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의 일상

from monologue 2011/11/22 23:32

송영길은 분명히 GM대우한테 뭘 받아먹었을 거다. 

농촌 출신 한나라당 의원들은 또 반대한다 하니,

 

같은 편이라 하여도, 기반하고 있는 물적 이해 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건...

FTA가 그만큼 첨예한 문제라는 걸 보여주는 것일지도.

증말 살기 힘들다 힘들어 아휴.

넋 놓고 조야한 평론만 읖조릴 것인가. 실제 조직되는 운동에 참여할 것인가.

며칠을 스트레스와 바쁨 속에서 지낸 듯 하다. 

도저히 몸이 허락하지 않아 집회에는 못 갔지만, 이젠 바쁨 속에서도 틈을 찾자. 

 

마침, 타로를 배웠던 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불교대학원에 들어갈 거라는 언니.....

마음을 내려놓고 싶은 내가, 늘 언니를 생각하며 찾았던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아는 어떤 것, 때문이었다.

실은 울산에 내려가기 전부터 언니를 알고 있었다.

선배의 홈피의 홈피의 또 누군가의 홈피를 타고 찾아 들어간 곳은

언니의 공간이었다. 많은 이야기들을 알게 되고 나서, 만난 언니....

더 가까워지지 못하고 올라와서 아쉽지만, 오히려 그 간극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관계란 무엇일까를 생각하다,

타로를 꺼내들었다.

쟁투/협력....권위/복종....

하나는 뭐였는지 생각이 안 난다.

웬 권위와 복종?

 

몸은 두들겨 맞은 듯 피곤하지만 잠귀가 밝아 쉬이 잠이 오지 않는다. 

이런 저런 문제들로 계속 머리가 쉴 틈이 없었다. 놀랐는지, 배가 아파온다. 

하루만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뜨뜻한 배깔고 누워 재잘거리고 싶다. 누가 내 불안한 앞 날에 대하여 타로 좀 봐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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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2 23:32 2011/11/22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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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안...

from monologue 2011/11/13 16:25

오랜만에 포스팅,

주절주절 토해내고 싶은 마음이 없어 블로그를 닫을까 했었다.

그치만 다시 돌아오네. 뭣 때문일까.

 

노대 전야제 반가운 얼굴들을 많이 만났다.

운동하는 사람들, 멀리 있어도 일년에 한번 씩은 볼 수 있으니

반가운 얼굴들과 안부를 확인하는 장으로 노대에 가는 듯.

 

해마다 이주 주점에 있었으나 올 해는 가보지 못 했다. 

며칠 전 단속 과정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 이주노동자의 이야기를 듣고,

하, 어쩌지...왜 분노조차 조직이 안 되는 것일까. 왜 이렇게 조용한 것일까, 가슴을 쳤다.

활동가의 부재, 약화되어 가는 주체의 문제,

그럼에도 여전히 약화된 그 지점에서 꿋꿋이 활동들을 이어가는 동지들을 보니

다행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그리고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곰곰 생각했다.

늘 촌각을 다투거나 무거운 문제들에 직면해서 그런지,

내가 그곳에서는 항상 많은 배려를 받으면서 활동해왔구나를 새삼 느꼈다. 

 

'조직'이라는 형식이 주는 한계, 그 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활동가의 모습들,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울산에 있을 때, 자원봉사자들이 하도 오라고 해서

한나라당 박맹우가 오는 무슨 시삭시장에도 간 적이 있었다.

그건 정말 잊혀질 수 없는 경험이었다.

어찌됐든,  '이주노동자를 돕는 복지센터'에서 '운동'을 하려는 내가 겪는 역관계,

나는 그 속에서 철저히 '약자'였음을 확인한 순간이었으니까.

 

보통 거의 모든 것들에 관대한 편이지만 혐오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예의가 없는 사람을 싫어한다. 딱 질색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하는 운동이다. 그래서 늘 '사람'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결과보다는 과정, 과정을 이루어가는 촘촘한 관계들, 운동을 하든 뭘 하든 난 이게 최우선이다. 

 

 

그 '관계'에서의 폭력, 특히 '성적인' 폭력을 겪기도 하고 가하기도 했던 경험들....

지금도 여전히 '성폭력'이라는 말에서 떨어지지 못하는 나, 

단발적 사건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라 여전히 그 고통을 겪고 있는 피해자의 삶에 함께 하려는 나,

이런 '나'를 존중해주는 당시의 동지들, 현재 내 주변의 동지들, 

곁에 있어도 그리운 그런 존재들.

