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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118_주요메모

 

콜트콜텍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기로 한건 나 스스로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 때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봐도, 그들과 같이 밥먹고 뭔가를 하더라도 그 때 뿐, 대부분 무심하고 무관심했다. 
그런 내 모습이 좀 낯설었다.
2006년 나는 농민들을 만나고 그 마을에 살기로 결정했다.
2009년 피하고 피하다 결국 마주하게 되자 열일 제치고 용산으로 출퇴근을 했다.

그런 일들에서 대부분 크게 한 일은 없어도 스스로 마음을 다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노동자들을 만나고 만나도 심드렁한 나 자신이 신기했다. 이런 정의, 이런 소용돌이에 끌리는 것 아니었나? 근데 왜 이러지?

처음에는 노동자들 때문인 줄 알았다. 먼저 살갑게 다가오기보다 약간 쭈뼛거리고, 뭔가 진리를 품고 있을 것 같다기 보다는 약간 한량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냥 그런것 때문인 줄 알았다. 아, 나는  노동자들한테 크게 관심이 없나보지? 라고 넘겼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저런 생각으로 감정이 북받쳐 오르자 한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을 만나기 시작했을 무렵, 이런 이야기를 들었었다. 너무 답 없는 싸움이라고. 국내엔 더이상 돌아갈 공장도 없고, 동력도 약한 싸움이라 길게 간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고.
당시 나는 상황을 잘 몰랐기 때문에 지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고, 아 어렵구나. 그냥 그렇게 넘겼다. 그렇지만 뭔가 계속 연결되는 일이 생기고, 나는 왠지 기록을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뭘 찍어야 할지, 왜 찍어야 하는지를 잘 모르겠더라. 그래서 별로 열심히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한켠으로는 '아~ 나 이거 왜 열심히 안하지??' 하고 생각하고 넘겼다.
그냥 내 게으름을 탓했다.

2006년에는 살던 곳에서 남은 땅이라도 일구며 살아가기를, '우리땅 지키기'를 하기를 바랐다.
2009년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여섯분의 영정 앞에 무릎꿇고 사과하는 장면이 너무너무 보고 싶었다.

나는 그런 것들이 소박한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소박한 것들은 하나도, 단 하나도 이룰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절망하기 싫었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싸움의 끝을 보면 너무나도 당연하게 절망할 것 같았다.
나는 그것에 빠지고 싶지가 않았다.

그 즈음부터 나는 항상 그랬다. 
나는 항상 절망에 빠지기 두려워 무엇에도 다가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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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가지 키워드에 대한 정리. 일단.

#

"일상적연대"

"일상적 연대"라는 것에 집중하게 된 이유는, '지금 일상적 연대를 하고 있다/지금 일상적 연대가 필요하다' 같은 것이 아니라 대추리를 경험했기 때문일테다.

'삶'과 '투쟁'이 분리되지 않는 철거지역이자, (각자) 다른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지던 곳이기 때문.

더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대추리 "이후" 일 것이다. 삶과 투쟁이 분리되지 않던 생활과, 분리되던 그 '이후'를 감정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 뭔가가 헷갈리고 불안했던 것. 

'투쟁은 같이 했는데 삶은 같이하지 못한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해 갈팡질팡했다.

그렇다고 투쟁과 삶이 묶여있던 대추리에서의 생활이 항상 행복하고 아름답운 것이었느냐? 결코 아니었다. 만일 그것이 행복하고 아름답고 남고 싶은 일이었다면, 어떻게 해서든 비비고 들어갈 자리를 마련하려고 노력했을지도 모른다. 마음속으로 이미 포기한 부분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오래된 방식의 '공동체 생활'이라는 것에 대한 피로도도 있었고,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엄마가 사는 동네는 싫은데, 대추리라고 좋을건 뭐가 있겠나. 내 개인적인 생활이 엮이는 것과 투쟁에 연대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이기도 했다.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는 부분도 많았기 때문에. 

