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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들의 수다

다섯 여자가 감자탕 대자 하나를 시켜놓고 둘러 앉았다.

네명이 40대 초반의 동갑내기고, 하나가 30대 중반.

홈에버 투쟁 9개월,

11명이 조직적으로 복귀를 했다고 하여,

그 중 절대로 복귀하지 않을 것 같던 한 여자,

40대 초반 그 여자의 동갑내기 친구들이

간만에 위로겸 격려겸 의지 다짐 겸 해서 자리를 만들었다.

아마도 그 여자는 복귀 결정하고 나서

가슴에서 흐르던 피눈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 였을 것이다.

 

그리고,  또 친구들은 그거 그렇게 생각 안해도 된다고,

지금 처럼 서로 의논해서 조직적으로 들어가서

당당하게 조끼입고 안에서 싸우는 사람들이 있어야

패배안고 들어가 각서쓰는 사람들 더 안만들 수 있고

투쟁에 새로운 힘이 될 거라고

너 같은 '강성'들이 함께 들어가기로 한 건 잘 한 거라고.

그러니 힘내라고...이야기 하고 싶어서 였을 것이다.

 

이야기들이 흐른다.

시아버지 제사 장보러 갔다가

핸드폰이며 지갑을 몽땅 잃어버렸다는 그 여자를 우선은 위로했고,

투쟁 시작부터 지금까지 '복귀'라는 단어와 연관된 사건과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가 나온다.

 

9개월을 넘어 가는 투쟁속에

하나 둘 제 사정을 늘어 놓다가 맥없이 복귀하고선

등 돌려 모르는 척 하는 이,

인사를 해도 안받아 주는 이들,

복귀 하는 아침까지도 절대로 안하겠다고 다짐해놓고선

결국 복귀한 사람 보며 상처받았던 일,

온갖 고생 함께 하다가 얼마전에 들어가선

노조 탈퇴서 쓰고, 각서까지 썼던 사람들,

오늘 매장안 집회에서 조끼입고 일하며 밝게 웃어주던 엇그제 복귀한 사람들과

먼저 들어가 회사옷 입고 일하며 모르는 척 눈길을 피하느라 분주한 사람들의 그 분명한 대비에 대해

....

들어갔으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주절 주절

서로 지혜를 늘어 놓았다.

 

그 사이 사이 쉬지 않고 딱부러지계 똑똑하고 씩씩한 30대 중반의 여자, 그 여자의 동지는

그 여자에 대한 못 마땅한 점을 콕콕 집어 이야기해준다.

사람만 좋아서는 자기를 이용하는 사람들한테 싫은 소리 한 마디 못하고

믿을 사람 못된다고 아무리 얘기해줘도

온갖 얘기 다 받아주고 달래다가 결국 뒤통수 맞고

맨날 상처받고선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한다며

나쁜 사람들한테는 딱부러지게 얘기도 해야된다고...

우리를 밟고 서려는 사람들한테 잘 해주는 게 이해가 안된다고, 그거 가식 아니냐고...

회사에서 일할 때도 맨날 구석에서 묵묵히 할 일 다 해놓고

그 성과는 남한테 돌려주고

남들은 대충 일해놓고 자기 얼굴 내고

직장 상사들한테 적절히 대처해서 사는데..

제 밥그릇도 못챙기면서 맨날 사람들한테 좋은 소리만 하는...언니가... 진짜 문제라고...

 

"술 무라. 니 여 뭐 할라고 따라왔노."

 

우직한 모습과 달리 섬세하고 여린 감성을 가진,

사람만 좋은 그 여자가 농담처럼 안달복달하는 동생의 말을 끊는다.

또 동생은 그 여자의 그 사람만 좋은 예를 찾아 들이댄다.

 

"그래 남들한테 싫은 소리도 못하면서, 싸움할 때는 또 혼자 싸워서 불리한 상황만들고...

전에 포항가서도 남들은 나중도 생각해서 말도 가려하는데,

들어가서 일할 때 같은 거는 생각도 안하고 혼자서 싸워가지고는...지금 사람들이

그거 걱정하는데, 자기는 모른다니까!"

 

"그때는 눈이 확 뒤집어 지더라. 뭐. 너무 억울한기라. 그전에 100인가 하는 놈들한테

방패로 머리한 대 맞았는데, 억수로 아픈기라. 근데 거 있다가는 혼자 죽어도 내만 억울타 싶어서

어지러워도 안간 힘으로 나왔다 아이가. 그런데, 그때 딱 점장이 눈에 띄는거라.

얼마나 억울하던지. 지 때문에 내가 정규직이 못되고 맨날 힘들고 어려운 일만 하는 비정규직에 머물러 있는데, 머리도 아파 죽겠고. 그래서, 막 퍼댔다 아이가.