그 존재들을 더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창 밖에 바로 심어진 감나무, 커다란 감잎이 노랗게 물들었는데 예쁘다. 

만지면 이슬이 톡- 하고 떨어진다. 

 

좀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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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3 16:25 2011/11/13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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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대 내곁에

from the music 2011/11/06 16:16

꼭,

네게

 

 

이 노래를 들려주고 싶었어.

아쉬움을 뒤로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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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6 16:16 2011/11/06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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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

from monologue 2011/11/04 00:24

드. 디. 어.

 

여러 말들...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꾹 눌러담는다.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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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4 00:24 2011/11/04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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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from monologue 2011/10/21 22:37

누군가에게 내 얘기를 쉽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내가 활동하고 있는 곳에서는 더욱,

정말 마음이 지친다. 오늘따라,

 

그냥 그랬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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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1 22:37 2011/10/21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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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버스에서

from the music 2011/10/16 12:44

가을에 내리는 작달비라...

오랜만에 차창을 때리는 많은 비를 보며,

들은 이 노래.

 

 

 

 

 

 

마른 하늘에 주책도 없이 
때아닌 비가 내려오는데 
비가 오는데 비가 오는데
내가 사는 곳 내가 사는 곳
비가 오면은 그대 생각나

밤이 새도록 비를 맞으며
둘이 걷던 길 생각 나면은
난 왜 이렇게 주책도 없이 
눈물이 날까 비가 오는지 
그대 있는 곳 그대 있는 곳
그대도 나를 생각하는지

밤이 새도록 비를 맞으며
둘이 걷던 길 생각나면은
난 왜 이렇게 주책도 없이
눈물이 날까

밤이 새도록 비를 맞으며
둘이 걷던 길 생각나면은
난 왜 이렇게 주책도 없이
눈물이 날까

비가 오는지 비가 오는지
그대 있는 곳 그대 있는 곳
그대도 나를 그대도 나를
생각하는지 생각하는지
비가 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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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6 12:44 2011/10/16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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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om monologue 2011/10/13 15:52

그간 그대가 지나 온 시간들이 살처럼 박힌다.

 

너무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다.

 

상처받은 마음을 추스르고 할 겨를이 없다. 내가 가한 것에 비하면....그럴 자격도 없다.

 

관계에 의존적인 내 모습도 나라고 여기며 긍정해왔지만,

 

그대와 함께이든, 그렇지 않든 나는 내 스스로 온전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이건 그대가 내게 선택의 기회를 준 것이다.

 

누구도 생각지 않고 현재 내 마음 상태를 보자.

 

의연해져야 한다. 그치만, 계속 아프다.

 

언제까지....이래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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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3 15:52 2011/10/13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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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에게

from monologue 2011/10/05 23:38

올해의 봄이여

너의 무대에서

배역이 없는 나는

내려가련다

더하여 올해의 봄이여

너에게 생긴 다른 연인이 생긴 일도

나는 알아 버렸어

 

애달픔지고

순정 그 하나로

눈흘길 줄도 모르는

짝사랑의 습관이

옛 노예의 채찍자국처럼 남아

 

올해의 봄이여

너의 새순에

소금가루 뿌리러 오는

꽃샘눈 꽃샘추위를

중도에서 나는 만나

등에 업고

떠나고 지노니

 

- 김남조, 다시 봄이여

 

 

친구가 준 시나리오를 보고 단박에 찾아보았지.

 

'너의 무대에서

배역이 없는 나는

내려가련다....'

 

가슴을 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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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5 23:38 2011/10/05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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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from the movie 2011/10/03 02:30

막 사춘기를 벗어난 열일곱

그 때 만난 톰 티그베어의 롤라런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스토리는 기억나지 않지만, 시퍼런 빨간 머리에 테크노 비트,

이국적이고 낯선 베를린 풍경에 대한 남모를 동경,

롤라런은 영화보다, 감각이었다. 그 세대를 이끄는.

이후로 영화들을 쭉 보지 못해 몰랐는데

독일인이지만 할리우드에 진출하여 대중성 있는 작품들을 꽤 많이 했단다.

 

그 감독이 만든 영화라 하여 나름 기대를 품고 봤다. 

아....말로 설명할 수 없는...나를 직면할 때 느끼는 감정과도 같은 이 불편함,

내가 요새 말하고 싶었던 것들이 이 영화에 다 나오는 것 같다.

 

 

- 애정에 기반한 둘 사이의 관계가 평생을 지배할 수는 없다.