그러나, 여전히. '투쟁 이후의 삶은 어때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남아있다. 개인적, 개별적 관계로 그저 자기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인지, 그런것이 혼란스러웠다. 용산의 철거민들은 적절한 보상만 받으면 그 지역을 떠날 예정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아쉬움도 있고, 기억이나 추억도 존재하지만, 삶 자체가 땅에 묶여 있는 촌사람들과는 다른 위치였다. 오히려 옮겨다니는 것, 이동하는 삶에 익숙한 도시민들이었다. 그래서 협상 이후는 (생활보장만 가능하다면) 자기 삶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할 수 있었다. 사람마다 다를지 모르지만, 대추리 주민들의 경우, 이후가 없을 것 같은 투쟁을 했다(고 느낀다). 가족의 역사와 공동체의 역사가 묻혀있는 곳이자, 땅에 얽힌 삶의 양태 때문이라도. 정박하는 삶이었다. 

어쨌든. 나는 나름대로 이 기억을 안고 투쟁하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고 잘 살아보겠습니다. 정도로 마음을 갈무리했지만, 여전히 그것이 충분한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남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아마도 이런 형태('일상적 연대'에 주목하는)로 뭔가 잔여물처럼 남은지도 모르겠다.

 

#

'다른일상'과 "연대"

-대추리의 경험으로, 나에게 있어 '투쟁'은, 혹은 다른 가치를 지향하며 산다는 것은, 어떤 종류의 다른 가치지향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삶'을 사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래서 '투쟁한다','연대한다'는 '다르게 살아간다'라는 의미로 자리잡았다. '연대한다'는 어떤 "가치투쟁, 의미투쟁에 가담한다"가 아니라 '다르게 살아간다'라는 의미로. 그래서 '연대한다'는 것이 굉장히 큰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지도 모른다. 작은 일, 지금 이 자리에서 아무것도 위협받지 않고 마음을 약간만 떼어서 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일 자체가 작더라도 온 마음을 다 해야하는 것, 온전히 마음을 쏟아부어야 하는 것이라고 몸이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는 못해'라고 생각하거나 금방 포기해버리거나. 그런걸지도 모른다. 

-"연대한다"는 것은. 어떤 가치투쟁, 어떤 의미투쟁에 동감하며, 적극적으로 그 싸움에 동참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무엇을, 어디까지 책임지는 일일까?. 그렇다면 눈에 보이는 투쟁의 시간이 지나간 후, 혹은 이겼다/졌다로 상징되는 어떤 결과가 나타난 이후는 어떻게 되는거지? 연대는 끝나는 것인가? 그 가치투쟁은 연대로 자기의 투쟁이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이어지게 되는 것인지?

-'연대책임'은 무엇을 책임지는건지. 그건 사람에 따라 책임이 달라지는건지. 연대의 정도에 따라서 책임이 달라지는건지. 투쟁의 기여분에 따라 달라지는건지. 

모르겠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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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7

#

와 진짜 오랜만에 불질. 또 정줄 놓고 논거 티 팍팍 난다.

 

#

정리된건 아무것도 없다. 여전히 작업실 컴 앞에 앉아서 뭘 해야할지 떠올려봤을 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러면 괜히 작업실에서 히히덕 거리며 웹툰이나 보거나 쓸데없는 웹서핑 같은거나 하고 시간이나 떼우고 올게 분명하지. 그러니 그냥 집에서 놀자 ㅇ-<-< 라는 식이 되어버려 또 그냥 공치는 나날들이다. 근데 정말 뭘 해야할지 모르겠는데 어쩌징.

 

#

뜨아아. 떼창연습 때문에 오랜만에 옛날 화면들을 보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현장과 분리되는 것에 대한 불안은, 아마도 대추리에서의 삶 때문일 것이다. 나는 어떤 대의나 명분에 가담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삶과 연결되는 것이라고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 '활동가'라고 부르는 것이 어색했던 것이, 어떤 '활동'을 한다는 마음보다는 '그냥 필요한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지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운동을 한다'거나 '활동을 한다'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있었다. (운동에 대한 자각도 별로 없었거니와). 마을을 나온 후에, 그리고 여태까지도 드문드문, '나는 왜 주민들과의 관계를 꾸준히 이어가지 못하나'하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추리의 대의명분인 '미군기지 확장반대'는 평화운동, 인권운동의 범주(및 반미운동환경운동 등등이 함께 있었지만 어쨌뜬) 안에 있었다 하더라도, 오히려 어떤 면에서 내가 겪은 삶은 공동체운동이랄까 지역주민운동이랄까, 그런 측면도 동시적으로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다만 그런 개념이 별로 없었을 뿐.. 이런저런 이유를 달지만 어쨌든 나를 추동하던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관계'라고 정의 내렸기 때문일것이다.

