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블릭 도메인과 2차 창작

  • 분류
    잡기장
  • 등록일
    2009/08/14 14:01
  • 수정일
    2009/08/14 14:01
  • 글쓴이
    진보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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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릭 도메인과 2차 창작
[미디어운동場]진보네트워크센터
 
2009년 07월 17일 (금) 20:24:42 뎡야핑/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mediaus@mediaus.co.kr
 

지식, 정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에도 각자의 경험이 공유되었고, 그것을 서로 이용하고 다시 경험하고 새로 노하우를 쌓아 발전시키는 작업들이 있었다. 모든 정신적 생산물이 공동의 것-퍼블릭 도메인이었다. 현대의 창작물 역시 영화든 책이든, 매체를 통한 창작은 이미 다른 창작물로부터 영향을 받아 서로 관계를 맺고 사회적으로 생산된다. 지금의 저작권법도 이 점을 인지해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통해 문화의 향상발전을 목적한다며 소극적이나마 저작물이 사회적 생산 결과임을 인정하고 있다.

이렇게 창작물이 한 사람의 노력에 더해 전/동시대 사회구성원들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결과물이라면 그에 대한 이용도 보장되어야 한다. 물론 창작물에 고유성이 있게 마련이고 일정 기간 동안 저작권자는 마땅히 보상받아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저작권 체계는 과도하게 긴 기간(저자 사후 50년, 기업은 공표 후 50년)과 저작권자의 강력한 통제권으로 더 풍요로운 생산의 가능성, 특히 2차 창작의 가능성을 막고 있다.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
 

   
  ▲ Crossroads, 1976 | 브루스 코너 / Bruce Conner  
 

원자폭탄이 터지며 버섯구름이 생기는 걸 느리게 보여주는 크로스로드라는 영화가 있다. 클래식 선율에 맞춘 다양한 앵글의 슬로우 모션을 보며 이런 끔찍한 살상의 부산물도 들여다보면 아름다울 수 있구나 놀랐고, 한편으로 이걸 어떻게 찍은 걸까 궁금해 했었다. 나중에야 미국의 국가기관이 발행하는 모든 자료는 퍼블릭 도메인이고, 이 영화는 비키니섬에서 원자폭탄을 터뜨린 미군이 찍은 영상을 편집한 2차 창작물임을 알게 되었다.

퍼블릭 도메인은 저작권이 포기되었거나 기간 만료로 소멸된 저작물의 상태를 말한다. 저작권자가 없으므로 허가나 저작권료 지불 없이 편집, 가공하여 새로운 저작물을 생산, 배포할 수 있으며 그로부터 일정한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퍼블릭 도메인을 이용한 저작물은 많이 있다. 매년 다양한 출판사가 다양한 버전의 법전을 출판한다. 가끔 갑작스레 외국 소설이 여러 출판사의 번역을 통해 한 번에 쏟아져 나오는 것은 저자 사후 50년이 되어 저작권이 소멸한 경우이다. 명화를 복제해서 팔거나 방안에 걸어두기도 하고, 구전민요나 작자미상의 노래로 음반을 녹음하기도 한다.

 

2차 창작의 장벽
 
하 지만 국가기관이 발행하는 자료란 한정적이고, 저자 사후 50년이라는 저작권 보호기간은 너무 긴데다, 저작권이 포기된 작품들은 드물고, 알기도 어렵다. 또 크로스로드처럼 직접 촬영하지 않은 필름을 편집해 새로운 의미를 가지는 영화(파운드 풋티지found footage)를 만들 때 원하는 필름의 저작권자를 일일이 찾아 협상하고 허락을 구해야 하는 것은 소모적이고 비효율적이다. 소자본, 비상업 영화라면 저작권료를 지불할 수 없어 작품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돈이 있어도 저작권자를 못 찾으면 무허가 이용으로 불법이라 포기해야 한다. 또 동시대의 저작물을 이용하려면 저작권자의 통제권에 따른 장벽이 더 높다.

모든 저작물은 가능한 한 제한 없이 생산에 직간접 참여한 사람들에게 향유되어야 한다. 꼭 경제적 대가를 치를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즐길 권리가 있는 건 아니다. 또 널리 향유된다는 것은 어떤 위대한 저작자들의 글을 대다수의 저작능력이 없는 자들이 수동적으로 감사히 받아들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작품에 대한 재해석과 편집, 가공이라는 2차 창작도 마음껏 할 수 있어야 한다. 어디까지 패러디로 용납될까 혹시 저작권을 침해하는 건 아닐까, 저작권자에게 명예훼손이 되는 건 아닐까 벌벌 떨면서, 2차 창작은 저작권의 분명한 침해이나 은혜로운 원 창작자님의 자비 덕분에 감옥에 안 가도 된다고 기뻐해야 하는가? 저작권자의 생산물 역시 앞선 이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면서 2차 창작을 금지할 수 있는 것은 부당하다.

 

퍼블릭 도메인으로 가능한 것들

 

   
     
크리에이티브 커먼스(CCL)를 만든 로렌스 레식이 주장하는 대로 저작권 기간을 줄이고, 저작권이 창작과 동시에 자동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저작권을 등록할 경우에만 발생하고, 나머지 창작물은 퍼블릭 도메인의 영역으로 남기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에 더해 저작권의 내용 중 2차 창작 금지권리는 사라져야 한다. 명예훼손성 2차 창작이나 표절, 도작을 이유로 반대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2차 창작 금지 권리의 이유가 되긴 힘들다. 금지권이 있는 현재도 마찬가지로 일어나는 문제이고, 다른 차원에서 원칙을 가지고 해결해야 할 일이다. 2차 창작의 자유와 표절, 명예훼손 등의 문제는 상호 모순되지 않는다.

한 블로거가 다섯 살짜리 딸이 유행가를 따라 부르는 동영상을 올렸다가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비공개 처리 당한 일이 있었다. 앞으로는 이용 정지 등의 더 강력한 조치가, 좀 더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것이다. 이것은 창작을 방해하고 문화를 저지, 쇠퇴시키는 방식이다. 통제권을 가진 저작권자의 선처를 바랄 수밖에 없는 현재 시스템은 잘못 됐다. 누구나 돈이 없어도, 원저작자의 허락(통제)가 없어도 마음껏 가공하고 살포할 수 있는, 더 많은 창작물이 공유되고 구석구석 새로운 창작물이 다시 태어나 풍요로워지는 미래상이 바람직할 것이다. 우리 모두의 생산물, 우리 모두의 즐거움. 다 같이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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