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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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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며칠, 열이 나고 잠이 쏟아졌다.

열이 난 줄은 모르고 그냥 잠이 쏟아지는 건줄 알았는데, 몸살끼가 있었나보다.

등이 흠뻑 젖어서 깨어난 다음에 열이 났었다는 걸 알았다. 

3일을 먹고자고 농땡이 치고 땀빼고 잤더니 왠지 깨운하고 기분이 좋다.

대신 지난 주에 했어야 하는 일들 중 큰 건을 몇 개 그냥 지나쳐버렸다.

하나는 멍청한짓을 하다가가 멍청하게 놓치고, 하나는 그 멍청한짓 때문에 포기한거였는데 결국 멍청한짓이 멍청한짓을 부른 꼴이 되었다. 아 멍청이.... 그 외에도 소소하게 멍청이 짓을 참 많이 했지만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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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쪽이 안되는 기획 초안은 왜이렇게 보기 싫지-_-;;;

나는 보통 내가 쓴 글을 보며 좋아하는데, 이건 당췌 보고싶지가 않아..

다시 꼼꼼하게 보고 수정하고 덧붙이고 오리고 해야하는데 말이다.

이렇게 해서는 아무데서도 제작지원을 못받겠지... 허허허. 근데 난 왜 이렇게 놀고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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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경험했던 '현장' 이라는 곳들은 대개, 사고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오거나, 지식을 많이 알게 하지는 않았다. 내가 현장에서 필요한 공부를 안해서 일 수도 있지만;; 

현장에서의 '공부'는 학교 다니며 책보며 해왔던 '공부'와는 좀 다른 느낌이다.

넓게 보면 '공부'라는 것을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사회의 잘못된 구조라던가 그것의 철학적 함의라던가 정치학적 진단이라거나(굉장히 한정적인 의미이지만) 이런건 오히려 정말로 책을 보는 것이 훨씬 능률적이었던 것 같고..(그 한정적인 공부를 안해서 이러쿠나. 큼.)

현장에서 배우게 되는 것은 대부분 '태도'에 관한 부분, 그리고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나의 관계지형이 바뀌는 것이었다.

특별히 무슨 사상으로 무장했다거나, 무슨 대 혁명이 일어나길 바라거나/일으키길 바라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애매모호하게 대충 이런건 좀 아니지 않나... 이건 좀 심하지 않나... 정도의 태도로 근근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내가 아직도 어물쩡 이 동네를 기웃거리고 있는건 '친구들이 다 여기 있어서...' 이기도 한 것이다. 아는 사람 전부가 운동권인건 별로 안좋다고 생각하지만;; 고민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찾아서 물어볼 수 있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공부를 하거나 적극적으로 어떤 운동을 하거나 작품을 하고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물론 '운동'이 '건강'을 보증해주지는 않는다.) 

근근히 이동네를 떠돌다보니 아는 사람들도, 좋아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이 동네에 있다. 험한 동네에서 운 좋게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서(누군가의 말마따나 온실 속 화초는 전혀 아니었으니, 깊은 산속 옹달샘 안이었달까...) 좋은 기억도, 여전히 좋아하는 마음들도 많다. 이렇게 형성된 주변지형이 나를 계속 이렇게 머물게 하는 동력이기도 한 것 같다. '좋아하는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고 싶지 않다' 라는 마음이. (쓰고 보니 진짜 별로다)

순수한 기대라거나, 끌어모을 수 있는 간절함의 최대치, 쏟아부울 수 있는 열정, 식지 않는 분노 같은 이름을 붙인 병은 애저녁에 동이 났다. 그런건 이제 없어서 도대체 뭘로 그렇게 나를 불태웠던건지 이제는 알 수가 없게 됐다. 그리고 별로 꿈꾸는 것도 없고, 게으름을 피우고, 그저 그렇게 목숨을 붙이고 사는 내가 왜 계속 이 험한 동네를 맴도는가를 생각해보면 그 이유밖에 안남는 것이다.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어서 지금 이 작업을 하겠다고 한건지도 모르겠다. 

 

물론 꿈꾸는 것은 있다. 냉소하게 되어서 그렇지.

물론 기대하는 것도 있다. 점점 더 개인적인 열망으로 차오르게 되서 그렇지.

 

음.. 이렇게 냉소하려고 쓰기 시작한게 아닌데 왜이랴...

아무튼, '활동가의 삶'과 '장기투쟁의 삶'은 당연히 다르고, 그리고 '장기투쟁'을 설명할 다른 언어들이 많이 있지만, 이 '관계지형의 변화'에 대한 부분은 비슷한 지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고, 어떻게해서든 꼭 넣고싶다는 생각.

이 생각 때문에 이 글을 쓰기 시작한건데 왜 이렇게 된거지...ㅇ-<-<...

오래 투쟁한다는 것은 특히나, 이전에 살았던 삶과 단절되면서 새로운 관계가 생겨나고 주변이 바뀌게 되는데, '투쟁'이라는 험난한 길을 갈 때 이렇게 구성되는 주변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효율이나, 투쟁의 승리 같은 면이 아니라 인간적인 관계의 측면, 일상적인 생활인의 측면에서도 말이다.

어떤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 '관계지형의 변화', 그리고 그 관계의 중요성 같은걸 다큐에 꼭 집어넣고 싶다. 그리고 이것으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긴 투쟁'의 일부는 설명된다고 생각한다. 내 다큐의 목적이 장기투쟁 이해하기도 아니고, 그렇게 될 수도 없지만, 자연스럽게 그런 이야기가 담길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얄팍한 위로나 얕은 동정심 같은걸로 설명하게 되면 스스로를 저주할 듯....-_-;;

 아무튼, 돌아보고 지금의 좌표를 확인하는 것, 그리고 방향을 정하고 고개를 똑바로 드는 것. 이 이 작업의 목표. 아, 거창하다.  

여긴 또 왜이렇게 거창하고 발랄해...

조울인가...-_-;;;

 

또 쓸데없이 긴 글이 되었다. 핵심은 구성안에 '관계지형의 변화'에 대해 쓰자 였는데.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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