 관계를 쌓고 만들어나가고 하는 것은 왜 중요해졌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주민들'하고 뭉뚱그리면 막 낭만화되고 아련아련한 이미지에 막 그러니까 마치 개개인들이 엄청나게 친하고 살갑고 서로 두텁고 행복한 그런 시간을 보냈을 것만 같지만 사실 곰곰히 짚어보면 한명 한명의 모든 주민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거나 엄청나게 두터운 관계를 쌓았다고 볼 수도 없다. 그 중에 어떤 분들과 생각지도 못하게 마음을 많이 주고 받은 경우도 있고, 이러저러한 때도 있었으나, '우리'를 묶어주던 '투쟁 중'이라는 얼개가 풀렸을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깊은 관계, 혹은 다른 측면의 접근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것이 참 오랫동안 죄스러웠다.(물론 내가 참 연락을 안하고 못하고 막 그렇긴 했다 흑흑) 투쟁 '끝' 이라서 각자의 자리로 돌아온 것이, 이제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었다. 여전히 '투쟁 끝' 뒤에 무엇이 자리해야하는지 궁금하다. 아마도 이런 마음에서 출발했던 것이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한데 묶어서 작업하자고 생각했던 것에는. 

그냥.. 그렇다고;;;;; 하도 오랫동안 작업에 대해 생각조차 안하고 있어서 잊어먹게 되는 거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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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연대

 

특별하고 비일상적으로 보이는 현장과 평범하고 일상적인 연대.

 

일상의 연대, 일상적인 연대라는 것은 무엇일까?

폭력이 난무할수록, 혁명이 나약할수록, 투쟁이 길어질 수록.

그래서 연대가 만연한 시절. 만연하게 연대해야만 하는 시절.

그래서 특별한 행위, 특정적인 행위가 아니라, 일상적으로 행하게 되는,

 

보통 사람들의 비일상적인 삶에의 일상적 연대.

 

나의 큰 줄기는 이것이였따!!!!!!!!!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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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2

#

어제랑 오늘은 다 망했다.
어제 사이클이 바뀌어서 오밤중에 일어나고,
기획서 3-4줄 쓰고 생각이 안나 끗.
오늘 작업실에서는 주구장창 딴짓딴짓딴짓만 하다가
정신 못차리고 무한도전 보고 낄낄대고,
단 한줄도 못썼다.
얼추 생각이 잡혔으니 앉아서 쓰면 되겠지, 했는데 아니었다.
생각이 잡힌게 아니었어..ㅇ-<-<...
고민을 진득하고 깊숙하게 끌고 나가는게 너무 어렵다. 
일기도 길게는 못씀...
하기로 했던 다른 일을 포기하고, 이걸 하고 있으니 더 열심히 해야한다거나, 더 높은 효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쪼고 있는데
마음만 쪼아짐.. 그리고 마음이 쪼그라들어서 더 생각이 안남...
요즘 덕질하고 있는 앨범을 무한반복으로 들어도 집중이 안된다. 흑흑.

 

#

윗 글과는 별개로....

지금 작업에 "나는 왜 예전처럼 열정적으로 뛰어들지 못하는가!"라는 스스로에 대한 비난이 깔려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 나는, 현장밀착형이 아닌 현재의 나로도 괜찮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여러 기억들과 경험들은 매우 소중한 것이지만, 다시 똑같이 겪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달라진 삶에서 어떻게 그 기억의 소중함을 살려 이어나갈 것인지가 핵심 질문이고 해결해야할 과제이다.

