성 있는 제목의 기사를 읽어달라고 한다손으로 한 자 한 자 대화하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50,000단어의 경제학책을 읽는 내내 손가락에 열중하기는 쉽지 않거니와 또한 빠르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그렇지만 그것은 즐거운 일이다그리고 나는 사회주의 저자들의 모든 고전에 정통할 때까지 반복적으로 이것을 즐길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대로두 개의 반()사회주의 출판물인 공공의 목적(the Common Cause)에 실리고당면한 이슈(the Live Issue)에 다시 실렸던 나에 관한 기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그 기사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25년간 켈러의 선생님이자 충실한 벗은전에 매사추세츠주(Mass)의 렌담(Wrentham)시에 살았던 메이시 부인이었다메이시 씨와 부인은 둘 다 열렬한 맑스주의 선전가이다그래서 이들에게 대부분 삶의 지식을 배우며 평생 친구로 의지했던 켈러가 그런 의견에 동화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메이시씨는 어쩌면 열렬한 맑스주의 선전가인지도 모르겠다비록 아쉽게도 그가 나에게 손가락을 통해 맑스주의를 열정적으로 선전하는 열의는 보여주지 않았지만 말이다메이시 부인은 맑스주의자도 아니고 사회주의자도 아니다그러므로 공공의 목적이 그녀에 대해 말한 것은 사실이 아니다편집자는 날조하고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그리고 그것이 그의 일처리 방식이라면그가 사회주의에 반대한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그는 사회주의자가 되거나다른 어떤 지적인 일에도 적합할 만큼의 사실 감각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같은 기사의 다른 인용구를 한번 보자기사의 헤드라인은 이렇게 되어있었다.

 

"스키넥터디시의 빨갱이들은 여론의 관심을 받기 위해 눈먼 소녀 헬렌 켈러를 이용해서 선전을 하고 있다."

 

그리고 기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불쌍한 헬렌 켈러에 대한 스키넥터디 사회주의자들의 착취보다 더 애처로운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다몇 주 동안 당 선전국은 그녀가 사회주의자이며스키넥터티시 공공복지위원회의 새로운 위원이 될 것이라고 보도해왔다."

 

그 말솜씨에 빈정대는 논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불쌍한 헬렌 켈러에 대한 착취그러나 나는 공공의 목적」 같은 신문의 위선적인 연민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만 간단히 하고 참을 것이다그렇지만 그 신문이 "착취"라는 말의 뜻을 알게 된다면 나는 기쁘게 생각하겠다.

 

사실은 이렇다나를 위해 마련한 장소에서 열리는 공공복지위원회에 대한 런 시장의 제안에 내가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런 시장에게 했을 때런 시장이 운영하는 시민(The Citizen)에는 아무것도 실리지 않았었다사실내가 스키넥터디시로 이동한 후에도 위원회는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을 생각이었다그러나 자본주의 언론의 기자들이 이 계획을 눈치를 챘다런 시장이 스키넥터디시에서 자리를 비운 어느 날올버니(Albany)시의 니커보커(the Knickerbocker)라는 신문에서 이 사실을 발표해버렸다그 기사는 전국에 전송되었고그때 신문들의 진짜 착취가 시작되었다사회주의 신문들아니그것은 자본주의 신문들에 의한 착취였다사회주의 신문들도 그 뉴스를 싣기는 했다몇몇 사회주의 신문은 환영하는 사설을 썼다그러나 기자들이 전화하고전신을 보내고인터뷰를 요청하는 그 모든 주들 내내 런 시장의 신문인 시민은 침묵을 유지하고 내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았다착취를 한 것은 자본주의 언론이었다일반 신문들이 사회주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어서전혀물론 아니다그들은 사회주의를 싫어한다그렇지만 아아 슬프게도내가 신문 가십란의 주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우리는 내가 스키넥터디시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부인하느라 너무 지쳐서 처음 "뉴스"라고 보도했던 기자를 싫어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신문들이 "내가 사회주의자라는 사실을 보도"하고 나서 사회주의 신문들과 좋은 관계가 되었다는 건 사실이다그러나 나를 보기 위에 달려온 기자들은 전부 일반 상업신문 기자들이었다.

 

외침(The Call)이나 전국 사회주의자(The National Socialist)」 같은 어떤 사회주의 신문도 나에게 기사를 요구하지 않았다시민의 편집자가 메이시씨에게 내가 쓴 기사를 좋아하게 될 거라고 넌지시 일러줬지만메이시씨는 너무도 착하고 사려가 깊은 사람이라서 나에게 직접 기사를 요구하지 않았다 .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가 나에게 기사를 요구했었다타임지의 편집자는 나에게 그 신문이 대중들이 보는 가치 있는 미디어라고 장담하는 편지를 써 보내면서내 기사를 받고 싶어 했다또한 그는 나에게 전보를 보내서 내 계획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와 스키넥터디 공공복지 위원으로서의 내 역할에 대한 대략의 생각을 알려달라고 요청해왔다나는 그 요청을 수락하지 않았던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칠 후 타임즈는 나를 그 잘난 동정심 밖의 사회적 낙오자로 만들어 버렸다. 9월 21일 타임즈는 <경멸스러운 붉은 깃발(The Contemptible Red Flag)>이라는 사설을 실었다그 두 구절을 인용해보겠다.

 

"깃발은 자유다하지만깃발은 몹시 혐오스럽다그것은 전 세계에서 무법과 무정부의 상징이며깃발은 그 자체로 올바른 시민들에게서 경멸받는다."

 

"붉은 깃발을 든 사람은 붉은 깃발이 정당화하고 있는 어떤 행동을 저지르기 전까지는 경찰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그는 의심을 받을 만하다무법의 상징을 들고 있기 때문에 존중받고 공감 받을 모든 권리를 박탈당할 것이다."