한나와 시몬은 사랑하는 다른 사람이 생겼는데 왜 서로 헤어지지 못했던 걸까. 영화는 거꾸로 질문을 던진다. 헤어져야 하는 것은 왜일까. 서로에 대한 예의 때문인가. 질투라는 감정은 무엇에 기반해 있으며, 변하지 않는 게 사랑이라는 통념은 무엇을 기반으로 지속되어 온 것일까.

'사랑은 결혼의 물적 토대가 되기에 너무 허약한 감정이다. 게다가 사랑은 일부일처제가 원하는 것처럼 고착화된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이다.' (채식주의자 뱀파이어, 임옥희,2010)

그럼에도 한나와 시몬은 아담을 두고서, 결혼까지도 결심한다. 떨어질 수 없는 어떤 고리가 이 둘 사이에 존재했을까. '권태와 피로'가 쌓인 만큼 '사랑과 경이'역시 내재된, 둘 사이에 쌓인 오랜 시간 때문이었나. 아마도 그랬으리라 짐작한다.

 

 

- 한나와 시몬, 그리고 아담 사이의 관계, 상상이 가능한 쓰리썸.

섹스는 인간 생산을 위한 노동이기도 하지만, 관계를 이루기 위한 언어이기도 하다. 요즘 같은 시대에 생식행위는 기술로 대체되고 있지 않은가. (아담이 줄기세포에 능한 연구자로 나오는 것 역시 이러한 배경 속에서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설정이다.) 한나가 임신을 한다는 것과 이 임신으로 세 사람 사이의 관계가 '탄로'나는 설정 자체는, 로맨스 스토리가 갖는 전형적인 결말이라는 점에서 좀 실망스러웠다. 조금 더 냉정하게 이야기를 이끌어나갔어도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 아빠가 누군지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 나를 억압하는 기재가 있어야 내가 설명될 수 있다는 그 견딜 수 없는 모순,

사랑의 과정은 즐거웠어도 의도되지 않은 삼각관계가 드러나자 서로에게 고통을 주는 세 사람. '임신'을 해서, '게이'이기 때문에 '낙인'과 '책임'으로 얽히는 사슬 관계가 되지만, 사회에서 개념화한 관계를 넘어서 새로운 관계를 그리려는 노력들을 시작한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 공존하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억압인 걸 알면서도 히잡을 쓸 수밖에 없는 아랍 여성들처럼, 여성에게만 섹스의 흔적을 남기는 임신 때문에 고뇌하는 주인공 한나처럼, 나를 억압하는 기재가 있어야 내가 설명될 수 있다는 그 모순, 또 이걸 깨기 위해 운동-그게 폴리틱일 수도, 섹스일 수도 있다-하는 사람들의 존재....사회가 정한 금기에는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 동전의 양면처럼 금기와 쾌락의 메커니즘은 항상 개인의 섹슈얼리티를 도마 위로 올린다. 감독은 이 현실을 날카롭게 조롱한다.

 

 

- 히잡과 남행열차 사이의 간극

절정은 남행열차다.(속으로 제발 내가 아는 그 노래가 아니기를 바랐으나!), 돈을 벌기 위해 독일로 갔거나, 혹은 그 사회 내에서 성매매 현장으로 밀려나거나 했을 한국 여성들의 노래가 영화 속에서 흘러나오는데.....오히려 시몬이 술을 마시던 바에서 남행열차를 부르던 한국여성들의 처지나 유럽 사회 내에서 히잡을 착용할 수 없는 아랍 여성들의 처지에서는 이 세 사람의 관계가 그다지 특별하거나 충격적인 것이 아닐 수 있다.

문화적 지식과 감수성이 뛰어난, 빈곤하지 않은 사십대들의 삶, 사회의 최하위로 밀려나는 젊은 이주 여성들의 삶, 그 사이의 계급적 지위는 어쩔 것이냐. 난 솔직히 이게 더 중요하게 들어왔다. 사회적/문화적/계급적 배경들의 차이와 이 속에 놓인 섹슈얼리티는 분명 병렬로 놓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히잡과 남행열차가 상징하는 소외와 배제, 폭력, 순응의 카테고리가 결국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견고한 톱니바퀴가 되고 있다. 한나와 시몬 아담, 이 세 사람이 볼트 하나를 뺀다 하더라도, 견고하게 물리어가는 그 톱니바퀴를 멈출 수 있을까.

 

보면서 그냥 툭툭 소리내어 말하고 싶었다. 답답하고 허탈하거나, 또 정말 공감이 될 때,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억누르려 할 때에는, 나직하게 데이빗 보위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space oddity, 고독하고 외로운 인간이란 존재들...

영화는 말로 하나하나 설명할 수 없는 모든 요소들을 다 담고 있다.

