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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가슴에서 잠자는, 그러나 울컥거리는 소리를 홀로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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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1/18
    그녀2(1)
    짜루

그녀2

1.

눈이 떠졌다. 3시다.

어쩌자고 또 눈을 뜨는 거야.이런~ 제기럴~ 제발 잠만 잘 수 있다면....

꿈을 꾼 듯하다.

누군가가 심하게 비웃으며 얼굴에 침을 뱉았다.

또 누군가가 등을 보이며 냉담한 기운을 흘리며 걸어간다.

그녀는 내장이 꼬이는 안타까움에 시달리다가 눈을 떴다.

얼굴을 부비고 눈을 맛사지하듯 문지른 후 가만히 엎드려 눕는다.

어지러운 마음자리가 파도치듯 일어난다.

일기라도 써야 할 것 같다.

저녁 무렵 받은 편지를 다시 읽어본다.

속에서 확~ 천불이 일어난다.

언제까지 이런 밤을 맞이해야 하는가?

도대체 이 놈의 속에 무엇이 들어있길래 세상 살다 맨날 이런 밤을 만나게 하는지...

지지리 엉켜있는 머리속, 바닥을 알 수 없는 마음자리에 신물이 난다.

볼펜을 잡는다. 끄적끄적 토악질하듯 글을 써본다.

볼펜 끝이 춤을 춘다. 미친 듯이, 무질서한 리듬이 온 몸으로 전이된다.

마치 온 몸속에 있는 피가 이같은 리듬으로 흐르는 듯하다.

 

복도에서 투명하고도 무거운 발자국소리가 난다. 둘 쯤 되나본다.

갇힌 자들의 수가 맞는 지 세러왔을 것이다.  점검시간이다. 

아마도 남자부장이 함께 올 것이다. 책임있는 위치의 여자 교도관들이 거의 없는

감옥행정의 구조때문이다. 볼 때마다 짜증난다.

갇힌 여자들은 내복을 입은 채 다리를 쩍 벌리고 자고 있을 것이다.

코도 골고, 허벅지에 손을 넣어 벅벅 긁기도 하고 입을 하마처럼 벌이고 자고 있다.

여름이라 다들 짧은 바지을 입고 이불을 걷어찬 상태에서 자고 있을 것이다.

바깥에서 두꺼운 화장에 양껏 멋부린 투피스 정장을 입고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우아하게 걸어다니던 여자들도 어쩔 수 없이

가장 내밀한 잠자리를 보여주어야 한다.

혹시, 어떤 이는 갑자기 배가 아파 이 시각 똥간에 가 앉아 있을 수도 있다.

내복입고...

그런 점검시간이다.

발자국 소리가 가까이 다가온다.

 

똑!똑!

920번! 자요!

 

그녀는 독방에 있다.

0.75평이라고 한다. 누우면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안성맞춤이다. 마치 관속같다.

다른 게 있다면 90cm정도의 높이의 문이 있는 똥간이 있다는 거다.

그러나, 그 방을 선택했다.

몇 번의 감옥살이에서 혼거며 독거를 두루 살아보 그녀는

한 며칠 혼거에 있다가, 독거로 옮겨달라고 요청했다.

고만 고만한 사연을 가진 여자들의 넋두리를 하루종일 들어주고

어디 빠져 나갈 곳도 없는 방에서 이 귀퉁이 저 귀퉁이에 모여앉아

서로에 대한 욕을 하거나, 증거도 없는 사생활 꾸며대기, 자기 죄값 남의 죄값 저울질 하고

검사 판사같이 형량 다 정하다가,음담패설로 잠시 낄낄 대다가

수 틀리면 빵쪼가리 하나 가지고 머리 쥐어뜯고 싸움질을 하는 꼴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예전에는 없던 TV가 생겨가지고는 하루종일 떠들고 있는 것도 참기 힘든 소음이다.

 

무엇보다, 지금의 그녀는 아무하고도 어떤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이며

무슨 대단한 공안사범이라고 우아떨며 남의 빵살이에 개입하며

대리 투정이나 부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미칠 것 같을 때 미친 듯이 지랄하고

울고 싶을 때 그냥 펑펑 울 수 있는 혼자만의 공간이 절실히 필요할 뿐이었다.

거기 온 모든 여자들 그만한 사연없는 사람없기에

혼자 뭐 중뿔 낫다고 무게잡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해서, 도망을 가기로 하고, 독거를 요청했던 것이다.

특혜받는 것을 죽어라고 싫어하는 그녀는 혼자서 편하게 가는 것이

다른 여자들에게 소외감을 줄까봐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그 여자들은 아무도 독방에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독방은 감옥의 감옥이다. 호텔이 아니다.