 

나는 어떤 색깔의 천 조각도 숭배하지 않는다하지만 나는 붉은 깃발과 그것이 나와 다른 사회주의자에게 상징하는 바를 사랑한다나는 붉은 깃발을 내 서재에 걸어두고 있다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붉은 깃발을 들고 타임스 사무실 앞을 즐겁게 행진하면서 모든 기자들과 사진기자들에게 최고의 광경을 선사할 것이다타임즈의 포괄적인 유죄선고로 나는 존중과 공감 받을 모든 권리를 박탈당했고의심받을 만한 사람이 되어버렸다그런데도 아직 타임즈의 편집자는 내가 기사를 써주기를 원하고 있다내가 의심받을 만한 사람이라면서어떻게 내가 그를 위해 기사를 써줄 거라고 믿고 있는 걸까자본주의자인 편집자가금권 정치적인 이익을 공격하는 운동을 비난하려 할 때마다빠져드는 나쁜 윤리나쁜 논리나쁜 예절에 대해 여러분들도 내가 즐기는 것처럼 즐길 수 있게 되길 바란다우리는 그의 신문에 돈벌이가 되는 기사를 써주기 전에는 동정받을 자격이 없다아마도 우리의 의견은 그 편집자에게 유명한 살인자의 고백과 같은 가치가 있을 것이다우리는 좋은 사람들이 아니지만흥미로운 사람들이다.

 

나는 신문 편집자들을 좋아한다많은 편집자를 알고 있고그중 두 세 명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들이었다게다가 신문들은 우리가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일하는 것에 대해서는 최고의 지원자들이었다시각장애인을 위한 일과 겉치레 자선 행위를 지원하는 일은 그들에게 전혀 손해날 것이 없다그러나 사회주의 그건 다른 문제다사회주의는 모든 빈곤과 모든 자선 행위의 근원을 밝히고 있다신문 뒤에 있는 금권은 사회주의에 반대한다그리고 그들을 먹여 살리는 그 손에 순종적인 편집자들은사회주의를 끌어내리고 사회주의자들의 영향력을 훼손하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할 것이다.

 

내가 프레드 워런 동지에게 보낸 편지가 이성에 호소한다에 실렸을 때보스턴 트랜스크립트(the Boston Transcript)의 특별부서에서 일하는 내 친구가 그에 대한 기사를 작성했는데편집국장이 잘라내 버렸다.

 

브루클린의 독수리(The Brooklyn Eagle)는 나와 사회주의에 대하여헬렌 켈러의 "실수들은 명백한 그녀의 발달 한계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라고 보도했다몇 년 전나는 맥컬웨이 (McKelway)라고 소개된 한 사람을 만났었는데그는 브루클린의 독수리의 편집자였다맹인들을 위해 뉴욕에서 열린 한 회의가 끝나고 나서였다당시 그가 나에게 했던 찬사는 너무나 대단해서 기억하면 얼굴이 붉어질 정도이다그러나 내가 사회주의자로 공개적으로 선언한 지금그는 나와 대중들에게 내가 시각장애인이자 청각 장애인이고그래서 특별히 실수할 수밖에 없다고 일깨우고 있다그를 만난 후 몇 년 사이에 내 지적 능력이 줄어든 게 틀림없다이번엔 당연히 그가 얼굴을 붉힐 차례다실명과 청각 장애가 사람을 사회주의로 이끄는 건지도 모르겠다어쩌면 맑스는 완전히 청각 장애인이며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는 시각장애인일 것이다모리스는 그의 촉감으로 그림을 그리고후각으로 벽지를 디자인했을 것이다.

 

정말 웃기는 브루클린의 독수리얼마나 비겁한 새인가사회적으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브루클린의 독수리는 이 참을 수 없는 체제우리가 막으려는 다수의 육체적 실명과 청각장애의 원인인 바로 그 체제를 옹호하고 있다만약항상 만일이지만우리가 브루클린의 독수리를 지원하고귀를 틀어막고시야를 뿌옇게 만드는 산업 폭군을 공격하지 않는다면브루클린의 독수리는 우리가 고통을 막으려고 하는 일을 기꺼이 도와줄 것이다독수리와 나는 전쟁 중이다나는 그것이 대표하고변호하고떠받치는 그 체제를 혐오한다다시 싸움을 걸 때에는 공정하게 싸워라내 생각을 공격하고내 목표에 반대하고사회주의에 논쟁을 걸어라나와 다른 이들에게 내가 보거나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은 공정한 싸움도 아니고 좋은 논쟁도 아니다나는 읽을 수 있다나는 시간을 투자해서 영어독일어프랑스어로 된 모든 사회주의 책들을 읽을 수 있다만일 브루클린의 독수리의 편집자가 이 책 중 몇 권을 읽을 수 있다면그는 아마도 더욱 슬기로운 사람이 되어서 더 좋은 신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내가 만일 사회주의 운동에 기여할 수 있는내가 가끔 꿈꾸는 그런 책을 쓰게 된다면 그 책의 이름은 산업적 실명과 사회적 청각장애라고 쓸 것이다.

 

1912년 11월 3뉴욕 콜

헬렌 켈러(Helen Keller)

 

*뉴욕 콜(The New York Call)은 1908년부터 1923년까지 뉴욕시에서 발행된 사회주의 일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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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2호] 코로나19 팬데믹과 자본주의 해체기에 관한 보고서

코로나19 팬데믹과 자본주의 해체기에 관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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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고서는 ICC 프랑스 지부에서 최근 열린 회의를 위해 작성되었고 세계 상황에 대한 다른 보고서들이 곧 이어질 예정이다.

 

 

재앙은 계속 악화하고 있다공식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자가 8,000만 명을 넘어서고 사망자도 170만 명에 달한다.[1] 세계 부르주아지의 여러 분파는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예방 정책 도입을 무모하게 지연하다가 결국 경제의 광범위한 부문을 잔인하게 폐쇄(Shutdown)한 이후팬데믹이 일부 국가에서 일시적으로 약화한 상황을 틈타 사회를 재개방함으로써 결국 훨씬 더 많은 희생자를 대가로 한 경제회복에 도박을 걸었다겨울이 다가오면 이러한 도박은 승산 없음이 분명한데적어도 중기적으로는 경제적으로나 의료적으로나 악화를 의미한다이 재앙의 부담은 국제 노동자계급의 어깨에 떨어졌다.

