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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직한 그녀들

그녀들이 복직했다.

가을을 지나 겨울내내 그녀들은 여리지만 뜨겁게 움직였다.

 

그렇게 망설였단다.

노동조합에 가입하라는 요구에 대해

한 계절이 가도록, 몇개월에 걸쳐 망설였단다.

망설이고 또 망설이고....

자신이 믿어왔던 그간의 가치관들과 노조가 만나지지 않아서

억울함이 있어도 당장 노조를 만들어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힘겨운 노동이라고는 하지만,

세상살이 그만큼 힘들지 않은 일 없으며

사람을 보살피는 그 노동이 자랑스럽고 기뻤기에

조금만 아주 조금만 인간답게 대우 받는다면

노조를 꼭 만들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이 노조를 만나기로 마음먹었다.

 

어느날 갑자기, 임금을 깍자더란다.

터무니 없이 8만원이나 깍자더란다.

인간적으로다가 아주 그냥 당연히 남들 임금 오르듯이

조금만이라도 올려달라고 할 판인데

되레, 깍자더란다.

도대체 말이 안된더란다.

알아보니까, 여태까지 노동한 댓가로 받아온 임금이 터무니 없이 모자란 거더란다.

그러니까, ''임금체불'이 발생해 있더라는 거다.

 

이럴 수가...그녀들 마음이 일렁였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어쩌면 그렇게 당당하게 고압적으로 깍자는 말을 할 수 있는지...

어떤 그녀는 나 하나라면 이것도 그냥 참겠다 싶더란다.

그런데, 나 아닌 이 사람들을 이대로 두면 안되겠더란다.

노조를 할까 하고 고민하면서, 또 망설여지더란다.

혹시, 다른 그녀들이 자기 말듣고 노조하자고 나섰다가

힘들어 지면 어떻하나?

노조가 어떤지 알지도 못하는데

그걸 어떻게 하자고 해서, 그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하면 어쩌나?

그 막중한 책임을 그녀가 질 수 있겠는가? 등등...

참 망설임이 많은 그녀였고, 또 그녀들이었다.

 

그런 그녀들이 조심스럽게 노조에 가입하고

체불임금을 요구하고

휴가를 쓰겠다고 했단다.

그러는 와중에, 어떤 날이 있어서

함께 생리휴가를 썼단다.

누군가가 생리휴가를 쓰겠다고 하니

나머지 그녀들이 다같이 쓰겠다고 했다고 한다.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하는 간병사,

24시간 마치고 집에 돌아가서 다음날 들어오지 않고

생리휴가를 썼단다.

그리고서 출근했더니, 모두 근무지로 못가게 하더란다.

회의실에 불러모았다고 한다.

문을 닫더란다.

양복입은 남자들이 왔다갔다 하며 위압적으로 대하더란다.

 

폐경지난 여자들이 무슨 생리휴가냐?

검사해봐야겠다...는 더러운 모욕을 당했다.

집단행동이므로 불법이라더란다.

그리고, 그녀들 중 한명이 먼저 해고당했다.

이어서 얼마못가서 나머지 그녀들도 해고 당했다.

 

그리고...복직투쟁이 있었다.

그 투쟁은 참 여리게 이어졌다.

그리고 참으로 따뜻하게 이어졌다.

 

주변 사람들, 지역의 여러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었고

그들을 스스로 움직이게 했다.

 

그리고, 새해들어 그들이 복직판결을 받았다.

오늘 첫 출근을 했다.

그런데, 곧 징계위에 회부될 것이고

어쩌면 또 해고될 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녀들이 웃었다.

그녀들의 첫출근을 지켜봐주기위해 아침 일찍 일어났다.

아직 어둠이 있는 시간에 집을 나서서

그들의 응달진 작업장으로 갔다.

 

그녀들이 환하게 웃으면서 통근버스에서 내린다.

그녀들, 50을 전후한 그녀들...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를 듣고

일단 퇴근했다.

함께 해장국을 먹었다.

그녀들이 소주를 꺼내온다.

복직주 한잔씩 반주로 했다.

빈 속인데, 그녀들이 웃는다.

그 웃음에 긴장이 느껴진다.

두려운 긴장이기 보다

삶의 생기같은 긴장...

자꾸만 소주를 권하신다.

아침이라 술이 받지 않는게 미안하다.

자꾸만 고기를 발라 주신다.

김치를 얹어주신다.

그녀들이 자꾸만 웃는다.

그녀들이 계속 긴장되어 있다.

그리고, 얼필 울것 같기도 하다.

 

그녀들, 언니들....

그녀들은 나보다 여리다.

그러나 그녀들은 나보다 확실히 강하다.

여림이 강함이라는 것을...

그녀들이 자꾸만 내게 보라고 하는 것 같다.

약한 나는 그녀들이 조금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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