주로 징벌이나 격리의 격리가 필요한 자들을 가둬두는 곳이기에

어설프게 특혜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지랍이라는 생각에 이르러서야

맘 편히 보따리를 쌌다.

 

독방에 온 첫 날이었다.

이것도 이사라고 오자마자 치약과 수세미, 퐁퐁으로 뺑끼통이며 세면대를 싹싹 문질러 닦고

시원하게 물청소를 했다. 방안 구석구석 먼지를 털고 걸레로 몇번이고 훔쳐내었다.

유리창도 닦고서야,옷가지며 책들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그리고, 양이 턱없이 줄어버려 먹는다고 할 수도 없는 저녁을 뜨는 둥 마는 둥 쑤셔 넣고

다시 바닥을 닦고, 청소하고,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고, 걸레를 빨고, 수건을 빨아 널고

한 참 분주히 저녁 일상에 몰두했었다.

그리고는 의례 저녁 점검을 끝으로 모든 공식적인 감옥 일정이 끝나고

폐방의 열쇠소리가 철커덕 했었다.

옆방들에서 들려오는 여자들의 수다소리와 텔레비젼 소리를 피하려고

귀를 화장지로 틀어막고서야 등을 벽에 기대어, 책을 펼친다.

 

똑!똑!

편지요~

 

저녁 편지는 폐방후에 식구통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검열 도장을 찍느라 시간을 보냈겠지.

몇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부끄럽다. 뭐라고...자진해서 기어 들어온 주제에 무슨 대단한 동지대우를 해주는

사람들에게 부끄럽다가, 슬며시 부화도 난다.

좀 가만히 내버려 두지.

편지봉투를 보다가 보고 싶지 않은 이름이 있다.

가슴에 둔탁한 쇠뭉치가 박힌 듯, 얼얼해 지고

피가 격랑을 친다.

이름만으로도...

왜? 뭐할라고?

다른 편지들을 먼저 읽었다.

현재, 그녀의 상태를 가장 잘 아는 친구의 편지를 읽다가

가슴에서 눈물이 올라와 버렸다.

엉엉~ 입을 틀어막은 채 우는 울음은 짐승같은 울음이었다.

한 며칠 혼거방에 있으면서 울음도 분노도 너무 참았다.

한 꺼번에 터져나오는 건가보다.

이럴려고 이사를 왔던 것이다.

 

망치같은 편지는 역시 망치였다.

물론 악의적으로 그러고야 있겠냐마는 무심하건지 무감한건지

상대의 상태나 감정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자신의 넋두리로 넘쳐난다.

자기 감정밖에 모르는 아이처럼 송곳같은 단어들을 너무도 무심히 마구

조합해놓은 편지를 읽다가 몇차례의 격랑을 만났다.

검열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구 펼쳐놓은 단어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지 알 수 없다.

단지, 그 단어들만이 낱낱이 분해되어 그녀의 가슴에 화살처럼 박히고

돌덩이처럼 내려않고 불쏘시게처럼 자꾸 여기저기를 쑤셔 일으킨다.

도대체, 이런 소통도 있는가?

말의 맥락이 읽혀지지 않고 단어만 조각나서 떠돌다니...

상대도 상대지만, 그녀는 스스로에 대한 혐오에 치를 떤다.

그러다가, 도저히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일찍 이불을 깔아버렸다.

취침 나팔이 불어야 깔 수 있는 거지만, 독방에다 공안사범이라는 점은

슬며시 이불깔고 먼저 누울 수 있는 비밀이 있다.

 

자고 싶었다.

푹~ 이사의 첫날 밤을~ 아무 생각없이 푹~ 자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단어가 떠도는 머리를 쉬게 할 수 없어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다가

취침 나팔소리가 나고, 일기를 쓰고,

그러고도 한참동안 뒤척이다가 겨우 잠속에 든 것 같았다.

 

그런데, 또 눈을 떠 버렸다.

새벽 3시...

다시 꼬박, 기상 나팔소리가 들릴 때까지 이러고 있어야 한다.

의식이 죽어버려야 편한데..

분노도 자기혐오도 자는 취침이라는 걸 하고 싶어진다.

 

근데, 뭐?

자요?

누가 자기 싫어 이러는 줄 아니?

정말 자고 싶다고. 제발 잠만이라도 자고 싶다고.

감옥오기전부터 벌써 석달째 잠을 못자고 있었다.

곱 징역이겠군.

이상한 상상이 든다.

독방 구석구석이 흉기처럼 보인다.

자해와 자살의 도구처럼, 그녀안에 있는 비굴하고 약한 눈빛이 자꾸만

그것들을 살핀다.

두려움이 덥친다.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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