그러면서도 가볍다-사실 내용도 별 거 없다-

 

치밀한 심리묘사나 은유보다 이미지라는 직설화법에 승부를 거는,

톰 티그베어만 특유의 매력은 여전히 영화 속에서 꿈틀댄다.

 

밀라노의 기적을 봐야겠다.

 

 

‘쓰리’ 톰 티크베어 감독, “파격? 인간관계의 본질”

 

<롤라 런>1999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고,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2007로 우리를 매혹시킨 독일의 톰 티크베어 감독이 다시 한 번 우리의 뒤통수를 때린다. <쓰리>는 톰 티크베어 감독의 최고작이다. 

차기작을 찍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가 짬을 내 서면 인터뷰에 응했다. 

 


-<쓰리>는 새로운 삼각관계를 그린다. 오래된 연인 한나(소피 로이스)와 시몬(세바스티안 쉬퍼)이 서로에게 권태를 느낄 즈음 아담(데비드 스트리에소브)이 나타난다. 시몬과 한나 모두 아담과 사랑에 빠지고, 결국 한나와 시몬, 시몬과 아담, 아담과 한나 모두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나는 한나와 시몬의 관계가 지루하고 평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에게도 문제는 있다. 20년을 함께하다 보니 점점 성적 긴장이 없어지고 습관적인 관계가 되어간다. 하지만 우리 주위의 연인들에 비하자면 한나와 시몬의 관계는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서로에게 정성을 쏟는다. 그런 관계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제3자인 아담이 들어왔을 때 그 관계가 더 흥미로워지는 거다. 중요한 건, 아담과 사랑에 빠졌는데도 한나와 시몬이 원래의 관계를 지키려고 한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아담은 뭘 소유하려고 하지 않고, 인간관계에 얽매이지 않는다. 대신 혼자 여러 취미 활동을 즐긴다. 한나와 시몬 모두 그런 아담에게 급격히 빠져든다. 아담은 꼭 ‘자유’라는 이름의 바이러스 같다. 

아담은 개인의 자유에 대해 아주 독특한 생각을 갖고 있다. 관계에 얽매이지 않기 위해 감정을 키우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태도도 일상의 모순과 만나면 무용지물이 된다. 한나, 시몬과의 관계가 지속적으로 변하면서 아담은 더 이상 바이러스처럼 살 수 없게 된다. 그러자 통제력을 잃고 약해진다. 관계에 얽매이게 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독특한 삼각관계는 어떻게 떠올린 건가? 

처음에는 현대 서구 문명에서 벌어지는 인간관계의 본질을 퍼즐 조각처럼 이리저리 뒤섞어보자고 생각했다. 우리가 그런 관계에 익숙해진 건, 문화가 일상생활에 영향을 끼치고 사람들이 그걸 기꺼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특이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평범한, 나와 같은 세대의 독일 사람들을 열심히 관찰했다. 그 결과 그들이 변화를 갈구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새로운 삼각관계가 압도적인 영상으로 펼쳐진다. 특히 한나, 시몬, 아담의 관계를 상징하는 무용극을 대담하게 끼워 넣고, 자유롭게 화면을 분할하는 솜씨가 놀라웠다. 어디서 영감을 얻은 건가? 

인간은 우리를 제한하는 관습을 떨쳐내려 한다. 영화는 다른 예술보다 이런 억압에 더 시달린다. 다른 예술보다 더 산업적이기 때문이다. 시각적인 영감은 인물의 테두리 안에서 흘러나온다. 어떤 전통 안에서 태어나지만 그걸 새롭게 만들려는 노력 속에 자유롭게 뻗어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는 노력을 멈춘다면 우리는 모두 판에 박힌 괴물이 될 것이다. 



-한나가 머릿속 생각을 그대로 따라가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영화가 한나의 머릿속에 들어가 숨 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할까. 

영화에서 인물의 뚜렷한 심리를 그리는 건 꽤나 지루한 일이다. 그보다 나는 우리가 삶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표현하는 데 더 관심이 많다. 현대인은 대개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일 때문에 그러는 경우도 많지만, 현대 사회에서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건 본질적으로 외로운 일이다. 현대 사회의 속성이 그러한데, 그 외로움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그걸 느낀다는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한다. 아주 뜻밖의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바로 그 ‘뜻밖의 일’이 한나와 시몬에게 일어나는 것이다. 

-영화 속에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밀라노의 기적>(1951)을 다양하게 인용했다. 영화의 한 장면을 직접 보여주기도 하고 몇몇 장면은 새롭게 재연했다. 시몬의 어머니가 날개를 달고 나타나는 장면이나 베를린 시내 한복판에서 석유를 길어 올리는 장면 등등. 

