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같은 괴로움

from monologue 2011/08/23 22:59

이틀 전 다녀 온 문상에서 오랜만에 봤던 한 언니,

어린이집을 운영한다 했다. 

 

자본금도 없고 교사 둘이서 최저임금 받으며

아이들 밥까지 챙겨가며 이것저것 정신없이 보낸다지만

넘치는 행복을 느끼고 있단다. 

왜 내 아이가 주던 기쁨을 과거의 나는 몰랐을까,

다른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자주 느끼곤 한다고...

 

사람들을 잘 모르던 시기에 타로 모임을 통해 언니를 만나고,

언니를 생각하며 처음 리딩을 했던 카드가 은둔자 카드였다.

타로를 보면서 처음으로 울었던 기억, 마음 열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그 경험은 잊지 못할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고행하는 은둔자처럼,

가급적 만나고 싶은 사람들만 만나며,

내 삶에 집중하고 싶었다.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상관 없었다. 

 

.........

 

기대했는데 다시 생리를 시작한다. 

쥐어짜는 듯이 배가 아프다. 

실로 오랜만인 통증, 눈물 나올 뻔 했다. 

 

시간이 어떨 때는 약이고 어떨 때는 독 같다. 

무슨 환자마냥...

몸이 반응하는 것에 기다리는 일을 되풀이 하고 있다.

 

아마도 과거의 아픈 기억 어디 쯤에 나는 매어 있고,

현재의 시간은 늘 흐르고 있기에,

기대했다 실패하는 것도, 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리라. 무척이나 어리석게도.

 

나의 성이 통제당하고 있다는 명백한 현실과

그 속에서 내가 선택했던 어떤 중대한 인생의 변화 같은 것들이 있었다...

결혼이 그래왔고

남편을 설득해 임신과 출산을 계획하는 것이 그러했다.

 

헌데....

나는 정말로 이걸 원하고 있을까?

 

정말로,

정말로,

원하고 있을까?

 

나는 몇 가지 과정을 '의식적으로' 건너 뛰었다.

 

임신하고 열달의 기간을 조심조심 하며 아이를 품고 있어야 하고,

아이가 내 몸을 찢고 나오는 출산을 거쳐야 하고

(이것은 거의 하나의 장면처럼 각인되어 몇 초면 끝날 것처럼 여기고 있다)

 

커서는 다 알아서 한다 하더라도 아이가 어릴 때, 

못해도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내가 옆에 있어야 하지 않은가?

내가 못 받았던 부분이기에, 얼마나 유년시절의 기억들이 처참해지는지 안다.

그래서 더욱 많은 애정을 주고 싶다. 일정 정도 다른 활동을 포기할 각오도 지금은 되어 있다. 

안 봐도 훤하게 교육운동을 하겠지. 정신이 제대로 박혀 있으면...양질의 무상보육(교육)을 요구하며 싸우겠지?

그럼, 무상보육이 되기 이전에는? 매일 아이와 함께 붙어있을 자신이 있는가? 없다, 당연히.

 

그러면, 그러면, 할머니 할아버지다. 나의 부모님, 배우자의 부모님...

원체 서로 원하셨으니 예쁘게 키워주시겠지.

그렇지만 이렇게 하면 안 되지 않는가? 양육의 책임을 또 서로의 부모에게?

한 두 번 맡기다 보면 생활이 된다. 아니다, 이건

 

그리고...

혹여나 남편과 헤어지게 된다면?

다른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멀어지게 된다면

아이를 이해시키거나 설득하는 것은 두번째 일이다. 아이가 받을 상처에 대해서는 솔직히 고려가 되질 않는다.

문제는 나다. 내가 아이를 이전처럼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가. 무조건적이고도 무상의 책임을 해야 하는 것인데, 나는 과연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다 자란 성인이 될 때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아이를 타자화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남편이나 애인을 사랑하는 것처럼, 그렇게 아이를 사랑하면 안 되는가? 

 

쪽팔리는 말이지만,

존경받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아이에게 본보기를 보이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나를 발전시키는 길이 될 수 있다고도 여겼다.

엄마의 삶이 나를 추동했던 힘이었으므로.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헌데.....

내 삶이 이런 방식으로 계속된다는 것,

이제는 되물어야 한다. 

 

대체 뭔가...

지쳐 있던 내 삶에 그렇게라도 변화를 주고 싶어서인가?

타인의 시선이나 관계에서 오는 유무형의 압박 때문인가?

왜 사슬 속에 자신을 옭아매 넣고는, 스스로 괴로워하는가?

 

답은 간단한데, 용기 없이 물음만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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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3 22:59 2011/08/23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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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

from @ the moment 2011/08/19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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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날씨와는 다르게,

잘 살고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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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9 23:22 2011/08/19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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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가 없는...

from @ the moment 2011/08/19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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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인지 바다인지 땅인지 모를....

너무 선명한 것들에 질릴 때.