 

지금까지 자본주의가 역사적 쇠퇴의 마지막 국면즉 사회적 해체의 시기에 진입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 중 하나는, 1989년 동유럽 몰락으로 열린 현시대가 세계대전이나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같은 명백한 지표들이 정의하고 지배하던 자본주의 쇠퇴 이전 시대와 달리겉으로 명백한 상호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증상들이 급증함으로써 표면적으로 드러난다는 점이다[2]. 그러나 2020년 현재, 2차 세계대전 이래 세계사에서 가장 심각한 위기인 코로나 팬데믹은 자본주의 체제의 전면화된 부패를 나타내는 일련의 혼돈 요소를 결합함으로써 해체기의 확실한 상징이 되었다이러한 요소는 다음과 같다:

 

- 1967년에 시작된 장기적인 경제 위기[3]의 연장그리고 뒤이은 긴축 정책의 축적과 강화는 팬데믹에 대해 부르주아지가 부적절하고 무질서하게 대응하도록 내몰았고 이는 다시 지배계급이 중요한 시기에 생산을 중단함으로써 경제 위기를 엄청나게 악화시키도록 만들었다;

 

팬데믹의 기원은 과잉 생산이라는 자본주의의 고질적인 위기로 인해 지속적이고 가속적인 환경 파괴에 분명히 놓여있다;

 

이전의 동맹국들 사이에서 보이듯제국주의 열강의 지리멸렬한 경쟁 관계로 인해 팬데믹에 대항한 세계 부르주아지의 대응은 국제적인 대실패로 나타났다;

 

이 보건 위기에 대한 지배계급의 부적절한 대응은 각 나라 내부에서 부르주아지와 국가가 사회에 대한 정치적 통제력을 점점 더 상실해 가는 경향을 드러낸다;

지배계급과 국가의 정치적 사회적 능력의 쇠락은 놀라운 방식으로 이데올로기적 부패를 동반한다자본주의 최강 국가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정당화하기 위해 터무니없는 거짓말과 미신적인 난센스를 유포하고 있다.

 

따라서 코로나19는 이전보다 훨씬 분명하게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주요 수준에 대한즉 경제적제국주의적정치적이데올로기적 및 사회적 수준에 대한 해체 영향을 한꺼번에 통합해서 보여주고 있다.

 

현 상황은 자본주의가 무질서와 사회적 붕괴라는 마지막 시기에 진입했다는 분석에 대해서 모순적으로 간주한 많은 현상의 중요성을 또한 일소해버렸다이러한 현상은우리를 비판하는 사람들에 따르면우리의 분석이 의문시되거나 단순히 무시되어야 하는 증거로 통했었다특히몇 년 전 중국 경제의 놀라운 성장률은우리를 비판하는 이들에 따르자면해체기 심지어는 쇠퇴기가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반증처럼 보였다이러한 관찰자들은 실제로는 중국 산업 성장이 방출하는 현대성 향기에 사로잡혔다오늘날코로나 팬데믹의 결과의 하나로서중국 경제는 정체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저개발과 부패라는 덜 유쾌한 냄새를 방출하는 만성적인 후진성을 드러냈다.

 

ICC가 1989년부터 갖게 된 전망은일시적인 유행을 따르거나 낡은 공식에 얽매이는 대신에저변에 깔린 국제적이고 장기적인 경향의 맑스주의적 분석에 기반을 두고 도출해낸 전망이다그것은 세계 자본주의가 내부적 해체의 최종 시기에 들어섰다는 것이고이 전망은 충격적으로 확인되었다현재의 보건 대재앙은 무엇보다도 자본가계급이 체제에 대해 점점 더 통제력을 상실하고 있고 인류 사회 전체의 전망에 대한 지배력을 점점 더 상실하고 있음을 보여준다자본주의가 생산 양식의 역사적 쇠퇴의 효과를 억제하고 방향을 틀기 위해 지금까지 발전시킨 수단에 대한 자본주의의 지배력 상실이 심각해지는 것은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다.

 

게다가 현 상황은 자본가계급이 증대하는 사회적 혼돈을 막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전에는 통제할 수 있었던 바로 그 해체를 점점 더 악화시키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팬데믹쇠퇴해체

 

코로나 팬데믹이 왜 자본주의 해체기에 상징적인지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서 그것이 이전 시대에는 오늘날과 같은 방식으로 발생하지 않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물론 팬데믹은 이전 사회 유형에서도 알려져 있고고대 노예사회 말기의 저스틴 역병이나 봉건제 말엽의 흑사병과 같이 이전 계급사회의 쇠퇴에 파괴적이고 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그러나 봉건제 쇠퇴에는 해체기가 없었는데이는 새로운 생산양식(자본주의)이 이미 낡은 양식 내부에서 그것과 함께 형성되고 있었기 때문이다치명적인 전염병의 참상은 심지어 부르주아지의 초기 발전을 가속했다.

 

역사상 노동력 착취의 가장 동적인 체계인 자본주의 쇠퇴는 필수적으로 사회 전체를 포괄하며 어떤 새로운 생산 양식도 그 내부에서 출현하지 못하도록 막는다이것이 바로세계대전이나 프롤레타리아적인 대안 경로가 없음에도, ICC가 해체에 대한 테제에서 표현했듯이[4], 자본주의가 -쇠퇴(ultra-decadence)’의 시기에 진입하게 된 이유이다따라서 현재의 팬데믹은 현존 사회 내부에서 인류 생산력의 그 어떤 재생을 초래하지 않을 것이고대신에 우리는 이 팬데믹을 통해서세계 자본주의 전체가 전복되지 않는 한 인류 사회 전체가 붕괴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성을 희미하게나마 감지할 수밖에 없다전염병의 분출을 이해하고 방지하고 억제할 과학적 기술적 사회적 수단들을 개발한 (하지만 그것을 사용할 수 없는자본주의가코로나에 대한 대응으로 격리라는 중세적인 방법에 의지하는 것은썩어가는 그리고 스스로 만들어낸 생산력을 이용하는데 점점 더 무능해지는 한 사회의 난국을 증언한다.

