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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화관제

등화관제

 

-서홍관

모른다고 하라.
네가 눈뜨고 본 일을
끝내 모른다고 하라.
등화관제의 어둠속이어서
한 길 앞도 분간 못한 채
먼지만 꿈속같이 일어
불 끄라는 고함소리에
이불 속에 엎드려 고개만 처박다가
입과 코가 막히고
눈과 귀가 가리워져서
누이가 도적에게 끌려간 것도 모르고
애비가 매맞고 피흘리는 것도 모르고
가까운 곳에서 들리는
신음소리 비명소리와
멀리서 다그치는
붉은 빛 구조신호를
어둠을 찢는 듯한 호루라기 소리에 기가 질려
아아 우리는 끝내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하라.

 

영리하지 못한 나는 매일 처럼 주변과 사소한 불화를 일으키고 아버지는 내게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하라 매일처럼 말씀하신다. 가난하게 살아오지 못한 내가 진실을 말할 자격도 들을 자격도 없다 하며 거짓된 세상을 등화관제 속에 보지 않는 것이 영리한 길이라고  매일처럼 그렇게, 우려와 걱정과 내 아들이 빨갱이가 되는 꼴을 못 보겠다는 분노를 섞어서, 그렇게.

 

운동에 대해서 고민했던 청년이라면 거의 누구나 다 겪는 일이지만 그 보편적인 것이라도 내 문제가 되면 안타깝고, 그래서 아프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중요한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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