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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짓돈 연대, 품앗이로 만든 울산대안문화공간..4개월 노동끝에 드디어 개관하다.

문득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가을이 와 있다.

늦 봄에 첫삽을 뜨고 모두 휴가 떠난 텅빈 도시의 한 귀퉁이 지하에서

흐르는 땀을 힘삼아 보낸 여름을 지나, 이렇게 가을을 만날 때까지,

4개월, 120일. 정말 빡세게 노동했다.

부족한 공사비용을 메꾸려면, 그렇게 몸이 고생할 수 밖에 없었다.

육체 노동의 강도가 견딜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설 땐,

절박하게 돈이 그리웠다.

그러다, 슬며시 그 허망한 욕구를 놓고, 노동속으로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그러길 잘했다.

돈으로 채울 수 없는 사람이 채워졌고

사람과 사람사이에 가치가 공유되었다.

공동 노동의 시간이 그것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내겐...?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과제가 두렵지만은 않다는 거.

허구헌날 큰 일을 치뤄내야 하는 맞며느리들이

일앞에서 당황하지 않는 품새?

수많은 과제를 하나 하나 해결하면서 넘어 오는 노동의 시간은

그렇게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경험을 주었다.

그렇게 4개월 노동으로 70석 규모의 소극장 '품'이 만들어졌다.

60평 남짓한 책마을 '페다고지' 만들어졌다.

'품'에는 15평 무대 70석 객석 조명 음향 영상시설이 있는 극장, 분장실, 샤워실,

아담한 정원같은 로비가 있다.

큰 아쉬움은 연습실이 없다는 거다.

품에서 열심히 품팔아 품을 넓혀 언젠가 넓다란 연습실도 만들거다.

'페다고지'에는 현재 1300여권의 인문사회과학 서적이 있는 서가,

퍼질러 앉거나 누워 책볼 수 있는 작은 마루,

둘러 앉아 책얘기하고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테이블과 편안한 의자들과 모임방,

차와 빵을 만드는 주방 바가 있다.

그리고, 음악도 흐른다.

몇 년동안 꿈을 꾸었다.

그리고 적잖이 망설였다.

돈을 어디서 구할 것이며, 사람은 또 어떻게 모으나.

노동자의 도시, 울산.

그러나, 진보적 문화의 실험이 부족한 도시.

이 변방에서 뭘 실험한다는 것,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자꾸만 조건을 핑계삼아 숨기를 몇 년...

그냥, 별 준비없이 지르기로 했다.

곁에서 같은 꿈을 꾸었던 사람들이 나를 끌어가고 있었다.

추진위원 만들어 폭넓게 공유하고 돈을 모르려 했으나,

논의만 무성한 채,

상상력의 한계속에 머물러 발걸음이 더뎌지는 것 보다

우선, 갈망하는 자들이 현실화를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일 때

사람들에게 더 구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소극장'이니 '북까페' 니 '문화공간'이라는 것이

생존 투쟁의 전장, 노동자의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겐

낯설고 배부른 놀이 정도로 여겨지고 있는 터라,

다른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을 눈으로 보게 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몇 명이 천만원씩 냈다.

그리고 좀 빌렸다. 그렇게 진행하다보니

사람들이 쌈짓돈을 보태기도 했다.

그리고, 부족한 건 인건비 절약으로 메꿨다.

극단 새벽 단원들이 한달 넘게 숙식하며 기술과 노동을 도맡았다.

그리고, 공간에 대한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4개월 내내 끊임없이 공사장에 와서 살았다.

낮에 공장에서 일하고 극장에 와서 용접하고 목공 작업, 타일, 페인트 칠, 도배...

수 많은 공정 하나 하나 마다 사람들의 품이 들어갔다.

연인원60여명이 예쁜 공간을 만들었다. 참 예쁘다.

다른 세상의 꿈!

여러 생각의 나눔!

삶의 연대를 향한 대안문화공간 소극장 '품' 책마을 '페다고지'가 떴다.

이제 이 곳에서, 문화예술 아카데미를 할 것이고,

관객을 만나지 못한 채 주류에 밀려

후미진 곳에 가려져 있는 삶의 햇살같은 음악,연극,영화를 담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게 할 것이다.

그리고, 책을 통한 무궁무진한 소통 프로그램을 낱낱이 펼칠 것이고,

흩어져서 다른 세상을 꿈꾸며 또아리를 만들던

다양한 소모임들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볼 것이다.

노동자, 여성, 장애인, 청소년...이들이 각각 꿈꾸며 만들어 온

다른 세상에 대한 여러 생각들을 만나게 할 것이다.

강좌도 하고 독서모임과 토론도 하고,작가와의 대화도 만들며....

 

10월 1일 개관식 한다.

아직도 남은 공사가 있고, 정리해야 할 것도 많다.

여전히 앞으로 먹고 살 일은 걱정이다.

열심히 회원을 만들고, 후원회원을 모아야 한다.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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