 

자본주의 일생에서 전염병의 사회적 영향의 역사는 한 체제의 쇠퇴와 1914년에 시작된 그 쇠퇴기 내부에서 해체라는 특정 시기 사이의 구분에 대한 더 나은 통찰을 우리에게 제공한다자본주의의 상승과 그 쇠퇴 대부분 역사는 사실상 특히 선진국에서 전염 질환에 대한 의학과 공중 보건의 증대된 지배력을 보여준다보기를 들어 천연두와 소아마비의 정복 그리고 말라리아의 퇴치와 같이 공중위생 및 위생시설 증진은 이러한 진보 증거이다결국, 2차 대전 후에는 비전염성 질환들이 자본주의 주요 국가에서 조기 사망의 주된 이유가 되었다우리는 역학의 역량에 있어서 이러한 개선이 부르주아지가 주장하듯이 인류애적인 관심에서 발생했다고 상상해서는 안 된다결정적인 목표는 자본주의의 영구적인 위기로 인해 요구되는 착취의 강화를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국주의 블록의 군사적인 이해에 적합하도록 국민을 준비하고 최대치로 동원하기 위해 안정적인 환경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1980년대부터 전염 질환에 대한 긍정적인 추세가 역전되기 시작했다. HIV, 치카에볼라사스메르스니파, N5N1, 뎅기열 등과 같은 새로운또는 진화하는 병원체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이러한특히 동물성 바이러스 발달은 자본주의 주변 지역에서 도시 성장(이러한 성장의 40%는 거대한 빈민가의 증가가 차지한다), 벌목기후변화와 연계되어 있다역학이 이러한 바이러스를 이해하고 추적할 수 있게 되었지만 국가가 대책을 구현하는 것은 그러한 위협과 보조를 맞추는 데 실패했다코로나19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불충분하고 무질서한 대응은 전염 질환의 소생과 공중보건에 대한 자본주의 국가의 점증하는 태만그래서 최소한의 수준에서 사회적 보호의 중요성에 대한 무관심을 확인해 준다부르주아 국가에 의한 증가하는 사회적 무능력의 이러한 발전은 수십 년간 이루어진특히 건강 서비스의 사회적 임금에 대한 삭감과 관련된다그러나 공중보건에 대해 증가하는 무관심은지배계급 대부분에 의해 무책임하고 단기적인 대응이 선호되는 해체 시기라는 틀 안에서만 완전히 설명될 수 있다.

지난 수십 년에 걸친 전염 질환 통제의 진행에서 발생한 이러한 역전으로 끌어낼 수 있는 결론은 피할 길이 없다그것은 쇠퇴하는 자본주의가 최종 시기인 해체 시기로 이동했음을 나타낸다.

 

물론자본주의의 영구적인 경제 위기의 악화가 이러한 이동의 근본 원인인데이러한 위기는 쇠퇴의 모든 시기에 공통적이다그러나 바로 이 위기의 영향에 대한 관리또는 오히려 증가하는 부실 관리가 변했고해체라는 특정 시기의 특징인 현재 및 미래의 재앙의 핵심 구성 요소이다.

 

이러한 변형을 포함하는 데 실패한 설명들보기를 들어 국제코뮤니스트경향(International Communist Tendency)의 경우처럼그런 설명은 팬데믹은 이윤 동기 때문이라는 진부한 문구만 남긴다그들에게는 특정한 상황들재앙의 시기와 규모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는다.

 

팬데믹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반응은 마치 제국주의 열강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제국주의 군사 목적으로 무기화하고 대량 격리를 이러한 측면에서 국민 동원인 것 마냥냉전 시대의 틀로 돌리는 것으로 설명할 수 없다이러한 설명은 주요 제국주의 열강들이 더는 제국주의 블록으로 조직되지 않으며그들의 전쟁 목적에 따라 자유롭게 국민을 동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망각한다이는 해체기의 근본 원인인두 주요 계급의 사이에 놓인 교착 상태의 핵심 요소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제국주의 블록의 군사적 야망에 도움이 되는 것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백신이다[5]. 부르주아지는 이러한 측면에서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부터 교훈을 배웠다몇몇 미국 항공모함과 프랑스 항공모함 하나가 코로나19에 의해서 작동 정지된 것에서 보이듯이통제되지 않은 감염증은 군부에는 엄청난 부담이다대조적으로치명적인 병원체를 엄격하게 통제하고 유지하는 것은 항상 모든 제국주의 열강의 생물학적 전쟁 능력의 조건이었다.

 

이것은제국주의 열강들이 보건 위기를 그들의 경쟁자들을 희생해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증진하는 데 이용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그러나 이러한 노력은미국이 남긴 세계 제국주의 지도력의 진공 상태가 증가하고 있고중국을 포함해서 그 어느 다른 열강도 이 역할을 맡을 수 없거나 대안적인 견인 축을 형성할 수 없음을 전반적으로 보여주었다제국주의적 충돌의 수준에서 무질서는 코로나 대재앙에 의해 확인되었다.

 

오늘날 제국주의 국가에 의한 대량 격리에는 확실히일상생활에 군대의 더 많은 투입과 국가에 의한 전쟁 같은 권고문 사용이 병행된다그러나 국민의 이러한 제한에는노동자계급이 비록 조용하지만 패배당하지 않고 남아있는 시기에 사회적 동요라는 위협에 대한 국가의 두려움이 상당한 정도는 동기로 작용한다.

 

자본주의 쇠퇴의 모든 시기의 공통적인 특성인 근본적인 자기 파괴 경향은 해체기에 지배적 형식이 세계대전이 아니라 세계 무질서로 바꾸었다그러한 세계 무질서는 사회와 인류 전체에 대한 자본주의 위협을 증가시킬 뿐이다.