<밀라노의 기적>은 위대한 작품이다. 시몬이 어머니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나타내기 위해 <밀라노의 기적>을 인용했다. 어머니가 죽으면 사람들은 다시 어린애로 돌아가서 어머니가 천사가 되기를 바란다. 이 영화는 시몬의 세대가 성장한 방식과 처리하기 힘들어 하는 일을 이미지와 이야기로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삶 속에서 연상되는 기이하고 주관적인 이미지를 아무런 설명 없이 영화 속에 끼워 넣는 게 즐겁다. 

-‘Pale 3’라는 밴드를 결성한 적도 있고, 종종 영화 음악을 직접 만든다고 들었다. 이야기, 이미지, 음악 중 가장 가깝게 느끼는 건 무엇인가? 

음악에서 영감을 얻을 때가 많다. 음악이 내 마음을 이미지의 세계로 이끌고, 이미지 뒤에는 언제나 이야기가 있다. 

-<롤라 런>(1999)과 <쓰리> 모두 예측불허의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결국 커다란 결과로 번지는 과정을 그린다. 

내가 삶을 체험하는 방식이 바로 그렇다. 전부 우연히 일어나는데 이상하게 말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정말 이상하지! 

-영화는 세 주인공의 이야기와는 별도로 설명회에서 벌어지는 토론, 독일에 사는 회교도 여자들에 대한 대화, 존재와 개념에 대한 인터뷰 등을 통해 계속 ‘역설’에 대해 말한다. 

우리는 늘 역설에 둘러싸여 살고 있기 때문에 역설적인 상황, 특히 어렵고 비극적인 상황을 껴안고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뉴스를 통해 지진 같은 극적인 소식을 접하지만, 일상에서는 그와 아무 상관없는 개인적인 위기를 겪으며 살아간다. 그 안에는 어떤 균형도 없다. 균형을 맞출 수도 없다. 하지만 모두들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한나, 시몬, 아담은 벌거벗은 채 나란히 누워 서로를 안는다. 카메라가 세 사람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결국 세 사람이 샬레 안에 들어 있는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앞으로 셋의 관계가 시험에 들었다는 뜻인가? 

앞으로 세 사람에게 어떤 일이든 생길 수 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이거 뭐야? 우리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라고 말할 수도 있고,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도 있겠지. 영화가 끝난 다음의 이야기는 감독의 것이 아니라 관객 모두의 것이다. 그러니 영화의 의미에 대해서 감독에게 너무 많이 물어보지 마라! 

-시몬과 한나의 관계가 정체를 겪다가 아담을 만나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통일 후 독일 사회의 통합을 염원하고 있다고 봐도 될까? 

물론! 

-운명을 믿나? 

전혀. 

-현재 워쇼스키 형제 감독과 함께 할리우드에서 다양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SF <클라우드 아틀라스>를 촬영하고 있다(워쇼스키 형제와 톰 티크베어 감독이 공동 연출한다). 톰 행크스, 할리 베리, 수전 서랜든과 배두나가 출연한다. 어떤 영화인가? 

인물도 많고, 시대도 다양하고, 모든 게 많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내 평생 가장 무모한 도전이다. 틀림없이 멋진 영화가 될 거다. 

-독일과 할리우드를 왔다 갔다 하며 영화를 찍는다. 두 곳에서 영화를 찍는 일은 어떻게 다른가? 

궁극적으로는 같다. 불가능한 일을 하기 위해 그에 꼭 필요한 사람들을 한데 모으는 게 감독이 하는 일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한데 뭉쳐 그걸 가능하게 만든다. 이 모든 건 아주 복잡한 사회적 실험이다. 독일에서나 할리우드에서나 그런 과정이 계속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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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3 02:30 2011/10/03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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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감정의 전이

from monologue 2011/09/25 23:14

보다 적극적으로 네게 말을 걸고 싶었다.

 

곁에 있어달라는 요청 역시 지독한 나의 이기라는 것도....알게 되었다.

 

여전히 모르겠다. 

 

내 욕구가 무엇인지

 

내 이야기를 누구에게 하고 싶은 것인지

 

그저 이 상태로 버티어가면 되는 것인지

 

...........

 

내가 운이 좋은 사람인가. 

 

함께 있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고,

 

어디에 있든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해 마음이 놓인다....

 

나 역시,

 

마음이 움직이는 곳으로, 그냥 그렇게 흘러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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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5 23:14 2011/09/25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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