책임지고 싶고, 매듭짓고 싶은 마음이 이 작업을 하려고 했던 동기 중 하나였다.

아 근데 그건 뭘까...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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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4

#

요며칠, 열이 나고 잠이 쏟아졌다.

열이 난 줄은 모르고 그냥 잠이 쏟아지는 건줄 알았는데, 몸살끼가 있었나보다.

등이 흠뻑 젖어서 깨어난 다음에 열이 났었다는 걸 알았다. 

3일을 먹고자고 농땡이 치고 땀빼고 잤더니 왠지 깨운하고 기분이 좋다.

대신 지난 주에 했어야 하는 일들 중 큰 건을 몇 개 그냥 지나쳐버렸다.

하나는 멍청한짓을 하다가가 멍청하게 놓치고, 하나는 그 멍청한짓 때문에 포기한거였는데 결국 멍청한짓이 멍청한짓을 부른 꼴이 되었다. 아 멍청이.... 그 외에도 소소하게 멍청이 짓을 참 많이 했지만 패스...

 

#

열다섯쪽이 안되는 기획 초안은 왜이렇게 보기 싫지-_-;;;

나는 보통 내가 쓴 글을 보며 좋아하는데, 이건 당췌 보고싶지가 않아..

다시 꼼꼼하게 보고 수정하고 덧붙이고 오리고 해야하는데 말이다.

이렇게 해서는 아무데서도 제작지원을 못받겠지... 허허허. 근데 난 왜 이렇게 놀고있는가...

 

#

내가 경험했던 '현장' 이라는 곳들은 대개, 사고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오거나, 지식을 많이 알게 하지는 않았다. 내가 현장에서 필요한 공부를 안해서 일 수도 있지만;; 

현장에서의 '공부'는 학교 다니며 책보며 해왔던 '공부'와는 좀 다른 느낌이다.

넓게 보면 '공부'라는 것을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사회의 잘못된 구조라던가 그것의 철학적 함의라던가 정치학적 진단이라거나(굉장히 한정적인 의미이지만) 이런건 오히려 정말로 책을 보는 것이 훨씬 능률적이었던 것 같고..(그 한정적인 공부를 안해서 이러쿠나. 큼.)

현장에서 배우게 되는 것은 대부분 '태도'에 관한 부분, 그리고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나의 관계지형이 바뀌는 것이었다.

특별히 무슨 사상으로 무장했다거나, 무슨 대 혁명이 일어나길 바라거나/일으키길 바라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애매모호하게 대충 이런건 좀 아니지 않나... 이건 좀 심하지 않나... 정도의 태도로 근근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내가 아직도 어물쩡 이 동네를 기웃거리고 있는건 '친구들이 다 여기 있어서...' 이기도 한 것이다. 아는 사람 전부가 운동권인건 별로 안좋다고 생각하지만;; 고민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찾아서 물어볼 수 있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공부를 하거나 적극적으로 어떤 운동을 하거나 작품을 하고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물론 '운동'이 '건강'을 보증해주지는 않는다.) 

근근히 이동네를 떠돌다보니 아는 사람들도, 좋아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이 동네에 있다. 험한 동네에서 운 좋게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서(누군가의 말마따나 온실 속 화초는 전혀 아니었으니, 깊은 산속 옹달샘 안이었달까...) 좋은 기억도, 여전히 좋아하는 마음들도 많다. 이렇게 형성된 주변지형이 나를 계속 이렇게 머물게 하는 동력이기도 한 것 같다. '좋아하는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고 싶지 않다' 라는 마음이. (쓰고 보니 진짜 별로다)

순수한 기대라거나, 끌어모을 수 있는 간절함의 최대치, 쏟아부울 수 있는 열정, 식지 않는 분노 같은 이름을 붙인 병은 애저녁에 동이 났다. 그런건 이제 없어서 도대체 뭘로 그렇게 나를 불태웠던건지 이제는 알 수가 없게 됐다. 그리고 별로 꿈꾸는 것도 없고, 게으름을 피우고, 그저 그렇게 목숨을 붙이고 사는 내가 왜 계속 이 험한 동네를 맴도는가를 생각해보면 그 이유밖에 안남는 것이다.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어서 지금 이 작업을 하겠다고 한건지도 모르겠다. 