 

 

팬데믹과 국가

 

이 팬데믹을 특징짓는부르주아지의 통제력 상실은 국가라는 도구에 의해 매개된다이 재난이 해체 시기 국가자본주의에 관해 폭로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상부구조의 전복에 관한 ICC의 팸플릿 자본주의의 쇠퇴에서의 언급을즉 사회 안에서 국가 역할의 증대는 모든 생산양식에서 쇠퇴의 한 특징이라는 점을 환기할 것이다국가자본주의 발전은 이러한 일반적 역사적 현상의 극단적 표현이다.

 

1952년 프랑스 코뮤니스트 좌파(GCF)[6]가 지적했듯이국가자본주의는 자본주의 모순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라모순의 영향을 지연시킬 수 있다 하더라도자본주의 모순의 표현이다따라서 쇠퇴하는 사회를 유지하는 국가 능력은 그것이 아무리 개입하더라도시간이 지날수록 약화할 수밖에 없고 결국 그것이 억제하려 애쓰고 있는 바로 그 모순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된다자본주의의 해체는 지배계급에 의한 통제력 상실이 증가하고 그것의 국가가코로나가 극적으로 보여주듯이사회적 진화의 지배적 경향으로 되는 시기이다.

그런데이러한 통제 상실이 국가의 모든 활동 영역에서 균일하게 전개될 거라고또는 그것이 모든 나라를 동등하게 강타하거나 단지 단기적인 현상에 그칠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국제적인 차원에서

 

동유럽 몰락과 그 결과 서구권 해체와 더불어, NATO와 같은 군사 기구들은발칸전쟁과 걸프전의 경험이 보여주었듯이응집력을 잃게 되었다군사적 전략적 수준에서 혼란은 모든 국제기구가 다른 속도로 위력을 상실하는 것과 병행되었다그러한 기구들보기를 들어 사회적 차원에서 국제보건기구(WHO)와 유네스코경제적 차원에서 EU(예전의 형태로서), 세계은행국제통화기금(IMF), 국제무역기구(WTO) 등은 2차 대전 이후 미국 제국주의의 주도 아래 세워졌었다이들은 미국의 지도력 아래 서구권의 안정성과 부드러운 힘(soft power)’을 유지하도록 고안되었다.

 

이러한 국제 조직의 해체와 약화 과정은 2016년 미국 대통령 트럼프 선출로 특히 강화되었다.

 

팬데믹 동안 WHO의 상대적인 무기력은 이러한 측면에서 웅변적이고각 나라가 각자 자신만의 게임을 무질서하게 진행해서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마스크 전쟁과 이제 곧 있을 백신 전쟁, US의 WHO 탈퇴 선언이 기구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조작하려는 중국의 시도 등에 대해서는 부연 설명이 따로 필요 없을 것이다.

 

국제기구의 무기력과 그 결과 경쟁하는 국가 사이에서 모두에 맞서는 각자’ 경향은 병원균 위협을 국제적인 재앙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국제 경제 차원에서무역 전쟁과 지역화 경향의 가속화에도 부르주아지는 보기를 들어 경제 폐쇄 초기인 3월에 전 세계적으로 달러 유동성을 유지하기 위한 연방 준비은행의 행동과 같은 본질적인 대책을 조정할 수 있었다독일은 처음 좀 머뭇거린 후에는 프랑스와 함께 유럽연합 전체에 대한 경제적 구제 패키지를 조정하기로 했다.

 

그런데도 국제 부르주아지가 여전히 세계 경제 주요 부분의 완전한 붕괴를 막을 수 있다면코로나19에 지연되고 무질서한 반응으로 인한 폐쇄로 발생한 경제성장 및 세계무역에 가해진 엄청난 장기적 피해를 피할 수는 없었다. 2008년 금융 위기에 대한 G7의 대응과 비교해서 현 상황은 경제 위기를 늦추기 위한 행동을 조정하는 부르주아지의 능력이 장기적으로 고갈되었음을 보여준다.

 

물론, ‘모두에 맞서는 각자’ 경향은 항상 자본주의의 경쟁적 성질이고 이것은 국가 단위로 분할한 까닭이기도 하다그러나 오늘날 제국주의 블록 규율과 전망의 부재는 경제적 난국과 쇠락의 시기에 이 경향이 소생하도록 자극했다예전에는 특정 분량의 국제적인 협력이 유지되었지만코로나19는 그것이 점점 부재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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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적 차원에서

 

해체에 대한 테제 제 10항에서 우리는 세계 전쟁이라는 전망 소멸은 국가 자체뿐만 아니라 각 국가 내부에서 분파 간의 경쟁을 격화시킨다고 지적했다코로나19와 관련해서 국제적 차원에서 혼란과 준비 부재는 각 국가 내부에서특히 행정 차원에서 다소 재현되었다:

 

우리가 강조해야 할 자본주의 사회 해체의 주요 특징 하나는 정치 상황의 진화를 통제하는 것이 점점 더 곤란해지는 것이다.” 제 9.

 

이것은 스탈린주의 체제(지배계급 자체를 정의하는 일당 국가)의 기형적 본질에 의해 심화한 동유럽의 몰락에서 주요한 요소였다그러나 만성적인 경제위기전략적 전망의 상실 그리고 외교 정책의 대실수국민 혐오 등과 같이 전체 부르주아지 집행위원회’ 안에서 충돌의 기본 원인은 이제 선진 자본주의를 강타하고 있는데이점은 어느 곳에서보다도 포퓰리스트이거나 포퓰리스트의 영향을 받는 정부들특히 도널드 트럼프나 보리스 존슨이 이끄는 당이 권력을 잡은 주요 국가에서 현 위기에서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이러한 주요 국가에서 충돌은당분간 더 민족주의적 정책을 따르는 다른 국가에서 불가피하게 반향을 일으킨다.