내가 원래 그런 못하는데 욕이 절로 나오는 기라...금마 얼굴이 하얘지데...

내가 노조 하면서 그래 됐다 아이가"

 

- "잘 했다. 그런 놈들 한테는 그냥 욕하는 게 무기가 되기도 한다. 뭐"

 

"내가 노조 하면서 이런 일이 자주 있다. 며칠 전에는 길거리에서 차를 몰고 나오는데

길을 막고는 아무리 경적을 울려도 안비켜 주는기라. 결국 지만 신호받고 휑가고 나는 신호 걸렸는데..

어데 있노. 따라 갔다 아이가. 지가 150 밟으며 나도 그래 밟고...신호 받고 서서 차문 내리라 했다 아이가.

야 이 새끼야. 니 내가 여자니까 몰랑하게 보이나?..하면서 성질을 있는 대로 냈더니만

그냥 가더라...허허"

 

아팠다. 그 여자들의 친구들이 모두.

 

- " 평소에 얘기하고 살아야 돼. 그렇게 폭발한다니까. 그게 니가 당당해진 것일 수도 있는데

가슴에 응어리가 많아서 폭발하고 있는 것이기도 해. 싫은 거 싫다고. 당신이 그렇게 하니까

내 기분이 나쁘다. 등..내 감정을 밝혀서 알려줘야 해. "

 

'내가 친정에서도 시댁에서도 맏이 아이가. 그래서 참는 게 편하다. 언젠가 드러냈다가

나중에 더 힘들어 지는 기라. 그때 부터는 그냥 참는다. 그게 편하니까. 그라다 보면

그냥 그 사람들이 이해가 되서. 나는 내가 이용당한다는 생각도 안하거든.."

 

- "그러니까 노력이 필요한거더라. 연습도 하고. 참고 참고 하다가 오래 묵혀 두지 말고

그때 그때 감정을 털어내야 내가 편하고 타인도 편해져. 할 말을 할까 말까 하다가

용기내서 하고 나면, 더 자유로와 져."

 

- "근데, 자기 감정을 못 보는 사람은 자기가 참고 있는 줄도 몰라. 습관적으로 그냥 참다가, 폭발할 때

참았다는 걸 알게 돼."

 

이런 여자들이 있나.

저마다 그런 인간들이었다.

그 동갑내기 여자들이.

그래서, 저마다 그런 자신을 안고 사느라 힘들어 본 적 있고

그래서, 또 저마다 서로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알아 버린다.

아프다.

 

"그래도, 투쟁하면서 많이 배웠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뭔지.싸움할 때는 내 할 말 잘 하는데..

 그냥, 보통때는 그 사람도 그럴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러게...분명한 적들앞에서 전체 문제로 싸울 때 그렇게 분명한 인간들이, 우찌 자기 문제로 싸울 때는 그게 안되나. 일상으로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아니다. 싫다를 못해. "

 

- " 그런데, 분명히 그건 딛고 서야 되는 거야. 나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를 위해서. 자유를 위해서."

 

술 잔이 오고 가고...공감이 오고 간다.

그 자리 여자들, 그 동갑내기 여자들

그 중 누구에게든, 자기 묵은 감정을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툭-하고 눈물을 떨어 뜨릴 것만 같다.

이 아픈 여자들아.

 

...

그런데, 그 여자가 그 자리에서 해고 통지를 받았다.

그 여자의 동지에게 문자로 과장이 미리 알려 주었다.

지금 그 감자탕집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40대 초반의 여자와 30대 중반. 두 여자. 홈에버 조합원.

복귀자 중 최강성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들을 분리시키고, 복귀자들을 흔들 것이다.

조끼를 벗기려 할 것이고, 각서를 쓰라고 할 것이다.

물론, 그 두 사람은 해고를 인정하지 않고

출근 투쟁에 들어간다.

 

이건 새로운 시작이다.

이랜드 박성수는 쉼없이 싸움을 걸어오고 있다.

자신이 점할 수 있는 유리한 지점을 끝까지 끈질지게 확보하려고 안간 힘이다.

땅따먹기의 마지막 순간처럼, 최대한 더 확보하려고.

사람들 사이에 있는 다른 마음을 이용해서...

 

감자탕집에서 복귀를 위로하고 현장 투쟁을 다짐하려던 여자들은

해고에 맞선 복직 투쟁과 다시 이어지는 싸움을 위해

서로의 어깨를 다독인다.

 

"고맙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 함께 있어줘서.."

 

....

짜식~ 고맙긴.

미안하다. 많이. 힘이 이렇게 밖에 안되어서.

사람만 좋아도 돼.

사람이 좋아야지. 나쁘면 써.

넌 이미 힘있는 사람이야. 속깊은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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