 

물론 꿈꾸는 것은 있다. 냉소하게 되어서 그렇지.

물론 기대하는 것도 있다. 점점 더 개인적인 열망으로 차오르게 되서 그렇지.

 

음.. 이렇게 냉소하려고 쓰기 시작한게 아닌데 왜이랴...

아무튼, '활동가의 삶'과 '장기투쟁의 삶'은 당연히 다르고, 그리고 '장기투쟁'을 설명할 다른 언어들이 많이 있지만, 이 '관계지형의 변화'에 대한 부분은 비슷한 지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고, 어떻게해서든 꼭 넣고싶다는 생각.

이 생각 때문에 이 글을 쓰기 시작한건데 왜 이렇게 된거지...ㅇ-<-<...

오래 투쟁한다는 것은 특히나, 이전에 살았던 삶과 단절되면서 새로운 관계가 생겨나고 주변이 바뀌게 되는데, '투쟁'이라는 험난한 길을 갈 때 이렇게 구성되는 주변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효율이나, 투쟁의 승리 같은 면이 아니라 인간적인 관계의 측면, 일상적인 생활인의 측면에서도 말이다.

어떤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 '관계지형의 변화', 그리고 그 관계의 중요성 같은걸 다큐에 꼭 집어넣고 싶다. 그리고 이것으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긴 투쟁'의 일부는 설명된다고 생각한다. 내 다큐의 목적이 장기투쟁 이해하기도 아니고, 그렇게 될 수도 없지만, 자연스럽게 그런 이야기가 담길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얄팍한 위로나 얕은 동정심 같은걸로 설명하게 되면 스스로를 저주할 듯....-_-;;

 아무튼, 돌아보고 지금의 좌표를 확인하는 것, 그리고 방향을 정하고 고개를 똑바로 드는 것. 이 이 작업의 목표. 아, 거창하다.  

여긴 또 왜이렇게 거창하고 발랄해...

조울인가...-_-;;;

 

또 쓸데없이 긴 글이 되었다. 핵심은 구성안에 '관계지형의 변화'에 대해 쓰자 였는데.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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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07

 

1. 이럭저럭하게 예전에 인터뷰 했던 영상들을 보고 있으려니,

나는 참 아예 내용을 따라가지를 못하고 있었구나 싶다.

마음먹고 '인터뷰 해야지!'하고 갔을 때에도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들이댔구나 싶다.

그 와중에 가장 큰 잘못은 어설피 대충 내가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고 넘겨짚어 넘어갔던 대목이다.

사실은 하나도 알지 못하고,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이 사람이 내뱉은 단어와, 이 때 멈추었던 숨이 무슨 의미였는지 하나도 몰랐는데.

대충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그래서 제대로된 인터뷰는 없구나.

 

그래. C는 이렇게 시간차가 필요한 촬영이었나 싶기도 하다.

아마도 이렇게 오랜 시간의 투쟁이라는 것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 

'안다'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나 스스로도 너무나 이상했던 것이 정황상 이들의 과정이나 감정이나 기복을 하나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데, 현재 상황의 파편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었고, 아는 척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장기투쟁은 너무 뻔한 이야기가 되었고, 그렇게 생활이 바뀌고 일상이 변화되어 다른 것들이 아예 변화한다는 것을. 그저 어떤 이벤트를 안다는 것이 그것을 안다는 말로 바뀐 것 같다.

그리고 뻔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만연하는 폭력이 일상화 되었을 때 생기는 나쁜 내성 같은 것.

아.. 겉멋만 들어가지고 나는 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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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9

등터진 새우,

마음 속 폭풍,

꺼지지 않는 의심의 눈초리,

놀기와 놀아남,

죄의식.

갈팡질팡.

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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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촬영본 중간감상

1. 9월 이전은 잘 생각이 안남-_-;;;;

다시 봐야하는것인가...!!!!

 

2. 10-11월 초 는 보면서 매우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그 당시 상황이 우울하기도 했지만, 보면서 특히나 우울했던 듯.