 

이전에 두 나라는 세계 자본주의의 상대적 안정성과 설득력의 상징이었다오늘날 부르주아지의 한심한 행태는 그들이 이제 불합리와 무질서의 등대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미국 행정부와 영국 정부는 민족주의자들의 호령 안내를 받으며 코로나 재앙에 대한 대응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지체했으며 심지어 국민이 위험을 경시하도록 부추겼다그들의 학계 권위자들의 충고를 토대부터 약화하고 바이러스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동안 경제를 개방하고 있다.

 

두 정부는 코로나 위기의 전야에 팬데믹 TF를 해체했다.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M)’ 시위에 대한 대응에서 트럼프가 군사적 규약을 폐기하고 사법부를 허위적으로 조작한 것이나존슨이 민간 서비스국을 최근에 분열시킨 것 등의 보기에서 보이듯이두 정부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고의로 민주국가의 확립된 절차를 훼손하고 다른 국가부서 사이에 불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모두에 맞서는 각자의 시기에 각 민족 국가들이 저 자신의 길을 걷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건 사실이다그런데다른 국가에 비해 더 현명했던 국가마저 점점 더 분열과 통제력 상실에 직면하고 있다.

 

해체에 대한 테제에서 언급된노쇠한 자본주의는 2의 아동기로 회귀하고 있다는 생각을 포퓰리즘은 증명하고 있다포퓰리즘 이데올로기는 이 체제가 단순히 선동적인 구호들과 분열적인 결정 등을 통해서 자본주의적 역동성과 더 작은 관료주의라는 어린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는 것처럼 가장한다그러나 실상은 해체기에 놓인 쇠퇴한 자본주의가 모든 임시방편을 소진해 가고 있다.

 

포퓰리즘이 프롤레타리아 부활의 부재로 인해 일시적으로 방향성을 잃은 불만스러운 사람들의 인종 혐오와 소부르주아적인 환상에 호소한다면포퓰리즘 강령 또는 반대강령은 부르주아지와 그것의 국가 내부에서 발전했음은 현재의 보건 위기로 볼 때 분명하다.

 

선진국 중 미국과 영국이 팬데믹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 비율을 갖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런데대다수 선진국에서 국가의 경제기관은 대조적으로 안정성을 유지하며 그들의 경제가 자유낙하 상태에 빠지는 것을 방지할 급속한 비상 대책을 펼쳤고 국민에 대한 대량실업의 효과를 지연시켰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실제로우리는 중앙은행들의 행동 결과의 하나로서경제에 대한 국가의 역할이 커지고 있음을 똑똑히 보고 있다보기를 들어서,

 

모건스탠리(투자은행)는 G4 국가(미국일본유럽 및 영국)의 중앙은행이 회기 중에 그들의 대차대조표를 다 합쳐서 국내총생산(GDP)의 28%로 확장할 것으로 본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동안에 해당 수치는 7%였다”(출처파이낸셜 타임즈 2020년 6월 27).

 

그런데근저에 국가자본주의 발전 전망은 위기와 자본주의의 해체에 대한 국가의 통제 능력이 점점 약화하고 있다는 징후이다.

 

사회생활 전반의 모든 측면으로의 국가 개입의 증가하는 무게는 사회 전반의 점증하는 해체에 대한 해답이 아니다.

 

전통적인 자유주의 정당들 또는 그들 중의 중요한 부분이 포퓰리즘이 자행하는 파괴 행위에 대항해 이 나라 내부에서 강력하게 저항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이 나라에서 국가 부르주아지의 이 부분은 특히 대중 매체를 통해서 반대의 목소리를 형성하는데이러한 반대는 우스꽝스러운 포퓰리스트적 광대 짓과 마찬가지로포퓰리스트의 판도라 상자를 지금 닫을 수 있는 실제 역량은 없을지라도 민주적 질서와 합리성으로 회귀에 대한 희망을 대중들에 제공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 나라에서 부르주아지는 프롤레타리아트를 결코잊지 않았고 때가 오면 프롤레타리아트의 모든 헌신적인 기관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다.

 

 

이 해체의 시기에 경험한 부메랑효과

 

2017년의 해체에 관한 보고서는 60년대 말 경제 위기 출현 후 첫 몇십 년 동안 부유한 국가들은 위기 효과를 체제 주변으로 밀어낸 반면 해체기에는 이 경향이 역전되거나 자본주의 핵심 국가로 되돌아오는 것 같다는 점을 강조한다테러리즘의 확산난민과 이주민의 대대적인 유입대량실업환경 파괴 그리고 치명적인 감염병이 유럽과 아메리카의 문제가 된 것에서 보기를 들 수 있다세계 최강의 자본주의 국가가 팬데믹으로 가장 고통받는 현 상황은 이러한 경향의 확인이다.

 

보고서는 또한 다음과 같이 통찰력 있게 언급했다:

 

“...우리는 (해체)가 자본주의 위기 발전에 어떤 실제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만약 현재의 포퓰리즘 상승으로 몇몇 유럽의 주요 국가에 이러한 경향이 권력을 잡게 된다면그러한 해체 영향이 발전하게 될 것이다.”

 

현재 재앙의 가장 중요한 측면 중 하나는 해체가 실제로 파괴적인 방식으로 경제에 재()반영되고 있다는 점이다그리고 이 경험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지속적인 경제 전쟁 또는 영국 정부가 자살적이고 파괴적인 브렉시트 경로를 추구하겠다는 결정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더 많은 경제적 혼란에 대한 포퓰리즘의 갈망을 줄이지 않았다.

 

상부구조 해체는 그것을 낳은 자본주의적 경제 토대에 보복을 하고 있다.

 

경제가 흔들리면그것에 기반을 둔 모든 상부구조가 위기와 해체로 진입한다 … 한 체제의 귀결로 시작하지만쇠퇴 과정에서 아주 종종 가속 요인으로 된다.” 자본주의의 쇠퇴제 1

 

2020년 7월 16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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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0년 12월 29일 현재. (이 글은 2020년 7월에 작성되었다그리고 수치만 12월 29일 자로 업데이트했다 – <역자주>)

 

[2] 이렇게 인지되는 문제는 2017년 ICC 22차 총회로부터 해체에 관한 보고서 International Review」 163호에서 언급되었다.