- 충남 태안 신두리 바닷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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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9 22:32 2011/08/19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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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화

from @ the moment 2011/08/19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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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화, 사구 식물 중 제일 화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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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9 22:18 2011/08/19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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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from @ the moment 2011/08/19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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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을 재우며 부르는

이 거칠은 바람의 노래를

- 문태준, '바람이 나에게'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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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9 21:47 2011/08/19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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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들

from @ the moment 2011/08/19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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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찬 바닷바람에 온몸 일으켜 세워 저항하는,

얕은 모래 사막에서도 잘 심긴 풀들

 

- 충남 태안 신두리 사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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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9 21:28 2011/08/19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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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 the moment 2011/08/19 21:26

 


언젠가 이 비를 맞으며, 

그대에게 갈 날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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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9 21:26 2011/08/19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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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헤어드레서

from the movie 2011/08/17 18:34

** 스포일러있음

 

어릴 적부터 영화를 좋아했지만

줄곧 코폴라나 스콜세지 같은 남성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남성들이 주인공인 영화들을 좋아했었다.

물론 이들의 영화 속에서는 '여성'인물의 존재감이 없다.

있다하면 거의가 섹스 어필한 남성 주인공의 상대역이나,

경제적으로 남성에게 의존해야만 살 수 있는 존재로 등장하기 일쑤였다.

 

조금 더 머리가 커서는, 제인 캠피온이나 퍼시 애들론의 영화를 보며 위안삼은 적이 많았다.

특히 캠피온의 '내 책상위의 천사'는 중고등학교 내내 나를 사로잡던 영화였다.

줄곧 타인에 의해 정체성의 규정되는 여성들의 삶, 그 속에서 오는 자아 분열, 

그러나 흔들리지 않고 나를 찾아나가는 유명 작가의 생애.

디 아워스를 보면서는 미칠 것만 같았는데 이 영화는 보는 내내 행복감을 주었다.

 

헤어드레서는 '내 책상위의 천사'와 거의 유사한 플롯이어서 이야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늘어지는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감독 특유의 유머로 이를 극복하는 장점도 있다.

캠피온의 영화와 다른 게 있다면, 주인공에게 처해진 계급적 차이 정도?

 

독특한 스타일에 뚱뚱한데다, 가난한 싱글맘인 카티는 자기만의 미용실을 갖기 위해 이런 저런 방법들을 동원한다. 그 과정에서 우정과 사랑을 쌓고 사기와 협박도 당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는다. 내 책상 위의 천사에서 등장한 자넷 프레임은 지독한 소외 속에서도 결국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영광까지 얻지만, 헤어드레서의 카티는 원하던 모든 것들이 수포로 돌아가고도 다시 희망을 찾는....어찌 보면 무척이나 억척스러운 여자로 등장한다. 뚱뚱한 사람은 게으르다는 편견을 깬다.

 

한국계 출신 배우가 연기하는 베트남 이주노동자 티엔의 눈빛이 좀 예사롭지 않았다.

보는 내내 '이 사람도 카티를 사기치고 도망가는 거 아닌가?'하는 의심을 하게 만들 정도로,

관객들은 카티와  티엔의 섹스 장면에서 소리를 질렀는데

괴성인지 환호인지 무엇인지 모를 감정의 결을 느꼈다.

 

남성 이주노동자가 허락도 없이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에서 약간의 폭력성이 느껴졌던 건...나 뿐이었을까.

좋아하는 감정이 들면 막 원칙적으로 합의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섹스할 수도 있는데....

만일 그 자가 백인이었다면 이 경계의 애매함을 찜찜하게 안고 있었을까?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 같다.

카티가 뚱뚱이와 홀쭉이가 될 것이라 말하며 그의 키스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까맣고 홀쭉한 남성과 하얗고 뚱뚱한 여성이 벌이는 섹스는

젠더, 인종, 외모 등 모든 차별의 변수들이 애초부터 무의미한 것처럼 보였다. 혹은 그것의 경계들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장면인 것 같기도 했다. 솔직히 나에게는 지울 수  없는 젠더적 함의, 거기에 내가 안고 있던 인종적 편견이 덧 씌워져 불편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참 아름다워보였다.

 

'그냥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지, 사랑한다는 데 웬 말이 많아, 부인이 있으면 어떻고 잠깐의 사랑을 할 수도 있지 뭘 그래'

 

그래, 그럴 수도 있다. 카티의 삶은 항상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을 긍정해왔다.

 

컴플렉스 가득한 여성이 그걸 걷어내고 자기를 위한 삶을 산다는 흔한 내러티브

하지만 도리스 되리는 전작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 '친숙함'을 놀랍도록 매력적으로 그린다.

 

휴가 기간 내내 아빠를 돌보고 나서

짬내 찾은 극장, 겨우 영화 한 편 보고 다시 돌아왔다.

거의 한 달 가까이를 못 나가봤다.

 

영도는 멀어서라도 못 간다지만

서울 한복판 찬 길바닥에서 무척 외롭고 고된 농성을 했다던 피해자 동지의 모습이 밟힌다.


그녀와, 함께 봤으면 좋았을텐데....

 

Dorris Dorrie, 헤어드레서(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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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7 18:34 2011/08/17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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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잎

from @ the moment 2011/08/16 22:08

조리개값, 셔터 스피드 다 생각이 안남ㅠ

망원렌즈가 없어 50mm로 최대한 당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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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만 해도 카메라를 받고 처음 나간 거라,

iso 설정도,

칼라 발란스를 맞추는 것도 모르고 있었음. 흙!ㅠ

썩은 이파리를 부러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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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6 22:08 2011/08/16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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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 the moment 2011/08/16 21:56

감도를 높였어야 했는데...걍 아웃포커싱 연습만...

화성시 봉담도서관 앞 늪지

Nikon D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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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6 21:56 2011/08/16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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