11월 8일 2차 철조망이 우울의 최고조였던 듯.

 

3. 11월 중순-말

특히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들소리와 관련된 것도 많고.

운동회, 김장 담그기 등이 재미있었던 방송인듯.

 

* '주민앵커'가 묘한 느낌을 자아내는데, 이 부분을 활용할 수 있을지?

*'김양분 할머니' 에게 특히 애정을 가졌었던 것이 기억남. '사소한 이야기' 할 때 주인공으로 세웠던 할마시..

근데 김양분 할머니 말고도 애정을 가졌던 할마시들이 많아서 이걸로 괜찮은걸까 생각했었던 것이 기억남.

 

*편집영상을 보고 있는 것이라 판단이 약간 애매하긴 하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매우 촬영본이 거시기.. 이걸 얼마나 쓸 수 있을지가 고민됨..

방송분을 받는 것이 맞는건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일단 방송분은 받아두고...

 

*후반으로 가면, 방송분에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으나, 어쨋든 주민들이 회의하는 장면을 니나가 촬영했던 것으로 기억.

이 소스를 활용할 수 있을듯.

당사자-연대자의 관계와 책임 부분에 대해. 다만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지, 어떤 위치가 적절할지는 다른 소스들과 배치해봐야할 듯.

 

*소스를 다 보기 전에 구성안을 써야할 것 같은데..... 어쩌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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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8

1.

어제는 주저리주저리 하고 싶은 말이 많았었는데 오늘 막상 쓸려고 하니 딱 생각이 안난다.

이거슨 그날 뭘 보았느냐 때문인듯.

 

2.

어제 C 촬영본을 봤을 때는.

나으 무능함, 오글거림, 회피하고 싶은맘으로 가득가득.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업'으로 생각하고 어떻게 엮을 것인지 생각하게 되는 대신에, 소스 자체는 잘 안보게 됐었다. 발촬영에, 나의 이상한 리액션, 그리고 아무 앞뒤 맥락없는... 그리고 많은.

역시나 C는, 보면 볼 수록. 내 깜냥이 안되는 곳이었구나 싶다. 일도, 관계도, 움직임 자체도. '내 할 수 있는 만큼' 이라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보다 더 커야할 것 같은 압박이 있고, 그렇지 않으면 무능한 것 같고. '뭐 어때? 난 나야! 난 원래 이만큼인걸!'이라고 당당하기에는 자아가 약하다. 흐으. 아무튼 여러모로, 감당하기 어려운 곳. 이라는 생각. 그래서 핸들링이 가능한 선이 어디까지일지 잘 생각해보고 조절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도 어렵지만. 

어쨌든 C의 소스는 너무너무너무너무 보기 싫지만, 대신에 영화를 어떻게 엮을 것인지 구성, 혹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에 대해 쪼끔이나마 생각했던 것 같다. 안적어놔서 뭘 생각했는지가 기억 안나는 것이 함정...

근데 오늘 본 A소스는 그냥 상념에 빠져, 과거에 잠겨, '아, 저때 저랬지. 아, 저때 저것도 했지. 아, 저때 재밌었지' 따위의 생각으로 구성은 커녕 내가 작업할려고 보고있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렸다-_-;;;

 

A도, C도 문제인데 B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으니 그것도 문제다.

하아, 하는 것 없이 나이 먹었다는 사실이 싫어서 어떻게든 정리해서 엮어볼려고 했드니만 그건 참 쉬운일은 아닌 것 같다. 없는걸 꾸며내려니 힘든 것인가. 사실 별로 한일 없이 나이만 먹은것도 맞는 말이라고..

아 지겹다 나의 무능함!!!! 그리고 이 자학은 아마 pms가 몰고 온 우울증상이겠지!! 나는 안다!! 지지 않겠다!!!!

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미 좀 짐.. 내 마음은 이미 나를 공격하고 있다.

3. 

어떤 일을 하기로 했는데 자꾸 하기 싫어서 징징거리게 된다. 아. 안할거면 안한다고 할 것이지. 이런걸 조절하는 능력이 필요할듯. 

아무튼 정신차리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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