 

[3] 50여 년간 지속되어 오고 있는 이 장기적 경제 위기는 선진국에서 20년 동안 지속된 전후 번영기에 뒤이어 1960년대 말에 출현했다이 위기의 악화는 몇몇 경기 침체 및 회복에 따라 잠시 중단되곤 했지만 이러한 중간 시기들은 근본적인 난국을 해결할 수 없었다.

 

[4] International Review」 107, 1990

 

[5] 페니실린의 항진균 성질은 1928년에 발견되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그 약은 미국에 의해 대량생산되었고 23십만 투여량 분량이 1944년 6월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위해 준비되었다.

 

[6] Gauche Communiste de France – ICC의 전신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6924/report-covid-19-pandemic-and-period-capitalist-decompos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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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 : 사랑하는 딸에게

칼 맑스 :  사랑하는 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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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 : 1818년 5월 5일~1883년 3월 14일)

 

 

맑스의 예언자 수염

 

맑스가 알제(알제리의 수도)에 머물 때 예언자처럼 하고 다녔던 수염을 면도하였고, 덥수룩한 머리카락을 짧게 하였을까?

 

1882년 4월 28일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의 추신에서 맑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그런데 햇볕 때문에 예언과 같은 내수염과 모발을 제거해버렸어. (딸들은 간직하고 있는 것이 좋다지만) 그러나 알제의 이발사가 제단에 내 모발을 바치기 전에 사진을 찍어 두었네. 다음 일요일(4월 30일) 원판을 가질 걸세. 귀하가 마르세이유로부터 보낼 복사판을 볼 걸세. 8주간 계속 발랐던 콜로디온 성분의 칠을 볼 걸세. (바바리아의 루드비히 2세 스타일) (사실 나는 하루도 완전한 휴식을 갖지 못했어). 싫어하는 일에도 환한 얼굴을 하였다네." 

 

이 사진의 몇 복사원판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원판 하나를 날짜(착오로 1882년 2월 말이 찍혀있다)를 넣어 둘째 딸 라우라에게 선물했고, "나의 사랑하는 귀여운 예니"라고 써서 보낸 또 다른 원본의 날짜(1882년 4월 말)는 정확하다. 세 번째 원판은 엥겔스에게 보냈다. 맑스는 자기 사진을 친구 쇼르레머와 와이트섬의 벤트너에서 간호해 준 의사 부인에게도 보내고 싶어 했다.

 

우리가 지니고 있었던 맑스의 마지막 모습이다. 이 사진은 자주 재생되었다. 머리카락과 흰 수염, 콧수염과 눈썹은 검은 색깔이나 코 양쪽 면은 더 하지만 눈가에는 보일 정도로 주름살이 배어 있다. 있는 그대로 맑스를 보여 주는 아름다운 사진... 사진 찍는 자세의 어느 것도 건방진 곳 없다.

 

이상하게도 사진에서 맑스는 병자의 얼굴이 아니다. (사진작가가 약간 손질한 것일까?) 8주간의 치료 기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병자 게임에서 건강한 얼굴을 하고 있음을 당신네들은 볼 것"이라고 적어 놓았다.

 

4월 말 맑스는 새롭게 건강을 회복하여 산책을 시작하였고, 알제 열대 식물원과 프랑스 군함을 보러 다녔다. 엥겔스는 그의 사진을 보면서 맑스가 새롭게 아주 좋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맑스는 라우라에게 사진을 보내면서 "어떤 예술도 사진보다 사람 모습을 이상하게 만드는 것은 없을 것이야."라고 내린 결론은 애교스러운 표현일까?

 

아직도 의문은 남아 있다. 맑스가 그의 계획을 실행했을까? 정말 그는 예언자의 수염을 희생했을까?

 

1882년 4월 말 이전 모든 서신 교류 어디에도 수염 없는 맑스의 얼굴을 찍은 사진을 발견하지 못했다. 맑스의 모든 편지교환자 중 수염과 덥수룩한 머리칼의 그를 보는데 습관이 된 모든 이들은 자본론의 저자의 얼굴이 완전히 변한 사건에 아무도 조금의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럼 여기서 어떤 결론을 내릴까?

 

그러니까... 마지막 순간 맑스는 당초 계획을 포기하고 그렇게 사랑하는 딸들을 기쁘게 하려고 수염과 머리카락을 간직하였다고...

 

*마르벤베스퍼는 알제에서 백방으로 사진사와 맑스를 면도한 이발사의 흔적을 찾으려고 끈질기게 집요한 조사를 벌였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큰 딸 예니, 둘째 딸 라우라 셋째 딸 엘레노어 그 뒤에선 마르크스와 엥겔스(1864년).jpg

 

 

1882년 5월 6일 둘째 딸 라우라에게 보낸 편지

 

라우라 라파르그에게

몬테칼로(1) 러시아 호텔

 

나의 사랑하는 카카두(2)

이곳 몬테칼로에 도착한 지 몇 시간 되었구나. 엥겔스에게 띄운다고 알린 편지내용도 살펴볼 시간이 없을 지경이야(어쨌든 네가 받을 이 편지보다 하루는 늦게 받을 것이야).

이제 쓸 일용품을 사러 가야 하는구나. 너와 프레드(3)에게 사진 한 장씩을 동봉하여 보낸다. 어떤 예술도 사진보다 사람 모습을 이상하게 만드는 것은 없을 것이야.

 

늙은 닉(4)이

 

 

1882년 3월 27일 첫째 딸 예니 롱게에게 보낸 편지

 

예니 롱게에게

 

1882년 3월 27일 월요일

 

내 사랑하는 애야(5)

오늘 (3월 27일) 네 편지를 받았다. 네 소식을 접할 때 마다 늘 기뻐한다는 것을 너도 알지. 내 편지는 나쁜 어느 것까지도 너에게 숨기지 않았다. 앞서 너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 건강에 차도가 있다고 너에게 알린 것이 지어낸 말이 아니란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제일 힘들었던 불면증이 사라졌고, 식욕이 다시 돌아왔고, 기침의 발작증세가 완화되면서 기침하는 횟수가 많이 줄어들었단다. 물론 효험이 있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번은 아직도 발포성 약을 바르고 있다. 결국 왼쪽 켠의 늑막염 (피부 깊숙한 곳에는 약의 효과가 미치지 못한데) 치료는 별로인 것 같아.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계속하는 이 변덕스런 날씨 – 천둥, 무더위, 추위, 비, 아주 드문 화창한 날 –  에서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한없이 마르고 더운 공기인 계절의 공기란다! 어저께 날씨가 어느 정도 좋아졌어. 하루 종일 따뜻해서 산책을 했었지. 오늘은 잿빛 하늘에서 폭우가 치더니 바람소리가 세차다. 지겨울 정도로 이런 날씨가 계속되니 좋다는 이곳도 이제는 끝난 거지. 12월을 포함한 달부터 알제리에서 이런 날씨를 본 일이 없었다는 거야. 기러기를 사냥하기 전에 반드시 사전조사를 했어야지. 이는 날씨에도 해당되지.

우리끼리 얘기지만 와이트 섬의 날씨도 그저 그랬으나 내가 런던에 다시 돌아왔을 때 내 건강상태가 좋아진 걸 보고 사람들이 놀랬었지. 그리고 그 섬의 벤트너 마을에 있을 때는 아주 편했어. 반면에 런던에서 엥겔스의 권고 극성이 아빠의 건강을 헤쳐버렸단다. 그리고 라파르그 이 허풍선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시원한 공기를 마시면서 “걷는 것” 이라고 생각한 거야. 마다 할 수가 없었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런던을 벗어나야 하겠다는 조급함이 앞섰거든. 너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도 너를 파멸 시킬 수 있거든. 이와 같이 환자를 위험에 빠트리는 것이 없다고!

나의 사랑하는 얘야. 너에게 얘기한 것처럼 접대 잘하고 단순하면서도 친절한 사람들을 만난 것이 나에게는 행운이다. 이 빌라호텔에는 스위스 로망지방의 스위스인들과 프랑스 본토의 프랑스인들이 있는데 독일인이나 영국인은 없단다. 스테판 의사의 지시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모리스 카스텔아즈씨가 있다. 님(Nym)(6)은 더는 친절하지도 신경을 쓰지도 않고 있어. 어쨌든 얘야, 애비에게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모든 사람이 네 애비에게 무관심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돌봐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병자”의 특권은 말하지 않고 구석에 쳐박혀 있는 거란다. 혼자 있을 때는 혼자 있고 더는 사람과 사귀기 싫을 때는 그렇게 할 수 있는 특권 말이다.

이제 프랑스나 영국 일간지를 꼼꼼히 보는 것도 내동댕이 쳐버렸어. 속보만 읽고 있지. 읽고 싶은 것은 파업에 관한 롱게의 기사란다. 그의 편지 중 어느 편지에선가 라파르그는 롱게가 잘 썼다(7)고 하더라. 마사르 에밀 마사르(8)의 어리석은 짓거리에 대해서는 네가 알려준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전혀 없어.

히르쉬(9)에게 그의 “아담-컨트리뷰션” 이라는 기고문을 보내달라고 편지해줘. 여기 날씨가 좋을 때 나르는 융단(10)으로 죠니를 오게 하고 싶네. 내 귀여운 손자인 무어인, 아랍인, 베르베르인, 터키인, 니그로(11), 바벨탑과 그들의 의복(상당히 시적인 면이 있는)을 보고 놀랄 것이나, “질서” 를 세운 프랑스인들과 슬픈 영국인들이 섞여 있는 이 동양 세계! 내 귀여운 해리, 고상한 월프, 다 큰 파(12)에게 안부를 전해다오.

나의 친애하는 애야. 잘 지내기를 바라면서 롱게에게도 내 인사를 전해다오.

너의 올드 닉

 

재간(13)때  자본론 을 다듬거나 고칠 생각하면 안 된다.

 

 

 

 

 

<주>

 

1. 몬테칼로 : 모나코 수도

2. 카카두(Kakadou) :  맑스의 둘째 딸 애칭

3. 프레드 :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일반 호칭. 프리드리히를 프레드라고 함.

4. 닉 : 맑스의 별칭. 애칭

5. 이 편지는 영어로 되어 있으며 피에르 클랭카르가 번역했다.

6. 님(Nym) : 헬레나 델무트

7. 로안(Roanne) : 프랑스 서남쪽 섬유도시. 이 도시의 공장파업에 관한  라 주스티스 에 게재된 기사를 말함.

8. 에밀 마사르(Emile Massard) : 프랑스 사회주의자. 게드 신문인 르 시투와엥  기자 편집위원이었으나 편집상 충돌로 상기 신문을 떠남.

9. 칼 히르쉬 : 파리로 이민 온 독일 사회민주주의 기자. 사회주의 계열 여러 신문에 기사를 썼고, 아담 부인이 발행하는 공화파 출판물인  누벨 르 뷰 에도 기고하였다. 이 출판물로 인해 “아담-기부금” 공식이 생긴다. 이 문제의 기사는 “독일의 사회주의” 라는 제목으로 실림.

10. 일식 표현과 대등. 니벨룽겐(Niebelungen)의 에피소드에서 암시한 요술 모자 덕분으로.

11. 아프리카 흑인. 당시는 경멸의 뜻이 없이 사용하였을 것으로 보고 있음. 

12. 맑스의 다른 손자들. 해리, 애칭 월프의 에드가 그리고 마르셀은 맑스 가족 거의 모두가 애칭으로 불렀다.

13. 자본론 독일어 3판은 맑스 사망 다음해인 1884년에 출간됨.

 

 

「알제리에서의 편지」 ,  정준성 옮김,  빛나는전망,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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